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7화
5.
건물 근처에서 울리는 총성.
이곳이 사단을 움직이는 ‘작전 지휘소’라는 걸 생각하면 매우 심각한 일이었다. 정의율을 제외한 다른 회의 참석자들이 모두 자리에서 벌떡 일어선 가운데, 그 첫 총성을 시작으로-.
-뭐, 뭐야! 너희…… 악!
-쾅! 타다다다당!
-아아아아아악!
군청 건물 안 곳곳에서 폭음(爆音)과 함께 간부와 병사들의 비명이 들려온다. 건물이 작게 흔들린다. 그리고 정의율이 끼고 있던 이어 마이크에서 정보과의 무전이 들려왔다.
-아, 아아! 정의율 국장님! 들리십니까?
“그래, 들린다.”
이어 마이크를 켜며 대답하는 정의율, 그에 무전기 너머의 인물은 다급하게 말을 이어나간다.
-지금 군청 건물에 잠입한 부사관들이 움직였습니다! 소속을 보아하니 비금면 쪽에서 처리 작업을 하고 있어야 할 인원들인데…….
“…….”
-죄송합니다. 이상 현상이 파악된 이후로 군인들의 움직임을 CCTV나 드론으로 확인하기 시작했지만 이전에 잠복해 있던 녀석이라 경고가 늦…….
“됐고, 침입한 타락체가 몇 명이지?”
점점 구질구질해지려는 변명을 정의율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끊었다.
애초에 국정원은 ‘민간인 속에 숨어있는 타락체’를 주로 경계했지, 작업하는 군인들 속에 타락체가 퍼져나갈 줄은 생각도 못했다. 아무리 유능하다고 한들, 고작 몇 시간 만에 경계태세를 전환해서 타락체가 퍼진 걸 찾으라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정의율의 질문에 정보과 인원은 입을 열었다.
-근처 CCTV를 확인한 결과, 총 7명입니다! 하지만, 더 있을 수도 있습니다! 이 녀석들, CCTV 전선을 몇 개 끊었습니다.
“그렇군.”
그 말에 정의율은 겉으론 내색하지 않았지만 속으로 한숨을 내뱉었다. 타락체들의 사보타주, 뭔가 이상한 점이 발견됐을 때부터 각오한 것이긴 했지만 당하기 시작하니 정말 뼈아프다. 왼쪽 옆구리에 꼈던 법전을 다시 손에 쥐며 정의율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서며 입을 열었다.
“놈들이 노리는 게 뭐일 것 같나?”
-지휘관 사살 혹은 숙주화, 그리고 지휘통제실에 있는 군용 주파수 장비일 겁니다. 그게 섬에 있는 군부대에 송수신할 수 있는 유일한 장비입니다. 곧바로 그쪽으로 병력을…….
“7명 정도는 나 혼자 처리할 수 있으니 다른 전투 요원은 바깥에서 날뛰는 다른 타락체들을 제압하라고 해. 슈트의 카메라 기능을 켤 테니까, 그쪽에서 내 사각(死角)을 보조해라.”
-알겠습니다. 그럼 방탄 차량만 그쪽으로 보내겠습니다.
그 무전을 끝으로 정의율은 양복 상의의 뒷덜미에 있는 카메라 활성화 버튼을 누르곤, 상의 안주머니에서 선글라스를 꺼내 착용했다. 그 뒤, 옆 연대장이 허리춤에 착용하고 있는 권총을 바라보았다.
“그, 권총 좀 빌려주실 수 있으십니까?”
“권총 말입니까?”
“제가 먼저 나가서 상황을 살펴보겠습니다. 안전해지면 부를 테니, 제가 올 때까지 그 누구도 들여보내지 마시…….”
-타다다다당! 쾅!
그런 정의율의 말을 다시 한 번 끊어버리는 총성과 폭음, 그리고 비명. 이를 악문 정의율이 장교에게서 권총을 건네받자마자-.
[아아, 사단 작전 지휘소에서 전 병력에 알린다!]
[이번 작전은 무고한 자들을 희생양으로 삼은 정부의 폭거다!]
[수많은 무고한 이들이 엉터리 검사로 인해 끌려간 뒤에 저항도 하지 못하고 사살당했다!]
[이는 단순한 불법적 행위가 아닌 민주적 기본질서에 대한 중대한 침해이며, 파괴하려는 시도다!]
[이미, 우린 무력을 제외한 유효한 구제수단이 남아 있지 않다! 군인들이여! 대한민국을 지켜라! 민주적 기본질서의 유지와 회복을 위해! 진실을 알려라! 다시 한 번 알린다!]
