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7화
섬의 타락체 정리를 위해 파견되는 오크 부대, 거기에 양 씨와 함께 꼽사리 끼게 되었다. 일종의 모니터링 요원으로 말이다.
그나저나, 오크들의 무장이 꽤나 튼실했다.
검은색 세라믹 방탄 플레이트가 곳곳에 부착되어 있는 좀 무거워 보이는 흑색 전투복, 미르에서 봤었던 오크 기사들에 비하면 좀 부실하지만 훨씬 더 가벼워 보인다. 거기에 오크의 체격에 맞게 개조된 소총을 가슴팍에, 등에는 외날 양손도끼를 메고 있었다.
게다가, 하나같이 소풍 온 것처럼 들떠있었다.
“아, X스하고 싶다!”
“야, 두목이 좀 품위 지키라고 하지 않았어?”
“뭐 어때? 어차피 인간들은 못 알아들을걸?”
“그렇네? 나도 섹X하고 싶다!”
선두 갑판에 서서 바다를 향해 소리치는 오크들, 텅 빈 매점 코너 자판기를 털며 군것질하는 오크, 맥주 마시는 오크…… 거, 전부 처음 듣는 언어-아마도 오크어로 중얼거리는데 신기하게도 그 뜻이 이해가 되었다. 이 세상에 떨어지기 전에 꿈을 꿨을 때처럼.
나도 처음 알았다.
유튜브나 밖에 나오는 오크나 엘프들은 전부 한국어 혹은 영어를 썼거든. 그냥 스쳐 들을 때는 아무런 뜻도 모르겠는데, ‘도대체 뭔 소리하는 걸까?’ 생각하니까 <게임 시스템>이 작용할 때 특유의 두통과 함께 이해가 되었다.
어쨌든 <눈>을 이동해가면서 오크들의 행동과 말을 엿들어보니 바깥 경치에 대한 감탄과 전부 시시콜콜한 잡담들이다.
이번 일이 끝나고 버섯 농장을 하나 차리려고 한다는 놈, 북쪽 지상 진출 신청을 할까 말까 고민하는 놈, 여자 친구에게 고백하려고 한다는 놈…… 말투나 행동은 단순하고 거칠지만 사람과 별다를 바가 없구만. 마초적인 블루칼라 노동자 형님들을 보는 느낌이다.
어쨌든 잠깐 오크들의 관찰을 한 뒤, 난 시선을 돌려 옆 좌석에 앉은 양 씨를 바라보았다.
“뭐 그렇게 봐요?”
정보차단을 위해 WIFI는 물론이고 통화 전파까지 차단된 상황, 인터넷도 안 될 텐데 양 씨는 태블릿 PC를 보고 있었다. 뭔가 해서 보니까 글자가 빼곡하네. 내가 묻자 양 씨는 별거 아니라는 듯이 액정에서 시선을 떼며 어깰 으쓱인다.
“어? 이거? 소설이야. 판타지 소설.”
“판타지 소설이요?”
“응, 내 취미가 판타지 소설 읽는 거거든. 보육원에서 자랐을 때, 책장에 꽂힌 걸 읽으면서 취미가 됐지.”
환상이 실제가 된 세계, 미궁의 원주민들에게 톨킨 판타지에 나오는 종족 이름이 별명으로(사실상 반 공식적으로) 붙으면서 판타지 소설은 이젠 별로 팔리지 않는다. 현실이 된 환상은 꿈도 로망도 별로 없으니까 말이야.
……그러고 보니, 나 명색이 장르소설 게시판의 이용자였는데 잘 안 보게 됐네?
“심심한데 저도 소설 좀 공유해줄 수 있나요?”
“어? 너도 보게?”
“네.”
내가 관심을 보이자 양 씨는 잠시 고민하더니 이내 되묻는다.
