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자를 위한 연중작은 없다-175화 (175/350)

제175화

막간. 모두 잘 해결되었습니다!

1.

‘킬 팀’에 의해 타락체의 본거지가 정리되는 영상은 전부 ‘청와대 벙커’에 있는 스크린에 올라가고 있었다.

거의 성공했다는 브리핑 장교의 설명에 정치인들이 작게 박수를 치며 자축하는 가운데, 뒤늦게 수송기에서 낙하산에 달린 커다란 직육면체 금속 상자가 떨어졌다. 그 운구관 같은 상자와 함께 떨어진 국정원 요원이 착지하자마자 황금빛 금속 장갑을 끼고 상자를 끌며 한쪽 방향으로 움직였다.

중요한 과정인 듯, 드론의 카메라가 그를 집중해서 보여준다.

“저 친구는 뭐하는 겁니까?”

“타락의 근원인 코드 108의 제단을 제거하려고 하는 겁니다.”

한 정치인의 질문에 장교가 대답하는 가운데, 커다란 금속 상자를 끌고 가는 황금 장갑을 낀 국정원 요원은 무너진 살덩어리를 헤치고 킬 팀 일행들을 지나쳐 공터의 중심에 ‘아직까지 살아서 맥동하는 살덩어리’ 앞에 섰다. 그리고, 그 위에 있는 걸 보는 순간-.

“으음…….”

“웁.”

“블러 처리 더 진하게 해라! 괜찮습니까? 각하?”

정치인들의 표정이 와락 구겨지고 몇몇은 헛구역질한다. 브리핑을 하던 장교가 소리를 지르자 영상에 모자이크가 진해진다. 안부를 물어보는 장교에 살짝 헛구역질을 하던 대통령은 얼굴을 찡그린 채 고갤 끄덕였다.

“버틸만합니다만…… 보기만 한 건데, 좀 속이 메스껍군요.”

죽어가는 생명체의 심장처럼 느리게 뛰는 살덩어리 위에 박혀있던 검보랏빛의 기괴한 조형물-‘네쉬라의 제단’. 이미 좀 흐릿하게 처리한 영상이었지만 그것 실루엣만으로도 불길한 느낌과 함께 구역질이 몰려왔다. 그에 장교는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심연과 관련된 것들은 그런 면이 있습니다. 마력 저항력이 떨어지는 일반인 같은 경우, 제단을 계속 보다가 미쳐버리는 경우도 있을 정도니까요.”

장교의 첨언에 정치인들이 화들짝 놀라 시선을 돌리는 가운데-.

-철커덕!

찬란한 황금빛 건틀릿 장갑을 착용한 요원은 어느새 혼자 3m 남짓한 제단을 해체해서 커다란 금속 보관함에 담고 있었다. 눈을 반개하면서 그 광경을 보고 있던 한 여당 중진 의원이 그 황금빛 장갑과 은빛 상자가 눈에 밟혔는지 브리핑 장교를 향해 질문한다.

“저 장갑과 상자는 뭐입니까? 범상치 않아 보입니다만.”

“골디안 상회에서 대여한 장갑입니다.”

“……골디안? 혹시, ‘골디안 코인’의?”

“맞습니다. 그리고, ‘골디안’이라는 것도 사실 네쉬라처럼 ‘코드 108’ 중 하나입니다.”

이어지는 말에 살짝 놀라움이 퍼지는 의원들, 그에 함께 앉아 있던 국방장관은 쓴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인정하기 싫은 사실이지만 코드 108과 관련된 일을 해결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다른 코드 108의 힘을 빌리는 것입니다. 현재까지 제단을 다른 곳으로 해체·이송하는 건 저 골디안 상회의 ‘제단 이송 세트’밖에 없어요. 다른 방법을 고안해내려고 하곤 있지만 족족 실패했죠.”

“음, 그렇군요. 그럼 저게 얼마 합니까?”

“대여 형식입니다. 한 번에 골디안 코인 1,000~1,200개를 요구하죠.”

그 말에 국회의원들은 서로 작게 수군거렸다.

“골디안 금화 1,000개면…….”

