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화. 신께선 그런 결말을 원치 않으신다. >
6.
‘크다’와 ‘강하다’.
완벽하게 적용되진 않지만 미궁에선 이 두 단어는 거의 ‘동의어’에 가깝다. 일반적인 물리법칙으론 성립할 수 없는 거대한 존재들, 스스로의 무게에 짓눌려 무너져야할 육신이 멀쩡하게 움직인다는 것은 그만큼 비현실의 힘-마력이 작용한다는 뜻이니까.
그런 의미에서 강철거인은 보기만 해도 강하단 걸 알 수 있었다.
체고 30m에 달하는 거대한 강철의 육신, 그 크기 때문에 살짝 둔해 보이지만 달려오는 그 동작의 실제 속도는 음속을 가뿐히 뛰어넘는다. 체중? 가늠할 수도 없다. 발바닥이 닿을 때마다 굉음과 함께 땅이 걷잡을 수 없이 흔들리고 건물은 실시간으로 금이 가 무너진다.
오무혁이 일평생 보아왔던 그 어떤 괴물보다 더 압도적인 괴물
미궁에서라면 뒤도 보지도 않고 도망쳤을 거다. 하지만, 지금은 도망칠 수 없었다. 가진 것이 별로 없던 미궁 속의 ‘무르굴’과는 달리, 지상의 ‘오무혁’ 가진 것이-지켜야할 것이 너무나도 많았으니까.
그 책임의 무게가 압도적인 적을 향해 움직이게 만들었다.
「크-아-아-아!」
짜증과 분노의 괴성을 쩌렁쩌렁 지르는 강철거인을 보며 오무혁은 배틀 바이크의 엑셀을 당겼다. 달려오는 거인의 모습을 보건데, 놈은 사정거리에 닿는 순간 지면을 휩쓸 듯이 창을 휘두르려 하고 있었다.
하지만, 평범하게 도약해서 피하는 건 힘들어 보였다.
강철거인의 움직임은 노련한 전사의 것, 평범하게 도약해서 피하려고 했다간 교묘하게 그 궤도를 꺾어서 정통으로 맞을 확률이 높다. 그것만으로도 자신은 즉사, 그러니 눈속임이 필요하다. 그에 오무혁은 왼손을 뻗어 배틀 바이크의 배낭에서 두루마리를 하나 꺼냈다.
그리곤, 적절한 거리가 됐다고 생각됐을 때-
“안개가 나를 감싼다!”
두루마리의 발동어를 외쳤다.
오크 마법사들이 만들어낸 소모품 중 하나인 ‘안개의 두루마리(Scroll of fog)’, 그 마법적인 안개는 연막탄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속도로 전쟁 군주의 반경 20m를 뒤덮는다. 그렇게 시야를 가린 뒤에 전쟁 군주는 자신의 무기를 손에 쥐었다.
-부우우우우우웅!
강철거인의 창이 그 마법적인 안개를 찢어발기며 다가온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빗자루로 쓸어내리는 것에 가까운 휩쓸기. 워낙 크기 차이가 나기에 쓴 수단이다. 아스팔트와 건물을 모조리 박살내며 밀려오는 강철기둥을 보며 오무혁은 배틀 바이크에서 도약했다.
하지만, 곧바로 밀려오는 기둥의 궤도가 미묘하게 변한 것을 보며 미간을 좁혔다.
적의 움직임과 규격을 잰 뒤에 적절한 타이밍에 도약했건만, 강철거인은 그 찰나의 순간에도 그의 움직임을 포착하고 창의 궤적을 수정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연막을 깔아서 포착이 조금 늦었고, 덕분에 창날 부분이 아닌 봉 부분으로 비스듬하게 스쳐지나간다는 것 정도.
‘...역시. 완벽하겐 못 피하는군.’
