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자를 위한 연중작은 없다-159화 (159/350)

제159화

그 답변에 양우영은 물론이고 전찬휘 경감도 놀란 것인지 몸을 살짝 움찔한다. 반응을 보아하니 전찬휘 경감도 몰랐던 듯? 하지만, 차장님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어깰 으쓱였다.

“뭐, 국정원 내부의 어느 정도 직급이 되는 사람들은 다 아는 공공연한 비밀이야. 나 같은 존재는…… 일종의 ‘필요악’이지.”

“필요악이요?”

“그래, 코드 108을 섬기는 자들은 그 대가로 대부분 인간을 초월한 힘을 얻어. 너희들도 경험해봤지? 칸이나 모라티온이나.”

그래, 석 달 전 ‘미르’와 한 달 전 ‘양의 낙원’에서. 각각 칸의 신도와 모라티온의 신도에 아주 호되게 당했지. 나와 양 씨가 고갤 끄덕이자 그녀는 말을 이어나갔다.

“그런 놈들을 상대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우리도 코드 108을 섬겨야 할 때가 있단다. 대부분, 살상을 요구하지 않는 코드 108이지.”

오른손을 보란 듯이 들어 올리는 국정원 차장님, 그러자 그녀의 오른팔에 있는 일부 균열에서 힘의 격류가 터져 나와 그 손아귀 안에 모인다. 코드 108로부터 비롯된 그 ‘순수한 힘의 파동’은 그녀의 의지에 따라 공간을 쥐어뜯는다.

“…….”

“…….”

양우영과 전찬휘, 두 사람은 그 강렬한 힘의 격류를 느끼고 긴장한 반면에. 난 금방이라도 찢어질 것 같은 균열의 모습에 질색했다. 그런 우리들의 반응에 차장님은 공간을 쥐어뜯는 걸 멈추곤 입에 물었던 막대사탕을 오른손으로 쥐며 능청스럽게 어깰 으쓱인다.

“긴장할 것 없어. 내가 섬기는 ‘리브라소’는…… 아니, 섬긴다고 해야 하나 모르겠네? 어쨌든 리브라소는 그 어떤 종류의 살육도 원치 않아. 자기를 욕해도 상관없어. 심지어는 배교를 해도 아무런 징벌도 없지.”

“그럼 그냥 힘만 주는 건가요……?”

“그건, 아니야.”

혹한다는 표정을 한 양우영의 질문, 그에 차장님은 씁쓸한 표정으로 고갤 저으며 왼손의 갈고리 같은 의수를 들어 올렸다.

“리브라소는 ‘신도의 희생’을 원해.”

“…….”

“난 내 양쪽 다리와 왼쪽 팔, 한쪽 눈…… 그 외에 수많은 것들을 스스로 ‘희생’했어. 그 대가로 이런 힘을 얻었고.”

“그래도 골렘 의수라도 달면…….”

“못 달아. 그런 의수는 뇌의 전기신호를 읽어야 하는데, 난 ‘희생’의 여파로 그런 게 아예 없거든. 한 번 희생한 건, 그 어떤 수단을 써도 돌이킬 수 없다는 거야.”

왼손 의수로 관자놀이 쪽을 툭툭 두드리는 말하는 차장님, 그런 이유 때문에 저런 구식 디자인 의수를 쓰는구나. 그 뒤, 차장님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우리와 전찬휘 사무관을 향해 입을 열었다.

“어쨌든 나 말고도 국정원에 코드 108을 믿는 이들이 있으니 혹시 만나도 긴장하지 말렴. 어찌 되었든 간에 필요한 사람들이니까. 그리고 사회에 피해를 끼치지 않는 코드 108을 믿는 이들이니까. 알겠냐?”

“넵.”

“좋아, 잡담은 여기까지 하고. 너희들이 이번 작전에서 맡아야 할 역할을 말해주지. 그전에 약간 테스트가 있으니 따라와라.”

자리에서 일어서는 나세영 차장님, 방문을 열고 앞장서서 걷는 그녀를 따라서 우리도 움직였다. 다행히, 이번엔 몸이 제대로 움직였다. 그렇게 지하로 향하면서 차장님은 말을 이어나간다.

