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자를 위한 연중작은 없다-158화 (158/350)

제158화

5.

“빨리 들어가자. 늦었다.”

내가 좌절한 가운데, 아무것도 모르는 양 씨는 혀를 차곤 활짝 문을 열었다. 작은 방, 그 안에 가장 상석의 소파에 그 나세영이라는 ‘찢어질 것 같은 현실의 균열’이 앉아서 탁자에 의족을 올려놓은 채 느긋하게 막대사탕을 빨고 있었다.

“…….”

빨리 들어가자고 재촉하던 양 씨도 그 여자를 보는 순간 살짝 흠칫한다.

국정원 ‘제5차장’이 정확히 얼마나 대단한 직급인 건진 모르겠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끗발이 되는 건 확실해 보이니까. 겉보기엔 활기찬 20대 중반 누님으로 보이지만 실제론 나이도 좀 먹었겠지.

“늦었군. 앉아라.”

그렇게 우리 두 사람이 문 앞에서 굳어있자 차장의 옆에 앉아 있던 전찬휘 경감이 자기 맞은편 소파를 향해 턱짓한다. 그 재촉에 양 씨는 어울리지 않게 빠릿빠릿하게 들어가 착석했지만…….

“……뭐하나?”

난, 뱀을 본 개구리처럼 움직이질 못했다.

강해진 정신력…… 아니, 이미 박살 나서 무너질 거리도 없는 정신력으로 버티고 있지만 몸이 알아서 PTSD 반응을 한다. 대답 대신에 작게 신음을 내며 식은땀이 턱밑에 맺혀 떨어질 정도로 줄줄 흘리자 전찬휘 양반이 일어나더니 빠르게 다가와서 날 살핀다.

“어디 몸이 안 좋나?”

“…….”

“……아, 새벽이가 컨디션이 안 좋아서 그런 걸 거예요. 어제 많이 다쳤거든요.”

굳어있는 내 모습에 양 씨가 말하고, 그에 전찬휘 양반은 환자 돌보듯이 억지로 날 부축해서 소파에 눕혔다. 그에 난 아예 <눈>의 시야까지 꺼버린 후, 덜덜 떨리는 손으로 품 안에서 아까 피우던 전자 담배를 꺼내 입에 물고 빨았다.

“……쟤 뭐하냐?”

“아, 저거 치료제에요. 폐로 빨아들여서 뇌에 약물을 공급한다고 하더라고요. 힘든가 봐요.”

나세영 차장의 질문에 내가 이런 거 빠는 걸 많이 본 양 씨가 ‘치료제’라며 커버 쳐준다. 그렇게 뇌에 약물을 한 번 더 공급하자 발작하던 육체가 약 기운에 좀 나른하게 풀린다. 그렇게 내가 약물 테라피를 할 동안, 차장 양반은 이야기를 시작했다.

“뭐, 쟤에 대한 건 나중에 말하기로 하고…… 얘기는 들었다. 꼬맹아. 그레이 쉴드, 이능력자 PMC 회사. 이종족을 용병으로 쓰려고 한다지?”

“네, 밖의 사람에 비하면 ‘저렴한 가격’으로 전투직 마력 각성자를 쓸 수 있으니까요. 게다가 전투 경험도 풍부하고. 미국에서도 이미 증명된 사업인 걸요.”

처음 방문을 열었을 때 흠칫한 게 거짓이라는 것마냥 유창하게 대답하는 양 씨, 그에 차장의 나지막이 웃음 섞은 목소리가 들린다.

“확실히, 그렇긴 하지. 우리로서도 나쁘지 않아. 안 그래도 인력이 많이 부족하거든. 하지만, 우리가 직접 이종족을 고용하면 정치권의 문제가 있지. 근데, 이렇게 하청으로 해결하면 별 부담이 없어. 머리가 좋네.”

“뭐, 고아가 성공하려면 머리라도 좋아야죠.”

“하지만, 너무 기어오르진 말렴. 너희들이 모라티온 교단의 일에 대해 일부러 방송가에 흘린 것쯤은 알고 있으니까. 정부의 내부 사정까지 고려해서 절묘하게 딜을 한 걸 보면…… 아마 DK그룹의 왕녀도 끼어있겠지?”

생글생글하는 차장 누님의 목소리, 그에 양 씨는 아무런 부정이나 긍정도 하지 않았다. 설마, 말싸움에서 진 건가? 살며시 <눈>을 떠보니 그건 아니었다. 특유의 능글맞은 웃음을 짓고 있구만. 으음, 누가 저걸 고 2짜리로 볼까?

어쨌든 그렇게 대화가 끝난 뒤, 차장의 시선이 날 향했다.

“끅!”

-탁! 떼구르르르…….

