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자를 위한 연중작은 없다-152화 (152/350)

< 31화. 참 잘했어요! 그러니까... >

처음 듣는 이야기인 듯, 한새벽이 웃는 표정으로 굳어버린다. 그리곤 고갤 돌려 옆에 있는 양아치 같은 소년을 바라본다. 그에 양아치 같은 소년-양우영은 전찬휘를 향해 ‘난 그럼 이만. 이사님, 잘 부탁합니다!’하고 도망친다.

그렇게 양우영이 도망친 후, 전찬휘는 이마를 짚으며 작게 한숨을 내뱉었다.

“나도 좀 당혹스럽다. 갑자기 파견 된 거라서... 어찌됐든 간에 너희들과 함께 일하게 되었다. 익숙하지 않으면 그냥 경감... 아니, 사무관 님이라고 불러라.”

“...사무관이면 승진하셨네요?”

“그래, 그리고 사정청취를 하러 왔다. 솔직하게 대답해 줬으면 하는군.”

“네, 그래야겠죠.”

체념한 표정으로 고갤 절래절래 저으며 들고 있는 백화점 쇼핑백을 내려놓고 환자용 침대에 털썩 앉는 한새벽, 전찬휘 사무관 또한 간병인용 의자에 앉아 파일을 펼쳤다.

윗선에서 건네준 파일, 신참인 그를 배려한 심문 자료였다. 아주 세심하게 정리된 것은 물론이고, 유도 심문이나 교차 심문 항목도 적어 놓았다. 이미 한 번 다 봤지만 다시 파일을 한 번 훑고 있는데-.

“왜 웃지?”

항상 웃고 있는 표정이었지만 한새벽이 좀 더 진하게 실실 웃고 있었다.

‘뭘 할지 훤히 보인다는 표정’, 그가 파일을 가리며 살짝 경계하자 한새벽은 어색하게 ‘헤헤’ 웃으며 왼손으로 올라간 입 꼬리를 내렸다.

“아, 하하하! 아뇨! 아무것도 아니에요.”

“...”

“그 때, 피라미드에서도 보셨다시피 제가 웃음을 참지 못하는 병이 있어서...”

생글생글 웃으며 하는 그 대꾸에 전찬휘 경감은 작게 한숨을 내쉰 후, 휴대폰 녹음기를 켜곤 ‘사정청취’를 시작했다. 그렇게 사정청취가 이어지는 가운데,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자 전찬휘 경감은 ‘핵심적인 질문’을 꺼냈다.

“그러니까, 그 블랙 생츄어리에 있던 남자가 너에게 협박을 했다는 거지? 아가씨에게 마약을 먹이라고.”

“네.”

양우영의 진술과 동일하다는 듯이 동그라미를 친 후, 그는 힐끗 질문 옆에 적힌 ‘부가 질문’ 항목을 확인하고 말을 이어나갔다.

“그럼 추가로 블랙 생츄어리는 그렇다고 치고 나머지 조직은 왜 습격했지?”

“그 놈이 끝이 아니니까요.”

“끝이 아니다?”

이미 한 번 들었던 내용, 그러나 당사자에게서 한 번 더 확인할 정도로 중요한 증언이었다. 전찬휘 경감이 대꾸하자 한새벽은 알고 있었다는 듯이 조직에서 가장 원하고 있던 내용을 주절거렸다.

“블랙 생츄어리에서 절 협박한 놈이 죽기 전에 ‘박범기 상장’이라는 사람이 자기의 뒤를 봐주고 있으니 자길 죽이면 저도 죽는다고 하더군요. 그 영상을 상장이 가지고 있으니 자길 죽이고 탈취해도 소용없다고.”

“...”

“북쪽 보육원 아이들의 말을 들어보니까 실제로 죽은 놈들이 박범기 상장의 수하라고 하더군요. 그리고, 아마 다른 폭력 조직을 통해 보복이 들어올 거라고 했어요. 들어보니 심상치 않아서... 그냥 미적거리다가 당하느니 차라리 먼저 손을 쓰기로 했죠.”

“...음, 그래도 너무 과격한 거 아닌가?”

“네?”

“과격하지 않냐고 물었다.”

파일에는 없던 질문, 그에 한새벽은 당황한 듯 머릴 긁적였다. 전찬휘도 살짝 당황했다. 아직 ‘경찰의 시점’에서 벗어나지 못해서 나온 반사적으로 질문, 하지만 이왕 질문한 거 그는 한새벽을 똑바로 바라보며 고갤 끄덕였다.

“아무리 억지로 찍은 ‘스너프 비디오’로 협박했다 하더라도 너의 대처는 너무 과격했다. 마력 각성자가 저지른 살인은 가중 처벌인 걸 알고 있을 텐데? 냉정하게 약점을 늘리는 행동이었다. 솔직히, 넌 지금 감옥에 잡혀가도 이상하지 않아.”

“...음, 그렇긴 하네요.”

순순히 고갤 끄덕이며 긍정하는 한새벽, 소년은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이내 어깰 으쓱였다.

“하지만, 해야 할 일이었어요.”

“해야 할 일이었다? 수백 명이나 죽인 것이?”