“요즘 하나에 10만 위안…… 아니, 2천만 원가량 되니까 200억에서 220억 정도 되는구만.”

“음.”

그렇게 높으신 분들의 대화가 이어지는 가운데, 제단은 완전히 해체되어 커다란 금속관 안에 전부 들어가 밀봉된다. 그에 시선을 돌리고 있던 정치인들이 한숨을 내뱉고, 은근슬쩍 쓰고 있던 안경을 벗으며 딴청을 피우고 있던 대통령은 다물고 있었던 입을 열었다.

“저 해체한 제단은 어떻게 합니까?”

“그건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각하.”

그 질문에 옆에 있던 국정원장이 고갤 꾸벅 숙이곤 입을 열었다.

“회수한 코드 108의 제단은 대부분 국정원 지하의 ‘만신전’으로 옮겨집니다. 적절한 절차를 거쳐서 제단을 설치하고 그 힘에 대해 조사합니다. 하지만, 네쉬라의 제단은 주위 지형을 몽땅 심연 지형으로 타락시키기에 따로 보관하지 않습니다.”

“그럼?”

“뉴 송파구 아래, 지하의 미궁에 투기합니다. 변천이 일어나면 어딘가로 사라지니까요.”

그 답변에 대통령을 비롯한 여러 정치권 인사들은 고갤 주억였다. 저 보기만 해도 역겹고 끔찍한 저걸 지상에 둘 수는 없었다. 저것이 튀어나온 미궁, 그 아래로 사라지는 게 마땅하다.

“그럼 이제, 사실상 끝난 거 아닙니까?”

다시 안경을 쓰고 두 눈을 깜빡이는 대통령의 질문에 국정원장과 브리핑 장교, 국방장관은 잠깐 서로 시선을 교환했다. 그리곤 이내 천천히 고갤 끄덕였다.

“거의 끝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남은 건, 뒷정리와 어떻게 심연의 타락이 퍼졌는지에 대한 역학조사 정도입니다.”

“3개의 읍이 불타고 거의 주민등록상 12,000명 단위의 사람이 실종되거나 죽었지만…… 사실상,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으로 심연 기생체를 박멸한 정도에 속합니다. 조기에 진압되지 않는 이상, 타락체들이 일으키는 혼란에 최소 5만 명가량이 격리되어 죽는 게 일상이니까요.”

“타락체가 일으키는 혼란 또한 아직까지 없는 걸 보면 외과적인 검사 없이도 상당히 성공적으로 분류한 것으로 보입니다. 현재, 파견된 외과의 100여 명이 하루에 3천 명씩 마취·검사하니까 15일이 지나면 100% 검사 완료됩니다.”

세 사람의 의견에 대통령은 만족스럽게 고갤 끄덕였다. 그리곤 정치인들을 보며 환하게 웃었다.

“허허, 세계적으로 가장 성공적인 방역에 속한다니…… 이건, 충분히 자랑할 만하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각하! 이건 자랑할 만합니다!”

“미르 사태 때문에 생긴 불신을 없애기 위해서라도 이런 건 홍보해야지요!”

대통령의 의견에 여당 측의 정치인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반색하며 말하고, 야당 측 인원들도 똥 씹은 표정을 지을 뿐 반대하지 못했다. 여당에 힘을 실어주는 의견이지만, 태클을 걸기엔 지금 사회 분위기는 너무 좋지 않았다. 이렇게 억지로라도 분위기를 띄우는 게 맞았다.

그런 인원들 반응에 대통령은 ‘허허’거리는 사람 좋은 웃음을 흘린 후, 약간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우리의 선진적인 방역체계가 해낸 쾌거니…… 나라의 이름을 붙여서 ‘K-방역’ 어떻습니까?”

“K-방역, 훌륭합니다!”

“이름도 착착 달라붙는군요.”

여당 의원들의 호평이 이어지는 가운데, 대통령은 만족스럽게 웃으며 상석에서 일어섰다.

“좋습니다. 이만 해산하도록 합시다. 나온 영상들 가지고 편집해서 한번 선전하도록 하고요.”

