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자를 위한 연중작은 없다-111화 (111/350)

< 막간. 태양이? 떨어지다? >

3.

장난감, 그 소름끼치는 진실에 나도 모르게 발걸음을 멈췄다.

-촤르르르르륵!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뒤에 서 있던 전찬휘 경감이 쇠사슬을 던진다. 심장을 든 쟁반을 피하며 내 팔뚝과 상반신을 꽉 휘감는 사슬, 이어서 상체를 으스러트릴 것처럼 꽈악 옥죈다. 이해한다. 나 같아도 폭발할 것 같은 미친놈이 웃으며 이상행동을 하면 묶어둘 거니까.

“흐흐흫, 늙은이가 하도 주절거려서 머리가 아프네요.”

“이해해주길 바란다. 넌 지금 좀 위험해 보이니까.”

“예, 계속 가죠! 근데, 숨쉬기 좀 힘드니까 살짝 풀어주시겠어요?”

“이게 가장 약하게 묶은 거다.”

그래? 그럼, 어쩔 수 없지 뭐. 그렇게 묶인 채로 다시 움직이자 늙은 살인마의 속삭임이 또 들려온다.

-옛날의 나는 저명한 고고학자였단다. 그리고, 영국 정부의 요청을 받아 한 미궁 유물을 조사했지. 그 유물은 오래된 제단의 파편 조각이었어. 그 제단의 조각은 누구에게도 반응하지 않았지만 내겐 반응했지. 피를 흘리며 내게 ‘시원의 진리’를 보여주었다.

‘...시원의 진리?’

-그래, 진리! 이 세상은 그저 허상일 뿐이며 오직 신들만이 나를 구원해줄 수 있다는 진리였지! 그리고, 핏빛 대지 아래에서 칸께선 내게 구원을 약속하셨다! 내가 받아들인 순간, 나는 그분의 축복을 받았고 그분의 신도가 되었지!

그 목소리에서 감정이 절절하게 느껴졌다.

감동과 희열, 그리고 자신은 선택받았다는 안도감과 우월감. 진짜로 자신이 구원받았다고 생각하는 광신도만이 보일 수 있는 감정이었다. 그것만이라면 그래도 참아주겠지만-.

-사회생활? 지상? 흐흐흐, 그건 곧 사라질 아무런 의미 없는 허상에 불과하다. 그래, 내가 본 것을 보여주마.

남이 다른 건 인정 못하는 틀딱답게 츄라이츄라이를 하신다.

그와 함께 목소리처럼 이미지가... 아니, 모든 감각을 아우르는 공감각적인 정보가 날 자극한다. 유혈의 대지, 그 위에서 싸우는 수많은 필멸자, 끝없이 쌓인 시체의 옥좌 위에 앉아서 그들을 모두 굽어다보고 있는 형용할 수 없는...

-너도 구원 받을 수 있단다. 자, 자비로운 유혈의 품에 안기거라...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내가 지금 저 제안을 허락하면 나는 세례를 받고 유혈의 신을 섬기는 신도가 될 것이다. 다른 곳이라면 몰라도 이곳에서라면 가능하다. 이곳 자체가 피의 신을 상징하는 신전이나 다름없으니까.

...내가 피의 신을 믿는다면 어떻게 될까?

어쩌면 그 존재는 내 부서진 영혼을 채워줄 수도 있을 거다. 이 우주의 장엄한 흐름 속에는 영혼을 만들 재료 또한 널려있으니. 그뿐이랴? 강력한 신의 권능을 받아서 휘두를 수도 있을 거다. 나보다 잘난 놈을 죽이는... 이 저열한 충동을 채우는 즐거운 살육이 되겠지.

그건... 너무나도 강한 유혹이었다.

사지를 다 잃어버린 사람에게 되돌려준다는 것보다, 죽은 존재에게 생명을 다시 돌려준다는 것보다 더 강한 유혹. 네가 원하는 대로 행동하는 것만으로도 망가지고 부서진 너의 영혼을 다시 채워줄 수도 있다는... 오직 신만이 가능한 유혹.

