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화. 유혈의 사원 >
3.
미르에 진입하기 전, 구조대는 미국에서 공유한 정보들을 토대로 ‘몇 가지의 작전 초안’을 만들어뒀다.
미르에 진입하고 난 뒤엔 정찰 드론과 생존자들의 증언을 토대로 파악한 ‘현 상황’과 현재 동원할 수 있는 병력등을 고려하여 그 여러 개의 작전 초안들 중에서 그나마 현실성 있는 것을 선택해 상황에 맞춰 수정했다.
그리하여 검은 태양을 끌어내릴 작전 ‘낙일(落日)’이 완성됐다.
작전의 개요는 간단했다. 미국에서 벌어졌던 참사를 분석한 결과, 검은 태양이 떠오른 피라미드 앞에서 벌어지는 행진은 아즈텍 문명의 ‘전쟁 전의 출정식’. 그곳엔 특급 위험 개체로 분류될만한 괴물들이 다수 포진해 있었고, 미국의 이능력 특전대는 그들에게 막혀 피라미드에 진입하지 못했다.
그러니, 피라미드에 침투하기 위해 근방의 경계 병력을 약화시킨다.
회수된 바디캠을 분석한 결과, 피라미드 근방에서 행진을 지켜보는 존재들은 일그러졌지만 분명 아즈텍 문명의 ‘장군’에 해당하는 외형을 하고 있다. 그리고, 이 전역에서 나타나는 괴물들의 행동 패턴은 대부분 아즈텍 문명의 ‘외형’과 비슷하단 것이 확인됐다.
그럼, 군대로 보이는 침략자들이 나타나면 장군들은 어떤 대응을 할까?
-■■, ■■■■ ■■!!
지금은 잊혀진 고대 나와틀어로 소리치는 장군, 그 호령에 고수(鼓手)들은 인간 가죽으로 만든 북을 ‘둥-! 둥-!’ 내려치고 기수(旗手)들은 형형색색으로 물들인 인간 가죽 깃발을 휘두른다. 그 신호에 맞춰서 전사들은 일제히 방패를 들고 방진을 꾸려 대열을 만든다.
-■, ■■ ■■!
이어서 부대 사이에 껴 있는 사제들의 전사들을 축복하자, 선두 대열부터 차례로 진군하기 시작한다. 하나의 생명체인 것처럼 발을 ‘착! 착!’ 맞춰 구르며 움직이는 부대, 통일된 집단만이 보여줄 수 있는 그 광경을-.
“...”
근처 건물 위에 숨어있던 서예린은 멍하니 바라보았다.
변천이라는 재앙이 2~3일마다 펼쳐지는 미궁에선 결코 볼 수 없는 광경, 밖으로 나와서 몇 번 전쟁에 관한 내용을 보긴 했지만 그땐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다. 하지만, 이렇게 직접 ‘전쟁’이라는 것을 보니... 그 위용은 상상 이상이었다.
통일되고 거대한 집단만이 보여줄 수 있는 광기와 폭력
그건, 인간 개개인이 보여주는 것과는 전혀 달랐다. 감각이 예민했기에 서예린은 더 똑똑히 인지할 수 있었다. 이렇게 수천수만 명의 인간들이 살기를 드러내며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엄청난데, 바깥 인간들이 수백만 명씩 부딪쳤다는 대 전쟁은 어땠을지 상상도 안 된다.
그렇게 서예린이 반쯤 넋이 나간 듯이 그 광경을 응시하고 있을 때-,
“우리 딸, 뭐 보니?”
굵직한 남자의 목소리가 뒤쪽에서 들려온다.
2m가 넘어가는 근육질 체격에 검붉은 로브 차림의 남성, 철퇴라고 밖에 보이지 않는 마법 지팡이에 묻은 피와 살점을 바닥에 ‘휙! 휙!’ 털어내며 올라온 서강은 서예린의 옆에 서서 같이 그 광경을 내려다보았다.
“군대를 보고 있었구나?”
“응, 엄청나. 대단해. 미궁에서 보던 전투와는 전혀 달라. 규모가 커진 것뿐인데, 느껴지는 건 전혀 달라. 더 맹목적이고, 더 강렬해.”
“흠, 그렇긴 하지. 그나저나 예상대로 피라미드 근처의 괴물들도 많이 저 군세에 합류했구나.”
처음 보는 전쟁의 모습에 넋이 나간 서예린과는 달리 서강은 꽤 냉철하게 군대와 피라미드 근처를 살피며 고갤 끄덕였다.
