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자를 위한 연중작은 없다-157화 (157/350)

제157화

4.

전찬휘 경감의 바로 뒤에서 올라오는 여자.

아름답다기 보단 잘생겼다는 말이 어울리는 갈색 피부 포니테일의 누님이다. 근데, 단상으로 올라가는 누님의 몸은 꽤 많이…… 아니, 정정하겠다. ‘꽤 많이’가 아니라 ‘심각하게’ 성칠 않았다.

무릎 아래 양다리, 그리고 왼쪽 팔뚝 아래의 팔이 없었다.

이 세상은 ‘과학기술 + 마법’이 결합하여 신경접합 기술이 상용화됐다. 그래서 내가 원래 있던 세상에선 아직 갈 길이 먼 ‘촉각이 느껴지고 생각대로 움직이는 의수’ 같은 것도 있다. 많이 비싸긴 하다만 그래도 마력 각성자라면 충분히 살 수 있는 가격대다.

하지만, 저 누님은 그런 첨단 의수를 사용하지 않았다.

양다리는 J자로 구부러진 철판 같은 의족이었고 왼쪽 팔은 갈고리 형태의 구형 의수다. 덕분에 좀 무력한 장애인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

하지만, <눈>을 가진 난 그렇게 보이질 않았다.

그 ‘무지막지한 실체’를 보며 굳어버린 동안, 그녀는 단상에 올라 자기를 보좌하는 전찬휘 경감에게서 마이크를 건네받곤 좌석을 한번 훑어보며 입을 열었다.

“아아, 반갑습니다. 국정원 제5차장 ‘나세영’이라고 합니다. 이번 작전 참여 요청에 기꺼이 나서주신 각성자 분들에게 감사를 표합니다. 그럼 먼저, 이번 작전의 대략적인 개요에 대해 설명하겠습니다.”

여자치곤 거친 목소리. 이어서 옆에 있는 전찬휘 경감이 리모컨을 조작하자 강당에 커다란 홀로그램 영상이 떠오른다. 다들, 그 영상에 집중하는 가운데 여자는 브리핑을 시작한다. 뭐라 떠드는 것 같은데…… 긴장 때문인지 그 설명이 전혀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너, 왤케 식은땀 흘림? 어디 아픔?”

그런 내 이상을 알아챈 듯, 단상을 보며 치킨을 먹던 서예린이 속삭인다.

그렇게 많이 티가 났나? <눈>의 시점을 옮겨서 내 꼴을 3인칭으로 보니까 말이 아니었다. 안색이 창백해지면서 식은땀을 줄줄 흘리고 있네. 하긴, 내가 본 걸 그대로 인지하면 저럴 수밖에 없지. 그에 난, 침을 꿀꺽 삼키며 작게 속삭였다.

“저기, 저 단상에 있는 여자 있잖아요.”

“나세영? 저 여자가 뭐? 딱히 적의는 없음. 뭔가 있어 보이긴 했지만.”

내 말에 별것 아니라는 듯이 대꾸하는 서예린, 그에 난 고갤 저었다.

“아니에요. 엄청 위험해요. 딱히 악의를 가진 건 아닌 거로 보이지만……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 같은 위험함? 무너질 것 같은 댐?”

그런 내 대답에 서예린이 ‘?’를 머리에 띄운 것처럼 고갤 갸웃하고, 난 지금 내 <눈>에 보이는 저 여자의 상태를 묘사했다.

“저 여자, 어떤 신인지는 모르겠지만…… 코드 108의 신도 중 하나에요. 그리고, 엄청나게 거대한 신의 힘이 그 안에서 맥동하고 있어요. 막판 오무혁 정도까진 아니지만 닥터 크림슨 정도는 확실히 뛰어넘는 수준, 어떤 힘인지는 모르겠지만 무지 강할 거예요.”

유혈의 피라미드 안에서 봤던 ‘칸의 신도’가 된 대환이. 그때, 녀석의 뇌와 심장에는 일종의 커다란 균열이 있었다. 신과 이어지는 통로, 그곳에서 힘을 끌어다가 썼었지. 그리고 지금 내 <눈>으로 보이는 저 앞에 있는 작은 여자도 똑같은 걸 가지고 있었다. 다만…….

그 규모가 너무 커서 인간이라기보단 그냥 ‘움직이는 거대한 균열’ 같았다.

빈 양다리, 의족을 찬 왼팔, 몸통 전체와 내장 곳곳…… 수십 군데에 그런 ‘균열’이 쩍쩍 가 있었다. 그 사이로 어마어마한 힘이 흘러나오는 것이 보인다. 세상을 일그러트리는 무한한 ‘신의 힘’이. 그리고 무엇보다…….

그 거대한 균열 사이로 형용할 수 없는 ‘신의 형상’이 보였다.

워낙 균열이 커서 그런지 그게 보였어! ‘그것’은 딱히 이곳을 보고 있지 않았고, 살짝 낌새를 보자마자 내 본능이 재빨리 <눈>의 기능에 간섭해서 모자이크 처리했지만…… 이미 살짝 엿본 그 ‘무한한 광기의 형상’에 PTSD가 오며 반쯤 공황이 왔다.

