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자를 위한 연중작은 없다-123화 (123/350)

< 25화. 유혈이 지나간 뒤 >

“아, 아뇨! 아니, 뭔! 정한솔 선생님! 어떻게 좀 말려 봐요! 이거 범죄...”

말려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는 듯한 정한솔 선생에게 매달렸지만 싸장님은 그 전에 썩쏘를 날리며 방아쇠를 당긴다. 이번에 대폭 레벨 업하면서 오른 피지컬로 피해보려고 했지만, 북한에서 이름도 기억 안 나는 녀석의 총알을 피했던 것과는 달리 싸장님의 총구는 집요하게 날 향하고-

-타앙!

“케헥!”

진짜 총성에 비하면 ‘아주 작은 총소리’와 함께 정확하게 권총에서 나온 총탄이 내 흉골에 닿았다. 이... 이렇게 허무하게 가는 건가? 반사적으로 쓰러지며 숨넘어가는 소리를 냈는데-,

“엄살 부리지마 쉑꺄! 이거 고무탄이니까!”

싸장님은 권총을 흔들며 빼액 소리 지른다. 실제로 맞은 부위를 보니 흉골이 골절됐을 뿐 구멍이 뚫리거나 하진 않았다. 아니, 고무탄이라도 그렇지... 진짜, 진짜 돌아버린 거냐? 이런 곳에 권총을 가져와서 쏴대?

고통에 끙끙대면서도 상식을 초월한 싸장님의 행동에 어처구니없음을 느끼고 있는데-,

“도비야, 일어서렴.”

싸장님은 숨을 한 번 고르곤 다시 ‘부드럽게’ 내게 타이른다. 하지만, 내가 일어서질 못하고 끙끙 대며 미적거리자 싸장님은 권총의 공이를 한 번 더 당긴다.

“아무래도 ‘한방’으론 치료가 부족한 것 같은데? 한 번 더 해야 하나?”

“이.. 일어날게요!”

진지하게 고민하는 듯한 싸장님, 이... 이 미친 싸이코패스 같은 년! 아무리 고무탄이라지만 또 맞기는 싫기에 힘겹게 자리에서 일어서자, 싸장님은 휠체어 뒤쪽 손잡이를 잡은 정한솔 선생에게 보란 듯이 턱짓한다.

“봐봐! 이 쉐끼를 다루려면 말로는 안 돼! 폭력을 써야 해요!”

“음, 수영아. 너 진짜 이번에 진지하게 정신과 치료 받아보지 않을래?”

“지랄! 난 지극히 정상이야!”

정한솔 선생의 권유에 완강하게 고갤 젓는 싸장님. 흠, 100명에게 싸장님이 미친년이냐고 물어보면 140명이 미친년이라고 대답할 텐데 말이지. 어찌됐든 싸장님은 내가 일어서자 흰 가운 안주머니에서 조그만 물약병을 꺼내 던진다.

“마셔, 새꺄.”

“에, 싸장님?”

“왜?”

“이거 수제 포션 아닙니까?”

“그래서?”

억 단위의 수제 물약, 이걸 마시라고 던진다고? 아무리 아프다지만 억 단위 돈을 태울 일은 아닐 텐데? 그에 난 조심스럽게 대꾸했다.

“비용을 생각하면... 그냥 이번처럼 총을 쏘는 것보단 말로 타이르는 게 낫지 않을까요?”

“아닌데, 이게 훨씬 좋은데? 그나저나 도비가 말대꾸라니... 치료가 더 필요한 건가?”

또 권총을 겨누는 싸장님, 아무리 나라도 굳이 고통을 받고 싶진 않기에 아가리 닥치고 포션을 마셨다. 그렇게 내가 순순히 따르자 싸장님은 고갤 끄덕인 후, 리볼버 약실을 열고 총탄을 다시 빼낸다.

“그래, 도비야. 반성은 좀 했니?”

“넵! 깝치지 않겠습니다! 더는 알바 빼먹지 않고 열심히 출근하겠습니다!”

“음, 그래그래. 함부로 도둑질은 안 돼. 그나저나 이번 일은... 잘했다.”

급한 마음에 이번에 얻은 ‘돌연변이’를 생각 못하고 출근하겠다 한 뒤, ‘아, ㅅㅂ 조졌네’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갑자기 잘했다며 칭찬해주는 싸장님. ‘이게 뭔 일이지?’하고 바라보자 싸장님은 권총과 총알을 주머니에 넣고 휠체어 팔걸이에 손을 올려 턱을 괴면서 말을 이어나갔다.

