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화. 린민의 지상락원에 오신것을 환영합네다! >
‘통일을 하지 않았다면 모르겠지만, 통일을 하긴 했으니 언제까지 이렇게 북한을 둘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요.’라고 첨언하곤 음료수를 홀짝이는 마빡 아가씨. 그에 시아와 철수는 감격한 눈치였다. 하긴, 감동할 만도 하지. 이제 북쪽도 희망이 생긴다는 거니까.
이곳, 북쪽 사람들은 지금도 ‘투표권’과 ‘이동권’이 없는 2등 국민이다.
믿기 힘들지만 진짜야. 솔직히, 인권 같은 것도 여유가 있어야 챙기는 거지 미궁 사태 때는 전 세계가 그냥 생존이 최우선이었다고 하니까. 그리고 애초부터 북한 정권이 하던 것이라서 별 타격도 없을 것이고.
한새벽이야 <마력 각성>이라는 로또에 당첨되면서 이곳에서 벗어났지만... 평범한 아이들은 이 북한이란 늪에서 벗어나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을 거다.
“너무 희망을 갖진 마. 8~9할은 실패로 끝날 테니까.”
그렇게 살짝 감동에 젖은 두 아이들에게 양우영이 초를 친다.
비아냥대는 듯한 그 대꾸에 약간 사나워진 두 사람의 시선이 양우영을 향하고, 양씨는 음료수를 홀짝이곤 특유의 양아치스런 썩소를 지으며 말을 이어나간다.
“14년 동안, 나라가 반쯤 방치되면서 안 그래도 열약했던 인프라는 완전히 망가졌어. 그뿐이냐? 좀 여유가 생기면서 한국의 통일을 바라지 않는 이들 또한 많아졌지. 이전과는 달리 중국과 러시아도 한국이 북한을 제대로 삼키게 두지 않을 거야.”
“...”
“이미, 러시아와 중국의 사주를 받은 자칭 ‘독립주의자’들은 북한사람들의 열등감과 시기감을 자극하면서 ‘남한이 우리를 착취하기만 하고 내버려뒀다. 그러니 독립해서 우리끼리 잘 먹고 잘 살자.’고 외치고 있지. 감정에 치우친 많은 사람들이 그에 솔깃해하고 있고.”
“...”
“외부의 방해 없이 일을 진행해도 성공할까 말까하는데, 이런 게 방해물이 산재해 있지. 실패할 확률이 훠~얼씬 높아.
“그럼 당신은 왜 여기에 왔죠?”
연이은 양우영의 팩폭에 도시아가 잔뜩 날이 선 채 말하자 양우영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사업을 하려고 왔지. 이번 일이 성공하건, 실패하건 돈을 벌 수 있는 사업을.”
“이 뭔...”
“너무 미워하진 마! 내가 하려는 사업은 이번 ‘북한 개발’에 분명 도움이 되는 거니까. 설명하자면... PMC 그러니까 용병업이지! 정부의 하청을 받아서 그렇게 북한 개발을 막는 놈들을 쏴 죽이는 일! 그런데, 거기에 이종족을 곁들인! 하하하핳!”
“좀 닥치세요.”
3류 악당 같은 웃음을 흘리며 좋아하는 양우영, 그에 아가씨는 작게 한숨을 내뱉으며 두 사람에게 사과한 후 추가적으로 순화해서 설명을 이어나갔다.
이번 미르 사태 해결에 오크들이 큰 역할을 했고 그 대가로 지상 거주권을 허락할 것 같은데 그곳이 북한이 될 것 같다는 것, 그런 오크들을 활용하는 방법으로 용병으로 고용하지는 방안이 있다는 것... 그 설명을 다 듣고 난 뒤, 철수는 좀 납득된다는 표정으로 고갤 끄덕였다.
“한 마디로 북한의 저항세력을 싹 다 정리한다는 거군요. 오크들을 이용해서.”
“네, 그렇게 될 것 같아요. 오크들은 지상 진출을 위해서 어느 정도 피를 흘릴 각오를 하고 있으니까요. 군인을 동원하는 것보다 훨씬 더 싸죠.”
“...피가 무진장 흐르겠군요.”
한숨을 내뱉는 철수, 그에 내 옆에 있는 양우영이 씨익 웃는다.
“하지만, 거지같은 삶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흘려야만 하는 피지.”
“...”
