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4화
막간. 높으신 분들의 담화
1.
심연 기생체의 흔적이 확실시된 뒤, 정부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신안을 봉쇄해버렸다.
미궁이 부상하기 전이라면 상상하기 힘든 조치지만 꼭 필요한 것이었다. 심연 기생체-심연 교단은 다른 코드 108 교단과는 달리 일종의 ‘역병’과도 같았다.
그냥 내버려두면 계속 번져나가 결국엔 국가까지 박살 내는 역병.
실제로 막지 못하고 붕괴해버린 아프리카의 여러 국가와 반 붕괴에 빠질 뻔했던 유럽의 선진국들이 증명한다. 파장만큼은 닥터 크림슨의 테러보다 더 커다란 위협, 대한민국 정부가 기겁하는 건 당연했다.
“현 시간부로 신안의 봉쇄가 완료되었습니다.”
용산 합동참모본부의 회의실. 육해공군의 장성들과 청와대에서 파견된 국가안보실의 비서관, 그리고 국정원 요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사건의 보고를 맡은 참모는 담담하게 들어온 자료들을 늘어놓았다.
“혹시 모를 타락체의 동조자가 있을지도 모르기에 전남지역의 해군과 육군은 배제했습니다. 지상은 53사단 병력과 제201, 203 특공여단이, 해상은 동해의 제3함대와 잠수함 사령부의 잠수함들, 하늘은 공군 전투기들로 완전 장악이 끝났습니다.”
“통신이나 전파는?”
“그것 또한 차단됐습니다.”
타락체들이 특히나 위험한 이유, 그건 바로 인간인 ‘척’ 의태하는 것. 타락체가 심어진 인간은 자신이 무고한 인간임을 설파한다. 처음엔 그런 그들의 ‘인권 침해’라는 주장에 어떻게 이해해보려고 했지만 인류는 오직 말살만이 답이라는 잔혹한 해답을 얻었다.
참모의 대답에 공군 측의 장성은 고갤 주억였다.
“그럼 슬슬 폭격준비만 하면 되겠군.”
“아직입니다.”
국가안보실에서 파견된 비서관의 제지, 사실상 청와대의 의견이나 다름없었다. 그에 장성들의 시선이 쏠리자 비서관은 안경을 고쳐 쓰면서 나지막이 대답했다.
“대통령 각하의 지시입니다. 아직, 정치권에서 야당과의 협상이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흐음…….”
비서관의 대답에 군 장성들은 물론이고 국정원 요원까지 못마땅하다는 듯이 작게 침음을 흘렸다. 민주주의 국가라면 당연한 일, 하지만 그건 미궁이 부상하기 전의 세상에서나 어울리는 일이었다. 최소한 현장에서 뛰는 이들은 그렇게 느꼈다.
그에 국안실 비서관은 작게 헛기침을 하며 첨언했다.
“여러분들이 걱정하시는 복잡한 정치 인권 문제로까지 번지진 않을 겁니다. 2~3일 내로 정치적 타협이 끝날 겁니다. 이게 얼마나 큰일인지 야당 쪽 정치인들도 알고 있으니까요. 실제로 저희가 정보를 제공하고도 있고요.”
“……그럼 다행이군요.”
“그 타협이 끝나기 전까지 그 타락체들의 명확한 증거들을 수집해주시길 바랍니다. 그래도 여론을 설득해야 하니까요. 국정원에서도 여론 컨트롤을 해주시길.”
국안실의 요청에 국정원에서 파견된 요원이 고갤 끄덕였다.
“이미, 인터넷을 포함해서 여러 방면으로 컨트롤 중입니다. 그리고, 조금 전의 타락체 색출과 관련해서 저희 쪽 현장팀에서 온 요청이 있습니다.”
“어떤 것이죠?”
“신안의 주민들 중에서 타락체를 구분해내겠다고 합니다. 그러니 군부대 측에서 공문을 내려 협조를 해달라고 하더군요.”
