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자를 위한 연중작은 없다-156화 (156/350)

< 32화. 추가 수행 과제(안 하면 큰일남) >

3.

소환수로 인한 부상으로 하루를 꼬박 쉰 뒤, 난 양우영과 함께 차를 타고 남쪽으로 귀환했다.

양우영이 운전하는 차 뒷좌석에 탄 채, 이번 일에 관한 자세한 사항들을 들었다. 양씨도 하청이라서 그리 잘 알지는 못했지만... 대략적인 얼개는 ‘이미 국정원이 대략적인 타락 기생체에 감염된 인물들을 확인했고 토벌만 남았다.’는 거였다.

어쨌든 그렇게 양씨가 향한 곳은...

“...우리 국정원 가는 거 아니었나요?”

“국정원으로 가면 눈에 띈대. 미르에서 만나기로 했어.”

‘국가와 국민을 위한 한없는 충성과 헌신’이라고 적힌 커다란 돌덩이를 볼 줄 알았는데, 난데없이 송파구로 방향을 꺾어 미르 쪽으로 왔다. 송파구의 공용 주차장에 주차한 뒤, 우린 미르를 향해 걸었다.

벌써 8월 초순

닥터 크림슨이 테러를 저지른 지도 어느덧 석 달 가량 흘렀다. 송파구 도심은 3달 전의 비극을 잊었다는 것 마냥 활기찼다. 그리고, 저 멀리 보이는 미르는...

“와, 건물들을 보니 진짜 개학해도 되겠어요.”

“그렇지. 이런 건 또 무지 빨라.”

어느 정도 모습을 되찾아가고 있었다.

강철거인이 나타났던 서쪽 지역은 워낙 피해가 커서 아직도 공사 중이지만 다른 지역은 어느 정도 모습을 되찾았다. 충분히 등교를 해도 될 정도로 말이야. 내심 여름방학 기간 끝나고 다시 개학한다고 했을 땐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는데 말이지. 그나저나...

“오늘따라 오크들이 거리에 많네요.”

송파구 들어설 때부터 생각하고 있던건데, 미르 쪽에 접근하면 할수록... 오크가 좀 많이 눈에 보였다. 뉴 송파구와 연결된 만큼, 여기서 오크를 보는 게 별 이상한 게 아니지만 그래도 너무 많아. 게다가 하나 같이 엄숙한 표정을 한 채, 별 다른 장식 없는 밋밋한 옷을 입어서 눈에 띈다.

그런 내 질문에 양씨는 뭔 소리냐는 듯이 날 바라본다.

“뭔 소리야? 평범하구만.”

“평범하다고요? 이게?”

“그래, 요즘 이 정도면... 아, 너 혹시 송파구 며칠 만에 온 거냐?”

감을 잡았다는 듯이 묻는 양씨, 그에 난 고갤 끄덕였다.

“음, 미르 지하 연구지역에서 6월 초에 나왔으니까 거의 2달 만에 왔죠?”

생각해보니 꽤 오랫동안 송파구에 들리질 않았네. 지하에서 나오자마자 <강령술>과 ‘황금 자두’를 보기 위해 나오자마자 여의도에서 숙식했고, 이어서 아가씨의 전화를 받고 북한으로 갔으니까. 그 뒤에 잠깐 남쪽에 들리긴 했지만 송파구까지 온 적은 없구만.

그에 양씨는 알겠다는 듯이 고갤 주억인다.

“하긴, 2달 만에 오면 이 모습이 익숙하지 않을 수도 있겠네. 요즘 송파구는 이게 정상이야.”

“...네?”

“미르의 사고 수습이 일정부분 끝나고 6월 중순부터 미르를 일반인들에게 공개했어. 그래서 성지순례 겸해서 전 세계 오크 추모객들이 몰려들었지.”

“아.”

오무혁, 그 양반의 추모객들이구나. 그러고 보니 그 양반에게 부탁했던 물품들이 생각난다. 일이 끝나고 오크 기사들이 따로 와서 수거해준 걸 보면 내 이야기를 들어주긴 했는데... 3달이 지난 지금, 그 장비들을 받을 수 있으려나 모르겠네.

대충 그런 생각을 하며 걷는 동안, 양씨는 말을 이어나갔다.

“게다가 정부에서 뉴 송파구의 지하 이종족-지상 외출 허가 기준을 대폭 낮췄어. 비록 송파구는 못 벗어나지만 이렇게 많이 나올 수 있는 거지.”

