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2화. 추가 수행 과제(안 하면 큰일남) >
“케흑, 캬하하학...”
개 같은 <게임 시스템>, 절대적인 게 아니라 ‘내 영혼의 일부’가 흉내를 내며 적는 것이기 때문에 이렇게 다 벌어지고 난 뒤에 뒷북을 친다. 묘하게 쓸모가 없단 말이야. 어쨌든 후들거리며 손으로 바닥을 짚고 자리에서 일어서려고 했는데...
“...”
팔뚝이 ㄱ자로 꺾여있었다.
저 X미 없는 망령이 달려들 때, 양손을 들어 막긴 했는데 거기에 독이 침투해서 뼈와 살이 물렁해진 것 같다. 넘어지면서 완전히 망가졌네. 왼손도 비슷하구만. 어쩔 수 없이 지렁이처럼 꿈틀거리며 양 다리로만 어떻게 일어서던 도중-.
“...뭐, 뭐야! 야! 괜찮냐!”
“대장!”
난데없이 양우영의 목소리가 들린다.
<눈>으로 확인하니 이쪽으로 다가오다 넘어진 트럭 쪽에서 두 사람이 뛰어오고 있는 게 보인다. 양우영과 철수, 양씨는 멀쩡했지만 철수는 트럭이 엎어지면서 다친 듯 이마에 피를 줄줄 흘리고 있었다. 아니, 저 양반이 왜 여기에 있담?
“허...”
“...대장?”
가까이 오더니 내 몰골을 보곤 입을 다무는 양씨와 철수, 내가 보기에도 지금 내 꼴은 정상이 아니다. 내가 만든 망령의 손에 얼굴을 긁혔을 뿐인데, 고름과 낭포가 빽빽 들어차 부풀어 올라 얼굴 형태가 약간 무너져 내렸다. 눈도 짓물이 질질 흐르고 옷 안쪽도 장난 아니지.
“케흑, 캬하하학...! 하, 진짜 반갑네요...”
“뭔 짓을 한 거야 미친놈아!? 그 달려오던 건 뭐고?”
“잠깐, 마법 실험... 크르르륵! 퉷!”
가래 끓는 소리를 내며 속에서 올라온 걸 샛노란 고름을 뱉었다. 잠깐 한 번 긁힌 건데 무지막지하네. 양우영이 옷 안쪽에서 포션이 담긴 걸로 보이는 힙 플라스크를 꺼내기에 난 고갤 저으며 가래를 뱉어 한결 풀어진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됐어요. 아까우니까 쓰지마요. 철수 씨, 지하 실험실... 옷걸이에 걸린 실험가운 안쪽에... 유리병 하나 있어요. 제 전용의 특제 회복 포션이니 가져와요.”
“알겠습니다.”
내 말에 재빨리 양털 세척장 안쪽으로 달려가는 철수, 그렇게 철수가 포션을 가지러간 사이 양씨는 병신이 된 날 바닥에 눕히곤 골치 아프다는 듯이 내 몸 곳곳을 살펴본다.
“아니, 한 달 간 뭔 마법 실험을 했기에 이 지랄이 난거야? 아까 전에 뛰어오던 괴상한 괴물은 뭐고?”
“크흡, 우리가 죽인 모라티온의 신도 있잖아요? 빼돌린 것 중에서 ‘마력흔’ 비슷한 게 남겨진 물건이 있어서 한 번 <연금술>로 비슷하게 재현해보다가...”
“어휴, 미친놈.”
내 말을 듣고 얼굴을 감싸 쥐는 양씨, 어느새 잽싸게 달려온 철수가 포션을 들고 와서 내 입에 물려준다. 양씨도 ㄱ자로 박살난 내 팔을 붙잡고 ‘뿌득!’소리와 함께 펴준다. 그렇게 포션을 삼키고 얼굴에도 뿌리니 고름이 들어차 열감(熱疳)이 느껴지던 게 좀 사그라진다.
“하아, 케헤헤헥 퉷! 철수씨는... 괜찮나요? 이마에서 피 흐르는데.”
“괜찮습니다. 긁힌 정도입니다.”
“네가 마신 포션이라도 좀 뿌려주지 그러냐?”
