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8화
36화. 사선을 넘어서
1.
눈물을 흘리며 잠든 뒤, 난 레벨 업 했다.
미르가 유혈에 잠겼을 때 이후로 처음 겪는 렙업이었다. 정확한 경험치 산정 기준을 모르겠다만, 비능력자는…… 경험치가 되게 짰다. 북한에서 일반 폭력 조직원 100명 죽인 것보다, 마력 각성자가 1~2명을 죽이는 게 더 경험치가 높을 정도니까.
그리고, 이번에 죽인 타락체들의 경험치들은 북한에서 죽인 마력 각성자보다 더 높았다.
시체가 쏟아지고 자줏빛으로 바스러지면서 내 영혼을 채우는 그 느낌…… 세상의 그 어떤 쾌락보다도 진한 쾌감에 부들부들 떨며 난 레벨 업 했다는 걸 직감했다. 동시에 오크 때문에 타락체들을 더 많이 죽이지 못했다는 사실에 짜증이 치밀었다.
그 때문일까?
무려, 꿈을 꿨다.
타락체들이 정체를 드러낸 채 하하호호 밀려오는 꿈을, 그리고 난 그놈들을 기쁜 마음으로 죽여 버리는 개꿈을. 그래, 놀랍게도 생애 처음으로 꾸는 ‘진짜 꿈’이었어. 꿈속이란 걸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신나게 죽이고 있는데-.
-철썩!
놈들이 때리는 촉수 싸대기가 유별나게 아팠다.
하지만, 고작 이런 거로 날 막을 순 없지! 웃으며 마법을 사용하려고 할 때, 내게 달라붙은 타락체가 내 코와 입을 틀어막는다. 이 새끼…… 매우 난폭하구만! 숨을 틀어막은 놈의 촉수를 이로 깨물면서 마법을 외우려고 했는데-.
“일…… 나! 일어……! 일어나!”
내 귀에 틀어박히는 목소리에 깨어났다.
<눈>을 뜨니 내 얼굴을 양 씨가 때리고 있었다. 내가 손을 버둥대자 그제야 따귀를 멈춘다. 아니, X발?! 도대체 뭔 개 짓거리냐고 소리치려고 했는데…… 양 씨의 표정이 심상치 않다. 누가 봐도 ‘X됐다.’는 걸 알 수 있을 정도로.
“우리 X됐어! X발!”
“쓰읍, 왜요?”
어두운 걸 보니 아직 새벽녘, 레벨업을 해서 그런지 컨디션은 좋았지만 잠을 도중에 깨서 그런지 그리 기분은 좋지 않았다. 짜증에 얼굴을 구기며 양 씨에게 중얼거리는 도중…… 기괴한 냄새가 코를 찌른다. 그래, 양 씨가 그 ‘개XX똥꾸릉내’라고 표현한 ‘심연의 냄새’가.
설마, 이 냄새를 맡아서 그 꿈을 꾼 건가 싶었는데-
-이건 학살입니다! 무고한 시민을 죽이는 학살! 우린 대한민국의 육군으로서 더 이상 이런 짓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어서 쩌렁쩌렁한 확성기 소리가 울린다.
“머…… 머임?”
“반란이야! X발, 반란이라고!”
창문을 가리키는 양 씨, 그에 눈길을 옮기니 저 멀리서 타고 온 훼리선이 불타고 있었다.
2.
아니, 뭔 개소리야?
반란이라고? 어째서…… 반란을? 하지만, 불타오르고 있는 훼리선은 변하지 않는다. 흐릿한 윤곽만 보이는 육안으로도, 그리고 <눈>으로도 말이다. 그렇게 잠시 벙쪄 있다가…….
“……아, 개꿈이란 게 이런 거군요.”
조금 전까지 타락체들을 죽이는 생애 첫 꿈을 꿨단 걸 떠올린 순간 깨달았다.
몽중몽(夢中夢)이란 거구나. 나른하게 하품하며 몸을 요에 뉘었다. 잠을 다시 자야 한다는 게 심히 X같지만…… 이미 여긴 꿈인걸? 에어컨 바람을 쬐며 이불 속에서 꼼지락거리기. 치킨에 맥주처럼 이것 또한 섹X지.
-촤학!
“케헥! 켈록켈록!”
“미친놈아! 이거 꿈 아니야!”
작은 페트병에 있는 물을 다짜고짜 내 얼굴에 쏟아버리는 양 씨, 누워 있다가 코에 물이 들어가는 고통스런 느낌에 켈록켈록 거리니까 나른한 기분이 사라진다. 그리고,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이게 ‘꿈’이 아니란 걸.
“케흑, 이게 뭔…… 반란이요!?”
“그래! 쩌렁쩌렁한 방송이 울리고 총소리가 들리고, 수류탄 같은 거 터지는 소리까지 들렸-”
-타다다당! 타당!
양 씨의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총성과 비명, 그리고 수류탄이 터지는 진동이 우리 숙소까지 울려 퍼진다. 그에 양 씨가 내게 양복 형태의 슈트를 던지고, 뭔지 모르지만 난 허겁지겁 잠옷을 벗었다. 그 와중에 복도 쪽에서 다급하게 뛰어오는 발걸음 소리가 들린다.
<눈>을 배치해 확인하니 군인인데-.
“타락체!?”
“뭐?”
“지금 오는 두 놈, 타락체에요! 죽일 준비!”
입던 옷을 내던지고 룬 문자를 만들어냈다. 그와 함께 내 손바닥을 중심으로 바람이 휘몰아치고 창문은 ‘챙그랑!’ 소리와 함께 안쪽을 향해 깨져나간다. <액체 질소 대포>, 그렇게 모인 액체 질소를 타락체가 기생한 군인들이 문을 여는 순간-
-뻐-어-ㅇ!
