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자를 위한 연중작은 없다-132화 (132/350)

< 27화. 린민의 지상락원에 오신것을 환영합네다! >

탁자를 ‘쾅!’ 내리치며 전신에서 스파크를 ‘빠직! 빠직!’ 흘리는 아가씨, 그 박력에 양우영은 찔끔한 표정으로 손을 내저었다.

“아니, 난 돈을 벌 수단을 말한 거야. 조언을 한 거라고.”

“이전 북한에 진출한 개성 공단의 허점 정돈 나도 알아요! 애초에 북한에서 사업하려면 뭐가 필요한지 달달 외웠으니까. 내가 원하는 건, ‘명예’에 가깝죠. 그룹의 파이를 늘리고, 실력을 입증하고, 마지막엔 왕좌를 물려받거나 혹은 만드는 것.”

살짝 거칠어진 숨을 내뱉은 후, 마빡 아가씨는 탁자를 내리친 주먹으로 살짝 흐트러진 밤색 머리칼을 쓸어 올리며 대답한다.

“그런 거론 도움이 전혀 안 되고, 오히려 그룹 내에서 약점만 잡혀요. 난 그런 거 안 해요.”

“흐음. 역시, 재벌가 생각은 우리완 다르네.”

고갤 절레절레 젓는 양우영, 그에 나도 고갤 끄덕여 동의했다.

“의외네요. 제가 아는 오너 가족들은 딴 주머니 많이 차던데 말이죠? 지분 소유 100%의 개인 회사 같은 거 세운 후, 기업에 반 강제로 납품하게 만드는...”

이어지는 내 대꾸에 마빡 아가씨는 피식 웃는다.

“아, 그건 해요. 다른 놈들도 하는 일종의 ‘관행’ 같은 거니까. 그리고, 불법의 경계가 모호하고.”

“...”

“그래도 전 그룹의 다른 녀석들보단 좀 양심적으로 하죠. 제 회사에서 직접 만든 물품을 합리적인 가격에 납품하니까! 다른데서 물건 떼 오고, 거기에 20~30% 추가 마진을 붙여서 파는 짓은 안 해.”

음, 진짜 양심적이긴 하네. 저 정도면 천사지. 그렇게 내가 고갤 끄덕이자 마빡 아가씨는 팔짱을 끼곤 고뇌에 잠긴 표정으로 이해가 안 된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근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해.”

“뭐가요?”

“이런 개척을 하는 것 자체가 말이야. 보면 볼수록 너무 손해야.”

다시 엄지손톱을 질겅이며 아가씨는 계속 혼잣말을 이어나간다.

“최소 40년 이상의 시간과 재정적자 상태라는 출혈을 각오하고 투자해야 하는 대 사업. 그런데도 성공할지 확신도 없을뿐더러, 그렇게 성공하더라도 그럴 만한 이득이 있는 것도 아니야. 국내외의 반대세력이 그렇게 할 것을 가만히 두고 보지도 않을 걸 보면 실패할 확률이 높아.”

“...”

“이번 정부는 나름 합리적으로 움직인다고 할아버지가 그랬지. 아무리 매몰 비용이 크더라도... 손절하는 게 낫다면 손절할 과단성을 가졌을 거야. 그런데도 북한을 굳이 꾸역꾸역 먹으려고 하고 있다니? 분명, 내가 모르는 뭔가가 있어.”

강박증 환자처럼 고민하는 마빡 아가씨, 좀 상태가 안 좋아 보이기에 난 가볍게 박수를 치며 이목을 끌고 입을 열었다.

“자자! 여기서 고민해봤자 답이 안 나온답니다? 그런 정치권 고민은 남쪽에 가셔서 좀 더 조사해보시고, 여기선 여기서 할 수 있는 일을 하죠.”

“...하아, 맞는 말이야. 여기서 고민해봤자 답은 안 나와.”

내 말을 듣곤 천천히 고갤 끄덕이며 숨을 크게 내뱉는 아가씨, 이어서 양우영과 내일은 뭘 봐야 할지 논의하고 각자 배정 받은 방으로 자러 들어가셨다. 그 뒤, 난 혼자 원장실에 남아 한 쪽 유리벽 밖을 너머를 응시했다.

저 멀리, 개성 도심의 빛이 보인다.

