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자를 위한 연중작은 없다-168화 (168/350)

제168화

“ArGr?”

“끄끄기기기ᄀᆞ.”

울부짖으며 배 안에 있는 군인들에게 손을 뻗고 있던 한 뱃사람의 얼굴이 무표정해지더니 이내 기괴한 소음을 내뱉는다.

-푸화아아악!

그리곤 오른쪽 팔이 찢어지며 팔뚝 굵기의 촉수 너덧 개를 뿜어내며 자기에게 달라붙는 오크를 향해 달려든다. 그물처럼 뻗쳐오는 그 4가닥 촉수, 오크는 과감하게 전력으로 부딪친다. 아니, 과감하다기보다는…… 그냥 생각이 없어 보였다.

“우워어어어!”

-촤학!

“이 시XX의 Saeggir ■■말한니께 내가 홍어X으로 ■■냐?!”

도끼로 하나의 촉수는 베어냈지만 나머지 3가닥은 멀쩡했다. 오크의 도끼와 몸을 남은 촉수로 휘감으며 그대로 들어 올리는 타락체. 정체를 드러내면서 지능이 손상된 듯, 타락체는 얼굴의 눈깔을 뱅글뱅글 돌리며 이해할 수 없는 말을 내뱉으며-.

-퍼억!

“니 이름은 이제 ■■Dae Sikk여……!”

육중한 오크 전사를 바닥에 패대기쳤다. 평범한 일반인이라면 한 번 패대기쳤을 때 머리가 깨져 뒤졌겠지만 오크 전사는 잠깐 눈의 초점이 풀리며 흐려졌지만 그 육신은 미리 설정해놓은 신경 신호를 따라서 움직인다.

-두두두두두!

“워아아아아!”

촉수에 붙잡힌 도끼를 놓으면서 멜빵끈으로 가슴팍에 매어놓은 소총을 갈기는 오크 전사. 순식간에 타락체를 벌집으로 만들어 버린 후, 그는 고갤 흔들며 자기 머리를 툭툭 두드리곤 다른 타락체를 향해 다시 괴성을 지르며 돌진한다. 인간에게선 보기 힘든 터프함이구만. 근데…….

“……어?!”

내가 어떻게 움직이기도 전에 이 야만인 같은 오크들이 각자 괴성을 내지르며 먼저 박살을 내놓는다. 먼저 <독침>을 날려서 찜 해놔도 옆의 오크가 도끼로 쪼갠다.

그래, 이 NPC 새끼들이 내 경치를 스틸해!

근데, 뭐라 하기도 힘들다! 르피너스에게 개조당한 내가 이상한 거지, 다른 이들에겐 레벨업 같은 개념은 없으니까. 협력해서 박살 내는 게 당연한 거니까. 뒤늦게 <눈>을 곳곳에 배치하며 죽일 만한 놈들이 어디에 있는지 훑었지만-.

“편하구만. 그치?”

“…….”

오크 새끼들이 다 쳐 죽였다.

아니, 이게 이렇게 된다고?? 쉬라는 걸 꾸득꾸득 억지로 떼써서, 그것도 내 능력에 대한 것도 추가로 추궁당하면서 겨우 왔는데 경험치 하나 못 건진다고?? 와…… 와타시의 레벨업은 어디간 데스우…….

허탈함에 살짝 넋을 잃고 웃자, 옆에 있는 양씨가 어깨를 툭 친다.

“왜 그러냐?”

“아뇨, 허무해서요. 이렇게 끝날 줄은…….”

“아직 끝난 거 아니야. 혹시 모르니까 긴장 풀지 마.”

그 말을 끝으로 배 쪽으로 향하는 양 씨, 그 말에 정신을 좀 차렸다. 그래! 아직 끝난 게 아니다! 이건 고작 상륙 작전이었잖아? 이 섬 인구가 3,000명가량 된다고 했지? 아직 더 있을 거다! 그래, <눈>을 위로 올린 뒤에 신의 은총에 관해 한 번 더 찾아…….

“……어?”

보려다가 이상함을 깨달았다.

내 <눈>은 30m 안쪽이라면 내가 상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것을 볼 수 있다. 마력과 영혼에 관련된 것은 물론이고 과거 한정으로 시간 축에도 구애받지도 않는다.

하지만, 난 그런 엄청난 기능들을 평소에 쓰지 않는다.

평범한 육안(肉眼)의 기능 정도로 제한해 놓지. 분할도 고작 육안 앞의 2개로 해놓고. 가공할 눈의 성능과는 별개로 내 인지력은 평범한 인간…… 아니,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해서 오히려 평범한 사람보다 더 떨어지는 편이다.