“한솔이에게 이야기 들었다. 이번 일이 터지기 전에 불길한 느낌에 발작했다며?”

“아... 넵.”

“그런 일이 있으면 내게 말해야지. 팍씨, 말도 안 하고 물약과 재료를 빼돌려?”

턱을 괴지 않은 반대편 손으로 주먹을 쥐며 후려칠 것처럼 들어 올리는 싸장님, 그에 난 어색하게 웃었다.

“헤, 헤헤헤. 사실, 그냥 느낌뿐이었던 거라서 말하기 좀 그랬어요.”

“그래, 그나마 사람을 살렸으니까 이정도로 끝난 거지 아니었으면 진짜 실탄 쐈어.”

말과 함께 주먹을 내리곤 싸장님은 호주머니에서 전자 담배를 꺼내 입에 무신다. 그나저나 실탄이라니... 까딱 잘못했으면 진짜 총 맞았겠네. 그렇게 전자 담배를 뻐끔거리며 싸장님은 말을 이어나갔다.

“몸은 괜찮냐?”

“...총으로 쏴놓고 몸 괜찮냐고 물어요?”

“...”

“괜찮습니다. 괜찮아요. 완전 멀쩡합니다!”

반사적으로 반발심에 살짝 깐죽거리며 대꾸했는데, 미간 꿈틀거리며 권총을 넣은 주머니로 손이 움찔하는 걸보곤 재빨리 정신을 차리고 대꾸했다. 그런 내 반응에 한숨을 내뱉는 싸장님, 그러고 보니...

“근데, 싸장님은 왜 휠체어에 있나요? 몸은 멀쩡하신 것 같은데?”

“안 움직인다.”

“...네?”

“내가 너 잡으러 이번 사태에 뛰어들었거든? 그리고 어쩌다가 오무혁 양반이랑 같이 강철 거인이랑 싸우게 됐다. 알고 있냐? Tv에서도 떠들었는데.”

당연히 안다. 직접 싸장님이 그 등짝에 거대한 독발톱을 만들어 날리는 것까지 다이렉트로 봤지. 방송국 드론에도 찍혀서 Tv에도 나왔는걸. 내가 고갤 끄덕이자 싸장님은 전자 담배의 연기를 내뱉으며 중얼거렸다.

“그 때, 거인의 눈깔빔을 맞았어. 건물 뒤에 숨어서 직격 당하지는 않았지만 꽤 큰 피해를 입었지. 어찌어찌 죽지 않고 스스로 응급치료로 목숨은 건졌지만... 아직까진 하반신 마비야. 뭐, 마력 각성자니까 차차 나아지겠지.”

태연하게 말하며 어깰 으쓱이는 싸장님, 그 말에 난 곧바로 <무한의 눈>으로 싸장님의 몸속을 응시했다. 보아하니 육체적인 면은 다 치료됐게 보였지만... 척추 한쪽에 강철거인에게서 보였던 ‘유혈의 힘’이 고여 있었다.

“그러고 보니 싸장님의 몸 안에서 불길한 것이 느껴지네요.”

“불길한 것?”

“네, 골반에서 8번째 척추 마디에서. 이번에 있었던 사태와 연관이 있는 것 같아요. 도살장으로 변한 미르에서 느껴졌던 것과 같은 느낌이거든요.”

“흠.”

내 진단에 침음성을 흘리는 싸장님, 정한솔 선생이 심각하게 바라보는 가운데 싸장님은 이내 천천히 고갤 주억였다.

“확실히, 그럴 수도 있겠어. 네가 방금 말한 곳, 정확히 내 몸에 구멍이 뚫린 곳이거든.”

“뚫려요...?”

“그래, 거인이 쏘아내던 초고압의 피눈물에 스친 곳이야. 왼쪽 복부 안의 내장과 척추 일부분이 깔끔하게 날아갔지. 급한 대로 내 머리카락들을 뜯어서 물질 변환시켜 메꿨어. 구조된 뒤엔 내 사제 포션을 디립다 부어서 복구시켰고.”

“그럼 한 번 더 수술해야 하는 거 아니야?”