서울의 야경과 비교하면 너무나도 초라한 불빛이 이곳이 남한과는 다른 곳이란 걸 실감나게 한다. 오늘 시아와 철수에게서 들은 대로라면... 아주 개 같은 동네겠지.

조용히 전자 담배를 품 안에서 꺼낸 후, 전원을 켜고 한 모금 빨아들였다.

‘서서히 차오르는 충동’, 이걸 해결할 곳으로 나쁘지 않을 것 같다. 그래, 소말리아 같은 분쟁 지역이나 진짜 24시간 투쟁이 벌어지는 미궁으로 기어들어가는 것보단 낫지. 말도 통하고, 가끔씩 여의나루역을 방문해서 룬 문자의 형상을 확인하기에도 좋고...

“쓰읍, 하아아...”

학습된 이성의 거부감, 그리고 추악한 본성의 즐거움. 두 개가 기묘하게 섞인 느낌에 한숨을 내쉰 후, 난 소파에 털썩 앉아 난 천천히 여의나루역에서 봤었던 룬 문자를 떠올리며 명상에 빠져들었다.

4.

다음날, 우리 일행은 일찍 아침 식사를 마치고 차를 타고 개성 시내로 향했다.

관광은 아니고 현지답사였다. 교차검증이라고 해야 하나? 양우영과 마빡 아가씨는 실무자처럼 주위를 둘러보고, 또 장마당에 들어가서 물건도 사보았다. 철수가 ‘거리에서도 강도를 조심해야 한다.’고 했는데, 아가씨가 워낙 급이 다른 게 보이니 건들지 않더라.

어쨌든 그렇게 돌아다니면서 우리는 어제 들었던 말이 사실이란 걸 ‘절실히’ 느꼈다.

터미널 근처는 외국인이나 남한 사람이 방문하기에 나름 신경을 쓴 거였고, 진짜 북한주민들이 살아가는 곳은 완전히 엉망이었다. 좀비처럼 휘청휘청 돌아다니는 마약 중독자들의 모습에 아가씨는 한숨만 푹푹 내뱉었다.

그렇게 개성 시내를 한 번 쭉 둘러보고 나니 오후 2시 가량, 운전석에 앉은 철수는 시계를 힐끗 보곤 백미러에 비친 완전히 지친 표정의 아가씨를 향해 입을 열었다.

“점심식사는 어떻게 하실 겁니까? 이곳에서 먹는 건, 그리 추천하지 않습니다.”

“...괜찮은 곳이 있나요?”

“여기서 30여분 정도 떨어진 곳에 유명한 개성 요리 전문점이 있습니다. 외국인들을 상대로 하는 곳이죠.”

“거기로 가자. 아무리 그래도 먹는 건 좀 제대로 된 걸 먹어야지.”

이어지는 양씨의 대꾸, 나와 아가씨도 고갤 끄덕이자 철수는 곧바로 핸들을 돌렸다.

지금까지 돌던 개성 도심에서 벗어나는 차량, 시내에서 벗어나고 10여분 가량을 이동하자 점점 바뀌는 밖의 풍광을 보며 아가씨는 살짝 반색했다.

“여긴 좀 괜찮네요.”

푸르른 나무로 뒤덮인 산, 남쪽에선 아무렇지도 않는 풍경이지만 여기선 아니다. 나무란 나무는 뗄감으로 써서 거의 죄다 민둥산이거든. 근데 철수가 안내하는 방향 쪽엔 숲이란 게 있었다. 게다가 도로의 상태도 잘 정비된 듯 차량이 부드럽게 움직인다.

도로 표지판을 보니까 ‘개성시 판문구역 봉동리’...

“개성공단 방향이네요?”

“예, 그 근처입니다.”

내 말에 고갤 끄덕이는 철수, 그에 아가씨가 두 눈을 동그랗게 뜨자 철수는 안내하듯 설명을 이어나갔다.

“아시겠지만 개성에서 직접적으로 ‘한국 돈’이 흐르는 얼마 안 되는 곳입니다. 남쪽 기업이 진출해 군벌 측에게 임금을 줘서 시장이 활성화 됐고, 그 덕분에 노동자들을 상대로 하는 상점도 많습니다. 개성에서 가장 잘 나가는 곳입니다.”