건물 내는 물론이고 압해읍 전역에 있는 스피커에서 성난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전형적인 타락체들의 사보타주, 그에 정의율은 이를 갈며-
「그분의 규율 아래, 나의 몸과 영혼은 순결할지니!」
<신의 권능 : 활력>을 사용하며 신체의 능력을 끌어올린 후, 왼손에는 법전을 오른손엔 권총을 쥔 채 회의실 문을 박차고 나섰다. 그리고 때마침, 피범벅이 된 단독군장 차림의 병사 두 명이 소총을 쥔 채 계단 쪽에서 올라오고 있었다.
“자유민주주의를 위…….”
-탕!
정의율을 보자마자 소총을 들어 올렸지만 정의율의 움직임이 훨씬 빨랐다. 한 명의 눈을 정확히 명중시켜 날려버리는 동시에 정의율은 재빨리 들어왔던 방 안으로 몸을 날렸다. 그리고 다른 한 명의 병사가 쏘는 소총의 총성이 한발 늦게 울려 퍼진다.
-타다다다다당!
-탕!
시끄러운 연발 총성이 멈추자마자 정의율은 권총을 쥔 오른손만 문밖으로 뻗어 방아쇠를 당겼다. 회의실 안쪽으로 피하기 전, 정확히 병사가 있던 그 자리. 그대로 머리를 맞은 병사가 충격에 휘청거리는 사이에 다시 밖으로 나온 정의율은 마무리 사격으로 완전히 끝장냈다.
“잘 사용했습니다.”
권총을 빌렸던 연대장에게 권총을 던진 후, 정의율은 재빨리 시신에게 다가갔다. 아직 앳된 끼가 남아있는 병사들의 얼굴, 씁쓸한 표정으로 간략하게 애도 기도를 올린 정의율은 병사들의 무기들을 수습하고 한 손으로 k-2 소총을 쥔 채 계단 아래로 내려갔고-.
“최악이군.”
아래쪽 복도는 총상을 맞고 죽은 군인들 시체가 널려있었다. 대비도 못 하고 뒤통수에 총 맞고 죽은 시신의 모습에 정의율이 한숨을 내뱉자 이어 마이크에서 정보 요원의 음성이 들려왔다.
-최악까진 아닙니다.
“……이게 최악이 아니라고?”
-아시겠지만 타락체들의 행동방식은 질병에 가깝습니다. 숙주가 죽건 말건, 오로지 ‘전파’되는 것이 놈들의 목적이죠. 하지만, 놈들은 굳이 정체를 드러냈습니다. 잠복한 채로 조용하게 넘어가는 게 유리한데도요.
“그렇지.”
정보 요원의 말에 정의율도 작게 고갤 끄덕였다.
심연 기생체는 질병과도 같다. 하지만, 그냥 병균은 아니다. 때를 기다리면서 인내할 줄도 아는 지독한 것들, 소리 없이 퍼져나가는 것이 무섭지 이렇게 굳이 정체를 드러내면서 날뛰는 건 그리 무섭지 않다. 그에 정보 요원이 대답한다.
-방송국 차량에 접촉한 것을 보면, 그리고 티가 나지 않는 USB를 흩뿌린 것을 보면. 놈들은 ‘USB 안의 정보’를 밖으로 빼돌리는 데 모든 역량을 투입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뭔가 이상함을 눈치채고 유출을 철저하게 막고 색출을 시작하자 놈들은 어쩔 수 없이 움직인 거죠.
“흠.”
-일단, 최악은 피한 겁니다. 하지만, 방심할 순 없습니다. 나름 조용히 처리한다고 움직였는데 눈치를 챈 것을 보면 헌병대 쪽에도…….
“그래, 알겠으니 제대로 봉쇄하라고 해. 압해대교가 뚫리면 끝장이야.”
말이 길어지려는 요원에게 대꾸하면서 정의율은 천천히 경계하며 소리 없이 조심스럽게 지휘통제실 쪽으로 움직였다. 그렇게 정의율이 지나간 뒤, 바닥에서 쓰러졌던 피범벅 병사 하나가 무방비로 드러난 정의율의 뒤통수를 향해 조용히 소총을 겨눴지만-.
-뒤에 시체로 위장한 적!
정장 형태의 슈트 틈 속에 있는 바디캠, 등과 어깨 두 곳에 장착 있는 그 카메라로 정보과 인원이 보고 있었다. 그 경고에 정의율은 곧바로 고갤 숙이며 목에 건 ‘기묘한 도형의 금빛 묵주’를 재빨리 오른손으로 쥐었다.
