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화. 다 봤던 연중작도 다시 한 번! >
9.
난 열흘이 넘도록 여의도에 상주했다.
여의나루역에서 얻은 성과에 고무되어 나는 ‘르피너스의 장난감’의 내용을 토대로 여러 곳을 돌아다녔다. 황금의 악마와 주인공 간의 대결이 펼쳐졌던 장소였던 만큼, 여의도에는 주인공의 흔적이 많이 남아있었다. 그 만큼, <과거시>로 보면 습득할 수 있는 정보가 많다는 뜻이었지.
그리고, 그 ‘진귀한 정보’들을 건져 올릴 수 있었다.
<과거시> 상태에서 분석까지 해야 했기에 하루하면 이틀 동안 자야할 정도로 지쳤지만, 죽음에 가까운 공포를 무릅쓸 정도의 ‘가치’가 있었다. 그렇게 6월의 중반, 난 여의도의 호텔 카페 라운지 소파에 앉아 커피를 홀짝이며 <메모장>에 여의도에서 얻은 실적들을 정리했다.
“첫째는 ‘황금 자두’의 효능...”
주인공이 전 세계 사람들에게 황금 자두를 처음 공개한 장소인 여의도의 공영 방송국, 황금의 악마에 의해 잿더미로 변해 사라진지 오래였지만 그 흔적을 통해 <과거>를 응시했고 다른 사람이 황금 자두를 섭취했을 때 ‘몸과 영혼에 작용하는 효능’을 볼 수 있었다.
황금 자두를 먹는 순간, 그 안의 ‘막대한 생명력’과 ‘바스러진 영혼의 조각’은 섭취자에게 흡수되었다.
그 영혼의 부스러기를 받은 섭취자의 영혼은 약간 ‘변질’되었는데, 그 여파인지 <마력 각성>이 일어났다. 그리고, 섭취자의 ‘욕망’대로 마력이 꿈틀거리며 몸을 ‘재구성’해버렸다. 그래, 섭취자가 가장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자신의 모습으로 변화했다.
무협지에서의 ‘환골탈태’에 가까운 현상이었다.
정말 궁극의 소모품이란 말이 어울리는 효능. 그 경이로운 효과를 보고 ‘15년이 지난 지금, 황금 자두를 먹은 사람은 어떻게 됐을까?’하는 궁금증에 인터넷에 먹은 사람의 이름을 검색해봤는데... 실종됐다더라. 정황상 납치인 듯해서 경찰까지 나서서 수색했는데도 찾지 못했다고.
그래, 세계적으로 화제가 된 인물이었는데 2개월 만에 납치되어 사라졌다.
그걸 보니 싸장님의 당부-‘힘이 없는 상태에서 함부로 깝치면 납치돼서 실험실에 처박힐 거다.’라는 조언이 떠오르더라. 역시, 싸장님이 괜히 내게 경고해준 게 아니었다. 이 세상은 너무 험악해. 최소한의 가식조차 떨지 않고 너무 야만적이야.
뭐, 어찌됐든 간에 이걸 먹어서 내 영혼이 회복될지 말지는 모르겠다만... 지금으로선 황금 자두가 가장 가능성이 높다.
현재, 소설을 통해 파악한 황금 자두를 가지고 있는 인물과 집단은 ‘주인공’과 ‘루스&루칼 남매’, 그리고 주인공이 잡아오라는 양아치를 넘기고 황금 자두를 받은 ‘사이비 종교집단’과 골디안 상회의 ‘모리즐 블랙 코인’까지 총 4명...
“흐음, 선택의 여지가 없네요.”
검색해본 결과 ‘사이비 종교 집단’은 사라진 지 오래되었고, ‘모리즐 블랙 코인’이란 영리한 상인 고블린은 아예 행적조차 모른다. 주인공? 미궁으로 기어들어갔지. 결국 남은 건... 루스&루칼 남매뿐이야. 지금쯤 20대 후반 정도 됐으려나?
하지만, 얘네들은 내가 순순히 황금 자두를 달라고 해서 줄 애들이 아니다.
“결국, 뭔가 거래를 해야 하는데...”
소파 팔걸이를 두드리며 난 얼굴을 찡그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남매가 혹할만한 것을 제시하지 못하겠어. 소설속의 묘사에 따르면 얘네들은 마법 장비를 ‘찍어내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돈도 엄청나게 벌었겠지. 아니, 돈을 원했으면 황금 자두를 엘프들에게 넘겼을 거다. 왜인지 몰라도 엘프들은 황금 자두에 ‘조 단위’의 현상금을 걸고 찾고 있거든.