위험하단 것을 알고 있다.

이미 한 번 박살나봤기에 더욱 잘 안다. 신을 섬긴다는 건 ‘인간의 빈약한 지성으로선 이해하지 못할 광기’에게 온전히 자신을 맡기겠다는 것이었으니까. 하지만, 이미 난 밑바닥에 있다. 잃을 것이라곤 생명 같은 자질구레한 것뿐인 이 바닥에.

아는 지인들? 수많은 목숨들을 배신하는 것?

고작 돈 몇 푼 얻기 위해 그걸 배신하는 인간들이 널리지 않았던가? 이건... 그런 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중요한 것이다. 그럼에도 내 얼마 없는 도덕심은 죄책감을 느꼈다. 내 선택으로 인해 지인들을 배신한다는 것 때문에. 하지만, 동시에 내 저열한 밑바닥은 환희했다.

내 영혼이 갈망하던 것을 채워줄 수 있다는 기대감에.

그런 내 갈망을 느끼는 것인지 노인의 웃음소리가 내 머릿속을 쩌렁쩌렁 울린다. 그리고 이어서 내게 속삭인다. 네 안의 증오와 시기를 담아서 기도하라고. 그에 난 발걸음을 멈추고 두 눈을 감았다.

내 돌발행동에 곤두선 일행들의 시선이 날 향하는 가운데-.

“피의 신에게 피를...”

“...!”

난 내 저열함을 실감하며 사람들을 배신했다.

4.

내 고백에 사람들의 무기가 목에 겨눠진다.

김가트의 대검, 서예린의 장검. 전찬휘 경감은 아예 쇠사슬을 옥죈다. 그와 함께 팔뚝과 갈비뼈가 으스러지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상관없다. 다시 영혼만 얻을 수 있다면. 그에 난 유혈의 축복이 내 위로 쏟아질 걸 기대했지만...

-뭐... 뭐지? 칸이시여! 이 분노한 살인자에게 축복을 내려주소서!

내 머릿속에는 당황한 노인의 음성만이 공허하게 울릴 뿐이었다. 그 음성에 난 이 공간의 너머에 있는 유혈의 신을 응시했다. 시체 옥좌에 앉아서 수많은 우주를 굽어다보고 있는 그 존재를. 그것은... 노인의 요청에도 내게 시선을 보내지 않았다.

마치, 인지를 못하는 것처럼.

====

Tip!

영혼이 없는 것은 신을 섬길 수 없습니다. 기도하는 행동을 따라하는 로봇이 진짜 기도를 할 수 없는 것처럼, 당신은 그저 기도를 흉내 내는 ‘유기체 덩어리’에 가깝습니다.

====

***

새로운 돌연변이 발견&습득!

[신을 섬기지 못하는]

***

눈앞에 떠오른 <게임 시스템>의 충고와 플레이버 텍스트에, 그리고 무관심한 유혈의 신의 모습에 난 절망했다.

내 추악한 본성을 드러내고도 구원을 얻지 못 하는구나. 그저 내가 얼마나 저열하고 쓰레기 같은 인간... 아니, 인간 이하의 유기체 덩어리란 걸 되새기게 해주는 것으로 끝이구나.

-으드드득!

바드득 이를 갈며 <관찰자의 눈>을 집중해 내게 제안을 건네는 붉은 힘의 줄기를 거슬러 응시했다. 늙은 살인마의 모습이 보인다. 거대한 원판-태양석 앞의 제단에서 오직 흑요석 단검 하나만 쥐고 있는 헐벗은 근육질의 노인이.

-...너?!

그런 내 시선을 눈치 챈 듯, 그의 얼굴이 꿈틀거린다. <고문> 속성의 공격을 가하던 어린 아이의 망령에게 공감을 하던 테크닉이 많이 도움이 됐다. 그래, 나도 노인의 생각을 읽을 수 있었다. 언어로 되지 않은 생각의 파편이었지만...

‘나에게 입교를 유혹한 것은 반은 진심이고, 또 반은 내가 들고 있는 장비 때문이었군요.’