“그래서 오크들이 많았던 거군요.”

“그래, 안 그래도 너무 많은 순례자들 때문에 ‘서쪽 지역’ 중 일부를 추모 공원으로 만들고 있다더라.”

미르에 가까워질수록 보이는 오크들이 더 많아졌다. 그 인파가 좀 과장해서 유명 관광지 같을 지경. 어쩐지 미르로 가는데 양씨가 좀 많이 떨어진 공용주차장에 차를 대기에 의아했는데 이걸 보니 이해가 간다. 그리고...

“꽃 사세요. 헌화하실 국화꽃!”

“오무혁씨의 생전 사진입니다! 생존자의 폰카로 찍은, 방송에는 나오지 않았던 메시아의 사진도 있어요! 한 장당 5천원!”

아직 다 복구되지 않은 미르 내의 상업 지구, 공사판 옆에서 상인들이 좌판을 깔고 장사진을 치고 있다. 오무혁의 사진, 헌화, 조각상... 아, 어지럽구만. 나름 장사는 잘 되는 것 같다.

미르 서쪽 지역이 보인다.

3달 전, 저기서 살기 위해 발악했었지. 아직 공사 중이긴 하지만 벌써 건물들이 많이 철거됐고 오크들이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있었다. 내가 고갤 돌려 바라보자 양씨도 그쪽을 바라보며 말을 이어나간다.

“보다시피 오크 근로자들이 많이 참여해서 공원으로 만들고 있지. 근데, 디자인 자체가 오크의 입김이 너무 강하다보니 몇몇 사망한 생도의 부모들이 오무혁 추모 공원을 만드는 거냐고 시위까지 하고 그랬어.”

“뭐, 오크들을 신경 써줄 만하죠. 어쨌든 오무혁 씨 덕분에 사태가 해결된 거니까.”

“아무튼, 이것 말고도 요즘 오크 때문에 사회 갈등이 만만치 않아.”

내가 요즘 남쪽 상황에 대해 전혀 모르는 눈치이자 양씨는 다시 앞장서서 걸으며 근래 사회갈등에 대해 말을 꺼냈다.

오크들이 많아지면서 자연스럽게 많아진 오크에 의한 범죄, 그에 대한 혐오와 린치, 보복... 시민들도 ‘오크가 사태를 해결했으니 이해해야한다.’, ‘아무리 그래도 오크는 이종족이고 지하에 있어야 한다.’고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고 한다.

그렇게 말을 하면서 양씨는 상대적으로 한산한 동쪽의 ‘진리관’ 건물로 안내했다.

작년에 편입반 수업을 받았던 건물, 겉에 탄흔이나 포격에 살짝 무너진 부분이 있긴 하지만 꽤나 제대로 복구되어 있었다. 그 입구의 문은 굳게 닫혀있었지만, 양씨가 학생증을 꺼내 가져다대자 문이 열린다. 이어서 진리관의 최중심부 강당에 들어서자-.

“오...”

이미 많은 이들이 띄엄띄엄 강당 의자에 앉아있었다. 대부분 미궁 출신들로 보이는 이들, 미르의 교사들도 보인다. 서강 아저씨랑 김가트 양반도 있네? 어, 서강 아저씨 옆엔...

“엥? 예린씨?”

미국으로 광고 찍으러 갔다던 서예린이 있었다.

언제 돌아온 거지? 혼잣말에 가까운 내 목소릴 들은 것인지 ‘휙!’ 고갤 돌려 바라보는 서예린, 왼손으로 KFC 치킨 버켓을 들고 오른손으로 치킨을 먹고 있던 그녀는 날보곤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이내 서강 아저씨에게 날 가리키곤 자리에서 일어나 이쪽으로 다가온다.

“오랜만.”

“헤헤, 저도요.”

근 두 달 만에 보는 서예린의 모습은... 더 예뻐졌다. 체형이 좀 많이 슬림해졌고 옷차림도 힙한 건 똑같은데 묘하게 더 고급스러워졌어. 이전도 나쁘진 않지만 좀 호불호 갈리는 ‘거요미’스러웠다면 이건 누구나 좋다라고 말할 체형이니까.

내 뒤에 있던 양씨를 힐끗 거리는 것 같기에 난 재빨리 소개시켜줬다.

