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화. 린민의 지상락원에 오신것을 환영합네다! >
1.
아가씨의 같이 일하러 가자는 말
그에 난 당연하게 ‘YES’를 외쳤다. 재벌 3세 친구가 ‘같이 일 허쉴?’하는데 당연히 일단 ‘ㅇㅋ’ 해야지. 뭐인지 모르겠지만 최소한 쪽박은 아닐 테니 말이야. 게다가 알바도 끊겨서 당분간 일거리도 없었고. 어찌됐든 그렇게 아무런 생각 없이 승낙한 나는...
“와, 진짜 구리네요.”
“동감.”
고급스런 검정색 SUV 승합차 안, 창밖에 펼쳐지는 풍광-재개발이 진행되다만 8, 90년대 경기도 지방 도시 같은 모습을 보며 소감을 말하는 우리의 마빡 아가씨. 그 옆에 앉은 양우영도 동의한다는 듯이 고갤 끄덕인다. 그에 난 어깰 으쓱였다.
“북한은... 아니, 북쪽이 원래 그렇죠. 뭐. 투자가 전혀 안 되어있으니까.”
한새벽의 고향인 ‘북쪽’을 방문했다.
다름 아니라, 이게 바로 아가씨께서 내게 부탁한 일이었다. ‘혹시 북쪽에 가려는데 안내해줄 수 있냐?’고 하시더라고? 뜬금없이 그 개 같은 곳에 왜 가시려고 하는 지 질문하니까, 이번 미르 사태로 인한 썰-그룹이 습득한 대한민국 정치권 내부의 ‘고~오급 정보’를 내게 풀어주셨다.
한 마디로 ‘오크들의 지상 진출’이 거의 확실시 될 것 같다는 거였다.
남쪽에 풀어주는 것은 너무 정치적 부담이 심하니 사실상 방치된 북쪽에 풀어주게 될 것 같은데, 그에 따라서 오크들을 활용할 방법 또한 언급되었고 한다. 한 마디로 양우영이 언젠간 될 거라고 예상한 ‘이종족 용병을 이용한 북한 개척’이 실현될 것 같다는 게 주 내용이었지.
그러니까 이번 방문은 본격적인 ‘북쪽 개척 사업’ 전의 사전조사를 같은 거다.
그렇게 ‘사업가 양우영’과 ‘대주주 남궁진아’, 그리고 ‘현지 안내인 나’와 ‘아가씨의 수행원 7명’까지 해서 총 10명이 북쪽을 방문하게 됐다. 솔직히, 나야 겉만 북쪽 고아지 속 알맹이는 남한 토박이 30대 아조씨라 북쪽의 사정을 잘 모르지만...
우리 고아원 아이들은 다르거든.
“자, 다 왔어요! 여기에요!”
그렇게 개성을 진입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우리는 ‘한마음 보육원’에 도착했다. 이번이 두 번째 방문, 하루 전에 ‘격리가 풀려서 밖으로 나왔는데, 친구랑 한 번 방문하겠다.’라고 연락을 해뒀기에 차량이 운동장에 들어서자마자 애들이 마중을 나온다.
“새벽이 형!”
“새벽 오빠!”
“넵! 한새벽입니다. 잘 지났나요? 여러분?”
차량이 운동장에 들어서고 내가 차에서 내리자 반겨주는 아이들, 이거 이 세상에 떨어지기 전 북돼지를 보자마자 감격하는 사람들 같네. 이전처럼 대놓고 경계하거나 껄끄러워하는 것과는 다른 분위기다. 저번에 방문했을 때 열심히 뛴 보람 있구만!
그렇게 내가 애들의 환영인사를 받는 사이-,
“...흠, 그래도 여긴 괜찮네요.”
뒤이어서 우리의 마빡 아가씨도 도도하게 차량에서 내린다.
