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자를 위한 연중작은 없다-151화 (151/350)

< 31화. 참 잘했어요! 그러니까... >

“정부가 오크들을 이용해서 북한을 개척하기로 결정했죠?”

“네.”

“하지만, 사람들이 반대가 심하겠죠? 아무래도 이종족이 지상으로 올라온다는 것을 껄끄럽다고 생각할 테니까.”

아가씨의 말에 고갤 끄덕였다. 자고로 문화가 동떨어진 낮선 무리가 자기네들 나라 안에 우르르 들어오는 걸 좋아하는 사람은 없지. 이 세계의 한국인들에게 오크들이 올라온다는 건... 내가 있던 세계의 한국에 무슬림들이 대규모로 우리나라에 온다는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그런 내 긍정에 아가씨는 계속 말을 이어나간다.

“이미, 뒤가 없는 정부 입장에선 어떻게든 그러한 여론을 최대한 바꾸고 싶어 하겠죠?”

...갑자기 정치 이야기가 나오네. 내가 뻘줌하게 대답 못하고 있자 아가씨는 어깰 으쓱인다.

“전 그 상황을 이용한 거죠. 여론을 바꿀만한 단초를 하나 던진 거예요. 한 마디로 명분 쌓기, 이종족을 이용해서라도 북한을 개척해야 할 명분을 제공한 거죠.”

“...?”

“한 달 보름 전, 미르가 작살났지. 북쪽에 연구 인력은 많이 살아남았지만 그래도 엄청난 피해야. 코드 108에 대해 완전히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미궁의 사교도가 이번 일을 벌였다는 건 뉴스에 떴어.”

“...”

“근데, 비슷한 사교도가 남쪽의 바로 위에서 암약하고 있었다면?”

왠지 대답해야 할 것 같은 기색에 난 조심스럽게 내 의견을 뱉었다.

“어, 사람들이 불안해하겠죠?”

“그래, 그렇겠지. 그 ‘사실’을 지금 정부는 어떻게 가공할까?”

“에...”

정보를 가공해? 이건 또 뭔 소리냐. 내가 대꾸를 하지 못하고 계속 어버버 거리자 아가씨의 맨들맨들한 마빡에 핏줄이 하나 솟아오르더니... 한숨을 ‘푸욱!’ 내뱉곤 냉수가 든 컵을 내려놓고 진지한 얼굴로 날 바라본다.

“새벽아.”

“네...넵.”

“신문 좀 읽어라. 뉴스도 많이 보고. 너 안목이 너무 협소해. 상식도 많이 부족하고.”

상식이 부족하다니... 저, 사실은 30대 아저씨인데요? 이제 고1이나 다름없는 아가씨에게 그런 핀잔을 들으니 좀 어이가 없었지만-.

“북쪽을 통해 닥터 크림슨이 내려왔다. 이번에도 비슷한 재앙을 일으킬 수 있는 사교도가 북쪽에서 암약하고 있었다. 그러니 안전을 위해서 무리해서라도 북쪽을 평정해야한다. 그런데, 사람이 직접 토벌하기는 힘들고 오크를 동원하자.”

“데...데뎃?!”

이어지는 아가씨의 답변에 나도 모르게 입이 벌어졌다.

아니, 전개가 그렇게 된다고?! ...지금 생각해보니까 양우영이 일요일 날 뉴스의 뉘앙스도 이상하다고, 북쪽에 대해 좀 적대적으로 말했다고 했었지?!

“...아니, 코드 108의 신도에 대한 걸 듣고 그 생각을 한 거예요?”

“그래, 정치권이 어떻게 돌아가는 지 아니까 할 수 있는 딜이었지. 참고로 국정원이 너희들이 한 일만 쏘옥 빼먹고 감빵에 가둘 수도 있기에 개인적인 인맥으로 북쪽 지역의 코드 108에 관한 정보를 방송가 인맥에 흩뿌리기까지 했다구?”

그런 아가씨의 대답에 양우영은 고갤 끄덕였다.

“어쩐지, 좀 이상하긴 했어. 코드 108에 관한 정보를 좀 가공하지 않고 그렇게 빨리 방송에 터트리다니... 코드 108의 교단을 토벌할 거면 최대한 감추는 게 좋은 데 말이야.”

“국정원의 입장에선 그게 베스트긴 하죠. 우리 입장은 아니지만. 무리 좀 했어요.”

“근데, 국정원이 불쾌해 하지 않을까 아가씨? 수작을 부린 걸로 보일 거 아니야?”

양우영의 말에 아가씨는 차분히 양우영을 바라보았다.

“국정원에 제가 말하란 대로 진술했죠? 여기 말고도 군부대에도 연락하고 방송국 PD에게 영상도 보냈다고.”