“그나마 남한의 계획이 북한 사람들에겐 ‘최선의 선택’이야. 짱깨 새끼들과 러시아 놈들이 너희들을 진짜 잘 살게 해줄 것 같아? 아니지! 저~얼대 아니야! 그 놈들은 말만 거창하게 하지 너희들을 이용하려고 해. ‘최소한의 배려’도 없이. 알 잖아.”
“그쪽이 하는 말은 구구절절 맞지만 되게 재수가 없군요.”
싸늘한 김철수의 대꾸, 그에 나도 싸가지 없는 양우영의 등짝을 한 번 후려치고 두 사람에게 사죄의 표시로 고갤 꾸벅 숙였다.
“미안해요. 우리 부장이 좀 이상해졌네요. 아니, 도대체 왜 이렇게 어그로를 끄실까요? 좀 예의를 갖춰서 말하면 안 되나요?”
“하하, 미안미안. 기쁘면 ‘예의’를 차리기 힘들거든. 근데, 너무 기뻐서 어쩔 수가 없어! 캬, 북한 진출. 그리고 이종족 용병 계획이 이렇게 흘러가다니! 흐흐흫!”
허릴 숙이며 실실 웃는 양우영, 진짜 이 인간도 좀 또라이야. 아니, 애초에 나나 아가씨처럼 <기억 소거>를 받지 않았다는 점에서 범상치 않긴 했지. 양씨가 도저히 말을 이어나갈 기색이 아니기에, 마빡 아가씨는 작게 한숨을 내뱉곤 입을 열었다.
“아무튼, 이런 사업에 대한 사전조사로 여러분들의 평가를 듣고 싶어서 왔어요.”
“저희의 평가를요?”
“네, 새벽이가 여러분들은 북한의 밑바닥 생리나 군벌에 대해 아주 잘 알 거라고 했거든요. 추가로 북한 노동자들의 행동과 사고방식도 알아볼 수 있을 거라고도 했죠. 추가로 자기 친구들이 똘똘하니 고오급 인력이니 공장 취직시키면 좋을 거라고도 했고.”
“음음, 그렇죠. 시아와 철수, 매우 똑똑해요. 그럼그럼!”
실제로 저런 추천도 했다. 몇 번 마주친 것만으로도 똘똘하단 건 알 수 있지. 그렇게 내가 고갤 끄덕이자 철수는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아가씨를 향해 입을 열었다.
“근데, 저희 의견으로 괜찮습니까? 솔직히, 저희는 다른 곳의 사정은 잘 모릅니다. 이곳의 사정만 조금 알뿐이죠. 그리고 무엇보다, 밑바닥입니다.”
“상관없어요. 오히려 ‘밑바닥’인 정보와 시점일수록 좋아요. 저흰 위쪽의 대략적인 정보는 구할 수 있거든요.”
기다렸다는 듯이 마빡 아가씨가 대답하자 김철수는 고갤 끄덕였다.
“좋습니다, 그럼...”
3.
그렇게 시작된 회의는 마라톤으로 새벽 1시까지 이어졌다.
우린 계속 원장실에서 떠들고만 있던 게 아니었다. 우리 보육원의 경계와 무장 상태를 보여준다며 철수는 보육원 ‘내부의 무기고’와 ‘경계 초소’, 추가로 보육원 밖으로 나가서 ‘인근의 논밭’도 보여줬다.
무장상태, 아이들의 교육, 생활...
양우영과 마빡 아가씨는 광범위한 질문을 쏟아냈고 시아와 철수는 성실히 대답했다. 결국, 새벽 늦은 시각까지 이어져서야 회의를 끝낼 수 있었다. 그렇게 철수와 시아 두 사람이 나간 뒤, 우리가 내린 결론은...
“상상을 초월하네.”
그리 좋지 않았다. 아니, 쇼크 먹었다.
“고작 보육원이 이런 무장이라니. 이런 정도가 아니면 다른 놈에게 털린다니... 그래도 한 달에 1~2무리씩 강도가 들어? 덕분에 애들 대부분이 살인 경험이 있어? 근데, 이런 치안이 북한에서 굉장히 좋은 편이야!?”
오늘 들었던 이야기를 중얼거리며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짓는 양우영. 사실, 나도 오늘 아이들에게서 저 이야기를 들으며 좀 쇼크 먹었다. 근데, 더 경악할 사실은...
그나마 이곳 ‘개성’은 남한의 관리 덕분에 평화로운 편이라는 거다.
