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화. 체험 학습 소감문 >
4.
-아.. 아니, X발!? 이런 게 있어?
비석의 등장에 입을 쩍 벌리며 경악하는 양우영, 어찌됐든 간에 난 그 비석을 보며 ‘더 자세히 알고 싶다.’ 생각했다.
“끄응······.”
그러자 게임 시스템의 보정이 들어가며 관자놀이가 더 지끈거리고, 그와 함께 희미한 과거의 영상이 지나가며 플레이버 텍스트가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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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라티온의 제단
여기, 죽음의 악신-모라티온의 시체 제단이 있다. 20XX년 X월 X일, 김명섭이 세웠으며 들어간 희생양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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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를 읽어 들일 수록 제멋대로 폭주하려는 플레이버 텍스트를 중지시킨 뒤, 한숨을 내뱉었다.
예상대로 모라티온(Moration)의 제단이었다. 정확히는 모르지만 ‘르피너스의 장난감’에서 나온 ‘수집가’라는 보스 몬스터가 섬겼던 신이라는 것밖엔 모른다. 그 신도 놈과 싸워보니 돌죽의 ‘이레데렘눌’과 비슷한 것 같지만 말이지.
그렇게 양우영이 비석을 보며 생각에 잠긴 사이, 난 책장의 상자들을 훑었다.
과거를 훑어본 결과, 오늘 새벽에 죽였던 모라티온의 신도는 혹여 자기의 정체가 들킬 시에 ‘신변보호’-권력자를 협박을 할 만한 것들을 모았다. 실제로 컴퓨터의 과거를 훑던 도중 몇몇 자료를 도중에 빼돌려서 저장하고 여기에 담아두는 걸 봤고. 그러면 당연히...
“찾았다.”
웃으며 한 켠에 보관된 상자를 꺼내들었다. 겉면에 ‘박범기’라고 써진 상자, 그 안에 있는 외장하드를 만지며 웃었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박범기 상장 또한 여기서 제공하는 ‘특별한 서비스’를 받았다. 당연히, 촬영되지 않게 신경을 썼겠지만 이 남자가 그걸 놓칠 리가 없지.
“~♬”
휘파람을 불며 메고 왔던 가방에서 노트북을 꺼내 폴더의 여러 영상들 중 하나를 재생시켰다. 쬐그만 키, 작은 눈, 툭 나온 배, 뽀글이 머리... 거, 돼지새끼를 닳았네. 볼품없는 외형이지만 그래도 무려 개성의 지배자다. 음, 남자애를 안았네? 망측해라. 그리고 좀 잔인하시네.
“히히!”
그 얼굴이 확실하게 나온 걸 확인한 후, 영상을 다 옮기곤 노트북을 닫았다.
좋아, 박범기 상장이 내 목줄을 쥔 것처럼 나도 박범기 상장의 목줄을 쥐었다. 이제 좀 대등한 위치에서 섰네! 그 뒤, 난 다른 외장 메모리들도 싸그리 털어서 가방에 집어넣었다. 아마 협박할 만한 위치의 사람들 영상을 모아놓은 것일 테니 챙겨두면 도움이 되겠지.
그렇게 내가 협박용 비디오를 하나씩 쓸어 담으며 희희낙락할 때-
-야, 너 어떻게 할 생각이냐?
“넹?”
팔짱을 끼고 생각에 잠겨있던 양우영의 급작스런 질문, 그에 내가 고갤 갸웃하자 녀석은 한숨을 내뱉으며 비석 쪽을 향해 턱짓한다.
-이번 사건 어떻게 할 거냐고. 코드 108과 관련된 일이잖아? 그냥 넘어가긴 그래. 한 달 보름 전에 미르에서의 일도 있는데... 게다가 반박하지 못할 증거도 있어.
“글쎄요. 어떻게 할까요?”
그 말에 머릴 긁적였다. 하긴, 그냥 아무런 일 없듯이 덮기엔 사안이 좀 크지? 그런 내 대꾸에 양우영이 날 향해 다시 고갤 돌리며 들뜬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래서 내가 잠깐 ‘어떻게 하면 이번 일로 이득을 극대화 할까?’생각해봤거든?!
