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자를 위한 연중작은 없다-154화 (154/350)

< 32화. 추가 수행 과제(안 하면 큰일남) >

1.

사정청취를 끝낸 뒤, 난 예정대로 북쪽으로 향했다.

양의 낙원을 점령하는 과정에서 보육원 애들이 무려 4명이나 죽었다. 그 시체까지 내가 <시체 부패>용으로 써먹어서 잔해도 남지도 않았지. 당연히, 인간으로서 염치가 있다면 당장 가서 애도를 표해야 했다. 게다가 혹시 모를 보복이 들어 올 수 있으니 내가 가서 눈치를 주는 게 맞았고.

다행히, ‘보육원’과 ‘양의 낙원’ 아이들은 전부 무사했다.

양의 낙원은 아직까지 조사가 이뤄지고 있었는데, 개성 군벌의 조사단이 아니라 남쪽 조사단이었다. 조사가 있긴 했지만 별 다른 해코지는 없었다고 해. 보육원 쪽도 남쪽 정부가 주시하고 있단 것을 알기 때문인지 별일 없었다.

그 뒤, 장례식과 여러 잡다한 일을 처리하고 아예 보육원을 ‘양의 낙원’ 쪽으로 옮겼다.

...어쩌다보니 목장의 아이들까지 내가 떠맡게 됐거든. 솔직히, 책임지고 싶진 않았어. 아무리 철수에게 일 대부분을 짬시키고 있다고 해도 신경써야할 게 많으니까. ‘최소한 죽진 않도록 노력해보겠다.’고만 말했을 뿐인데... 양씨와 마빡 아가씨는 다르게 생각한 듯하다.

여러 지원(관리인력 파견)을 해주면서 ‘어어?’하다가 책임지게 됐다...

다행히, 그리 큰 잡음은 없었다. 입주문제도 기존 어른들이 몰살당하면서 해결됐고, 마침 운영할 인력 또한 많이 부족했거든. 무엇보다 목장 쪽의 아이들도 별 다른 불만을 제기하지 않았고. 있긴 하지만 불만을 제기하지 못한 걸 수도 있지만.

그렇게 철수가 도맡아서 목장을 합병하는 동안, 난 지난 한 달 동안 ‘내 개인적인 일’에 몰두했다.

“ᚡᛄᛢᛞ ᛯᛉᚢᚢᛥ...”

한 때, 고문과 인체 박제가 이뤄졌던 지하 도살장.

남쪽의 조사단이 와서 이미 깨끗하게 그 흔적과 물품들을 긁어간 그곳 안에서 난 마법의 주문을 외우며 조심스럽게 마력을 운용했다. 장송곡 같은 주문의 운율에 맞춰서 <강령술>에 사용되는 룬 문자가 하나씩 완성된다.

그 완성도는 한 달 전에 만들어진 것과는 비교가 불가능한 수준

천천히, 그 <강령술>의 기운에 뒤덮인 손을 수술대 위의 시신을 향해 뻗었다. 죽은 지 30분도 안 된 시신, 간 크게 여길 염탐하러 온 북쪽 출신 조폭이다. 죽일 생각은 없었는데, 경비를 서던 아이들에게 발각되서 산쪽으로 도망치다가 넘어져서 머리로 곰덫을 밟았다.

어찌할 수도 없이 죽었지 뭐.

이왕 죽은 거, 내가 유용하게 쓸 수밖에.

“ᛯᛰᛡ ᛯᛢᛰᛡ ᛯᛰᛢᛡ!”

내뱉는 후렴구에 맞춰서 준비한 약품을 시체에 흩뿌리고 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거기에 서린 <강령술>이 시신에 남아있는 영혼을 뜯어냈지만...

“쯧.”

영혼을 이루는 혼백(魂魄), 그러니까 죽자마자 빠르게 증발해 사라지는 혼(魂)은 강령술에 걸리지 않았다. 내 손아귀에 남는 건, 시체에 남는 일종의 찌꺼기-백(魄) 부분. <연금술>을 사용해서 <강령술> 작용을 도와줄 마력을 인챈트 했는데도 실패했다.