밀려올 수 있는 북한의 난민을 막기 위해서 이곳을 지배하는 군벌에게 남한이 많은 지원을 몰아줬고, 덕분에 한 집단이 완벽하게 점령하여 분쟁이 그다지 없다고. 게다가 삶의 질도 더 낫다고 했다.
북한의 나머지 지역?
거긴, 더 치열하다고 한다. 남한을 위협할 수 있는 미사일 같은 것은 전량 폐기처분했지만, 김씨 일가의 선군정치 덕분에 총기나 구형 전차 같은 것은 아직도 넘쳐났고, 그걸 바탕으로 군벌 휘하의 조폭들은 얼마 없는 북한의 주요 거점들-
‘광산과 산업시설’
‘시베리아와 연결된 철도선’
‘남한의 지원이 들어오는 항만’
‘농사가 잘 지어지는 평야 지대’
을 얻기 위한 소리 없는 전쟁을 이어가고 있다고 한다. 당연히, 그 과정에서 사람들의 삶은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졌고 마약 또한 대량으로 풀렸다고 한다.
그렇게 양우영이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중얼거리자 마빡 아가씨도 한숨을 내뱉었다.
“교육 상태도 생각보다 심각해요. 아무리 노동자라고 해도 어느 정도는 지식이 있어야 하건만 초등학교도 제대로 안 간다니...”
당연히, 상황이 이런데 교육 같은 게 제대로 될 리가 없다.
보육원 아이들은 학교에 가지 않고 인근에 논밭-정확히 말하면 한새벽이 구해놓은 땅에서 심어놓은 감자와 고구마, 고추밭과 채소밭에서 일하고 있었다. 고아원 아이들뿐만 아니라 부모가 있는 애들도 학교에 잘 가지 않는다고.
“한글도 익히지 않은 아이들이 많다는 게 좀 충격이네요. 통일 전, 북한은 99% 문해력을 갖췄는데 이렇게 퇴보하다니 믿기 힘들어요.”
“엥? 그거 북한 정권의 거짓말 아닌가요?”
내 질문에 마빡 아가씨는 고갤 젓는다.
“아니에요. 전체주의 국가라서 사상교육, 체제 선전선동에 글이 필수적이거든요. 그래서 문자만큼은 빡세게 교육시켰어요. 이건 거의 모든 면에서 퇴보에요! 게다가 맙소사! 애들이 될 수 있는 직업이란 게... 노동자, 광부, 농부, 매춘부, 조폭, 군인?”
운 좋게 얼마 없는 공장의 ‘노동자’가 되거나, 여자 애들은 얼마 없는 남쪽 사람들이나 조폭 상대하는 ‘매춘부’가 되거나, 이렇게 ‘농부’처럼 살아가거나, 북쪽 희토류 광산에서 일하는 ‘광부’가 되거나, 마지막으로 이들을 뜯어먹는 ‘조폭’ 혹은 군벌의 ‘군인’이 되거나.
이 여섯 가지 직종이 철수가 설명한 북한 아이들의 미래였다.
처음 들었을 땐, 과장되게 말한다고 생각했다. 의사나 경찰, 공무원... 아무리 막장 국가라도 꼭 필요한 직업들이 없으니까. 하지만, 애들 말을 들어보니 그런 걸 배울 수 있는 곳도 없고 혹여 있어도 ‘군벌 인맥’이 없는 이상 되는 게 불가능하다고. 참, 알면 알수록 밑바닥이었다.
고갤 절래절래 저으며 아가씨는 한숨을 내뱉었다.
“이곳에 공장이 들어서도 교육 수준을 보니 노동자로 써먹기는 힘들어요. 몇 개월은 꼬박 교육을 시켜야 하겠죠. 그렇게 해서도 성공하리란 보장도 없거니와...”
“없거니와?”
“문제는 군벌이에요.”
말과 함께 마빡 아가씨는 스마트폰으로 인터넷과 북한 전용 인트라넷을 동시에 켰다. 그리곤 위키의 검색 내용을 보며 미간을 찡그렸다.
“인터넷이나 북쪽 지역 전용의 인트라넷에도 딱히 군벌에 관한 건 없어요. 조폭에 관한 것만 있을 뿐. 직접 와보지 않았으면 엿 될 뻔 했어.”
“뭐, 인터넷 공간이 검문·검열이 많은 건 상식 아니겠어?”
아가씨의 말에 빙긋 웃으며 대꾸한 양우영은 음료수를 홀짝이곤 입을 열었다.
“군벌들은 한국 정부의 아웃소싱-일종의 통치 위임장을 받은 놈들이야. 북한에 직접 통치하는 건, 너무 위험하니까 순종적인 북한 군인들에게 권력을 준 거지.”
