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1화
전찬휘 아저씨 나오는 것까진 예상했는데, 그 옆 운전석에서 나온 사람은 정말 생각지도 못한 사람-정한솔 선생님, 내 정신과 담당의였다. 내가 깜짝 놀라서 소리치자 의사 양반이 날 보며 고갤 까닥인다.
“오랜만이다. 약은 잘 챙겨 먹고 있지?”
“네, 뭐…….”
“이 새퀴, 세영 언니에게 듣곤 깜짝 놀랐다니까? 북한 가서 뭐하나 했더니만…….”
못마땅하게 살짝 흘겨보는 의사 양반의 시선에 어색하게 웃었다. 하긴, 정신과 의사로서 환자가 사람 죽이고 다닌다는 게 좀 그렇게 보일만 하지. 설마, 다시 정신병동에…… 아니, 이젠 탈출할만한 능력은 되지.
어쨌든 난 헛기침을 하며 화제를 돌리기 위해 입을 놀렸다.
“근데, 선생님은 뭔 일로 오셨어요?”
“왜긴, 전투원들 정신 케어 해주려고 왔지. 추가로 타락체의 정신연구도 해보려고. 저번에 도박 삼아서 해봤던 <기억 소거> 효과가 매우 뛰어나다고 해서 말이야. 혹시 타락체의 기억을 소거시키는 게 가능한…….”
“한솔아, 그거 기밀이다.”
나른한 목소리로 끼어드는 차장님, 그에 정한솔 선생은 멈칫하더니 날 향해 ‘비밀이랍신다.’며 조용히 하란 제스쳐를 하곤 근처 군인의 안내를 받아 어딘가로 향한다. 허허, 보아하니 의사 양반과 차장님 서로 아는 사이인 듯하네.
어쨌든 차장님은 막대 사탕을 입에 문 채 다가와서 입을 열었다.
“그래, 다들 준비됐지?”
““““““네.””””””
“아, 넵.”
나지막한 그 물음에 함께 온 5명의 요원과 양 씨가 힘차게 고갤 끄덕이며 대답한다. 내가 목장에 처박혀 있던 한 달 동안 국정원이랑 같이 일했다고 하더니 호흡이 척척 맞는구만. 한 박자 뒤늦게 눈치챈 나도 대답하자 차장님이 고갤 끄덕인다.
“그럼, 가자.”
그렇게 차장님을 필두로 우리 9명은 신안 군청에 들어갔다.
3.
군청에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건 1층에 바글바글 모여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 숫자는 대략 200명, 그중 50여 명은 군복을 입은 군인들이었고 나머지 150명은 양복이나 점잖은 옷차림의 잘 차려입은 민간인들이었다. 그런 민간인들을 군인들이 둥그렇게 포위하고 있었는데, 군인들은 하나같이 긴장한 얼굴로 장전된 총을 겨누고 있었다.
그렇게 총 앞에 포위된 사람들은 불안한 얼굴로 웅성대고 있었지만-.
“뭐여! 도대체 뭔 일이여?! 최소한 붙잡는 이유라도 말해줘야제!”
“야, 이 새끼들아! 내 사촌이 누군지 알아?! 국회의원이야! 국회의원! 니들, 뭔지 모르겠다만 내가 전화 한 번 하면 사단장도 설설 긴다! 전화기…… 에이씨! 왜 전화가 안 되는 거여!”
몇몇 지역 유지들로 보이는 이들은 겁도 없이 얼굴을 시뻘겋게 물들이며 군인들에게 소릴 지르고 있었다. 그렇게 일촉즉발의 상황에 우리가 건물 안쪽으로 들어섰다.
딱 봐도 ‘난 마력 각성자다.’라는 외형의 차장님.
차장님을 필두로 한 검은 정장들의 등장에 항의하던 지역 유지들도 움찔하는 가운데, 차장님은 군인들을 향해 거대한 건틀릿을 들어 올리며 이만 나가보라는 듯이 손을 까닥였다. 그러자 군인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총구를 내리고 밖으로 나간다.
그렇게 군인들이 사라지자, 차장님은 가볍게 사람들을 향해 고갤 까닥였다.
“아아, 안녕하십니까. 국정원 제5차장 나세영이라고 합니다.”
“뭐…… 뭐시여! 국정원?”
“먼저, 여러분들이 초대받으신 ‘천사 대교 재개발 위원회’는 여러분들을 군청에 불러 모으기 위한 거짓 행사라는 것을 알립니다. 그로 인한 마찰이 있었던 점에 대해 사과의 말씀 올립니다.”