“에휴.”

아쉬움에 연거푸 손을 휘저어봤지만 증발하고 있는 혼은 그저 손을 지나쳐갈 뿐이다. ...솔직히, 말하면 실패할 확률이 높다고 생각하긴 했다. 내가 알고 있는 혼을 다루는 <강령술>은 9위계 궁극 마법 <죽음의 문턱>뿐이었으니까. 그래도 아쉬운 건 아쉬운 거야.

“모라티온의 사제들은 이렇게 하던데... 아니, 잠시만. 여의나루역에 있던 시신도 영혼이 온전히 보존되어 있었지? 지배의 목걸이라고 했던가? 영혼에 걸리는 저주? 으음, 한 번 가서 그 제작 과정을 봐야하나.”

연구하면서 반쯤 습관이 된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난 ‘영혼의 찌꺼기’를 손에 쥔 채 옆 테이블로 향했다.

난 이곳을 내 개인적인 공방으로 개조했다.

그 동안 북쪽 조직을 턴 돈-5억 가량을 태워서 <연금술>에 필요한 중고품 중저가 장비들을 사서 채워 넣었지. 싸장님의 공방과 비교하면 민망한 수준이지만 필수적인 건 다 있다.

곧바로 마력 정제 장비들을 붙잡고 <연금술>을 사용했다.

싸장님도 가르쳐주지 않은 독특한 방법, 여기서 <과거시>로 틈틈이 ‘모라티온의 신도’가 영혼을 가공하던 방식을 따라했다. <강령술> 따위와는 비교가 불가능한 ‘신의 권능’이지만 자세히 보면 어찌어찌 어설프게 따라할 구석이 있거든.

그렇게 몇 가지 추가적인 공정을 거치자...

“좋아.”

투명한 삼각 플라스크 안에 있는 희끄무레한 영액(靈液)이 맺힌다. 모라티온 교단 놈들이 영혼을 붙잡아두는 방법을 <강령술>의 룬문자로 흉내를 내고 추가로 <연금술> 방식으로 고착화한 거다.

그래, 시체에서 추출해낸 ‘물질화된 영혼’이지.

...고작 백(魄) 찌꺼기지만 말이야. 참고로 이건 이주 전에 땅에 묻힌 시체들로 이미 한 번 만들어봤다. 내 영혼의 결손된 부분이 채워질까 해서 한 번 마셔도 봤지. 물론, 전혀 소용이 없었지만.

그 동안 재료가 부족해서 테스트해보진 못했지만... 이걸 어떻게 ‘써먹을 방법’도 고안해냈다.

“흠~♪”

전자 담배를 꺼내고 빈 카트리지를 열었다. 그리고 구석에 둔 전자 담배의 액상이 든 병을 가져와서 영혼의 찌꺼기가 든 플라스크를 기울여 따라 넣었다. 뒤섞이는 액체, 유리막대에 <연금술>을 부여해 조심스럽게 휘저어 섞은 뒤 카트리지에 담았다.

“후우... 쓰읍!”

그리고, 전자 담배를 켜고 크게 빨아들었다.

이전에 이 ‘영혼의 찌끄러기’를 섭취해서 내 불완전한 영혼에 붙여본 결과, 내 영혼에 닿았던 찌끄러기는 내 감정이 일부 깃들었다. 그게 <유령 출몰> 주문의 ‘부정적인 감정을 상징하는 룬 문자’에 닿았던 마력 덩어리와 비슷하더라고?

어쩌면 7위계의 고위 강령술 <유령 출몰>을 모방해낼 수 있을 것 같더라.

그래서 다른 <강령술>과 <연금술>을 이루는 룬 문자를 참고해서 마법을 하나 만들어봤다. 될지 안 될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지.

내 폐를 가득 채우는 연기 형태의 불완전한 영혼, 그 영혼을 깊게 탐닉하며 난 내 불완전한 영혼과 결합시켰다. 동시에 천천히 <강령술>에 사용되는 룬문자와 <연금술>에 사용되는 룬문자를 차근차근 만들어내며-.

“푸후우우우...”