-드르르륵!
정의율의 몸 근처에서 푸른빛이 번쩍이며 쏟아지는 탄환이 보이지 않는 철판에 맞아 튕긴 것처럼 궤도가 기묘하게 비틀어진다. 모든 총탄이 다 그의 몸을 비껴간 건 아니었지만 소총탄으론 슈트 안쪽의 세라믹 소재를 뚫지 못했다.
-탕!
한 탄창을 다 쏘아내고 무방비가 된 타락체를 향해 단발로 총을 쏜 뒤, 정의율은 조심스럽게 움직이는 게 무의미하다고 판단-지휘통제실 쪽을 향해 돌진했다. 안쪽에서 보고 있었던 듯, 그가 달려오자 지휘통제실 안쪽에서 던져진 수류탄이 반대편 벽을 맞고 날아온다.
“흡!”
하지만, 수류탄이 터지기까지 5초란 시간은 전투에 익숙한 마력 각성자에겐 너무나도 긴 시간이었다. 오른손에 쥔 소총을 놓고 정확하게 수류탄을 낚아챈 뒤, 정의율은 역으로 지휘통제실에 던져 넣었다.
“어?!”
“피…… 피해…….”
-쾅!
당황하는 비명과 함께 터지는 수류탄 폭음, 바닥에 던져뒀던 소총을 다시 쥐면서 정의율은 안쪽으로 들어섰다. 피비린내가 가득한 지휘통제실, 무방비로 죽은 시체가 가득했으나 그사이에 뭔가 꿈틀거리는 3명이 보였다.
좀 많이 두툼한 방탄복, 그리고 왼손에 쥐고 있는 격발기?
-타다다당!
“N҉͓̟̦̫͕͈̮́̓̋͛͋̋́̅̔̇̆̈́̓͛e҉̤͙̞͉͎̳̳̘̪̈́̈́̈́̂̅̇̃̐s̵̝̖͕̤̝͔͈͍͓͚̤̝̟̪̟̑̀̓̎̽̀̈͐̅̈̚̚h̵͖̲̟̦͙̥̩̱̤̞́̌̄̉͆̅̐̀̃̒́͛͊̀̚e҉̦͖̝̬̰̠̦͎͓̖̋͛̽̒̚ř̷̦͚̟̭̠͈̠̘̤̯͍̉́̔̊̍̐̐̈́̅̾̀̇́̓̂ͅȧ̴̱̜̖̬̫͈͇̪̥̬̋̒̿-!”
-콰-앙!
곧바로 한 놈의 머리통을 날려버렸지만 다른 두 놈은 격발기를 눌러 몸 곳곳에 부착된 크레모아를 터트린다. 마하 3의 강렬한 볼베어링 충격파, 정의율의 몸에서 푸른빛이 번쩍이며 그 파편들을 꽤나 많이 비껴냈지만-.
-쿠당탕!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살인적이었다.
2m 20cm에 150kg의 거구가 순수한 충격파에 날아가 피가 가득한 복도를 굴렀다. 피범벅이 된 얼굴, 재빠르게 소매로 가렸지만 나머지 얼굴 부위는 볼베어링에 관통되어 피투성이가 되었다.
-괜찮으십니까?
“끙, 나중에 파편 제거수술을 받아야겠어.”
이어 마이크에서 들리는 말에 대꾸하며 정의율은 박살 난 선글라스는 옆에 내던지고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일반인이라면 볼베어링의 폭풍에 완전히 얼굴이 갈려 나갔겠지만, 나름 손꼽히는 실력자인 정의율의 얼굴 뼈와 근육은 단단해서 완전히 관통되진 않았다. 게다가 선글라스 형태의 마법 장비도 완전히 박살 났지만 눈과 고막을 보호했기에 충분히 전투를 이어갈 수 있었다.
양복 안쪽 주머니에서 힙 플라스크에 든 포션을 마신 뒤, 정의율은 긴장하며 지휘통제실 안쪽으로 향했고-.
“……젠장, 완전히 박살 났군.”
크레모아에 완전히 박살 난 내부를 볼 수 있었다. 당연히, 통신기 또한 멀쩡하지 않았다. 게다가 설상가상으로 안 좋은 일이 또 연달아 터졌다.
-쿠우-쾅!
-쨍그랑!
임시 탄약고 쪽에서 거대한 불길과 폭음이 솟구치고, 그 충격파에 지휘통제실로 삼은 군청의 유리 벽이 죄다 박살 나서 깨져나간다. 연이어 들려오는 인근 주민들의 비명, 얼굴을 구기며 정의율은 이어 마이크를 켜고 중얼거렸다.
