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2화
4.
생생한 날것의 폭력.
그 신체적 위협 앞에서 사람들은 대부분 무력하다. 정중한 말의 탈을 쓴 협박에 다들 허겁지겁 고갤 끄덕였지만-.
“저…… 저 찢어 쥑일 년이 사람 죽이려고 한다!”
“맞소! 그냥 죽이려는 거여!”
“국정원이면 다여?! 서울에 있는 내 동상이 국회의원이여! 전화! 전화 한 번만 하면 늬들도 끝장이여!”
그렇지 않은 용감한 이들 또한 있었다.
꽤나 많은 이들이 굴복하지 않고 과격하게 언성을 높였고, 차장님의 얼굴에 미소가 짙어진다. 마력 각성자의 기세, 그것도 신의 힘이 뒤섞인 기세를 한 번 받고도 반발하다니? 명백히 이상했다. 생각보다 많은 이들이 반발하는 모습에 다른 사람들도 우물쭈물 눈치를 보자-
“하, 이거 곱게 말로만 해선 안 되겠네. 모두 엎드려.”
차장님도 과격하게 나온다.
“아니, 맬캅시 이르믄…….”
“엎드리지 않는 사람은 타락체 숙주로 분류한다! 각 통로마다 요원 한 명씩 나와서 진압해!”
살기 섞인 으르렁거림에 한 노인이 소심하게 말해보려 하지만, 이어지는 차장님의 호령에 단상 옆에 있는 2개 쪽문과 나와 양 씨가 서 있는 후문에서 요원 1명씩. 총 3명이 전찬휘 경감과 함께 움직인다.
“꺄, 꺄아아아악!”
“뭐, 뭐여!? 뭐냐고!”
허리춤에 끼워놨던 삼단봉을 펼친 후, 흉흉한 기세를 흩뿌리며 양 떼를 덮치는 늑대처럼 사람들을 파고드는 요원들. 그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기겁하며 주저앉지만 몇몇 강단 있는 이들은 꿋꿋했다. 그리고 그런 그들을 향해-
-퍼억! 뻐억! 뻐억!
“아아아악!!”
요원들은 망설임 없이 손에 쥔 무기를 휘둘렀다.
한 대 맞고 쓰러져 나뒹굴어도 계속 두들겨 패는 국정원 요원들. 쌍팔년대 시위현장 진압 경찰을 방불케 하는 몽둥이찜질로 반항하는 이들의 팔뚝뼈와 어깨뼈 중 하나를 부러트리곤 품 안에서 독특한 수갑을 꺼내 채운다.
“도, 도망쳐!”
그 살벌한 폭력의 현장에 몇 명이 강당 의자를 뛰어넘어 나와 양 씨가 서 있는 후문 쪽을 향해 돌진한다. 아무리 나와 양 씨가 좀 쩌리 같아도 1명이 지키고 있는 쪽문보다 2명이 지키고 있는 후문을 향해 도망치다니…… 좀 자존심이 상하네!
비슷한 소감인 듯, 양 씨도 살벌한 표정으로 주먹을 ‘뚜둑’ 거린다.
“3명? 옆으로 비켜서. 저놈들은 내가 처리할게.”
날 향해 나서지 말라는 듯이 손짓하면서 닫혀있던 후문을 열고 바깥쪽으로 몇 발짝 나가는 양 씨. 문을 막아도 모자랄 판에 왜 여나 싶었는데, 밖으로 나간 양 씨의 몸에서 룬문자가 나타난다. 이어서 핏줄에서부터 피부로 푸른 아우라가 퍼져나가고 몸에선 살얼음이 얼어붙는 듯한 소음이 울려 퍼진다.
“……마법 써서 제압하지 말라고 하지 않았나요?”
“안 들키면 되지! 그리고, 타락체 아니야?”
“그건 맞지만요.”
그 자신만만한 모습에 난 문에서 한 발자국 비켜섰다. <눈>으로 본바, 선두에서 도망치는 의태한 타락체는 마력 각성자 급의 괴력을 발휘하고 있었지만-.
-콰직! 퍽!
문밖으로 나오자마자 마법으로 강화된 양 씨의 주먹이 도망쳐 나온 놈의 턱을 아작내고, 연속해서 무릎 올려 차기로 복부를 후려갈긴다. 그 살인적인 공격에 타락체 또한 정신을 못 차리는 가운데-.
“흡!”
양 씨는 물 흐르듯이 놈의 멱살을 붙잡고 힘차게 뒤에 달려오던 이들을 향해 내던졌다.
-쿠당탕!
“어어억!”