살짝 고갤 까닥이는 차장님, 그 사이 국정원 아저씨들은 이전의 군인들처럼 사람들을 도망치지 못하게 포위한다. 미리 언질 받은 대로 난 양 씨와 함께 강당 쪽으로 다가가서 대기했다. 그렇게 시늉뿐인 사과를 한 뒤, 차장님은 사람들을 보며 담담히 말을 이어나갔다.
“현재, 신안에서 나갈 수 있는 모든 육로와 해로는 군에 의해 완전히 봉쇄되었습니다. 어선이라도 띄울 시에는 배치된 군함에 의해 격추될 것임을 알립니다.”
“이…… 이건 폭거요. 어떻게 자유민주주의 나라에서…….”
“신안에 심연 기생 생명체가 잠입한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심연 기생체라는 말에 웅성거리던 이들이 일제히 침묵한다. 아프리카에서 벌어진 대참사가 상식이 된 세상, 그만큼 심연 기생체란 말의 무게는 무거웠다. 그런 사람들의 침묵이 마음에 든다는 듯이 차장님은 빙긋 웃었다.
“오늘 오전 11시 32분경에 대통령께서 ‘긴급 계엄 명령 제25호-심연 기생체의 색출 및 박멸에 관한 임시 조치령’을 내리셨습니다. 아직 공표되진 않았지만 오늘 중에 공표될 것입니다.”
“…….”
“군수, 도의원, 의회의원, 지방 공무원, 법원 판사 및 검사, 경찰관, 운송업체 직원…… 여러분들은 전부 신안의 양지·음지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지역 유지들입니다. 그러니 부디 협조를 부탁드리겠습니다.”
담담히 말하는 차장, 그 요청에 허연 수염이 성성한 노인이 앞으로 나서며 입을 열었다.
“우리를 어떻게 할 거요?”
“일단, 저희는 여러분들이 심연 기생체에 감염된 게 아닌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심연 기생체들의 전파 경로는 대부분 사회에 불만이 많은 하층민들 쪽에서 많으니까요. 자신을 스스로 바쳐서라도 다른 사람들을 끌어내리고 싶은 이들이죠.”
“그렇지! 그럼!”
범인이 아닌 거로 추정한다는 말에 반색하는 노인, 다른 이들 또한 안도하며 고갤 끄덕인다. 하지만, 차장님은 눈을 가늘게 좁히며 주위 사람들의 면면을 훑어본다.
“하지만, 그래도 형식적인 검사는 해야 합니다.”
“……검사 말이요?”
“네.”
차장님이 내 쪽을 턱짓하고 그에 난 가져온 배낭에서 ‘좀 커다란 원격 체온 탐지기 같은 기계’를 꺼내 들어 올렸다. 익숙한 기계인 듯, 그걸 본 사람들의 표정이 의아하게 변하며 수군거린다.
“뭐야, 저걸로 탐지한다고?”
“저런 거로 탐지가 되는 거였어?”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중얼거리는 사람들의 모습에 차장은 작게 고갤 끄덕였다.
“심연 기생체가 박힐 경우, 기생체에 의해 일종의 인위적인 마력 각성이 일어납니다. 그걸 이용해 타락체를 색출하는 것이죠. 검사에 3~4초도 걸리지 않으니 빠르게 끝날 겁니다.”
익숙한 기계라서 그런지, 사람들 사이에서 안도의 감정이 퍼져나가는 게 보인다. 어찌 됐든 간에 난 앞에 있는 스턴건 같은 측정 기계를 쥐고 소리쳤다.
“자, 호명하는 대로 팔뚝을 걷고 한 분씩 이리로 와주세요! 그리고 검사를 받고 나서 이전에 안내받으셨던 군청 강당으로 이동해서 대기해주시길 바랍니다! 그럼 첫 번째로 박광진 씨!”
양 씨가 넘겨준 태블릿 PC의 파일을 보며 호명하자 한 사람이 팔뚝을 걷고 앞으로 나온다. 그에 난 마력 각성 테스트기를 그 팔뚝에 가져다 대고 방아쇠 형태의 버튼을 눌렀다.
“읏!”
팔뚝에 따끔한 고압 전류가 흐르자 얼굴을 구기는 첫 사람, 하긴 전기 충격기를 잠깐 맞은 거니 아프겠지. 이어서 기계에서 음성이 흘러나온다.
