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자를 위한 연중작은 없다-138화 (138/350)

< 28화. 사람이 살만한 곳은 아닙니다. >

8.

2층에서 적당한 술병 하나를 쥔 뒤, 난 자욱하게 낀 <부패 구름>을 뚫고 전산실로 안내했다.

설명하기에 앞서 두 사람이 이곳에 방문했다는 흔적은 지워야 했다. 나야 사람들 앞에 모습이 드러나서 어쩔 수 없다고 해도, 그렇다고 두 사람까지 엮일 필요는 없잖아. 그런 내 말에 마빡 아가씨와 양우영도 어느 정도 동의했다.

-파지지지지직!

클럽에 따로 마련된 전산실에 들어서자마자 아가씨가 전기를 내뿜어 컴퓨터들을 튀겨버린다. 모락모락 흘러나오는 연기들, 전기로 지졌으니 확실하겠지. 그거에 난 오면서 머리칼을 잘라 넣고 <연금술>로 가공한 술을 흩뿌렸다.

“뭐하는 거야? 안쪽에 있는 전자 기판을 다 태워버렸으니까...”

“그래도 불태우는 게 확실하죠! 아가씨, 스파크 하나만 주세요!”

“...”

“빨리요!”

그런 내 재촉에 아가씨가 한숨을 내쉬며 스파크를 하나 만들었다. 그 작은 스파크에 순식간에 불길에 휩싸이며 타오르는 전산실, 그 광경에 흡족하게 고갤 끄덕이고 밖으로 나와 그 문을 닫았다. 음, 불 끄는 거? 나중에 온 사람이 알아서 하겠지.

“자, 불도 질렀으니 빨리 도망치자.”

밖으로 향하는 통로에 앞장서는 양씨의 재촉, 그에 난 <눈>으로 지상을 다시 한 번 훑었다. 아직 경찰차는 오지 않았지만 사람들이 좀 모여 있었다. 입구에 깔린 <부패 구름>를 뚫고 나왔다간 시선이 쏠릴 거다.

“그쪽으로 말고 비밀통로 쪽으로 가죠.”

“비밀통로?”

“네. 제 감각에 걸린 게 하나 있거든요.”

맨 처음 안내를 받아서 들어오기 전부터 난 이곳을 한번 훑었다. 당연히, 여기서 환풍구와 연결된 비밀 통로에 대한 존재도 파악했다. 비밀번호를 눌러야하는 방식이지만 <과거시>로 알아내거나 전자 장비를 다루는 마빡 아가씨가 하면 되니 문제없지.

“입구엔 아직 <부패 구름>이 깔려있을 텐데, 그거 뚫고 나오면 시선 쏠릴 거예요. 따라오세요.”

그런 내 말에 두 사람 모두 수긍하며 내 뒤를 따라왔다. 향하는 곳은 4층, 내가 초대를 받고 처음 안내된 곳이다. 앞쪽에 나뒹구는 마력 각성자 보디가드의 시체를 넘어선 뒤, 방 안에 들어서자 마빡 아가씨가 좀 쇼크 받은 표정으로 소파 쪽을 바라봤다.

“...너, 이런 여자애들도 죽인거야?”

딱딱하게 굳은 얼굴을 한 채, 단단히 화가 난 음성으로 묻는 마빡 아가씨. 안 죽였다고 발뺌하기엔 소파 쪽에 죽어있는 두 소녀 접대부들 모두 내가 손을 쓴 흔적이 훤히 티가 났다.

눈깔에 <독침>이 박힌 애는 맞은 눈구덩이를 중심으로 검은 핏줄이 올록볼록 솟아올라 있었고, 다른 한 아이는 총에 맞아 죽었지만 그 전에 끔찍한 고통에 시달린 것처럼 얼굴이 눈물콧물 범벅이고 얼굴이 잔뜩 일그러져있었다. <악취 구름>에 노출됐다고 하지만 엄살이 심한 듯하네.

어쨌든 난 황급히 진정하라는 듯 빈손을 내밀며 대답했다.

“착각하시는 것 같은데, 쟤네들 민간인이 아니에요! 은령이라고... 일종의 미녀 암살자라구요! 저 시체 보면 특수한 독침하고 블로우건을 들고 있는 게 보일 걸요? 한 번 뒤져보세요.”

그런 내 해명이 양우영이 먼저 다가가 시체를 훑곤 고갤 끄덕였다.

