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5화
34화. 즐거운 문어 사냥?
1.
군청에서 지역 사회 지도층들에 잠입한 타락체들을 구분해낸 지도 벌써 사흘이 지났다.
“……괜찮냐?”
“아뇨, 죽을 것 같아요.”
금요일 아침 7시, 압해읍 군청 앞에 있는 징발된 군 식당. 오랜만에 마주친 양 씨의 괜찮냐는 질문에 난 아침 식사인 사발면에 물을 따르며 한숨을 푹 내뱉으며 대꾸했다.
그동안 난 ‘인간 탐지기’가 되었다.
군청 보건소에 세워진 ‘임시 선별 진료소’ 안에서 군인들이 끌고 오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주민등록증을 확인하는 척하면서 타락체를 분류했다.
그렇게 사흘 동안, 4만 명에 달하는 사람들을 검사했다.
내가 잠을 안 잔다는 걸 확인한 후, 하루 4번 30분씩 하는 식사시간(야식 포함)을 빼고 검사소를 24시간 풀가동했다. 단순히 민증 받고 확인하는 것만 하는데도 무지 피곤하더라. 어쨌든 그렇게 사흘 동안 색출해낸 타락체들만 500명, 전체 검사량의 1%가 넘어가는 숫자였다.
“그나저나 그쪽은 뭐 하고 지냈어요? 그동안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는데.”
사발면이 익을 동안, 세트로 나온 삼각김밥 봉지를 뜯으면서 양 씨에게 물었다. 함께 왔던 다른 국정원 아저씨들은 돌발 상황에 대비해 나와 함께 선별 진료소에서 가짜 검사요원으로 활동했다. 3분할 로테이션이었는데 사흘간 우리 양 씨만 보지 못했어.
그 질문에 양 씨는 이미 익은 자기 몫의 사발면을 ‘후루룩~’ 먹으며 어깰 으쓱인다.
“오크들이랑 있었어.”
“오크요?”
“그래, 이번 토벌에 대대적으로 오크들이 투입될 예정이거든. ‘그레이 쉴드’가 애초에 이종족 PMC잖아? 바지사장에 가깝지만 그래도 대표니까 이번에 나온 오크 전사들이랑 이야기를 좀 나눴지.”
으음, 그러고 보니 일주일 전 작전 브리핑 때 오태산이라는 오크랑 만났지? 오크가 투입될 것이라는 언급도 했고. 내가 김밥을 베어 물며 고갤 주억이자 양 씨도 한숨을 푹 내뱉으며 한탄하듯 말을 이어나간다.
“근데, 진짜 오크들도 빡대가리야.”
“음, 제가 만나본 오크들은 아니던데요.”
내 대꾸에 양 씨는 고갤 젓는다.
“니가 만난 건, 기사나 마법사들 같은 ‘고위층’들이니까 그렇지. 아래의 전사들은…… 난폭한 외노자 비슷해. 그래도 어떻게 이해는 시켰다. 공중파 TV에도 나오게 될 텐데, 너무 난폭한 모습을 보여주면 지상 진출이 힘들어진다고. 진짜 힘들어 죽는 줄 알았어.”
“흐음, 그렇군요.”
“뭐, 지상에 나와서 문화 교류가 늘면 점점 나아지겠지. 실제로 미국의 오크들은 지하의 오크에 비해 굉장히 점잖다고 하니 말이야.”
난폭한 외노자들이랑 씨름했다고 생각하니…… 양 씨도 나름 힘들었겠구만. 남은 삼각김밥을 입에 털어 넣곤 대충 공감한다는 듯이 고갤 주억였는데, 양 씨가 삼각김밥을 뜯으면서 날 향해 묻는다.
“아무튼 넌 앞으로 뭐 하냐?”
“우음. 꿀꺽. 뭐, 또 분류소 가서 개처럼 분류하겠죠.”
“뭔 소리야? 이제 검사 다 끝났잖아? 슬슬 토벌대 움직인다고 하던데.”
엥? 검사가 다 끝나? 난 그런 말 못 들었는데? 그런 내 기색을 눈치챈 건지, 양 씨는 뜯은 삼각김밥을 한 입 베어 물면서 미간을 찡그린다.
“신안에 있는 섬 주민들의 검사가 거의 끝났어. TV 뉴스에도 떴는데? 몰라?”
“……몰랐어요.”
“아니, 그래도 어떻게 검사하는 당사자가 모를 수가 있냐.”
“당신도 사흘 동안 잠도 안 자고 일-밥-일-밥-일-밥-일-밥 이렇게 계속해봐요. 그런 거 신경 쓸 겨를도 없을 걸요?”