“그래, 곧바로 같이 개성에 내려간 철수에게 영상을 보냈지. 아가씨가 하라고 했잖아?”

“그럼 됐어요. 개성에 상주 중인 방송국 직원을 통해 정보를 퍼트렸으니까. 어느 정도 면피는 되겠죠. 그리 심각하게 조사하진 않을 거예요.”

아가씨의 대답에 고갤 끄덕이는 양우영, 그 두 고딩의 모습을 보며 난 멀뚱하게 아가리를 닥쳤다. 그런 내 멍청한 모습에 아가씨는 골치 아프다는 듯한 표정으로 이마를 한 번 짚으시곤 찬찬히 날 타일렀다.

“배경과 상황을 듣고 ‘이 정도’는 유추할 수 있어야지. 새벽아, 아무튼 넌 신문하고 뉴스를 꼬박꼬박 챙겨봐라. 그대로 받아들이지 말고 왜 저런 논조가 나왔을까 생각해보란 말이야! 알겠어?”

“넵...”

난 반박도 못하고 찌그러질 수밖에 없었다.

어쨌든 아가씨의 말대로 됐으니까. 재벌가의 자재들이란 이런 것인가? 아니, 그런 걸 순식간에 눈치 채는 양씨도 이상해. 그렇게 속으로 투덜거리며 순대국을 다시 퍼먹기 시작했는데... 문득, 이번 양의 낙원에서 빼돌린 것들이 기억났다.

“아참 아가씨.”

“왜?”

“그러고 보니, 양의 낙원에서 따로 빼돌린 게 있거든요? 벽속 비밀 공간에 코드 108의 제단과 같이 스너프 비디오를 따로 보관해 놓았더라고요.”

스너프 비디오란 말에 얼굴을 구기는 아가씨. 하지만 할 말은 해야겠다.

“이거 내용을 보니 혹시라도 자기가 위험에 빠질 때를 대비해서 만든 협박용인 것 같거든요? 고문 서비스를 이용한 남쪽의 부호나 북쪽 권력자들의 것 같은데...”

“...”

“혹시 필요해요?”

내 말에 아가씨는 단호하게 고갤 저으신다.

“아니, 필요 없어. 그런 걸로 할 수 있는 건, 단발성으로 돈 뜯어내는 협박 정도가 끝이야. 뭐, 사업을 하는 경쟁자의 비디오가 있을 수도 있다만... 그런 걸로 압박하면 진짜 살인까지 일어날 수 있지. 그와 관련없는 제 3자의 평가도 낮아질 거야. 추잡한 걸로 협박이나 하는 놈이라고.”

“그럼...?”

“그냥, 정부에게 넘겨버려.”

“아니, 넘기지 마.”

아가씨의 말에 재빨리 태클을 거는 양우영, 그에 아가씨가 미간을 찡그리며 바라보자 양우영은 순대국 그릇을 들어 완샷하곤 생긋 웃는다.

“내가 쓰지 뭐.”

“우영씨, 제 말 못 들었어요? 그걸 사용하면 상대방은 반드시 당신에게 보복하거나 혹은 그 영상을 없애려고 할 거예요. 그 여파로 당신도 협박한 사람을 계속 의식해야 할 거고, 정상적인 신용도 얻기 힘들 거예요. 냉정하게 말해서 사업할 거라면 그리 좋은 선택은 아니에요.”

그런 양우영에게 타이르듯이 경고하는 아가씨. 그 말에 양우영은 뜨겁고 얼큰한 걸 먹어서 그런지 좀 걸걸해진 목소리-어쩐지 굶주린 야수의 낮은 으르렁 소리 같은 목소리로 전혀 지지 않고 대꾸한다.

“세력을 빨리 성장시키려면 어떤 수단이든 닥치는 대로 써야해. 놔두면 쓸 수 있을 테니 일단은 남겨두는 게 좋아. 정 뭣하면 돈이라도 왕창 뜯지 뭐.”

“함부로 썼다간 탈이 날 텐데요? 누군가의 원한을 산다는 건 생각보다 무서워요.”

“흐, 그건 순전히 개인 역량이 딸려서 그렇지.”

컵에 든 냉수를 한 모금 마셔서 목을 씻어낸 양우영은 자신을 못마땅하다는 듯이 바라보는 아가씨를 향해 실실 웃는다.

“이번 일 덕분에 ‘그레이 쉴드’는 무려 국정원의 하청이 됐어. 실제로 국정원의 뒷배를 받아서 코드 108에 관한 걸 조사한 걸로 나오니까. 약점을 잡힌 놈들이 우리 정체를 확인하곤 복수하겠다고 할까? 아무리 봐도 국정원의 위장 사업체로 보일 텐데?”