“군인에게 권력이라니 정말 생각이...”
“어쩔 수 없었다고 해. 김씨 정권은 선군정치라서 해체해도 군인의 세력이 워낙 강했고, 해고된 군인들이 여기서 뭐하고 먹고 살겠어? 끽해야 주먹질이지. 그러니 혼란을 힘으로 찍어 누르기 위해선 남은 군인에게 힘을 실어준거고. 결과는 이 꼴이지만.”
태연하게 대꾸하는 양우영, 북한 지역에서 PMC를 하려던 인간답게 꽤나 잘 알고 있었다. 그런 양우영의 대꾸에 아가씨는 혹시나 하는 표정으로 바라본다.
“여유로운 걸 보니, 이걸 해결 방법이 있나 봐요?”
“아니, 없어. 생각만 해도 막막해.”
“...”
“그걸 내가 왜 고민해? 그런 건, 정부의 높으신 분들이 고민해야지.”
양우영은 소파 팔걸이에 올려놓은 손으로 턱을 괸 채, 발까지 꼰 자세를 취하며 특유의 양아치스런 웃음을 흘린다.
“그래도 내 소감을 말하자면 이 정도면 나름 선방한 거야. 진짜 내전 같은 상황은 터지지 않았고, 기껏해야 그 아래의 조폭들만 싸우고 있으니까. 근데, 문제는 이제 그 군벌들이 한국 정부의 명령대로 서서히 해체되어야 하는데, 순순히 해체되려고 할까?”
“...으음.”
“말을 안들을 확률이 높단 거지. 사실상 한 몸통인 조폭들이 날뛸 확률이 높고. 그렇게 말을 안 들으면 동원할 군대가 바로 우리 PMC지.”
남은 손으로 음료수를 기울이며 양우영은 어깨를 으쓱였다.
“알다시피 지금 중국이 다시 외부로 영향력을 떨치고 있잖아? 중국이 후원하고 있는 것이 분명한 ‘북한 독립운동가’도 슬슬 활동하고 있고, 이번에 들어보니까 엿 같은 ‘백두혈통’이 다시 나타났다는 소문도 아래쪽에서 돌고 있어.”
“...”
“평범한 조폭과 군벌이라면 돈이 나오는 구석인 공장은 안 건드리는 게 정상이지만, 알다시피 중국의 푸쉬를 받는 분리주의자들은 그런 거 신경 안 쓸 거야. 오히려 북한에 진출한 남한의 사업체들을 고꾸라트리려고 하겠지. 남한이 북한을 흡수하지 못하도록.”
“역시, 북한에서 사업하는 건 거의 자살행위군요.”
“맞아. 엄청 위험하겠지.”
그 대답에 마빡 아가씨는 스마트폰을 보면서 신경질적으로 엄지손톱을 뜯는다.
“애미 터진 짱깨새끼들. 진짜 도움이 안 돼. 기술 훔쳐가, 사업도 방해해, 통일도 태클 걸어...”
“그게 당연한 거야.”
바득바득 이를 가는 아가씨와는 달리 양우영은 여유롭기 그지없는 태도로 싱긋 웃는다.
“옆 나라가 부강해지는 건, 그 어떤 나라나 싫어하니까. 어찌됐든 북한에 제조업 같은 사업하는 건, 하이 리스크 로우 리턴이야. 솔직히, 지금 나라에서 북한 흡수하려고 하는 건 지금까지 매몰 비용 때문에 눈이 벌게져서 하는 거지.”
“...”
“그러니까 그냥, 우리 곱게 용병 관련 사업이나... 음? 아, 정 제조업 관련 사업을 할 거라면 ‘하는 척’만 하는 건 어때?”
좋은 생각이 났다는 듯이 손가락을 튕기며 반색하는 양우영. 도대체 뭔 소리지? 나와 아가씨의 시선이 향하자 양우영씨는 실실 웃으며 작게 속삭였다.
“20년 전, 북한의 개성공단에 입주한 기업의 60% 이상은 적자였다고 해. 폐쇄되기 전까지 기업이 낸 적자를 순전히 국가 세금으로 보전하고 있었지. 이번에도 북한에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서 보조금을 풀 걸? 나야 이런 걸 알아도 손만 빨겠지만, 우리 재벌 아가씨라면 용돈...”
“아니, 시발?! 내가 사기꾼인 줄 알아욧?!”