-...

‘이 개 같은 새끼야... 넌 내게 모욕감을 줬어.’

날 그렇게 유혹한 건, 내가 들고 있는 망태기 안의 장비들 때문이었다. 대환이가 착용하고 있던 것들은 전부 저 노인의 것이었다. 어쩐지, 너무 좋아 보이더라니... 저렇게 헐벗은 장비론 이 토벌팀을 상대하는 건 무리라는 걸 알고 있으니 날 꼬시려고 한 거다.

하지만, 사람을 잘못 골랐다.

“죽여! 저 늙은이를 죽여 버려!”

그리고, 이렇게 본 덕분에 이공간에서 바깥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 지도 보인다. 내 목에 무기를 겨누며 긴장하고 있는 이들을 아랑곳하지 않은 채, 살기 어린 괴성을 지르며 난 앞의 계단이 아닌 다른 축에 뻗은 계단-노인이 있는 방향을 향해서 발을 내디뎠다.

그러자, 우리는 어느새 피라미드의 꼭대기에 서 있었다.

급작스런 상황 변화에 우리 일행은 곧바로 대처하지 못했다. 달라진 풍광에 경계하며 주위를 살펴보기 바빴고 거대한 태양석 앞의 제단에 선 늙은 살인마도 비슷했다. 하지만-

“흡!”

이내, 정신을 차리고 움직인다.

선공은 무기가 없기에 내 목을 겨누지 않았던 푸른 정장의 누님-자모란, 메고 있던 커다란 배낭에 재빨리 양손을 올려놓자 흰 장갑이 빛나고 동시에 크레모아로 보이는 것들 열댓 개의 물체가 이 늙은 살인마의 곁에 나타난다.

-콰-ㅇ!

그리고, 폭음과 섬광을 뿜으며 터진다. 근거리에서 터지는 폭탄의 후폭풍, 나름 여파가 이쪽에 향하지 않도록 신경 쓴 듯 했지만 무지막지했다. 그 충격파에 난 고막이 나간 채 뒤로 나뒹굴었지만-.

“...큭!”

폭약의 연기 속, 정면에서 크레모아 열댓 개에 적중 당했음에도 늙은 살인마는 죽지 않았다. 만신창이가 됐지만 살아있었다. 하지만, 이어서 김가트와 서예린이 자욱한 폭약 연기 속을 뚫고 돌진한다.

우악스럽게 대검을 내리꽂는 김가트

무기라곤 흑요석 단검을 쥔 늙은 살인마가 그 일격에 대항할 순 없었다. 나름 날렵하게 뒤로 물러서며 피했지만, 어느새 뒤편에는 서예린의 소환한 <유령의 무기> 6개가 포진해있다. 각각의 칼날이 기다렸다는 듯이 노인의 몸 곳곳에 박히는 가운데-,

-촤-학!

-서-걱! 서-걱!

정면에서 달려든 김가트와 서예린이 동시에 마무리를 날린다.

김가트는 한번 내리찍은 대검을 그대로 위로 베어 올리며 돌진, 사타구니에서부터 정수리까지 몸뚱이를 세로로 갈라버렸다. 연속해서 서예린이 장검으론 노인의 허리를 양단하고, 단검으론 그 모가지를 밴다.

-촤학!

그렇게 늙은 살인마는 6등분으로 갈라진 채, 터진 물풍선처럼 그 내용물이 제단에 흩뿌려졌다. 여기까지가 불과 3~4초 안에 벌어진 일, 너무 어처구니 없이 끝나서 허무하기까지 했다. 날 묶고 있는 악덕 경찰도 비슷한 느낌인 듯, 허탈하단 표정으로 나뒹구는 시신을 바라본다.

“끝났군.”

“음, 끝남.”

대검에 묻은 피를 털어내며 말하는 김가트, 동의한다는 듯 고갤 주억이는 서예린. 내 눈으로 파악한 노인의 능력치에 따르며 이렇게 허무하게 죽을 인간이 아니건만... 장비와 머릿수가 차이가나니 허무하게 끝났다. 그래, 이게 잠깐 미끄러지면 결판이 나는 현실의 싸움이겠지.

