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6화
2.
국정원.
대한민국 사람들이라면 한 번쯤은 들어봤을 악명 높은 정보기관, 드라마나 영화에서 묘사되는 국정원 출신들은 선역이든 악역이든 무술 실력과 전투력이 뛰어난 것으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실제 절대다수의 국정원 요원들이 하는 일은 ‘방첩과 첩보 활동’이지 싸움과 전투가 아니다.
그러나, 전투를 하는 요원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외부에 알려지지 않은 흑색요원들 중에서도 극소수, 흑색요원들도 풍문만 들어봤을 비밀에 싸인 부서가 있었다. 영화나 드라마 매체를 통해 나오는 국정원 요원들처럼 뛰어난 전투력을 가진 ‘이름 없는 특수부서’, 그들은 이스라엘 모사드의 공작국 산하 암살-납치 부서 ‘키돈’처럼 지저분한 일과 흑색작전을 전담했다.
원래대로라면 계속 음지에 있었을 이들이지만, 미궁이 부상하고 난 뒤에 세상은 극적으로 바뀌었다.
미국 주도의 질서가 붕괴하고 20세기 초처럼 수많은 국가가 생존경쟁에 돌입해야 했다. 게다가 마력이라는 힘의 등장에 이전까지의 인간의 기술과 법으로 통제할 수 없는 매우 강력한 개인의 등장이 예고되면서 그 비밀에 싸인 부서는 급격하게 확장-양지로 나오게 되었다.
제 5차장 휘하의 ‘초인 전력실’.
전원이 특수 전투 훈련을 받은 마력 각성자로 이뤄진 부서, 대한민국 정부가 꺼낼 수 있는 최고의 전투 집단 중 하나이며 옛날 ‘중앙정보부’처럼 여러 법적인 제약을 받지 않는 집단. 게다가 경찰이나 군대에 배치된 마력 각성자들과는 달리 스스로가 강해지는 데 제약이 없었다.
심지어 일반 마력 각성자들에겐 금지된 몇몇 ‘미궁의 신’을 섬겨도 될 정도로.
이들은 사회의 혼란을 일으킬 수 있는 불온한 자들의 정보를 수집하고 필요하면 사전에 제거했다. 그렇게 그들은 한국 사회의 음지에서 잠입한 다른 국가의 첩보 요원들, 혹은 범죄를 저지르진 않았지만 유력한 범죄자와 죽고 죽이는 방첩활동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특히나, 제5차장인 나세영은 그쪽 업계에서 유명했다.
국정원장 직속의 차장급 고위 공무원 중 하나, 대한민국과는 어울리지 않는 가공할 실력자이자 중국의 암부 전투 요원 수십 명을 단신으로 도살한 괴물, 상급 악마를 혼자 분쇄한 데몬 슬레이어, 국정원 최고 전력…… 그녀는 대한민국 정부가 대놓고 드러낸 맹견이었다.
그리고, 지금 그 나세영 차장은…….
“……그러니까 이번 작전에 가겠다고?”
“네!”
자기 앞에 있는 백발의 소년을 보면서 얼굴을 찡그리고 있었다.
“아니, 도대체 왜 그러는 거야. 피곤하지 않아? 잠도 못 잤다면서?”
“피곤해도 할 일은 해야죠!”
“니가 할 일은 다 했어. 이젠 쉬어도 돼!”
“아뇨, 타락체, 그 역겨운 새끼들 때문에 시달렸으니 직접 죽여 버리고 싶어요! 피곤해도 스트레스는 풀어야죠!”
위험한 마력 각성자들을 감시하고 몇 번은 진짜로 예방 차원에서 죽인 사람, 불길하다고 제 4차장 대신 5차장으로 불리는 그녀에게 아주 대놓고 폭력적인 성향을 드러내는 소년. 그에 나세영은 머리가 지끈거리는 걸 느꼈다.
잠깐 오른손으로 관자놀이를 문지른 그녀는 소년의 감겨 있는 두 눈을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흰둥아, 넌 지금 네 가치에 대해 모르는 것 같아. 지금처럼 타락체 퇴치가 원활하게 진행되는 이유가 뭔지 알아? 네가 분류해줬기 때문이야. 혹시나 해서 가슴 개복 수술까지 한 결과, 지금까지 100% 정확하게 타락체를 분류했다는 걸 증명했고.”