“아, 여긴 양우영이라고 해요. 5학년, 어쩌다보니 함께 일하게 된 사이랍니다.”

“안녕하세요. 양우영입니다.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한 학년 밑의 서예린이지만 반말하는 게 아니라 깍듯이 고갤 숙이는 양우영, 그에 서예린도 살짝 고갤 까닥이자 양씨는 사람 좋게 웃으며 말을 이어나간다.

“혼혈 애들하고 진아씨에게서 이야기 많이 들었습니다. 대단한 실력자라고.”

“응? 걔들을 암?”

“하하, 네. 같은 ‘이종족 문화 교류부’입니다. 사업을 같이하는 사이이기도 하고요.”

능글맞게 웃으며 대꾸하는 양씨, 왠지 순진한 서예린을 꾀려는 듯한 그 모습에 좀 꼴 받아서 난 재빨리 끼어들었다.

“우리 양씨는 이종족 문화 교류부의 ‘부장’이랍니다. 사실상, 이종족들의 지상 진출을 위한 첨병들 중 하나죠. 요즘 그레이 쉴드라는 용병회사를 세웠는데, 지하의 이종족을 싼 값에 고용하려는 목적이랍니다.”

“흐음.”

내 실전압축 설명에 살짝 떨떠름한 표정을 짓는 서예린, 역시나 그녀도 미궁 출신답게 이종족에 대해 좀 부정적인 것 같았다. 그런 내 태클에 양씨가 ‘왜 초치냐.’는 듯이 바라보자 난 ‘진실을 말해줘야죠.’이라고 대꾸해줬다. 꼬와? 꼬우면... 아시죠?

“아, 선약이 있어서 먼저 가보겠습니다.”

그렇게 서로 통성명을 한 뒤, 양씨는 강당 한 쪽에 앉아 있는 오크를 보자 양해를 구하곤 그쪽으로 향한다. 그런 양씨의 뒷모습을 보며 서예린은 얼굴을 찡그린 채 치킨을 뜯었다.

“으음, 이종족 지상 진출 불안함.”

“어쩔 수 없는 일이에요. 시대적인 트랜드니까.”

“그건 그럼.”

그런 내 대답에 의외로 순순히 고갤 끄덕이는 서예린, 생각보다 쉽게 받아들이네? 어쨌든 난 좀 슬림해진 그녀의 모습을 한 번 위아래로 훑으며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예린씨는 방학 동안에 되게 예뻐졌네요?”

“X나 X 같았음.”

“...네?”

나름 칭찬이라고 한 건데, 내 말을 듣곤 얼굴을 팍 구기는 서예린. 그런 내 대꾸에 서예린은 들고 있는 닭다리를 뼈째로 으적으적 씹으며 이를 간다.

“광고 찍는데, 감독이 근육 줄이라고 해서 혼남. 50일 동안 밥도 제대로 못 먹고... 아니, 사람은 소가 아님! 풀 먹고 못 살음! 근데, 풀을 줌!”

쌓인 것이 많았던 듯, 분노한 치와와처럼 반쯤 두 눈을 까뒤집고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겪었던 일을 말해주는데... 대충 한 마디로 요약하면 ‘식사량을 대폭 줄이고 전부 풀떼기만 먹었다.’였다. 하도 짜증나서 도중에 때려치우려고 했지만 계약 위약금 때문에 못했다고.

허허, 왜 저렇게 전투적으로 먹느냐 싶었는데 그 동안 못 먹은 게 한이란다.

“그래서 광고는 잘 찍었어요?”

“응, 어찌어찌 잘 찍음. 유튜브로 한 번 보셈.”

“넵, 한 번 보도록 할게요.”

그래, 친구가 광고에 나왔는데 당연히 한 번 봐야지. 그나저나...

“광고비로 얼마 받았어요?”

돈은 얼마나 받았는지 궁금하다. 되게 메이저한 스포츠 웨어 회사인데 말이지. 아무리 서예린이 갑자기 뜬 일반인이라도 엄청 받지 않을까? 그런 내 질문에 서예린은 쿨하게 대답한다.

“500만 달러.”

“...오.”

“옷에 다 때려박음.”

치킨을 입에 문 채, 의기양양하게 웃으며 보란 듯이 회색 후드티의 후드를 착 세우는 서예린. 뭐? 옷에 다 때려박아? 뭔 개소... 아니, 지금 보니까! 옷들이 힙한 스타일과는 다르게 전부...