마법이 일으키는 법칙을 내 폐 속의 영혼 덩어리에 부여하곤 토해냈다.

내 폐에선 나왔다고 믿기 힘들 정도로 커다란 흑색 연기가 뿜어져 나와 바닥에 깔린다. 이어서 그 뭉클거리는 검은 연기는 내 체형 정도 크기의 형상을 취한다.

바닥을 기고 있는 ‘불완전한 인간의 형상’

지면에 손과 발을 대고 바짝 붙어있었는데 뭉클거리며 그 속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손과 발 얼굴이 튀어나오고 또 그 팔다리가 무너져 사라진다. 정면의 얼굴 눈 부분에는 유일하게 검은 색이 아닌 내 홍채와 똑같은 자줏빛으로 번들거린다.

으음, 생각보다... 거지같이 생겼구만?

“에... 성공?”

<눈>으로 본 결과, 확실히 <유령 출몰>에서 나왔던 ‘인공 유령’과 똑같았다. 아니, 오히려 더 강한 듯? <강령술>로 만들어진 덕분인지, 희미하게나마 나와 심령이 연결되어있는 것이 느껴진다. 이걸로 명령을 내릴 수 있는 것 같네. 좋아, 어디 한 번 명령을...

“...”

내리려고 한 순간, 난 이 인공 유령이 느끼고 있는 것을 파악할 수 있었다.

온전한 존재에 대한 ‘격렬한 증오’와 ‘살인적인 질투심’, 다행히 내가 불완전한 병신이라는 걸 아는지 공격하진 않았다만...

-!!

나와 생각을 공유한 덕분에 위의 기숙사 쪽에 ‘온전한 아이들’이 있단 걸 알아차린다.

그리곤, 마력 각성자가 전력질주를 할 때와 비슷한 속도로 밖의 통로를 향해 미친 듯이 기어간다. 시X! 나가면 X 된다! 어떻게... 어떻게 저 놈을 역소환하지? 아니, 일단 놈을 막아야 한다! 입구 쪽 철문이 막혀있긴 하다만 어느 정도 지성이 있기에 열고도 남는다!

“멈춰요! 멈추라고요!!”

시체해부용 식칼을 들고 나도 내달렸다. 어느새 문고리를 잡고 열려고 하는 소환수, 다급한 마음에 그놈에게 달려들어 팔을 베어냈다. 그러자...

-끼아아아아으으아앍!

-죽... 죽여! 죽여여어어어어!

-쮸겨! 쮸겨어어어억!

“에게게겍!”

몸 곳곳에서 올라오는 얼굴들이 섬뜩한 기성을 지르며 날 공격한다.

연기와도 같은 질감의 괴물, 하지만 거기에 닿자마자 피부에 낭포가 울긋불긋 솟아오르고 살점 아래에서 고름이 올라와 딱딱하게 굳는다. 아주 복합적인 독기라서 그런지 어떤 부분은 순식간에 검게 썩어 내린다. 이... 이 미친 소환수가?!

-푸화아아악!

-푸슛! 푸슛! 푸슛!

어떻게 대처하기도 전에 그 아가리에선 검은 숨결을 ‘푸화아악!’ 토해낸다. <부패 구름>과도 비슷한 독기, 심지어 자신의 몸을 이루고 있는 일부를 떼어내 <독침> 같은 것도 만들어내서 쏘아낸다.

위험하다.

귓구멍과 눈구멍을 노리는 일격, 이전 공격과는 달리 ‘물리력’이 있었기에 더 심상치 않았다. 맞으면 뇌가 박살나서 죽을 수도 있다...! X발...! 나도 모르겠다ㅠ.

“케흑...!”

-캬하하하학!

재빨리 철문 옆으로 비켜섰다.

앞을 가로막지 않자 나 따윈 신경도 쓰지 않고 다시 문고리를 잡고 열려고 하는 녀석, 아니 이게 말이 되냐? 내가 만든 놈에게 내가 뒤지게 생겼...

“커허헉. 케흑, 카하하핳...”

아니, 잠시만. 내가 놈을 만들어냈으니 ‘내 마력으로 이루어진 물질’이었지?!