“네, 그렇긴 했죠.”
“당연히, 넌 이제 국가적으로 도움이 되는 중요 인물이야.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자, 내가 그런 널 죽을 수도 있는 곳에 데려가겠니? 그것도 사흘간 잠 못 자서 피곤해 보이는 애를?”
차분하게 땡깡을 부리는 소년을 설득하려고 했지만, 살짝 초췌한 모습의 소년은 그런 설득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생글생글 웃는다.
“그래도 차장님이 힘쓰면 가능하잖아요? 차장, 그것도 국정원 차장이면 되게 힘센 사람 아닌가요?”
“…….”
“한번만요! 아니, 일 더 시키면서 돈도 안 주는데! 어차피 저보고 마법사 전투력 갱신도 한번 하라고 하셨잖아요? 그거 겸해서 작전 뛰면 되죠!”
계속 졸졸 따라다니며 떼쓰는 소년에 나세영 차장은 자신의 호위로 배정된 전찬휘를 응시했다. ‘이전부터 주시했으니 왜 이러는지 알고 있지 않느냐?’는 모습, 그러나 전찬휘 또한 답이 없다는 것마냥 고갤 젓는다. 그의 기준에 한새벽은 미친놈이었다.
계속 졸졸 따라오고, 버럭 화를 내며 으름장을 놓아도 능청스럽게 ‘해줘!’ 하면서 따라붙는 소년, 거의 30분 동안 시달린 나세영 차장은 결국 발걸음을 멈추고 한숨을 내뱉었다.
“하아, X발. 다른 사람들은 하기 싫어서 죽는 일을 하고 싶어서 날뛰다니…… 그래, 좋아! 따라와라! 하지만, 전면에 나서지 말고 후방에서 마법을 쏘라고. 알겠냐!”
“넵! 근데, 괴물이 좀 많은 곳에 배치해주세요!”
나름 고생한 걸 생각해서 허락해줬음에도 세부적인 사항까지 요구하는 백발 소년, 더 위험한 곳에 가게 해달라는 그 요청에 나세영 차장의 얼굴이 일그러졌지만-.
“어느 정도 아시겠지만 제가 사용하는 마법들은 광역 살상에 유리해요. 제대로 실력을 발휘하려면 적이 많은 편이 유리하죠!”
“……그러고 보니 네가 사용할 수 있는 마법 목록이라고 넘겨준 것에 <시체 부패>하고 <악취 구름>이 있었지?”
“넵!”
생글거리며 힘차게 고갤 끄덕이는 소년, 그에 나세영 차장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확실히, 마법을 생각하면 저 소년은 타락체에게도 통할만 한 초고성능 최루탄과 독가스를 항상 들고 다니는 거나 다름없다. 오히려, 아군이 근처에 있으면 운용이 힘들어진다.
그에 고갤 끄덕이려는 찰나, 나세영 차장은 문득 떠오른 생각에 고갤 갸웃했다.
“……그러고 보니까 <시체 부패> 같은 추잡한 마법은 누구한테 배웠냐? 수영이는 그런 거 말고 자기가 고안한 특수한 마법을 쓰던데. <생체 분해 촉매>였던가?”
생각해보니 소년이 구사하는 마법은 현재 그 출처가 좀 불분명했다. 이전에 그녀의 전속 부관-전찬휘가 했던 심문에선 조사가 다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했기에 ‘강수영 연금술사에게 더 배웠다.’고 한 거로 넘어갔지만, 이후에 더 조사하면서 다르단 걸 파악했고.
그에 소년은 찔끔하더니 이내 난처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에, 그건 설명하는 게 좀 곤란한데요…….”
얼렁뚱땅 넘어가려는 그 모습에 나세영 차장의 얼굴이 딱딱하게 변했다. 대한민국에서 ‘살상 마법’을 배운 것도 모자라서 그 출처까지 숨기려고 하다니? 이건 선을 넘는 행위다. 다행히 소년은 정색하는 그녀의 모습에 재빨리 고갤 저으며 입을 연다.
