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1화. 참 잘했어요! 그러니까... >
1.
눈 뜨니 낯선 천장이다.
반사적으로 안구 쪽에 전개한 <눈>을 움직여 주위를 훑었다. 1인 병실, 아침 햇살이 들어오는 창문의 펼쳐진 모습을 보니 남쪽 지역인 것 같다. 소파엔 양우영이 나지막이 코를 골며 자고 있구만.
“...?”
천천히 상반신을 일으키곤 왼손으로 머릴 긁적이며 왜 여기에 있는 지 생각하니... 그래, 좀 기억이 난다. 도축장의 비밀 공간에 있는 ‘시신에 묶여있는 영혼’을 가지고 이리저리 실험하기를 몇 시간. 점심시간 정도가 되었을 때, 한 보육원 아이가 창백한 얼굴로 달려와서 ‘정문에서 외부인들이 몰려온다.’고 알렸다.
그에 나도 실험을 멈추고 정문으로 향했고...
“죽을 뻔 했군요.”
그 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살짝 가슴을 쓸어내렸다.
외부인들은 딱 봐도 북쪽 조폭들이었다. 전원 소총 무장을 하고 있었고 심지어 뒤쪽에는 오래된 장갑차로 보이는 것이 굴러가고 있었지. 대표로 보이는 마력 각성자가 확성기를 들고 ‘개성 안전성에서 왔으니 무단 점거자는 무장을 해제하고 당장 문을 열어라.’고 으름장을 놓는데...
당연히 무시했다.
진짜 안전성-북한의 경찰이여도 문을 열어줄 수 없는데, 조폭들에게 문을 열어줄 순 없었으니까. 애들을 시켜 트럭으로 철문 뒤를 틀어막자, 놈들은 눈치 채고 닥치는 대로 무기를 갈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게 무지 살벌했다.
장갑차 위에 있는 기관포를 마력 각성자가 쥐고 있었는데, 그 특유의 우월한 피지컬로 가뿐하게 긁어버리더라.
‘기이이잉!!’하는 소음과 함께 엄지손가락만 한 굵기의 총알이 날아왔는데, 철문은 물론이고 콘크리트 초소도 구멍이 뻥뻥 뚫리는 흉악한 위력이었다. 문 뒤쪽에 있던 보육원 애들 4명이 그 기관포에 긁혀서 몸이 터져서 즉사했고, 나도 <눈>으로 궤도를 파악하고 재빨리 허릴 숙이지 않았다면 죽었을 거다.
그에 보육원 애들이 패닉에 빠졌고 어차피 도움이 될 것 같지 않기에 난 ‘내부를 경계해라.’란 핑계로 돌려보내고 혼자 농성을 시작했다.
죽은 아이의 시신에 <시체 부패>를 걸고 구름을 날리고, <독침> 마법으로 근처 울타리를 건너오려는 놈들을 요격했다. 배낭에 챙겨놓은 준비물도 부지런히 던져댔고. 천만다행으로 입구 외에는 곳곳에 곰덫이 깔렸고, 장갑차가 우회에서 오지 못했기에 버틸 수 있었다. 그렇게 한계까지 움직이다가...
헬기가 날아와서 ‘제 3사단 수비대가 왔으니 모두 정지하라!’는 방송을 듣고 주저앉았다.
이후로 기억이 없는 걸 보면 그 때 기절한 것 같네. 슬슬 자야할 시간+새벽에 쌓였던 전투의 피로+연이은 <눈>의 사용으로 인한 피로에 나가떨어진 거지. 어찌된 건 진 모르겠지만 남쪽에, 그것도 병원에 있는 걸 보면 어찌 잘 끝난 것 같긴 한데...
자세한 이야기는 옆의 양씨에게 들으면 되지.
-짝! 짝!
“일어나세요. 용사여.”
박수를 쳐서 양우영을 깨웠다. 내 박수 소리에 얼굴을 찡그리며 부스스 눈을 뜨는 양씨. 그는 내가 깨어난 걸 보곤 이내 입이 찢어져라 하품하곤 기지개를 켜며 소파에서 일어났다.
“깨어났냐?”
“네, 오늘 며칠이에요?”