아쉬움에 속으로 입을 다시며 오무혁은 왼손에 느슨하게 쥔 방패로 아래쪽을 스쳐오는 강철 기둥을 비스듬하게 막았다.
-커허어어어어엉!
그 창의 기둥과 방패가 맞부딪치는 순간, 방패의 사자 두상이 충격을 흡수하며 포효를 내뱉는다. 동시에 오무혁은 방패를 버리면서 받은 힘을 역이용, 팽이처럼 ‘핑그르르!’ 회전하며 강철거인의 얼굴을 향해 솟구쳤다. 그리고 양 손으로 수정검을 쥐었다.
「!?」
-쩌엉!
표창과도 같이 날아오는 오무혁의 모습에 강철거인은 반사적으로 얼굴을 꺾는다. 오무혁이 강철거인의 뺨과 부딪치는 순간, 금속이 울리는 청명한 소리와 함께 오무혁의 몸은 튕겨져 바닥에 떨어진다.
낙법을 구사해 아스팔트 지면을 데구르르 구르다가 오뚝이처럼 일어선 오무혁
그의 왼팔은 팔뚝 중간이 꺾인 채, 뼈가 피부를 뚫고 나와 있었다. 강철거인의 창대를 비스듬히 막아냈을 때부터 뼈가 부러졌고, 방금 전 강철거인에 수정검을 휘두르면서 받은 충격이 합쳐진 결과였다.
반면에 공격을 받았음에도 타격이 거의 없는 강철거인
뺨에 난 자상, 피부와 근육이 갈라져 선혈이 주르륵 흘렀지만 뼈까지 잘려나갈 정도는 아니었다. 그러나 그 상처만으로도 유혈의 신에게 창조된 ‘살육의 화신’으로선 도무지 받아들 수 없는 수치다.
「그-오-오-오-오!」
이전까진 짜증이었지만 이제는 격분의 괴성을 내지른 거인은-
쿠웅! 쿠웅! 쿠웅! 쿠웅!
발을 구르면서 창을 내리찍었다. 발길질에 지면이 흔들리며 균형조차 잡기 힘든 마당에 틈틈이 내리꽂히는 창은 아스팔트가 박살나 그 파편이 산탄처럼 튀어 오무혁의 몸을 때린다.
“흐허억! 허억!”
전쟁 군주는 어떻게 필사적으로 그 치명적인 공격들을 피해냈다. 식은땀을 흘리는 오무혁, 본격적으로 돌입하기 전에 연금술사 여자가 건넨 몇 가지 도핑 물약을 마시지 않았다면 간발의 차로 죽었다.
하지만, 이대로라면 얼마 가지 않아 죽을 거다.
강철거인은 전사로서의 소양을 가지고 있었다. 내리꽂히는 그 거창의 궤적은 교묘하게 오무혁을 무너진 건물이 있는 방향, 그가 움직이기 힘든 방향으로 몰아세우고 있었다. 알면서도 당할 수 밖에 없는 수, 그러나 오무혁은 포기하지 않았다.
자신이 이렇게 이목을 끄는 사이에-
거인의 뒤편, 피눈물을 한 번 쏟아냈던 건물의 잔해, 그 위에서 차근차근 <물질 변환>으로 깔린 엄청난 양의 피눈물을 독으로 만들고, 또 그것을 오른손 장갑에 빨아들이고 있는 연금술사가 보였기에.
콰앙!
필사적으로 피하는 와중에도 전쟁 군주는 위험을 무릅쓰며 그 연금술사 계집에게 강철거인의 등짝이 보이도록 유도했고...
“흐!”
그 노력은 보답을 받았다.
그녀의 오른손에 낀 녹색 장갑이 꿈틀거리며 엄청나게 커다란 녹색의 투사체를 이쪽으로 쏘아낸다. 거인의 등판을 다 덮을 만한, 용의 발톱 비슷한 형상의 ‘녹색 손아귀’를.