걱정스런 표정으로 말하는 정한솔 선생, 그에 난 고갤 저었다.

“아, 선생님. 이것도 제 느낌이긴 한데... 물질적인 게 아니에요. 무형의 기운이라고 해야 하나? 수술로 제거하기엔 힘들 것 같은데요? 다른 수단을 쓰셔야 할 것 같은데?”

“끄응, 나도 마력 관련 질병과 상해 연구에 나름 빠삭한데... 도대체 무형의 기운을 어떻게 없앨지는 모르겠네. 자료를 뒤져봐야 하나?”

그런 내 대답에 팔짱을 끼며 고민하는 정한솔 선생, 전자 담배를 뻐끔거리며 그렇게 몇 십 초 동안 말없이 미간을 찡그린 채로 있던 싸장님은 이내 뭔가 결정을 내린 듯 고갤 주억이며 날 바라보았다.

“도비야.”

“넵.”

“넌 오늘부로 알바 해고다.”

4.

“...네?”

난데없는 알바 해고 소식, 그에 뭔 소리를 하는지 몰라 내가 살짝 벙쪄하는 와중에도 싸장님은 태연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강수영의 물약 상점은 오늘부로 지상 폐점한다.”

이어지는 말에 난 침묵했다.

나야 솔직히 상관없긴 하다. 싸장님의 <연금술> 테크닉도 많이 배운 터라 어딜 가서라도 돈 많이 받는 ‘고오급 노동자’가 됐으니까. 이번에 생긴 ‘돌연변이’ 때문에 먹는 물품은 못 만들지만... 공장 납품용으로 가공하는 여타 물질은 괜찮을 거다. 독성이 좀 심하긴 할 테지만.

근데, 싸장님의 사업은 저렇게 혼자서 하기 싫다고 접을 수 있는 게 아니다.

“그, 싸장님이 재계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다면서요? 그렇게 쉽게 폐점하시면... 아니, 그전에 싸장님의 영향력이 사라지면 좀 위험하지 않나요? 그 회춘 연구로 납치당할 뻔한 걸 방지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인맥 쌓았다고 하셨으면서.”

“응, 맞아. 내가 생각하기에도 그래. 그래서 ‘지상’은 힘들 것 같고 ‘지하’에 상점을 열려고.”

“수영아, 그게 뭔 소리야? 지하에 상점?”

지하에 상점을? 그 폭탄선언에 나는 물론이고 정한솔 선생도 깜짝 놀라서 바라보자 싸장님은 어깰 으쓱였다.

“나도 내게 씌워진 <마력 돌연변이>를 없앨 연구를 했거든? 그래서 마력 관련 상해나 질병 연구에 나름 빠삭해. 지금까지 하반신이 안 움직이는 게 새롭게 만들어진 신경이 제대로 연결이 안 돼서 그런 건가 했는데, 도비 녀석의 말을 들어보니까 이건 쉽게 치료될 수 있는 게 아니야.”

“...”

“며칠 동안이라면 그래도 뻐기겠는데, 오래 지속되면... 내게 지상은 위험해. 하반신 마비로 무력을 대부분 상실한 이상, 납치당할 수 있어. 그러니 더 안전한 곳으로 가야지.”

그런 싸장님의 말에 정한솔 선생도 납득이 된다는 듯이 고갤 주억였다.

“음, 좀 이해가 되네. 뉴 송파구 연구지역은 웬만한 이들은 들어가기도 힘드니까.”

“연구 지역? 아니, 난 이종족 구역으로 갈 건데?”

“무...뭐?!”

뭔 말을 하냐는 듯이 말하는 싸장님, 그에 나는 물론이고 정한솔 선생까지 경악한다. 이종족 구역? 위험성 때문에 사람은 함부로 못 들어가는 그곳에? 그런 우리 둘의 모습에 싸장님은 전자 담배를 입에서 떼며 연기를 후욱 뱉어낸다.

“이번에 새롭게 뉴 송파구 시장이 된 ‘제롬’이란 오크 양반이 어제 감사패 들고 직접 찾아왔었어. 못 움직이는 내 꼴을 보더니 ‘혹시 은퇴해서 자기들의 화학 교수나 마법 선생으로 와줄 수 있냐?’고 하더라고. 최고의 대우를 약속한다고 하더라.”

“거길... 가겠다구?”

“응, 어젠 거절했는데 상황이 이러니 받아들여야지.”