“흐음~ 그 시대의 이해가 좀 필요한데…… 지금 감성으론 이해하기 힘들 수도 있어. 너무 허무맹랑하게 느껴질 수도 있고.”
“괜찮아요. 저도 좀 취미가 올드해요. 틀타나 롤 같은 거 한다니까요?”
“좋아, 그럼 내 픽을 추천해주지.”
태블릿 PC와 내 휴대폰에 공유잭을 꽂은 뒤, 양 씨는 보란 듯이 자기의 태블릿 PC에 있는 고전 소설 목록들을 보여주며 신나게 입을 열었다.
“일단, ‘나비의 꽃’. 동방프로젝트라는 게임의 팬픽 소설인데 재미있어. 정식 발매는 되지 않았지만 유명하지.”
“……!?”
“아, 이건 마이너한 배경지식이 좀 필요한가? 그럼 이건 어때? ‘TOP 매니지먼트’! 옛날에 영화화되려다가 미궁 발발 때문에 무산됐다고 한 엔터 소설이지. 15년 전의 연예계가 배경이야.”
“……!!”
“아니다. 이것도 15년 전 배경지식이 좀 필요하지……. 아예, 배경지식 없이 읽을 수 있는 판타지가 좋겠네! 자, 이게 최고다. ‘독을 마시는 새’. 이건, 지금도 유명하지? 명작이기도 하고.”
반사적으로 감고 있던 두 눈(육안)이 시큰거린다. 왜…… 왜지? 도대체 왜? 나 어째서……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데 가슴이 울렁거리면서 눈물이? 눈가에 맺힌 습기를 살짝 닦으며 난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이것들…… 전부 완결인가요?”
“당연한 거 아니냐? 근데, 너 왜 훌쩍이냐?”
“아니, 그냥 왠지 모르게 코끝이 찡하네요. 일단, 다 주세요.”
살짝 코맹맹한 소리로 답하며 스마트폰에 파일들을 받았다. 그래, 드디어 받았다. 가장 먼저 독을 마시는 새 파일을 켜면서 난 왠지 모르지만 양 씨를 향해 입을 열었다.
“이 글, 작가가 용케 냈네요.”
“어, 너도 아냐? 하긴. 이거 좀 유명하긴 하지. 작가가 과수원 농사하면서 유유자적 살다가 10년 전에 한 정체불명의 엘프가 그 과수원에 불을 질렀거든. 다시 농사를 지어도 계속 그 정체불명의 엘프가 불을 질러서 결국 먹고 살기 힘들어진 탓에 글쓰기 시작했지.”
“그렇군요……. 답은 불에 있었어요.”
지워진 기억에 생각은 안 나지만 이 글은 내가 있던 세계에서도 있던 것 같다. 안 그러면 이런 감정이 들 리가 없지. 15년이나 시간이 흐른 곳인 만큼 내가 있던 곳에선 아직 안 나왔던 게 아닐까? 어찌 되었든 간에 난 천천히 글을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아, 5분 뒤에 목적지에 도착 예정이니 선내의 병력들은 모두 갑판 위로 모여라. 아, 5분 뒤에 상륙 예정이니 선봉 전투 요원들은 갑판 위로 와주시길 바랍니다.
안내 방송에서 오크 특유의 후음이 섞인 목소리가 들려온다. 오크어로 한 번 하고, 연이어서 한국어로 또 한 번. 나와 양 씨도 오크들과 함께 선봉 투입되기에 자리에서 일어서서 오크들을 따라 갑판으로 이동했다.
“윽, 뒤질 것 같네.”
“으으.”
에어컨이 있는 선내에서 나가자마자 덮쳐오는 ‘훅!’ 찌는 듯한 습기 찬 더운 바람, 괴로움에 얼굴을 찡그린 채 움직여 갑판에 도착하자 배 곳곳에서 온 오크 전사들이 나름 열을 맞춰서 서 있었다.
그리고, 그 선두에 다른 오크들보다 더 큰 체격의 기사 오크가 있었다.
