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9화
35화. 킬 팀
1.
현시대의 국가가 심연 기생체에 감염된 인간-‘타락체’를 처리하는 주된 방법은 구역을 통째로 격리하고 폭격하는 것이다.
어느 정도 여유가 있는 국가들은 군대를 동원하거나 군사작전을 하진 않는다. 기생체 덕분에 마력을 각성한 타락체들이 강하다는 이유도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바로 투입되는 군인들의 ‘트라우마’ 때문이다.
심연 기생체는 숙주의 정신을 조종한다.
그렇기에 지상의 인간이 감염되면 기생체들은 살아남기 위해 숙주가 ‘무고한 인간’이라는 것을 어필한다. 점점, 더 인간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는 행동을 해도 말이다. 그들을 죽이러 온 군인 같은 이들을 보면 선량한 시민인 척 연기한다.
그리고, 평범한 인간의 정신은 연약하다.
베테랑 군인들이라고 해도, 심지어 아프리카의 막장 군벌 병사라고 해도 그런 ‘무고한 연기’를 하는 시민-여자와 어린아이의 모습은 쉽게 죽이지 못한다. 심지어 놈들은 토벌을 하면 그냥 죽어주기까지 한다. 자신은 죽더라도 다른 개체에 깃든 동족 기생체를 살리기 위해서.
당연히, 군사작전이 제대로 될 리 없다.
죄책감에 시달리는 몇몇 군인은 어린아이를 안고 도망치는 부모들을 눈감아주고 결국 타락은 계속 번져나간다. 설령, 하나도 남김없이 쏴 죽인다고 해도 그런 작전을 한 군인들의 정신은 박살 난다. 그런 이유로 타락체의 토벌은 아예 얼굴도 보지 않고 폭격하는 것이 정석이 되었다.
하지만, 그런 죄책감에 시달리지 않는 군인이 있다면?
심지어 작전 중 죽어도 사망 연금 같은 걸 안 줘도 된다면?
“우와아아아아!”
“죽여!”
공장에서 찍어낸 양손 도끼를 든 오크들이 돌격한다.
그 대상은 무력한 섬 주민들, 주민들은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다가 오크가 휘두른 도끼에 의해 몸통이 잘려나가며 무력하게 죽어 나간다. 실로 끔찍한 비극, 하지만 오크들은 전혀 동요하지 않는다. 그걸 파악한 타락체들은-.
“Graaⶑ!”
“ⶄⶕⶻⶼⶽ.”
“ᄁᆞᆯ!!”
의태를 포기하고 ‘자신의 정체’를 드러낸다.
순식간에 숙주의 살점을 먹어치우고 팽창한 뒤, 오크들을 역으로 후려친다. 평범한 인간 병사라면 으스러졌을 일격, 하지만 오크들은 달랐다. 그들은 차에 치인 것처럼 날아가도 야만적으로 웃으며 도끼로 타락체를 찢어발겼다. 그들 하나하나가 마력 각성자-전사 계급이었다.
‘폭격을 안 할 수 있다.’면 국가는 폭격 같은 짓은 하지 않는다.
폭격이란 건, 굉장히 돈이 많이 들어가는 짓이다. 그런 주제에 기반시설 같은 것까지 다 박살 내니 얻는 것이라곤 잿더미가 된 폐허밖에 없다. 그나마 잿더미만 남기는 것이 가장 ‘가성비’가 좋기에 택하던 선택이지만 오크라는 ‘새로운 선택지’가 들어가니 달라졌다.
오크를 투입하는 것이 월등히 좋다.
인건비가 싸기에 폭격에 비해 돈도 적게 들고 기반시설도 남는다. 게다가 증거확보용으로도 좋다. 폭격을 하면 ‘타락체가 없었다느니, 무고한 시민이었다느니.’ 말이 많지만, 문답 무용으로 찢어발기는 오크들을 투입하면 타락체들도 말이 안 통한다는 걸 알곤 저항을 시작한다. 그걸 바디캠으로 찍으면 증거가 된다.
그렇게 오크들은 훌륭하게 살육했다.