‘전쟁 군주’와 그가 이끄는 오크 기사단, 그리고 대량 살상 능력을 지닌 ‘강수영 연금술사’. 그 두 사람이 벌이는 학살에 피라미드 쪽에 있는 장군들과 최정예 병력들이 직접 막기 위해 저렇게 움직이고 있었다.
여기까진, 전부 작전대로다.
“여기 계셨군요.”
그렇게 두 부녀가 군대의 출정식을 보고 있을 때, 뒤쪽에서 음성과 함께 세 사람이 나타난다.
핏빛 무구로 전신을 감싼 중갑 전사
검정색 롱코트와 경찰모를 걸친 남성
파란색 양복에 짧은 파란색 머리칼의 여성.
서강, 서예린 부녀처럼 이번에 특공조로 뽑혀서 합류하게 된 김가트와 전찬휘 경감, 그리고 공간 마법 연구소 소속 마법사 ‘자모란’이었다. 한 차례 전투를 치른 듯, 그들의 몸 곳곳엔 상처와 핏자국이 가득했다.
서예린과 서강이 고갤 돌려 바라보자 전찬휘 경감은 매고 있는 커다란 군용 배낭에서 태블릿 PC를 꺼내며 입을 열었다.
“일단, 성공적으로 정찰용 드론을 띄웠습니다. 띄운 지 20초 만에 독수리 괴물에게 격침당했지만 그래도 정보는 꽤 파악됐습니다.”
꺼낸 태블릿 PC 화면을 보여주는 전찬휘 경감. 다들이 모여 그 액정을 확인하는 가운데, 전찬휘 경감은 영상을 멈추곤 손가락으로 피라미드의 모습을 확대한다. 그와 함께 피라미드의 꼭대기의 모습이 흐릿하게 드러난다.
“이건?”
“희생의 제단입니다.”
폭포 뒤의 동굴처럼 하늘에서 쏟아지는 태양의 검은 피눈물의 장막에 가려져 잘 드러나지 않았던 꼭대기, 드론의 고성능 영상으로 꿰뚫어 본 그곳엔 거대한 원형의 석판과 그 앞의 제단에 검붉은 불길에 휩싸인 심장을 올려놓는 한 남자의 모습이 있었다.
모두의 시선이 집중된 가운데, 전찬휘 경감은 입을 열었다.
“예상대로, 피라미드의 꼭대기에선 인신공양이 이뤄지고 있었습니다. 여기 찍힌 커다란 원형 석판은 ‘태양석-피에드라 델 솔’이라고 하는 멕시코시티에서 발굴된 아즈텍 제국의 희생의 달력을 도형화한 석판입니다. 언제 인간을 바쳐야할지 적어놓은 것이죠.”
“이걸 막으면 끝나는 건가?”
“장담할 수 없습니다만, 그럴 확률이 높죠. 아즈텍인들이 믿었던 태양은 인간의 피와 살점을 먹어야만 불타오르니까요.”
서강의 질문에 대답한 뒤, 전찬휘 경감은 고갤 돌려 자모란을 바라보았다.
“그러고 보니 자모란씨, 좀 가까이에서 파악한 피라미드는 어때보였습니까?”
“...공간 왜곡으론 못 들어가요.”
고저가 별로 없는 기계 같은 음성으로 대꾸하며 자모란은 옆구리에 끼고 있던 안면부가 푸른색 바이저로 이뤄진 금색 헬멧을 착용했다.
“보이긴 하지만 실체는 다른 공간에 존재해요. 내 마법 <공간 왜곡 통로>는 물론이고 물리적인 방법으론 침입은 불가능.”
“안타깝지만, 예상대로군요.”
그 대답에 전찬휘 경감은 씁쓸한 표정으로 고갤 끄덕였다.
첫 사태 때, 미국에서 회수된 바디캠에 따르면 미국의 이능력 특전대는 <투명화>와 <비행>으로 피라미드의 꼭대기에서 벌어지고 있는 인신공양의식에 난입하려 했다.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통과하지 못했고 결국 피라미드 아래에 떨어져서 혈투를 벌였다.
나쁜 소식이지만 그래도 이건 예상한 범위 내다.
“저희는 정식으로 통로를 뚫을 겁니다.”