그 순간, 약물로 게게 풀렸던 몸이 반응한다. 딸꾹질하다가 입에 문 전자 담배를 놓쳐버렸어. 거참, 일부러 신의 은총이 안 보이도록 눈을 설정했는데도 자동 반응하네…… 그렇게 떨어진 전자 담배가 바닥을 구르는 가운데, 차장의 표정이 묘하게 변한다.

“……너, 설마하니 나 보고 긴장한 거니?”

그 말에 방 안에 묘한 분위기가 감돈다. 허허, 눈치가 빠르시네. 그에 난 살짝 고민하다가 고갤 끄덕였다.

“네.”

“……왜?”

“…….”

“말해 봐, 궁금하네.”

이걸 말해야 하나? 그냥 말 안 해도 넘어갈 것 같으면 입 꾹 닫고 있겠지만…… 다들 날 바라보기에 난 결국 작게 한숨을 내뱉으며 입을 열었다.

“에…… 우리나라에서 코드 108을 숭배하는 건 불법이지 않나요?”

6.

내 대답에 양 씨와 전찬휘 양반은 ‘뭔 말하는 거냐?’는 듯이 날 바라봤지만.

“호오?”

내 대꾸에 차장의 얼굴에 흥미가 피어오른다. 그리곤, 탁자 위에 있던 의족을 내리고 허릴 숙여 내 쪽을 유심히 바라본다. 탁한 회색의 왼쪽 눈, 균열이 나 있는 그걸 들이미는 모습에 내가 반사적으로 뒤로 물러나자 그녀는 씨익 웃었다.

“역시, 뭔가 있는 건가?”

“……네?”

“국정원 전력 분석과에서 네가 뭔가 ‘특이한 감각’을 가지고 있다고 확신하더라고.”

국정원 전력 분석과? 도대체 뭔 소리 하는 거지. 내가 감을 못 잡아서 벙쪄 있는 동안, 우리 높으신 국정원 차장님은 사탕을 깨물어 먹은 뒤에 싱글싱글 웃었다.

“알고 있겠지만 ‘코드 108’의 잔재와 조우해서 미쳐버리는 이들이 좀 많거든? 그렇기에 3달 전에 벌어진 미르 사태, 거기서 <기억 소거> 조치를 받지 않은 생도들은 ‘감시 대상’이란다. 당연히, 너희들도 대상 중 하나지.”

“……아.”

“특히, 너희 두 사람은 다른 애들보다 더 유력한 관찰대상이란다. 지금까지 밝혀진 너희들 행적들도 그렇고, 무엇보다 PMC까지 하려고 하는데 엄격한 조사를 해야지.”

그와 함께 그녀는 오른손을 뻗어 파일을 집어 들었다. <눈>의 시점을 옮겨서 확인하니까…… 무려, 나에 관한 프로필 파일이었다. 지금 펼쳐진 부분을 보니 그간 행적이 다 나와 있네.

……설마, 내가 국정원의 조사 대상이 될 줄이야?

빠르게 <눈>을 이동해서 전체 내용을 훑어봤다. 일단, 전투력 등급은 ‘1급 전투 마법사’. 실명에 가깝지만 특이한 감각을 깨우친 것으로 판단됨…… 다행히 <눈>에 관한 건 정확히 모르는 듯하다. 하긴, 설마 시점을 옮겨서 눈으로 본다는 건 상상도 못 했겠지.

……근데, 나 ‘특급 경계 대상’으로 분류되어 있네?

1년도 되지 않아 빠르게 마법을 익힌 걸 보면 ‘악마 빙의’ 혹은 ‘코드 108’의 손길 의심됨? 확인 요망?? 그래, 여기까지는 그래도 이해한다. 확실히, 내 마법적 성취는 일반인에겐 불가해의 속도니까.

근데, 스마트폰 해킹은 선 넘었지.

스마트폰을 통한 자료와 여러 정황 자료들로 판단한 성격 프로파일링 결과, 평소엔 온순한 편이지만 일정수준 이상의 스트레스를 받을 시 극단적으로 공격적 성향을 보임. 살인에 거리낌이 없으며 지금까지 확인된 사망자 382명? 어지럽구만…… 내 사생활은 없는 거냐?!

그렇게 내가 파일 내용을 훔쳐보며 식겁하는 사이, 차장님은 보란 듯이 파일을 펼치곤 담담히 말을 이어나갔다.

“한새벽, 북쪽 출신. 유혈의 피라미드 안에서 주요 범인인 ‘칸의 신도’-김대환을 사살, 이어서 특전대와 접촉해 닥터 크림슨에게 접근. 그 과정에서 한 번 회까닥 돌아버렸군?”

“…….”

“그리고 무엇보다, 여기 찬휘가 증언했지. 서강의 요청 때문에 바디캠엔 녹화되지 않았지만 이번 사태가 벌어질 것을 가장 먼저 경고한 이가 너라는 증언을 들었다고 말이야. 덕분에 너에 대한 관심이 좀 많아졌지.”

“하하하…….”