전투 같은 잠깐의 극한상황이라면 몰라도 평소엔 일반인보다 더 둔하다.

‘너무 많은 정보’를 한꺼번에 보면 오히려 어떻게 판단해야 할지 몰라서 당혹스럽다. 쉽게 분석을 할 수가 없기에 OFF 해놓고 다닌다. 무엇보다 더 피곤하기도 하고. 아무튼, 그 덕분에 눈치를 채는 게 늦어졌다.

“잠깐! 잠깐만요! 양 씨! 가지 말아 봐요!”

“……왜?”

“공기, 공기가 이상해요.”

내 말에 양씨가 코를 킁킁거린다. 그리곤…….

“으으음, 아흐 X발. 이 개X쌉똥꾸릉내는 뭐냐…….”

생선 썩는 냄새와 화장실의 찌린내가 뒤섞인 듯한 그 내음에 얼굴을 구기는 양 씨, 하지만 이건 단순한 악취가 아니다. 이 악취 나는 공기에는 코드 108-네쉬라의 힘이 은은하게 담겨있었다. 곧바로 그 냄새를 추적해보니-.

“……여기서 냄새가 나네요.”

조금 전, 오크들이 죽인 타락체들의 시신들에서 그 공기가 분출되고 있었다. 뒤진 것 같아서 신경을 쓰지 않았는데, 가까이 가서 한 번 살펴보니까…… 이놈들은 이전에 군청에서 죽였던 타락체들과는 달랐다.

그 끔찍한 생명력이 없다.

군청에서 죽였던 타락체들은 생명력이 더럽게 강했다. 괴물 차장님이 아주 그냥 잘게 토막을 쳐놨어도, 그 잘려나간 부위들이 낙지 탕탕이처럼 계속 꿈틀거렸지. 분리수거반이 몇 시간 뒤에 왔는데 그때까지도 계속 살아있더라.

근데, 이놈들은 그냥 축 늘어졌다.

<눈>으로 보니 그 피부 아래 살점들이 빠르게 부패하면서 그 육체에서 독가스처럼 더러운 공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마치, 내 <시체 부패>처럼. 그 시신을 턱짓하며 난 양 씨를 바라보았다.

“이거, 이거 좀 봐요. 이상해.”

“뭐가?”

“3일 전에 우리가 죽였던 타락체들을 생각해봐요. 토막 났다고 끝났어요? 거의 몇 시간 동안 꾸물텅 댔는데.”

“……뭐, 너무 쉽게 축 늘어지긴 하네. 근데, 이미 죽었는데 굳이 신경 쓸 필요가 있냐?”

시체에서 흘러나오는 악취에 코를 틀어막으며 대꾸하는 양 씨, 확실히 이 냄새는 좀 지독할 뿐이지 <악취 구름> 수준으로 못 버틸 정도는 아니다. 그래, 좀 불쾌하지만 참으려고 하면 못 참진 않을 정도? 하지만, 그래서 더 심상찮다.

“흠.”

곧바로 그 시체에 <눈>을 고정하고 과거를 훑어보니 뭔가 이상한 점이 보인다. 이놈들, 배가 이곳에 오기 전에 어떤 액체를 종이컵에 따라 마셨다. 그리고 마신 것을 찾을 수 없도록 바다에 던졌고.

어쩔 수 없이 그 <과거시> 상태에서 그 액체를 분석해보려 했는데-.

“끙.”

“어?! 야! 너 코피!”

“아니, 아니에요. 좀 피곤해서.”

“어휴! 그러니 그냥 쉬라니까!”

과거를 보면서 또 다른 눈의 기능을 사용하려는 순간 머리가 띵해지면서 코피가 흘러나왔다. 지난 며칠 동안 너무 혹사해서 그런지 연속해서 사용하는 건 무리인 것 같네. 어쨌든 손으로 흐르는 코피를 닦으며 입을 열었다.

“아무튼 낌새가 안 좋아요. 시체가 비정상으로 빠르게 부패하고 그 부패한 가스에서 심연의 힘이 느껴지고 있으니까…… 뭔가 수작을 부린 게 확실해요.”

“흠.”

내 능력에 대해 아는 양 씨인 만큼, 그냥 넘어가지 않고 꽤나 심각하게 받아들인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기능을 켠 <눈> 상태로 터미널 인근을 훑었다. 타락체 놈들은 배가 오는 것을 보고도 도망치지 않고 ‘무슨 짓’을 벌였다. 혹시 어떤 물체의 과거를 보면 그 단서가 있지 않을까 해서 봤는데…… 좀 특이한 것들이 보였다.

