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자를 위한 연중작은 없다-137화 (137/350)

< 28화. 사람이 살만한 곳은 아닙니다. >

남궁진아의 살벌한 으름장에 양우영은 입을 다신 뒤 다시 노트북을 펼치곤 CCTV영상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들이 찾는 한새벽의 모습은 보이질 않았다.

“없는데?”

“좀 잘 찾아봐!”

“아니, CCTV로 보이는 룸이나 플로어엔 없어. 더 은밀한 곳에 있으려나?”

“쯧...”

한새벽이 안쪽에 들어간 지 15분가량, 그 사이에 행적을 놓치다니... 아쉬움에 남궁진아가 혀를 차는 찰나, 양우영이 반색하며 대꾸한다.

“야, 잠깐만! 갑자기 위에서 한 사람이 떨어졌다.”

“떨어졌어요?”

“그래, 보니까 룸에서 떨어진 건 아니야. 어휴, 한 사람을 아예 깔아뭉갠 것 같은데? 한 번 봐봐.”

보란 듯이 한 CCTV영상을 켜고 노트북을 보여주는 양우영. 확실히, 홀 내부의 상황은 정상이 아니었다. 깨진 거울 조각에 맞아 피투성이가 된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남자가 떨어진 위치에서 벗어나는 가운데, 떨어졌던 남자가 목덜미를 붙잡고 고통이 움찔거리다가 천천히 일어선다. 하지만-,

“뭐지?”

다 일어서기도 전에 기겁하며 팔로 얼굴을 가리곤 자신이 깔아뭉갰던 목 꺾인 여자시신을 들어올린다. 살짝 중앙에서 떨어진 채, 그런 남자를 스마트폰으로 촬영하던 사람들도 비명을 지르는 표정으로 썰물처럼 흩어진다. 그 모습에 양우영은 미간을 찡그렸다.

“야, 심상치 않다. 전 구역의 CCTV 모습을 봐봐. 클럽에 있는 사람들은 도망가고, 반대로 가드들은 총을 들고 접근하고... 집음기가 없어서 모르겠지만 총소리가 울린 것 같다.”

“...설마, 새벽이가?”

“걔가? 에이 설마. 상식적으로 저런 짓을 벌이겠어?”

설마 하는 영우영의 반응에 남궁진아는 얼굴을 구긴 채 고갤 저었다.

“아니에요. 충분히 가능성이 있어요.”

“뭐?”

“이번에 있었던 미르 사태에서 느낀 건데, 새벽이는... 좀 괴상하게 돌았어요.”

진지한 남궁진아의 대꾸에 양우영이 묘한 표정을 하는 가운데, 홀 CCTV에 새로운 사람의 형체가 잡힌다.

‘싸구려 운동화에 청바지 그리고 회색 후드티를 걸친 백발의 소년’, 위쪽에서 나타난 소년은 마치 서커스 하는 것처럼 3층의 유리벽을 디디고, 원숭이처럼 2층 난간에 팔을 뻗어 속도를 줄인 뒤, 마지막으로 가뿐하고 1층 댄스 플로어에 착지한다.

그렇게 움직이는 와중에도 왼손에 쥔 권총을 중앙에 있는 남자를 향해 난사하고 있었다.

“...진짜네. 총 쏘고 있어.”

그 영상에 양우영이 입을 떡 벌리는 가운데, 한새벽은 떨어졌던 남자와 잠깐 대화하는 듯 싶더니 또 다시 싸우기 시작했다. 영상을 보며 양우영은 혀를 내둘렀다.

“와, 그나저나 이 새끼 진짜 신들린 듯이 잘 싸우네.”

꽤 불리해 보이는 싸움, 하지만 한새벽은 기가 막힐 정도로 잘 싸웠다. 뒤를 보지도 않고 뒷걸음질로 빠르게 움직이고, 절묘하게 지형지물을 타며 움직이고, 보지도 않고 날아오는 것들을 휙휙 피하고... 주위의 사물을 사용하는데 도가 텄다.

결국, 한새벽은 남자를 죽여 버렸다.