그렇게 닥터 크림슨을 썰어버린 후, 서예린은 날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너 괜찮음? 방금, 살짝 돌아버린 것 같은데?”

“하, 하하하...”

살짝 걱정하는 눈으로 날 바라보는 서예린의 모습에 난 비참함과 죄책감을 느꼈다. 아마, 그녀는 내가 뭔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지. 사실상, 살인방조나 다름없는데... 그에 난 허탈하게 웃으며 일말의 양심으로 고갤 저었다.

“아뇨, 돌아버리기 직전까지 갔어요. 경감님, 쇠사슬 풀지 마세요. 제가 봐도 지금 전 이상해요.”

“그래, 알겠다.”

굳은 얼굴로 고갤 끄덕이는 경감, 이어서 그는 시선을 돌려 제단을 바라보았다. 정확히 말하면 제단 앞에 서 있는 지름 약 3.7m, 무게 24톤에 달하는 거대한 석제 원판을.

태양석

아즈텍 인들이 언제 인신공양 행사를 할지 적어놓았다던 유물, 하지만 여기에 있는 태양석은 박물관에 있는 것과는 달랐다. 저 높은 곳의 검은 태양에서 쏟아지고 있는 검은 피눈물이 원판 곳곳에서 흘러내리고, 그 중심에는 의인화된 태양신의 얼굴은 살아 움직이며-.

-■...

그 얼굴이 알 수 없는 낮은 목소리와 함께 내가 들고 있는 황금 쟁반 위의 심장을 응시하고 있었다. 잇몸을 드러낸 아가리, 그 날카로운 석제 이빨 사이로 붉은 침이 흘러내린다. 그 모습을 응시하며 전찬휘 경감은 말을 이어나갔다.

“이번 일의 원흉은 죽였습니다만, 보다시피 상황은 계속 진행 중입니다. 저 심장을 탐하는 태양석이 원인일 겁니다. 부숴야 합니다.”

그 말에 다들 껄끄러워하는 표정으로 침묵한다. 그런 사람들의 모습에 전찬휘 경감은 작게 한숨을 내뱉곤 김가트 선생을 바라보았다.

“김가트 선생님? 다들 껄끄러워 하시는 것 같은데, 선생님이 해주시지 않겠습니까?”

“...다른 사람 시키면 안 되겠냐?”

“선생님...”

“내가 더 이상 칸의 교리를 따르지 않기로 했지만 그런 ‘개종’ 또한 그분이 허락하신 일이란다. 하지만, 신상을 훼손하는 건 완전히 다른 이야기야. 그건, 불경한 짓이다.”

그 요청에 난색을 표하는 김가트, 미궁 출신들은 공감한다는 듯이 고갤 끄덕인다. 그에 경감은 잠깐 고민하다가 자모란을 응시했다.

“자모란씨, 폭약 남아 있습니까?”

“네, 배낭이 좀 남아있어요.”

“몇 개만 받아가겠습니다. 그리고, 한새벽 생도. 일어나서 날 따라 움직이도록.”

“넵.”

왼손으론 날 옥죄는 쇠사슬을 붙잡은 채, 그는 오른손으로 자모란이 건내는 폭약과 도폭선을 받았다. 어떻게 오른손으로 폭약에 도폭선을 연결하면서 태양석을 향해 다가가는 전찬휘, 거기에 딸린 나도 천천히 뒤따랐다.

“다들 뒤로 물러서십쇼.”

그 광경을 보며 나를 제외한 일행들은 무지 긴장했다. 그래, 앞으로 벌어질 일을 두려워하는 것 같았다. 두려워할 만도 하지. 죄다 미궁 출신이라서 그런지 미궁의 신에 대해 아주 잘 알고 있네.

“흡!”

손에 쥔 폭약을 태양석 중앙의 얼굴에 던지는 전찬휘 경감, 그 얼굴이 폭약을 씹어 삼키자 그는 도폭선을 격발시킨다. 터져가는 폭발, 그와 함께 태양석이 꼭 살덩이가 터진 것처럼 피를 쏟아내며 산산조각 터져나갔다. 동시에-.