“사람은 막다른 길에 몰리면 극단적인 선택을 하잖아요?”

그 대꾸에 전찬휘 경감은 살짝 미간을 찡그렸다.

“...막다른 길에 몰렸다는 건가?”

“네, 제가 겪은 걸 어디에 말해봤자 수사나 제대로 해주겠어요? 북쪽인데? 안타깝지만 위험을 무릅쓰고 제 손으로 해결해야했죠. 다른 선택지가 없었어요.”

“죄책감은 없나? 무고한 사람이 휘말려서 죽었을 수도 있는데? 실제로 몇 명은 폭력조직과 관련되지 않은 사람인 걸로 확인되는데.”

무고한 사람이 휘말려 죽었는지는 그도 알 수가 없었다.

북쪽은 말만 같은 나라였지 실상은 군벌이 지배하는 딴 나라니까. 조사를 하고 싶어도 제대로 된 자료가 나올 수 없다. 하지만, 수백 명이 무차별적인 독가스 테러에 질식해 죽었는데 무고한 사람이 없을 확률은 오히려 적다.

질문과 함께 전찬휘 경감은 ‘감각’을 곤두세웠다.

아직 신참인 그가 괜히 이번 일을 하게 된 것이 아니었다. 국정원에서 추가로 받은 테스트 결과, 그의 ‘감’-심문자의 신체 반응을 통해 거짓말을 분석하는 능력-은 기존 국정원 정보 요원들의 극찬을 받을 정도로 탁월했다. ‘경찰이 아니라 처음부터 국정원에서 일해야 했다.’고 말할 정도로.

그 추궁에 한새벽은 살짝 고민하는 듯 하다가... 이내 빙긋 웃는다.

“하하, 전혀요.”

“전혀?”

“네. 사실대로 말하면 너무 싸이코 같아서 꺼렸는데... 거짓말 해봐야 들킬 것 같으니 진실을 말해야겠죠.”

그 대답에 전찬휘 경감은 살짝 미간을 찡그리곤 다시 한 번 질문지에 없던 질문을 꺼냈다.

“흠, 피라미드에서 네가 말한 ‘감’인가?”

“뭐, 그런 셈이죠.”

“그럼 죄책감 말고 어떤 걸 느끼나?”

그런 전찬휘 경감의 질문에 한새벽 감고 있던 두 눈을 떴다. 초점이 잡히지 않는 자줏빛 눈동자, 박제된 인형 같은 눈을 보여주며 한새벽은 웃는다.

“통쾌함이요.”

“...”

“어차피 범죄자인 걸요? 제가 안 움직였으면 목장의 아이들은 박제가 되었을 걸요? 아니면 어딘가로 팔려가거나. 그런 걸로 죄책감을 느끼기엔 좀 그렇죠.”

“...”

“게다가 조사 안 받고 도망치려고 한다고 평범한 사람들 등판에 총을 갈기는 군인들도 있는데, 제가 한 건 별로...”

“하아, 그래. 잠시 딴 말로 샜으니 그만하지.”

정부의 치부를 언급하는 한새벽의 중얼거림을 끊은 후, 전찬휘 경감은 한 손으로 관자놀이를 주무르며 파일의 다음 질문들을 꺼냈다.

“그래, 그럼 네가 생각하기에 박범기 상장이 너에 대한 비디오를 가지고 있다는 거지?”

“네, 그리고 이건 비밀인데요...”

살짝 말끝을 흘리는 소년은 허릴 숙이며 작게 속삭였다.

“다른 북쪽 출신 미르 생도들도 그런 비디오를 찍힌 것 같아요.”

“...어떤 이유로 그런 말을 하는 거지?”

“알고 계시겠지만 저희들이 쓸어버린 북쪽 조직들은 마력 각성자도 있었죠. 최소 2명에서 많으면 4명까지, 그들은 제가 흩뿌린 독만으론 죽지 않아서 직접 처리해야 했는데 절 보자마자 공통적으로 그런 말을 하더군요. ‘미르 생도인 것 같은데 자길 건드리면 사회적으로 매장 될 거다.’라고.”

“음...”

“아마, 북쪽 출신들은 다 그렇게 약점 하나씩 잡혀있지 않을까 싶네요. 북쪽 출신 모두가 약점이 있다는 건 과장일지 모르겠지만... 더 있는 건 확실할 거예요.”

그 대답에 전찬휘 경감은 고갤 끄덕이며 볼펜으로 ‘질문지’를 끼적였다.

‘북쪽 폭력 조직들의 대략적인 전력’과 ‘폭력 조직에게 약점을 잡힌 북쪽 출신이 있는 지 확인할 것’. 이것으로 확인해야 할 가장 큰 사안들은 끝났다. 그 뒤, 전찬휘 경감은 코드 108의 신도에 관해서 1시간가량 더 질문하고...

“그래, 고생했다.”

파일을 덮고 휴대폰 녹음기를 끄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너가 북쪽에서 저지른 범죄에 관해서는 최대한 편의를 봐주도록 하지. 그리고 원래 청소년에게 이런 부탁은 하면 안 되지만... 넌 이미 살인을 했으니까 별 상관없겠지. 아마, 회사에 의뢰가 올 수도 있다. 좀 추잡한 건에 말이야.”

