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2화
“오, 날 아는 기래?”
자신을 부르는 이름에 반색하는 중장년 남자, 그에 정의율은 읽었던 프로필 파일을 떠올렸다. 김일성종합대학 출신의 연구원, 북한이 건재했을 때는 육우와 곡물의 품종개량에 관련해 연구를 진행, 북한이 망하고 난 뒤에 군벌의 지원을 받아 마력 각성을 연구하던 생물학자…….
“……은 없지. 이미, 진짜 최성진은 죽었어. 남은 건, 그 기억을 퍼먹고 흉내 내는 흉물뿐.”
“흐, 흐하하하! 흐흐흫! 내가 죽은 인간이라고?!”
그 대꾸에 최성진은 박수를 치며 박장대소한다. 이어서 그는 새카맣게 그을린 얼굴로 진하게 웃으며 강한 울분이 느껴지는 음성으로 중얼거린다.
“흐, 남한 새끼들은 항상 기리티! 결과를 정해놓고 우리가 뭐만 하려고 하면 ‘너희가 틀렸다.’면서 면박 놓지. 하긴, 우릴 인간 취급이나 해줬간디?!”
“당연히, 괴물은 인간 취급해줄 순 없…….”
“북쪽 사람도 마찬가지면서.”
그런 정의율의 대꾸에 최성진이 아닌 누더기 인원들 중 하나가 중얼거린다. 인간의 성대로 말했다기보단 꼭 변조음에 가까운 된소리 음성, 그에 전방을 경계하던 킬 팀 일행들의 시선이 쏠리는 가운데-.
-쭈와아아악!
대꾸를 한 괴인은 이런 소란에도 ‘식인과 배설’에 치중하고 있던 인간을 향해 왼손을 뻗었다. 그와 함께 누더기 아래에서 ‘타락체’의 특징 중 하나인 굵직한 촉수가 드러난다. 3개의 다발로 이뤄진 촉수는 쭈욱 늘어나며 수십m 떨어진 곳에 있던 말라비틀어진 인간을 낚아챘다.
“어…… 엉?”
멍청한 소리를 내뱉으며 끌려가는 말라비틀어진 인간, 괴인은 그걸 위로 들어 올리며 그 엉덩이를 누더기 두건 위에 가져다 댄다. 그러자 젖혀진 두건 사이에서 조그만 촉수들이 올라와 말라비틀어진 인간의 엉덩이를 간지럽힌다.
-푸드드드득! 푸드드드드득!
“헤, 헤헤헤헿! 헤!”
그와 함께 말라비틀어진 인간이 행복하게 웃으며 보랏빛 설사를 싸 갈긴다.
보기만 해도 더러운 광경에 킬 팀 인원들의 얼굴이 일그러졌지만 두건 위에서 뻗어 나오는 촉수는 게걸스럽게 그 설사를 빨아들인다. 그렇게 포식한 괴인은-.
-콰직!
쓰레기 버리듯, 말라비틀어진 인간을 킬 팀 일행들 쪽을 향해 내동댕이친다.
엄청난 속도로 날아가 망가진 장난감처럼 팔다리가 분해되어서 나뒹구는 인간, 그렇게 두건이 벗겨진 괴인은 킬 팀을 응시하며 자연스럽게 그 얼굴이 드러난다.
젊은 여성의 얼굴.
오른쪽 얼굴은 아름다웠지만…… 왼쪽 안면이 무너져 내렸고 그 자리엔 종양과도 같은 두족류의 형상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입가는 촉수 달린 아가리가 대체하고 있는 상태, 그 작은 촉수들을 꿈틀거리며 설사를 핥은 그녀는 얼마 남지 않은 인간의 입으로 어설프게 중얼거린다.
“아……닌ᄁᆞ?ᄋᆞᆼㅇ?”
“맞디! 저 남쪽 아새끼가 이제야 핍박을 풀어보려고 하니 찾아온 거다!”
웃으며 말하는 최성진, 그에 나머지 누더기를 건친 인간들이 두건 아래에 보이는 두족류처럼 길쭉하게 찢어진 동공을 가진 호박색 눈이 번들거린다. 이어서 최성진은 인간의 얼굴 근육으로선 절대로 지을 수 없는 찢어지는 미소를 지으며 턱짓했다.
“그러니 죽이라우.”
6.