퉁명스런 내 대꾸에 좀 이해된다는 듯이 고갤 끄덕이는 양 씨, 그는 이어서 사발면 국물을 후루룩 마시며 입을 열었다.
“그러면 지금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르겠네?”
“네. 전혀 몰라요. 그런 김에 설명 좀 해봐요. 저 아는 사람 없어서 진짜 대화도 못 나눴어요…….”
내 한탄에 양 씨는 딱하다는 듯한 시선으로 쳐다보곤 잠시 생각을 정리하는 듯하더니 이내 천천히 입을 뗐다.
“일단, 여기 검사받으러 온 사람들은 그냥 곱게 온 거 아니야. 지역마다 일일이 군인들이 찾아가서 실어 나른 거지. 그리고, 그렇게 빈 농촌을 군인들하고 전투 요원들이 수색했어. 그 과정에서 안 가고 버티던 사람 몇 명이 사살당했지.”
“죽였어요?”
“응, 사전에 드론을 띄워서 경고방송도 몇 번이나 했으니까. 진짜로 버티다가 사살된 이들 중 절반이 타락체로 판명됐어. 그 영상 자료도 TV에 방영되었고. 덕분에 쉽게 국민적인 공감을 얻었지. 봉쇄가 어쩔 수 없다고 말이야.”
삼각김밥을 다 먹어치우고 사발면 국물까지 들이켠 양 씨는 옆에 둔 배낭에서 태블릿 PC를 꺼내 켰다. 그 액정에 떠오른 건, 신안의 행정 지도. 그걸 보란 듯이 내 앞으로 밀며 양 씨는 손가락으로 지도 위쪽을 짚었다.
“네가 구분한 타락체들의 출신지를 따져본 결과, 무안군과 인접한 신안 북부지역-지도읍, 임자면, 중도면 출신 중에선 타락체가 단 하나도 없어. 이 청정지역들의 공통점은 바로 다리로 연결되어 있는 사실상 ‘육지’나 다름없다는 거야.”
“음.”
“한 마디로 철저하게 ‘섬’인 지역에 타락체들이 많았다는 거지.”
지도의 아래쪽을 스윽 훑으면서 양 씨는 고갤 저었다.
“마을 주민들을 배로 실어서 나른 뒤, 빈 가구를 수색했다고 했지? 근데, 남단에 속하는 도초면, 비금면, 하의면, 신의면, 흑산면. 이 5개 지역은 수색을 아예 하질 못했어. 군인들의 지시에 따르지 않고 남은 이들이 너무나도 많았거든.”
“허.”
“드론을 날려서 섬 전체에 경고를 계속해도 듣지 않을 정도니 말 다했지. 그리고, 드론으로 촬영된 영상 중에서 남아있는 이들의 행동이 심상치 않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이상 행동을 보이는 이들이 곳곳에서 보였고 몇몇 외딴섬에선 나뒹구는 시체들도 발견됐지. 심지어 그런 시체를 씹어 먹는 사람까지도 확인됐다.”
“…….”
“사실상 자신의 정체를 숨기지도 못할 정도로 타락체로서의 변화가 이뤄진 놈들이라는 거야.”
양 씨의 말에 난 사발면 뚜껑을 떼면서 생각에 잠겼다. 사람의 시체를 씹어 먹을 정도라…… 대충 미르에서 봤었던 식인종 야만인들로 생각하면 되려나? 다 익은 면을 한 젓가락 후루룩 먹은 뒤, 난 입을 열었다.
“그 정도면 폭격으로 끝내겠네요?”
이 세상은 반 막장이다.
긴급사태 때, 급박한 상황에서 군인이 무고한 시민을 총으로 쏴 죽여도 무죄라고 할 정도로. 과잉진압이니 뭐니 일일이 따지기에는 너무 위험한 상황이 많아. 국민들도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고. 그러니 괴물로 변이한 사람들 머리 위로 폭탄 떨어트리는 것도 할 만한데…….
그런 내 말에 양 씨는 고갤 젓는다.
“아니, 전부 폭격은 안 한대.”
“음, 그럼 군인들이 직접 투입되나요? 좀 많이 힘들겠네요.”
“군인이 아니라 오크들이 투입될 거야. 잠깐만.”
빈 사발면 그릇과 삼각김밥 비닐 껍데기를 쥐고 자리에서 일어서는 양 씨, 근처 쓰레기통에 다가가 버리곤 옆에 마련된 정수기의 커피믹스 쪽으로 가기에 나도 한 잔 타 달라고 했다. 그렇게 식후 커피 2잔을 가져온 양 씨는 커피를 홀짝이며 말을 이어나갔다.
“사실, 폭격이란 게 뒤가 없는 거잖아? 폭격에 들어가는 폭탄의 비용도 비용이지만, 그렇게 해서 남는 것도 없고.”