꼭대기에 확대된 화면을 다시 되돌리며 경감은 피라미드 바로 앞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보다시피 석제 피라미드의 정면에는 통로가 있습니다. 그 통로 근처에 경계 병력이 배치되어 있고요. 하지만, 전방에서 밀려오는 병력을 막기 위해 꽤 많이 빠졌어요. 여기, 길을 따라 움직이는 병력들이 보이시죠?”
손가락으로 움직여 움직이는 군대를 한 번 짚은 뒤, 경감은 메모 기능을 사용해 군대의 예상 행로를 그렸다.
“드론이 격추되기 전까지 촬영한 영상에 따르면 거의 절반이 빠져나갔습니다. 이 붉은선이 그 군대의 예상 행로고요. 그럼 저희의 침투 경로는 대충 이렇게 될 것 같군요. 피라미드에 도착하기 까지 저희는 총 8개의 건물을 지나칠 겁니다.”
다시 지도를 띄우고 손가락을 짚으며 경로를 설명하는 전찬휘 경감, 그에 다른 이들은 진지한 표정으로 경청한다.
오크 전쟁 군주와 오크 기사단, 강수영 연금술사와 다수의 교수진들이 전면에 나서서 시선을 끄는 사이에 특공대가 피라미드에 침투하여 의식을 하고 있는 닥터 크림슨을 요격하는 것.
이게, 낙일 작전의 요체였다.
특공대의 숫자는 고작 5명, 하지만 이게 최선이었다. 서쪽 지역 곳곳에 숨어있는 ‘원숭이 닳은 괴물’들은 일행을 기습하거나 혹은 그들의 등장을 다른 적들에게 알리는 CCTV나 다름없었고, 이보다 더 큰 무리는 들킬 확률이 매우 높았다.
“이렇게, 자모란 씨의 마법을 이용해서 건물 몇 개를 건너뜁니다. 그 뒤, 각자 배낭에 챙겨온 C4 폭약과 크레모아를 사용하여 입구 쪽의 병력을...”
“잠깐만요.”
특유의 고저 없는 음성으로 브리핑 도중에 끼어드는 자모란, 그녀는 태블릿 PC에 손을 뻗어 한 지점을 확대했다. 피라미드 안쪽으로 뚫린 통로 입구를 지키고 있는 하반신이 뱀인 여성, 그 목에 걸린 ‘목걸이’를 본 자모란은 고갤 들어 자길 바라보는 전찬휘를 응시한다.
“이 놈을 잡아야 해요.”
“예?”
“직접 보지 못해서 확언할 순 없지만... 저 목걸이 위에 새겨진 ‘단편적인 형상’은 왠지 공간에 관련된 룬 같아요.”
“...”
“그리고, 피라미드 자체가 거대한 공간 왜곡이 가해진 영역이죠. 아마, 입구로 들어가기 위해선 저 목걸이가 필요할 겁니다.”
쐐기를 박듯이 말하는 자모란, 그에 전찬휘 경감은 사진을 보며 생각에 잠긴 가운데 가만히 경청하고 있던 서강이 가볍게 전찬휘의 등을 툭툭 두드린다.
“...?”
경감이 고갤 돌려 바라보자 서강은 경감의 코트 가슴팍에 달린 바디캠을 향해 눈짓하곤 카메라엔 띄지 않도록 검지를 입에 가져다 댄다. 딱 봐도, 소리가 들리지 않게 하라 의미. 전찬휘 경감이 떨떠름한 얼굴로 바디캠의 마이크 부분을 손으로 감싸자 그가 소곤소곤 입을 열었다.
“찬휘야, 내가 요즘 심상치 않다고 느껴서 말이야... 내 지하 창고 컬렉션에서 물건을 하나를 반출했거든?”
“...”
“아마 그걸 쓰면 입구를 뚫을 수 있을 거야. 네가 입 다문다면 꺼내보도록 하지.”
그런 서강의 말에 전찬휘는 골치 아프다는 듯이 이마를 짚었다. 지하에서 올라오는 위험물을 막기 위해 엄격한 검문검색이 이뤄지는 검색대, 거길 뚫고 ‘인가 안 된 물건’을 기어코 지상에 올리다니...
하지만, 지금은 찬물 더운물 가릴 때가 아니었다.
“후우, 알겠습니다.”
“후후.”
허락이 떨어지자 서강은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로브의 품 안에서 챙겨온 준비물을 꺼냈다.
4.
건물과 건물 사이를 재빨리 움직이며 난 천천히 피라미드 쪽으로 움직였다.