미르에 유혈이 닥쳤을 당시에 봤었던 오크 기사단과 똑같은 복장에 할버드를 어깨에 걸치고 있는 오크 기사, 어지간히 더운 듯 헬멧을 벗은 얼굴에선 땀이 주룩주룩 흘러내리고 있었다. 모인 오크들의 숫자를 센 후, 그는 할버드로 저 멀리 보이는 섬을 가리키며 소리친다.
“자, 지금 저기 보이는 섬이 우리 목적지다! 지상 송파구 면적 정도에 등록된 인구 3,000명가량! 우리가 맡은 구역은 아니지만 다리로 연결된 옆의 면까지 합하면 7,000명이 넘는다!”
오크어로 된 설명. 그에 오크들이 섬을 보는 가운데, 나도 <눈>을 상공에 올려 확인했다. 자잘한 섬이 아닌 커다란 섬, 논밭도 심심찮게 보이고 터미널도 있다. 그렇게 내가 확인하는 와중에도 오크 기사의 외침은 이어졌다.
“우리의 목표는 저기 보이는 해상의 터미널에 상륙해서 섬의 절반을 정리하는 거다!”
“질문 있습니다!”
손을 번쩍 드는 분대장으로 보이는 푸른 완장의 오크, 그에 오크 기사가 말해보라는 듯이 턱짓하자 그 오크는 주위를 슬쩍 둘러보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한다.
“심연 교도들도 일단 외형은 인간 아닙니까? 함부로 죽이면 곤란할 것 같은데, 진압을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 질문에 다른 오크들도 공감한다는 듯이 고갤 끄덕인다. 페리선 안에는 오크들만 있는 것이 아니라 거점을 확보하고 기지를 세우기 위한 군 병력들도 함께 타고 있었다.
그 질문에 기사는 마음에 든다는 듯이 씨익 웃으며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소리친다.
“저 섬에 있던 놈들만큼은 괜찮다! 인간들도 그곳에 있는 것들을 전부 인간 껍질을 뒤집어쓰고 있는 타락체라고 예상하고 있으니까! 인간 군인들도 접근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니 문답 무용으로 죽여도 좋다!”
“오오……!”
“그래도 그 증거를 확실히 보이는 게 좋으니까, 그 안의 심연의 살점을 확실히 보일 수 있도록 도끼로 토막을 내서 죽여 버려라!”
그 대꾸에 오크들은 웃으며 등에 멘 외날의 양손 도끼를 손에 쥔다. 그 모습을 보며 오크 기사는 말을 이어나간다.
“드론 정찰 결과, 터미널 근처에 인간은 150명가량. 지금까지 발견된 타락체 놈들은 약하지만 혹시 모르니 주의할 것! 추가로 들어온 정보에 따르면 소총 몇 정이 반입됐다고 하니 반드시 헬멧을 착용해라!”
“뭐야, 소총?”
“젠장, 이 날씨에 헬멧까지 쓰면 쪄 죽겠네.”
살짝 조그맣게 투덜거리는 오크들, 이해한다. 그냥 가방만 멘 나도 뒤질 것 같은 날씨인데, 검은색 전투복 입고 뛰어다니면 탈진하지. 그에 오크 기사가 양우영을 향해 눈짓하자 양우영은 주위의 오크들을 뚫고 나와 그의 옆으로 간다.
“여기, 한 번 봤지? 우리 지상 협력자다! 너희들에게 마법 걸어줄 거다! 별거 아니고, 더위를 식히는 마법이다. 마법 오염이 있으니까 싫으면 받지 마라. 참고로 난 받는다.”
옆에서 첨언하듯이 말하는 오크 기사, 이어서 그가 마법을 써보라는 듯이 신호하자 양 씨는 그에게 손을 뻗는다.