「!?」
도중에 날아오는 무언가를 눈치 챈 듯, 오무혁을 몰아가던 강철거인이 움찔했지만 빠르게 날아온 녹색 손아귀는 결국 무방비로 드러난 그 등판을 정통으로 후려치고 쥐어뜯었다.
「그!-아!-아!-앗!」
처음으로 강철거인이 내뱉는 고통의 비명, 비명을 내지를 틈도 없이 즉사시킨 청룡 III에 비하면 하찮았지만 분명 유효한 타격이었다.
쿠웅!
휘청거리는 몸을 창으로 지탱하는 강철거인, 그 잠깐의 틈에 전쟁 군주는 거인의 발밑을 향해 움직이면서 오른손에 쥔 수정검을 왼쪽 옆구리에 꼈다. 그리곤 허리의 벨트에서 회복 물약을 하나 꺼내 입에 넣고 씹는 것과 함께 박살난 왼쪽 팔뚝을 쥐고 터프하게 뼈를 맞췄다.
-부드득!
“퉷!”
그 뒤, 다시 수정검을 양손으로 쥐고 입에서 깨진 유리병 파편을 뱉어내며-.
“고작 그거냐!”
오크어로 쩌렁쩌렁 도발하며 전쟁 군주는 전력으로 야구배트를 휘두르는 듯한 자세로 전신의 근육을 쥐어짰다. 그리곤 달려오던 힘을 살려 거인의 아킬레스건을 향해 수정검을 휘둘렀다. 강철과 수정, 둘이 맞부딪치면 수정이 깨져야겠지만-.
-쩌엉!
전쟁 군주의 마력이 뒤섞인 수정검은 강철을 가를 정도로 튼튼했다.
그대로 아킬레스건을 파고드는 수정검, 거기에 담긴 힘은 여전히 골격을 베어낼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강철의 근육과 힘줄을 가르기엔 충분했다.
「그-으-윽?!」
정확히 왼쪽 아킬레스건을 끊는 순간, 고통스런 신음과 함께 살짝 휘청거리는 강철거인. 이어서 악귀처럼 일그러진 얼굴로 시선을 돌려 발밑을 바라본다. 아킬레스건에 깊게 박힌 수정검을 뽑아내는 오무혁의 모습에 거인은 창대로 몸을 지지하며 발로 내리찍으려 했지만-
-퍼-엉! 펑! 펑!
-쿠-웅!
눈 쪽을 향해 날아오는 불꽃 투사체가 방해한다. 그 덕분에 오무혁은 꽤나 수월하게 몸을 굴려 내리꽂히는 거인의 발을 피할 수 있었다. 그러면서 오무혁은 곁눈질로 불꽃이 날아온 방향을 확인했다.
-부우우우우웅!
미르를 서쪽 지역을 한 바퀴 삥 돌아서 접근한 오크 기사단, 그 배틀 바이크 부대 사이에 섞여있는 마법사들이 공격 마법을 사용해 날리고 있었다. 저렇게 대놓고 돌진했다면 거인의 피눈물 한 번에 쓸려나겠지만, 오무혁이 시선을 끈 사이에 오크들은 가까이 접근에 성공했다.
「크-으!」
하지만, 연금술사가 날린 지독한 독마법과는 달리 오크 마법사들의 마법은 그리 치명적이질 못했다. 그 자극에 눈살을 조금 찌푸리는 정도, 오무혁부터 끝장을 내야겠다고 판단한 강철거인은 오무혁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로-.
쿠-웅! 쿠-웅! 쿠-웅!
쿠-웅! 쿠-웅! 쿠-웅!
상처 입은 왼발로 내리찍고 휩쓸면서, 동시에 숨을 크게 들이켠다. 그리고-
「콰-아-아-아-아-아!」
가청 영역을 넘어선 강렬한 포효를 오무혁을 향해 내질렀다.