“진짜야. 바람총을 쥐고 있어. 뭔진 모르겠지만 독침에선 마력이 희미하게 느껴지고.”

“상황이 급박해서 어쩔 수 없이 죽인 거예요! 어쩔 수 없었다구요!”

“시발, 도대체가...”

내 해명에 이마를 짚으며 욕설을 내뱉는 마빡 아가씨, 나는 나뒹구는 시체를 치우고 테이블에 있는 술잔에 위스키를 따르며 입을 열었다.

“심란하면 술이라도 한 잔 하실래요?”

“아니, 술이 넘어가겠냐?!”

“아깝잖아요. 딱 봐도 비싼 건데. 그리고 아직 시간 많아요. 그냥 여기서 설명할게요.”

시바스리갈, 발렌타인 30년 같은 술이 보이는데 이걸 어케 참음... 뭐, 소파에 묻은 총탄 자국에서 흘러나온 핏자국과 깨진 술병에서 흘러나온 술과 유리 파편이 조금 거슬리지만 놓칠 순 없지. 그런 내 모습에 양우영은 은근슬쩍 자기도 달란 듯이 손짓한다.

그 모습에 맞은편에 앉은 마빡 아가씨가 얼굴이 더 찌그러지는 가운데, 난 소파에 앉아 해명을 시작했다.

“일단, 설명을 드리자면 제가 아니라 ‘남궁진아’씨를 노리고 절 부른 거였어요.”

“날?”

예상치 못한 대답인 듯, 눈을 동그랗게 뜨며 자길 가리키는 아가씨. 그에 난 고갤 끄덕였다.

“네, 국경을 넘을 때부터 정보가 흘렀다고 하네요. 유명한 귀빈인데다가 대형 트레일러를 끌고 갔는데, 소문이 안날 리가 없다고 하더군요. 그와 관련돼서 조사를 하다가 제가 있는 걸 파악한 것 같고.”

“...”

“그리고, 절 부른 놈의 목적을 한 마디로 말하면...”

손을 뻗어 테이블 아래쪽의 서랍을 열었다. 역시, 내게 건넸던 약병이 가득하다. 그 병 하나를 꺼내 위로 올려놓았다.

“이걸, 아가씨보고 먹이라고 하더라고요.”

“...딱 봐도 마약이네.”

“네, 먹어보니까 <연금술>로 가공된 ‘붉은 꼬리’가 들어간 메스암페타민이에요. 약물 의존성을 강화시켜서 마력 각성자도 중독될 수 있게 한 쓰레기죠.”

“그러니까. 아가씨에게 약 먹이라고 해서 이런 짓을 저지른 거야?”

자기를 노렸다는 말에 마빡 아가씨가 침묵하는 가운데, 양우영은 술을 홀짝이며 좀 납득 된다는 듯이 되묻는다. 그에 난 쓰게 웃었다.

“이것뿐이라면 이런 짓까진 벌이지 않죠. 그냥 거부하고 넘어가려고 했는데... 제 약점까지 가지고 있더라고요. 아니, 미르에 입학하는 대가로 일부러 약점을 만든 거라고 해야 하나?”

“뭔 소리야?”

“Tv를 한 번 봐주시겠어요?”

리모컨을 들어 Tv를 조작했다. 그리고, 내가 봤었던 동영상을 재생시켰다. 굳은 표정으로 움직이는 ‘진짜 한새벽’. 음, 다시 봐도 역겹네. 강간, 교살... 클라이 막스로 식인까지. 그 5분 남짓한 끔찍한 영상에 마빡 아가씨는-.

“우웁, 우웨에에에엑!”

끝부분에 갈수록 얼굴이 창백해지더니 결국 옆에 토한다. 양우영도 그리 좋은 표정은 아니다. 그에 난 리모컨으로 영상을 끄곤 쓰게 웃었다.

“보다시피 ‘이전의 한새벽’이 찍은 스너프 비디오에요. 미르에 입학 할 수 있었던 것도, 그리고 보육원을 기존 조폭들에게서 탈환할 수 있었던 것도, 절 불러들인 남자의 도움을 받아서인 것 같던데... 이걸, 약점으로 찍게 했나 봐요.”

“...”

“거부하니까 이걸 퍼트린다고 협박하더군요. 덤으로 보육원 애들도 다 죽여 버리겠다고 하고.”