“어떻게 섬에 있는 병력에 연락할 방법이 있나?”
-육군은 힘들 겁니다. 외부 기지국을 작동시켜서 스마트폰의 제한이라도 풀까요? 스마트폰 전파 제한을 잠깐 풀면 문자 같은 걸 발송할 순 있습니다만.
“아니, 작은 가능성이지만 아예 원천 차단하는 게 낫지.”
작게 한숨을 내쉬며 정의율은 고갤 저었다.
“어쨌든 남은 타락체는 한 명뿐이군. 방탄 차량은 언제 오지?”
-가고 있습…….
-탕! 탕! 탕!
무전을 다 끝내기도 전에 위쪽에서 들려오는 총성, 그에 정의율은 다시 위쪽을 향해 내달렸다.
6.
어느 집단이나 배신자의 존재는 치명적이다.
고대 전투에서도 같이 싸우던 동료가 갑자기 뒤에서 칼을 휘두르면 진형이 무너진다. 한 명의 영향력이 낮은 고대 전투도 그럴진대, ‘소총’이란 개인 화력을 가진 지금이라면 어떨까? 그것도 수류탄까지 지참한? 칼을 휘둘렀을 때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 비극이 벌어진다.
배신자 한 명의 화력에 중대 하나가 물리적으로 ‘삭제’되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죽어라! 이 정권의 개들아!!”
군복을 입고 멀쩡히 움직이던 병사 하나가 갑자기 무차별적으로 소총을 갈긴다. 그 기습 사격에 멀쩡한 소대가 피를 흩뿌리며 나자빠진다. 징발된 건물 막사 내에 있던 병사들도 소수의 배신자 때문에 무고하게 죽어 나갔다.
다행히, 그 숫자가 얼마 되지 않기에 대기하고 있던 이들이 배신자-타락체를 사살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끝난다는 게 아니라는 거다.
“뭐…… 뭐야! 꼼짝 마!”
“진정하세요! 전 적이 아닙니다!”
배신자의 존재가 드러난 상황, 같은 중대·대대라면 몰라도 모르는 얼굴은 전부 경계할…… 아니, 알고 있는 얼굴이라도 경계할 수밖에 없었다. 믿을 수 있다는 ‘신뢰’, 무형의 것이지만 집단에겐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사라졌고 그로 인해 군은 사실상 무력화되었다.
그 사이에 몇몇 타락체들은 영악하게 민간인들 사이에 파고들었다.
“여러분! 도망치세요! 정부는 여러분들을 실험체로 쓰려고 억지로 가두고 있는 겁니다!”
“……!?”
“죽기 전에 빨리 도망치세요!”
밖으로 도망치라고 선동을 하는 타락체들, 안 그래도 들려오는 총소리와 탄약고 터지는 불길과 굉음에 반쯤 패닉에 빠져있던 이들이 우왕좌왕하며 정체불명 군인의 지시에 어떻게 할지 모르고 있을 때-.
-촤르르르륵!
“어어어!”
돌연 검은 쇠사슬이 사람들 사이에서 뻗어 나와 군인을 기습적으로 묶어버린다. 그리곤 일반인은 불가능한 괴력으로 낚시찌 올리듯 군인을 높이 솟구치게 한 뒤 아스팔트 바닥에 내동댕이친다.
-우드드득!
“꺄, 꺄아아아악!”
“모두 조용!”
목뼈가 꺾인 채로 축 늘어진 병사에게서 쇠사슬을 거둔 뒤, 전찬휘는 감각을 끌어올려 목이 쉬어라 소리쳤다. 쩌렁쩌렁한 포효에 사람들이 질겁하면서 잠시나마 소란이 가라앉은 것처럼 보였지만-.
-타다다다다!
“도, 도망쳐!”
어디선가 민간인을 향해 쏘아지는 사격에 혼란이 가중됐다. 그 광경에 전찬휘는 이를 갈았다. 타락체가 혼란을 일으키는 상황, 미리 파악했으면 전투 요원들이 제압했겠지만 녀석들은 곳곳에 설치한 CCTV까지 보이는 족족 박살 내서 국정원의 눈 또한 가려버렸다.
“군인을 믿지 마십쇼! 타락체가 섞여 있습니다!”
그렇게 전찬휘가 목이 쉬어져라 외치며 사격이 들려온 곳을 향해 움직이는 가운데, 서서히 새벽이 밝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