그 흔적을 쫓아서 선박 매표소 안쪽으로 들어서자-.

“찾아! 더 찾아!”

“야! 공평하게 나누는 거 잊지 마라!”

그곳에선 이미 오크들이 이리저리 뒤적거리고 있었다.

수색이라기보단 약탈에 가까운 행태, 실제로 매표소의 캐쉬 박스는 박살 난 지 오래다. 거, 미르에서 봤었던 오크 기사들과는 완전 딴판이구만. 오크 전사가 아니라 오크 강도여 강도. 나와 덤으로 딸려온 양씨가 안으로 들어서자 살짝 눈치를 보며 미간을 찡그리는 오크 전사들, 그에 난 살짝 양해를 구했다.

“아, 잠깐만요.”

바닥에 나뒹굴고 있는 작은 USB 하나를, 그리곤 사무실을 한 바퀴 돌면서 2개를 더 줍줍 했다. 외형은 다르지만 전부 똑같이 USB, 오크들은 처음엔 ‘뭘 줍나?’ 하며 바라봤지만 값이 안 나가는 거란 걸 파악하곤 그냥 뚱한 얼굴로 바라본다.

“넵, 고생하세요.”

그렇게 사무실에 있는 3개의 USB를 회수한 후, 다시 밖으로 나와서 주운 USB를 바라봤다. 평범한 USB, 하지만 하나같이 희미한 심연의 힘이 느껴진다. 강한 힘은 아니다. 제조 공정 중에서 마법 관련 용액과 재료가 약간 들어가는 십만~백만 원대 사이의 ‘마력 공산품’ 수준?

“그건 뭐냐?”

“심연의 힘이 희미하게 느껴지는 것들이요.”

양 씨의 질문에 대답하며 USB를 살펴봤다. <눈>으로 안쪽을 살펴보니 플라스틱 커버 사이에 휘발되고 있는 ‘보랏빛 결정체’가 보인다. 거기서 심연의 힘이 은은하게 흘러나오고 있구만. 그 USB들의 <과거>를 훑어보니…….

“양 씨, 노트북 가져온 거 있죠? 좀 가져와 봐요.”

이것들은 각각 섬의 사람들이 쓰고 있던 USB였는데, 한 남자가 주민들에게 명령을 내려서 모은 거다. 그 뒤에 커버를 분해하고 본드 같은 보랏빛 액체로 다시 붙였구만. 그리고, 그렇게 처리된 USB에 컴퓨터를 이용해 어떤 정보를 담았다.

배 쪽으로 달려간 양씨가 노트북을 가져오자마자, 난 USB를 꽂아서 그 내용을 확인했다.

“……뭔지 모르겠지만 되게 불쾌하게 생겼네요.”

그 안에 있는 것은 그림 파일, 일종의 문서를 촬영한 거였다.

한글이 아닌 어떤 형식을 가진 문자로 쓰여있는데…… 깨진 문자 픽셀처럼 되게 기괴하고 난잡해 보이는 문자다. 별다른 마력적인 것이 아님에도 되게 불쾌하게 생겼구만. 마법서가 아니라서 그런지 <게임 시스템> 보정도 들어가지 않는다.

그 문자의 모습에 양 씨는 뭔가 아는 듯 얼굴을 구겼다.

“심연 문자네.”

“심연 문자요?”

“그래, 타락체들이 쓰는, 그리고 타락체들만이 이해 가능한 문자지.”

설명해보라는 내 시선에 양 씨는 어깰 으쓱이며 말을 이어나갔다.

“타락체들이 배우지 않아도 터득하는…… 일종의 본능적으로 쓰는 문자야. 아직까지도 인류가 해석하지 못하는 글이기도 하고.”

“해석을 못 해요?”

“그래, 타락체들의 협력을 얻지 못했으니까. 게다가 이종족들도 이 문자는 이해를 못 했고. 언어학자들이 컴퓨터로 분석하고 있는데, 아직까지도 불가해라고 해. 문법이 굉장히 난해해서 그 규칙성을 파악하지 못한 데다가 문자 종류도 한자처럼 엄청나게 많은 거로 추정되고.”

“흠, 그렇군요.”

