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자를 위한 연중작은 없다-133화 (133/350)

< 28화. 사람이 살만한 곳은 아닙니다. >

이해할 수 없는 양우영의 말에 일행들이 ‘뭔 소리 하냐?’는 듯이 바라보자, 양씨는 태연하게 수육에 보쌈김치를 집으며 입을 열었다.

“아무런 이유 없이 너에게 쪽지를 전달하진 않았겠지. 넌 기억 못하지만 알고 있는 사람일 확률이 높아.”

“그건 뭐...”

“그럼 상대방에 대해 하나씩 추정을 해보자고.”

집은 수육과 보쌈을 크게 한 입 먹은 후, 양씨는 왼손 검지를 들어 올리며 말을 이어나갔다.

“첫째로 넌 기억 못하고 있겠지만 널 알고 있을 사람일 확률이 높고 이전과는 ‘전혀 달라진 외모’임에도 네가 한새벽인 걸 알아. 이 말은 남한 소식을 거의 알지 못하는 북한 사람과는 달리 어느 정도 정보력이 있다는 거지.”

“음, 맞는 소리네요.”

그에 내가 고갤 끄덕이자 양씨는 검지에 이어 중지를 편다.

“둘째로 너에게 굳이 이렇게 쪽지로 용건을 전달했어. 왜 쪽지로 전달했을까? 너에 대해 알고 있으니 스마트폰 번호도 알고 있을 확률이 높은데도 말이야.”

“...음.”

“미르 생도의 스마트폰이 검열·감시가 된다는 걸 알고 있다는 거겠지. 그리고 ‘자기가 미르 생도에 접근한다는 걸’ 알리기 싫어하는 거고.”

그러고 보니 저번에 중국 스파이를 털 때, 마빡 아가씨가 도청·해킹 위협이 있으니 민감한 주제에 대해 말할 거라면 되도록 스마트폰을 쓰지 말라고 했었지. 미르 생도의 메신저는 항상 모니터링되고 있다고 했나?

짜증나지만 이젠 이해가 간다.

당장 이번 미르 사태의 원인으로 꼽은 것 중 하나가 ‘내부의 조력자’ 대환이였으니까. 헛짓하면 대재앙이 터지는걸. 당연히 감시하겠지. 이런 개인의 자유와 인권이 중요하지 않은 시대에선. 어찌됐든 간에 양씨의 두 번째 추정 또한 어느 정도 타당하다.

그 뒤, 양우영은 이어서 엄지를 폈다.

“무엇보다 개성시내에서부터 딱히 미행을 한 것 같지도 않은데, 이곳에 있다는 걸 파악했지. 이곳에서 네가 온 걸 파악한 거야. 게다가 이곳 식당에 마음대로 쓸 수 있는 똘마니가 있는 걸 보면... 여기를 누가 지배하고 있는지 보면 답은 금방 나오지?”

“...군벌?”

내 머리로도 떠올릴 수 있는 대답이었다. 그에 양우영은 고갤 끄덕였다.

“남쪽에도 어느 정도 정보력이 있고, 생도와 접촉하는 걸 남쪽 정부에 알리기 꺼려하고, 군벌이 지배하는 이곳에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딱 봐도 이곳 ‘군벌’과 관련 있는 사람들 중 하나야. 톨게이트 통과할 때 네가 온 걸 파악한 거겠지.”

그 추리에 우리 일행 모두 고갤 끄덕였다. 약간의 ‘논리적 비약’이 있긴 하지만 전부 맞는 말이었다. 실제로 그럴 확률이 놓고. 거, 생긴 거나 쩝쩝대며 먹는 꼬라지는 완전히 양아친데 머리하난 잘 돌아간다니까?

어찌됐든 양우영은 만둣국을 대접을 들어 완샷한 후, 작게 트림하며 씨익 웃는다.

“군벌이라는 ‘이곳의 권력자’와 틀어져봤자 좋을 게 없어. 게다가 넌 책임져야 할 보육원도 있잖아? 적당히 맞춰주라고. 뭐, 상황을 보아하니 몰래 전달하려고 한 것 같은데 네가 파토를 낸 것에서부터 좀 마이너스겠지만.”

“...흠, 철수씨. 제가 이곳 군벌과 아는 사이인가요?”

