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화. 목장 체험 학습 >
계속 전투적으로 식사를 하면서 그녀는 말을 이어나갔다.
“이전에도 너 같은 좀 고상해 보이는 애들이 몇 명 왔었어. 우리 조에도 예전에 한 명 배정됐었고. 딱 지금의 너와 반응이 비슷했지. 친해지려고 해도 자기는 이곳에 있을 사람이 아니라느니, 아빠가 파벌 싸움에서 다시 복귀해서 자길 데리러 올 거라느니...”
“...전 아무런 말도 안 했는데요.”
“그래, 그렇긴 해. 하지만, 분위기만 봐도 알 수 있단 거지.”
그 말을 끝으로 그녀는 포크를 내려놓고 옆 자리에 앉은 신참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 강렬한 시선에 신참 소년이 난감하다는 듯이 어색하게 웃자, 그녀는 진지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걔네들, 전부 얼마 안가 사라졌어.”
“사라졌어요?”
“그래, 이곳에 적응하지 못해서 얼마 되지 않아 퇴사당하거나 혹은 몰래 담장을 넘어 도망쳤지. 어리석기 그지없게도 말이야.”
그 말과 함께 젤랴는 손가락을 뻗어 소년의 접시에 있던 순대를 집곤 보란 듯이 들어올렸다.
“네가 밖에 나가서 이런 음식을 다시 먹을 수 있을까?”
“...”
“물론, 네 반응을 보아하니 이전까진 이런 걸 많이 먹었을 것처럼 보여. 하지만, 그건 너 스스로 구한 게 아니잖아?”
손가락에 쥔 양순대를 입에 쓱 밀어 넣는 붉은 머리칼의 소녀, 엄지와 검지에 묻은 육즙을 핥은 그녀는 신참 소년을 살짝 냉정한 얼굴로 바라보며 말을 이어나간다.
“전부, 네 부모님 혹은 보호자가 구해다준 거겠지. 냉정하게 따져보자, 넌 그 보호자 없이도 이런 걸 구할 수 있어? 어디서? 어떻게?”
“하하, 확실히 여기서 구하긴 힘들긴 하겠네요.”
“그래, 맞아. 넌 어떻게 느낄지 모르겠지만, 여긴 밖에 비하면 낙원이야.”
그 말을 끝으로 자리에서 일어서며 젤라는 아직까지 테이블의 그 누구도 손을 대지 않은 새끼양 통구이를 향해 손을 뻗었다.
“곱상한 외모와 분위기를 보아하니 어디서 귀하게 자랐던 자식 같은데... 과거는 잊어버려. 살기 위해서라도 잊고 새로 시작해.”
-뿌드득!
우악스럽게 등골을 붙잡고 가장 커다란 갈빗대를 꺾은 뒤, 그녀는 기름과 육즙이 뚝뚝 흘러내리는 그 갈비를 신참의 얼굴 앞에 내밀었다.
“그런 의미에서 먹어. 손으로 잡고. 토할 것 같더라도 위에 쑤셔 넣어. 조장으로서의 첫 명령이다.”
“...하하.”
그 강권에 소년은 쓰게 웃곤 맨 손으로 갈비대를 넘겨받고 한 입 뜯는다. 그에 젤랴가 잘한다는 듯이 고갤 끄덕인 후, 손수 나머지 바베큐를 하나씩 꺾어 같은 테이블 아이들에게 분배하곤 다시 자리에 앉으며 깨작거리면서도 계속 갈비대를 뜯는 신참을 향해 웃었다.
“어느 정도 받아들일 마음가짐은 있는 것 같네.”
“제가요?”
“그래. 이전에 왔었던 귀~한 집 애는 거부했거든.”
자기 몫의 바비큐 다리를 호쾌하게 뜯고 우물거리며 그녀는 말을 이어나갔다.
“그땐 내가 조장이 아니었지만 이전 선배 언니가 지금과 똑같이 말하면서 넘겨줬었지. 참 멍청한 년이야. 여기에 들어오게 된 것만으로도 진짜 다시없을 행운인데 말이지.”
“음, 과연 행운일까요?”