사복이지만 ‘높으신 분’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고아한 분위기, 그에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주춤거리며 물러서는 가운데 난 다른 애들을 헤치며 다가오는 보육원의 대장격 아이들-도시아와 김철수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시아양! 잘 있었나요? 철수도 다행히 잘 움직이네요?”
“어, 뭐. 잘 있지. 근데, 저 분은...”
“아, 여기는...”
다가온 도시아에게 우리 마빡 아가씨를 소개하려고 하는데, 마빡 아가씨가 살짝 손을 들더니 도시아에게 우아하게 고갤 까닥인다.
“남궁진아라고 해요. 새벽이의 친구죠.”
“어, 나 저 누나 알아! Tv에서 봤어! 그... 도미네이터!”
초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보육원 남자 아이의 외침, 그에 마빡 아가씨는 그쪽을 향해 웃으며 고갤 끄덕였다.
“하하, 이번에 어쩌다보니 그런 별명이 붙게 되었죠.”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생긋 웃으며 대꾸하는 아가씨, 아주 상큼해 보이는 미소지만... 가까이 붙어서 지낸 내겐 그 미소의 실체가 보인다. 좋아서 죽네, 죽어.
도미네이터(Dominator)
이번 미르 사태에서 우리 마빡 아가씨에게 붙은 별명이다. 이종족 문화 교류부 아이들을 구한 뒤, 미르 중앙 행정처로 갈 때까지 스마트폰으로 영상을 찍은 이들이 있었다. 그리고, 사태가 종료된 뒤 그 영상이 인터넷에 퍼졌다.
‘서예린이 재규어 전사들을 회치는 것’과 ‘아가씨가 자동차를 움직이는 것’까지 모두.
전자 기기를 자유자재로 조종하는 모습에, 아가씨가 높으신 재벌가 자제라는 사실이 퍼지면서 ‘지배자’라는 되게 거창한 별명이 붙었다.
서예린?
걔는 ‘여덟 칼날의 여왕(Queen of Eight Blade)’라는 개쩌는 허세 별명이 붙었어. 근데, 그렇게 불려도 될 정도로 영상이 멋있게 찍혔더라. 이번에 미국 스포츠 웨어 회사에 모델 제의가 와서 지금 미국 갔다.
나? 난 그런 거 없다.
그 영상에서 나는 편집됐더라고... 뭐, 원래부터 이런 일에 안 끼어들려고 했으니까 별 상관없다! 괜히 유명해져봤자 신변만 위험해지니까! 15년 전에 황금 자두를 먹고 행방불명된 할아버지만 봐도 알 수 있잖아?
...솔직히, 말하면 좀 배알이 꼴려.
아니, 서예린 만큼은 아니지만 나도 많이 활약했는데?! 왜 난 없냐? 좀 추잡하긴 하지만 <시체 부패>로 연막 안쳤으면 다 죽었을 것이거든? 아무리 눈에 띄고 싶진 않지만 멋있는 별명 정도는... 아니, 지금은 약하니 참는다! 하지만, 언젠간 보여주마. 한새벽, 더 ‘포이즌 마스터’를!
...아니, 별명이 너무 구린데. 좀 멋있는 독마법사 별명 없나?
“아, 넵! 도시아라고 합니다. 새벽이랑 친구입니다!”
“김철수라고 합니다.”
그렇게 내가 배알 꼴려하는 사이, 도시아와 김철수는 높으신 분을 보는 것처럼 쩔쩔 매며 아가씨에게 공손하게 고갤 숙인다. 이어서 두 사람은 뒤이어서 내린 사람에게 시선을 보냈다. 사복차림의 남성, 단정하지만 묘하게 양아치스러운 느낌의 ‘양우영’을 향해.
그에 양씨가 활짝 웃으며 악수를 하자는 듯이 손을 뻗는다.
“양우영이라고 합니다. 새벽이와 같은 동아리의 회장이죠.”
“아, 네.”