군벌이라, 도대체 진짜와는 무슨 관계였을까? 그런 내 질문에 철수는 살짝 고민하더니 신중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대장님이 다른 조직과 접촉하는 것은 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럴 수도 있습니다. 어찌됐든 간에 미르 생도시니까요.”

“하긴, 미르 생도란 게 이곳에선 나름 귀족 신분일 테니까요. 자연스럽게 친분을 쌓았을 수도 있겠죠.”

철수의 대답에 고갤 까닥이고 있는데... 한 발 늦어서야 미묘한 위화감을 감지했다. 그리곤 철수를 향해 입을 열었다.

“근데, 제게 존댓말 해요?”

“...네?”

“저번엔 안 그랬으면서. 갑자기 존댓말 듣다니... 좀 듣기 거북하네요! 게다가 대장님? 흐음.”

저번에 처음 왔을 때는 그럭저럭 편하게 대답하던 철수였는데, 지금은 되게 공손히 말한다. 조심스럽게 대하는 것이 느껴진다고 해야 하나? 마빡 아가씨와 양우영의 질문에 대답할 때는 그러려니 했는데, 내에게까지 존댓말 하는 건... 좀 듣기 거북하네.

그런 내 대꾸에 만두를 떠먹던 마빡 아가씨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짓는다.

“야, 너도 우리에게 존댓말 하잖아.”

“저는 정신병동에 갇히면서 어쩔 수 없이 습관이 된 거라고요! 그리고... 전 존댓말 써도 나름 어울리지 않나요?”

“아니, 좀 심각하게 좆같아. 그렇죠?”

그런 내 항변에 코웃음을 흘리며 옆의 양우영을 향해 묻는 아가씨, 다 먹고 이쑤시개로 이빨을 쑤시고 있던 양우영도 동의한다는 듯이 고갤 끄덕인다.

“응, 좆같지. 2000년대 중2병 허세충만 한 판타지 소설 주인공 같더라니까? 근데, 외형을 보면 또 그게 어울려.”

“허, 2000년대 소설이라니... 그런 걸 읽어요?”

“은근히 재미있다고. 요즘 소설에는 없는 갬성이 있지. 이종족이 등장해도 마냥 희망찬 게 우습다고 해야 하나.”

별종을 본다는 듯이 말하는 마빡 아가씨와 그에 태연하게 대꾸하는 양우영. 으음, 내 존댓말이 그렇게 들리는 건가? 근데, 의식하지 않고 말하면 자동으로 나오는 건데 말이지.

작게 한숨을 내뱉은 후, 난 당혹스런 표정으로 어쩔 줄 몰라하는 철수를 향해 고갤 끄덕였다.

“쩝, 마음대로 불러요.”

28화. 사람이 살만한 곳은 아닙니다.

1.

명함에 있는 ‘블랙 생츄어리’는 개성공단 외곽 부지에 있는 클럽이었다.

명함에 위치에 대한 설명도 없고 북한의 인트라넷에 검색해도 안 나와서 좀 난감했는데, 다행히 우리가 묶게 된 개성 호텔 직원이 알고 있었다. 한 마디로 블랙 생츄어리는 부유한 외국인들과 부호들을 타겟으로 한 비밀 나이트클럽이었다.

그렇게 위치를 파악한 뒤, 난 따라가겠다는 양씨와 아가씨를 떼어내고 혼자 도착했다.

“흐음.”

주위에 아무런 건물도 없는 빈 주차장 같은 공터, 그 한쪽에 지하철역 같은 입구가 덩그러니 있었다. 하지만, 지상에는 남쪽에서도 보기 힘든 비싸 보이는 스포츠카들이 널려 있었고 드러난 입구 또한 세련되기 그지없다. 들어서는 사람들의 복장도... 되게 비싸보이고.

한 번 <눈>으로 안쪽을 훑어봤다.

거의 30m가량 깊이 들어가야 나오는 실내, 바닥에서 천장까지 거의 15m가량 뻥 뚫려 있어서 지하 같다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는다. 클럽 같은데 가질 않아서 잘 모르겠다만, 이 세상에 오기 전 Tv 드라마에서 봤었던 나이트클럽 모습보다 훨씬 더 세련됐다.