“▒̑̈͒̿̑͠█̾̽͑̌̚̚͡▒҇̾̋̓̂̓́̎̚̚”
최성진의 명령에 심연의 신도들은 괴성을 내지르며 황소처럼 돌진한다. 그러한 신도들의 무기는 변이한 촉수 혹은 식칼. 하지만, 공통적으로 ‘기묘한 광채에 휩싸인 채 작게 바스러지는 것 같은 잔상’을 남기고 있었다.
“왜곡!”
그걸 확인한 김가트는 짧게 경고했다.
왜곡, 사람들이 타락체를 상대하는 걸 유별나게 꺼리는 이유 중 하나. 심연의 존재가 다루는 저 힘은 공간을 찢고 엔트로피를 폭발적으로 증가시킨다. 접촉하면 세포 붕괴와 각종 마법 오염, 혹은 공간이 찢어져 주위 다른 곳-아주 재수가 없으면 심연으로 튕겨 나간다.
“■! ■■■■!”
그에 괴인들이 나타났을 때부터 작게 주문을 외우던 자모란의 손에서 푸른 섬광이 뻗어 나가 다른 네 사람의 몸을 휘감는다. <공간 좌표 고정>, 일시적으로 공간을 정체(stasis)시켜 권능이나 마법에 의한 공간 이동을 막는 보호 마법이었다.
그렇게 필수적인 보호 마법이 팀원들에게 걸리는 순간, 자모란의 옆에 있던 정의율은 곧바로 ‘신의 권능’을 사용했다.
「죄인은 신실한 자에게 접근하지 못할지니!」
-쿠웅!
그 선언이 끝나자마자 커다란 새장 형상의 은빛 우리가 정의율과 자모란의 머리 위에 떨어진다. 라트마의 사제들이 부정하고 삿된 존재들을 잠시나마 가둘 때 사용하는 <신의 권능 : 은빛 구속>.
정의율은 적을 구속하는 대신에 자모란과 자신을 가둬버렸다.
-우직!
-쩡!!
공간을 뚫고 나온 촉수가 정의율과 자모란을 노렸지만, 위에서 떨어진 은빛 철창에 의해 바닥이 찍혀 으스러진다. 뒤늦게 공간을 찢고 나온 타락체들의 촉수들이 철창을 후려치지만 좀 찌그러트릴 뿐 박살 내진 못했다.
“켈록! 켈록! 크흠! 큼!!”
그렇게 스스로 가운 철창 안에서 정의율은 한쪽 무릎을 꿇고 고름 섞인 가래침을 내뱉었다. 신의 권능을 발동시키기 위해 크게 숨을 들이쉰 대가, 그렇게 숨어서 옷 안쪽에서 힙플라스크에 담긴 포션을 꺼내 마시는 사이-.
“흐.”
김가트와 서예린은 적들을 향해 돌진했다.
그렇게 정의율과 자모란을 쉽게 노릴 수 없다고 확인되자 타락체들 또한 목표를 바꿨다.
-촤하하하학!
-쩌엉!
주위에서 공간이 찢어지는 감각에 김가트는 번개처럼 움직여 그곳에서 벗어나고 피할 수 없는 것은 대검을 휘둘렀다. 공간을 뚫고 나오는 비비 꼬인 촉수 뿔이 대검과 부딪치는 가운데, 김가트는 그 위력을 가늠했다.
“나쁘지 않군.”
자모란이 걸어준 마법이 왜곡의 힘에 어느 정도 저항하는 게 느껴졌다. 연거푸 칼을 휘둘러 공간을 찢고 나온 촉수를 베어 가르는 가운데, 인간을 빨아먹고 내던진 여자 타락체가 김가트를 향해 눈을 빛냈다.
「.̵͚͇̞̙͛̾̉̉͆̐̿.҈̥͎̠̩͔̟̪̱̙͗͆̊͌͊̒͊̇」
‘기괴한 소음’을 내뱉으며 누더기 속에 숨겨져 있던 왼손을 뻗어 까닥이는 여자, 그에 강한 인력(引力)이 발생하며 김가트의 몸이 여자의 앞으로 빨려 들어가려고 했지만-.
-쩡!
다시 한 번 유리 깨지는 듯한 소음과 함께 그의 몸에 걸린 마법이 그 인력에 저항한다. 그에 뒤틀린 여성 타락체가 주춤거리는 사이, 김가트는 30m 남짓 떨어진 여성 타락체에게 돌진했다. 그런 김가트를 앞쪽의 타락체들이 막아섰다.
“꽑!?”
“꽐꽑!!”