“어?! 설마 그거...!?”

“훗, 커스텀 오더 제품임. 아무에게나 안 파는데, 수많은 사람들을 구한 영웅이다 보니...”

은근슬쩍 후드 안쪽을 보여주는 서예린, 거기에 보이는 고급스런 금실 상표는... 마법 인챈트 된 장비를 내놓는 초고가 브랜드다!

GUCCI 혹은 CHANEL로 같이 일반인도 허리띠를 졸라매고 돈 모아서 살 수 있는 게 아니라... 진짜 재벌만이 입을 수 있는, 정신 나갈 정도로 비쌀뿐더러 옛날의 롤스로이스처럼 사람 가려서 판다고 하는 브랜드. 돈을 주고도 못 사는 ‘초고가 명품’이다,

“아니, 60억을 옷값에 다 태워요?!”

“? 이거 되게 편함!”

하도 황당해서 내가 언성을 높이자 ‘왜 그려냐?’는 듯이 바라보는 서예린. ...그러고 보니 이 녀석 저번에 나랑 반띵한 2억 5천만 원 가지고 스포츠카에 단숨에 FLEX해버렸지? 진지하게 자본관이 걱정되는구만. 그 모습에 난 지끈거리는 머리를 붙잡고 한숨을 쉬며 충고했다.

“아니, 좀 저축을 해야죠! 그렇게 무분별하게 돈 쓰면 거지 될걸요?”

하지만, 그런 내 충고에 서예린은 오히려 날 향해 이상하다는 듯이 바라본다.

“왜 저축함?”

“...네?”

“돈은 써야 가치 있는 거임. 그냥 돈을 저축하는 건, 아무런 의미 없음.”

오히려 역으로 날 향해 진지하게 충고하듯이 말하는 서예린. 아니, 진짜 재벌도 아니면서 고작 옷에 60억을 태운 사람에게 그런 말을 들으니 할 말이 없어지네. 그렇게 내가 말을 잇지 못하고 있는데 서예린은 작게 투덜댄다.

“처음엔 괜찮은 전투 장비를 사려고 했는데... 지상은 전투용 마법 장비 너무 비쌈! 쓸만한 건, 최하 700~800만 달러 단위임! 게다가 한국은 내 돈 주고 무기를 사도 쓰지 못하게 막음! 현금으로 산 마법 장비는 기록 남아서 몰래 가지고 다니지도 못함!”

“...”

“그럴 바엔 명품으로 샀음! 참고로 이것도 마법 장비임! 손상 잘 안됨! 스스로 깨끗해짐! 찢어져도 모직만 남아있으면 복구도 됨! 무엇보다 매우 편함!”

아주 마음에 든다는 듯이 실실 웃는 서예린. 그리곤 보란 듯이 오른손에 묻은 치킨 기름을 바짓단에 닦는데, 진짜로 옷에 묻은 기름 자국이 서서히 사라진다. 음, <눈>으로 보니 미궁에서 나온 재료 특성에 여러 마법을 부여했네. 확실히, 비싼 값을 하긴 해.

“후우.”

...그래, 저렇게 좋아하면 된 거겠지. 그렇게 내가 속으로 한탄할 때, 서예린은 날 보며 질문한다.

“그나저나 넌 뭐함? 진아가 북쪽 가서 연락도 못 한다고 하던데.”

“아, 고향에 좀 다녀왔었죠. 거긴 인터넷하고 메신저도 잘 안 되더라고요.”

궁금해 하는 눈치이기에 아예 근처 빈 좌석에 앉아서 이번에 겪은 2달 동안의 북한 썰을 풀었다. 딱히 숨길 필요가 없었기에 겪었던 일 모두 말했지. 기억을 잃기 전에 찍혔던 비디오와 도중에 만났던 모라티온의 신도까지.

“개같이 고생함.”

“하하. 네, 좀 고생했죠.”

내 썰을 다 듣고 난 뒤, 혀를 차는 서예린. 그래, 무지 고생했지. 그리고 이번 일에도 또 끌려나와 고생할 예정이고. 그렇게 한숨을 내쉬며 한탄하고 있는데-

-아, 아. 지금부터 이번 작전 브리핑을 시작하겠습니다.

강당의 단상 쪽에서 양복차림의 전찬휘 양반과 한 여자가 올라왔다.

< 32화. 추가 수행 과제(안 하면 큰일남)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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