그 말에 회의실에 앉아있는 이들의 표정이 묘하게 변한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육군 측 장성이 입을 열었다.
“확실한 구분 방법이 있습니까? 어설프게 분류했다간 폭동만 일어날 겁니다. 타락체가 의태를 포기하고 난동을 치거나 적극적으로 생존자들을 감염시킬 텐데요?”
“알고 있습니다. 저희도 해외 사례를 빠삭하게 알고 있으니까요.”
타락체에 감염된 이들은 타락체에게 육신이 서서히 먹히면서 점점 인간으로 보기 힘든 행동이 몇몇 발생한다. 대부분 그런 행동을 통해 낌새를 파악한다. 하지만, 그런 이상 행동들은 마음먹으면 충분히 숨길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명확한 증거’가 되지 못한다.
……현재까지 ‘타락체를 명확하게 색출하는 검사’는 딱 하나 ‘외과적 수술’을 통해 심장을 확인하는 것뿐.
기생 타락체는 숙주의 심장을 먹어치우고 그 역할을 대체한다. 하지만, 외부 검사로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타락체의 살점은 어느 정도 의태 능력을 지녔고, 그 때문에 X-ray나 MRI, 심지어 마력을 응용한 검사에도 그냥 멀쩡한 거로 나온다.
당연히, 검사가 번거로울 수밖에 없다.
포션이란 기적의 외상 치료제가 생겨났어도 영체(靈體)란 마력으로 이뤄진 인체 청사진이 없는 비 각성자에게 심장 확인은 위험한 작업. 그런 수술을 할 마취의와 외과 의사를 뽑는 것도 힘들고 그렇게 며칠 동안 대기하는 동안 타락체들이 선동하면 99.99%는 엎어진다.
그렇기에 그냥 불문곡직 불태워버리는 것이 가장 현명한 판단이지만…….
“초짜 요원의 요청이라면 저희 쪽에서 걸렀겠지만 5차장님의 요청입니다.”
“5차장이라면…… 나세영 차장 말하는 겁니까?”
국정원 측 파견 요원의 말에 흠칫하는 육군 참모, 다른 이들이면 몰라도 여기에 모인 이들은 전부 무력적인 일과 관련된 일에 종사하고 있고 당연히 그녀에 대해 알고 있었다. 대한민국 정부의 최고 전력, 제 4(死)차장. 그에 국정원 측 요원은 고갤 끄덕이면서 말을 이어나갔다.
“네. 현재, 신안군의 고위 인사들 중에 숨어있던 타락체들을 색출해냈고 추가 검증을 위해 물리적인 확인을 중이라고 합니다. 현재까진 구분 확률 100%입니다. 정보 누출의 우려 때문에 정확한 방법은 공개하지 않는다고 합니다만…….”
“큼!”
뒤에 이어지는 말에 회의실에 앉은 이들은 살짝 불편한 기색을 보였지만…… 뭐라고 하진 않았다. 그들 또한 중국 측의 마수가 이런 곳에도 뻗쳐있을 수 있다는 걸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으니까. 실제로 발견된 적도 몇 번 있었고.
그에 육군 측의 장성이 천천히 고갤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럼 육군 측에서…….”
-삐비비빅! 삐비비빅! 삐비비빅!
장성의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오퍼레이터 역할로 앉아있던 대령의 컴퓨터에서 기계음이 울린다. 그에 회의실 인원들이 시선이 쏠리는 가운데, 대령은 컴퓨터에 떠오른 내용을 확인하곤 입을 열었다.
“해군 쪽에서 긴급보고 사항이 들어왔습니다. 동영상입니다만…….”
“한번 열어보게.”
해군 장성이 고갤 끄덕이며 허가하자 그는 자기 컴퓨터를 조작해서 회의실 중앙의 빔프로젝터에 그 영상을 재생시켰다. 빔프로젝터에 떠오른 건, 해군 측의 고속정 하나가 다른 해군 고속정의 공격을 받아서 침몰하는 영상. 영락없는 팀킬의 현장 같았으나-.
