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자를 위한 연중작은 없다-170화 (170/350)

제170화

3.

타락체-심연의 존재를 상대하는 건, 악마를 상대하는 것 이상으로 피곤하다.

심연의 존재들은 강해서 그런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힘든 건 그 역겨움과 추잡함이다. 하나같이 평범한 생명체는 생리적인 견디기 힘든 소름 끼치는 형상에 끔찍한 존재감을 흩뿌리며, 그 몸에서 흘러나오는 기괴한 심연의 마력은 비 심연 생명체에겐 치명적인 맹독이다.

그 기괴한 마력에 계속 노출될 시, 육체에는 마법 오염이 쌓이며 임계치가 넘어가면 부정적인 <마력 돌연변이>가 발생-영구히 뒤틀려버린다.

그것만으로도 지독하지만 무엇보다 끔찍한 건, 몇몇 심연 괴물은 상대방을 ‘심연(Abyss)’으로 날려 보낼 수 있다는 거다.

심연, 네쉬라의 의지가 들끓는 ‘형상 없는 악몽’. 악마들조차 진저리치는 그곳에서 탈출하는 방법은 두 가지, 첫째는 ‘기적적으로 밖으로 향하는 포탈’을 발견해 탈출하는 것이고, 나머지 하나는 ‘네쉬라의 축복을 받아들이고 심연교도로 탈바꿈하는 것’이다.

첫 번째는 복권 당첨 수준의 운이 필요하고, 두 번째는 육신과 영혼을 팔아넘기는 짓.

당연히, 심연의 존재와 싸우는 건 기피되는 일일 수밖에 없다. 웬만한 미궁 출신도 기겁할 정도. 특히나 ‘신의 제단’이 박혀버리면서 일정 부분 심연화된 곳에서는 그런 괴물과 마주할 위험이 컸다.

그에 대한민국 정부는 그곳에서 싸울만한 실력자들을 포섭하기 위해 각종 회유와 약속, 그리고 어쩔 땐 협박을 해야 했다.

-슈우우우우우…….

“~♬”

그렇게 포섭된 이들 중 하나, 서예린 같은 경우는 반쯤 물욕(物慾)에 넘어간 케이스였다.

등엔 낙하산을 메고 있지 않은 모습, 아무리 마력 각성자라고 한들 높은 곳에서 떨어지면 위험하지만 그녀는 느긋하게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면서 왼손으로 목에 걸린 연기 같은 회색 스카프를 만족스럽다는 듯이 쓰다듬었다.

그렇게 무서운 속도로 지상에 떨어지다가 대략 100m 정도 남았을 때-.

“흡!”

그녀는 자신의 무기인 장검과 단검을 뽑아 들었다.

이미 한 번 공대지 미사일 폭격에 의해 쓸려나간 대지, 물리력에 어느 정도 저항이 있는 심연의 괴물들도 현대 화기의 무지막지한 물리력의 폭거에 대부분 찢겼다. 그러나, 살아남은 존재들도 소수 있었다.

‘그런 물리력을 버틸 정도로 터프하거나’ 혹은 ‘아예 물리적인 형상을 갖추고 있지 않거나’.

현실에선 존재할 수 없는 비정상적인 색과 형태를 지닌 초자연적인 빛과 에너지의 결합체, 혼돈의 심연에서 만들어진 이 공포스런 에너지체는 마력을 띤 광채를 통해 일반적인 지성체의 인지력을 초월한 그 형상을 머릿속에 직접 주입한다.

그 과정에서 일반적인 생명체들은 굉장한 스트레스를 받으며 일시적으로 <마력 돌연변이>가 발생한다.

그 기괴한 빛에 오래 지속될수록 영구적인 <마력 돌연변이>를 얻을 수 있으며 정신의 붕괴 또한 일어날 수 있다.

형용할 수 없는 광채로 빛나고 있는…… 현실의 물리법칙을 초월한 어떠한 형상, 지상에서 명명된 괴물 명칭은 역겨운 별(Wretched Star). 보는 것만으로도 미쳐버릴 것 같은 그 존재를 똑바로 응시하며, 서예린은 주문을 중얼거리면서 자신의 영혼을 무기에 불어넣었다.

-스카카카칵!

그런 그녀의 주위에 나타나는 <유령의 무기>들, 시전자의 떨어지는 속도와 똑같은 속도로 나타난 8개의 칼날은 그대로 쏘아져 나가 지상에 있는 역겨운 에너지체들을 꿰뚫었다. 그리고 서예린은-.

