소설리스트

독자를 위한 연중작은 없다-101화 (101/350)

< 21화. 유혈의 사원 >

2.

완전한 존재들에 대한 ‘살인적인 질투와 시기’

그 더러운 감정에 잠식된 뒤, 난 서쪽 지역에 진입해 닥치는 대로 마주치는 것들을 죽이기 시작했다. 그 비정상적인 감정에 휘둘리고 있었지만, 동시에 내 이성은 차가울 대로 차가웠다. 돌죽으로 따지면 <명석함>이려나? 어쨌든 그 덕분에 광전사처럼 날뛰지 않을 수 있었다.

대신, 암살자에 가깝게 움직였다.

<관찰자의 눈>으로 주위의 환경을 파악한 뒤, 죽일 수 없을 것 같은 무리나 대상은 피했고 죽일 수 있을 것 같은 대상만 죽였다. 멀리서 마법으로 요격하거나, 혹은 숨어 있다가 기습하거나... 아주 ‘이성적’으로 말이다.

사실, 그 목표 자체는 전혀 이성적이지 못하지만 말이지.

“후우!”

독에 중독되어 무방비 상태로 쓰러진 사제, 그 심장을 원숭이의 꼬리 가시로 찔렀다. 이어서 가볍게 비틀어 완전히 찢어버렸다. 심장이 찢겨지자마자 사제의 몸뚱이는 물론이고, 걸친 물품들까지 빛이 바래며 천천히 피로 녹아내리지만-.

“음, 득템이네요.”

그가 옆에 걸고 있던 ‘인간 가죽 주머니’는 멀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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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빵

곱게 갈아 만든 아마란스 씨앗과 어린아이의 피를 섞어 반죽해 구운 어린아이 모양의 비스킷, 평범한 식량이었지만 이젠 ‘신의 축복’이 스며들었다. 우웩! 피가 뚝뚝 흐르는 것 같은 검붉은 색의 비스킷은 살아있는 것처럼 조금씩 꿈틀 거린다!

섭취 시, 한 인간을 잡아먹은 것과 같은 포만감과 활력을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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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인간 가죽으로 된 주머니 안에 든 것은 ‘엄지손가락만 한 크기의 핏빛 과자’, 웅크린 채 때때로 애벌레처럼 꿈틀거리는 어린아이 형상을 보며 난 살포시 얼굴을 구겼다.

“하아, 진짜 취향하고는...”

먹는 빵도 이 지랄을 해야 했나? 좀 일그러진 ‘역사적 고증’이라는 것을 알지만 좆같은 건 좆같은 거다. 그래도 여기까지 오면서 ‘연이은 마법사용’과 ‘격렬한 움직임’으로 인한 허기가 극심했기에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과자 하나를 들어올렸다.

“으으음.”

촉감도 살덩이에 가까운 과자, 애벌레처럼 꿈틀거리는 핏빛 덩어리를 보며 살짝 고민했지만 이내 눈 질끈 감고 입에 털어 넣었다. 한 번 씹자 비스킷은 벌레 씹은 것처럼 ‘팍!’ 터지고, 이어서 피비린내와 함께 그 내용물이 위장으로 내려간다.

...찐득한 핏물을 삼키는 것 같은 맛

역겨움과는 별개로 비상식량으로서의 효과는 대단했다. 방금 전까지 느껴지던 지독한 허기와 목마름이 새빨간 거짓말이라는 것 마냥 사라졌다. 죽인 식인종의 상처에 입을 대고 피를 빠는 것보단 훨씬 낫다.

“하아.”

반경 30m에 침입할 이들이 없다는 것을 한 번 더 확인한 후, 난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아 숨을 골랐다.

킬 카운트 총 108명

미친 듯이 한 번 날뛰니 정신이 좀 들었다. 짜증나는 인간에게 시달린 스트레스를 폭식이나 운동으로 푼 것처럼, 그 원인-질투와 시기가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좀 참을 수 있을 것 같아. 그나저나 놀랍다. 레벨업으로 성장했다고 내가 이렇게 무쌍을 찍다니...

어쨌든 그렇게 충동이 잦아들자 제일 먼저 든 생각은-.

“어떡하죠...”