경계병으로 곳곳에 배치된 원숭이 새끼들은 나약해서 내가 충분히 처리 가능했지만, 그 원숭이 전사를 제외한 나머지 ‘잡몹들’의 능력치는 접근해서 <관찰안>으로 본 결과 예상대로 막강했다. 암습으로도 한 번에 죽이기 힘들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싸우기 힘들면 마주치지 않으면 되지.
<관찰자의 눈>과 건물 벽을 활용해 숨으며 최대한 괴물들을 피했다. 이전의 촘촘한 경계 태세라면 가던 도중에 들켰겠지만 전방에서 벌어지는 소란에 병력들이 빠져나가면서 어찌어찌 힘겹게 ‘목표로 삼았던 건물’에 도착할 수 있었다.
-흐악! 흐아아아악!
-죽여! 죽여! 죽여!
들어서마자 들려오는 광기에 찬 ‘한국어’ 소음, 그리고 ‘제발! 제발 그만해!’, ‘엄마! 엄마!’ 등의 고통스런 비명.
조심스럽게 포복자세를 취한 뒤에 건물 안쪽으로 기어가자 뭔가를 미친 듯이 두들기는 ‘쿵! 쿵! 쿵!’ 거리는 소음이 들려온다. 천천히 순찰을 도는 야만인들의 패턴을 파악한 뒤, 난 건물 안쪽의 목적지에 도착했다.
짐승처럼 작은 철창에 한 명씩 갇혀있는 아이들
딱 봐도 상태가 좋지는 않아 보인다. 옷 사이로 보이는 몸에는 곳곳에 고문의 흔적들이 보였다. 몸을 상하게 하진 않으면서 최대한 고통을 줄 수 있는 부위 허벅지나 손톱, 이빨 등이 성한 게 보이지 않는다. 몇몇은 팔다리의 피부가 통째로 벗겨졌네. 게다가-.
“너! 너! 너! 너! 너어!”
“흐으! 흐으! 풀어! 풀어줘! 풀란 말이야!”
“풀어줘! 풀어줘! 풀어줘! 풀어줘!”
날 보자마자 짐승에 울부짖음에 가까운 괴성을 내지르며 풀어달라고 하는데, 하나 같이 두 눈을 시뻘겋게 충혈이 되어 있었고 그 흰자위에선 부자연스러운 번들거림이 보인다. 딱 광견병 걸린 개새끼 같은 모습, 갇혀 있지 않았으면 당장 달려들어 날 찢어발길 기세다.
그래, 주위에 공기에 떠도는 광기에 삼켜져서 ‘돌아버린 미르 생도’들 되시겠다.
희생양으로서 피라미드 안쪽으로 끌려가는 불쌍한 애들이지. 아까 전에 창살에 갇혀있던 미르 생도가 나온 건물을 기억해서 일부러 이쪽으로 온 거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이 건물 안을 살펴보니까, 야만인들은 애들을 고문해서 ‘살육의 광기’에 잠식되게 하고 있었다.
이곳은 ‘광기에 잠식된 아이들’이 보관하는 곳이고.
참고로 건물의 다른 곳에선 지금도 생도가 정신줄을 놓아버릴 때까지 실시간으로 해체음미가 벌어지고 있었다. 으음, 진짜 푸줏간 같구만.
“흐음.”
날 향해 지랄하는 후배들을 깔끔하게 무시한 채, 주위를 한 번 둘러본 후에 입구랑 가장 가까운 쪽의 작은 철창에 갇힌 생도에게 다가갔다.
“흐악! 흐아아아악! 나와! 나와! 나와아아아아!”
내가 다가가자 짐승의 소리를 내며 힘껏 쇠창살을 후려치는 생도, 이어서 창살을 미친 듯이 흔들지만 부서지질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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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생양의 우리
유혈의 신의 축복이 깃든 이동용 철창, 매우 튼튼하며 닫히는 순간부터 안쪽에서 일어나는 마법적인 효과를 모두 차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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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쯧쯧.”
그 이성을 상실한 모습에 가볍게 혀를 차주곤 <독침>을 만들어서 창살 사이로 날렸다.
가슴팍에 <독침>을 맞아도 광분하며 발버둥치는 녀석, 어차피 마력 각성자에다가 <광폭화> 상태라 저거 한 방에 죽지 않는다. 좀 ‘빈사 상태’가 되겠지. 괜히 저놈을 제압하겠다고 힘 빼긴 싫거든. 이어서 난 창살을 잠그고 있는 자물쇠를 보았다
내게 열쇠는 없었지만 대신에 ‘특별한 눈’이 있지.