내동댕이쳐진 그 몸뚱이에 뒤쪽 사람들이 맞고 함께 나뒹구는 가운데, 양 씨는 돌진해서 빠르게 주먹과 발을 뻗었다. 무술을 배운 듯, 아주 전문적인 형태. 그렇게 5~6초가량 일반인은 죽을 강도의 주먹을 날린 뒤, 재빨리 3마리 모두 강당 안쪽으로 다시 내던졌다.
“혹시나 해서 마법을 쓸 준비 했는데, 근접전도 꽤 하시네요?”
“용병질로 먹고 살려는데, 이 정도는 기본이지.”
별것 아니라는 듯이 양복의 깃을 세우며 빙긋 웃는 양 씨, 어느새 몸에서 피어오르던 마법적인 아우라는 사라졌다. 이거 완전 범죄구만!
“도, 도대체 왜 이러는 거여! 그냥 의견을 말한 것뿐인데!”
그렇게 꿋꿋하게 반항하던 열댓 명 남짓한 인원들이 국정원 아저씨들의 폭력에 박살 나 나뒹구는 가운데, 한 노인이 일어선 것도 그렇다고 엎드린 것도 아닌 어정쩡한 자세로 벌벌 떨며 항의한다.
그에 차장은 아직 숨어있는 교단원의 숫자를 세곤 빙긋 웃었다.
“오히려 되묻고 싶군요. 도대체 왜 국정원의 말을 안 따르는 겁니까?”
“아니, 민주주의 국가에서 시민의 의견을…….”
“방해하는 걸 보니, 혹시…… 타락체입니까?”
돌직구로 물어보는 차장님, 정체를 드러내도 이 정도 숫자면 충분히 제압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 같다. 그에 노인이 기겁한다.
“아, 아니여! 난……!”
“심연 기생체는 숙주의 뇌를 조종합니다. 그래서 타락체는 몸 안 기생체를 그 무엇보다 소중하게 여기죠. 기생체를 없애려는 저희를 방해하는 걸 보면…… 좀 수상한데요?”
“아니 사람을 이렇게 몰아붙이면 워떡혀! 옛날 빨갱이 몰이도 아니고!”
피가 끓는 듯한 목소리로 절규하는 노인, 그 모습은 꼭 불의한 일을 당하는 억울한 희생양과도 같았지만…… 내 <눈>엔 그 심장에 뛰는 기괴한 살점이 보인다. 그리고, 내게서 명단을 받은 차장님도 알고 있고.
그 피맺힌 절규에 차장님은 실소를 흘리며 물고 있던 막대사탕을 깨물어 먹곤 막대를 바닥에 뱉었다.
“그래? 그럼 ‘네쉬라’ X새끼 해봐.”
“……!?”
“잘못 들었어? 다시 말해 줄 테니 잘 들어. 네.쉬.라.개.X.끼. 해봐!”
이를 드러내면서 말하는 차장님, 그에 노인은 부들부들 떨면서 아무런 말을 못한다. 그 광경에 차장님은 재밌다는 듯이 웃음을 터트린다.
“하, 하하하하! 이거, 옛날에 ‘김일성 개X끼, 김정일 개X끼.’ 못하는 빨갱이 놈들이랑 똑같다니까? 해보라니까? X신아? 그럼 조사도 바로 풀어줄 테니. 응? 네쉬라 개X끼!”
국정원 요원답게 빨갱이 혐오를 드러내는 차장님, 허허. 그래, 우리나라 사람이면 한 번씩 해줘야 하는 국룰인데 말이지! 그 말에 진압 중이던 요원들이 나머지 잠복한 심연 교단원들을 향해 달려들어 구타하려는 가운데-
“그, 그만하소! 네쉬라 개X끼! 네쉬라 X새끼!”
한 남자가 억울하다는 듯이 소리친다.
그에 차장님이 두 눈을 똥그랗게 뜨고 남자를 두들겨 패던 요원 또한 움찔한다. 다른 이들 또한 흠칫한 건 마찬가지. 아니, 저 인간…… 분명히 안에 심장에 기생하는 살점이 있던 사람인데?? <눈>으로 보니 지금도 네쉬라의 것으로 보이는 힘도 느껴지고 있고?!
자기에게 시선이 쏠리자 남자는 억울하단 듯이 소리친다.
“난 타락체가 아니라꼬!”
“어, 어어……?”
그에 차장님이 실명한 회색 눈을 희번덕거리며 날 응시한다. 말 그대로 ‘이 새끼가?!’라는 표정, 그 일그러진 얼굴에 난 재빨리 변호했다.
“아, 아니에요! 진짜 제 감각에 걸린 사람이에요! 저 사람, 심연 기생체가 있는 사람이라니까요?”
“난 아니여! 아니, 국정원이라고 해도…… 아니아니아니아니아니아니아니아니아니아니아니.”