막막함이었다.

서쪽 깊숙이 들어온 상황, 당초 계획이긴 했다만... 이렇게 나 혼자 오는 건 아니었다. 좀 날뛰긴 했어도 난 ‘내 주제’를 안다. 용케 여기까지 뚫고 왔지만 그건 전부 ‘선빵’으로 암습하거나 <관찰자의 눈>으로 괴물을 피한 덕분일 뿐. 정면승부론 사실 한 마리도 잡기 힘들다.

서예린 같은 고수의 등 뒤에 숨어 ‘누님, 누님만 믿겠습니다.’하며 앞세우고, 난 적당히 보조하며 킬딸하고 길 안내를 하는 게 목표였는데... 나 혼자 와버렸네?

게다가 가지고 있는 것도 없다. 준비물 꽉꽉 넣었던 가방은 한 트롤러 때문에 탑차 창고에서 튕겨져 나오면서 잃어버렸고. 상의에 넣어뒀던 치료 포션도 이제 다 썼다. 남은 건, 도핑 약물이 든 전자 담배 카트리지 6개와 특수 제조한 맹독을 넣어둔 마력 독사 주머니 밖에 없...

아, 생각해보니 추가 전리품 몇 개가 있긴 하네?

일단, 30cm 정도 되는 날카로운 쇠꼬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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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원숭이 수행사제의 원한 (Resentment of Monkey Acolyte)

30cm가량 되는 이 길쭉한 쇠꼬챙이는 ‘원숭이 수행사제’의 꼬리 가시 부분이다. 살육의 신의 축복 아래에 되살아난 존재들은 죽으면 다시 핏물로 녹아내려야 하지만, 이 원숭이 악귀는 자신을 죽인 이에 대한 강렬한 원한으로 이 신체 부위를 남겼다.

이 물건은 서린 원한의 여파로 착용자에게 패널티를 부과하지만, 동시에 원숭이 악귀의 특징을 고스란히 흉내낼 수 있게 만들어준다.

한손 무기, 단도

대미지 4, 명중 +6

기본 공격속도 1.0, 최소 공격 속도 0.5

신속(speed), 은밀+, 음에너지 저항(rNeg)-, H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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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두리를 따라 말라비틀어진 손가락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볼품없는 나무 방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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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치우아테테오의 가호(Chiuatatao’s Bless)

야만인들은 임산부의 출산을 남자의 전투에 버금가는 위대한 투쟁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모든 임산부가 출산이라는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은 아니었고, 그렇게 출산 중에 죽은 임산부는 ‘치우아테테오’라고 불리는 여신으로 승천한다고 믿었다. 그 뒤, 남겨진 임산부의 사체는 야만인들에게 있어서 강력한 마력을 가지고 있는 일종의 성유물이었다.

그렇기에 야만인 전사들은 죽은 임산부의 시체로 무구를 만들어 쓰길 원했다.

가장 인기 있는 부위는 왼손 중지손가락과 머리카락이었으며, 사망한 임산부의 손가락으로 방패를 장식하면 전쟁터에서 더욱 용감하게 싸울 수 있고 적들을 마비 상태에 빠뜨릴 수 있다는 근거 없는 믿음 아래에 유가족을 죽이고 시신을 갈취해 무구를 만들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장비들은 아주 형편없었지만... 살육의 신이 모든 것을 조율한 지금은 다를 것이다.

소형 방패

기본 방패 방어 수치(SH) 3, 방해 수치 5

화염 저항+, 냉기 저항+, 마법 저항+

특수능력: 방패로 방어 성공 시 희박한 확률로 마비 상태에 빠뜨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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핏방울이 송골송골 맺혀 떨어지는 돌돌 말린 인간 가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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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스런 비명의 두루마리(Scroll of Fearful Scream)

야만인 사제가 희생양을 참혹하게 고문하면서 그 피부에 저주의 진언을 한 획씩 꾹꾹 눌러 필사한 뒤, 그 피부를 벗겨내 만든 두루마리. 이 두루마리에 적힌 발동어를 외치는 순간, 두루마리가 타오르며 거기에 스며들어 있던 희생양의 끔찍한 비명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며 주위의 이들을 공포에 빠트릴 것이다.