이어지는 조폭들과의 싸움, 소총까지 든 조폭이었으나 얼마 가지 않아 일방적으로 사냥 당하기 시작했다. 반쯤 호기심으로 따라왔다가 보게 된 상상을 초월하는 광경에 남궁진아가 어찌할 바를 모르고 넋을 잃은 동안 양우영은 어느새 진지한 표정으로 영상을 분석하고 있었다.

“그 능력이 사실인 듯 하네.”

“...뭐가요?”

“눈이 아니라 특별한 감지 능력이 있다고 한 거 말이야.”

사방에 깔린 CCTV, 그 영상을 통해 파악한 정보를 양우영은 내뱉었다.

“시야엔 안 보이는 적을 거침없이 쏴 갈겨. 얇은 벽 너머에 있는 적도 그냥 총 쏴서 죽이고. 총알로 못 죽이는 곳에선 이상한 대못 같은 것을 만들어 날려서 격살해. 게다가 시체로 독구름도 연막처럼 만들어서 사용하네? 바바야가, 강수영 연금술사의 제자라더니 진짜 비슷하게 싸우네. 아니...”

CCTV 영상 속, 소리 없이 울부짖으며 밀려오는 독구름을 피해 도망치려는 가드. 하지만 양쪽 무릎이 총알에 날아간 그는 얼마 가지 않아 독구름에 휩싸인다. 구름에 휩싸이기 전, 공포에 질린 얼굴을 보면 그 절규를 짐작할 수 있었다.

“실력은 바바야가에 비해 떨어질지 몰라도 더 잔혹하고 교활해. 보통 무조건 머리통에 맞추는데, 가끔 다리를 노리는 총탄이 있어 뭔가 했는데... 일부러 죽이지 않고 시체에서 나온 독가스에 휩싸이게 해서 죽이는 거야. 고통을 주려고. 공포를 이용하고 있어.”

보란 듯이 지적하는 양우영, 실제로 그 비명을 들은 듯 가까운 곳에 있는 이들의 표정이 썩어 들어간다. 그런 가드들의 모습을 짐작이라도 하는 것 마냥 한새벽은 일부러 작은 소음을 내서 사람들의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고 마법으로 격살한다.

“진짜 괴물이다. 내가 용병 사업하려고 진짜 공부 많이 했는데, 저 녀석 메이저에서도 통하다 못해 넘쳐날 거야. 웬만한 이능력자 특수부대보다 훨씬 잘 싸워. 아니, 오히려 역으로 전멸 당할 듯? 진짜 도망치지 못한 조폭들 다 죽일 기세네. 어?! 아니 왜 꺼! 잘 보고 있는데!”

옆에서 양우영이 뭐라 하든 말든, 송신을 중단한 남궁진아는 굳은 표정으로 차 밖을 살폈다. 공포에 질린 얼굴로 다급하게 자기 차량에 타고 도망치는 사람들, 그 모습을 보며 그녀는 마스크를 쓰고 옆의 빵모자를 폭 뒤집어쓰며 입을 열었다.

“가죠.”

“...설마, 안으로 가자는 거?”

“네.”

그 단호한 대꾸에 양우영은 떨떠름한 얼굴로 블랙 생츄어리의 입구 쪽을 바라보았다.

“독가스를 입구에 흩뿌린 게 보이는데...”

“그건, 내가 막을 수 있어요.”

“...아니, 이거 그렇게 넘어갈 일이 아니라니까? 일이 존나 커졌다고! CCTV에 찍히기라도 하면 큰일나! 사실, 우리도 휘말리기 전에 지금이라도 곱게 빠져나가야 해!”

“됐고, 따라와. 우리 걸리면 너도 걸린다.”

약한 소리를 하는 양우영을 뒤로한 채, 남궁진아는 차문을 열고 독구름이 뭉클거리는 클럽 입구를 향해 걸어갔다.

7.

나쁜 친구를 죽이고 내가 가장 먼저 한 일은 ‘퇴로’를 막는 것이었다.

어차피 일반인은 총소리가 났을 때부터 거의 밖으로 도망쳤기에 거침없었다. 입구 통로 쪽에 있는 가드들의 머리통을 소총으로 날려버린 뒤, 곧바로 <시체 부패>를 사용해서 독구름을 생성했다. 이어서 CCTV영상이 나오는 전산실에서 가서 도움 요청을 하기 힘들도록 쓸어버렸다.