“하, 안 그래도 한 번 방문하려고 했는데 잘됐네요. 점심 먹고 난 뒤에 삥 둘러봐야겠어요.”

“다만, 군벌이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니 조심하셔야 합니다. 남한 사람에게는 다르겠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요.”

얼마 가지 않아 우리 일행이 탄 차는 톨게이트 비스무리 한 검색대에서 멈춰서 군인들에게 잠깐의 검문을 받고 개성공단에 진입했다.

“오.”

안으로 들어서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공단 주위를 감싼 도심이 보인다.

3~4층짜리 건물이 잔뜩 들어선 거리, 축 늘어진 개성 시내완 달리 활기차다. 좀비처럼 돌아다니는 마약 중독자도 없고 사람들의 옷차림도 나름 봐줄만 하네. 게다가 PC방, 야외극장, 펍(Pub), 사우나 같은 각종 편의시설도 보인...

“...어!? 저게 왜 남아있죠?”

“네? 뭐가요?”

“아니, 저 건물 날아간 거 아닌가요?”

파란색 유리창으로 된 건물, 내 기억엔 ‘폭파된 걸’로 알고 있는 건물이 버젓이 공단 한복판에 서있다. 그런 내 말에 철수가 내가 가리킨 건물을 보곤 의아하다는 듯이 고갤 갸웃한다.

“개성공단 종합지원센터 말입니까? 남쪽에서 파견된 관리들이 일하는 곳이죠. 이곳에서 제일 잘 지어진 건물이기도 하고요. 북쪽에선 꿈의 직장으로 통합니다.”

“...제가 착각한 것 같네요.”

아무래도 이전 세계의 것과 착각한 것 같다. 허허, 참 감회가 묘하구만. 어찌됐든 우리는 한 커다란 음식점 앞에서 내렸다. 철수의 소개론 ‘편수’라는 개성식 만두와 보쌈김치를 파는 곳이라는데, 확실히 장사가 잘 되는 듯 사람이 바글바글했다.

그렇게 나와 마빡 아가씨, 양우영, 철수, 그리고 아가씨의 수행원 2명 총 6명이 식탁에 앉아서 나온 반찬을 깨작이고 있는데...

“편수국하고 수육 나왔습네다!”

“...?”

종업원이 시킨 만둣국 그릇을 내려놓으면서 내 다리 사이에 검은색 쪽지 하나를 떨어트린다.

곱게 접혀져있는 것을 보면 일부러 떨어트린 것, 내 옆에 앉은 철수와 수행원 아저씨도 눈치 채지 못할 정도로 자연스러웠다. 살짝 뭐냐는 듯이 눈썹을 들어 올렸는데도 종업원은 모르는 척 시킨 만둣국과 수육을 식탁에 내려놓곤 그냥 쌩하니 가버린다.

보아하니 나만 몰래 보라고 한 것 같지만...

“이게 뭘까요?”

응, 좆까. 난 그런 거 신경 안 써. 자고로 이런 걸 숨기면 더 곤란해지는 법이거든! 내가 보란 듯이 손에 쥔 쪽지를 들어 올리자 막 만둣국 한 입 퍼먹은 아가씨가 우물거리며 말한다.

“뭐가?”

“이 쪽지요. 아까 만둣국 내려놓은 종업원이 제 무릎에 몰래 떨어트리고 가더라고요.”

내 말에 일행들의 시선이 모두 내게 쏠리는 가운데, 나는 보란 듯이 쪽지를 폈다.

하지만, 쪽지 쪽을 바라보는 얼굴과는 달리 내 <눈>은 곳곳에 쪼개져 식당 사방을 훑어보고 있었다. 예상대로 내 행동에 식겁한 표정을 짓는 한 놈이 보인다. 그래, 저 놈이 보냈구나. 확실하게 그 면상을 <메모장>에 찍어낸 뒤, 난 쪽지를 보았다.

“‘블랙 생츄어리’라는 가게의 명함인가 봐요. 금색 글자로 아래에 ‘밤 12시에’라는 서명이 있군요.”

“...아까 종업원 어디 갔어? 일훈씨, 여기 주인 좀 불러와주세요.”

얼굴을 구기는 마빡 아가씨, 아가씨의 엄명에 수행원 아저씨들이 곧바로 일어서지만 늦었다. 낌새가 이상하자 식겁한 놈이 신호를 보냈고, 쪽지를 전달한 종업원은 주방 쪽 통로를 통해 밖으로 나갔다.