“일단, 이번 임무에서 너희들에게 맡겨진 건 내 ‘근접 호위’ 겸 ‘탐색’이란다.”

“호위 겸 탐색…… 말입니까?”

생각지도 못한 임무인 듯, 의아해하는 양 씨의 대꾸에 고갤 끄덕이는 차장님. 내가 훔쳐본 파일의 내용에 따르면…… 저 임무는 나와 양 씨 두 사람의 ‘정확한 능력’과 ‘전투력’을 측정하려는 목적이 더 강했다. 특히나, 나에 관한 것이 많았어.

“그래, 호위 자격은 충분하지. 바디캠 영상만 봐도 각자 1인분은 충분히 하고도 남으니까. 그리고 탐색은…… 흰둥아.”

“……저요?”

왠지 나를 부르는 것 같아서 대꾸했는데 고갤 끄덕이신다. 거, 흰둥이라니…… 개X끼도 아니고. 어찌 됐든 간에 차장님은 말을 이어나간다.

“그래. 너. 미르에 유혈 사태가 벌어진 이후, 너에 대해 조사하면서 그 ‘특이한 감각’이 주목받았거든. 그걸 활용해보자고 하더라고.”

“제 감각이요?”

“그래. ‘미르의 유혈을 사전에 감지.’, ‘실명 상태에 가까운 눈으로도 무리 없이 움직임.’ ‘갇힌 트럭 창고 안에서 외부를 보지 않고 판단.’ 그리고 지금, 날 보자마자 코드 108의 추종자라고 밝힌 것까지. 생각하면 할수록 네 감각은 대단하지. 그러니 한번 써먹어 봐야 하지 않겠어?”

딱히 숨길 생각이 없는 듯, 되게 쿨하게 파일의 내용을 읊는 차장님. 그에 양 씨도 ‘이놈이 그렇게 대단한 놈이었던가?’라는 시선으로 날 힐끗 본다. 그걸 이제 아셨수? 어쨌든 그런 차장님의 뒤를 따라서 우리는 선도부 지하의 외딴 복도를 지나 한 곳에 도착했다.

“오셨습니까, 차장님?”

나무 의자 하나만 덩그러니 있는 삭막한 콘크리트 공간, 의자에 앉아서 단검으로 손톱을 다듬고 있던 험악한 양복 아저씨가 일어서서 우릴 반긴다. 들고 있는 단검은 물론이고 양복과 목걸이, 손목시계…… 걸치고 있는 게 전부 마법 장비네.

그에 차장님은 고갤 까닥인다.

“그래. 그리고 이 애들이 이번에 함께 활동할 알바생들이다.”

“그렇습니까?”

씨익 웃는 아저씨, 거 얼굴에 칼빵 있어서 그런지 무지 살벌하구만. 그렇게 나와 양 씨가 아저씨를 향해 살짝 고갤 숙여 인사하는 사이, 전찬휘 경감은 혐오스럽다는 듯이 얼굴을 찡그리며 주위를 둘러본다.

“……선도부 안에 이런 곳이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자숙실과 비슷한 감금시설, 하지만 살벌함은 자숙실과 비교되지 않았다. 유리 벽으로 너머에 보이는 수감자들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 상태, 눈은 안대로 가렸고 입에는 재갈이 물렸는데 벽에 박혀 있는 쇠사슬에 발목과 손목이 묶여 대(大)자로 구속되어 있었다.

그에 차장님은 어깰 으쓱였다.

“적대적인 마력 각성자를 구속해두는 감옥이지. 인권 유린의 현장이긴 하지만 어쩔 수 없어. 몇몇 심연 타락체는 공간을 자유자재로 도약하거든. 게다가 폭발적으로 주위 물체를 부식시킬 수도 있고. 이건, 진짜 최소한의 조치야.”

음, 걸려 있는 사슬은 하나같이 체력을 떨어트리고 힘을 약화하는 부정적인 효과를 일으키는 마법 장비구만. 수감실 바닥이 환풍구 창살에 죄수들이 하나같이 물에 젖은 걸 보면 싸면 그냥 물로 씻기나 보네.