“음, 내키면 받도록 하죠.”

태연하게 대답하는 한새벽, 그 불량스런 대답에 전찬휘 경감이 얼굴을 꿈틀대는 가운데 한새벽은 상큼하게 웃는다.

“PMC잖아요. 자살 특공대도 아니고 너무 위험하면 거부할 수도 있죠. 뭐, 그래도 보수를 넉넉히 주신다면... 생각할 수도 있죠!”

“좋아. 그렇게 하지.”

한숨을 내쉬며 고갤 끄덕인 전찬휘 경감은 파일을 들고 밖으로 나섰다.

6.

심문을 끝낸 뒤, 전찬휘는 병원 밖 주차장의 검정색 밴의 운전석 문을 열었다.

“오, 우리 후배 일찍 왔네?”

그러자 밴의 뒷좌석에서 검정색 바지정창 차림의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여성이 살짝 허스키한 목소리로 웃으며 전찬휘를 반겼다. 입엔 막대사탕을 물고 있는, 활기찬 운동선수를 연상케하는 인상의 갈색 포니테일 미녀. 하지만, 그런 그녀의 꼰 양 다리의 무릎 아래는 모두 의족이었다.

그에 전찬휘는 운전석에 타면서 고갤 끄덕였다.

“네, 생각보다 빨리 끝났습니다.”

“파일 줘봐.”

오른손에 쥐고 있던 막대사탕을 놓고 손짓하는 여자, 전찬휘는 파일을 넘겼다. 그 뒤, 그녀는 왼쪽 손-쇠꼬챙이 같은 갈고리 의수의 후크 사이에 파일을 끼워놓곤 능숙하게 오른손으로 안을 펼쳤다.

“거짓말 하는 것 같진 않았어?”

“네. 이전 조사와 별 다를 바 없었습니다.”

그에 고갤 끄덕이며 차분하게 자료를 훑는 여자, 전찬휘는 잠깐 침묵하고 있다가 이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과장님.”

“과장님은 무슨, 선배라고 불러. 세영 선배.”

“...”

“아줌마가 선배라고 불러서 꼽냐? 하긴, 너보다 15살이나 많은데 선배라고 말하기엔...”

파일을 훑으면서 어깨를 추욱 늘어트리는 여자, 그에 전찬휘는 작게 한숨을 내쉬곤 다시 입을 열었다.

“세영 선배.”

“응, 그래. 찬휘야.”

그 대답에 파일에서 시선을 떼며 여자는 전찬휘를 향해 씨익 웃는다. 가볍기 그지없는 그 모습에도 전찬휘는 흐트러지지 않고 특유의 딱딱한 어조로 말을 이어나갔다.

“굳이 저런 녀석들을 써야 하겠습니까?”

“저런 녀석들?”

그 말에 세영이라고 불린 여자는 피식 웃곤, 다시 파일에 시선을 향하며 입을 열었다.

“너, 우리나라에서 1년간 나오는 마력 각성자가 얼마 정도로 알고 있냐?”

“작년 한해에 412명, 매년 대략 400명 내외로 알고 있습니다.”

전찬휘가 말한 정확한 숫자에 서류를 읽으면서도 놀랍다는 듯이 눈을 동그랗게 뜬 세영, 그녀는 고갤 끄덕이며 말을 이어나갔다.

“오호? 마력 각성자 관련 범죄 쪽에서 일하다보니 그런 건 빠삭하네. 마음에 들어. 그래, 대충 그 정도 되지. 그럼 그 중에서 전투 직종으로 가는 이들은 또 얼마나 될까?”

“대략 10%정도 되죠.”

전투는 결코 유쾌한 게 아니다. 그건 마력 각성자에게도 마찬가지. 16년 간 꽤 많은 마력 각성자들이 배출되면서 가치가 떨어지긴 했지만, 아직도 그냥 마력만 불어넣기만 해도 억에 가까운 연봉을 약속하는 회사들이 많다. 더럽고 힘든 전투직을 하려는 이는 별로 없다.

그 대답에 그녀는 이번에도 고갤 끄덕였다.

“그래, 고작 30~40명이야. 그 중에서 마법 사용자는 얼마나 될까?”

평범한 마력 각성자도 이럴 진데, 마력 각성자들 중에서 귀한 대접을 받는 마법 사용자는 말할 필요도 없다. 전찬휘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1~2명 정도. 없을 때도 있습니다.”

“그래, 없을 때도 있지. 그것도 대부분 기초적이고.”

다 읽은 듯, 그녀는 파일을 덮고 입에 문 막대사탕을 다시 오른손으로 쥐며 씨익 웃었다.

“그럼 냉정하게 저 두 명의 전투능력은 어떻지? 네 후임으로 저런 애들이 들어왔다고 생각하면 어떨까? 순전히 전투력만을 따지면?”

“...”

“말해. 너도 알잖아?”

그 재촉에 전찬휘는 내키지 않는 입을 열었다.

“에이스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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