생리적으로 버틸 수 없는 들리지 않는 초저주파 포효, 그건 이미 하나의 공격이었다. 강철거인을 중심으로 공기가 동심원을 그리며 터져나가고, 폭풍에 휘말린 것처럼 이미 반파된 주위 건물이 덜덜 떨리며 무너진다. 다가오던 배틀 바이크부대 또한 살짝 휘청거렸다.
그 소리의 중심에 있는 오무혁은 두 눈을 감은 채로 고갤 숙이며 이를 악물었다.
일반인이면 뼈와 살이 분리될 충격, 오무혁의 몸은 튼튼했지만 아무런 피해가 없을 정도는 아니었다. 몸속의 피가 증발해 안쪽에서부터 열기가 솟구친다. 고막은 터져서 소리가 잘 안 들리게 됐고, 반고리관 또한 흔들리며 균형감각이 망가졌다. 안구 또한 심대한 타격을 입었다.
“우아아악!”
그럼에도 오무혁은 움직였다.
눈이 잘 안보여도, 균형 감각이 일그러졌어도, 소리가 안 들려도, 전사로써 쌓아온 기량을 바탕으로 정확하게 날아오는 강철거인의 발길질을 또 한 번 굴러서 피한다. 그렇게 오무혁이 필사적으로 시간을 끈 사이, 연금술사와 가까이 다가온 오크들도 공격을 이어나갔다.
「그-으-윽!」
강철거인의 등판, 김이 올라오며 부식된 것처럼 녹이 잔뜩 슬어버린 그곳에 발리스타 같은 녹색창이 날아와 꽂힌다. 연금술사가 만들어낸 <맹독의 창>, 신음을 내뱉는 거인의 모습에 오크 마법사들 또한 일제히 목표를 바꿔 등짝을 향해 마법을 쏟았다. 그에 강철 거인은-.
쿠-웅!
마침내, 휘청거리며 한 쪽 무릎을 꿇었다.
그 틈에 전쟁군주는 벨트 포켓에서 포션을 하나 더 꺼냈다. 유리병에 담긴 물약, 그가 착용한 마법의 벨트 포켓 안에 있던 병은 포효에도 다행히 좀 금이 갔어도 멀쩡했다. 곧바로 입 안에 털어 넣으면서 전쟁 군주는 주위를 살폈다.
낮아진 높이, 그리고 생겨난 발판...
“왼손을 묶어!”
거인의 오른쪽 무릎을 향해 전력으로 도약하며 전쟁 군주는 가까이 다가온 오크 기사단에게 혼을 담아 소리쳤다.
오크들의 신체 능력을 배가시키는 전쟁 군주만의 배틀 크라이(Battle Cry), 그에 붉은 아우라에 휩싸인 300여명의 오크들 중 선두의 30명의 오크 기사들이 가속하여 돌진한다. 그런 선두 기사들의 손에는 대형 괴물을 사냥하기 위한 굵직한 ‘투척 사슬’이 들려 있었다.
-촤르르르륵!
무릎에 올라온 전쟁 군주에 강철거인의 시선이 쏠린 사이, 거인의 시야 사각에서 접근한 기사들은 끝에 달린 갈고리를 붕붕 휘두르며 일제히 거인의 왼손에 쇠사슬을 던졌다. 휘감기는 사슬, 그리곤 기사들은 있는 힘껏 사슬을 쥔 채 배틀 바이크의 엑셀을 당겼다.
「...!」
오른쪽에는 전쟁 군주가 올라오고 왼손엔 뭔가가 감긴다. 그에 강철 거인이 택한 방법은 간단했다.
‘창을 놓고 양손을 휘두른다.’
-부-웅! 콰-작!
왼손에 걸린 쇠사슬을 잡은 오크 기사 30여 명이 거인의 힘에 배틀 바이크에서 붕 떠오른다. 그리곤 그대로 지면에 피떡이 되어 패대기쳐진다. 날아오른 도중에 사슬을 놓을 수도 있었지만 그들은 놓지 않았다. 그 대가로 죽을 걸 알고 있었음에도.