하지만, 그렇다고 남매에게서 황금 자두를 힘으로 빼앗는 건... 자살행위인데.
소설 속 묘사를 보더라도 두 남매는 지금 나보다 강하다. 15년이 지나서 성인이 된 지금은... 훨씬 더 성장했겠지? 일단, 교섭을 위한 ‘자금’과 ‘무력’을 확보하는 게 우선일 것 같다.
정 뭣하면 힘으로 빼앗아야지.
추잡하다고? 목숨보다 더 소중한 게 걸리면 추잡해질 수밖에 없어. 죽더라도 온전한 존재로서 죽고 싶다. 그럼 황금 자두를 사기 위한 자금은...
“<마력 각성> 메커니즘.”
황금 자두를 보면서 부가적으로 얻은 정보 중에선 <마력 각성>의 과정도 있었다.
‘영혼’이 바뀌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것이라고 해야 하나? 이번에 미르에서 발생했던 유혈 사태 때, 그 안에서 마력 각성자가 많이 발생했다던데 한 번 비교 검토하면... 인위적으로 <마력 각성>을 발생시킬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아니, 최소한 <마력 각성>의 명확한 기준은 알 수 있을 거다.
그 가능성이라도 확인한 게 어디냐? 이 항목에선 세계적인 대기업들도 돈만 디립다 퍼붓고 삽질하고 있는데? 이번에 영혼을 <강령술>로 건드려 보면서 좀 더 연구해봐야겠다. 이걸 상용화하면 엄청난 돈은 확실히 벌 수 있겠지. 최소한 황금 자두를 교섭할 만한 자금은 될 거야.
“둘째는 마법.”
15년 전, 이곳에서 펼쳐졌던 각종 마법들.
마법을 이루는 본질 ‘룬 문자’를 직접 볼 수 있기에 흉내 내며 연습할 수 있었다. 하지만, <게임 시스템> 보조가 없기에 약간 감만 잡았을 뿐 익히진 못했다. 사실, 이게 당연한... 아니, 이것도 마법서의 <마력흔>을 붙잡고 ‘제발 깨우쳐라!’하는 다른 애들보단 훨~씬 유리하다.
천천히 내가 봤었던 마법들을 정리해봤다.
***
<강령술>
·9위계 <죽음의 문턱>
·7위계 <유령 출몰>
·6위계 <죽음의 영매술>
<얼음의 환영>
<강화된 해골 일으키기>
***
일단 여의나루에서 봤던 <강령술>은 이정도고. 그 외의 지역에서 봤던 건...
***
<화염 학파>
·9위계 <화염 폭풍>
<공기 학파>
·5위계 <비행>.
***
방송국에서 루세트가 사용했던 마법들. 이건 보나마나네.
“일단, <강령술>을 우선으로.”
하나 같이 눈 돌아갈 만한 수준의 마법들이지만 마법을 배우는데 들어가는 노력과 목적을 생각하면 <강령술>에 집중해야겠다. 근데, 배울 마법들을 보아하니 수준이... 무지막지하게 높다.
“레벨 업을 해야 하나...”
이번에 레벨업하면서 레벨이 올라야 ‘높은 위계 마법’을 원활하게 쓸 수 있다는 걸 파악했다. 아무리 영혼에 대한 연구가 주 목적이라지만 그래도 마법 자체는 한 번 쓸 수 있어야지. 이 세상의 모티브가 된 게임 ‘EG’가 돌죽이 비슷하다면...
“가장 수준 낮은 마법이라도 대충 15레벨, 그럼 어디서 레벨업을 해야 할까...”
또 문제가 나온다. 레벨업은 영혼을 가진 존재를 죽여야 오른다는 것, 영혼을 가진 존재들을 죽여야 한다는 점에서 좀 껄끄럽지만 어쩔 수 없다.
레벨 업은 중대 사안이니까.
영혼에 대한 연구, 그리고 루스&루칼 남매에게서 황금 자두를 강탈할 무력, 무엇보다도.. 이번에 깨달은 내 ‘저열한 충동’도 가끔씩 충족시켜야 하니까.
“흐음, 애매하네요.”