르피너스, 칸, 세로쉬, 그리고 이번 것까지.

벌써 4명의 신을 영접했지만 전혀 익숙해지질 않는다. 그래, 사실 죽는 건 사실 별 상관없어. 그냥, 감당할 수 없는 걸 인지하는 것만으로도 가장 큰 저주다. 마치, Hal-cas를 본 사람이 비슷한 것만으로도 기겁하는 것처럼 머리가 제멋대로 그 형상을 떠올리려고 한다.

하지만, 내가 본 걸 보지 못하는 서예린은 그런 내 답변에 김이 식었다는 듯이 피식 웃는다.

“그런 거로 긴장한 거임? 걱정마셈. 코드 108의 숭배자라고 해서 다 위험한 건 아님. 저 사람, 내가 보기에 적의가 없음. 그러니…….”

“아니, 그런 거면 신경도 안 썼을 거예요. 근데, 문제는 저 여자의 몸이에요.”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균열이 잔뜩 간 댐 아래에 서 있다고 생각해 보자, 과연 그곳이 안전할까? 그 댐 안에 갇힌 물이 사람을 해치겠다는 악의(惡意)를 가지지 않았다고 해서 안심할 수 있을까? 지금 저 여자의 상태가 딱 그러했다.

“저 여자의 몸 상태는 그리 좋지 않아요. 품은 힘에 비해 그 육신이 너무 연약해서…… 언제 찢길지 모르는 연약한 현실의 균열 같아요.”

“…….”

“제 감으로 보건대, 저게 찢어져서 터진다면 최소한 이곳은 깡그리 날아갈 걸요.”

그제야 표정이 좀 심각해지는 서예린. 내가 가진 감지 능력을 알기에 흘려들을 수 없겠지. 솔직히, 당장에라도 빤스런 치고 싶은데…… 다들 심각한 얼굴로 브리핑을 듣느라 나갈 분위기가 아니다. 강당 밖 문 앞에도 심상찮은 검은 양복의 아저씨들이 대기해있고.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대략적인 설명은 여기까지. 세부적인 작전은 각 파트장과 나눠서 할 겁니다. 이 영상의 명시된 배정표에 맞춰서 30분까지 미르의 각 건물로 이동해주시길 바랍니다.”

브리핑이 끝나고 참석자들이 자리에서 일어서는 가운데, 난 가장 먼저 빠르게 강당 문밖을 나섰다. 그리고 곧바로 건물 밖까지 나간 후-.

“허어어억! 허억! 허억!”

턱밑에 흐르는 식은땀을 닦으며 숨을 헐떡였다.

아직 더위가 가시질 않은 8월 초의 여름 공기, 건물 안의 선선한 에어컨 바람에 비하면 후덥지근하고 불쾌했지만 그래도 폭탄을 눈앞에서 안 보니까 숨통이 트인다. 그래 봤자 균열이 터지면 여기서도 끝장인 건 똑같지만.

그런 내 모습에 같이 뒤따라 나온 서예린이 입을 열었다.

“어떻게 할 거임?”

“……글쎄요. 생각 좀.”

대꾸하며 심신의 안정을 위해 전자 담배를 꺼내 이완제와 진정제가 섞인 카트리지로 갈아 끼웠다. 그리곤, 천천히 그 연기를 빨아들이며 머릴 좀 식히고 생각했다. 음. 확실히, 그 여자는 터질 것처럼 위험하긴 하지만…….

“일단, 다시 들어가죠.”

“괜찮겠음?”

“네, 지금 생각해 보니 너무 과민반응한 것 같기도 해요. 그 여자 앞에만 서지 않으면 괜찮을 거예요. ……아마도.”

그것에서부터 시선을 돌리고 약물로 머리를 식힌 뒤에 생각해 보니…… 난 그 거대한 균열 너머로 조금씩 보이는 ‘끔찍한 실체’-신의 형상에 반쯤 돌아있었다. 용케 패닉에 빠지지 않았다고 생각했지만 이미 약간이나마 빠진 거지. 아, 자꾸 언급하니 생각나네. 다른 생각, 다른 생각…….

“더우니까 먼저 들어가세요. 전 이거 좀만 더 피우고 들어갈 테니까.”

“음, 그럼 나 먼저 들어감. 끝나고 카톡하셈.”

“네, 들어가요.”

그렇게 서예린이 사라진 뒤, 혼자서 전자 담배를 뻐끔거리며 심신을 진정시키고 있는데…….

-덜컥!

돌연 다시 건물 문이 열리며 두 사람이 나온다. 하나는 회색 양복 차림의 건장한 오크, 그리고 다른 하나는 양 씨였다. 나오자마자 고갤 두리번거린 양 씨는 문가에서 전자 담배를 물고 있는 날 보자마자 타박한다.