차량을 몰고 달려드는 주민들을 죽였고, 정체를 드러낸 채 돌격해오는 수백 명 단위의 타락체는 공군이 중형 폭격 드론을 투입해 폭탄으로 한꺼번에 처리했다. 덕분에 섬에 갇혀있는 수천 단위의 타락체들은 차례차례 정리하고 있었다.
하지만, 모든 것을 오크로만 해결할 수 없었다.
-슈우우우우…… 쿠쾅!
-쿠우우우웅!
상공 수백m 하늘에 있는 전폭기 편대가 폭탄을 떨어트린다. 센서를 통해 폭탄들은 부착된 작은 날개를 움직이며 스스로 떨어질 자리를 조정하고, 그 한 발 한 발이 떨어질 때마다 콘크리트 건물이 무너지면서 그 속에 숨어있던 인외의 생명체들이 찢겨나간다.
박살 나는 섬,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부아아아앙!
한 차례 폭탄으로 지면에 있는 괴물들을 갈아버린 뒤, 연이어 경항공기들이 섬 전역을 100m 정도로 낮게 날아다니며 하얀색 가루를 얕게 흩뿌렸다. 마치, 농약을 살포하는 듯한 모습. 그러나 그들이 흩뿌리는 것은 농약이 아니라 ‘꺼지지 않는 불길’이었다.
-화아아아악!
-끼이이이이익!
폭탄이 떨어진 곳, 그 잔여 불길에 하얀 가루-백린(白燐)이 닿는 순간 시커먼 매연을 뿜어내며 타오르기 시작한다. 그에 운 좋게 폭탄의 충격에도 살아남은 몇 없는 괴물들이 불타오른다. 섬 전체가 거의 대부분 불타오르고 있었다.
“싹 다 불타오르는군요.”
불타오르는 섬들 사이로 날아가는 군용 수송기 안, 창문 아래로 보이는 참상을 보며 전찬휘 사무관은 작게 중얼거렸다. 그에 옆 좌석에 앉은 나세영 차장은 막대 사탕을 빨면서 별것 아니라는 듯이 어깰 으쓱였다.
“그래, 타락이 퍼진 규모에 비하면 아주 싸게 먹혔지.”
“…….”
“고작해야 5개 면이야. 이번에 우리 ‘흰둥이’가 아니었으면 너무 많은 숫자에 질려서 주민 사이에 숨어든 타락체들을 선별한다는 생각도 하지 않고 그냥 신안을 통째로 격리하고 불태웠을걸?”
불퉁한 표정의 전찬휘를 향해 차장이 대꾸하자 그는 작게 한숨을 내뱉었다. 확실히, 그가 경계하는 소년이 이번 일에 아주 큰 공을 세웠다. 더 이상 함부로 어떻게 대하지 못할 정도로. 그렇게 한숨을 내쉰 후, 그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슬슬 낙하 예정이니 투입 인원들에게 한 번 브리핑하겠습니다.”
“굳이 할 필요 있냐? 어차피 하루 전에 자료도 나눠주고 이야기했는데? 게다가 작전 내용도 별거 없이 간단하잖아? 걍, 앉아 있어.”
“……그래도 하는 게 나을 겁니다. 혹시라도 잊어먹는 이들이 있을 테니까요.”
융통성이라고는 없는 대답에 나세영 차장이 작게 한숨을 내뱉곤 귀찮다는 듯이 가라는 손짓을 하자-.
“하하, 이번 신참이 아주 꼼꼼한 게 마음에 드는군!”
한 칸 떨어진 옆좌석에서 굵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커다란 양장본 책을 펼친 채 읽고 있던 거구의 남성, 입고 있는 백색의 사제복 위로도 드러나는 근육질의 몸과 평평하고 각져 보이는 이목구비는 꼭 인간이 아니라 강철로 빚어진 동상 같았다.
웃는 남자의 말에 나세영 차장은 한탄했다.
“말도 마라. 이 녀석 얼마나 깐깐한지 몰라. 뭔가 일을 끝마치려고 하면 ‘이건 규정상 어쩌고저쩌고…….’, 융통성이 없어요. ‘막내가 말대꾸?’해도 계속 이런다.”
