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화. 체험 학습 소감문 >
1.
다시 생각해도 세상은 참 생각할 수 없는 일의 연속이다.
작가에게 5700자 같은 건 쓰지도 않았는데 혼자서 꿈꾸다가 소설 속으로 끌려오고, 시비 거는 고딩 애들 몇 명 두들겨 패니까 그중 한 놈이 암타(암흑타락)해서 범죄자와 손잡고 미르에 대규모 유혈사태를 일으키기도 한다.
그러니, 이번 일도 그리 놀랍지 않아.
박범기 상장과 연관되어 있는, 고작 ‘스너프 비디오 제작’과 ‘고급 창녀 육성’하는 2선급의 조직의 보스가 사실은 미궁의 악신들 중 하나인 ‘모라티온’의 신도였고. 그 놈이 자신과 좀비의 영혼을 바쳐 강력한 상위 언데드를 소환한 것도 그리 놀랍지는 않은...
「크아아아아아!」
공포를 유발하는 섬뜩한 염파(念波)에 난 간신히 행복회로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좀 어거지로 쓴 <녹색용의 포효>, 불완전하긴 했다만 그래도 강력한 마법인데 해골 기사는 그걸 정통으로 맞고도 집요하게 따라온다. 피해가 없진 않은 듯, 갑옷 곳곳이 부스러지고 해골의 표면 또한 좀 그슬렸지만 말이다. 싯X?! 개연성 꼬라지하곤! 이게 말이 되냐?
“하악, 하아아악!”
손상으로 인해 숨이 잘 안 쉬어지는 폐를 헐떡이며 등에 멘 가방에 손을 넣었다. 준비해놓은 1L 화염병을 꺼낸 뒤, <연금술>로 후가공을 마치고 남은 쥐꼬리만한 마력으로 섬세하게 근육을 쥐어짜 해골 기사에게 내던졌다.
내 작은 체구로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멀리 날아간 유리병은-.
-파캌!
정확하게 해골 기사 앞쪽에서 깨지며 그 자줏빛의 내용물을 흩뿌렸다. 이어서 맹렬하게 타오르기 시작한다. 벤젠과 휘발유 그리고 스티로폼을 섞은 야매 ‘네이팜’에 그 성질을 <연금술>로 강화한 것, 한 마디로 점착화염 폭탄이다.
...근데, 느려지질 않네.
-아니, 이 병신들 눈치하곤! 뒤에 달린 것 보고 철문을 열어놨어야지!
그 와중에 운전석에 앉은 양우영은 목장 밖을 향해 전력 질주하다가 보육원 아이들이 철문을 다시 틀어막은 걸 보곤 절규하더니 그대로 핸들을 꺾어 목초지의 울타리를 부수고 달리기 시작했다. 울퉁불퉁한 흙길, 곳곳에 바위까지 박혀있으니...
“으윽, 우웨에에엑!”
“으익!”
트럭이 미친 듯이 흔들리고 덩달아 짐칸에 내던져진 나와 붉은 머리 꼬마도 밖으로 튕겨져 나갈 것처럼 튀어 오르며 입으론 토사물을 흩뿌렸다. 참으려고 했는데 먹은 게 많아서 어쩔 수 없더라. 운전석 뒤쪽 창살을 힘껏 붙잡은 채 우린 그렇게 서로에게 토했다.
하지만, 지금 고작 토사물이 묻는 게 문제가 아니다.
「권능의 힘으로 이 땅에 무덤의 비석을 세우니...!」
거의 100m 이상 거리가 벌어졌어도 맹렬하게 쫓아오던 해골 기사, 흙길로 가면서 트럭이 느려지면서 놈은 우리를 따라잡았다. 이어서 기괴한 음성을 내뱉으며 해머를 골프채 휘두르듯 힘껏 휘두른다. 그와 함께 해머에 후려 맞은 지면 부근에서-.
“?!”
길이 1m남짓한 직육면체 비석 4~5개가 솟구치더니 포탄처럼 날아온다. <눈>을 통해 땅속에서 벌어지는 그 변화를 미리 포착한 난-
“!!”
-덜커덩!