갑자기 고장 난 기계처럼 한 단어만 반복하는 남자, <눈>으로 보이는 그 몸의 안쪽의 상황은 심각했다. 심장에 박혀있는 기괴한 생체조직에 있는 ‘균열’에서 흘러나오는 신의 힘이 폭증했고, 그 여파로 그 생체조직은 주위의 멀쩡한 살점을 씹어 먹고 자기의 부피를 폭발적으로 늘리고 있다.
순식간에 척추를 장악하고 위벽을 뚫는 기괴한 살점의 모습에 난 빠른 결단을 내렸다.
“MA-LUN-TA!”
-쭈와아아아악!
4개의 룬문자가 완성되자 주위의 공기가 요동치며 용오름처럼 나를 중심으로 빨려 들어온다. 그 돌풍에 멀찍이 단상에 있는 차장님의 머리칼도 휘날릴 정도, 그 심상찮은 마법의 전조 현상에 사람들이 기겁한다.
“어, 어어! 저거 마법…….”
“이봐! 멈춰!”
같은 편인 요원들까지 말리려고 하지만, 그런 걸 신경 쓸 때가 아니다. 속을 보니 이제 곧 나올 테니까.
“G̸̯̲͎͕̯͙̰̰͎̓̉͛̓̅̚ͅu̵̳͙͙̮̗͎̓̌́̐̀͛̈̚r҈̗͓͓̭͍̮̤͔͙̏́͒̓̏͋̌̋̐̃͋-̷͉̞̫̥̘̬̯̉̃̿̽̀͛͛̉̐ͅr҈̥̩̘̝͙̰̳͑̊̏͆̋̽̈́͗̓͒̑̀a҈̱͉͕͍̿́̎̾̃̄̐̓r̵̖̖̩̥̞͍̝͓͚̦̓̆̔̆̈́̂̒̇͆͋́!̵̫̜̥̝͓̯̥͒̐̈̅̾̃̈̉̊̀̿”
인간의 성대론 절대 나올 수 없는 기괴한 소음과 함께 팔뚝만 한 굵기의 기다란 회색 촉수가 남자의 입에서 터지듯이 튀어나왔다. 입뿐만 아니라, 아래쪽 항문도 찢어지는 것과 함께 사람의 팔 굵기의 촉수 다발 너덧 개가 터지듯이 나와 주위의 사람들을 향해 뻗는다.
“이……!?”
급작스런 내 마법에 시선이 돌아간 요원들의 반응은 한 박자 늦었지만-.
-푸확!
미리 마법을 준비한 내가 있었다.
오른손바닥은 왼손등 위에 포개고, 왼손바닥은 정체를 드러낸 타락체를 향해 뻗었다. 그러자 손바닥에 모인 탁구공만 한 액체 질소 덩어리는 날아가 괴물의 복부에 작렬한다.
-ㅃㅓ-ㅇ!
괴물에 닿는 순간, 풍선 터지는 소리의 x100 한 듯한 소음과 함께 폭발하는 액체 질소 덩어리. 로켓 추진체처럼 복부를 후려치는 공기 폭발에 육중한 황소처럼 부풀었던 괴물의 몸뚱이도 ‘붕~’ 떠올라 전찬휘 경감 쪽으로 날아갔다.
그에 전찬휘 경감이 쇠사슬을 던진다.
-촤르르르륵!
카우보이처럼 허공에서 낚아챈 뒤, 쇠사슬을 당기며 바닥에 괴물을 내리꽂는 경감. 그에 괴물은 붉은 피와 보랏빛 체액을 흩뿌리며 발버둥 친다. 그렇게 한 명의 정체가 드러난 순간, 차장님 또한 눈을 빛냈다.
“영상 증거 확보 완료! 진압 강도를 병(丙)급에서 갑(甲)급으로 상향 조정! 이제부터 반발하는 인원은 전원 ‘타락체’로 분류한다!”
홀을 쩌렁쩌렁 울리는 차장님의 포효, 그 박력 있는 외침에 요원들도 선글라스 아래의 눈을 빛내며 ‘의심스런 사람들’에게 달려든다. 그리고 다시 몽둥이를 휘두른다.
-콰직!
하지만, 이전과는 명백히 실린 힘이 다르다. 마력 각성자가 무자비하게 휘두르는 삼단봉 몽둥이에 반항하던 이들의 두개골이 오목하게 바스러지고 목뼈가 꺾이는 가운데-.
심연 교단의 인물들도 의태를 포기했다.
5.
몇몇 주민들의 얼굴이 순간 무표정하게 변한다.
두들겨 맞고 구속된 채 끙끙대던 이들과 요원들의 몽둥이에 실시간으로 으깨지던 이들이 무표정해지는 모습은…… 뭐라고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불쾌하고 기괴했다. 그리고, 그 몸뚱이 안쪽에서 뭔가가 격렬하게 꿈틀거렸다.