2.

킬 팀의 작전이 끝난 뒤, 방송에선 성공적인 방역이라고 자축했지만 신안의 군사작전은 끝난 게 아니었다.

섬에 남은 타락의 흔적들과 남아있는 심연 관련 물품들을 정리해야 했고, 어떻게 타락이 번진 건지 역학조사도 해야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직 외과적인 검사를 받지 않은 주민들이 남아있었다.

‘숨어있는 타락체’들이 있을 수 있었다.

타락체들이 섞인 기존 집단과는 달리, 이미 분류된 주민들은 지난 6일 동안 선동과 혼란도 없이 순조롭게 지시에 따랐다. 하지만, 완전히 긴장을 풀 순 없었다. 그렇게 뒤처리를 맡은 군인들과 검사를 기다리는 주민들은 여전히 압해도에 갇혀 있었다.

그리고, 그곳엔 국정원 요원들도 함께 있었다.

“피곤하지 않으십니까? 거의 쉬지도 않으신 것 같은데.”

압해도 군청 옆에 있는 작은 컨테이너 가건물 안, 전찬휘 사무관은 커피를 내려놓으며 탁자에 앉아 있는 상관을 향해 걱정스럽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그 질문에 탁자에 앉아 있던 남자는 담담하게 웃으며 펜을 내려놓고 커피를 마셨다.

“괜찮다네. 이 정도야 별로 피곤한 게 아니지.”

2m 20cm는 될 것 같은 거구, 강철을 깎아 만든 것 같은 체형. 킬 팀의 일원으로 합류했던 정의율 국장은 빙긋 웃으며 고갤 저었다. 일이 끝나자마자 다른 킬 팀 일행들이 휴식을 위해 전부 흩어진 것과는 대조적으로 그는 곧바로 압해읍 쪽으로 귀환해서 업무를 보고 있었다.

다 작성한 전투보고서를 한쪽으로 밀어놓으며 정의율은 의아하다는 듯이 전찬휘를 바라보았다.

“자네야말로 여기서 뭐 하는가?”

“에, 차장님은 온천에 가셨습니다. 저보곤 따라오지 말라고 하셔서…….”

질문에 살짝 난처하다는 듯이 대꾸하는 전찬휘에 정의율은 고갤 저었다.

“그거야 별로 특이한 게 아니지. 항상 일 끝나면 온천에 가시거든. 난, 자네를 말한 거야.”

“저 말입니까?”

“그래, 밖에서 쉬어도 될 텐데 왜 여기 있느냐는 거네. 심연의 제단을 직접 해체하지 않았나? 좀 피곤할 텐데.”

정의율의 말에 전찬휘는 고갤 저었다.

“그 정도는 일도 아닙니다. 그리고 봉급을 받는 이상, 일은 충실하게 해야죠.”

“허, 일은 충실하게 해야 한다…… 나쁘지 않군. 자네는 역시 내 후임에 어울려. 어떤가? ‘라트마’님에게 귀의해보는 건?”

전찬휘가 가져다준 커피를 마시며 나지막이 권유하는 정의율. 그 제안에 전찬휘가 아무런 대꾸도 못 하고 어정쩡하게 굳어 있자 정의율은 빙긋 웃었다.

“한번 생각해보라는 거네. 너무 부담 갖지는 말고.”

“아, 네.”

“그리고, 초 치는 것 같아서 미안하지만 다음번엔 그냥 나갈 수 있으면 밖으로 나가게.”

커피를 마시며 하는 정의율의 말에 전찬휘가 두 눈을 끔뻑이자, 정의율은 살짝 한숨을 내뱉으며 고갤 저었다.

“우리 같은 전투 이능력자는 이곳에서 할 만한 일이 없거든. 고작해야 호위 정도? 솔직히, 나도 그냥 병풍이야. 나름 돌발 상황에 즉각적인 대응을 위해 고위직이 있어야 한다고 여기에 있긴 하지만.”

“…….”

“뭐, 우리가 정보과 애들을 도와줄 수도 없잖나? 하하, 자네 실수한 거야.”