하지만, 굳건한 정신력을 가진 이들이나 살육의 광기에 취한 이들에겐 통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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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신료 병 같은 작은 유리병에 든 검붉은 가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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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노의 가루

주위 생명체에게 광분 효과를 일으키는 ‘진노의 나방’의 인분, 광전사의 피를 섞어서 말렸기에 더더욱 효과가 좋다.

흡입 시, 강제로 광폭화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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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지금 얻은 끔찍한 쿠키 13개까지, 총 5종류의 추가 전리품을 얻긴 했다.

중요 지역이라서 그런지 마법 아이템 드랍을 잘하더라고? 게임으로 치면 나름 득템이라고 볼 수 있지만... 딱히 기쁘진 않다. 생각해봐라 시체냄새 풀풀 풍기는 손가락과 머리카락이 덕지덕지 달린 조잡한 나무 방패를 보고 ‘득템!’이라며 좋아할 수 있는지.

...내 꼴을 봐봐.

상체는 옷이 찢어져서 그냥 다 벗은 상태, 온몸에 묻은 피는 딱딱하게 굳어서 적갈색 범벅이며 양 손엔 30cm쇠꼬챙이와 다 떨어져나가는 나무 방패를 들었다. 거지새끼도 진짜 이런 상거지새끼가 없어. 노숙자도 이것보단 더 깔끔하겠다.

이런 꼴로 검은 태양이 떠오른 중앙을 가라고?

“흐음.”

그래도, 한 번 가능성은 점쳐 봐야하기에 주위 곳곳에 배치한 <관찰자의 눈> 중 하나를 건물 밖 30m 상공으로 옮겼다. 대충 200m 가량 떨어진 곳에 위치한 거대한 석제 피라미드가 보인다. 그리고 그 위에 활짝 떠오른 검은 태양도.

하늘에 떠오른 검은 태양의 모습은 꼭 현실에 나타난 착시 구조물 같았다.

물리적으로 말이 안 되는데, 그게 진짜 존재한다. 저 ‘드높은 곳’에서 검은 눈물을 쏟아져 피라미드를 적시고 이어서 미르 곳곳에 스며들어 저주의 유혈을 흩뿌린다. 그리고, 그런 피라미드 주위에 있는 존재들은...

“싸우면 개죽음이에요.”

반경 30m 안에 들어오지 않았기에 <감정안>은 작동하지 않지만, 그냥 봐도 알 수 있는 게 있다. 내가 지금껏 죽여 왔던 놈들과는 비교가 안 되는 것들, 선빵과 암습을 날려도 닝겐상에게 깝치다 당하는 참피처럼 ‘데뎃?’하며 상하체가 분리당할 거야.

“그렇다고 피해서 가는 건... 힘들어 보이고요.”

몰래 들어가는 것도 힘들 것 같다. 피라미드에 가까이 갈수록 순찰 빈도가 높거든. 냉정한 이성이 ‘지금 이대로는 절대로 접근하지 못 한다’고 말해준다. 여러 방법을 생각해 봤지만... 그 어느 것도 성공할 거라고 생각되진 않는다.

“역시, 어쩔 수 없네요.”

한숨을 내쉬며 고갤 저었다. 도저히 들어갈 틈이 보이지 않는데 어쩌겠냐? 아쉽지만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를 하는 수밖에. 중앙지역에 사람들이 몰려 있는 것 같으니 한 번 접촉해봐야지. 그렇게 결론을 내리고 천천히 뒤로 빠지려고 했는데-.

건물 밖, 석제 피라미드를 향해 움직이는 한 인영이 보였다.

화려한 깃털 장식과 인간 살가죽을 뒤집어 쓴 사제, 그 사제 뒤편엔 창살에 갇힌 희생양을 팔과 목에 쇠사슬을 찬 야만인 노예들이 들고 가고 있었다.

별로 이상한 모습은 아니다.

여기서 희생양을 죽이며 제사를 지내는 사제들은 지겹도록 봤으니까. 축제날에 수 만 명씩 죽이던 아즈텍의 카피답게, 어느 건물에선 노예와 희생양을 수백 명씩 죽이더라고. 근데, 중요한 사실은 그 갇혀 있는 희생양의 모습이 ‘갈색 피부의 헐벗은 원주민’이 아니라-

‘하얀 피부에 생도복을 걸친 미르의 생도’라는 거다.