마치, 그 피부 살가죽 아래에 어떤 게 있는 것처럼.
“충격기 켜!”
-빠지지지직!
한 요원이 소리치며 삼단봉을 꽉 쥐며 마력을 불어넣자 봉 부위에서 살벌한 스파크와 함께 번개 튀기는 소음이 울려 퍼진다. 그 번개 몽둥이가 떨어질 때마다 그 타락체들은 그 몸뚱이를 움찔거렸지만-.
“N̷̨̛̦̪̥͂͌̑͛̆̎̓̃ͅȩ̴͎̦̟͕̈͋̓͂̐̚͞-̶͕̪͙̤͈̮͈̿̄̽̿̅̇̎͂͢͞S̶̤͇͔̰̳͍̮҇̌͆̓̀͜h̶̨̖͉͇̮͂̊͠e̴̟͙͌̊̅̀̆̈͋͜͝-҈̩͙̰̬͎͕̣̮̄̋̾̓͗̄̅̚͢͝R̴̨͚̘̘̟̩̟̬̰̄̾͒̏́͐̕a̷̗̤̠͔̞̝͓̐̒̀͒̆̑̃͜͞!҈̡̛͈͇̆̒͊͊̿”
이내 천장을 향해 입을 ‘쩍!’ 벌리고 거기에서 거대한 문어 다리 같은 거대한 회색의 촉수를 뿜어내며 인간의 성대론 낼 수 없는 ‘불쾌한 트렘펫 소음’과 비슷한 찬양을 내지른다.
그 ‘마력이 뒤섞인 소음’이 뇌를 자극한다.
동시에 청각을 통해 파고든 마력이 뇌의 일정 부분-공포와 패닉을 느낄 때 활성화되는 부분을 자극하는 게 느껴졌다. 그리고, ‘이유 없는 공포심’과 ‘도망쳐야 한다.’는 생각이 미미하게 머릿속을 맴돈다. 나야 딱 그 정도 생각밖에 들지 않았지만-.
“으, 으아아아아!”
“도…… 도망쳐!”
다른 사람들에겐 전혀 달랐나 보다.
차장님을 제외한 요원들(심지어 양 씨와 전찬휘 경감마저도)이 움찔하고, 공포에 주저앉아있던 일반인들은 경기 어린 비명을 지르며 요원들이 있는 문 쪽을 향해 밀려든다. 나와 양 씨가 서 있는 후문 방향에도 수십 명이 달려온다.
뭐, 있을 수 있다고 예상한 상황이었다.
당연히, 이런 상황이 터지면 뭘 할지 정해뒀지.
-짜악!
“얽!”
“정신 차려요!”
타락체들의 괴성에 살짝 정신이 나간 양 씨의 뺨따귀를 후려친 후, 문밖으로 튀어나갔다. 그리곤 정수기에 달린 생수통을 뽑아 들어 올렸다. 그 사이, 따귀를 맞고 정신을 차린 양 씨도 강당 밖으로 나와 문을 닫아걸었다.
-촤학!
“빨리 얼려욧!”
내가 생수통의 물을 문틈에 흩뿌리는 가운데, 양 씨는 손에 룬문자를 만들어내고 냉기를 뿜어내는 손을 문틈에 가져다 댄다.
-쩌적, 쩌저저적!
그와 함께 문틈에서부터 얼음 얼어붙는 소리와 함께 굳는다. 그렇게 임시 조치를 끝내기 무섭게 강당 안쪽에 있던 사람들이 문에 달라붙는다.
-열어! 열라고 미친 새끼들아!
-저, 저거 뭐야, 으아아아!
-사, 살려줘!
뒤늦게 문에 도착한 이들이 비명을 지르며 문짝에 두드리고 몸통으로 밀어대지만, 문틈에 낀 마법으로 만들어진 단단한 얼음 덩어리는 일반인의 힘으론 깨지지 않는다. 안타깝지만 그대로 보내주기엔 숨어있는 타락체들이…….
“이…… 이런! 조심해요! MA-LUN-TA!”
“어?! 너 뭔…….”
<눈>으로 문 안쪽에서 벌어지는 광경을 확인하고 다시 한 번 <액체 질소 대포> 주문을 외웠다. 빠르게 휘몰아치며 모여드는 공기, 강당 안쪽보다 탁 트인 공간이기에 액체 질소 또한 더 빠르게 모였다. 미리 협의한 내용에는 없는 내 돌발 행동에 양 씨가 기겁하는 가운데-
-콰득! 콰지직!
“얽!”
얼어붙은 문짝이 박살 나며 날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