“솔직히, 차장님이 평소에 너무 대충하는 겁니다. 일은 정해진 대로 해야지요.”
잔잔하게 웃으며 그는 무릎에 있던 책을 덮고 자리에서 일어선다. 전찬휘는 자연스레 그를 올려다보았다. 2m 20에 육박하는 엄청난 체격, 남자는 전찬휘의 어깨에 오른손을 올려놓으며 작게 웃었다.
“브리핑은 내가 하겠네. 내 음성으로 말하는 게 더 설득력이 있을 거야. 자네는 차장님 옆에 계속 있게.”
“……새끼, 자기 후임 만들려고 애쓰는 것 보소. 어떡하냐? 얘는 코드 108 혐오자인데? 니 후임은 절대 안 될걸?”
“하하, 차장님도 처음엔 그러셨잖습니까? 현실을 직시하다 보면 생각이 바뀌기 마련이지요.”
그런 남자의 말에 좌석 팔걸이에 기댄 손으로 턱을 괸 채 사탕을 쪽쪽 빨며 대꾸하는 차장, 남자도 지지 않고 잔잔하게 웃으며 대꾸한다. 그런 두 사람의 대화에 전찬휘는 살짝 뻘쭘하게 있다가 이내 작게 고갤 꾸벅였다.
“……감사합니다. 정의율 국장님.”
“뭘, 내가 해야 하는 일이야. 그리고 난 자네의 깐깐함이 아주 마음에 들거든.”
전찬휘 사무관의 어깨를 두드린 뒤, 철탑 같은 남자-정의율 국장은 뒤쪽 칸으로 향했다. 뒤쪽 화물칸 중심에는 은빛 금속으로 된 컨테이너 하나가 있었고, 그 사이드 벽에 붙어있는 좌석엔 4명이 벨트를 맨 채 앉아 있었다.
그에 정의율은 자신 안의 신의 은총을 끌어올리며 <설교>하듯이 입을 열었다.
“안녕하십니까! 이번 작전에 함께 참여하게 된 라트마의 율법을 따르는 자, 정의율이라고 합니다!”
소송기의 프로펠러 소음에 비하면 작은 음성, 하지만 그 의미는 또렷하게 모든 이들의 머릿속에 틀어박혔다. 그에 대원들의 시선이 정의율에게 향하자 그는 잔잔하게 미소를 지었다.
“5분 뒤에 목표 지점인 흑산도에 돌입하게 될 예정입니다. 새로 갱신된 정보가 있으니 그에 앞서 잠깐 브리핑을 하겠습니다.”
2.
신안의 지형은 섬이 다닥다닥 모인 군도(群島)다.
섬이 1,004개나 있다고 하지만 그 대부분은 육지 인근에 서로 뭉쳐있다. 하지만, 그런 밀집 지형에서 멀찍이 벗어난 섬이 소수 존재한다.
그리고, 그중에서 가장 커다란 섬이 바로 흑산도다.
육지에서 떨어진 거리로 비교할 시, 다른 신안의 섬보다 최소 4~5배가량 떨어져 있는 외딴곳. 한때, 홍어, 전복, 우럭, 성게, 돌김 등의 질 좋은 수산물로 유명했지만 그건 전부 15년 전의 옛이야기다.
흑산도의 수산업은 망했다.
미궁이 부상하면서 부각된 ‘식량 안보’, 미국이라는 초강대국이 룬 수호자에 의해 주저앉으면서 중국은 대놓고 ‘자국의 안보’를 위해 주위 국가에 겁박했고 황해는 사실상 중국의 영해가 되었다.
당연히, 멀리 떨어진 흑산도 또한 그 마수가 들이닥쳤다.
중국 어선이 바다에서 수산물들을 깡그리 털어가는 것은 물론이고, 민병대나 다름없는 중국 어부들은 가끔 흑산도에 무단으로 상륙하기까지 했다. 한국 정부와 해경은 그런 패악질을 막지 못했다. 그에 대부분의 어민들은 육지로 도망쳤고 흑산도는 몰락했다.