주인공처럼 지하 토굴 아래의 ‘미궁’으로 가야 하나? 아니, 그건 힘들지. 게다가 거기선 영혼에 대한 연구도 힘들 테고. 지상에서 용병이라도 해야 하나? 아니다, 이건 지금 알고 있는 것만으로 결정하기엔 정보가 부족하다. 나중에 천천히 자료를 모아봐야지.
“마지막으로 장비들.”
여의나루역의 벽속에 박힌 데몬 스폰의 시체, 그리고 시체가 걸친 무구들. 예상대로 그 장비들은 하나하나가 국보급 수준이었다. <메모장>의 다른 파일을 띄운 후, 난 거기에 적었던 무구들의 스펙을 훑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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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심판의 일격 (Judgement Smash)
지옥의 대장장이 트라진이 만들어낸 무겁고 커다란 조립식 석궁, 오직 ‘강력한 한 방’을 위해 만들어진 이 물품은 너무나도 무거워서 들고 움직이기도 힘들고, 거치형태로 바뀌면 아예 땅에서 움직일 수 없으며, 장전 또한 특수한 화살을 필요로 한다. 게다가 그 설치와 장전 과정도 매우 고되고 힘들다!
그러나, 한 발만이라도 쏠 수 있다면 그러한 모든 노력들이 전혀 아깝지 않을 것이다.
양손 무기, 심판의 일격
대미지 40, 명중 +0
기본 공격속도 2.7, 최소 공격속도 1.35
·파괴의 무기(Velocity), 관통(Penet), 설치된 순간 뿌리내림(Root)-이동 불가, EV –15, 느려짐(Pond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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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집행 유예 (Suspension of sentence)
지옥의 대장장이 트라진이 만들어낸 투척용 수정창. 트라진은 악마였지만 무려 천상의 재료까지 섭력했고, 다른 악마들은 쉬이 만지지도 못하는 재료들을 가공하여 무려 ‘천상의 힘’이 깃들게 하는데 성공한다.
그냥 투창 무기로 써도 강력하지만, 세트로 만들어진 ‘심판의 일격’의 투사체로 사용한다면 그 위력은 배가 된다.
한손 무기, 집행 유예
대미지 6, 명중 +4
공격속도 1.1, 최소 공격속도 0.5
·귀환의 무기(Returning), 전격의 무기(Electrocution), 신성한 무기(Holy Wra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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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그림자 거미의 장화 (pair of boots of the shadow spider)
거대한 그림자 거미의 가죽으로 만들어낸 장화, 그 영혼의 일부분을 담았기에 착용자는 거미가 가졌던 이능을 흉내 낼 수 있다. 이 장화를 착용할 시, 소리 없이 움직일 수 있으며 벽이나 천장에도 쉽게 붙어있을 수 있다.
신발
기본 AC 1, 방해 수치 0
·은신+, 질주
·발동 기술 : 접지(椄地)-벽에 달라붙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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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명사수의 팔 보호구 (Bracers of sharpshooter)
이 흑색의 팔 보호구는 뛰어난 궁수의 영혼이 깃들어있다. 착용자가 ‘어떤 물체를 던지는 행위’를 할 시, 이 보호구에 서린 영혼은 당신의 팔근육에 은연중에 간섭하여 당신의 ‘의도했던 대로’ 투척할 수 있도록 보조를 해준다.
만약, 착용자가 약간의 댓가-피와 마력을 지불한다면 이 안의 영혼을 깨울 수 있으며 순간적으로 궁술 실력을 늘릴 수도 있다.
장갑
기본 AC 1, 방해 수치 0
·민첩+3, 궁도(원거리 투사체에 Slay+4)
·발동 기술: 궁수의 시간(일시적으로 투척 레벨이 3 상승한다. 스킬 레벨 제한 27을 넘길 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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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민첩의 반지 (Ring of dexterity)
민첩을 증가시키거나 감소시키는 반지다.
반지
·민첩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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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해의 스카프 (Scarf)
거친 직물로 짜여진 붉은색 스카프, 너덜너덜하고 볼품없는 이 천 쪼가리엔 ‘원시적인 주술’이 걸려있다. 이 주술은 착용자가 받는 피해를 증가시키지만, 동시에 착용자가 사용하는 무기에 똑같은 저주를 불어넣는다.