웃으며 말하는 정의율, 이곳에 있는 국정원 요원들은 거의 대부분 정보과 사람들이었다. 병사들의 바디캠에 달린 영상들과 날아다니는 드론의 영상 등을 통해 혹여 모를 타락체를 색출하기 위해 파견된 이들. 직접 치고받는 그들과는 거리가 먼 이들이었다.

그 말에 전찬휘도 쓰게 웃으며 고갤 끄덕이려는 와중-.

“……저건 뭡니까?”

문득, 정의율의 탁자 위에 있는 서류들 중 하나가 보였다. 펼쳐져 있는 덕분에 그 내용이 우연히 눈에 들어왔다. 그에 정의율은 시선을 돌리더니 서류를 보곤 작게 어깰 으쓱였다.

“정보과 애들이 내게 준 일일 동향보고서라네. 명색이 상급자인데, 보고와 확인은 해야 한다는 거지. 음, 궁금해하는 것 같은데 한번 보겠나?”

“음, 허락해주신다면 한번 보겠습니다.”

고갤 끄덕이는 전찬휘의 모습에 정의율은 똘똘한 후임을 보는 것처럼 흐뭇한 얼굴로 서류를 넘긴다. 받은 보고서를 찬찬히 넘겨 가며 읽는 전찬휘, 얼마 가지 않아 그의 표정이 조금씩 미묘하게 굳어지기 시작하자 정의율 또한 이상함을 느끼고 입을 열었다.

“뭔가 이상한 거라도 있나? 딱히, 특이한 건 없는데. 정보과 애들의 분석도 그렇고.”

“……좀 걸리는 게 있습니다.”

“어떤 거지?”

그에 전찬휘는 입을 다물며 살짝 고민했다.

아주 사소하게 보일만 한 몇 가지 사항들, 무시해도 될 법한 것들이었지만…… 그 사항과 관련된 언급을 한 인간이 한새벽이었다. 사실, 보고서 내용에 눈이 갔던 것도 그 한새벽이 했던 사항과 연관이 있어서였다. 잠시 고민하던 전찬휘는 이내 손가락으로 그 항목을 짚었다.

“여기, ‘타락체의 시신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방호구 착용이 잘되지 않고 있다.’는 부분입니다.”

“아, 그거.”

전찬휘가 지적한 사항을 보곤 별것 아니라는 듯이 정의율의 표정은 살짝 풀어진다. 그리곤 커피 한 모금을 마시곤 고갤 절레절레 저었다.

“어제 보고가 들어오자마자 사단장에게 권고사항으로 보냈지만…… 알잖나? 이 날씨에 방독면과 화학 방호복을 입고 시체를 매장·소각하는 건 고역이나 다름없다는 걸.”

“음…….”

“직접 현장을 뛰는 병사들이나 부사관들은 풀어질 수밖에 없겠지. 대부분 처음부터 지키지 않은 건 아니고 자연스럽게 휴식을 취한다며 벗다가 그런 것이라더군. 그리고, ‘국립 마력 과학원’이 표본을 조사한 결과, 그 가스가 당장은 그리 치명적이진 않다고 확인됐네.”

‘타락체의 시체에서 심상찮은 가스가 흘러나온다.’는 국정원의 경고는 당연히 후속 작업을 하고 있는 군부대에 전해졌다.

윗선에선 철저히 방호복을 입고 처리하는 거로 명령했지만…… 실천하는 아래쪽에선 철저히 지켜지기 힘들었다. 그래도 치명적인 독가스라면 기를 쓰고 막았겠지만 그건 딱히 치명적인 공격이 아니었다. 그저 ‘좀 지독한 악취’, 그것도 어느 정도 코가 무뎌지면 버틸만한 악취였다.

하지만, 한번 깨어난 전찬휘의 감은 ‘불길함’을 알리고 있었다.

“하지만, 이상합니다.”

“이상하다?”

“보고서에선 섬에 있는 타락체들의 생명력이 기묘하게 약했다고 했습니다. 아시지만 죽어도 몇 시간 동안 살아서 꿈틀거리는 게 타락체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섬에서 처리된 타락체들은 축 늘어졌다고 했습니다.”