거, 신기한 문자도 다 있구만. 고갤 주억이며 형식적으로 다른 USB도 확인했다. <과거>에서 봤던 대로 전부 똑같은 내용들. 그림 파일 수백 장이다. 간혹가다가 첨부된 그래프와 삽화, 사진 같은 걸 보면…… 일종의 연구 논문 같았다.

“확실히, 심상치 않네. 일단, 이건 알리는 게 좋겠다.”

“네, 시체가 부패하면서 심연의 힘이 섞인 가스가 배출된다는 거, 그리고 심연의 힘이 흘러나오는 USB가 있다는 거, 그 USB 내용에 이상한 문서가 있다는 것까지요.”

“오키.”

고갤 끄덕이며 양 씨는 내가 건넨 USB를 쥐고 다시 배 안을 향해 달려갔다.

5.

터미널 정리가 끝난 뒤, 본격적으로 작전이 시작되었다.

훼리선 안에 있던 군 병력들이 상륙해서 터미널을 치우고 주위를 요새화했고, 곧바로 촬영 드론들을 띄우며 섬 곳곳의 영상을 찍었다. 그리고, 다음 목표가 정해졌다. 읍에서 가장 큰 마을, 투입 병력은 이번에도 오크 전사들이었다. 그에 난 작전을 짜는 오크 기사에게-.

‘마을을 포위한 다음에, 독가스 <부패 구름>을 풀자.’고 제안했다.

혹시 타락체들이 도망칠 수도 있으니까 철저하게 하자고. 물론, 본심은 ‘경험치’였지만 말이야. 그리고, 기각됐다. 상공에 떠오른 군용 드론이 실시간 촬영하고 있는데, 그건 너무 자극적이라면서.

……그 덕분에 난 팔자에도 없이 오크 전사들이랑 함께 뒤섞여 육탄전을 치러야 했다.

자기네들끼리 해도 된다고 하는 걸, 전리품도 필요 없다고 하면서 억지로 땡깡을 부려서 끼었다. 말을 하진 않았지만 오크 기사는 날 좀 미친놈을 바라보는 듯이 바라보더라고. 같이 온 양 씨는 ‘이 새끼 또 저러네.’하는 표정으로 바라보고.

그렇게 우린 오크와 뒤섞여 온종일 섬을 뒤지고 밤이 되어서야 터미널에 세운 베이스캠프로 복귀했고…….

“억울해요. 억울해에에에…….”

“미친놈아, 그만 좀 해.”

요새화된 터미널 쪽의 한 5층 건물 안. 멀쩡히 남아있는 설비로 따뜻한 물에 샤워까지 한 뒤, 난 배정받은 이불 위에 누워서 허탈한 마음으로 중얼거렸다. 옆에서 사발면을 먹고 있는 양씨가 넋두리를 하고 있는 내게 타박을 주지만…… 난 진짜 억울하다!

“아니, 생각해봐요! 섬에 3,000명 넘게 주민등록 되어있다면서 왜 500명 정도밖에 안 남아있죠!? 분명 처음 진입할 때는 섬 노예 같은 이들이 더 있을 수도 있다고 했는데!”

“타락체가 창궐한 곳인데 그럴 수도 있지. 평범한 상식이 통하겠냐?”

내 억울함이 담긴 외침에 삐죽이며 대꾸하는 양 씨, 오늘 온종일 맡은 지역을 돌아다녔는데…… 고작 25명 죽인 게 끝이었다. 더 안 자고 버틸 수 있었지만 ‘더 이상 이 섬에 타락체는 거의 없다.’는 정찰 드론 운용팀의 결론에 포기했다.

……그래, 소문난 문어 맛집엔 사실 별로 없었다는 거지.

하도 억울해서 차장님에게 연락해 다른 곳에 배치해 달라고 떼를 써봤는데 ‘X랄 말고 꺼져.’라고 하시더라. 흑흑. 25마리가 끝이라고……?!

“으윽, 으으으윽! 살육, 살육을 더 하고 싶다!”

“어휴, X발.”

사발면 국물까지 깔끔하게 다 먹은 뒤, 억울함에 발작하는 날 향해 반상에 있던 300mL 생수병을 내던지는 양 씨. 그리 빠른 속도가 아니었기에 내가 받아내자, 양 씨는 자기 몫의 요로 들어가며 이불을 덮으며 퉁명스럽게 말한다.

“너 자는 거 고려해서 월요일까지 여기 빌리기로 대대장이랑 쇼부 봤으니까, 징징거리지 말고 잠이나 자.”

“…….”

양 씨의 핀잔, 그에 난 분루를 흘리며 수면제를 입에 털어 넣고 곱게 이불을 뒤집어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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