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자를 위한 연중작은 없다-107화 (107/350)

< 22화. 네가 왜 거기서 나와? >

“흐... 흐히히힑! 아하핳!”

그 사실에 경쾌하게 웃으며 <무한의 눈>을 전개했다.

시야가 부스러지고 색이 사라진다. 그와 함께 반경 30m 안쪽의 모든 정보들-단순히 시각의 영역을 넘어서 질감과 맛, 냄새, 질량등이 복합적으로 보인다. 우리 대환이의 육신 또한 그 정보 안에 있었다. 근육의 궤적과 그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시냅스의 스파크...

그리고, 녀석의 두개골 안에 박혀있는 ‘붉은 줄기’까지.

색채가 사라진 시야에서도 또렷이 붉게 보이는 그것은 대환이의 뇌 연수를 중심으로 대뇌와 척추에 쭉 뻗어있었다. 저것이 ‘르피너스의 장난감’에서 지나가듯 설명됐던 ‘칸의 선물’일 거다. 내 시야로 보건데 저건... 일종의 ‘균열’이었다.

미궁의 신이 거하고 있는 드높은 천상과 연결된 균열.

“커허허허헉!”

그 균열에서 막강한 힘의 폭류가 쏟아져 나온다. 그리고, 대환이는 그 힘에 취해 짐승과도 같은 괴성을 내지르며 내 키만 한 대검을 가뿐하게 휘두른다. 손의 근육과 인대가 찢어져도 그 힘의 폭류는 근육을 대체하며 폭발적인 움직임을 가능하게 해준다.

그런 대환이의 참격을 미리 읽고 연이어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피하는 동시에-,

“흡!”

난 틈이 나자 몸을 돌려 오른손의 쇠꼬챙이를 놈의 가슴팍에 찔러나갔다. 그런 찔러가는 쇠꼬챙이 끝에 번들거리는 물질, 미르에 오기 전에 ‘마력 독사 주머니’에 담아뒀던 맹독이다. 마법서의 <독마법> 중 제일 강력한 독을 <연금술>로 재현한 것이지.

정말 깔끔한 반격이었지만-

-퍼억!

대환이는 자세가 뒤틀린 상태에서 오른발로 날 걷어찬다. 균형도 제대로 잡히지도 않은 상태에서 어거지로 날린 발길질, 하지만 체급과 힘이 깡패다. 왼손에 착용한 나무 버클러로 그 발길질을 막아냈지만 내 몸은 그대로 허공에 ‘붕-!’ 떠서 날아가 뒤쪽의 우리에 부딪친다.

“풀어줘! 풀어!!”

“아오, 진짜!”

쇠창살 틈 사이로 손을 뻗어 날 붙잡으려는 우리 안의 미친 생도, 그 손아귀를 뿌리치며 난 방금 전에 발길을 막아낸 내 왼팔을 바라보았다. 버클러를 착용한 왼팔의 뼈가 방금 전의 발길질에 ‘똑!’ 분질러졌다.

...어처구니없네.

저렇게 어설픈 발길질 한 방에 팔뼈가 부러지다니. 아니, 그나마 버클러가 멀쩡한 걸 다행이라고 생각해야하나?

“캬하하하하학!”

하지만, 불평할 틈도 없이 어느새 자세를 다잡은 대환이가 날 향해 돌진해 대검을 내리찍으려 하기에 난 잽싸게 옆으로 몸을 굴렀다.

-콰-앙!

내리찍은 대환이의 대검에 쇠창살이 박살나고 그 우리 안에서 발광하며 울부짖던 생도도 단숨에 반갈죽 당한다. 녀석이 우리와 시체에 낀 대검을 뽑아내는 사이, 난 튀어올라서 오른손에 쥔 쇠꼬챙이를 내리찍으려고 했지만-

“...!!”

녀석의 몸 안에서 벌어지는 섬뜩한 검붉은 힘의 스파크를 보곤 멈칫하고 그대로 뒤로 빤쓰런쳤다. 그에 아쉽다는 듯이 악귀 투구의 아가리를 ‘딱! 딱!’ 거리는 대환이. 그 모습을 보며 난 살짝 식은땀을 흘렸다.

죽을 뻔했다.

저 나무 대검을 잠깐이지만 휘두를 수 없게 됐으니 기회이긴 했다. 하지만, 문제는 대검이 없어도 대환이 ‘무지막지하게 강하다’는 것. 뇌와 근육에서 벌어지는 스파크를 보건데, 내가 달려들었으면 녀석은 대검 손잡이를 놓고 똑같이 달려들려고 했다.

이 <무한의 눈>으로 보건데, 지금 저 손아귀에 붙잡혔으면 팔다리가 뜯겨졌을 거다.

내가 날리는 수준 낮은 마법은 템빨로 손쉽게 무산시키며, 근접전을 하자니 압도적인 신체적인 스펙 차이로 찍어 누른다. 거참, 나랑 눈도 못 마주치던 우리 찐따가 며칠 만에 저런 괴물이 되다니... 괜히 바깥사람들이 ‘미궁의 신’에 대해 경계하는 게 아니었다.