“이 개 같은 새끼...!”
소중한 부하들이 으깨지는 모습에 오무혁은 충혈된 눈으로 욕설을 내뱉었지만, 냉정하게 자신에게 날아오는 거인의 오른손을 피해 다시 지상으로 후퇴했다. 그렇게 강철거인과 전쟁 군주 사이에 신경전이 벌어지는 가운데-.
“잡아라! 전쟁 군주를 위하여!”
붉은 아우라를 흘리는 오크 기사들은 죽음을 불사하고 왼손으로 달려든다.
뒤쪽에서 다가오는 오크들, 이제 거인 또한 명확히 인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녀석들의 목적이 뭔지에 대해서도. 전쟁 군주를 똑바로 응시하면서 거인은 오른손을 휘둘렀다. 동시에 쇠사슬이 감긴 왼손은 보지도 않고 대충 휩쓸었다.
-콰작! 콰자자작!
“잡아! 죽더라도 잡아! 잡고 죽어!”
왼손에 감긴 쇠사슬을 맞고 빈 깡통처럼 배틀 바이크와 함께 날아가는 오크 기사들, 어떻게 부하들을 돕고 싶었지만 그를 노리는 거인의 오른손은 쉬지 않고 움직인다. 한눈팔다 단 한 번이라도 맞으면 끝난다.
-퍼-엉!
「끄-으-윽!」
그렇게 기사들과 전쟁 군주가 힘쓰는 사이, 오크 마법사들과 연금술사가 한 번 더 지원사격을 쏟아낸다. 목표는 약화된 등짝 쪽, 한 번 더 내리꽂힌 <맹독의 창>과 <점착 화염> 세례에 강철거인의 신경이 살짝 분산되자-.
“잡았다! 끌어!”
오크 기사들이 해낸다.
오무혁에 비해 신경이 덜 쏠린 왼손, 100여 명이 순식간에 으깨졌음에도 남은 150여 명의 기사들은 기어코 달라붙어서 사슬을 당겼다. 이미 반쯤 으깨졌지만 죽더라도 쇠사슬에 달라붙은 동료들과 함께.
-부우우우웅!
-쿠와아아앙! 쿠왕!
한손으론 어깨에 사슬을 짊어진 채로 다른 한손으론 탑승한 배틀 바이크의 손잡이를 붙잡으며 필사적으로 엑셀을 당긴다. 게다가 타고 있는 배틀 바이크들은 소형 전차에 가까웠기에 수백 명이 달라붙자-.
「!?」
마침내 강철거인의 왼팔이 뒤로 당겨진다. 그와 함께 거인의 상반신 균형이 무너지고 틈이 생기고 전쟁 군주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으아아아아!”
분노의 괴성을 내지르며 다시 거인의 무릎으로 도약하는 전쟁 군주, 거인이 오른손을 휘저으며 후려치려 하지만 그는 육중한 몸과는 어울리지 않게 날렵하게 어깨에 올라선다. 그 사이 오크 기사들에 의해 거의 뒤로 기울어진 거인의 몸, 그 얼굴을 향해 한 번 더 도약하며-.
가까운 거인의 오른쪽 눈에 수정장검을 박아 넣고 휘젓는다.
「그!-아!-아!-앗!」
제대로 된 두 번째 비명, 뻗쳐오는 거인의 오른손에 전쟁 군주는 재빨리 휘저은 장검을 뽑고 지면으로 내려왔다. 완전히 드러눕게 된 거인의 시선이 반사적으로 전쟁 군주를 쫒지만, 그는 거인이 포착하기 힘들도록 거인의 오른쪽 방향-시야의 사각(死角)으로 돌았다.
“사슬을 놓고 빠져라!”