파란색 견장을 보니 2학년, 소녀는 광기에 잠식된 듯 침을 질질 흘리며 ‘꽥! 꽥!’ 시끄러운 소리를 내지른다. 양손의 뼈가 보일 정도로 미친 듯이 창살을 후려치고 있었는데, 그럼에도 노예들은 놓치지 않고 굳건히 우리를 붙잡고 사제를 뒤따라간다.

“...”

그 순간, 난 그 광경을. 정확히 말하면 그 ‘끌려가는 소녀’를 뚫어져라 응시하면서 내 마음의 변화를 냉정하게 관찰했다.

...지금까지 내가 죽였던 야만인들은 어찌 보면 ‘게임 속 몬스터’ 같은 존재들이다.

죽여도 시간이 지나면 피에 젖은 대지에서 동일개체가 튀어나오고, 침입자를 발견해도 계속해서 쫓아오는 것이 아니라 일정 범위 밖으로 가면 게임 내 몬스터의 어그로가 풀리는 것처럼 수색을 포기하는...

‘정교한 모조품’

그래도 영혼을 가진 인간이긴 했고, 그들을 죽이면서 어찌어찌 이 ‘살인적인 질투’를 식힐 수 있었다. 하지만, 진짜 살아있는 사람을 보면? 그 식혔다고 생각한 질투가 다시 불붙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마음 한 켠에 남아있었다. 그리고 지금 보건데...

“다행히 아니네요.”

희생양이 피라미드 안으로 끌려 사라지는 모습을 끝까지 본 후, 난 쓰게 웃었다.

생도를 보는 내 감정은 정상적이지 않았다. 이곳에 떨어지기 전, 한새벽이 아닌 ‘진짜 나’에 대한 기억들. 먹칠이 칠해진 것처럼 군데군데 망가졌지만 그래도 그 기억은 분명 남아있었다. 그 기억과 함께 묶여있는 감정의 파편들을 비교할 수 있기에 확언할 수 있다.

공감하지 못하는 싸이코패스처럼, 난 그 불쌍한 소녀를 보고도 전혀 동정하지 못했다.

그런 감정의 빈자리를 ‘지독한 열등감과 질투’가 채운다.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빈자(貧者)가 모든 걸 다 가진 부자가 사소한 일에 엄살떠는 걸 보는 것처럼 ‘고작 저런 것에 발악하네.’라는 생각이 든다. 딱히, 구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지 않아.

하지만, 그렇다고 다짜고짜 죽일 정도 또한 아니었다.

이게 얼마 동안 유지될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에잇, 싯팔. 이번 학기 ‘정신 감정 평가’나 ‘도덕성 검사’를 아무 생각 없이 봤다간 조질 것 같네. 철저히 공부 해놔야지. 그렇게 속으로 투덜거리며 슬슬 중앙 지역으로 되돌아가야겠다고 자리에서 일어나고 있을 때-

-!

호랑이의 포효처럼 낮은 저주파가 실린 음성이 희미하게 공기를 울린다.

멀리서 내지른 소리인 듯, 소리 자체는 희미했지만 거기에 서린 존재감은 강렬했다. 건물 속에 숨은 나조차도 흠칫하며 그 안에 담긴 흉포한 의지와 살의를 느낄 수 있을 정도. 나만 그런 것이 아닌 듯, 밖에 있는 괴물들 또한 움직임을 멈추곤 포효가 들려온 방향을 응시한다.

쪼개놨던 나머지 <관찰자의 눈>의 눈을 합쳐 그 방향을 집중적으로 주시했다.

저 멀리, 중앙지역에서부터 올라오는 일단의 무리가 보인다. 거대한 검은 바이크에 탄 검은 전사들, 도끼창을 쥔 그들은 붉은 아우라를 흘리며 가로막는 모든 야만인들을 그대로 으깨버리고 있었다. 그 강철의 물결 선두에-

황금빛의 패왕이 있었다.