그렇게 육지로의 배편도 끊기고 사실상 버림받은 섬은…… ‘영영 돌아올 수 없는 길’로 접어들었다.
“……끔찍하군.”
청와대의 지하 방공호 회의실, 북한이 건재했을 당시에 몇 번 쓰고 반쯤 방치됐던 벙커의 회의실엔 오랜만에 사람이 꽉 들어차 있었다. 그리고, 그 참석자의 면면 또한 화려했다.
대통령, 국방부 장관, 여야의 지도부, 국정원장…….
한때 국민이었던 대상을 상대로 벌어지는 작전, 그만큼 정치적인 여파 또한 컸다. 그렇기에 종합 상황실은 합참이 아니라 청와대 지하 벙커에 설치됐고, 군인뿐만 아니라 행정부와 정치권의 주요 인사들까지 함께 참석하게 됐다.
물론, 실질적인 지휘는 군인 실무진이 맡았다.
“저건 도대체 얼마나 큰 건가?”
한 국회의원이 스크린에 떠오른 영상을 턱짓하며 질문한다. 흑산도 상공의 사진, 섬 전역이 불길에 타오르며 검은 연기를 피워 올리고 있었는데 그 중심에 단 한 곳만이 멀쩡하게 불길의 영향을 받지 않은 채로 고고히 있었다.
거대한 살덩어리.
불쾌한 분홍빛 살점으로 만들어진 그것이 흑산도 중심의 이름 없는 산에 박혀 꿈틀거리고 있었다. 그 모습은 마치 죽어가는 생명체의 심장 혹은 현실에 돋아난 종양처럼 보였다. 그에 부관이 작게 헛기침을 하곤 입을 열었다.
“측정결과, 141,945㎡. 잠실 올림픽 경기장보다 조금 더 큰 수준입니다.”
“저곳은 왜 폭격하지 않는 거지? 저게 가장 폭격해야 하는 것 같은데.”
“주위의 공간이 일그러져서 폭격을 하기가 쉽지 않고…… 무엇보다 네쉬라의 제단이 있는 곳으로 추정되는 곳입니다.”
“그게 폭격하지 않을 이유가 되나?”
전혀 모르겠다는 듯이 질문하는 야당 쪽 국회의원, 그에 참석한 고위직 공무원들이 작게 헛기침을 하거나 불편한 기색을 내보였다. 이미, 정부는 이번 일에 대한 자료를 국회의원 사무실에 돌렸다. 그런데도 모른다는 건, 그걸 읽지도 않았다는 뜻이다.
무고한 시민 학살이라며 극렬하게 반대한 이들 중 하나면서 일에 대해 정확히도 모른다니 공무원들로선 어처구니가 없는 노릇.
하지만, 다른 국회의원들은 그러려니 하는 표정이었다. 나름 사회의 지도층이지만 그들에게도 코드 108에 대한 정보는 숨겨져 있었다. 알아보려고 마음먹으면 정보에 접근할 수 있었으나 대다수 의원들의 관심사는 권력을 잡는 것에 치중되어 있기에 전혀 몰랐다.
어찌 됐든 간에 부관은 그 질문에 성실히 대답했다.
“네쉬라는 코드 108중 하나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제단을 함부로 훼손하면 더 큰 피해가 있습니다. 특히, 네쉬라 제단은…….”
그렇게 왜 폭격해선 안 되는지에 대한 설명이 이어지고 그 폐해에 국회의원들의 표정도 점차 찌그러지는 가운데, 유리 벽 너머로 보이는 지휘통제실의 전방 스크린에 수송기의 모습이 떠오르며 한 오퍼레이터가 소리친다.
“공대지 미사일로 청소 완료했습니다! 수송기 목표 지점. 킬 팀, 투하 가능합니다!”
“좋아, 킬 팀 투하!”
작전을 총괄하고 있는 중장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고, 청와대에서 355km 떨어진 흑산도 상공을 날고 있던 수송기의 문이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