하지만, 아예 승산이 없는 건 아니다.

녀석의 머릿속에 있는 붉은 균열에서 흘러나오는 힘은 ‘무한’하다. 그 본질을 보기에 장담할 수 있다. 저 힘을 온전히 계속 받아들여서 쓸 수 있다면 말 그대로 무한 동력일 거야. 그러나 그런 무한한 힘을 받아들이는 대환이의 육신은 ‘유한’했다.

내려왔을 때부터 놈의 육신은 한계에 가까웠다.

그래, 외부에서 불타오르고 내부에서도 불타올랐는데 정상일 리가 없지. 살아서 맥동하는 붉은 균열에서 흘러나오는 광포한 힘을 연료 삼아서 대환이는 날뛰고 있지만... 그 육신은 그 맹폭한 힘의 흐름에 의해 오히려 점점 더 박살나간다.

“흐.”

난 그걸 볼 수 있고 파국의 순간이 언제 찾아올지도 예상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은 얼마 남지 않았지. 그렇기에 여유를 잃지 않고 웃을 수 있었다. 그래, 조금만 더 시간을 끌자! 저 <광폭화>가 끝나는 순간이 대환이의 제삿날...

“...어?”

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때, 대환이가 갑작스런 이상행동을 벌인다.

우리에 박힌 대검을 뽑고 난 뒤, 대환이는 대검을 옆에 세워고 양손에 힘을 줘서 갈라진 우리의 틈을 잡아 벌린다. 그리고, 그 안에서 방금 죽은 생도의 시체를 꺼낸다.

-쩌억!

대환이가 쓰고 있는 구체 모양의 악귀 투구, 그 아가리가 일(一)자로 쫙 갈라지며 뾰족뾰족한 강철이빨이 드러났다. 인체 구조상 불가능한 크기까지 벌어지는 그 입은 이어서-

-으적! 와그작! 와그작!

시신의 머리통을 단번에 뜯어먹는다. 그렇게 한 번의 입질에 시체의 머리가 사라졌다. 게다가 <무한의 눈>으로 보이는 실상은...

“거... 거짓말! 이건 사기예요! 사기!”

대환이가 쓰고 있는 불길한 악귀 투구, 그것에 깃든 마법적인 힘이 시체를 소화시키고 그 안에 담긴 활력을 대환이의 육신에 보내고 있었다. 그 ‘회복의 힘’이 만신창이가 된 대환이의 육신을 조금이나마 안정화시킨다.

“캬캬캭!”

그런 내 대꾸에 날 향해 고갤 돌려 웃는 대환이, 톱날 같은 이빨을 드러내며 웃는 악귀 투구의 입을 향해 <독침>을 날렸지만, 옆에 둔 나무 대검을 움직여 가볍게 막아낸다. 이어서 보란듯 ‘버적! 버적!’ 소리를 내며 불과 십여 초 만에 시신을 다 뜯어먹는다.

“흐!”

그리고, 대환이는 다시 날 향해 돌진했다.

3.

로그라이크라는 게임 장르는 원래 템운 좆망겜인 경우가 많다.

그래, 템운이 좋으면 그냥 날로 먹는 거고 템운이 나쁘면 별의별 짓을 다해도 못 깨는 거지. 근데, 현실에서도 이런 개 같은 감정을 느끼게 될 줄은 몰랐다.

“크르르륵!”

짐승 같은 그르렁거림과 함께 달려오는 대환이, 내가 선빵 날린 <시체 부패>+<독의 연소> 콤보에 넝마가 됐던 녀석의 몸은 서서히 회복되어가고 있었다. 녀석이 쓴 악귀 투구, 그 마법 장비의 힘으로 녀석은 몇 초 만에 시체를 다 뜯어먹고 재생력이 대폭 증가했다.

-콰-앙!

날 향해 힘차게 내리찍는 나무 대검을 간신히 몸을 굴려 피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악귀 투구 안쪽, ‘공간의 단면’에 들어간 시체는 빠르게 소화가 되며 대환이에게 활력을 주고 있다.

...아마, 저게 소화가 다되면 또 시체를 먹어치우겠지.

<광폭화> 시간이 끝나면 탈진 상태에 빠져 좀 약화되긴 할 테지만 완전히 무력화되진 않을 거다. 그 뒤로도 놈은 저 악귀 투구의 힘으로 시체를 삼키며 체력과 상처를 회복하겠지. 그러니까...

“캬하하하! 북거지 새끼야! 이리 와! 와서 싸워!!”

노릇노릇하게 구워졌던 성대의 화상이 회복돼서 꽤나 멀쩡한 목소리로 소리치며 날 따라오는 대환이. 근처의 우리 위로 올라가 반대편으로 뛰어넘으며 그 말에 고갤 끄덕였다. 그래, 저 말대로 그나마 녀석의 몸이 만신창이인 ‘지금’ 승부수를 띄워야한다.

그럼 어떻게 녀석을 죽일 수 있을까?