그에 난 쪽지를 호주머니에 넣으며 고갤 저었다.

“됐어요. 이미, 종업원은 도망쳤어요. 괜히, 수행원 아저씨 고생 시키지 말고 밥이나 먹죠.”

“...”

“으음, 냠냠. 이야, 겉보기엔 모양만 다른 만두인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네요! 맛있어요!”

한 입 먹었는데 확실히 맛있다. 편수라고 했던가? 그냥 모양만 좀 다른 만두처럼 보였는데 내용물은 완전히 다르다. 각종 고기에 굴, 잣과 버섯, 숙주나물, 두부... 맛이 더 깊어. 이거 진짜 괜찮네. 맛집으로 소문날 법하다. 보쌈김치도 맛있네.

그런 내 태도가 마음에 안 드는 것인지 아가씨는 작게 한숨을 내뱉곤 얼굴을 찡그린다.

“넌 긴장도 안 되냐?”

“긴장할 필요가 있나요? 여기서 일이 벌어져봤자 한 달하고도 조금 전에 ‘겪었던 일’에 비하면 뭐...”

“흐, 그렇긴 하네.”

그런 내 반응에 만둣국을 퍼먹던 양우영이 씨익 웃으며 동의한다.

이 양반도 <기억 소거>를 받지 않은 소수의 생도들 중 하나, 서예린이나 남궁진아처럼 화려하게 날뛰지는 않았지만 들리는 소문으론 얼음 바늘로 닥치는 대로 야만인들을 찔러 죽었다고 하더라. 내 <눈>으로 보이는 능력치도 탈 생도급 이었고.

당연히, 마빡 아가씨도 이내 수긍하듯 고갤 끄덕였다.

“하긴, 그때를 생각하면 그냥 그러려니 하지. 에휴! 그래, 밥이나 먹자! 말을 들어보니 누가 이걸 보냈는지 찾는 건 그른 것 같은데.”

“아뇨, 찾을 수 있어요.”

이어진 내 대답에 마빡 아가씨가 수저를 멈춘 채 바라보고 난 담담히 말을 이어나갔다.

“아가씨, 미르 지하주차장에서 있었던 일 기억나죠?”

“어떤 거?”

“있잖아요. 탑차 창고 안에 들어가서 제가 움직이라는 대로 차량을 움직였던 일.”

밖이 보이지도 않는데 정확히 어떻게 움직이라고 하던 나. 그건 상식적으론 불가능한 일이다. 아가씨도 알겠지. 하지만, 그 당시는 워낙 급박해서 태클을 걸지 않았다. 사태가 끝난 뒤엔 날 존중해줘서 그런지 그것에 관해 질문을 하지 않으시더라.

어쨌든 한 번 보여준 능력인데 계속 숨길 필요는 없지.

두 눈을 뜨고 끼고 있는 선글라스를 살짝 내렸다. 그리곤, 아가씨와 양우영을 향해 초점이 잡히지 않은 자색의 눈동자를 보여주면서 예전에 생각해뒀던 변명을 내뱉었다.

“사고 이후로 저는 ‘뭔가를 본다.’기 보단 느끼는 것에 가까워요. 일정 범위 내에 있는 정보들이 합쳐져 머릿속에서 그 형상을 그려내죠.”

“...”

“제가 몰래 준 쪽지를 읽는 순간, 식당 내에서 한 사람이 기겁하는 걸 봤어요. 그리고, 그놈은 아직 안에 있어요. 안 들킨 줄 알고 태연하게 밥 먹고 있죠. 추적하려면 추적할 수 있어요.”

내가 쪽지를 대놓고 보자 기겁한 놈, 그 놈은 아직 밥을 먹고 있었다. 그러니 뒷조사 하는 건 쉽지. 그런 내 대꾸에 양우영이 혀를 내두른다.

“이야, 그런 능력도 있었어? 부럽네.”

“덤으로 딸려온 불면증, 체력 약화, 정신착란 같은 거 생각하면 전혀 안 부러울 걸요.”

“흐, 확실히 피곤할 것 같긴 하네. 근데, 내 의견을 말하자면 추적은 별로 권하고 싶지 않아. 그냥 곱게 보자는 대로 가는 게 나을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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