“……허.”
그렇게 공격당하는 고속정의 모습은 정상이 아니었다. ‘붉은 피를 흘리는 분홍빛 살점’에 완전히 뒤덮였고, 고속정 갑판에 있는 건, 정상적인 인간이 아닌 문어 같은 두족류가 몸에 기생해 기괴하게 뒤틀린 생명체였다.
-!!
고통스런 비명을 지르는 듯, 얼굴을 일그러트린 채 입을 쩍 벌리고 있는 병사. 아직 인간인 부분은 우반신의 촉수 덩어리를 어떻게 저항해보려고 하지만 거대한 촉수 덩어리로 변한 오른손은 그런 남자의 목을 조른다.
그렇게 영상을 재생시키는 것과 함께 보고된 자료를 대령은 읽어나갔다.
“현 시간으로부터 5분 전, 흑산도 지역에서 급하게 빠져나오는 어선 3척을 확인. 해상 봉쇄령이 떨어졌으니 돌아가라고 했지만 불응, 그에 경고 사격을 했지만 돌아갈 기미를 보이지 않자 미사일 고속정으로 하나를 공격했습니다. 그리고, 어선이 완전히 박살나는 순간 저렇게 되었다고 합니다.”
“저거, 설마…….”
“네, 정보부 판단으론 배 안에 코드 108의 제단. 그것도 네쉬라 제단을 싣고 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대령의 대답에 회의실에 침묵이 감돌았다.
코드 108, 미궁의 원주민들이 ‘신’이라고 부르는 것들의 통칭. 신도에게 힘을 내려주는 위험성과 기존 종교계와의 충돌을 우려해 대중에게 알리진 않았지만 그것들의 힘은 거의 전지전능에 가깝다. 그런 코드 108이 직접적으로 지상에 관여하는 일은 거의 없지만…….
그 제단을 건드리면 이야기가 다르다.
함부로 훼손하면 일종의 ‘저주’와 ‘징벌’이 떨어진다. 특히나, ‘네쉬라’의 제단은 다른 코드 108의 제단을 훼손했을 때 더더욱 폐해가 크다. 훼손자에게 엄청난 심연의 타락이 퍼져나가거나, 심연의 괴물이 튀어나오거나, 아주 재수 없으면 심연으로 영구히 연결되는 통로가 생긴다.
“그나마 저 정도로 끝난 게 다행이군.”
“맞아요. 심연으로 연결되는 통로가 나왔으면…… 끔찍합니다.”
해군 측 장성의 중얼거림에 고갤 끄덕여 긍정하는 다른 참석자들. 잠깐의 의견 교환이 끝난 뒤, 해군 측 장성은 대령을 응시했다.
“다른 선박 2척은?”
“그 여파에 함부로 제지하지 못했습니다. 그 결과, 총 3척 중 2척의 선박이 빠져나와 신안 도초면에 다다랐다고 합니다.”
“신안 외곽으로 빠져나가진 않았다는 거군.”
“네.”
“그거면 됐네. 신안을 벗어나려고 하면 쏴도 미사일을 써서라도 격추시키지만, 신안 안쪽에서만 움직이는 거라면…… 그냥 소총 정도로만 제지하도록.”
“지시사항으로 보내겠습니다.”
대령의 대꾸. 그에 장성은 고갤 끄덕였다. 섬을 빠져나가지 못한 게 다행이었다. 육지에서 번지면 얼마나 골치 아플지 상상도 되지 않는다. 그 가운데, 육군 쪽 장성이 입을 열었다.
“네쉬라의 제단이 배에 실려 있던 걸 보면 분명 흑산도에도 제단이 있을 겁니다. 이거, 생각보다 아주 본격적으로 퍼진 것 같군요. 함부로 화력을 투사하면 안 될 것 같습니다.”