“음, 잿더미만 남긴 하죠.”
“그래서 오크 전사들을 투입하는 거지. 사람과 달리 오크들은 인간을 죽이는 데 거부감이 덜하니까. 게다가 들어가는 비용도 훨씬 싸고, 건물들도 나름 온전하게 보존되니까.”
양 씨의 설명에 사발면을 한 젓가락 하며 고갤 끄덕였다. 확실히, 똑같이 처리할 수 있다면 폭격보단 오크 전사 투입이 훨씬 낫지. 내가 수긍하자 양 씨는 말을 이어나갔다.
“그 뒤에 심연 교단의 전파 과정을 추적할 거래.”
“전파 과정이요?”
“그래, 타락체가 퍼지면 어떤 꼴이 되는지 사람들이 알잖아? 심장에 기생하는 기생체에 몸이 서서히 파 먹히고 뇌를 조종당한다. 당연히, 의심 사례들이 보고되어야지. 근데, 대량으로 퍼졌어.”
인간을 숙주로 서서히 잡아먹고 나중엔 괴물로 탈바꿈한다는 그 ‘말로’가 밝혀져서 심연 기생체는 사람들도 진저리친다. 네쉬라는 모르지만 타락체의 행동양식도 어느 정도 안다. 의심만으로도 111신고를 하는 게 정상이지. 내가 고갤 끄덕이자 양 씨도 어깰 으쓱인다.
“아무리 폐쇄적인 섬이라고 한들, 주민들은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어. 근데도 신고가 없었지. 심지어 5면이 아예 넘어갔다고 판단될 정도가 진행됐어도.”
“그렇게 들으니 이상하네요.”
“그래서 오늘 오크 전사들과 군인을 투입하고 정리한 뒤에 역학조사를 한다고 해.”
양 씨는 태블릿 PC 화면에 떠오른 지도를 손가락으로 짚었다.
“비금도와 도초도는 다리로 연결되어 있고, 하의도와 신의도도 마찬가지야. 사실상 이 4개의 면은 2개 지역으로 볼 수 있어. 이 두 지역 각각 100명씩. 그리고 나머지 자잘한 섬을 들러서 처리할 40명. 총 240명가량의 오크 전사들이 투입될 거야. 공군의 드론 정찰과 항공지원으로 숨어있는 타락체 수색을 도울 거고.”
“음, 근데 넘어간 게 5개라고 하지 않았어요? 흑산면은 안 투입하는 것 같은데요?”
“아, 거긴…… 좀 사정이 다르거든. 폭격할 예정이야.”
커피를 홀짝이며 고갤 젓는 양 씨.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사람이 없는 걸 확인하곤 양 씨는 작게 속삭이듯 입을 열었다.
“흑산도는 이미 심연의 타락이 확인됐어. 심연에서 나오는 생명체들이 곳곳에 있다고 하더라. 오크들도 투입했다가 전멸할 수 있기에 그냥 폭격으로 선회했지.”
“음.”
“들리는 말로는 타락의 근원? 을 없애기 위해 내일 팀을 파견할 거라고 해. 국정원 차장님도 직접 출동할 거고.”
그 말을 끝으로 양 씨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오늘까지 이런 주의사항을 듣지 못한 걸 보면 넌 후방에 있을 것 같네. 하긴, 그동안 고생했을 텐데 좀 쉬고 있어라.”
“……오늘 토벌 시작한다고 했죠?”
“그래, 오늘부터 시작이지. 나도 간다.”
고갤 끄덕이는 양 씨. 그에 난 면을 다 건져 먹은 후, 젓가락을 내려놓고 커피잔을 쥐며 선언했다.
“저도 갈 거예요.”
“……뭐?”
“타락체 죽이는데 제가 빠질 순 없죠.”
“아니, 네 몫은 이미 충분히 했잖아? 게다가 슬슬 잘 시간이고.”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단 표정으로 날 말리는 양 씨, 확실히 좀 피곤하긴 하다. 그래도 못 움직일 정도는 아니야. 그리고 무엇보다…….
뭔가를 죽이고 싶다.
참을 순 있다만 이걸 놓치긴 싫거든. 사흘 전에 타락체 놈들을 쳐 죽였을 때도 내심 짜릿했지! 아직, 자질 않아서 경험치 정산은 받지 못했다만 놈들을 죽이면 레벨 업을 할지도 모른다. 그래, 레벨업! 레벨업은 못 참지!
커피를 또 한 모금 마시고 안주머니에 넣은 전자 담배를 꺼내 그 연무를 빨아들이며 난 생긋 웃었다.
“그래도 한번 맡은 일은 확실하게 해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