“6월 17일 월요일... 시간은 아침 7시네. 쓰읍.”
입가에 질질 흘린 침을 닦으며 스마트폰을 꺼내 확인하는 양씨, 월요일 아침 7시라니 피곤이 많이 쌓였는지 평소보다 많이 자긴 했네. 나도 자리에서 일어선 후, 오른 손목에 연결된 포도당 수액 링거줄이 꼬이지 않게 가볍게 스트레칭 했다. 몸은 나쁘지 않구만.
“일은 어떻게 됐나요? 제가 여기 입원한 것만 봐도 어느 정도 잘 풀린 것 같은데.”
“일? 흐흐흫! 아주 잘 풀렸지!”
씨익 웃으며 양우영은 품 안에서 작은 카드를 하나 내밀었다. 보아하니... 미르에서 찍었던 내 사진이 인쇄된 신분증이네? 그 아래에 있는 이름은 ‘그레이 쉴드 컴퍼니’? 도대체 이게 뭐냐? 그런 내 시선에 양우영은 아주 당당하게 말한다.
“이제부터 넌 ‘그레이 쉴드’의 사원이다. 참고로 그레이 쉴드는 나하고 아가씨가 각각 51%, 49%를 지분을 가진 경호업체야. 아직, 한국에는 PMC가 익숙하지 않기에 경호업체로 해놨지.”
“...”
“그리고, 이젠 국정원의 하청조직이고.”
2.
“뭔 개소리에요?”
뭔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 PMC 회사는 그렇다 치더라도 국정원의 하청 조직? 그런 내 대꾸에 양우영은 실실 웃으며 병실의 미니 냉장고에서 차가운 오렌지 주스팩을 2개 꺼낸다. 그리곤 빨대를 꼽아 하나 건네주면서 입을 열었다.
“일단, 너가 쓰러져 있었을 동안 벌어진 일을 설명하자면... 남쪽으로 돌아와서 아가씨의 도움을 받아서 국정원에게 연락했어. 그리고 증거로 내가 촬영한 바디캠 영상의 사본하고 스너프 비디오를 넘겨줬지. 그런데, 국정원의 반응이 꽤나 격렬하더라고?”
“격렬해요?”
“응, 아주 경기를 일으켰지. 하긴, 생각해보면 당연하네.”
어깰 으쓱이며 양우영은 다시 소파에 앉아 자기 몫의 오렌지 주스팩에 빨대를 꼽고 쪽쪽 빨며 말을 이어나갔다.
“미르가 유혈에 잠겼던 게 불과 한 달 반 정도 지났어. 그게 코드 108의 광신도 단 한 명 때문에 일어난 거야. 비슷한 놈이 북쪽, 그것도 남쪽 코앞인 개성에서 발견이 됐는데 어떻게 가볍게 넘어가겠어? 내려올 수도 있는데?”
“그렇긴 하죠.”
미르에서 벌어졌던 비극을 떠올리며 나도 주스를 한 모금 빨았다.
현재 미르는... 솔직히 반쯤 망했다. 미궁 출신 강사들이 서강 아저씨의 경고를 들어서 무장을 단단히 하고 온 덕분에 피해가 많이 줄었다곤 하지만 그래도 궤멸적이다.
서쪽 지역의 1~3학년 생도들은 8할이 죽었고, 4~6학년들도 3할 가량이 죽었다.
그 외에도 각종 부설시설에 있던 이들도 1만 명이나 넘게 죽었지. 당장 내년에 입학하게 될 몇몇 예비 생도의 부모들은 불안하다고 자식들은 안 보내겠다고 시위까지 하는 중이야. 8월에 개학한다는데, 솔직히 할 수 있으려나 모르겠어.
어쨌든 그런 경험을 했는데, 정부가 코드 108의 신도를 가만히 둘리가 없었다.
“참고로 코드 108 중 하나인 ‘모라티온’이라고 하더라. 희생양의 고문과 고통을 좋아하는 ‘죽음의 악신’이라고 하네. 곧바로 국정원 소속 이능력 제압부대가 출동했고, 남쪽의 검문소 담당하는 제 3사단이 양의 낙원 쪽으로 움직였지. 그리고, 널 발견했고.”