“읏차!”

땅에서 10m가량 남았을 때, 마치 풍선이 된 것처럼 속도가 급감하더니 이내 가뿐하게 착지했다. 그 뒤, 서예린은 만들어냈던 8개의 <유령의 무기>를 회수하곤 주위를 둘러보았다. 폭약 냄새가 매캐하게 올라오는 대지, 폭발의 연기 사이로 꿈틀거리는 형태들이 보였다.

그녀가 살짝 미간을 찡그리며 주위에 떠도는 <유령의 무기>를 정렬시키려고 할 때-.

-드르르르르르르륵!

전기톱이 돌아가는 것 같은 굉음과 함께 하늘에서 포탄이 빗발쳤다.

그 귀청을 찢는 듯한 시끄러운 굉음에 서예린이 미간을 찌푸리는 가운데, 하늘에서 쏟아지는 붉은 불줄기 같은 탄환의 세례는 그 근방에 있는 포연 속에 숨은 괴물체들을 공평하게 꿰뚫었다. 그 굉음은 점점 가까워지고 이어서-.

-푸화아아악!

-쿠웅!

-투웅! 퉁!

공기 찢어지는 소음과 함께 지상에 무릎을 꿇고 착지했다.

+0 골렘 외골격 강화복-Mk.3 화랑 (Golem Exoskeleton Battle suit-Mk.3 Hwarang)

한국 국방연구소에서 개발한 외골격 강화복 시리즈, 강화복에 골렘 마법을 적용하여 그동안 기술적인 문제로 불가능했던 부분을 메꿔냈다. 다른 화랑 시리즈와 같이 착용하는 장갑차 컨셉으로 제작되어 두터운 중장갑과 육중한 체격을 가지고 있다.

Mk.3는 Mk.2에 비해 마법적 가공이 많아지고 여러 부분이 개선되었으나 가성비 문제로 마법적 재료를 추가하는 방식의 개량판은 무의미하다고 판단, 이 프로토타입을 끝으로 단종됐다.

이 배틀슈트는 평범한 갑옷이 아닌 ‘탑승하고 개인의 마력을 사용해 움직이는 중장비’에 가까우며, 착용하고 움직이기 위해선 특별한 훈련이 필요하다. 그 여파로 착용자의 역량을 강제로 고정한다. 뛰어난 실력을 지닌 이가 착용하면 오히려 구속구에 가까운 병기.

갑옷, 골렘 외골격 강화복

기본 AC 12, GDR 39%, 방해 수치 30

·능력치 고정(힘=30, 민첩=16, EV=7, MR=++), 보존(내구력 자체 회복)

·발동 기술 : 고기동 모드, 투사체 방어막

2m 30cm는 넘을 것 같은 육중한 체격의 금속 거인.

그 양손에는 길이만 1.5m에 무게가 120kg이 넘어가는 커다란 발칸포가 들려 있었다. 킬 팀으로서 수송기에서 함께 합류하게 된 동료-‘인 중사’라는 군인이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근처에 함께 떨어진 금속 박스에 다가가 탄 배낭을 꺼내 갈아 끼우기 시작했다. 그 가운데-.

-탁! 타탁! 탁!

연이어서 비행 스크롤이 찢어지는 소음과 함께 떨어진 이들이 착지하기 시작한다. 핏빛 갑주를 걸친 전사, 푸른 바지 정장과 풀바이저 헬멧의 여성, 마지막으로 코트 같은 백색 사제복에 평평하고 넓은 챙에 동그랗게 솟은 사제용 모자-카펠로 로마노를 쓴 거한까지.

각각 김가트와 자모란, 그리고 정의율 요원이었다.

“……하아, 하기 싫다.”

어깨가 축 늘어진 김가트의 섬뜩한 핏빛 투구 안에서 흘러나오는 웅웅 울리는 목소리, 그 투정에 푸른 정장의 자모란은 옷을 툭툭 털면서 의외라는 듯이 대꾸했다.

“왜 그러시나요? 이름 높은 전투광인 ‘핏빛 사자’께서?”

“……전투는 이제 지긋지긋해. 후, 이제 미르에서 애들 가르치는 것만 하면 되는 슬로우 라이프가 될 줄 알았는데, 이렇게 코가 꿰일 줄이야.”

투덜거리는 김가트, 그에 정의율 요원은 자리에서 일어서며 쓰게 웃었다.