그 뒤론 너무나도 쉬웠다.

누군가가 ‘이기는 전쟁은 최고의 오락이다.’라고 했던가? 그 말은 사실이다. 직접 해보니까 기분이 끝내줬거든! 게임에서 치트 쓰는 핵쟁이들보다 더 신날 걸? 일방적으로 쓸려나가니까 나중에는 벌벌 떨면서 저항을 포기하고 숨는데...

내가 굳이 봐줄 이유는 없지?

“하, 항복! 항...”

-탕!

“싫어요.”

숨어도 안 되자 아예 대놓고 투항하려는 가드의 머리통을 손수 날려준 뒤, 난 곳곳에 배치한 <눈>으로 주위를 훑었다. 어디보자, 전산실 CCTV를 확인하니 대충 정리된 것 같다. 남은 사람은... 약 먹고 룸 안에서 여자랑 그 짓하느라 정신이 나간 놈 정도? 굳이 죽일 필요는 없지.

아니, 눈꼴 시린데 그냥...

“...굳이 그럴 필욘 없죠.”

소총으로 머리를 두드리며 충동을 참았다. 괜한 사람을 죽일 필요는 없다. 어차피 죽일 놈은 많은 걸? 젠장, 누군 이딴 지옥에서 뒹구는데 누구는 태평하게 약 먹고 떡이나 치고 있는 게 심히 꼴 받지만... 죽일 필요까진 없지. 그래그래, 사람을 죽이는데 일관성이 있어야지!

한숨을 내뱉으며 AK소총을 어깨에 걸친 뒤, 다시 홀로 돌아왔다.

아직까지도 <부패 구름>에 잠식된 홀 내부, 거기에서 난 ‘나쁜 친구’의 잔해를 응시했다. <시체 부패> 마법 덕분에 썩어들어간 시체, 하지만 그 물품은 여전히 남아있다. 가까이 다가가 썩은 피와 오물을 헤치며 난 2개의 금반지와 투박한 금목걸이를 회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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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힘의 반지 (Ring of Strength)

근력을 증가시키거나 감소시키는 반지다.

반지

·힘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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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의 목걸이 (Necklace of Strength)

근력을 증가시키거나 감소시키는 목걸이.

목걸이

·힘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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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지 한 쌍과 목걸이

전부 마력이 흐르는 마법 장비들이었다. 남자가 입었던 정장도 특별한 재료를 사용한 듯, 마력이 흐르긴 했는데... 불에 한 번 탔고 무엇보다 시체가 썩으면서 생긴 오물이 너무 많이 묻어서 포기했다. 이런 별 볼일 없는 마법 장비도 비싸게 팔리니 나중에 팔아먹어야지.

어쨌든 그렇게 전리품을 획득한 뒤, <눈>을 위쪽으로 옮겨서 지상을 확인했다.

아직까지도 경찰은 오지 않은 상황, 클럽의 입구 통로 쪽엔 내가 던져둔 시체가 뿜어내는 <부패 구름>이 자욱하다. 좋아, 당분간 방해는 없겠구만. 그에 곧바로 <눈>을 앞으로 되돌린 후-

“스읍, 하아...”

그 자리에 서서 ‘영혼을 보고 싶다.’고 소망했다.

그러자 시신의 잔해에서 아직 휘발되지 않은 영혼이 보인다. ...기왕 이렇게 일을 크게 벌인 거, 알뜰하게 <강령술> 연습도 해봐야지.

천천히, 마력을 움직여 <강령술>에 사용되는 룬을 만들어냈다.

역시, <게임 시스템>으로 전수 받지 않았기 때문인지 만들어진 룬의 형태는 찌그러지고 불완전하다. 다른 차원의 마력을 제대로 공명시키지 못하고, 남아있는 영혼의 잔재를 제대로 주무르지 못한다. 으음, 잘 안 되네.

하지만, 영혼 없이 허공에 룬을 만들며 연습하는 것보다는 훨씬 감을 잡기 쉽다.