내 대답에 아무런 말을 못하는 두 사람, 솔직히 나도 진짜 한새벽은 아니기에 별 생각 없다. 그냥 내게 지랄해서 조진거지. 그렇게 딱히 할 말을 찾지 못하고 머리만 긁적이고 있는데, 양우영이 그 짧은 침묵을 깨트렸다.

“...발끈할 만하네. 하지만, 너무 과격했어.”

“후후,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지금 생각해보면 치밀어 오르는 짜증에 훼까닥 눈이 돌아간 감이 있다.

그냥 고분고분하게 따르는 척하면서 기회를 엿 볼 수도 있었겠지. 그게 더 일을 수습하기에 좋았을 것 같고... 꼭 저지른 뒤에 후회하는 것 같구만. ‘르피너스의 장난감’ 주인공도 이성적으로 움직이려고 하다가 이렇게 급발진 하곤 했는데 말이지.

그래도 다음엔 좀 더 차분하게 생각하고 움직여야겠다고 다짐하며 난 빙긋 웃었다.

“하지만, 언제나 ‘이성적’일 순 없잖아요?”

“...”

“함부로 약한 모습을 보였다간 약점만 잡힌 채 질질 끌려가겠죠. 그럴 바엔 모두 죽여 버리는 게 나았어요. 그게, 제가 이 사단을 벌인 이유에요. 그리고, 이 쓰레기들은 이런 수단이 걸맞고요.”

좀 정신을 차린 양우영과는 달리, 아가씨는 거하게 빈대떡을 부치고 나서 허릴 숙인 채 계속 헛구역질하며 반쯤 넋을 놓았다. 그에 난 테이블에 있는 조그만 얼음 바구니를 기울여 밑에 고인 생수를 컵에 따르고 내밀었다.

“토했으니까 물 좀 마셔요. 괜찮아 질 테니까.”

고갤 들어 날 보곤 움찔하는 아가씨, 그걸 보니 쓴 웃음이 나왔다. 하긴, 지인이 알고 보니 스너프 비디오 찍은 쓰레기라는 걸 알면 나라도 그러겠다. 그래도, 아가씨는 입가를 소매로 슥 닦곤 내가 건넨 생수를 들이켰다.

그 모습을 보며 난 이 착한 아가씨에게 충고를 건넸다.

“아가씨, 이곳은 아가씨처럼 착한 사람이 올 곳이 못 되요.”

“...”

“보다시피 쓰레기들이 넘쳐나는 곳이죠. 저도 그 쓰레기 중 하나...”

“쓰레기 아니야.”

-콰직!

내 말을 도중에 끊으며 아가씨는 마시던 크리스탈잔을 ‘꽉!’ 쥐어짠다. 그 악력이 어찌나 강한지 그대로 터져나간다. 그 박력에 내가 움찔한 사이, 아가씨는 내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며 선언하듯이 입을 열었다.

“쓰레기면 그 때 미르에서 그런 짓은 못해. 넌 죽을 수 있는 위험을 무릅쓰고 내 목숨을 구해줬고, 다른 애들의 목숨도 구해줬지. 좀 분위기가 꺼림칙하지만... 니가 진짜 쓰레기였다면 애초에 내 친구로 삼지도 않았어.”

“...”

“그러니까 스스로를 비하하지마라.”

생각지도 못한 ‘친구’라는 말. 서예린에 이어 마빡 아가씨에게까지 이런 말을 들을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다.

따흐흑! 감동이네.

이렇게 도내 최상위 랭크 미소녀 두 명이랑 친구... 아니, 서예린은 미소녀가 아닌데? 나이는 어려도 좀 근육근육 하시지. 하지만, 그래서 더 좋지. 강한 녀성.. 왜곡된...

-콰지지지지직!

잠시 서예린을 떠올리며 망상하고 있는데, 마빡 아가씨가 Tv쪽을 향해 피가 흐르는 오른손을 뻗고 전격을 뿜어냈다. 아주 튀겨지듯이 전기에 지져지는 Tv, 이어서 혈흔과 지문이 묻은 깨진 크리스탈 잔도 전기로 지져버린다. 어떤 짓을 한 건지 모르지만 혈흔이 사라진다.

그렇게 깔끔하게 망가트린 후, 아가씨는 오른손을 지혈하며 날 바라보았다.

“앞으로 어떻게 할 거야?”

“...에, 글쎄요?”

어떻게 할 거냐는 질문에 머릴 긁적였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일단은...