“아, 그러고 보니 양의 낙원으로 진입하려던 조폭 놈들은 어떻게 됐나요?”
“헬기가 뜨니까 뭔가 잘못됐다는 걸 알고 도망치려고 했는데 될 리가 있나? 도망치려던 놈을 본보기로 사살하니까 순순히 싹 체포됐다고 하더라. 현재 코드 108의 신도와 연관이 있는 지 조사 중이고.”
어느새 주스를 다 먹은 양씨는 가볍게 구겨서 옆의 쓰레기통에 내던졌다. 그리곤 날 향해 씨익 웃는다.
“그리고, 너에 관한 건 대충 말했다.”
“어떤 걸로요?”
“우리가 북쪽 지역의 조폭들을 몰살시키고 다녔다는 것, 그리고 그 이유에 대해서.”
양우영의 대꾸에 난 한숨을 내뱉었다. 되도록 숨기고 싶었는데 말이지. 그런 내 반응에 양우영은 쓰게 웃으며 고갤 젓는다.
“솔직히, 숨길 수 없는 거잖아? 국정원이 바보도 아니고 좀만 조사하면 개성 시내에 벌어졌던 테러가 우리 소행이란 걸 파악하겠지. 바디캠 영상도 넘겨줘서 너의 수법이란 게 고스란히 드러났고.”
“...”
“그래서 스너프 비디오를 보여주며 말해뒀어. 북쪽 출신에게 이런 걸 강제로 찍게 하고 협박해서 조종하려는 놈들이 있다고. 그런 놈들을 조사하다가 코드 108의 신도와 마주쳤다고. 아마 깨어났다는 게 알려지면 본격적으로 한 번 조사를 받을 거야.”
그 말에 나도 고갤 끄덕였다. 하긴,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하다. 조금만 조사해도 개성 시내에서 벌어졌던 습격과 나에 대한 연관 관계가 나올 테니 자진 납세하는 게 맞아. 그렇게 살짝 낙담한 내 반응에 양우영은 애써 웃는다.
“야, 그래도 나쁜 소식만 있는 게 아니다? 이 제보 덕분에 양의 낙원에 있는 애들은 다 구했다고? 그리고, 잘하면 양의 낙원이 우리 사업체가 될 수도 있어.”
“...그건 또 무슨 소리죠?”
“그러니까 목장이 ‘우리 것’이 될 수도 있다고.”
내가 얼굴을 찡그리자 양씨는 씨익 웃으며 의기양양하게 말을 이어나간다.
“국정원에서 온 사람에게 내가 강력하게 요구했다. 보아하니 목장이 국가에 환수될 것 같은데, 할 수 있으면 보상으로 우리에게 달라고. 최소한 우선 입찰권을 달라고 했지.”
“...그걸 해주겠대요?”
“아마도? 우리 이름까지 빌려줬는데 그 정돈 해주겠지?”
이름을 빌려줘? 이건 또 뭔 소리냐? 이해할 수 없는 말이 연속으로 나오는 가운데, 양씨는 나지막이 하품하고 말을 이어나갔다.
“이번 일, 존나 크게 일요일 뉴스에 떴어. 근데, 우리가 한 건 아니고 ‘국정원’이 주도한 걸로 말이야.”
“엥? 국정원이요?”
“그래, 한 마디로 공적을 넘겨준 거지. ‘국정원이 하청을 시켜서 코드 108의 광신도를 토벌했다.’, 이런 그림이 된 거야.”
국정원의 하청이 됐다는 게 그런 의미였나? 내가 흥미롭다는 듯이 고갤 끄덕이자 양씨는 어깰 으쓱였다.
“우리로서도 나쁘진 않지. 국정원 소속이 되면서 ‘이전에 개성에서 벌인 습격’은 자연스럽게 작전을 하면서 생긴 일 ‘부차적인 희생’이 됐으니까. 어느 정도 정상 참작할 수밖에 없겠지.”
“오호...”
“나야 회사의 인지도를 높여서 좋고, 너도 국정원이라는 뒷배를 가지게 된 거니까 좋지. 실제론 아니어도 북쪽의 군벌에겐 그렇게 보일 거야. 회사에 입사하고 있는 한, 함부로 건드리진 못 하는 거지. 우리 서로 WIN-WIN인 결과야.”