그에 도시아도 쮸뼛거리면서도 손을 잡는다. 도시아랑 양우영, 똑같이 일찐 양아치 스타일이여서 잘 어울리네. 이어서 양씨가 김철수와도 악수하는 도중-,
“우와, 저게 뭐야?”
“트럭?”
보육원 운동장에 커다란 컨테이너 트럭이 들어선다. 그에 우리가 타고 온 SUV차량에서 두 명의 검정색 정장+선글라스의 과묵해 보이는 수행원들이 내리더니 재빠리 그 트럭을 운동장 한쪽으로 인도한다.
그 심상찮은 모습에 은근슬쩍 날 흘겨보는 도시아
도대체 이게 뭐냐는 듯한 표정이다. ‘이번에 퇴원했는데, 친구랑 같이 방문하겠다.’고만 전화했으니까. 이런 심상치 않은 분들이랑 오게 될 줄은 몰랐겠지. 그 옆에 다가가서 난 작게 속삭였다.
“한국 재계 서열 17위, DK그룹 재벌가 자제.”
“...?!”
“남궁진아라고 한 번 검색해 봐요. 이번에 미르에 관한 영상이 널리 퍼졌으니, 북한 인트라넷망에서도 찾을 수 있을 걸요.”
그에 도시아의 두 눈이 휘둥그레 벌어진다. 재벌가 사람이라고 하니 쇼크를 받은 모습이다. 거참, 실상 같이 지내보면 허세충만한 마빡이 인데 말이지. 어쨌든 모든 사람의 시선이 컨테이너로 쏠린 가운데-,
“자, 아직 식사들 안 드셨죠? 슬슬 점심시간이고 배도 고프니까...”
아가씨는 말에 맞춰서 수행원이 수신호를 보내자 트럭의 컨테이너 사이드가 올라가며 내부가 드러난다.
“우, 우와!”
“뭐... 뭐야?”
전문적인 요리기구가 있는 차량 내부, 거기엔 요리복을 입은 5명이 대기해 있었다.
아가씨가 끌고 온 7명의 수행원, 그 중 우리와 같은 SUV차량을 탄 2명은 수행원이지만 뒤에 커다란 밥차 트럭을 타고 온 나머지 5명은 출장 요리사다. 저번에 통화하면서 ‘보육원 애들도 당신처럼 밥 먹는 거 좋아하나요?’하기에 좋아한다고 얘기했는데 저런 걸 끌고 올 줄은 나도 몰랐어.
“일단, 밥부터 먹죠.”
그렇게 반색하는 애들을 향해 아가씨는 빙긋 웃었다.
2.
마빡 아가씨가 대접한 식사는 성대했다.
유별난 밥차의 크기에서부터 알 수 있듯, 요리는 평범한 뷔페가 아니라 ‘중식 코스 요리’였다. 나도 그리고 60여명의 아이들도 맛있게 먹었지. 나는 그래도 이곳에 떨어지기 전에 먹어봤는데, 반응을 보니 아이들은 전부 처음 먹는 듯 했다. 저번에 통닭 사왔을 때보다도 훨씬 더 좋아하더라고.
이어서 아가씨는 선물이라며 가져온 노트북을 아이들에게 뿌렸다.
이번에 DK그룹에서 자기 이름으로 런칭되는 거라나? 그러면서 수행원들이 ‘나중에 봉사활동 한 거로 기사 낸다.’고 사진을 찰칵찰칵 찍더라. 덤으로 나도 노트북 하나 달라고 해서 받았다.
어쨌든 그렇게 보육원 아이들이 기뻐하다 못해 행복사 직전까지 만들어주신 뒤, 아가씨와 양우영은 내 안내를 받아 원장실로 향했다.
“...”
“...”