냉기의 외투 (Coat of cold)
레벨 1 냉기/부여술
시전 소음 : 0
주문 소음 : 0
최대 SP : 100
지속시간 : 최대 25+1d(SP/10) min.
최소 소모 마력 : 0.2
설명 : 미약한 냉기를 가진 마법 에너지를 대상에게 부여하는 마법, 말이 마법이지 사실상 ‘마법 실패’를 일으키는 것에 가깝다. 그 여파에 약한 마법 오염이 중첩되는데, 그 마법 오염의 효과는 대상의 체온을 빼앗는 것이다.
처음에는 공격 마법으로 개발됐으나 대상이 마력을 조금만 일으켜도 통하지 않고, 위력도 거의 없는 것이나 다름없어서 실패작으로 분류되었다. 그러나 매우 저렴한 마력 코스트와 긴 지속 효과, 그리고 특정 환경에서 꽤 탁월한 효능이 밝혀져 나중에 버프 마법으로 분류되었다.
“후, 좀 살 것 같군.”
오크 기사의 전신에 푸른 마력광이 번지고 한여름 바닷가의 땡볕 아래에서 땀을 주룩주룩 흘리고 있던 그는 그제야 살겠다는 듯이 숨을 내뱉곤 헬멧을 착용한다. 이어서 ‘받을 놈은 한 줄로!’라는 외침에 다른 오크들도 별다른 거부감 없이 줄 서서 마법을 받아들인다.
그사이에 나도 준비물 배낭을 한 번 고쳐 매고, 도핑용 액상을 넣은 전자 담배를 피우면서 마음의 준비를 마쳤다.
“하아, 힘드네. 너도 해줘?”
“아, 전 됐어요.”
50여 명의 오크에게 전부 마법을 걸고 살짝 탈진한 양 씨에게 고갤 저은 후, 신의 은총을 보겠다고 마음먹은 <눈>으로 코앞까지 다가온 섬을 응시했다. 배 안에 있음에도 생선비린내 진동하는 듯한 어촌의 터미널, 불쾌한 보랏빛의 힘이 섬을 잠식하고 있었다.
-쿠웅!
“다 죽여 버려!”
이어서 배가 선착장 터미널에 닿고 다리가 내려가자 오크 기사를 필두로 한 오크들이 지상을 내달리기 시작했다.
4.
사람을 죽이는 건, 생각보다 마음의 충격이 크다고 한다.
나야 뭐…… 솔직히 공감이 안 되는 이야기지만 어쨌든 정상인 기준에선 그렇다고 한다. 같은 인간이라고 동질감을 느끼는 순간, 거부감이 든다고. 게다가 무고할 수도 있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심하다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이종족은 어쩌면 가장 거부감 없이 인간을 죽일 수 있는 존재이기도 했다.
“우와아아아아!”
“사…… 살려줘! 괴물이야!”
돌진하는 오크들, 그들은 무방비한 사람들을 가차 없이 공격했다.
외날의 양손 도끼를 들고 돌진하는 오크 전사들, 늙수그레한 바닷가 사람들에게 거침없이 달려들었고 도끼를 휘둘러 그 몸뚱이를 토막 냈다. 일방적인 학살, 배 안에서 그 광경을 보는 군인들의 얼굴은 좋지 못하다. 겉보기엔 인간이 죽는 모습이니까.
그런 군인들을 향해 타락체들은 손을 휘젓는다.
“사, 살려주소! 살려!”
“흐!”
-꽈드드득.
하지만, 오크의 도끼질에 토막 난 시신의 살점 아래에서 꿈틀거리는 기괴한 회백색 근육 덩어리를 보곤 저것의 정체를 실감했다. ‘타락체’, 인간을 숙주로 하고 흉내 내는 기생충이 만연해있었다. 소총으로는 드러내기 힘든 타락체의 정체였다.
그렇게 자신들의 드러난 정체를 숨길 수 없다는 걸 인지한 타락체들 또한 의태를 포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