저 멀리에 있음에도 느낄 수 있는 ‘압도적인 위용’을 뽐내는 존재, 만화 ‘북두의 권’이 실사화 된다면 저런 괴물이 나올 듯싶다. 그 패왕은 가로막는 피라미들을 베어버리면서 피라미드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오크의 얼굴 위에 떠오른 잔학한 웃음은 명백히 피라미드 쪽의 존재들을 도발하고 있었다.

게다가...

“...어?!”

그런 강철의 물결이 지나간 뒤편에서부터 거대한 녹색 구름이 피어오른다. 시야를 집중하니 강철의 물결이 박살낸 시체가 녹색 광채에 휩싸여 녹아내리며 독가스가 피어오른다. 성질은 좀 다르지만, 시체를 이용한다는 점에서 내가 사용하는 <시체 부패>와 비슷하다.

하지만, 내가 사용하는 것보다 훨씬 더 능숙했다.

파도가 지나간 뒤에 덮치는 해일처럼 그 녹색의 죽음은 주위 건물들을 모조리 덮치며 자투리 야만인들까지 모조리 녹여버린다. 거의 서쪽 지역 전체를 뒤덮을 기세야. 순수 킬카운트는 선두의 오토바이 군단보다 많을 것 같다. 근데, 안에 인질이라도 있으면 어쩌려고 저런다냐?

잠깐, 저 마력광 패턴...

“아무리 봐도 우리 싸장님 건데요?”

개인마다 조금씩 다른 마력광, 아무리 봐도 저 패턴은 우리 싸장님의 것이다. 설마, 이곳까지 오셨나? ...하긴, 저런 거대한 오토바이 군단을 이끄는 패왕 같은 오크도 원래 이곳에 있을 리 없다. 외부에서 온 구조대겠지.

등골에 식은땀이 흐른다.

금요일에 깨어난 후부터 난 르피너스가 선물한 ‘즐거운 감정’에 취해 반쯤 미쳐있었다. 그래서 오늘 새벽에 싸장님의 상점에서 몰래 물건 빼돌리면서 되도 않는 편지를 쓰고 깝쳤다. 좀 머리가 식으니까 내가 괜히 매를 벌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우리 싸장님 성격상, 내가 뽀린 걸 용서해주긴 해도 그만큼 개꼬장을 부릴 텐데...

설마, 나도 인터넷에서 본 것처럼 ‘한방치료’ 당하는 건가? 아무리 고통을 잘 버텨도 아픈 건 싫은데... 미래의 내가 해결해줄 거라고 깝친 과거의 내가 너무나도 원망스럽네.

-■■! ■■-■■■!

어찌됐든 그런 침입자들의 도발에 피라미드 근처에 있던 존재들이 응한다.

피라미드 앞에 있던 해골 투구와 갑주를 쓴 존재가 황금빛 패왕 못지않은 존재감을 흩뿌리며 호령한다. 그에 근처의 야만인들이 집결한다. 피로 물든 지면에서 전사들이 기어 나오고, 근방의 건물에 있던 사제들과 야만인들이 밖으로 나온다.

“이크.”

내가 있는 건물의 야만인들도 무리를 지어 밖으로 나가기에 재빨리 숨었다. 다행히 들키지는 않았다. 어찌됐든 그렇게 피라미드 쪽에 집결한 병력은 이어지는 지시에 따라 방진을 만들고-

-■■! ■■!

이어서, 해골 투구와 그의 호위대로 보이는 이들이 선두로 군대가 강철의 파도와 독기의 해일을 막기 위해 진격했다.

그 광경을 난 숨죽이며 바라보았다.

대작 판타지 영화에서나 볼 법한 전쟁이 벌어질 거라는 생각에 가슴이 두근거렸지만... 동시에 피라미드의 경계가 약해진 것이 보인다.

지금이라면 빈틈이 생겼을 지도?

어떻게 할까? 이 기회를 타서 피라미드에 한 번 가봐? 아니면 그냥 곱게 이곳에 죽치고 있으면서 뒤에 오는 구조대와 합류할까? 갑자기 생긴 선택지에 고민하다가...

“그래, 못 먹어도 고죠!”

재빨리 안쪽으로 향하는 통로를 따라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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