-삐빅! 비각성자 입니다!
지금까지 별 관심이 없어서 어떤 원리로 ‘마력 각성자’를 구분하는지 몰랐는데, <눈>으로 이 기계의 내부 구조를 살펴보니…… 되게 간단했다. 마력 없는 일반인도 쓸 수 있는 싸구려 기계라서 그런가? 그 원리가 단순하다.
마력은 사용자의 의지에 따라서 현실을 일그러트린다.
가장 먼저 영향을 받는 것은 사용자의 신체, 외모가 변하는 것은 물론이고 외부로부터의 ‘고통이나 상해’ 또한 일부 저항한다. 그렇기에 마력의 영향을 받고 있는 각성자의 신체는 일반인보다 세포 단위에서부터 더 강하다.
‘미약한 공격’을 가해 저항하는지 안 하는지를 시험하는 것.
그게 이 마력 각성 테스트기의 원리였다. 왜 차장님이 ‘이건 보조일 뿐, 이거론 심연 교단을 색출할 수 없다.’고 하셨는지 알겠네. 스스로 암시를 걸면서 공격에 저항을 하지 않는다면 결과는 일반인과 똑같이 나올 테니까. 뭐, 거의 본능을 억누르는 수준이라 힘들긴 하겠다만.
“자, 다음 분 오세요!”
어쨌든 생각보다 허접한 장비에 혀를 차며 난 다음 사람을 불렀다.
그렇게 15분가량 지났을 때, 기계로 탐지된 마력 각성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그에 강당 안쪽에 들어간 이들은 모두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지만…….
“어떻지?”
차장님이 내 곁으로 와서 조용히 물어본다. 그에 난 작게 고갤 끄덕였다.
“있어요.”
“하긴.”
‘그러면 그렇지.’ 하며 씁쓸하게 한숨을 내뱉는 차장님. 마력 각성 측정기로 심연 기생체를 찾는다는 건 페이크, 진짜는 바로 나다.
내 능력을 사용해서 잠복한 심연 교단 인물을 찾아내는 것.
<눈>의 정확한 정보를 넘기기 싫어서, 이 감각을 자세히 느끼는데 3~4m가량 범위 안에 있다고 말했거든. 그래서 이런 번거로운 짓을 했다. 사실, 이곳에 들어왔을 때부터 누가 잠복한 놈인지 파악했다.
153명 중에서 30명.
이곳에 있는 이들 중 거의 20%가량이 심연 교단과 관계가 있었다. 그렇게 색출한 사람의 명단을 보여주자 차장님의 얼굴이 또다시 찌그러진다.
“30명? 예상보다 너무 많은데.”
“많아요?”
“그래. 휴대폰의 전화기록과 GPS 행적 등으로 확인한 결과, 8명 정도라고 정보 분석과에서 예상했거든. 가져온 특수 구속구도 10개밖에 없어. 이곳에 배정된 마력 각성자도 우리 9명밖에 없고.”
신경질적으로 품 안에서 막대 사탕을 꺼내 입에 무는 차장님, 그렇게 잠시 생각하는 듯하다가 이내 한숨을 내뱉으신다.
“해산한 뒤에 조용히 요원 두 명씩 따로 찾아가서 제압하려고 했는데 안 되겠다. 그냥 여기서 한 번에 제압해야겠어. 너도 혹시 모르니 준비를…… 아니, 아니다. 넌 그냥 나서지 마라.”
“네? 인력 부족하다면서요? 저도 잘할 수 있어요.”
“안 돼, 넌 마법 쓸 거잖아.”
당연한 이야기였다. 솔직히, 내 순수 근력은 다른 각성자들에 비해 좀 꿀리는 편이니까. 그런 날 향해 차장님은 고갤 저으며 말을 이어나간다.
“사람을 잡는데도 나름 규격이 있단다. 뭐, 네 감각이 진짜라면 상관없겠는데. 혹시 무고한 사람에게 마법이라도 쓰면 골치가 아파요.”
“3달 전 미르에서 사건 터졌을 때, 무단으로 도망가던 사람들을 그냥 군인들이 총으로 쏘던데…….”
“그건, 이미 만 명 단위로 죽어서 어쩔 수 없는 거였고 지금이랑은 좀 다르지. 우린, 되도록 피해를 줄이려고 한단다. 어찌 됐든 간에 국가는 국민을 보호하는 게 제1 목표니까.”
“쩝…….”