양씨의 말에 난 쓰게 웃으며 고갤 저었다.
“제 마력은 저를 제외한 생명체에게 독성이 있어요. 그래서 제가 만들 걸 함부로 먹으면 탈나요.”
“허, 그것도 돌연변이냐?”
“네, <마력 돌연변이>죠. 그나저나... 여긴 왜 왔어요?”
내 말에 얼굴을 찌푸리는 양씨, 이내 그는 잠깐 고민하는 듯하다가 이내 작게 한숨을 내쉬며 날 엎었다.
“하. 일단, 니 몸 좀 추스르고 이야기하자.”
2.
기숙사에 도착하자마자 난 양호실에 실려갔다.
‘포션’이라는 기적의 치료 약물을 먹었지만, 그것만으로 모든 상처에 대한 처치가 끝난 건 아니었다. 포션이라도 이미 죽은 걸 되살릴 수는 없다. 그래, 이미 노릇노릇 구워진 스테이크에 포션 좀 뿌린다고 생고기가 되진 않는다는 거지.
...한마디로 독기에 의해 세포 자체가 괴사(壞死)한 부분은 외과적으로 제거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으으윽... 존나 끔찍하네.”
진저리치면서도 열심히 손을 놀리는 양우영, 오른손에 들린 메스의 칼날이 피부를 가르자 묵힌 고름 덩어리들이 왈칵 쏟아져 나오고 그것들을 왼손에 든 알콜솜으로 닦아낸다. 그에 난 기침하며 폐에 들어찬 피고름을 뱉고 입을 열었다.
“크, 흐흐흐... 어쩔 수 없네요. 웬만하면 혼자 치료하겠는데 양 손이 이 꼴이라.”
옆에선 철수가 열심히 내 왼팔의 뭉그러진 살점을 떼어 내고 있었다. 이미 치료를 끝마친 오른손은 포션을 적신 솜으로 꽁꽁 묶였고. 그에 양우영은 내 얼굴 쪽의 고름에 메스를 대며 한숨을 내뱉는다.
“X팔, 이래선 완전 나가린데... 어떡하지.”
“뭐가요?”
“아니, 사실 여기 온 이유가 너에게 부탁 좀 할 게 있어서 온 거거든. 근데, 이 꼴이면 부탁할 수도 없겠네.”
얼굴에 난 거대한 고름혹을 터트리며 중얼거리는 양씨, 고민이 좀 깊어보였기에 ‘말 해봐요.’라고 하자 그는 옆에서 내 왼팔을 치료하기 바쁜 철수를 살짝 눈짓한다. 아, 철수가 듣기 좀 그렇다는 건가?
“괜찮아요. 철수는 믿을 만하거든요.”
“음, 그래도 들으면 철수가 좀 위험해질 수 있는 거라서... 괜찮겠어?”
“네, 명색이 제 오른팔이거든요. 지금 오른팔은 이렇지만.”
붕대에 칭칭 감긴 오른 팔뚝을 보여주자 양씨는 고민하다가 결국 입을 열었다.
“웬만하면 너한테 안 시키려고 했는데... 널 콕 집어서 의뢰가 왔어. 말은 의뢰이지만... 알지?”
“무시하면 되잖아요? 어차피 PMC인데.”
그런 내 대꾸에 양씨는 ‘빠직!’하는 표정을 짓더니, 살짝 힘줘서 코에 난 고름을 터트리며 말을 이어나간다.
“야, 우리나라에서 PMC 같은 무력 집단에 대한 허가가 쉽겠냐? 초능력 조폭, 잠재적 범죄자 취급한다고! 진짜 병적으로 경계해! 국정원 눈 밖에 나면 PMC 사업 못해!”
“...후, 알았어요. 이번만 도와드릴게. 도대체 뭔가요?”
마스크 낀 얼굴에 샛노란 고름과 피지가 튀는 게 좀 딱해 보이기에 도와준다고 말하자 양씨는 살짝 고민하는 듯하더니 순순히 입을 열었다.
“...두 가지 선택지를 주더라. 웬만하면 하나는 해달라고 하더라고. 첫 번째 선택지는... 어, 화내지 마라? 나도 이런 거 제안하기 싫어. 클라이언트가 요청해서 말한 거지.”