“말해 봐요.”
우리 양씨가 잔머리 하난 끝내주지. 내 허락이 떨어지자 양씨는 씨익 웃는다.
-너가 이런 짓하는 목적이 한 마디로 ‘보육원을 보호하기 위해서’잖아? 군벌의 명령을 받아 보육원을 타격할 만한 조직들을 선제 타격으로 없애고, 그 과정에서 누가 범인인지 잠시나마 혼란을 주며, 추가로 밝혀지더라도 널 함부로 건드리면 좋지 않을 거라는 무력시위도 겸하는.
“넵, 맞죠.”
-그러니 까발리자. 북쪽이 아닌 남쪽에. 언론 플레이를 하자는 거지.
양 손바닥을 비비며 양씨는 특유의 양아치스런 미소를 지으며 속삭인다.
-아직 미르에서의 충격이 가시지 않은 만큼, 코드 108의 신도에 관한 건 시선을 확 끌 거야. 북쪽에서 코드 108의 신도를 토벌했다는 걸로 네가 언론의 시선이 끌리면서 유명인이 되면 군벌도 널 함부로 못 건드릴 거야. 자연스럽게 보육원의 안전도 어느 정도 보장될 테지!
당당하게 외치는 양씨, 이번에 미르가 유혈에 잠긴 뒤에 한국 사람들도 코드 108-미궁의 신에 대한 관한 경계심이 대폭 늘어났다.
정확히 말하면 그걸 믿는 ‘광신도’들에 대해서 말이다.
‘미궁의 신이 실존하며 진짜로 힘을 준다.’는 정보는 차단됐지만, 대충 ‘위험한 마법 지식을 계승하는 집단’정도로 알려졌다. 사실, 이 정도는 코드 108에 어느 정도 관심이 있으면 일반인도 알고 있던 이야기다. 다만, 그 사람들의 규모가 많이 커진 거지. 근데...
“으음, 근데 유명해지는 건 조끔... 저희 살인도 좀 저질렀잖아요? 아마, 기자나 수사관들이 조사 좀 하면 밝혀질 텐데요?”
이번 일에 대해 대놓고 알리기엔... 이쪽도 좀 깨끗하진 않다.
날뛰기 시작한지 일주일가량, ‘블랙 생츄어리’에서 이곳 ‘양의 낙원’까지 총 5개 조직이 박살났다. 그 과정에서 아무리 나쁜 새끼들이라곤 하지만 살인을 저질렀다. 그것도 ‘대량살상’을. 아직, 강력한 사법체계가 살아있는 대한민국으로선 넘어갈 수 없는 사안이야.
그런 내 대꾸에 복면 안쪽 양씨의 얼굴이 찡그려진다.
-물증은 없잖아? 나름 철저하게 신경 썼다면서?
“혹시 모르잖아요. 제가 신경 쓰지 못한 증거가 남아있을 지도... 그리고, 아무리 물증이 없다고 하더라도 ‘정황증거’가 있잖아요? 그건 어떻게 하고요?”
-어쩌긴, 필사적으로 아니라고 해야지.
“박범기 상장이 저희 짓이란 거 바로 눈치 깔 텐데...”
말끝을 흐리는 내 대꾸에 양우영은 한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며 한숨을 ‘팍!’ 내쉰다. 그 뒤, 양손을 내리고 날 보며 답답하다는 듯이 소리친다.
-아니, 뭘 망설여?! 어차피 언젠간 들킬 거였잖아?
“그렇긴 하지만...”
-그런 걸로 껄끄러워할 거면 애초부터 이러지 말았어야지! 처음은 빡쳐서 그랬다고 쳐도 더 날뛰면서 조직들을 공격해?!
“헤헤헤, 저의 어둠인격에 그만...”
양우영의 추궁에 옆머리를 긁적이며 대꾸하자 그는 한숨을 내뱉는다. 솔직히, 좀 과격한 방법이긴 했지. 생각 자체가 좀 이상하게 바뀐 건 인지한다. ‘살인’을 추구하는 방향에 거리낌이 없거든. 아니, 오히려 은근슬쩍 더 추구하는 느낌이지.