“음.”

“그런 이상한 타락체에서 흘러나오는 이상한 냄새…… 그것만으로도 좀 걸리는데, 이번 일을 벌인 놈이 문제입니다. 최성진.”

최성진, 북쪽이 붕괴한 후론 몇 년간 일품팔이 노동자로 전전했지만 그 전엔 북한 정권의 지원을 받아 농업 관련 연구를 하던 나름 엘리트 과학자. 실제로 5년 전 미친 북쪽 군벌 하나가 마력 각성 연구를 한답시고 그를 고용하기까지 했었다. 그러다 심연 기생체에 감염됐고.

읽었던 최성진의 프로필 파일을 떠올리며 전찬휘는 말을 이어나갔다.

“녀석은 과학자입니다. 확인된 전문분야는 ‘낙농, 축산’ 쪽이지만 농화학, 농생물학 같은 지식도 가지고 있겠죠. 녀석이 과학자로서 어떤 개량 연구 같은 걸 했다면…….”

“……그러고 보니 킬 팀에서 상대했던 타락체들이 특이한 실지렁이 같은 것들을 내뱉기도 했지.”

전찬휘의 말에 고갤 끄덕여 긍정하는 정의율, 그에 전찬휘는 쐐기를 박듯 말을 이어나갔다.

“게다가 놈은 분명 어떤 목적을 가지고 ‘정체불명의 내용을 담은 USB’를 흩뿌렸습니다. 심연 문자라서 번역은 할 수 없었지만 그래프나 사진 같을 걸 보면 ‘거의 연구 기록에 가까운 것’을요. 어쩌다 보니 운 좋게 파악하긴 했지만, 만약 파악하지 못했다면 쉽게 외부로 빼돌렸을 겁니다.”

“…….”

“그리고 여기 헌병대에서 적발한 규율 위반 사항 중에서 USB를 빼돌린 병사가 하나 적발됐다고 나와 있습니다. 병사의 증언으로는 제출을 깜빡했다고 하지만 이상합니다. 그리고 좋지 않은 일은 묻으려는 군대의 습성상, 보고되지 않은 이런 일들이…….”

그런 전찬휘의 말을 정의율은 조용히 경청했다.

냉정하게 판단하면 전찬휘의 주장은 ‘근거가 부족한 의심’이었다. 물론, 그것이 나쁜 것은 아니다. 계속 의심하고 의심하는 건, 정보기관에 소속된 이라면 꼭 필요한 것이니까.

하지만, 그 의심이란 ‘상상’에도 ‘한계’가 필요하다.

상정의 한계를 두지 않으면 끝없이 불길한 망상만 떠올리다가 아무것도 못 한다. 처음 미궁이 나타났을 때, 전 세계가 패닉에 빠진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미지의 존재들’, 모르기에 끝없는 망상에 사로잡혀 대응을 위해 별의별 쓸데없는 일을 했다. 16년이 지난 지금은 멈췄지만 말이다.

이미, 타락체들에 대한 연구와 대처는 수많은 국가들끼리 협력하고 있었고 그 대응방법과 시신처리 매뉴얼 또한 정립되었다.

현장의 매뉴얼은 잘 지켜지고 있었다. 그리고, 언급된 ‘가스’도 혹시 모르기에 이미 그 분야 전문가가 시체 표본을 건네고 조사까지 했다. ‘몇 시간’이라는 터무니없이 짧은 시간에 나온 것이지만 ‘그리 치명적이진 않다.’고 중간 결론까지 나왔다.

냉정하게 전찬휘의 주장은 무시하는 게 옳았지만…….

“한 마디로 자네는 뭔가 의심스럽다는 거지?”

“네.”

전찬휘의 대꾸에 정의율은 진중한 얼굴로 고갤 끄덕인 후, 책상 위에 있는 유선 전화기의 수화기를 들어 올렸다. 이어서 정보과가 있는 근처의 대형 트럭 사무실의 번호를 누르곤-.

“그래, 잠시 내 방으로 와라. 지금 당장.”

굳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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