“행운이지! 야, 먹고 사는 것만큼 중요한 게 어디 있어?!”
신참소년에게 뭘 모른다는 듯이 고갤 절래절래 저은 그녀는 타이르듯이 다시 입을 열었다.
“설령, 여기 일이 적성에 안 맞더라도 아저씨들에게 열심히 해봐. 일을 못해서 퇴사하게 되더라도 ‘태도’만 좋으면 직업을 구해다 주시니까.”
“직업이요?”
“그래, 이건 비밀인데... 너한테만 말해줄게. 넌 이걸 듣고도 별로 대놓고 티를 내진 않을 것 같으니까.”
말하기 전에 테이블의 소녀들이 식사에 정신 나간 것을 확인한 뒤, 넓적다리 바베큐를 접시에 잠시 내려놓으며 입을 열었다.
“여기서 퇴사하면... 남쪽 사람들이나 외국인들을 상대하는 고급 창녀로 취직할 수 있어! 아니, 너 같은 경우엔 창남인가?”
“푸흡! 케흑, 켁!”
고급 창부로 취직할 수 있다는 대꾸에 마시던 탄산음료를 살짝 뿜어내는 신참, 그 어리숙한 모습에 젤랴는 킬킬거리며 웃었다.
“이곳에서 잘 먹고 활동하면 살이 오르니 겉보기엔 부잣집 아이들과 다를 바가 없어지지. 말투만 좀 교정하면 남쪽 사람들을 대상으로 활동할 수 있게 되는 거야.”
“하하... 그런 일은 하고 싶지 않아요.”
입을 닦으며 질색하는 소년, 그에 젤랴는 양고기를 뜯으며 어깰 으쓱였다.
“하하, 넌 진짜 도련님이었나 보네? 다른 애들은 하고 싶어서 안달이어도 못하는 일인데 말이지.”
“도련님은 아니에요.”
“그래그래, 알겠어.”
소년의 대꾸에 건성으로 대꾸하며 젤랴는 다시 작게 속삭였다.
“사실, 여기 목장은 직원을 뽑는 것보다 창녀를 만드는 곳에 가까워. 직원으로 취직하는 애들은 별로 없거든. 뽑혀오는 애들도 여자애들이 더 많고, 간간히 오는 남자애들은 너처럼 여리여리한 소녀 같은 애들이지.”
“허, 생각보다 잘 아네요?”
젤랴의 말에 신참은 의외라는 표정으로 젤랴를 바라보고, 젤랴는 어깰 으쓱였다.
“대꾸를 들어보니 너도 이미 눈치 채고 있는 것 같네? 하긴, 어느 정도 눈치가 있으면 알아차릴 수밖에 없어. 생각해봐, 바보가 아닌 이상, 귀한 밥까지 먹여주면서 힘 약한 소년소녀를 뽑아서 쓰겠어? 실제로 밖에서 매춘부로 활동하는 선배 언니도 있지. 조장들 밖에 만나지 못하지만 말이야.”
“흠.”
“그리고, 말했다시피 이건 나쁜 게 아니야! 남쪽 사람 하나 잘 물면 그대로 신분상승이니까. 아, 참고로 다른 애들에게는 비밀이다! 괜히 조장들만 아는 게 아니야. 이런 거 알려주면 그냥 창녀짓 하겠다고 일을 대충하는 애들도 있거든. 넌 좀 달라보여서 말해준 거야.”
살짝 앞쪽에 눈짓을 보내는 젤랴, 그에 신참은 앞에서 게걸스럽게 고길 뜯는 조원 소녀들을 보며 고갤 끄덕였다. 그렇게 어느 정도 대화를 튼 뒤, 신참 소년은 양고기를 깨작이며 이런저런 질문을 이어나갔다.
“좀 전에 그 김명섭이란 어른은 누군가요?”
“우리 이사님이야. 예전엔 고위 공산당원이라고 하는데... 지금은 그냥 아저씨야. 가끔씩 애들에게 치즈도 주고 사탕도 주고 그래. 그나마 무서운 어른들 밖에 없는 이곳에서 인기인이고.”
“...제가 보기엔 가장 무서운 사람이던데요.”