“김가트 선생님처럼 심연에 대한 전문가가 어디 있습니까? 심연의 존재들과 싸워본 경험이 풍부하고, 심지어 심연에도 한 번 떨어져 봤다는 분이.”

“……운 좋게 탈출한 거야. 그것도 심도가 낮은 지역에서.”

“그것만으로도 대단한 것이죠. 그리고 무엇보다…… 아시죠?”

모자를 고쳐 쓰며 빙긋 김가트를 향해 웃는 정의율, 그에 김가트는 투구 속의 얼굴을 찡그렸다.

“말하지만 ‘이번만’이다. 더 이상, 그쪽의 억지에 어울려주지 않을 거야.”

“하하, 알겠습니다.”

정색하며 스산하게 대꾸하는 김가트, 그에 정의율이 넉살 좋게 대꾸하는 가운데 배틀슈트의 투구 센서가 민활하게 움직이며 딱딱한 전자음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인근 심연 생명체들이 몰려듭니다. 2~3급, 위험 개체들. 1급 위험 개체도 있습니다. 모두 전투를 준비해야 합니다.

공대지 미사일 세례가 쏟아진 지 1분도 안 지난 시점, 하지만 심연화된 대지에선 심연의 악귀들이 주기적으로 기어 올라온다. 희미하게 피어오르는 연기 사이로 포착되는 불온한 움직임에 서예린과 김가트, 자모란이 전투 준비를 하는 가운데-.

“라트마시여! 당신의 계율이 필요한 종이 원하노니 당신의 성서를 이곳에 주소서!”

정의율은 혐오로 일그러진 얼굴로 오른손에 쥔 법전 같은 책을 위로 들어 올렸다.

성악가처럼 쩌렁쩌렁 울리는 그의 목소리와 함께 어디선가 날아온 순백의 빛이 그가 들어 올린 법전 같은 책을 비춘다. 그와 함께 쏟아지는 순백의 빛은 형태를 이루며 찬란한 문자열로 화(化)해 법전 표지 위에 새겨진다.

‘혐오의 서(Abominations)’.

이어서 정의율이 손을 내리자 자연스럽게 책이 빛나며 한 페이지가 펼쳐진다. 이어서 거대한 울림통 같은 그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전장에 울려 퍼진다.

「삿되고! 삿되도다!」

질서의 힘이 깃든 <설교>에 연기 너머 심연에서 비롯된 혼돈의 존재들이 순간적으로 움찔한다. 그 순간, 정의율을 제외한 다른 이들은 움직이기 시작했다. 김가트와 서예린은 자욱한 포연을 뚫고 칼날을 휘둘렀으며 자모란과 배틀슈트는 기관포로 심연의 존재를 찢었다.

그 기관포의 시끄러운 굉음에도 책을 읽어나가는 정의율의 목소리는 또렷하게 전장을 쩌렁쩌렁 울린다.

「심연에서 비롯한 저 모습이란 어떠한가? 지탄받아 마땅한…….」

「저 신성 모독적인 행태를 보아라! 라트마께서 다시 저들을 벌하시리라!」

「……다시, 또다시!」

「혐오의 서 13장 666절! 라트마의 사도인 모즈구스께서 말씀하시되…….」

정의율의 <설교>는 실체를 가진 파도처럼 삿되고 타락한 존재들을 박살 낸다.

어떤 타락의 존재는 순백의 빛을 뿜어내며 타올랐고, 어떤 존재들은 정신을 잃은 것처럼 휘청거렸다. 미약한 에너지 덩어리는 터져나갔으며 나약한 존재들은 그 자리에서 소금 기둥이 되어버린다. 그렇게 반쯤 무력화된 괴물들을 나머지 이들이 박살 낸다.

“후우.”

그렇게 낭랑한 연설이 이어진 지 30초, 법전을 뒤덮었던 순백의 빛이 사그라지고 이어서 정의율은 펼쳤던 책을 덮었다. 심호흡을 하며 그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폭연이 사라진 주위는 역겨운 심연 생명체들의 시체로 뒤덮여 있었다.

-비행기에서 온 항공 정찰의 내용을 확인한 결과, 위협이 될 만한 생명 반응은 반경 300m 내에 없습…….