“말하기나 해요.”
“박범기 상장을 도와주는 거야. 인근에 다른 폭력 조직 족치기.”
“아니, X발?! 뭐라고요?”
“아니, 들어봐! 너도 북한 지역 개척해야 한단 거 알지?”
양우영이 설명한 내막은 이러했다.
한 달 전, 국밥집에서 우리 마빡 아가씨에게 들었던 것처럼 북한지역의 개척에는 많은 난항이 따를 예정이었다. 한 명의 지지자가 아쉬울 판. 그래서 정부는 협력하는 군벌들을 관리하고 있다고 한다. 그 중 하나가 개성의 지배자 ‘박범기 상장’이었다.
...그 개새끼지만 우리 개새끼란 말이 있지 않은가?
약간 수작을 부리긴 했지만 박범기 상장은 영역이 남쪽에 붙어있는 만큼 거의 확실한 지지자라고 한다. 근데, 내가 그 수하들을 연이어 박살내면서 박범기 상장 쪽에서 항의가 들어왔단다. 자기네들 세력을 유지할 수가 없다고.
그래서 국정원이 도와주기로 한 거다.
“그리고, 그 동안 네가 벌인 행적을 보아하니 너 정도면 어렵지 않게 할 것 같기에 정식으로 일감이 들어온 거지.”
떨떠름하게 말하는 양씨를 향해 난 단호하게 고갤 저었다.
“기각.”
“아니, 왜? 두 번째 제안에 비하면 쉬운 거야.”
“제가 엿 먹인 놈을 위해 일하기 싫어요. 그 의뢰, 받아들이면 상장의 얼굴도 봐야 하잖아요? 진짜 자칫 잘못하면 눈 돌아가서 사람 죽일 지도 몰라요. 알다시피, 제가 좀 급발진하는 경향이 있어서... 차라리 약점으로 쓰라고 빼돌린 상장의 스너프 비디오를 국정원에 주고 말죠.”
일이 닥치면 난 이성적으로 생각할 수 없다.
한 발자국에 떨어진 지금은 나름 냉정하게 판단을 내릴 수 있지만 그 안에 들어가면 참을 수가 없다. 그, 고통에 몸부림치는 환자가 짜증을 잘 부리는 것과 비슷하다. 이미 아파서 짜증이 치솟는데, 옆에서 알짱거리면 참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야.
그런 내 대꾸에 양씨는 한숨을 푹 내뱉는다.
“참아라. 그러다가 괜히 일이 더 꼬인다.”
“그나저나 다른 의뢰는 뭔가요?”
“에... 심연 기생체가 발견됐어.”
‘심연 기생체’이라는 말에 지금껏 묵묵히 썩은 살을 발라내고 있던 철수의 메스가 잠시나마 움찔한다.
이 세상에는 ‘심연 기생체’라고 알려져 있지만... 한 마디로 ‘심연의 악신, 네쉬라의 신도’다. 그러고 보니 2달 전에 르피너스에게 ‘주인공은 네쉬라에게 꼬장 당하는 중’이라고 듣기까지 했네? 지금은 어떠려나?
이 세계의 정부는 일반인들에게 코드 108에 관한 것은 최대한 숨기고 있지만... 이 ‘심연 기생체’는 이례적으로 일반인도, 심지어 상식이 부족한 북쪽 사람도 알고 있을 정도로 유명하다.
자세하게는 아니고 대충 ‘크툴루 신화 속 괴물 같은 기생체.’ 정도? 실제로 포교-인간을 기괴한 ‘심연의 괴물’로 변이시키는 게 놈들 목적이기도 하니 틀린 말은 아니지. 왜 다들 알고 있냐면... 이놈들이 몇 나라를 완전히 박살 낸 적이 있기 때문이다.
아프리카의 국가들
미궁 사태 때, 아프리카 쪽에도 미궁으로 향하는 토굴이 만들어졌는데 거기서 나온 네쉬라 교단이 퍼졌다. 안 그래도 열약한 아프리카 국가들은 코드 108에 대한 단속을 느슨하게 하다가... 미궁 발발 4년 만에 네쉬라 교단에게 몇몇 나라가 완전히 먹혔다.
그리고, 인세의 지옥이 펼쳐졌다.