“...”

“우리가 협박해도 국정원이 협박한 걸로 착각할 걸? 과연, ‘대한민국의 정보 집단’을 상대로 보복을, 혹은 그 증거를 없앨 생각을 할 수 있을까? 대한민국 사람이? 오히려 함부로 싸움을 걸었다가 변사체가 되지 않을까 두려워할 것 같은데?”

나름 납득이 가는 대답, 그에 아가씨도 미간을 꿈틀거리며 반박하지 못하다가... 결국 한숨을 내쉬며 고갤 끄덕인다.

“하아, 네에~ 네에~ 알아서 하세요. 하지만, 사업하다가 생각지도 못한 일이 터질 수도 있단 거만 알아두시고.”

“걱정마. 그걸 감내하고서도 할 만하니까. 난 지금 미친 듯이 급하거든.”

결국 설득을 포기하는 아가씨, 진짜 보면 볼수록 영리하네. 두 사람을 보면 볼수록 내 고딩 때는 어땠는지 자괴감만 든다. 흐릿하지만 떠올려보면... 스타 열심히 하고, 롤 열심히 하고, 쉬는 시간에 매점 달려가고... 그냥 짐승새끼처럼 살았구만.

“에휴.”

비인간적인 고딩들 사이 낀 채, 난 한숨을 내쉬며 남은 순대국을 다시 퍼먹었다.

5.

미르의 유혈 사태가 벌어진 뒤, 전찬휘 경감은 공식적으로 경찰에서 물러났다.

오무혁과 함께 미르에 진입한 ‘인간’ 외부인 2명 중 하나, 실제로 피라미드 꼭대기까지 올라가 의식을 저지하기까지 했고 덕분에 정부는 ‘해결할 생각하지도 않고 방치하고 있었다.’라는 프레임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것만 보면 그는 영웅대접을 받아도 부족했지만...

그에겐 원죄가 있었다.

그의 입장에서는 억울하기 짝이 없는 ‘중국의 괘씸죄’라는 원죄가. 미르가 박살난 뒤, Tv에선 앞 다퉈서 그와 관련된 일에 관해서 다뤘고 중국이 닥터 크림슨의 이동을 알려주지 않은 이유로 그의 유인 작전을 꼽았다. 그에 ‘일부 비난 여론’이 쏟아졌다.

그에 전찬휘 경감은 부상을 핑계로 은퇴했지만... 진짜로 은퇴하진 않았다.

목숨을 걸고 국가를 위해 움직이는 ‘충성심’, 그리고 지상 출신 중에서 손꼽히는 뛰어난 전투력까지. 그는 이미 증명된 인재였다. 아무리 중국의 눈치를 보는 정부라고 해도 그런 그를 외면할 정도로 타락하진 않았고 전찬휘 경감은 비밀리에 ‘이직’했다.

그리고, 그런 그에게 가장 처음으로 내려진 일은...

“...”

“...”

굳은 얼굴로 전찬휘 경감은 병실 문을 열고 딱 굳은 이들을 바라보았다.

한 명은 사복 차림의 양아치처럼 생긴 고딩, 또 한 명은 환자복을 입고 있는 이제 막 중학교 들어갔을 정도의 중성적인 백발 소년. 누구와 만날지 오기 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저 모습을 보니 절로 떨떠름했다.

백발의 소년도 비슷한 감각인 듯 난처하게 웃는 표정으로 변한다.

“에... 경감님?”

그런 백발 소년의 말에 전찬휘 경감은 작게 한숨을 내뱉으며 고갤 저었다.

“이제 경감이 아니다. 이번 미르 사태 때, 후유증으로 퇴직했다... ‘일단은’ 말이지.”

“‘일단은’ 이라면... 아하! 저흴 조사하러 온 걸 보면 국정...”

이미 사전에 설명을 들었던 듯, 그가 속한 조직의 이름을 말하는 백발 소년 한새벽. 아무도 없는 병실이었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기에 전찬휘 경감은 단호하게 고갤 저었다.

“그만, 아무리 그래도 외부에서 이야기할 게 아니다.”

“넵! 그나저나 되게 의외네요? 설마, 경감님이 제 조사관 자격으로 올 줄은 몰랐어요! 아, 경감님이 아니라고 하셨죠. 뭐라고 불러야 될까요? 찬휘 아저씨?”

묘하게 약 올리는 것 같은 그 모습에 전찬휘는 쓰게 웃었다.

“경찰 퇴직 후, 난 경력직으로서 ‘그레이 쉴드’의 이사로 취임할 예정이다. 그러니 이사님이라고 부르도록.”

“...머, 뭐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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