왼손으론 옆의 붉은 머리칼의 소녀의 목덜미를 쥐고, 오른손으로 쥐고 있던 트럭 운전석 뒤쪽 창살을 놓았다. 그리곤 억지로 뛰어내렸다. 그리고, 눈치하난 존나 빠른 양씨도 낌새를 눈치챈 듯 문짝을 열고 뛰어 내린다.
-쿵! 콰작! 으저적! 끼이이익!
우리가 그렇게 목초지를 나뒹구는 동안, 봉고차는 포탄처럼 날아온 비석에 맞고 뒤집혀 나뒹굴더니 교통사고 난 것 마냥 불길에 휩싸여 폭발했다.
「망자의 고통을 맛보아라!」
그 가운데 내 네이팜과 특유의 창백한 불길을 휘감은 해골 기사는 놓치지 않겠다는 듯 ‘고문’ 속성을 가진 두개골 모양의 청록색 <불꽃 해골>을 날린다.
「크아아아아아!」
개성 있는 비명을 내지르며 날아오는 청록색 두개골, 목표는 가장 빨리 몸을 추스르고 일어나는 양우영이었다. 그 속도는 일반인이 농구공을 쎄게 던지는 것 정도였지만 쓰러진 우리를 맞추는덴 충분했다.
-끼에에에엑!
해골에 직격하는 순간, 청록색 불길에 휩싸이고 양우영은 일어서다가 그대로 기괴한 비명을 지르며 나자빠진다. 그렇게 우리가 무력화 되자 해골 기사는 광기어린 웃음을 흘리며 도약하려고 했 지만-.
-쿵! 쿠당탕!
그 또한 우리처럼 엎어졌다.
그냥 발을 헛디뎌서 엎어진 게 아니었다. 흙바닥에서 튀어나온 검은 손이 해골기사가 발목을 잡고 있었다.
「으, 으으으! 놔...라!」
손에 쥔 해골 망치를 휘둘러 자신의 발목을 잡은 검은 손길을 가뿐하게 박살내고 다시 일어서려는 해골 기사, 그러나 바닥에서 검은 손들이 우후죽순처럼 쭉쭉 솟아나 그를 바닥에 끌어당겼다. 그의 해머 또한 검은 손에 의해 붙잡혀 땅으로 스며들어간다.
「캬아아아악! 캬아아아아!」
검은 손에 뒤덮였어도 청록색 불길을 맹렬하게 피워 올리며 이쪽을 향해 기어왔지만, 그런 발악이 무력하게도 기사는 결국 검은 손에 뒤덮여 어딘가로 사라진다. 그렇게 불과 우리를 5~6m 남겨 둔 채 사라졌다.
-...시X! X바아알! 뒤지는 줄 알았네!
그 뒤, 양우영은 뼈가 부러진 왼팔을 붙잡은 채 살아남았다는 기쁨의 욕설을 내뱉는다. 그에 나도 <녹색용의 포효> 실패 부작용으로 한 번 피를 토하고 몇 번 헐떡대다가 웃었다.
“케흑, 헤에엑. 헤... 헤! 짜릿..했죠?”
-두 번만 짜릿하면 죽겠다! 씨발, 하아아아! 미치겠어! 아아아악! 전신이... 전신이 불타는 것 같아! 흐억! 으으으으!
“헤, 케흑... 환상통이에요.”
떨리는 손으로 안주머니에서 전자 담배를 꺼내 카트리지를 갈아 끼고 피웠다. 전자 담배 형태로 바꾼 내상 치료용 회복 포션, 폐를 통해 들어가는 약기운에 속이 좀 진정된다. 그렇게 천천히 뻐끔거리며 피우며 난 같이 짐칸에 내던져진 빨간 머리 소녀를 응시했다.
“괜찮아요?”
“...죽겠어.”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엎어진 소녀가 초췌한 얼굴로 대꾸한다. 평범한 일반인이, 그것도 모라티온의 신도에게 한 번 생기(生氣)를 빨렸음에도 용케 지금까지 정신을 잃지 않았다. 대단하네. 흠, 그 영혼이 마력 각성자와 많이 닮아 있어서인가?
내가 괜히 친한척하며 쟤를 영입하려고 한 게 아니다.