인신공양, 심연의 타락, 인간이 변이된 괴물... 그 때 당시 방송을 유튜브로 봤는데, 검열돼서 순화된 버전임에도 소름이 끼치더라. 그에 유럽 국가들, 심지어 러시아까지 합심해서 핵폭탄으로 쓸어버렸다.
의외로 국제사회의 비난은 그리 크지 않았다.
정체를 드러낸 네쉬라 교단의 행적이 너무 역겨웠거든. 걔네들과 대화를 해봐야 한다면서, 혹은 치료될 수 있다면서 말하는 이상주의자들? 지옥 같은 현실에 죽은 지 오래됐어.
어쨌든 나와 철수가 질겁하는 모습에 양우영은 내 얼굴을 알콜솜으로 닦으며 작게 한숨을 내뱉었다.
“우리가 죽인 녀석이 판매한 ‘좀비 인형’ 수입 경로를 역추적했는데... 거기서 기생체에 감염된 걸로 알려진 인간의 흔적이 발견됐다더라. 게다가 남쪽으로 일부 흘러갔어.”
“씨앙...”
“지난 한 달 동안 역추적 했고, 다행히 세력이 그리 크진 않은 것 같다더라.”
“하긴, 컸다면 이미 오래전에 걸렸겠죠.”
미궁에서 발견된 생명체 중 ‘최악의 위협’이라고 알려진 심연 기생체이다. 강도 높은 감시·검열이 일상화된 세계니 만큼, 덩치가 컸다면 이미 오래전에 걸렸을 테지. 그래도 골치 아픈 건 골치 아프다. 어쩌다 남쪽으로... 아니, 잠깐만?
“남쪽으로 흘러들어갔다면... 원래 북쪽에 있다는 말 아닌가요?”
“그래, 북쪽도 있어.”
“어디에요?”
“어디에 숨어있는 지는 기밀이라서...”
“...”
“근데, 대도시가 아닌 공권력이 잘 미치지 않는 지역이야. 그쪽의 군벌들과 국정원 측 요원들이 접촉했고 지배층이 심연 기생체에 조종당하는 ‘타락체’가 아닌 걸 확인했어. 아마, 동시에 토벌이 들어갈 거야. 걔네들도 심연 교단은 질색하니까.”
심연 기생체에 조종당하는 생명체-타락체는 공존이 불가능한 공적(公敵) 취급. 다행히, 북쪽도 아예 손을 놓고 있진 않을 것 같다. 그 대꾸에 철수가 살짝 안도하는 가운데, 양씨는 말을 이어나간다.
“아무튼, 그것 때문에 인력이 부족해서 우리에게 일을 시키는 거야.”
“하, 좋아요. 그럼 일당으로 얼마 준데요? 일시키는 거니까 돈은 받아야죠.”
“2억.”
“...위험한 일인데, 페이가 좀 짜네요.”
“대신에 여기 목장을 저렴한 가격에 불출해준다고 하더라.”
상처의 고름을 다 짜내고 내 얼굴에 치료용 연고를 퍼바르는 양씨, 그에 난 말없이 얼굴을 구겼다. 사실, 내가 이곳을 점거하고 있지만 목장의 주인은 없었다. 국가에 귀속된 상태, 마빡 아가씨의 말로는 아직 경매로도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목장을 그냥 주진 않네요. 쩝.”
“그 동안 북쪽 조직에게 쓸어 대면서 얻은 거 토해내란 거지. 너 연금술 장비 같은 거 대량으로 사서 북쪽으로 옮겼다면서? 국정원 아저씨들, 다 알고 있더라.”
이곳, 양의 낙원의 것들은 되도록 건드리지 않았지만 블랙 생츄어리를 포함한 조직 5개가 붕괴하면서 비트코인과 현물 같이 쏠쏠하게 돈을 챙기긴 했다. 거참, 되게 쪼잔하네.
“제가 이 일을 맡으면 그 박범기 상장과는 얼굴 안 마주쳐도 된다는 거죠?”
“...아마도? 따로 도와줄 인력을 파견해주겠지.”
그에 난 한숨을 내쉬며 고갤 끄덕였다.
“좋아요. 심연 기생체를 조지러 가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