시체를 옮겨 다니면서 계속해서 룬을 만들어 봤다. 실패, 실패, 실패, 실패... 아, <게임 시스템>이 얼마나 사기인지 절실히 느껴진다. 불완전한 마법의 여파에 점점 쌓여가는 마법 오염, 아쉽지만 더 했다간 어떤 이상이 생길 것 같기에 8번째 시신에서 연습을 그만뒀다.

그렇게 아쉬움에 입을 다시면서 위로 올라가려고 할 때-

-또각.

“...?”

난데없이 인기척이 느껴졌다. 아직 부패구름이 뚫릴 시간은 아닌데? 약 먹고 떡치던 놈들이 정신 차렸나? 곧바로 소총을 쥐고 근처 기둥 뒤에 숨으며 <눈>을 보내 확인했다. 그렇게 확인한 결과 보이는 사람은...

“엥? 진아씨? 우영씨도 있네요? 왜 여기 있어요?! 오지 말라고 했잖아요!”

마빡 아가씨와 양우영이었다.

마빡 아가씨의 반경 2m에는 미약하게 전류가 흐르는 공기가 휘몰아치고 있었는데, 아가씨의 몸에서 흐르는 전류가 자성을 띄며 그 공기가 흩어지지 않게 붙잡고 있었다. 꼭 커다란 투명 공 안에 있는 것 같네.

내가 기둥 뒤에서 나오며 말하자 마빡 아가씨는 마스크를 벗으며 말한다.

“위험해 보이는데 순순히 너만 보낼 줄 알았냐? 당연히 미행했지.”

“이건, 프라이버시 침해예요!”

“프라이버시는 무슨! 이게 도대체 뭐야, 미친놈아! 총질하고 사람을 죽여?!”

역으로 빼엑! 소리치는 아가씨, 그에 할 말이 없어서 왼손으로 머릴 긁적였다. 음, 할 말이 없네. 이걸 뭐라고 변명해야 할까...

“음, 저에 어둠 인격에 그만...”

가볍게 농담을 했지만 마빡 아가씨의 표정을 보곤 입을 다물었다. 살짝 울먹임이 섞인... 걱정하는 얼굴. 하긴, 사람이 죽었는데 나처럼 가벼운 게 이상한 거겠지. 미르가 유혈에 잠겼을 때도 느낀 거지만 우리 아가씨 좀 마음이 여린 면이 있으시다니까.

가볍게 헛기침을 한 뒤에 난 다시 입을 열었다.

“농담이고, 추잡한 다툼이 있었어요. 역시나, 북쪽답게 시궁창이더라고요.”

“하아.”

그런 내 답변에 아가씨는 얼굴을 감싼 채로 돌아버리겠다는 듯이 한숨을 내뱉는다. 그에 뒤에서 멀뚱히 서 있던 양우영이 입을 열었다.

“새벽아, 아가씨가 너 많이 걱정하더라.”

“앗, 그런가요?”

“이렇게 굳이 연루될 위험을 쓰면서도 가겠다고 고집을 부리시더라니까? 나도 끌려왔어.”

“헤헤, 제가 좀 충신이긴 하죠!”

저 고귀한 아가씨께서 날 걱정해서 위험을 무릅쓰고 오시다니. 좀 감동이긴 하네! 이곳에 떨어지고 나서 마냥 헛되게 살지 않았구나! 그렇게 내가 살짝 감격하고 있을 때, 양우영은 이내 진지한 얼굴로 말을 이어나갔다.

“그리고 니가 날뛰는 것도 다 봤다. 아가씨가 여기 내부 CCTV를 해킹했거든. 전선에 통하는 자기 신호를 분석해서 모방한다나?”

“...와, 그런 것도 가능하군요.”

“그나저나 도대체 뭣 때문에 이런 미친 짓을 벌였어? 내가 말했잖아. 군벌이랑 연관된 사람 같다고. 너, 사고 이후로도 꽤나 냉정하잖아?”

진지한 양우영의 질문에 살짝 고민했다. 그래, 어쨌든 설명 없이 지나갈 순 없겠지. 하지만, 나야 이미 저질렀다고 해도 두 사람이 여기서 공범으로 걸리면 곤란할 텐데... <눈>으로 한 번 지상을 훑어본 후, 난 고갤 끄덕였다.

“따라오세요. 설명해 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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