그에 재빨리 <연금 물질 해체> 마법을 사용했다. 룬이 만들어지고 그것에서 비롯된 성질이 내 몸을 뒤덮는다. 이어서, 내가 만들어낸 물질-저 괴물이 내게 투입한 독을 분해한다. 다행히 더 나빠지는 것은 막았다만, 이미 병신이 된 몸은 회복되지 못한다.

그 사이, 녀석은 물리력을 발휘해 육중한 문고리를 돌려 열었다.

-캬하하학!

-죽여! 죽여! 죽여어어어!

<눈>으로 본 결과, 다행히 밖엔 아무도 없었다. 휑하니 빈 양털 세척장을 미친 듯이 질주하는 괴물, 나도 비틀거리며 간신히 놈을 따라 문밖으로 나갔다. 순식간에 세척장 밖으로 나가더니 이곳을 향해 오는 트럭 한 대를 보곤 그쪽을 향해 미친 듯이 달려가기 시작한다.

“캬학...! 뒤지.. 세요!”

질주하는 놈을 향해 <독의 연소> 마법을 사용했다.

내 손에서 만들어진 마법의 파장이 정면으로 퍼져나가고 들판 위를 질주하고 있는 놈에게 닿는다. 그 순간, 달리는 녀석은 격렬하게 불타오르더니-.

-퍼!!!!!!!!엉!!!

달리면서 폭발했다.

폭탄이 터진 것처럼 ‘아주 성대하게’. 그 강렬한 충격파에 난 몸을 가누지 못하고 날아가 세척장의 벽에 내동댕이쳐진 뒤 바닥에 엎어졌다. 누군지는 모르겠다만 트럭에 타고 있던 이들도 그 충격파에 앞유리가 박살난 걸 빼면 별로 다친 것 같진 않다.

...뒤질 것 같구만.

소환수 자체의 전투력은 매우 만족스럽다. 여러 가지 재료가 필요하긴 하다만 위력은 내가 여의나루역의 <과거>에서 봤었던 <유령 출몰> 주문보다 더 쎄니까. 그런데, 고작 5위계 관여하는 룬이 5개 정도라는 걸 생각하면 가성비도 짱이다.

문제는 X미가 없는 마법이란 거?

아이러니하게도 너무 ‘증오’에 가득 차서 만들어낸 나도 저걸 제대로 통제할 수가 없었다. 내가 영혼이 박살났다는 걸 아는지 날 공격하진 않았지만... 방해하면 가차 없네. 싯팔, 열등감에 눈 돌아가서 창조주도 담가버리려는 소환수라니? 이걸 어떻게 써 먹냐.

그렇게 속으로 구시렁거리고 있을 때... 머리가 지끈거리는 것과 함께 한켠에 빈 텍스트 창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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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환 : 검은 독기의 망령 (Summon : Wraith of Black miasma)

레벨 5 독(연금술)/강령술

시전 소음 : 4

주문 소음 : 0

최대 SP : 200

지속시간 : 최대 300+2d(SP) sec.

소모 재화 : Mp 5, ‘영혼의 영액’

설명 : <유령 출몰>과 <죽음의 영매술>, <얼음의 환영>등을 참고하여 만들어낸 한새벽이 오리지널 강령술 마법. 가공된 영혼의 증기들을 흡입한 후, 자신의 영혼에 결손된 부위에 결합-감정을 복사해 육체의 신경신호와 마력의 덩어리를 추가로 혼합해서 ‘인공 유령’을 토해낸다.

영혼의 찌그레기로 만들어진 그 모조품은 ‘영혼을 가진 모든 존재’에게 치명적인 독기를 띄고 있다.

이렇게 만들어진 모조품들은 매우 강력하지만... 원본처럼 영혼이 온전한 존재들에게 ‘격렬한 증오와 질투심’을 품고 있다. 르피너스의 ‘특별한 조작’이 가해진 원본과 달리, 이 모조품들은 그 감정을 통제하지 못해 영혼이 있는 존재라면 닥치는 대로 달려들어 죽이려고 한다.

영혼이 불완전한 한새벽만이 가능한 마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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