“아무튼, 넌 되도록 나서지 마라.”
그렇게 타이른 차장님은 곧바로 색출한 30명의 인물사진을 요원들의 스마트폰에 전송했다.
강당의 샛문 2곳을 막은 4명의 요원은 그 사진을 확인하곤 주위 사람들의 면면을 훑는다. 뭔가 심상찮은 모습에 사람들이 불안에 떠는 가운데, 차장님은 막대사탕을 입에 문 채로 전찬휘 경감과 함께 강당 안으로 들어가 단상 위에 섰다.
“아, 모두 고생하셨습니다! 이제 여러분들은 저희 요원들과 함께 거주 지역으로 돌아가실 겁니다.”
“뭐…… 뭐여! 일단, 안전한 곳으로 가는 거 아닌 겨?! 우린 무고하다고!”
차장님의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자리에서 일어나 항의하는 지역 유지, 주위의 다른 사람들도 모두 동감하는 눈치. 인권 논란이 많지만 심연 기생체가 창궐한 곳은 ‘무고한 민간인이 있어도 격리 구역을 통째로 불태우는 게’ 일상다반사다.
그에 차장님은 얼굴을 살짝 꿈틀거렸다가 말을 이어나간다.
“원활한 작전을 위해선 주민들의 신뢰와 협조를 얻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지역의 리더이신 여러분들이 필요하고요. 불안해하신 건 알지만 여러분들의 신변보호를 위해 군 병력과 국정원 요원들이 함께 이동할 예정이니…….”
“아니, 왜 말이 달라지는 거여! 우린 무고한 사람들이니 일단 쌔기쌔기 밖으로…….”
나름 정중하게 예의를 갖추며 말하는 차장님이었으나, 맨 처음 언성을 높였던 노인네가 돼지 멱따는 듯한 ‘꽥! 꽥!’ 소리를 내며 또다시 차장님의 말을 도중에 끊자-.
“닥쳐.”
차장님도 꼭지가 도신 것 같다.
몸에 있는 균열 일부분을 일순간 여는 차장님, 그러면서 코드 108-리브라소의 힘이 뒤섞인 유형화된 기세를 한 번 뿜어냈다.
‘야수의 포효’ 같은 서늘한 기세.
항의하던 노인이 그 기세에 기겁하고, 몇몇 심약한 사람은 그대로 주저앉는다. 그렇게 한 번 기세를 흩뿌린 차장님은 실명한 왼쪽의 회색 눈을 부라리며 주저앉지도 못한 채 굳은 남자에게 싸늘하게 이죽댔다.
“사람 말을 두 번이나 끊네? 곱게 말하니까 국정원이 만만해 보이지?”
“아, 아니. 저그…….”
“하긴, 이곳에서 나름 방귀 좀 뀌면서 왕처럼 지냈겠지. 아직, 자기 처지를 모르나 보네. 찬휘야, 반항하는 ‘용의자’다. 적당히 만져줘라.”
차장님이 턱짓하자 차장님의 뒤에 서 있던 전찬휘 경감이 한 발짝 앞으로 나오며 검은 쇠사슬을 던진다.
-촤르르르륵!
“어, 어어어!”
20m가량 떨어진 남자가 그 검은 쇠사슬에 묶이고, 경감은 이어서 자기 쪽으로 ‘휙!’ 끌어당긴다. 낚싯대에 걸린 물고기 마냥, 사람 하나가 ‘붕~!’ 떠서 단상 위의 전찬휘 경감의 앞에 내동댕이쳐지고. 아직 정신을 못 차린 남자를 향해 경감은-,
-뻐억!
“아아아악!”
발로 무자비하게 짓밟고 패기 시작한다.
실시간으로 얼굴이 함몰되고 뼈 부러지는 소리가 울려 퍼질 정도로. 역시, 전직 민중의 몽둥이인가?! 죽지 않게 두들겨 패는 솜씨가 범상치 않아. 내가 색출한 30명의 심연 교단 인물 중 하나라서 손속이 과한 거겠지? 그럴 거야. 아마도.
“커헉, 커허헉. 끄으으…….”
그렇게 30초가량 짧은 구타가 이어진 뒤, 경감은 발에 묻은 피를 털어내며 싸늘하게 주위를 훑어보았다. 그 살벌한 시선에 사람들이 눈을 피하는 가운데, 차장님은 다시 정중하게 말을 이어나간다.
“정부는 최대한 많은 사람을 구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습니다. 부디, ‘협조’를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