그 말에 옆에 앉아 있던 양 씨가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며 날 바라보고, 난 어색하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엿 같은 저 악덕 경찰 새끼. 도대체 내가 무슨 죄를 지었다고 미주알고주알 떠드는 건지…… 물론, 경찰로서 그래야만 한다는 건 알지만 억울한 건 억울한 거다. 그런 내 불만이 느껴졌는지 그녀는 보란 듯이 파일을 ‘탁!’ 접고 호주머니에서 막대사탕을 꺼내며 고갤 젓는다.

“뭐, 널 타박하는 건 아니야. 네가 미궁 출신 강사들에게 미리 경고한 덕분에 미르의 사상자가 많이 줄었으니까. 우리도 어떻게 미약하지만 대처할 수 있었고. 오히려 고마워해야 하지.”

“헤, 헤헤. 그럼요. 저처럼 선량한 사람이…….”

“하지만, 경계 대상일 수밖에 없잖니? 넌 벌써 북쪽에서 수백 명을 죽여 버렸는데. 게다가 정신과 진료 기록을 보니 많이 불안정하다고 하고.”

봉지를 깐 막대사탕을 입에 물면서 내 말을 도중에 끊어버리는 국정원 차장님, 그에 난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 나 개인으로선 매우 억울하지만 정부가 이러는 것 자체는 이해가 된다. 밝혀진 것만 해도 난 정신병자에 대량학살이 가능하니까. 그래도 스마트폰은 당분간 조심해야지. 딱히 켕기는 짓은 안 했지만 그래도 누군가 보고 있다니 찝찝해.

그렇게 내가 순순히 수긍하는 태도를 보이자 차장은 날 보며 빙긋 웃는다.

“그나저나 진짜 눈을 감고 있네. 그 특이한 감각으로 보는 거냐?”

“……뭐, 보는 게 아니라 ‘느끼는 것’에 가깝죠.”

“느껴?”

“네, 보이는 건 아니지만…… 일종의 유사시력? 범위는 짧지만 ‘마치 색채 없이 불타는 세계 같은 초현실주의 그림’ 같은 형태로 느껴지죠. 눈을 떠도 보이긴 하지만, 시각을 아예 배제하는 게 더 선명해요.”

진짜 내 능력에 대해서 말하는 대신, 저 파일 속의 내용들을 종합해서 적당히 페이크 정보를 말했다. 그에 고갤 주억이는 차장과 경감, 특히 경감의 표정이 ‘그럼 그렇지.’하는 게 좀 꼴 받는다.

어찌 됐든 그런 내 ‘자진 상납’에 차장은 흥미롭다는 듯이 날 응시한다.

“그래, 그럼 그 감각으로 보는 내 모습은 어떠냐? 도대체 왜 그렇게 날 보며 기겁하는 거지?”

“음…… 솔직히 말해도 되죠?”

“그래.”

양우영과 전찬휘 경감도 흥미롭다는 듯이 보는 가운데, 난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제 감각에 느끼지는 차장님은…… 사람이라기보단 현실에 난 ‘균열’ 같아요. 그 균열의 틈에서 ‘코드 108의 것’으로 보이는 엄청난 힘이 흘러나오고 있죠.”

“……균열?”

“네. 하지만, 균열 자체가 연약해서 언제 터져도 이상하지 않아요. 강당에서 봤을 때는 진짜 ‘언제 터질지 모르는 댐’ 앞에 서 있는 기분이었는데 지금은 좀 괜찮네요? 아마, 쪽쪽 빨고 계시는 사탕 때문인가요?”

연이은 내 말에 나세영 차장은 눈을 휘둥그레 뜨더니 곧 탐욕스런 눈빛으로 날 뚫어지라 바라본다.

“이야, 이거 진짜 진국이네! 야, 너 국정원 들어오지 않을래? 특채로 들어오게 해줄게. 참고로 우린 진급 무지 빠르다??”

“아뇨, 그럴 생각 없어요.”

“돈도 많이 주는데? 게다가 대우 또한 최상급…….”

“전 연구직이 천성입니다. 이 감각이 <연금술>하는 데 또 좋거든요. 돈이요? 그래 봤자 <연금술>로 약물을 가공해 팔아먹는 것에 비하면 적을 걸요? 솔직히, 이번 일도 이 인간이 한 번만 해달라고 애원해서 마지못해서 받은 거예요.”

영혼에 관한 연구를 하기도 바쁠 텐데 국정원에 끌려가서 일하라고? 절~대 안 하지. 내 옆에 앉아 있는 양 씨를 가리키며 단호하게 거절하자 아쉽다는 듯이 입맛을 다시는 차장님. 어쨌든 그녀는 다시 앞의 탁자에 의족을 올리며 고갤 끄덕였다.

“뭐, 그러면 어쩔 수 없지.”

“넵, 감사합…….”

“아, 그리고 네 말이 맞는단다. 난 코드 108중의 하나를 섬기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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