어쨌든 양우영은 날 계속 설득했다.
-넌 이미 상장에게 찍혔어. 어차피 들킬 거, 오히려 대놓고 양지에 자신을 드러내는 게 널 건드리기 껄끄러울 거야.
“흠.”
-물론, 이전이라면 상상도 못할 방법이지. 조직 폭력배들이긴 하지만 수백 명을 몰살시켰지만. 하지만 지금은 달라! 좋은 구실도 생겼잖아? 코드 108의 신도! 그것도 아이들을 고문하고 박제로 만들던 인간쓰레기! 그들을 구한 미르 생도!
“...”
-적당히 포장한 뒤에 알리자. 어떻게 재벌 아가씨의 힘을 빌리면 쉬울걸? 안 그래도 아가씨가 널 좀 도와주고 싶어서 안달이던데. 응? 응?
안달 난 양씨의 설득, 내가 꿍하니 계속 확답을 하지 않고 생각에 잠겨 있자 양씨는 박수를 한 번 크게 ‘짝!’치곤 말을 이어나간다.
-좋아, 이번 일에 대해 외부에 알리지 않고 넘어간다고 해보자! 그럼 여기 목장 애들은 어떻게 할 거야? 그냥 무책임하게 내버려두고 사라진다곤 안 하겠지? 너 애들한테 죽진 않도록 최선을 다해 보겠다고 했잖아?
“에... 일단은 제 보육원으로 데려와서 보호를...”
생각지도 못한 목장 아이들에 대한 질문, 그에 내가 살짝 당황하며 대꾸하자 양우영의 날카로운 반박이 이어진다.
-하! 어떻게 먹여 살리려고?! 보육원에 딸린 니 농장? 인원이 거의 3배로 늘어나는데 잘 감당하겠다! 아니, 그 전에 애들이 늘어난 건 금방 티가 날 걸? 목장에서 사라진 애들이 보육원에 나타난다? 누가 지금까지 조직을 습격했는지 아주 잘 말해주는 증거가 되겠네!
“...”
-그냥 일을 덮고 넘어가서 얻을 수 있는 이득이 별로 없어! 목장 애들 입장에서도 언론에 관심을 받는 편이 훨씬 더 나아! 기구한 운명, 잔혹한 현실! 언론이 좋아하는 그림이 되잖아?
이젠 목장의 애들을 가지고 날 협... 아니, 설득한다. 그에 난 한숨을 내뱉으며 양씨를 바라보았다.
“덤으로 양우영씨의 인지도도 높이고요?”
-...뭐, 겸사겸사해서.
“겸사겸사해서 아니라 그게 본론이겠죠. 이 사악한 예비 자본가야.”
저 인간이 이렇게 안달이 난 건, 자기 사업을 위한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서다.
애초에 목장 애들에 관한 건 관심도 없었을 걸? 만약, 진짜 목장 애들을 염려했다면 비밀방에 들어서기 전부터 이런 것들을 말했겠지. 은근슬쩍 기숙사로 가서 무책임하게 쉬려고 하지도 않았을 거고.
그런 내 지적에도 ‘어쩔?’이라는 듯이 당당히 가슴팍을 펴고 있는 양씨.
그 모습에 심히 거슬리지만 그래도 난 천천히 고갤 끄덕였다. 확실히, 유명해지면 외부의 시선 때문에 사람을 쉽게 못 건드는 것도 어느 정도 사실이니까. 그리고, 목장 애들을 생각하면 이게 가장 나은 선택인 것 같기도 하고.
역시, 난 너무 착하다니깐?
“좋아요. 남쪽에 알리도록 하죠. 전 현장을 한 번 더 훑어보면서 이교도에 대한 흔적 같은 것들을 찾아볼 테니, 양우영씨는 푹 쉰 다음에 아가씨랑 어떻게 이번 일을 포장할지 의견을 나눠 봐요. 전 북쪽 출신이라 이런 거 익숙지 않으니까.”