근접전은 답이 없으니 결국 마법 밖에 없다. 추가로 시체를 먹어서 회복될 여지를 주지 않고 단숨에 죽여야 한다. 그럼 내게 남겨진 마법은... 딱 하나 밖에 없네.

====

독의 연소 (Ignite Poison)

레벨 3 독/변이술/화염

시전 소음 : 4

주문 소음 : 0

대미지 공식 : 중독 단계*2d12+(Power*6/100) 화염

최대 SP : 100

사거리 : 최대 전방 50m

최소 소모 재화 : 마력 3P

효과 : 이 마법은 시전자의 마력에 간섭하는 특별한 에너지 파동을 만들어낸다. 이 파동에 노출된 ‘시전자가 만들어낸 마법적인 물질’은 모조리 불타오르기 시작한다. <독마법>의 구조상, 필연적으로 시전자가 마력으로 독을 만들어야 했고 전투에 이 마법이 응용되면서 자연스럽게 <독의 연소>라는 이름이 붙었다.

이 마법이 만들어낸 에너지 파동은 생명체의 안에 들어간 물질에도 반응한다.

그렇기에 적이 중독되기만 한다면 ‘매우 막강한 위력’을 자랑한다. 반드시 명중하며, 악취 구름 및 독 구름은 화염 구름으로 변경시킨다.

====

<독의 연소>, 대환이에서 선빵칠 때 먹였던 마법. 이것만이 녀석에게 ‘무지막지한 즉발성 피해’를 줄 수 있다. 하지만, 대환이를 먼저 독에 중독 시켜야 하는데...

“흐, 흐하하하핳!”

머릿속에 영감이 솟구친다.

그래, 대환이를 죽이는데 이렇게 영감이 솟구쳐야지! 주위에 깔린 우리 사이를 요리조리 빠져나가면서 난 대환이에게 온전히 시야를 집중했다. 녀석의 뇌, 거기서 일어나는 스파크를 읽어 들이면서 <독침>으로 간간히 견제를 날리는 한편 독이 든 주머니를 붙잡았다.

그리고, 적절한 시간이 됐을 때...

“크흐흐흐!”

외통수에 걸렸다.

양 옆이 2단으로 쌓인 우리로 막힌 좁은 길목, 황급히 2단으로 쌓인 우리를 타고 위로 넘었지만 내 등 뒤에서 나무 대검이 내리꽂혔다. 아무리 <무한의 눈>으로 그 모든 동작을 꿰뚫어본다고 한들, 나보다 더 빠른 괴물의 연이은 참격을 모두 피할 수는 없다.

그래도, 최선의 대처는 가능하다.

몸을 전력으로 비틀면서 왼팔에 착용한 버클러로 내 등짝에 날아오는 나무 대검의 흑요석 칼날을 막아냈다. 최소한의 희생을 통해 나름 비스듬하게 빗겨낸 일격, 하지만 그 여파로 발길질을 막느라 부러진 왼팔은 완전히 뭉개지며 90도로 완전히 꺾어버렸다.

-텅!

이이서 간신히 빗겨낸 나무 대검은 그대로 미친 생도가 갇힌 우리에 처박힌다.

쇠창살을 분쇄하고 그 안에 갇혀서 발광하던 희생양을 으스러트리는 흑요석 칼날, 간신히 우리 반대편으로 뛰어내린 내가 헐떡이며 그 광경을 응시하자 대환이는 날 향해 보란 듯이 찢어져라 웃곤-

-끼기기긱!

“캬캬캬컄!”

양 손으로 망가진 쇠창살의 틈을 벌리고 그 안에 있는 생도의 시체를 꺼낸다. 이어서 그 투구의 아가리가 찢어지며 머리통을 씹어 삼킨다. 그 도발적인 태도에 난 <독침>을 연달아 만들어 날려댔다

“키킥!”

그러나 대환이가 가볍게 나무 대검을 휘젓자 닿지도 않았음에도 <독침>들은 허무하게 터져나간다. 그렇게 날 비웃으며 게걸스럽게 식사를 또 마친 놈은 2단으로 쌓인 우리를 단숨에 뛰어넘었다.

그렇게 다시 죽음의 숨바꼭질이 시작되려했지만-.

“허어어어억...”

한 발자국을 내딛자마자 대환이가 멈춰 선다. 동시에 전성기 캘리포니아 주지사님처럼 부풀었던 근육이 가라앉는다. 그래, 평범하게 헬스장 다닌 사람처럼 변했다. <광폭화> 시간의 끝난 것, 그 여파에 의한 탈진 상태에 빠졌다.

“후우우우.”

하지만, 대환이는 쓰러지지 않는다.

시체를 먹으면서 체력을 회복한 덕분에 느릿하게 심호흡을 하며 계속 서 있다. 그 광경에 난 대환이를 향해 돌진했다. 그런 내 모습에 자신만만하게 나무 대검을 들어 올리는 대환이, 그래 이해한다. 아무리 탈진상태라고 한들 녀석은 나보다 강하니까.

근데, 대환아.

“...!?”

사람은 아무거나 주워 먹으면 안 된단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