어찌 됐든 간에 차장님은 유리 벽 너머에 갇혀있는 이들을 보며 차분히 입을 열었다.

“알고 있겠지만 이번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심연 기생체 색출 및 박멸’이란다. 너희들은 그 심연 기생체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니?”

나도 사실은 잘 모른다. 르피너스의 장난감에서 네쉬라의 신도에 대한 짤막한 설명-‘심장을 중심으로 이형의 살점이 기생해서 숙주를 파먹고 나중에는 완전히 다른 존재로 탈바꿈한다.’ 정도? 죄수들 중 네쉬라의 신도로 보이는 놈들이 있어서 살짝 <눈>으로 살펴본 결과…….

실체는 더 끔찍했다.

영혼이 타락한다고 해야 하나? 심장에 박힌 기생체는 숙주의 영혼을 구역나는 힘으로 물들이고 조금씩 파먹고 있었다. 으음. 하지만, 이런 걸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 다행히, 우리 양 씨가 대표답게 먼저 대꾸한다.

“보통 상처를 통해 감염되며. 감염되면 숙주는 식인이나 광증 등의 이상행동을 보이고 적극적으로 기생체를 보호함. 그러면서 서서히 괴물이 되어간다는 것 정도? 게다가 현재까진 치료 방법도 없고요.”

“맞아. 외부엔 그렇게 알려졌지. 일단, 각국 정부가 숨기고 있는 사실을 하나 말해주자면…… 사실 심연 기생체는 ‘코드 108’과 연관되어 있단다.”

“……네?”

난 이미 알고 있던 내용, 몰랐던 우리 양 씨가 흠칫하고 차장님은 담담히 말을 이어나간다.

“심연 기생체 감염자들이 회까닥해서 ‘네쉬라!’라고 외치는 건, TV나 인터넷에서 떠드는 ‘기생체들의 생체 네트워크가 만들어 낸 군체 의식’이 아니라 코드 108의 이름이란 거지.”

“…….”

“참고로 심연 기생체에 감염되지 않더라도 네쉬라를 섬기면 심장에 심연 기생체가 생겨난단다? 아주 지독해. 우리가 괜히 숨기는 게 아니야. 장난삼아 ‘네쉬라를 믿습니다.’ 하다가 진짜 타락체가 되는 경우도 몇 없지만 있거든. 되게 골 때려요.”

이어지는 차장님의 설명에 양 씨의 입이 벌어지는 가운데, 다시 감옥에 갇힌 이들을 향해 시선을 돌리며 차장님은 얼굴을 구긴다.

“그리고, 이 심연 기생체들은 색출도 매우 골치 아파. 코드 108의 힘을 가지고 있는 데다가 어느 정도 지능까지 가지고 있어서 검사에 저항하지. 의태 능력이 있어서 X레이나 MRI 같은 검사로도 밝혀지지 않고, 심지어 마력을 이용한 검사도 능청스럽게 넘어가.”

“와…….”

“유일하게 ‘정확한 검사 방법’은 외과적 수술을 통한 확인. 직접 피부를 가르고 감염 의심자의 심장을 확인하는 거지. 당연히, 저항이 만만치 않단다. 게다가 인권이니 뭐니 하면서 숙주가 선동이라도 하면 골치 아파요. 괜히, 대부분의 나라가 욕 처먹으면서도 통째로 폭격으로 쓸어버리는 게 아니야.”

한숨을 푹 내뱉으며 한 번 고갤 절레절레 저은 차장님은 이내 날 빤히 바라보신다.

“그럼, 제가 할 건…….”

“그래, 상대를 보며 ‘심연 기생체’가 누군지 밝혀내라는 거지. 이 중에 우리가 포획한 신도가 딱 하나 섞여 있어. 구분할 수 있겠냐?”

기대 섞인 차장님의 질문에 난 가볍게 피식 웃었다. 한 명? 자신만만하게 웃으며 난 감옥 안에 있는 두 남자를 차례로 가리켰다.

“한 명이 아니라 두 명이네요. 1번실, 그리고 3번실.”

“뭐?”

“두 명이라고요.”

“……내가 듣기론 3번실 1명이었는데.”