“제 자유를 찾기 위해 노력해야겠죠.”

“어떻게?”

“...어, 일단 영상도 지워야겠죠. 드문드문 영상이 잘린 걸 보면 여기 있는 게 확실히 원본은 아니에요. 남한으로 가도 저 영상이 남아있는 이상 자칫 잘못하면 끝장일 테니까 말이죠.”

“누가 이 영상을 가지고 있는지 알고 있어?”

“후후, 다 알아내는 방법이 있죠.”

후드티 안쪽에 있는 전리품 반지를 떠올리며 씨익 웃었다. 아주 애지중지했던 듯, 만질만질하던데 <과거시>를 사용하면 무조건 파악할 수 있을 거야. 그런 내 대답에 아가씨는 팔짱을 낀 채로 추궁하듯 말한다.

“이번 일에 대한 보복, 그러니까 보육원을 향한 테러를 막을 수단은 있고?”

“그건... 없네요. 그러고 보니 절 불렀던 놈이 자기 뒷배가 박범기 상장이라고 하던데...”

“박범기 상장, 개성 쪽을 지배하고 있는 군벌이야. 국경과 인접한 만큼, 친 남한파기도 하고.”

내 말에 곧바로 대답하는 양우영, 그에 마빡 아가씨는 고갤 끄덕였다.

“좋아, 그건 내가 막아볼게. 이번에 할아버지에게 점수를 땄으니, 부탁을...”

“아뇨, 괜찮아요.”

아가씨의 말을 도중에 끊으며 난 고갤 저었다. 그런 내 선언에 두 사람이 날 바라보고, 난 담담히 말을 이어나갔다.

“그런 부담 가는 도움은 제 쪽에서 거절할게요.”

“야! 니가 그런 걸 따질 여유가...”

“아가씨, 냉정해지세요.”

다시 말을 끊으며 난 강조를 위해 감고 있던 두 눈을 떴다. 그렇게 자줏빛 홍채를 보인 채, 아가씨를 향해 조곤조곤 설명했다.

“절 돕다가 혹여 밝혀진다면 타격이 클 거예요. 설령, 돕지 않았더라도 저랑 친분이 있고 같이 북한에 왔었다는 것만으로도 아가씨에게 타격이 가겠죠. 아가씨가 그렇게 소중히 생각하는 그룹의 위상도 떨어질 테고.”

“...”

“전 어린애가 아니에요. 제가 저지른 일은 제가 수습할 수 있답니다. 한 번 믿어보세요! 이번에 유혈이 낭자했던 미르에서도 제 몫을 했잖아요?”

괜히, 이런 착한 아가씨를 끌어들일 필욘 없지. 역시, 난 너무 착해! 그런 내 대답에 망설이다가 한숨을 내뱉은 아가씨는 다시 날 바라보았다.

“진짜 잘할 자신 있어?”

“당연하죠! 제가 누굽니까! 까다로운 마빡이...가 아니라 진아씨의 친구인데요! 그 정도 능력은 있죠!”

실수로 흘러나온 ‘마빡이’란 말에 양우영은 ‘풋!’하고 웃고 아가씨는 말없이 이마에 핏줄 하나를 띄운다. 하지만, 이내 관대하게 넘어가시며 고갤 끄덕였다.

...근데, 사실 별 생각 없다.

아무렇지도 않게 담담한 것도 이미 ‘내 신세가 좆될 만큼 좆됐는데, 이 정도 사건이야 너무 사소해서’ 그래. 진짜 이전의 멀쩡한 나였으면 지금 마빡 아가씨 앞에서 그랜절 박으면서 ‘누님! 누님, 빽만 믿겠습니다!’하고 선언했겠지.

그냥 <과거시>로 파악되는 ‘이번 일과 관련된 놈들’을 다 죽여 버려야지.

그럼 잘 해결되지 않을까? 그 유명하신 강철의 대원수께서도 ‘숙청’으로 모든 걸 해결했잖아? 그러다 공론화 되면 남한에서의 생활은 날아갈 텐데... 에엣, 개 같은 놈들을 족친다고 생각하면 괜찮아! 즐겁잖아!?

그렇게 결심을 다지며 난 술병을 잡고 <연금술>로 가공하면서 두 사람을 향해 입을 열었다.

“자, 그럼 슬슬 경찰들도 오는 것 같으니 이곳도 불태워서 흔적을 지우고 이곳에서 벗어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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