저 아이도 영혼도 김철수와 도시아처럼 그 ‘영혼의 울림’이 다른 차원에 걸쳐져 있었다. 그래, ‘마력 각성자’처럼. 나름 유력한 후보지. 어쩌면 마력을 각성 안 했더라도 영혼이 다른 차원에 걸쳐져 있으면 영적인 타격을 더 버틸 수 있는 걸지도...
-헤윽, 으으으윽! 시X! X바아아알! 아아악!
“...하아.”
환상통에 ‘꽥! 꽥!’ 울부짖는 양씨의 모습에 난 고갤 저으며 잡생각을 털어냈다. 지금은 그런 학술적인 고민을 할 때가 아니지. 주위를 둘러보니 이미 우리가 벌인 소동 때문에 건물들에서 기척이 느껴졌다. 그래, 이렇게 된 거...
“일단, 기숙사 가서 좀 쉬죠.”
2.
돌아온 기숙사는 예상대로 난리가 나 있었다.
양털 세척장 쪽에서 들려오는 시끄러운 총성과 해골 기사의 강렬한 염파에 기숙사의 애들은 모두 깨어있었고, 건물 안의 어른들이 모조리 죽어있는 걸 보곤 반쯤 패닉에 빠져있었다. 당연히, 쩔룩거리며 우리가 들어오자 경계가 집중됐다.
그래도, 젤랴가 어떻게 애들에게 잘 설명해줘서 넘어갔다.
덕분에 양우영과 나는 따뜻한 물에 샤워를 하고 따뜻한 차도 마시며 몸을 추스를 수 있었지. 도중에 온 몸에 피를 묻힌 채로 귀환한 철수와 보육원 애들 때문에 한 바탕 험악해졌지만 어떻게 잘 넘겼다.
그렇게 다사다난한 밤이 지난 뒤, 우린 날이 밝자마자 양털 세척장을 향해 이동했다.
-에구구... 죽겠다. 죽겠어. 그냥 너희끼리 가면 안 되냐? 난 더 자고 싶은데...
카트가 덜컹거리자 앓는 소리를 내는 양우영, 그에 난 왼손으로 운전하며 한숨을 내뱉었다.
“그만 좀 엄살 부려요. 포션도 마셨잖아요?”
-아니, 양산품 포션으론 다 낫지 않는다고! 그리고 이건 너 혼자 해도 되잖아!
빼액 소릴 지르는 양씨. 확실히, 샤워장에서 보니까 이 양반도 많이 다쳤다. 대부분 범상치 않은 좀비에게서 두들겨 맞은 상처였는데, 안쪽에 방탄복을 껴입고 추가로 <얼어붙은 외골격>이라는 마법으로 몸 전체를 얼음처럼 단단하게 했는데도 타격이 들어왔다고 하더라고.
솔직히, 저 말대로 나 혼자해도 되는 일이긴 해서 좀 쉬게 해줘도 되지만... 자기 혼자만 쉬겠다는 게 좀 괘씸하거든?
“이게 다~ 피가 되고 살이 되는 경험이라구요! 커리어 필요하다면서요?! 열정을 가지고 따라와야죠! 젊을 때 고생은 사서 하라는 말 몰라요?!”
-시잇~팔, 경험은 무슨...
어쨌든 그렇게 툴툴대는 양우영의 엄살을 들으며 양털 세척장에 도착했다. 훤하게 열린 공장의 대문, 아침 햇살에 드러난 그 내부는 폭발의 흔적과 곳곳에 도자기처럼 경화된 뼈와 살점이 박혀있었다. 게다가...
“이 뭔...”
“맙소사! 아저씨!”
그 한 켠에 멀쩡한 두 구의 시체-모라티온의 신도와 놈이 부린 특출난 좀비가 있었다.
다른 카트를 타고 뒤따라온 조장 급 소년소녀들이 비명을 지르며 황급히 대표의 시신 쪽으로 다가가 몸을 흔든다. 음, 대표님이 평소에 도축하는 양들에게 호감을 많이 샀나보다. 저렇게 진심으로 슬퍼할 줄이야.