총 3개의 층으로 되어있는 원통형 홀

최하층인 1층에서는 남녀가 춤을 추거나 칵테일 바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고, 고리 형태인 2층은 테이블 좌석으로 남녀들이 앉아 안주나 술을 마시거나 스킨십을 하며, 매직미러로 밖에선 볼 수 없게 된 3층 룸에선 남자들이 아래를 내려다보며 여자를 가리키며 말하거나...

흠, 실례. 열심히 생식행위에 열중하시는 걸 봐버렸네!

“...출입이 될까요?”

그렇게 클럽을 한 번 살펴보고 난 후, 난 내 복장을 보며 머릴 긁적였다. 대충, 싸구려 후드티에 청바지... 그래도 나름 괜찮았는데, 클럽 안쪽과 비교하니 많이 후줄근하다. 게다가 내 외모도 문제야. 아무리 봐도 난 이제 갓 중학생이 된 소년 같은 외형인걸.

아니, 사실대로 말하면 영혼에 각인된 찐따의 본능이 인싸들이 모이는 곳에 가지 않으려고 하는 걸지도...

“아니, 안 되죠...!”

언제까지 ‘찐’처럼 살 거야?! 새롭게 태어났으니 나도 클럽 한 번 가봐야지! 퇴짜 맞더라도 초대한 놈이 잘못이야! 결심을 다지며 후드티를 눌러쓰고 고갤 숙인 채 입구로 향했다. 워낙 후줄근한 복장이라서 그런지 주위에 주차 요원들과 경비들의 시선이 쏠린다.

...싯팔ㅠ, 벌써부터 수치플 오지네. PC방 가서 틀타나 롤하고 싶다!

그렇게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입구에서 수질관리하시는 커다란 떡대 바운서들 앞에 섰다. 보자마자 입구 컷하려고 하기에 재빨리 호주머니에서 받았던 명함을 내밀었다. 다행히 바운서는 그 명함을 보곤 흠칫하더니 이어 마이크를 누르고 ‘손님 왔습니다.’라고 말하고-

“따라오시죠.”

깍듯이 안내한다.

바운서를 따라 백화점처럼 꾸며진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아래로 내려갔다. 최하층으로 가는 것이 아닌 3층 룸과 연결되는 귀빈 통로 쪽. 대충, 3층의 룸 중 하나이겠거니 했는데...

한 층 더 위로 올라간다.

바닥에서 천장까지 대략 15m 가량 되는 클럽 내부, 그 홀의 천장은 거울로 만들어졌는데... 사실, 그건 진짜 천장이 아니다. 1층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매직미러 바닥으로 이루어진 화려하게 꾸며진 방, 거기에 여자들에게 시중을 받고 있는 지배인으로 보이는 남자가 있었다.

음, 새벽이의 친구가 생각보다 훨씬 거물이네.

<눈>으로 본 바, 심상치 않은 마력의 아우라가 느껴진다. 그래, ‘마력 각성자’다. 방으로 가는 경계도 삼엄했다. 넥타이 없는 검은 정장을 입은 아저씨들이 복도에 경계를 서고 있는데 하나 같이 홀더에 권총을 하나씩 끼고 있었고...

“죄송하지만 잠시 몸수색을 하겠습니다.”

문 앞을 지키고 있는 두 사람, 이자들도 ‘마력 각성자’들이었다.

허허, 본인이 마력 각성자에 마력 각성자 보디가드 두 명을 끌고 다니는 남자. 게다가 이런 커다란 나이트클럽의 지배인이라고? 도대체 진짜 한새벽과는 어떤 관계였을까?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금속 탐지기와 마력 탐지기를 들고 내 몸을 더듬던 한 보디가드는 내 품안에서 물건들을 꺼냈다.

“이건 뭡니까? 둘 다 마력이 느껴집니다만.”

전자 담배 케이스와 힙 플라스크, 그에 난 순순히 대답했다.

“케이스에 든 건 전자 담배예요. 앰플은 <연금술>로 가공된 것이고요. 그리고 힙 플라스크에 든 건 회복 포션이랍니다. 아시겠지만 워낙 치안이 흉흉해서.”