태연하게 대답하는 싸장님, 그에 정한솔 선생이 더 당황하며 싸장님을 말린다.

“아, 아니... 수영아, 그곳에 가야해? 훨씬 더 위험한 거 아니야? Tv 다큐멘터리들 보니까 문명화되긴 했다만 반 무법지대라던데? 노동자가 죽기까지 했대!”

“그렇긴 하지. 하지만, 내 입장에서 보면 거기가 더 안전해.”

싸장님은 입에 문 전자 담배를 끄곤 어깰 으쓱이신다.

“인간은 물론이고 정부도 함부로 믿을 수 없어. 차라리 정부도, 인간도 영향력을 뻗치기 힘든 곳에 있는 게 낫지.”

“아니, 너 너무 인간불신인 거 아니야? 네가 겪은 걸 생각하면 그런 반응이 충분히 이해는 하는데... 오크들은 믿을 수 있고?”

최대한 설득해보려는 정한솔 선생, 내가 보기에도 우리 싸장님은 너무 인간 불신인 것 같아. 그런 나와 정한솔 선생의 표정에 싸장님은 싸늘하게 이죽거린다.

“당연히, 믿을 수 없지. 난, 아무도 안 믿어. 그래도 나름 저울질해서 내린 결론이야. 내 경험에 의하면 이런 상태로 지상이나 인간들의 영향력 있는 곳에서 장사했다간 얼마 안가 납치당해. 이 새끼 전에 받았던 알바생만 봐도 알 수 있지.”

날 향해 턱짓하는 싸장님. 아니 잠깐만, 내 전의 알바생이라면...?

“그, ‘한방 치료’ 받았다는 사람인가요?”

“허, 설마 너 그 기사 읽었냐?”

“네, 어쩌다보니 알게 됐죠. 그나저나 진짜에요? 너무 일 못한다고 손을 총으로 쐈다고.”

그런 내 대답에 싸장님은 얼굴을 구기며 대꾸한다.

“하, 그 새끼가 총으로 쏴줄 정도로 일을 좆같이 못한 건 맞는데 그것만으로 ‘한방 치료’를 해준 게 아니란다.”

“그럼?”

“스파이였거든.”

정한솔 선생과 나도 전혀 예상 못한 말에 두 눈을 동그랗게 뜨는 가운데, 싸장님은 담담하게 말을 이어나간다.

“일을 못해서 짜증나긴 했는데, 어느 순간 몰래 내 컴퓨터에 백도어가 있고 건물 곳곳에 몰래 카메라와 도청기가 있더라고? 다른 사람이면 눈치 채지 못했겠지만, 난 몇 번 납치당할 뻔해서 좀 병적으로 그런 걸 경계해. 그래서 얼마 안가 눈치 챘지.”

“...”

“그래서 현장을 포착하고 두들겨 패면서 ‘한방 치료’를 해줬지! 그러니까 질질 짜면서 지 정체에 대해 말하더라.”

“...허.”

정한솔 선생과 내가 넋이 나간 듯이 바라보자 싸장님은 이를 갈았다.

“자료를 보니까 연구 자료는 물론이고 내 행적 동선 같은 걸 추적한 걸 보면 납치하려고 한 것 같아. 그 자료들을 포함해서 경찰에 넘겼는데, 신문엔 내가 성격 파탄자로 기사가 나갔더라고?! 싯팔!”

“...왜 내겐 안 말했어?”

“말해봤자 다른 사람만 걱정시킬 테니까.”

정한솔 선생의 말에 퉁명스럽게 대꾸한 싸장님은 작게 한숨을 내뱉었다.

“하도 이상해서 재계 인맥 통해 알아보니까 중국 쪽에 포섭된 스파이인 것 같다고 하더라. 그리고, 그 새낀 중국으로 넘어갔고. 정부는 중국 눈치 보느라 아무런 짓도 못했지. 나중에 신문에 정정기사 쬐끄맣게 실린 게 끝이었어.”

“...”

“씨-팔련들. 내가 안일하게 대처했으면 지금 중국에 끌려가서 실험체 취급+공밀레 당하고 있었을 거야. 도비야, 이건 너도 마찬가지란다. 니 진정한 능력을 알게 되면 끌려갈 거야. 처신 잘하렴. 정부를 함부로 믿다간 좆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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