배틀슈트에서 울리는 전자음 목소리가 다 끝나기도 전에 불쾌한 분홍빛 살점으로 뒤덮인 채 피를 흘리는 땅이 꿈틀거리기 시작한다. 이어서 주위의 환경 또한 변화한다. 아직 해가 쨍쨍 떠 있을 시간이건만 태양이 노을이라도 번지는 것처럼 붉게 물든다.

그에 배틀슈트가 살짝 멋쩍은 듯, 침묵하는 가운데 김가트가 주위를 둘러보며 미간을 찡그렸다.

“이건?”

“스읍, 하아…… 심연으로 물든 이 역겨운 공간이 라트마의 규율에 발작하는 겁니다. 이제 곧 뒤틀린 공간 너머의 정체를 드러낼 겁니다.”

순수한 혐오감에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대꾸하는 정의율, 그는 살짝 숨이 찬 얼굴로 법전을 들어 올렸다. 싸늘한 표정으로 한쪽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아무것도 없던 방향에서 환상처럼 100m가량 떨어진 곳에서 거대한 구조물이 나타난다.

살덩이로 뒤덮인 거대한 돔.

항공 정찰로 멀찍이선 관찰은 되지만, 이상하게도 폭격을 할 수 없었던 그 거대한 심장을 닮은 구조물이 갑작스럽게 정체를 드러낸다. 그 광경을 관찰하며 자모란은 고갤 끄덕였다.

“역시, 이 공간은 심연에 가깝네요. 시간과 공간이 계속 변동하는 중이에요.”

“갑시다. 질서를 세우러!”

법전을 들어 올리며 정의율을 선두로 킬 팀은 돔 안쪽을 향해 들어섰다.

4.

거대한 심장 같은 형상의 생체 구조물.

보이지 않는 그 입구를 찾는 대신 킬 팀은 그냥 벽을 뚫어버렸다. 정의율이 <혐오의 진언>을 외우며 심연의 구조물의 특정 부분을 ‘정화’-약화했고, 배틀 슈트를 입은 군인은 짊어진 금속 배낭을 내려놓고 그 안에서 작살 같은 착암기(鑿巖機)를 꺼내 벽에 구멍을 뚫고 폭약을 넣어 터트렸다.

“흐음.”

피를 왈칵왈칵 흘리며 뚫린 살점의 벽, 뚫리자마자 ‘훅!’ 끼쳐오는 공기에 김가트는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괴물의 아가리에서 나오는 숨결처럼 끈적끈적하면서도 독한 악취를 풍기는 공기, 이 정도면 거의 독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정찰 드론 투입.

배틀슈트의 군인이 메고 온 가방에서 작은 드론 2대가 나오더니 작은 소음을 울리며 구멍 사이로 빠르게 들어간다. 드론을 투입한 지 30초도 되지 않아 배틀슈트의 군인은 전파로 탐사 결과를 받은 듯 음성을 내뱉었다.

-소나 탐지로 내부 형상을 모니터링한 결과, 3차원적으로 불가능한 형상-공간 중첩이 확인됐습니다. 내부에 괴물의 존재는 확인되지 않지만, 공기 중에 성분 또한 미약한 신경독으로 추정되는 성분이 확인됩니다. 독 저항력을 위한 약물이 필요합니다.

“좋아, 도핑하고 가지.”

곧바로 챙겨온 저항력 물약을 마신 뒤, 일행은 안으로 진입했다.

정의율이 선두에 섰고, 좌우는 서예린과 김가트, 후방은 배틀슈트의 군인, 그리고 중심은 공간 마법사 자모란이 섰다. 자모란은 오른손에 쥔 원형의 나침판을 살피기 바쁜 가운데, 김가트가 주위를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내가 떨어졌던 심연의 환경과는 많이 다르군.”

생체 돔 내부의 환경은 전체적으로 어두웠지만 완전히 암흑은 아니었다. 광원을 알 수 없는 희미한 빛이 공간에 존재하고 있었고, 모든 물체-심연의 살점들은 희미한 빛에 스멀스멀 움직이는 것이 보이고 있었다.

거기에 어딘가에서 이명(耳鳴) 같은 속삭임이 울려온다.

정신을 외곽에서부터 착실하게 부식시키는 듯한 속삭임이. 무거운 공기, 생리적으로 불쾌한 형상, 정체를 알 수 없는 불길한 속삭임…… 그 모든 것이 스멀스멀 짜증과 불길함을 일으킨다. 정말 딱 미치기 좋은 환경이었다.

그런 김가트의 소감에 자모란이 흥미롭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그곳은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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