“그분이 무서워? 햐, 너 견학 제대로 안 했구나?”
“아니, 진짜에요. 설마 저런 분이 있을 줄은 몰랐어요. 일이 좀 꼬이겠네요.”
“뭔 소리야? 일이라니?”
“아니, 아니에요.”
...
“외부와 연락이 되는 건가요?”
“한 달에 한 번 외유를 나갈 수 있어. 신청하면 약간이지만 용돈도 받기도 하고. 하지만, 그리 추천하진 않아.”
“왜죠?”
“...알다시피 이곳에 들어오면 다들 외모가 물이 올라. 가끔씩 외출 가서 아이들이 납치되곤 해. 이전기수만 하더라도 외출을 갔다가 2명이 납치됐어. 찾지 못했고.”
“흠.”
“그러니 되도록 안 가는 게 좋아. 아이들도 되도록 안 나가려고 하고. 휴일엔 그냥 Tv나 보라구! 여긴, 남쪽 오락 방송도 나오거든!”
...
“3학년을 다 채우면 다른 곳으로 전출을 가. 아주 가끔씩 언니오빠들도 방문해. 일이 바빠서 그런지 1년이 지나면 대부분 안 오지만.”
“그렇군요.”
“가끔씩 선물도 보내.”
...
“근데, 이름 들어보니까 외국사람 같은데 왜 여기 있어요?”
“아, 우리 가족이 주북 러시아 외교관이었거든.”
“외교관?”
“응, 엄마 말로는 미궁 사태 이후로 방치됐다고 해. 나중에 짐수레 밀고 탈출하려고 했는데, 재수 없게 폭도들에게 걸려서 탈출을 못 했대!”
“그래도 러시아 정부가 구해주지 않았나요?”
“하, 퍽이나! 그 뒤, 남쪽과 통일이 되면서 폭도들에게 아빠가 죽고 나와 엄마만 살아남았지. 엄마도 어떻게 조폭들에게 붙잡혀서 창녀 노릇하다가 죽고 난 이곳에 오게 된 거야. 운이 좋지.”
...
“근데, 제게 되게 잘해주시네요?”
“뭐?”
“아니, 사실. 제가 좀 첫인상이 안 좋거든요.”
“하긴, 그렇긴 해. ‘난 너희 천민들과는 다른 사람이야!’라고 말하는 부잣집 애의 아우라가 뭉클 거렸거든. 게다가 비실비실해보였고.”
“...거 되게 직설적이시네.”
“그래도 뭐, 어쩌겠어? 내 쫄따구가 됐는데 받아들여야지. 아, 그리고 난 받아들이지만 다른 애들은 꼬장 좀 부릴 거다. 알아서 해.”
3.
새로 온 신입들을 위한 연회가 끝난 뒤, 각 조는 모여서 숙소방으로 흩어졌다.
조마다 따로 방을 사용했는데 그 내부 시설은 90년대 남쪽 군대 생활관과 비슷했다. 숙소로 들어온 뒤, 아이들은 자기들이 처음 이곳에 왔을 때 당했던 것처럼 신참들에게 ‘신고식’을 거행했다. 신고식 종류는 반마다 달랐는데, 젤랴가 조장인 치즈반은 푸른곰팡이를 씻은 구정물을 완샷하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치즈반은 전입 당일 날에 신고식을 거행하지 않았다.
자칫 잘못하다간 먹었던 걸 그대로 토할 수도 있으니까. 북쪽에선 평생 먹기 힘든 호화로운 식사를 했는데 그걸 고스란히 토한다는 것은 죄악이나 다름없다. 그렇기에 치즈반의 소녀들은 신참에게 ‘내일 신고식을 해야 치즈반이니 넌 같은 반이 아니다.’라거나 ‘신고식이 엄청 고통스럽다’, ‘딱 보니 폐급이네.’라는 등의 으름장을 늘어놓았다.
젤랴 또한 딱히 그런 아이들을 제지하지 않았다.
어차피 자기가 막아봤자 안 보이는 곳에서 할 게 뻔하니까. 신고식이 신참에게 망신을 주며 기를 꺾긴 하지만, 이건 외부인이 무리에 들어오려면 당연한 과정 중 하나였다. 추가로 신참을 고분고분하게 만드는 것도 있고.