-&@#@&@#$*&@@!!

형용할 수 없는 소음과 함께 세상이 무너지기 시작한다.

저 멀리서 오크 군대와 격돌하고 있던 야만인들이 비명을 내지르며 핏물로 녹아내리고, 곳곳에 있던 기괴한 석조 건물들은 지면에 서서히 잠긴다. 변이된 미르의 건물들 또한 흔들리며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간다.

-쿠르르르릉!

우리가 서 있는 피라미드 또한 마찬가지. 진동과 함께 흔들리기에 기겁했는데, 서서히 땅에 가라앉는다. 동시에 미르와 바깥을 차단했던 핏빛의 장막 또한 서서히 가시기 시작한다. 밖의 모습이 희미하게나마... 아니, 정정한다. 보이는 게 아니라 미르가 현실의 차원으로 되돌아가고 있다.

“진짜 끝났군요.”

얼굴에 쏟아진 핏물을 소매로 닦으며 말하는 전찬휘 경감, 그래 이제 끝났다. 모든 것이 끝났...

“[흐, 흐흐하하핳! 하하하하핳!]”

발작적인 것이 아닌 내 심장에 있는 르피너스의 파편이 내뱉는 웃음, 그와 함께 아직 검붉게 물든 하늘이 갈라지며 새빨갛게 충혈된 눈이 드러난다. 또 눈이 드러난다. 또 드러난다. 또, 또 또또또또또또또... 저 눈! 저 눈!

이 세상을 붉은 눈이 뒤덮었다.

그 눈은 나를 주시한다. 그리고, 나도 그 눈을 본다. 느낄 수 있다. 너머에 있는, 드높은 시체 옥좌 위에 앉아있는 존재를, 인간이라는 ‘털 없는 원숭이의 뇌’로는 형용할 수 없는 형상을, 세상을 찢어발길 살육을, 그리고...

지금 그것이 느끼는 ‘격노’를.

수많은 미래, 수많은 가능성을 주시하고 있던 끝없는 그것의 눈이 일제히 나를 향한다. 내 모든 것을 훑어보는 시선, 르피너스에게 걸렸을 때처럼 내 영혼을 끝없이 부풀어 오르지만...

터지질 않는다.

이미 한 번 터졌기에, 그리고 그 빈 자리를 르피너스의 장난이 메꿨기에 정신을 잃지 않았다. 불과 몇 분 전까지만 해도 내게 시선을 주지 않아서 분노했지만 지금은 그 시선에서 느껴지는 세상을 박살낼 분노에 이빨이 다닥다닥 떨린다.

-!하#$하% 하@ 하([email protected]하!!

이어서 미르가 처음 피에 젖었을 때처럼 그것이 웃는다. 수천억의 인간들이 내뱉는 듯한, 듣는 것만으로도 ‘생명을 가진 모든 것을 죽여 버리고 싶다.’는 충동이 들끓게 하는 초월적인 의지. 정신의 가장자리를 긁어대는 것 같은, 소름끼치는 감정.

“...좀 조용히 하셈.”

내 옆에 다가온 서예린이 조용히 내 입을 틀어막는다. 저것이 보이질 않는가? 아! 오히려 좋겠다. 인간의 영혼을 으스러트릴 저 격노를 보지 못하니까. 끝없는 시체가 쌓인 옥좌, 그 팔걸이를 ‘그것’이 움켜쥔다. 그와 함께 옥좌 일부분이 부스러지고 손아귀 안에 으스러지며 뭉친다.

저건... 가능성이다.

이곳에 있는 모든 것을 저 손아귀 안에서 뭉쳐지고 있었다. 그렇게 가능성이 뭉쳐진 손아귀에서 떨어지는 핏방울 하나...

“[태양이... 떨어진다! 하하하하!]”

서예린의 도움이 무색하게 난 하늘에 떠오른 검은 태양을 향해 광소를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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