“얀마, 밖에서 뭐하는 거야? 너 안 보여서 찾아다녔다고. 서예린한테 겨우 물어서 찾았다”

“아, 죄송해요. 잠시 답답해서…… 전화라도 걸지 그랬어요?”

“걸 수 있으면 진즉에 했지. 여기, 보안상의 이유로 일시적으로 전화 전파 차단됐다.”

투덜거리는 양 씨, 그런 그를 뒤따라온 회색 정장의 남자 오크가 빤히 보고 있었다. 아까 선약이 있다면서 간 양 씨가 대화하던 오크인데? 그에 난 조심스럽게 눈짓했다.

“그나저나…… 저분은 누구시죠?”

“아! 이분 소개해주려고 찾은 거야. 인사해라. 우리 그레이 쉴드의 ‘상무이사’님이신 오태산 씨야. 오태산 씨, 여기는 한새벽이에요.”

그런 내 말에 양 씨는 같이 따라 나온 오크를 소개한다. 흠, 진짜 이종족을 고용했었구만? 어쨌든 양씨의 소개에 난 그 오크에게 살짝 고갤 숙였다.

“안녕하세요. 한새벽이라고 합니다.”

“……네, 오태산이라고 합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공손하게 대꾸하며 내게 고갤 숙이는 오태산 씨, 그 모습에 살짝 당혹스러웠다. 왜냐고? 너무 공손해서. 송파구에 머물면서 난 오크를 꽤 많이 봤다. 그렇게 살펴본 결과, 오크들은 ‘살짝 거친 면’이 있었다.

마초적이라고 해야 하나?

존댓말을 해도 ‘예의를 갖추는 야수’ 같은 느낌인데, 이 오크 아저씨는 굉장히 저자세였다. 양우영도 살짝 당황한 걸 보면 평소엔 이러지 않는 것 같은데 말이지? 그런 의아해하는 기색을 읽은 듯, 오태산이라 불린 오크는 부드럽게 웃는다.

“강수영 교수님의 제자라면서요?”

“……아, 네! 제자긴 하죠. 하하.”

“저희 오크는 강수영 씨에게 큰 은혜를 입었습니다. 제자분도 존중받아 마땅하죠.”

옆의 양 씨는 그제야 ‘아~’하며 그의 공손한 태도를 납득한 것처럼 보였지만…… 이해 가질 않네. <눈>으로 여러 각도에서 확인하니 저건 예의를 차리며 공손하다기보단 너무 긴장한 것에 가깝고. 어찌 됐건 오태산 씨는 정장의 품 안에서 명함 하나를 꺼낸 후-,

“여기, 제 연락처입니다. 언제, 한번 뉴 송파구를 방문해주시길.”

내게 내밀면서 자기 손가락에 낀 마법 반지를 은근슬쩍 만진다.

……아하, 아무래도 내가 맡겼던 장비에 관한 것 같구만? 그래, 그러면 언제 한번 가야지. 내가 명함을 받자 그는 손목시계를 힐끗 보곤 이만 가 보겠다고 한 뒤, 다시 건물에 들어가지 않고 쿨하게 밖으로 나간다. 그 뒷모습을 보며 난 입을 열었다.

“저 사람도 이번 작전에 참여하는 건가요?”

“참여라기보단 일할 사람을 파견하는 거겠지.”

파견? 내가 바라보자 양 씨는 가볍게 어깰 으쓱인다.

“오태산 씨는 뉴 송파구의 고위 공무원 중 하나야. 그리고 동시에 미궁에서 자원 채취를 해오는 회사-‘블랙 실버 컴퍼니’의 사장이기도 하고.”

“에, 그러니까 파견한다는 게……?”

“알다시피 미궁은 무법지대야. 당연히, 자원 채취 과정에서 돌발 상황이 많이 발생하지. 전투는 필수적이야. 그래서 일하는 오크 인부들은 용병에 더 가까워.”

“아.”

“저 사람이 파견하는 오크들을 우리가 쓸 거야. 정확히 말하면 국정원 아저씨들이. 뭐, 나는 바지사장이라서…… 그래도 돈은 버니까.”

아쉽다는 듯이 입맛을 쩝 다신 양 씨는 ‘늦겠으니 어서 가자.’며 앞장선다. 다급하게 튀어나오느라 배정된 호실은 몰랐지만 양 씨가 같은 방이라고 해서 그냥 뒤따라갔다. 그렇게 우리가 향한 곳은 ‘선도부’ 건물, 능숙하게 안내도를 따라 움직인 양 씨가 지하 1층의 어느 한 방문 앞에 서는 순간-.

“아니, 제발.”

“……뭐?”

내 말에 문고리를 잡은 채로 날 응시하는 양 씨, 그완 별개로 난 지끈거리는 머리통을 붙잡았다. 방 안에 있는 전찬휘 경감…… 아니, 이젠 우리 회사 이사인가? 사무관? 아니, 그냥 아무튼 있다. 그래 여기까진 이해한다. 보기 싫어도 마주쳐야 하는 직장 상사라고 생각하면 되니까.

하지만, 폭탄을 마주하는 건 너무하지 않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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