“아니, 누구에게 배웠다고 말을 안 하는 게 아니라…… 사실, 누군가에게 배운 게 아니라서 그래요. 이건 제가 마법을 연구하면서 독자적으로 개발한 거예요.”
“……잠깐만, 니가 마법을 개발했다고?”
그 대답에 나세영 차장은 얼굴을 찡그렸다.
다른 차원의 마력을 공명시켜 사용한 마력 그 이상의 효과를 만들어내는 ‘마법’, 그리고 그 마법을 발휘하게 만드는 특별한 형상인 ‘룬 문자’. 그런 룬 문자에 대해 아주 깊은 이해-일종의 감각을 가진 극소수만이 가능한 게 새로운 마법의 창조다. 그런 걸, 이 소년이 했다고?
믿지 못하겠다는 시선을 느낀 건지, 소년은 한숨을 내뱉었다.
“이 감각은 한곳에 정신을 집중하면 <마력흔>도 잘 느끼게 해주거든요. 그래서 제가 마법을 빠르게 배울 수 있었던 거고요. 싸장님에게 배운 것들과 미르가 유혈에 잠겼을 때, 봤었던 여러 가지들을 토대로 감각적으로 만들어본 거예요.”
이어지는 소년의 설명에 나세영 차장은 물론이고 경호인 전찬휘 경감까지 입이 벌어졌다.
미궁이 현실에 튀어나오고 ‘마력’이란 신비로운 힘이 나타난 지도 어느덧 16년가량, 하지만 마력은 우주의 탄생과 소멸까지도 어느 정도 추측해내는 인류의 과학기술로도 여전히 다 밝혀내지 못한 미지의 것이었다.
마력을 사용하고 있지만, 인류는 여전히 그 정확한 원리를 모른다.
마력의 근본적인 원리는 여전히 ‘초자연현상’, 원시인이 부싯돌을 부딪치면 왜 불씨가 나오는지 과학적으로 설명은 못 하지만 사용은 했던 것처럼 무작정 쓰고만 있다. 그런데 지금, 그 마력과 관련된 ‘마법’을 감각적으로 느껴서 만들어냈다는 소년이 있었다.
그게 사실이라면…… 소년의 가치는 더더욱 치솟는다. 마력 연구에 엄청난 진전을 가져올지도 모르는 보물이다.
그에 그녀는 눈을 빛내며 소년의 어깨를 붙잡았다.
“나중에 한번 연구소에서 그 능력에 대해 자세히 분석해보자. 좀 궁금하네.”
“……좀 봐주세요. 저 싸장님처럼 납치당하기 싫어요.”
추욱 어깨를 늘어트리는 소년, 그에 나세영 차장은 입을 다물었다. 확실히, 그에 대해선 할 말이 없었다. 보호해주겠다고 말해도…… 장담할 수 없었다. 나름 권력자긴 하다만 그녀조차도 국가를 위해서 일하는 공무원이니까. 그것도 법의 범위를 넘어서는 일을 하는.
그에 그녀는 고민하다가 전찬휘를 바라보았다.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겠다는 듯 전찬휘도 고갤 끄덕이는 가운데, 그녀는 소년에게 입을 열었다.
“좋아, 일단 비밀로 하자. 솔직히, 지금 보여준 능력만 해도 밝혀지면 네가 몸 성할 거라고 장담할 순 없거든. 마냥 과신하기엔 좀 추잡한 걸 많이 봐서 말이지…… 그 마법에 관한 적당한 변명거리도 만들어줄 테니 써먹으렴.”
“넵, 감사합니다.”
그에 고갤 꾸벅 숙이는 백발 소년, 그에 그녀는 빙긋 웃었다.
“뭘, 예비 막내에게 그 정돈 해줘야지.”
“뎃?”
“세상에 공짜는 없단다. 걱정 말렴, 진짜로 국정원에 들어오는 건 아니고 가끔 일을 맡길 거니까. 물론, 거부하면…… 알지?”