그렇게 으름장 놓는 후임들에게 둘러싸여 난처한 미소를 짓는 신참을 향해 그윽한 눈빛을 보낸 뒤, 10시가 되자 취침 소등에 들어갔다.
“...으음.”
그리고 왠지 서늘한 느낌에 젤랴는 잠에서 깨어나 부스스한 눈으로 벽에 걸린 시계를 확인했다. 새벽 1시, 주위를 둘러보니 개인 내무반 침대에서 자고 있는 후임들이 보인다. 하지만, 신참 자리의 침대는 비어있었다.
“하, 망할.”
그 광경에 젤랴는 한숨을 내쉬며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났다.
부잣집에서 온 애들 같은 경우엔 처지를 비관해서 자살이나 탈출을 시도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실제로 그녀가 여기 있던 2년 동안, 도망친 애들도 몇몇 있고. 솔직히, 그녀 입장에선 탈출하건 말건 별 상관하지 않지만...
문제는 도망자가 발생한 조의 조장은 어른에게 무지막지하게 쿠사리를 먹고 정직원이 될 자격을 박탈당한다는 사실이었다.
괜히, 조장 중에서 가장 짬이 밀리는 자기에게 이번 신참이 온 게 아니다. 말 그대로 사고를 칠 것 같은 놈이어서 온 거다. 신참이 도망쳤을까? 젤랴로선 생각하기 싫은 일이다. 고급 창녀로서 살아가는 것도 나쁘진 않다만 그래도 여기가 더 좋다.
혹시, 그냥 밤중에 화장실에 간 것일 수도 있으니 그곳부터 확인해야겠다고 생각하며 내무반에서 나온 순간-.
“어휴, 저 새끼...”
복도 한 켠에 서서 오른손을 위로 뻗고 있는 신참의 뒷모습에 젤랴는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그나저나 화장실 방향도 아닌데 도대체 뭐 하는 걸까? 한숨을 내쉬며 데리러 가려고 했는데...
“...?”
문득, 신참의 모습이 이상하다는 걸 눈치 챘다.
신참은 목덜미까지 내려오는 흑단 같은 단발 머리칼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보이는 뒷모습은... 형태는 똑같지만 깨끗한 백색 머리칼이었다.
그 모습에 문득 Tv에서 본 공포 괴담이 떠올랐다.
자기 밖에 없는 샤워실 거울에 누군가가 비춰 보인다느니, 흉가에서 귀신을 보았다느니... Tv에서 그걸 봤을 때, 남쪽 샌님들은 별걸 다 무서워한다고 비웃었는데 지금 자신에게 비슷한 일이 닥치니 심장 한켠이 굳는 느낌이었다. 그에 그녀가 멈칫한 가운데-
“...”
한 손을 위에 뻗은 신참이 돌연 고갤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잔뜩 충혈된 눈, 그리고 새카만 어둠속에서 타오르는 듯이 빛나는 자줏빛 홍채. 그건 절대 자연적인 색채가 아니다. 그 섬뜩한 모습에 젤랴가 반사적으로 뻣뻣하게 굳은 가운데, 신참은 스산하게 웃으며 조용히 하라는 듯이 왼손 검지를 입가에 댄다.
“에고, 조용히 끝내려고 했는데 들켜버렸네요.”
그 대꾸와 함께 신참은 천장을 향해 뻗었던 오른손을 내리곤 그녀에게 천천히 다가온다. 그에 계속 굳어있던 젤랴는-.
-빠각!
반사적으로 주먹을 날렸다.
정확히 안면을 후려치는 강타. 잘 섭취한 영양과 또래 동양인 아이들에 비해 큰 체격, 추가로 노동으로 단련된 근육까지. 세 가지 요소가 합쳐진 그녀의 주먹은 웬만한 고등학교 체육부 학생을 능가하는 피지컬을 가지고 있었다. 그 깨끗한 정타에-.
“케흑!”
스산한 분위기로 다가오던 신참은 그대로 뒤로 나뒹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