흉흉한 왜곡 무기를 휘두르는 심연의 신도들, 눈앞에서 혹은 공간을 뚫고 마수가 날아왔지만 김가트는 적의 시선 처리와 극에 달한 감각을 통해 그 날아오는 공격을 갑옷의 굴곡과 가시로 비스듬히 빗겨내며-.
-촤학! 촤학!
역으로 토막 쳐버렸다.
두 번의 검격에 자신에게 달라붙은 7마리의 타락체들을 토막 내는 동시에, 김가트는 볼링핀을 날려버리는 볼링공처럼 토막 나서 쓰러지려는 타락체의 육신을 그대로 뚫고 뒤쪽의 여성 타락체에게 칼날을 휘둘렀지만-.
-우웅!
“끄으으읅!”
여성 타락체는 <공간 구부리기>로 구부린 공간에 몸을 던져 멀찍이 40m가량 도망쳐버렸다.
그래도 김가트의 돌진과 돌파가 순식간에 벌어진 일인지라 살짝 늦어져서 칼날을 막느라 촉수 팔 일부분이 잘려나갔다. 연보랏빛 체액이 줄줄 흘러나오는 촉수, 하지만 곧바로 부글부글 끓어오르며 피가 멎는다. 그 모습에 김가트는 얼굴을 찡그리며-.
“흐, 흐하하하하!.”
살기 어린 목소리로 웃음을 터트리며 여자 타락체를 향해 돌진한다. 그렇게 반쯤 광폭화한 김가트는 양 떼 사이에 뛰어든 호랑이처럼 도망치는 타락체들을 뒤쫓으며 토막 냈다. 그렇게 지면에서 김가트가 날뛰고 있는 동안-.
-스가가가가가각! 스칵! 스칵! 스칵! 스칵! 스칵!
공중에선 서예린이 날뛰고 있었다.
그녀 주위의 허공을 날아다니는 <유령의 무기>들, 그런 무기들 사이에서 서예린은 곡예 하듯 움직였다. 어느 순간에는 육중한 소리와 함께 타락체들을 발로 후려쳤으며, 또 어떤 순간엔 너무 가벼워져서 허공을 천천히 유영하며 떠 있는 <유령의 무기>를 밟고 움직였다.
모든 것이 새롭게 받은 장비 하나에서 비롯된 기적이었다.
무거움과 가벼움의 사이 (Between Heaviness and Lightness)
아주 매끄러운 회색 스카프‘처럼’ 보이는 물체지만, 이것은 유형화된 ‘어떤 힘의 흐름’에 가깝다. 평범하게 손으로 만지면 묘한 저항력과 함께 연기처럼 스쳐 지나치고 마력을 투사하면 붙잡을 수 있다. 이 기묘한 물질은 착용자와 동화하여 ‘무게’에 간섭한다.
사용하기에 따라서 착용자는 자신의 의지에 따라 ‘매우 무거우질 수도’ 혹은 ‘깃털처럼 가벼워질 수도’ 있다.
망토, 스카프
·착용자의 무게 조정 가능(±1.26ton, 최하 몸무게는 0)
무게를 조종하는 장비, 그것으로 서예린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움직임을 해냈다.
타락체들 또한 어떻게 저항해보려고 했다. 지상에 도움닫기로 떨어진 서예린을 향해 무기를 휘두르고, 공중에 떠 있을 땐 <공간 구부리기>로 서예린을 향해 찔렀으나 그녀는 특유의 민감한 감각으로 회피했다.
설령, 타락체들의 공격이 운 좋게 닿았더라도 그대로 그녀의 몸을 뚫고 나왔다.
빛을 조종하는 ‘유령의 반지’로 만든 환영, 그 실체는 굴절되어 다른 쪽에 있었다. 따로따로 움직이는 8개의 <유령의 무기> 사이에서 비정상적으로 움직이는 서예린, 게다가 빛을 이용한 속임수까지 뒤섞이니 감각을 믿을 수가 없었다.
-쿠아아아아앙!
인 중사 또한 두 사람 만큼은 아니지만 1인분은 하고 있었다.
공간 왜곡에 의한 아군 오사 위협에 발칸포와 탄 배낭을 내던진 뒤, 그는 배틀 슈트 양손에 장착된 근접무장-‘공업용 금속 절단기’를 작동시켰다. 그리곤 배틀 슈트의 맷집을 살려서 나름 힘 있게 근접한 신도들을 하나씩 죽여 나갔다.