양씨의 설명에 주스를 빨아먹으며 천천히 고갤 끄덕였다.
이렇게 들으니 내 입장에선 최고의 결과다. 목장의 아이들도 전부 구하고, 국정원을 뒷배로 두게 됐으니까. 거참, 나 같은 소시민이 국정원이라는 곳을 빽으로 두게 되다니? 판타지도 이런 판타지가 없네.
“저희야 나쁘지 않긴 한데... 국정원이 그런 제안을 하다니 의외네요?”
“아니, 그건 아니야.”
“...?”
“우리가 먼저 ‘우리가 한 일을 전부 국정원이 한 걸로 해라.’고 제안한 것이거든. 그걸, 국정원이 받아들였고.”
뭔 소리지? 내가 이해하지 못하겠단 반응을 보이자 양우영도 턱을 쓰다듬으며 미간을 좁힌다.
“국정원과 연결해준 우리 대주주 아가씨께서 그 제안을 해보라고 해서 했을 뿐이야. 확실히, 지금 생각해보니 이상하긴 하네.”
“...”
“그러고 보니, 일요일에 나온 뉴스의 뉘앙스도 좀 이상하네? 북쪽에 대해 좀 적대적으로 말했어. ‘이번 사태를 일으킨 닥터 크림슨도 북쪽의 동조자들을 통해 넘어온 것 같다.’, ‘북쪽에 이런 불특정한 위험 요소들이 너무 많기 때문에 어떻게 든 통제해야 한다.’등...”
“흠.”
“그리고, 우리 바디캠으로 찍은 스너프 영상도 살짝 방영됐다. 굉장히 공분을 일으키게 말이야. 뭔가 정부에서 일을 꾸미는 걸까?”
생각에 잠긴 양우영. 하지만 이내 양씨는 어깰 으쓱인다.
“뭐, 아가씨에게 물어보면 그 이유를 알겠지. 어쨌든 그런 이유로 우리는 국정원의 ‘하청’이 다. 넌 우리 회사 소속이고 알겠나?”
“에, 회사 소속이 됐으니 뭐 달라지는 것 있나요?”
“일을 시킬 수도 있을 것 같아. 나야 너한테 일을 시키긴 싫은데... 국정원이 시키면 할 수 밖에. 거부하긴 좀 그렇잖아?”
멋쩍게 웃는 양씨의 모습에 난 작게 한숨을 내뱉었다. 그렇게 내가 한숨을 내쉬자 양우영은 ‘그래도 기본 월급 50만원은 줌.’이라고 날 위로한다. 퍽이나 위로가 되겠다. X팔. 대신, 작전 뛸 때마다 정산비율을 높여주겠다니 참는다.
그래, 어쩌겠냐.
충동적으로 일을 저질렀으면 그에 대한 댓가도 치러야지. 그래도 잘 풀려서 다행이다. 내가 알겠다는 듯이 고갤 끄덕이자, 양씨는 씨익 웃으며 소파에서 일어난다.
“그건 그렇고 아침밥이나 먹으러 가자! 병원 식당은 먹어보니까 좀 그렇고... 밖에서 먹는 게 좋겠다. 마침 아가씨도 근처에 있으니까 같이 불러서 먹자.”
“그쪽이 사요.”
“당연히 내가 사지! 사장님이 직원에게 밥 얻어먹을 것 같아?”
싱글벙글 웃으며 앞장서는 양우영, 그 모습이 심히 아니꼽지만 그래도 곱게 공짜 밥을 안 먹을 수는 없지. 근데...
“근데, 내 옷 어디 갔어요?”
갈아입을 옷이 없다. 환자복 밖에 없네. 그에 양씨가 생각났다는 듯이 자기 머릴 두드리곤 입을 열었다.
“아차, 옷이 피범벅에 시체 썩는 내가 베여서 병원에 세탁 맡겼는데... 서울로 입원 병원 바꿀 때 안 가져온 듯?”
“...”
“그냥 환자복 입고 나와.”
그 답변에 난 작게 한숨을 내쉰 후, 손목에 박힌 수액 카테킨을 제거하고 그 뒤를 따라 움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