망토
·상해(물리 공격력 +30%, 물리 피해량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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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배의 목걸이
이 목걸이는 영혼에 걸리는 아주 강력한 저주가 붙어있다. 이 저주는 웬만한 해주방법으론 떨어지지 않는다. 착용자는 ‘지배의 반지’를 착용한 자에게 위해를 끼칠 수 없으며, 반지의 주인은 생각만으로 목걸이의 착용자에게 고통을 주거나 목숨을 잃게 할 수 있다.
목걸이
·저주받음, 반지의 주인에게 종속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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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심사숙고의 티아라 (Tiara of pondering)
묵빛의 금속에 이마 쪽엔 검은 흑요석으로 장식된 티아라, 그 어떤 상황에서도 당황하지 않는 냉철함과 이질적인 것을 꿰뚫어보는 정밀한 시야를 착용자에게 선물한다.
모자
·명석함, 투명 감지, 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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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궁, 화살, 투구, 반지 한 쌍, 장화, 장갑, 망토, 그리고 쓸모는 없다만 저주받은 목걸이까지. 돌죽 기준으로도 정신 나간 아이템들이 널려있었다. 소설 속에서 루세트가 장비들을 잃어버렸다고 광분하는 게 이해가 갈 정도야.
...어떻게 이걸 꺼낼 수 있을까?
참 난감하기 그지없다. 국가에게 들키면 모조리 다 빼앗길 게 뻔한데... 솔직히, 지금의 나로선 애매하다. 엄청난 부자가 된다면 공무원을 매수해서 어떻게 샤바샤바 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언제쯤 그런 부자가 되려나?
...아니, 그냥 마빡 아가씨게 딜을 걸어버릴까?
언젠가 내가 세력을 갖추면 독식 가능할지도 모르겠다만 그래봤자 저 장비들은 내가 쓰기엔 너무 동떨어졌다. 독식한다고 해도 못 쓰고 짐짝처럼 냅둘 확률이 높아. 그렇다고 팔자니 저런 국보급 장비들은 파는 것도 어렵고 들키는 순간부턴 목숨만 위험하다.
적당히, 내가 쓸 만한 것만 가지고 빠진다면...
“무기는 대단하긴 한데 필요 없고, 티아라도 딱히... 반지, 장화 정도?”
내 육성 방향은 마법사나 연금술사로 정했으니 지능 보조 아이템을 끼면 좋겠다만, 목숨이 왔다갔다하는 현실인 만큼 민첩 템이라도 충분히 가치가 넘친다. 차라리 빨리 내가 못 쓰는 건 다른 사람에게 넘기고 직접 쓸 만한 나머지는 전부 받자.
그럼 이 정보의 출처를 아가씨에게 어떻게 말할까?
아니, 어떻게 하면 내 몫을 확실하게 받아낼 수 있을까?
물론, 마빡 아가씨를 믿지 못하는 건 아니다. 저번 5억 사건도 ‘어찌됐든 돈은 100% 지급’했으니까. 하청의 반란에 도중에 끼어들어서 퇴짜를 놓은 게 좀 그렇지만... 마빡 아가씨는 나름 공정하다. 그리고 스스로 인정하진 않겠지만 꽤 착하고.
문제는 그런 마빡 아가씨만 믿기엔 걸린 장비들의 가치가 너무 크단 거지.
지하철 벽을 파고 돌덩이를 꺼내는 것이라 소수로 처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필연적으로 다른 사람들도 알게 될 텐데, 잡음이 날 게 뻔하다. 그렇게 고민이 깊어지는 가운데...
-RRRR
스마트폰이 울린다. 전화번호를 보니 마빡 아가씨네. 거참, 호랑이도 자기 말하면 온다더니... 전화를 받자 익숙한 목소리가 들린다.
-여보세요?
“넵, 한새벽입니다!”
내가 씩씩하게 대답하자 수화기에서 아가씨의 웃음소리가 흘러나다.
-하하, 목소리 들어보니 잘 지낸 것 같네요. 요즘, 뭐하고 지내나요? 나온 지 대충 꽤 됐는데.
“음, 개인적으로 마법을 연습하고...
-딱히 해야할 일 없죠?
정곡을 찌르는 질문, 그에 난 머릴 긁적였다.
“해야할 일은... 없죠. 미르도 휴학이고. 알바도 없고.”
부지런히 <강령술>을 이루는 룬문자를 만드는 연습을 할 예정이지만 강제성이 있는 건 아니다. 그런 내 대꾸를 예상했다는 듯, 수화기에서 곧바로 아가씨의 제안이 흘러나왔다.
-그럼, 나랑 같이 일 좀 하러 갈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