“……생각보다 쉽게 끝나는 것 같은데.”
본격적으로 전투가 시작된 지, 30초가량. 하지만, 이미 싸움은 거의 끝나 있었다. 서예린과 김가트, 두 미궁 출신의 전사가 50명에 가까운 심연 교도들을 압도하고 있다. 그에 자모란도 고갤 끄덕여 긍정했다.
“보아하니 전투에 익숙한 이들이 아니에요. 그냥…… 신의 권능을 얻은 ‘민간인’ 정도군요. 라트마의 신도가 능력을 발휘할 수 없도록 작전을 짠 건 좋았지만 개개인의 전투력이 미약해요.”
심연 타락으로 인한 초월적인 신체능력에 공간을 구부리는 <신의 권능>까지, 고위 타락체-심연 교도들은 객관적으론 강력했다. 하지만, 그 권능의 힘에 비해 자체의 전투력과 경험이 너무 떨어졌다. 악에 받쳐 달려들지만-.
-촤학!
가진 힘을 어떻게 활용할지를 잘 모르고 있었다. 그 때문에 1분도 되지 않아 거의 모든 타락체들은 사지가 토막 난 채 바닥에 나뒹굴고 있었다.
그러나 죽은 건 극소수였다.
엄청난 생명력을 가진 걸 증명하듯이 그들의 뒤틀린 사지는 떨어졌어도 꿈틀거렸고, 거기에 붙은 머리도 멀쩡히 움직였다. 심지어 세로로 쪼개진 머리로 따로따로 움직이는 놈까지 있었다.
“……너무 강하군.”
멀쩡한 적은 단 한 명, 이 모든 비극을 만들어낸 원흉인 최성진뿐. 그는 심연의 제단 앞에 피신해 있었다. 그에 김가트와 서예린은 무력화된 타락체들을 무시하고 그를 맹수처럼 덮쳤지만-.
“.҈͔͇͍̜͙̰͈̤͔͍͔̦̃̾̅́͐̐́̈̒͂̈.̸̥͇͉̤̫̥̙͚̭̈̒̈́͌.҉̞̣̟͍͔͓̟͍͈̀̄̂̍̓̽̌ͅ.҉̤̳̪͙̯̱͈͔̙͓̀̑͗̄̀̄̃́̈.̶̯̦͚͇̰͓̙̄͐̌̇ͅ.҈̲͍̳͚̘̪̲̖̠͗̈̔̅̀̃͂͐.҉̮̫͓̬̯̪̙͎͗̽̅͑̋̄̎̓̄̇̅̚ͅ.̷̤̙̮̣͔̐̿̐̌̈́̂.̸̗̦̦͓̟͖̘̌̏̎͛̆͑̑́̃.̸̮͍̥̘̩̣̔̀̀́̐̈̊̊͆̀ͅ”
그에 최성진은 재빨리 작업복 안에 있었던 초승달 모양의 촉수 메달을 쥐고 인간은 말할 수 없는 기괴한 음역의 소리를 내질렀다.
“!?”
“!”
그와 함께 촉수 메달에서 검보랏빛 광채가 몸부림을 치며 뻗어 나가 그를 감싼다. 후려치듯이 김가트와 서예린을 밀어내는 물리적인 힘, 그에 김가트와 서예린은 각자 그 광채를 향해 무기를 휘둘렀지만 고무공을 후려친 것처럼 그대로 튕겨 나갔다.
“……단단해.”
“묘한 느낌이군.”
물러서며 몸을 가다듬은 후, 몇 번 칼질을 해봤지만 마찬가지. 튕겨 나간다. 그에 질척질척한 검보랏빛의 광채 안에 있는 최성진 박사는 그 두 사람을 향해 입을 열었다.
“미궁 출신이 왜 우릴 방해하는 거지?”
보호막 밖에서도 들리는 목소리, 그에 김가트는 대답 대신 고갤 돌려 정의율을 바라보았다. 어느 정도 정리가 되자 정의율은 주위를 감싼 은빛 창살을 해제한 후, 자모란과 함께 밖으로 나와 있었다.
그에 정의율이 대신 보호막 쪽을 향해 다가가면서 입을 열었다.
“당연하지. 너희들은 기생충이니까.”
“기생충? 우리가?”
“그래, 인간을 배신한 기생충. 아니, 기생충에게 이미 지배당해서 배신했다는 자각조차 없겠지.”
그는 살기 어린 눈으로 보호막 쪽을 향해 다가가며 법전을 펼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