“음, 폭격을 못 하는 겁니까? 멀리 떨어져 있으니 괜찮지 않습니까>”
공군 측 장성의 말에 국안실에서 파견된 비서관이 살짝 의아하다는 듯이 질문하자 공군 장성은 고갤 끄덕였다.
“제단을 건드리면 그 징벌 피해는 거리에 구애받지 않습니다. 심지어 타인을 시켜도 그것과 연관된 이들에게 떨어집니다.”
“……허, 그런 결과가 있어요?”
“네. 3년 전, 티베트에 타락체가 번져나갔을 때, 중국군은 티베트 쪽의 타락체가 번진 지역을 미사일로 쓸어버리는 결정을 했습니다. 그에 8개 사단과 군 장성 8명은 물론이고 고위 공산당원 2명이 심연에 타락했죠.”
“…….”
“우리나라의 경우, 이곳에 있는 분은 물론이고 대통령 각하까지 위험해질 수 있습니다.”
그 말에 비서관은 입을 다물었다. 그도 일반인들에 비해 미궁의 위험한 것들에 대해 많이 파악하고 있지만 군인들만큼 정확하진 못했다. 그가 침묵을 지키는 가운데, 공군 쪽의 장성은 말을 이어나갔다.
“드론 정찰을 강화해서 정확한 폭격 가능 지점을 분류하겠습니다. 하지만, 그 전에 폭격이나 화력을 투사하기 힘든 곳이 있다는 게 확인됐으니 지상 병력을 투입해야 하는데…….”
말끝을 흐리면서 한쪽을 바라보는 공군 장성, 그곳엔 검은색 군복 차림의 준장이 앉아있었다. 국군 합동 참모부 직속 666여단장, 마력 각성자 전투원의 숫자가 매우 적기에 대한민국은 이능력자 전투원들을 육해공군에 찢어서 배치하지 않고 666여단을 만들어서 한곳에 모았다.
그런 회의 참석자들의 시선에 666여단장은 입을 열었다.
“현재 100명가량 투입 가능합니다.”
“좀 애매하군.”
그 대꾸에 턱을 쓰다듬는 육군 장성, 하지만 여단장은 복지부동이었다. 그에 국정원 요원이 손을 들었다.
“저희 측도 협력 가능합니다. 그리고, 정 뭣하면 오크 용병들도 투입 가능합니다. 전원 마력 각성자입니다.”
“……흠.”
국정원 요원의 말에 군 장성들 측에서는 불편한 기색이 번져나갔다. 군의 특성상, 외적과의 전투가 목적인데 ‘오크’ 또한 유력한 가상의 적 중 하나였다. 그런 그들과 협력해야 한다니…… 이미 협력할 수밖에 없다고는 해도 꺼림칙했다.
하지만, 국안실에서 파견된 비서관은 거리낌이 없었다.
“좋군요. 오크와 우호적인 관계가 필요한 지금 적당히 포장하면 좋은 메시지가 될 겁니다. 군의 소중한 자산 또한 보호할 수 있을 테고요. 얼마나 가능합니까?”
“이종족의 고용에 관한 법률을 우회하면…… 250명가량 될 겁니다.”
그 대답에 만족스럽다는 듯이 고갤 끄덕인 비서관이 군 장성들을 바라보았다. 그에 장성들도 떨떠름한 표정으로 고갤 끄덕였다. 정치권에서 선택하면 군은 따른다. 아직까지는 민주국가로서 문민통제의 영향력이 더 컸기에 군인들 또한 그리 반발할 순 없었다.
그에 비서관은 끝났다는 듯이 박수를 친다.
“좋습니다. 일단, 요구대로 신안을 봉쇄한 뒤에 분류를 합시다. 그리고 분류가 끝나면 토벌을 시작하죠. 그에 관한 모든 것은 여러분들께 일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