삐질삐질 식은땀을 흘리는 소년의 어깨를 툭툭 두드린 후, 그녀는 기지 한쪽에 있는 방송국 차량을 향해 움직이면서 그 뒤를 따르는 경호원-전찬휘에게 입을 열었다.
“일단, 상부에도 비밀로 하자.”
“……괜찮겠습니까? 밝혀지면 질책 정도론 안 끝날 텐데요?”
되묻는 전찬휘의 말에 그녀는 쓰게 웃었다. 그리곤 품 안에서 막대 사탕을 꺼내 봉지를 뜯으며 입을 열었다.
“저런 능력이면 보고되는 순간, 바로 VIP까지 올라갈 거야. 그리고, 인정하긴 싫지만 우리 윗선에도 중국의 스파이가 있지. 대놓고 자기가 중국 스파이인 걸 드러내는 정치인도 있고.”
“…….”
“지금까지는 우리가 보호하면 손해라는 생각에 달려들지 않았겠지만, 우리가 보호해서 입는 피해보다 더 큰 이득이 있다고 판단되는 순간 물불 안 가리고 달려들 거야. 그럼 우린 막기 힘들어. 저 소년도 납치될 거고.”
포장을 뜯은 막대사탕을 입에 무는 나세영 차장, 그에 전찬휘는 작게 한숨을 내뱉었다.
“정말, 알면 알수록 세상은 불공정하고 처절하군요.”
“어쩌겠냐, 지금의 현실인데. 하, 진짜 미궁이 올라오기 전 미국이 패권을 잡았을 때가 좋았어. 그때는 이렇게 대놓고 야만적이지는 않았는데 말이야.”
“…….”
“뭐, 한탄은 이제 그만하고 TV 인터뷰나 하러 가자.”
3.
지긋지긋한 타락체 색출 작업이 끝나고, 드디어 ‘레벨업의 시간’이 도래했다.
예상대로 차장님은 날 내보낼 생각이 없었다. 일했으니까 적당히 쉬라고 하더라. 그래도 토벌전에 끼고 싶다고 하니까 안 된다면서 완강히 고갤 젓고. 나도 나름 이해가 갔다. 이렇게 요긴한 인재를 위험한 곳에 투입하기엔 너무 리스크가 크단 거겠지.
그래도 포기하진 않았다.
일주일 전에 있었던 작전 브리핑에서 나에 관한 파일을 읽었기에 내 전투력-위험등급에 대해서도 측정하려고 한단 사실을 알았고, 그것에 대해 은연중에 어필하면서 졸라댔다. 그러다가 그 괴물 차장이 생각해보니 이상하다면서 <시체 부패> 관련해서 갑자기 추궁받았고…… 결국, 내 능력에 대해 일부 말해버렸다.
……뭐, 그냥 좋게 생각하자!
어차피 미르가 유혈에 잠겼을 때 보여준 것 때문에 능력을 숨기는 건 불가능했어! 브리핑 때, 기생체를 색출해보라고 했을 때부터 다 들켰다고 생각했잖아? 기왕 이렇게 된 거 잊고 레벨업이나 해야지! 그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인걸.
어쨌든, 그렇게 졸라댄 덕분에 난 부랴부랴 토벌 작전에 투입될 수 있었다.
“와! 진짜 엄청나군! 호수와는 비교가 안 돼!”
“윽! 진짜 물이 짜! 어후, 이게 다 짠물이야? 소금이 대체 얼마나 되는 거야?”
“너무 덥다. 밖은 이렇게 더운 건가?”
오후 1시, 신안의 섬 사이를 운행하는 훼리여객선 곳곳에서 후음이 섞인 감탄사가 울려 퍼진다.
180cm가 넘어가는 큰 키, 키에 비해서도 유별나게 떡 벌어진 어깨, 보디빌더를 보는 듯한 박력 있는 근육질에 살짝 구부러진 상체, 마지막으로 인간과는 다른 좀 이질적인 얼굴과 툭 튀어나온 아랫송곳니까지.
오크, 배 안에는 50여 명 가까이 되는 중무장한 오크들이 바글바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