당혹스런 표정으로 얼굴에 칼빵 있는 험악한 간수 아저씨를 바라보는 차장님, 그에 간수 아저씨도 당황한다. 뭐야, 테스트가 아니었냐? 어찌 됐든 차장님의 시선에 간수는 단호하게 고갤 저었다.

“외과적 수술로 확인하진 않았지만 기절했을 때 마력 각성 반응이 나온 사람은 한 명입니다.”

“네, 제가 보기에도 1번 사람은 마력 각성자가 아니에요. 하지만, 왜인지는 몰라도 코드 108의 흔적이 느껴지네요. 차장님의 것과는 다른, 그리고 저 두 사람이 동일한 종류예요.”

확실히, 그자는 마력 각성자가 아니었지만 심연 기생체가 심장을 대체하고 있었다. 그런 내 답변에 차장님과 간수, 그리고 전찬휘 경감-세 사람의 얼굴이 심각해진다.

“……하, 젠장. 마력 각성자가 아닌 신도? 닥터 크림슨도 그렇고 이놈들도 점점 더 발전하네.”

“틀렸을 수도 있지 않습니까?”

“그랬을 수도 있지. 하지만, 아닐 확률이 더 커. 야, 1번실에 있는 놈은 누구냐? 프로필 불러 봐.”

차장님의 질문에 간수는 허릴 숙여 의자 옆 바닥에 내려놨던 파일을 쥐곤 안쪽을 확인했다.

“나머지는 그냥 흉악범이지만 1번은…… 3번과 같은 고향 출신 친구라고 합니다. 통화기록을 통해 의심되는 인원은 3번이라서 3번만 납치하려고 했는데, 통 떨어지질 않아서 함께 납치했답니다.”

“함께 납치? 그럼 여기 왜 있어? 민간인 아니야?”

“사실, 1번도 흉악범입니다. 해안 경찰인데, 이번에 통신기록 확인한 결과 인신매매 관련된 게 확인돼서 함께 체포했습니다. 좀 역겨운 놈이라서 경찰에게 넘기기 전에 이렇게 테스트 겸으로 끌고 왔죠.”

인신매매라는 말에 혐오로 얼굴이 일그러지는 차장님은 곧바로 고갤 끄덕였다.

“좋아, 그럼 흰둥이 말이 맞는지 한번 확인해보자고.”

“어, 그럼 곧바로 외과 의사를…….”

“아니, 그럴 필요 없어. 문 열어.”

“……네?”

“문 열라고.”

몸에 난 균열에서 힘을 흘리며 흉포한 기세를 내뿜는 차장님, 그 과한 반응에 간수 아저씨가 움찔거리며 곧바로 수감실 옆의 키패드를 조작해 유리문을 연다. 옆에 전찬휘 경감은 바짝 쫄았는데도 ‘함부로 사람을 해하면 안 된다~’ 뭐라 말하지만-.

-뚜벅. 뚜벅.

차장님은 쿨하게 무시하며 문을 박차고 들어간다.

인기척을 들은 듯, ‘읍! 읍!’ 거리면서 뭐라 말하려는 수감자. 그러나 차장님은 말 대신에 왼쪽 팔뚝에 난 균열에서 힘을 끌어올리더니 벽에 묶여 있는 남자를 향해 의수를 휘둘렀다.

-콰득!

금속 재질의 날카로운 손톱 갈고리가 가슴팍에 박히고, 연이어서 살점과 함께 흉골을 그대로 뜯어낸다. 그 광경에 간수 아저씨를 제외한 우리 일행이 기겁한 가운데, 차장님은 연거푸 터프하게 오른손을 뜯겨나간 가슴팍에 뻗어-.

-뿌드드득!

-끼이이이이!

“……정답이네.”

폐 사이에 있는 심장을 뽑아냈다.

기성을 내지르며 꿈틀거리는 역겨운 회색의 살덩어리, 확인하자마자 오른손의 균열에서 힘의 격류가 터져 나오고 그대로 심연의 살점은 차장님의 손안에서 거의 점으로 압축된다. 그렇게 으깬 기생체를 쓰레기 버리듯 내던진 뒤, 차장님은 날 향해 끄덕였다.

“좋아, 테스트는 합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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