자물쇠의 내부의 구조를 보며 다시 <독침>을 만들었다. 아니, 독침이 아니라... <독열쇠>라고 해야 하나? <독침>을 만들어내는 룬문자 중에서 형상에 관련된 부분을 더듬어 열쇠모양으로 빗어냈다. ‘룬 문자’에 대한 근본적인 이해력을 가진 나만이 가능한 묘기다.
-찰칵!
“흐아아아악!”
그리고, <독침>은 어느 정도 물리력을 가지고 있다.
정확히 맞물리는 소리와 함께 부드럽게 열리는 창살 문, 독에 가슴팍에서부터 시커멓게 검은 핏줄이 올라왔음에도 열리자마자 날 향해 달려드는 발칙한 2학년 후배를 피하곤 뒷덜미를 후려쳐줬다.
“휘우, 힘들다. 힘들어.”
이걸로 깔끔하게 침묵, 그대로 양 다리 발목을 잡고 질질 끌어서 애들이 쌓인 창살 뒤쪽에 잘 보이지 않는 곳에 던졌다. 그 과정에서 갇혀 있는 생도들이 발광하며 소리를 질렀지만 원래부터 시끄러워서인지 야만인들은 신경도 쓰지 않는다.
“~♫”
생도들이 쏟아내는 저주와 욕설을 깔끔하게 무시한 채, 휘파람을 불며 빈 철창에 다가가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곤, 이빨로 손끝에 작게 상처를 낸 뒤에 미완성의 마법 <갉아먹는 손아귀>를 사용했다.
-치이이익!
그렇게 손끝에서 한 방울 씩 떨어지는 산성 혈액을 자물쇠 구멍 틈에 흘려 넣었다. 그러자 허술한 내부 걸쇠가 녹아내리기 시작한다. 그렇게 시간을 들여 자물쇠를 꼼꼼히 망가트린 뒤-.
-찰칵!
창살 틈 사이로 손을 뻗어 망가진 자물쇠를 걸어두었다. 겉보기엔 잠긴 것 같지만 그냥 힘껏 밀면 부서질 정도로 망가진 상태. 완벽하군! 이어서 그 산성액체로 손바닥 피부를 좀 녹여서 고문 받은 연출을 가했다. 그리고 얼마가지 않아...
-...
한 사제와 그가 부리는 쇠사슬을 찬 노예 두 명이 안쪽으로 들어왔다.
“저놈! 저놈! 저놈! 저놈 문 열려있어! 열려있어!”
“죽여! 죽여어어어!”
우리의 돌아버린 생도들이 날 향해 울부짖으며 고자질하지만 사제는 개가 짖냐는 듯이 아랑곳하지 않는다. 나도 그런 주위분위기에 맞춰서-.
“히익! 히익! 히아아아아악! 죽여! 죽여!”
미친척 메소드 연기를 펼치며 이를 드러내며 침입자들을 위협했다.
기계적으로 날 향해 손가락을 가리키는 사제, 그러자 두 눈깔이 뻥 뚫린 채 피눈물을 쏟아내는 노예들은 비척거리며 다가와 내가 든 창살을 통째로 집어 든다. 그리곤 앞장서서 걷는 사제를 따라 움직인다.
“죽! 흐흐흫! 흐하하핳! 죽여! 죽여!”
작전의 성공에 난 소리 높여 웃었다.
희생양으로서 끌려가는 것, 이게 내가 생각한 피라미드 침투 방법이었다. 아무리 봐도 이게 최선이야. 피라미드의 입구는 어떻게 몰래 잠입할 건덕지가 보이지 않거든. 경계도 빽빽하고 ‘강력해 보이는 수문장’이 지키고 있으니까. 어쩌겠나, 이렇게라도 들어가는 수밖에.
뭐, 도살장에 끌려가는 짐승이나 다름없는 꼴이지만... 기분은 의외로 나쁘지 않았다.
아니, 솔직히 즐겁다. 그래, 저 안에 ‘뭔가’가 있다. 그리고, 난 그걸 알고 있고. 기억나진 않지만 <미래시>의 환상 속에서 난 무언가를 봤었다. 그렇기에 이렇게 들어가려고 하는 거지. 도대체 뭐가 있기에 이처럼 가슴이 두근거릴까? 너무 설렌다!
미쳐버린 생도들이 울부짖는 소음을 뒤로 한 채, 난 웃으며 피라미드를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