오른쪽 눈이 망가져 전쟁 군주를 포착하기 힘든 상황, 그에 거인은 쫒는 걸 포기하곤 오른손을 왼손 쪽으로 뻗는다. 그 광경에 뭘 하려는 눈치 챈 전쟁 군주는 반대쪽으로 내달리면서 매달린 기사들에게 명령한다.
-부우우웅!
양 손을 포개자마자 있는 힘껏 휘두르는 거인. 하지만, 오크 기사들은 이미 일사불란하게 빠져나간 뒤였다. 그렇게 왼손이 풀려났지만, 함께 손을 포갠 채 휘두르면서 자연스럽게 반대쪽 등짝이 드러났고-.
전쟁 군주는 그걸 예상하고 미친 듯이 거인의 정수리 쪽을 돌아 반대편에 서 있었다.
“죽어라!”
그가 전력을 다한 검격으로도 거인의 뼈를 뚫지는 못하는 상황, 하지만 처음에 정통으로 들어간 독마법에 의해 넝마가 된 거인의 등짝이라면 다르다. 산성 용해액에 당한 등은 보기에 끔찍하게 녹아있었고, 전쟁 군주는 그 안에 있는 척추를 향해 수정검을 찔러 넣었다.
「!?」
사람으로 치자면 척추의 틈-신경에 이쑤시개가 박힌 꼴. 육체의 구조는 사람과 비슷한 듯 강철 거인의 상반신이 힘을 잃고 느릿하게 무너진다. 그에 전쟁 군주는 빠르게 뒤로 다시 빠졌다. 어느 정도 거리를 벌린 뒤, 전쟁 군주는 숨을 헐떡이며 강철 거인을 바라봤다.
그리곤 확신했다.
“됐다! 모두 뒤로! 이제 저놈은 가슴팍 위쪽만 움직인다!”
버둥거리는 강철 거인, 그 꼬락서니가 우습게 일어서질 못한다. 가슴 위쪽으로는 여전히 움직이지만 다리 쪽은 미동도 하지 않는 상태. 그 모습을 보며 전쟁 군주는 잔혹한 웃음을 지었다. 물론, 저 상태로도 양손이 움직이기에 치명타를 먹이긴 힘들다만...
“여자! 여기에 용 발톱 같은 거 한 번 더 쏴라! 빨리! 언제 회복될지 모른다!”
저 멀리 수백m 떨어져 있는 흰 가운의 인간 계집, 강철 거인의 등판을 녹인 그 흉악한 독마법을 날린 여자에게 전쟁 군주는 소리쳤다. 그 요구에 여자는 빠르게 이곳으로 달려오면서 소리친다.
“시체나 피 같은 변환할 물질이 없어서 못 날려! <맹독의 창>이 한계야!”
“망할!”
“그쪽 가서 니들 시체를 녹여서 마법 날릴 테니까 시간이나 끌어봐!”
죽은 동포들의 시체를 녹여서 독마법을 쓰겠다는 말, 그에 전쟁 군주는 입술을 깨물었다. 어쩔 수 없었다. 이대로 가다가 놈이 회복하면 진짜 허무하게 승리가 날아갈 수 있으니까.
「...」
하지만, 강철 거인은 분노의 괴성을 지르거나 아직 움직이는 양 손을 휘젓기는커녕 잔잔히 두 눈을 천천히 감는다. 그에 더 한 불길함을 느낀 전쟁 군주는 부하들에게 속사포처럼 명령을 쏟아냈다.
“기사들은 거인의 발쪽으로 이동해라! 왼쪽 아킬레스건에 상처가 있을 테니 한 번 후벼 파서 끊어내! 그리고, 마법사는 저놈의 얼굴에 마법을 날려라! 약한 것이라도 상관없...”
「피의 신에게 피를, 시체 왕좌에 더 많은 시체를.」
다시 한 번, 입으로 내뱉는 소음이 아닌 의지가 세상에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