힙 플라스크에 든 건 수제 포션이다. 내가 만든 건 아니고 마빡 아가씨꺼. 혼자 가겠다고 하니까 혹시 모르니 조심하라면서 자기 것을 주더라고. 좀 감동이었어. 근데, 내가 만든 것에 비하면 성능이 떨어진다는 게 함정이다. 허허...

“큼큼, 사장님, 손님 왔습니다.”

물품을 되돌려준 보디가드가 문을 두드리며 말하자 안에서 ‘들어와!’라는 대답이 들린다. 그렇게 안으로 들어서자 <눈>으로 봤었던 한 남자가 두 팔을 벌린 채 활짝 웃으며 날 맞이한다.

“이야, 한새벽이! 달라졌다고 하더니 진짜 많이 달라졌구나!”

살짝 북한 억양이 들어간 말로 환영하는 30대 중반의 남성

태닝 된 갈색 피부에 스테로이드를 맞은 것처럼 터질 듯한 근육질이 인상적이다. 바깥의 아저씨들과 똑같이 넥타이 없는 검정 양복이었지만 디테일이 더 들어간 고급 정장을 입었고, 풀어헤친 목이나 손목에서 보이는 좀 천박할 정도로 화려한 금목걸이와 손목시계를 착용했다.

하지만, 어울린다.

우리 보육원의 도시아가 북한답지 않은 패션 감각으로 눈에 띄었다면 이 남자는 모든 것이 북한답지 않았다. 그렇게 다가온 남자는 씨익 웃으며 살짝 허릴 숙여 나와 어깨동무를 한다. 그렇게 친한 척 하는 모습에 난 직감했다.

이건, 그리 좋지 않은 인연이라고.

2.

내가 가진 돌연변이... 아니, 난 ‘내 처지’를 안다.

인간과 어설프게 닳은 것을 볼 때, 느끼는 ‘불쾌한 골짜기’처럼 내게는 영혼이 박살나서 풍기는 꺼림칙함이 있다. 그런 이유로 반사적으로 첫인상을 조진다. 그런 만큼, 처음부터 날 ‘사근사근’ 대하는 놈들은 뭔가 꿍꿍이가 있다는 거지.

어찌됐든 남자는 친한 척을 하며 말을 이어나갔다.

“이거, 전혀 몰라보겠어. 사진을 처음 봤을 땐 ‘같은 이름을 가진 다른 사람 아닌가?’ 의심까지 했다니까?”

“뭐, 그렇게들 말하더라고요. 근데, 죄송한데 제가 사고로 기억을 잃어버렸거든요? 누구시죠?”

“아, 그것도 들었는데... 깜빡했구만. 술이나 한 잔하면서 이야기 하지.”

룸 한쪽을 향해 안내하는 아저씨, 밖에서 봤던 대로 술과 안주가 세팅된 테이블이 있고 소파엔 여자 애들이 앉아있었다. 음, 대단히 예쁜 아이들. 놀랍게도 마력이라는 최고의 성형 수술 덕분에 미녀가 가득한 미르에서도 꿇리지 않을 법한 수준이다.

“자, 앉아. 옆에 애가 마음에 안 들면 이야기하고. 아, 술은 아직 마시지?”

“없어서 못 먹죠.”

소파에 앉자 자연스럽게 옆의 여자애가 활짝 웃으며 빈 잔에 얼음을 넣고 양주를 따라주는데... <눈>의 3인칭 객관적 시점으로 보니까 어린애한테 아양 떠는 것 같아서 조금 그렇네.

“자, 일단 건배하지.”

술잔을 들어 올리며 말하는 아저씨, 그에 나도 술잔을 들어 부딪쳤다. 바로 한 모금하니... 나쁘지 않네. 내가 양주를 잘 모르지만 좋은 술이란 건 분명하다. 그렇게 한 모금씩 마시자, 남자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우리 사이를 한 마디로 말하면... 좋은 친구였지.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친구.”

“정확히 어떤 형태의 도움을 주고받았는지 알 수 있을까요?”

“음! 일단, 내가 도와준 것부터 말하면... 4년 전, 미르에 입학한 것부터. 네가 한마음 보육원을 차지하는 걸 도와줬지. 하하, 처음 만났을 땐 참 당돌했어! 자기를 이용하라고 다가오니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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