원장실의 소파, 가장 상석에 마빡 아가씨가 앉아있고 그 오른쪽엔 나와 양우영이, 왼쪽엔 도시아와 김철수 두 사람이 앉았다. 이곳의 터줏대감은 철수와 시아이건만 자리 배치로 보니 태도로 보나 마빡이가 주인인 것 같다. 하긴, 갑자기 저런 아가씨가 오면 긴장할 만하지!
그렇게 바짝 굳은 두 사람-시와 철수에게 아가씨는 빙긋 웃는다.
“어때요? 오늘 괜찮았나요?”
“아! 네! 감사합니다!”
막 전입한 이등병처럼 도시아가 빠릿빠릿하게 대답하자 아가씨는 별 것 아니라는 듯이 고갤 젓는다.
“하하. 미르 사태 때, 제가 새벽이에게 빚진 거에 비하면 별 것 아니죠.”
“...예? 새벽이가요?”
“네. 사실, 별로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지 이번에 새벽이가 저보다 더 활약했거든요. 새벽이가 아니었으면 아마 전 죽었을 거예요. 그 빚을 갚으려면 아직 멀었죠.”
웬일로 기특한 말을 하는 마빡 아가씨, 그에 김철수와 도시아 모두 놀란 표정으로 날 바라본다. 흐음! 그럼! 나도 알려지진 않았지만 한 가락 한다 이 말이야! 아니, 나 아니었다면 미르에 있는 사람은 모두 죽었다고?
괜히, ‘붕~’ 뜨는 느낌에 헛기침하며 가슴을 쫙 펴고 당당하게 있는데, 양우영이 박수를 ‘탁! 탁!’ 치며 시선을 끌었다.
“자, 자! 서로 칭찬은 그만하고 사업 이야기부터 합시다!”
“음, 네.”
고갤 끄덕이는 아가씨, 사업 이야기란 말에 김철수와 도시아가 물음표를 띄운 듯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마빡 아가씨는 천천히 마시던 음료수를 내려놓곤 입을 열었다.
“사실, 저희가 이번에 여기 온 건, 단순한 친목을 위해서가 아니랍니다. ‘사업’에 관해 사전조사 겸해서 왔죠.”
“사전조사... 말입니까? 아니, 잠시만요. 사업이라니요? 설마, 남한 회사가 여기로 진출한다는 겁니까?”
두 눈을 부릅뜨는 김철수의 질문에 아가씨는 부드럽게 고갤 끄덕인다.
“네, 예정대로라면요.”
“...”
“DK그룹뿐만 아니라 몇몇 다른 남한의 기업들도 이곳에 올 거예요.”
이제 고등학생 나이 대의 아이에게선 나올 수 없는 말, 하지만 재벌가 자제라는 신분이 그 말에 신뢰를 가지게 했다. 두 사람이 잘 모르는... 아니, 사실 나도 잘 모른다. 어찌됐든 양우영만 빼고 다들 모르는 눈치였기에 아가씨는 설명하듯 차분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14년 전, 남북한이 통일이 됐을 때 당장 나라를 합치면 답이 없었죠. 그래서 남한은 ‘분리론’을 기반으로 통일하려고 했어요. 북한을 봉쇄하고 30~40년가량의 장기간 계획개발로 북한을 남한의 60%정도까지 역량을 끌어올리고 그 때서야 나라를 합치려 계획했죠.”
“...”
“인력 기반 기업들을 북쪽에 배정하고, ‘임금’을 주면 급격하게 물가가 오를 테니 대신에 정부에서 식량, 물자 등으로 배급해서 물가를 잡고... 알다시피 그 당시엔 남한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막장이었기에 시도조차 못했죠.”
“그럼 설마...!?”
기대감에 말끝을 흘리는 도시아, 그에 아가씨는 음료수를 마시곤 빙긋 웃으며 고갤 끄덕였다.
“형식적인 통일로부터 14년이 지나고 어느 정도 남한이 안정세가 됐으니 정치권에선 슬슬 멈춰뒀던 북한의 계획 개발을 시작하려고 생각 중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