“...”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시신 주위에 있던 아이들은 우리를 향해 적개심어린 시선을 보낸다. 그에 카트 뒤쪽에 앉아있던 철수가 AK소총을 살짝 견착하며 입을 열었다.
“쏠까요?”
“아뇨, 괜찮아요.”
지금은 저렇게 노려봐도 이 지하를 보면 달라지겠지. <눈>을 움직여 다시 한 번 지하를 훑은 뒤, 난 카트에서 내리면서 날 죽일 듯이 바라보는 조장 아이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자~ 좀 혐오스런 걸 볼 테니까 마음을 단단히 먹으세요. 그리고 추가로, 위험해 보이는 물품을 건드리지 마세요! 잘못하면 이 꼴 날 겁니다.”
예시로 붕대를 둘둘 감은 내 오른손을 흔든 뒤, 난 앞장서서 도축장의 비밀 지하 장소로 아이들을 안내했다. 지하 계단을 내려가자 얼굴을 구기는 아이들, <부패 구름>은 오래전에 사그라졌지만 특유의 시체 썩는 역한 냄새는 베여있었다.
일단, 가장 먼저 볼 곳은 확실한 물증이 있는 ‘수술실’이었다.
-끼이이익!
문을 열자 수술대 위에 누워있는 팔다리가 잘려나간 시신이 보인다.
잔뜩 고통에 일그러진 얼굴의 여자아이, 눈알이 있는 곳은 휑하니 뚫려있으며 이빨은 모조리 뽑혔다. 잘려나간 팔다리가 수술대 옆의 카트 위에 올려져 있었는데, 하나같이 손톱과 발톱이 다 뽑혀있었고 그 끝에는 침이 박혀있었다.
“...저거!”
“양털조 아영이 아니야?!”
아는 사람인 듯, 얼굴을 확인한 몇몇 아이들이 두 손으로 입을 가리며 두 눈을 부릅뜨는 가운데, 난 <눈>으로 과거를 가볍게 훑고 입을 열었다.
“여긴 박제실인 것 같군요. 정확히 말하면... 엠버밍이라고 해야 하나?”
-엠버밍?
아직도 환상통에 시달리는 듯 얼굴을 찡그리고 있던 양씨가 묻자 난 어깰 으쓱였다.
“우리가 상대했던 좀비들 있잖습니까? 그거 부술 때 나왔던 투명한 용액이 여기 용기의 용액과 같아요. 좀 익숙하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 앰버밍 용액이네요. 마력으로 가공되어 있지만.”
-허, 그걸 알고 있냐?
“제가 연금술사지 않습니까? 대한민국 1타 연금술사 강수영의 수제자. 여기의 정체를 생각하면 좀비로 가공해서 일종의 러브돌로 팔아먹었던 것 같네요.”
과거를 보니까 실제로 움직이는 러브돌로 팔아먹었다. 근데, 그건 그렇다 치더라도... <눈>에 보이는 놈의 시체 가공 기술은 대단했다.
지금 저 시체엔 ‘영혼’이 얽매여 있었다.
찌끄러기가 아닌 진정한 영혼이. 확실히 ‘신의 권능’은 대단해. <강령술>은 9위계의 <죽음의 문턱>이나 보여주는 현상인데, 쪼렙 신도가 비슷한 짓을 하다니. 이것도 연구해 봐야지. 그렇게 참혹한 시신의 모습에 말을 잇지 못하고 있는 아이들을 향해 난 빙긋 웃었다.
“자, 이걸로 어느 정도 증명됐죠? 저희가 괜히 어른들을 죽인 게 아니에요. 이런 짓을 벌이고 있...”
“아니, 아니야!”
그런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10명 남짓한 조장 중에서 가장 연장자로 보이는 소년이 강하게 소리친다. 그에 다른 아이들이 시선이 쏠리자 녀석은 숨을 헐떡이며 중얼거렸다.
“그래, 이전에 납치됐던 아영이지. 하지만, 이게 여기 있다고 지하에서 고문된 거라고 볼 수는 없어.”
“...”
“까놓고 말해서 쟤네들이 이 시신을 여기에 가져다 놓고 증거라고 우기는 것일 수도 있잖아?! 아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