-좋아, 그럼 난 돌아가서 한숨 잔...!
내 동의가 떨어지자 해냈다는 듯이 주먹을 꽉 쥐는 양씨, 아주 생글생글 웃으며 밖으로 나가다가... 이내 덜컥 발걸음을 멈추더니 얼굴을 구긴다.
-생각해보니까 지금 여기서 자고 있어선 안 되겠다.
“네? 또 왜요?”
-이전에는 그냥 습격하고 사라지면 그만이었지만 이번 일은 남쪽에 까발려야 하잖아? 그럼 이렇게 놀고 있을 때가 아니야. 아가씨에게 언론 플레이까지 부탁하면 더 촉박해.
고갤 돌려 날 응시하면서 양씨는 말을 이어나간다.
-아무리 네가 철저하게 통신망을 끊고 사람들을 몰살시켰어도... 언제까지 여기 소식이 안 알려질지 알 수는 없어. 여기서 빠져나간 사람이 있을 수도 있고, 아니면 군벌이랑 정기적으로 연락하게 되어있을 수도 있지. 혹여 출퇴근하는 사람이 외부에 알릴 수도 있고.
“그러면...?”
-혹시 모르니 당장 알려야 해. 이곳 경찰이... 아니, 여기선 ‘안전원’인가? 어쨌든 군벌이 수습하러 오면 골치 아파지니까. 아마, 자기 영역 내에서 코드 108의 신도가 활동하고 있던 거니 되도록 묻어버리려고 하겠지. 아! 증거용으로 이곳도 촬영해 놔야겠다!
가슴팍의 바디캠을 다시 켜려는 양우영, 그 모습에 난 재빨리 제지했다.
“잠깐만요! 나머지 상자들 좀 치울게요!”
-응? 왜?
“이 상자에 들어간 것들 여기 대표 녀석이 협박용으로 모아놓은 영상기록인 것 같아요. 알려봤자 별 이득이 없으니 우리가 가지고 있죠!”
-좋아, 그거 치워. 그것 빼고 다 촬영한다.
상자를 치운 뒤, 양씨는 시체가 묶여있는 비석과 밖의 고문실, 박제실까지 다 촬영하고 추가 증거로 컴퓨터에 보관된 스너프 비디오까지 챙겼다. 그리곤 곧바로 밖으로 떠났다. 어떻게 일이 잘 풀리길 바랄 수밖에.
그렇게 홀로 남은 뒤, 나도 비밀방에서 나왔다.
이곳에서 머무르면서 흔적 같은 것들을 알아보겠다고 했지만 사실 그건 핑계다. 내겐 <과거시>가 있으니까. 대충 대표 녀석이 가지고 다니던 물건 하나를 훑으면 다 나오겠지. 내가 여기에 남은 진짜 목적은...
“신기해라.”
박제실에 들어서서 <눈>으로 수술대 위의 시체를 응시했다. 겉으로 보기엔 그냥 시체지만 여기엔 <강령술>로 사역하는 찌끄레기 영혼이 아닌 고통에 몸부림치는 ‘온전한 영혼’이 시체에 묶여있는 게 보인다.
참으로 놀랍다.
북한에 온 뒤, 내가 죽인 놈들의 시체에 남아있는 영혼들을 많이 주물럭거렸지만... 이것과는 비교할 수 없다. 죽은 시체에서 볼 수 있는 ‘혼이 증발하고 백의 찌끄러기만 남아있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이런 걸 그냥 넘길 수는 없다.
불완전한 영혼을 가진 나로선 영혼의 수복을 위해 영혼에 대한 지식은 필수적이다. <눈>으로 심도 있게 관찰하고, 영혼을 <강령술> 룬문자로 주물러봐야지. 어찌 보면 불쌍한 영혼을 괴롭히는 거지만... 그래도 내 코가 석자인 걸?
“그래도 원수는 갚아줬으니까 그 댓가라고 생각하세요.”
<게임 시스템>으로 습득하지 않아서 아직은 살짝 어설픈 룬 문자를 만들어내며 난 영혼을 향해 쓰게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