날렸다.
문을 열자마자 퉁겨져 날아가는 군인 2명, 연이어서 양 씨가 <서릿바늘> 2개를 날린다. 정확하게 군인의 머리통 눈깔을 관통해서 안으로 파고드는 가운데, 양 씨는 자기가 죽인 사람의 복장을 보곤 기겁했다.
“시…… 시X!? 군인이잖아!”
절규하는 양 씨를 향해 난 달려들어서 밀치듯이 넘어트렸다. 그렇게 뒤엉켜 밀려나는 순간-
-두타다다다다다!
“으, 으아아악! X발!”
방으로 쏟아지는 총탄세례에 양 씨가 기겁한다. 하지만, 다행히 옆으로 밀친 탓에 총의 사선에 닿진 않았다. 머리통에 <서릿바늘>이 박힌 군인들이 복도 벽에 부딪혀 주저앉은 상태로 총을 쏘고 있었다. 뇌세포는 얼어 터졌지만 심장의 타락체가 반사적으로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타락체 맞아요!”
그렇게 한 탄창이 싹 비워진 후, 난 가방에서 컴뱃 나이프를 꺼내고 일어서서 문밖으로 향했다.
육신을 기생체가 조종하고 있었지만 숙주의 뇌가 완전히 파괴된 덕분에 정교하진 못했다. 손에 쥔 총으로 반사적으로 방아쇠를 당기는 수준, 연발로 한 번 긁은 탓에 더 이상 총알은 나가지 않았다. 몸도 제대로 못 겨눈다.
“RA-TI-AM!”
-푸욱!
<염기성 무기> 주문을 외운 후, 주저앉아 반사적으로 방아쇠만 당기고 있는 군인의 가슴팍을 향해 힘껏 컴뱃 나이프를 찔러 넣었다. 갈비뼈 사이로 폐를 찢고 그대로 심장을 꿰뚫는 나이프, 그에 군인의 심장에 기생하며 발광하던 기생체가 마법적인 극독에 녹아내린다.
-툭! 뚜둑! 철퍽!
“X발!? 뭐야!”
그 사이, 옆의 시신에선 축축한 소리와 함께 분홍빛을 띤 주먹만 한 회색 살덩어리가 시신의 입 밖으로 흘러나왔다. 그에 방 안쪽에서 얼굴만 빠끔히 내민 채 보던 양 씨가 기겁한다.
-철퍽! 철퍽!
-딱! 딱! 끼이이이익!
회백색 살갗, 표면 위에 꾸물거리는 일그러진 입에서 날카롭고 숨 가쁜 비명을 토해내며 딱딱 소리를 내는 덩어리. 그것은 얇은 뿌리줄기 같은 근섬유를 뭉쳐 움직이며 바닥을 기고 있었다. 그에 난 곧바로 시신 가슴팍에 박은 컴뱃 나이프를 뽑아서-.
-콰직!
-끼이이익!
그 살덩어리에 꽂아줬다. 그렇게 타락체 처리를 끝난 뒤, 난 고갤 돌려 컴뱃 나이프에 꿴 살덩어리를 들어 올렸다.
“보세요. 정상적인 타락체는 아니지만 타락체예요.”
“미친…….”
이전에 죽였던 타락체의 것과는…… 좀 다른 덩어리다. 이전의 것들은 심장 전체가 기생체였다면 이것은 정상적인 심장에 손가락 마디만 한 회백색 살점들이 종양처럼 붙어서 기생하는 형태. 그래, 좀 ‘미성숙한 것’에 가까웠다.
“흠.”
자고 난 뒤인지라 베스트 컨디션, 나이프에 박힌 그 심장을 응시하면서 가볍게 그 <과거>를 대략적으로 훑어본 순간…….
“……양 씨, 여기서 밥 먹었어요?”
“뭐?”
“여기서 준 밥, 먹었냐고요.”
“당연히 먹었지. 반찬이 좀 많이 짜더라.”
내 질문에 당연한 질문을 왜 하느냐는 듯이 물어보는 양 씨, 재빨리 양 씨의 몸 내부를 한 번 훑었다. 다행히, 양 씨의 몸은 정상이다. 하긴, 마력 각성자는 스스로 받아들이지 않는 이상 심연 기생체에 걸리지 않는다고 하니까.
“하아.”
한숨을 내뱉으며 난 내가 본 것들을 정리했다.
이 심연 기생체는 일종의 진짜 ‘기생충’으로 개조된 놈들이었다. 병사의 시신에 있던 기생체의 감염 경로는 밥, 식사에 기생체의 알 같은 것이 섞여 있었다. 그래 봤자 너무 미약해서 먹어도 거의 대부분 위 염산에 녹아서 소화되었지만…….
양 씨가 개XX똥꾸릉내라고 표현한 냄새가 문제였다.
거기에 섞인 ‘심연의 힘’이 인간의 호흡기를 통해 녹아들면서 심연 기생체의 활력을 불어넣었다. 그리고 기어코 몇 마리가 살아남게 만들었고, 일종의 미숙아 상태인 그것은 몇 시간 동안 서서히 이동해서 숙주의 심장에 뿌리를 내렸다.
그 뒤, 숙주를 조종하기 시작했다.
심연의 힘이 섞인 가스를 뿜어내는 타락체의 시신을 일부러 방치하고 정체불명의 문제가 기록된 USB를 확인하자마자 빼돌렸다. 그리고, 먼저 감염된 부사관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다가 방송이 나오는 순간…… 이 꼴이 됐고.
……식품 위장이라니.
이곳에 오기 전에 교육받은 자료에 따르면, 심연 기생체는 상처를 통해 지렁이 같은 자기의 분신을 잘라서 살에 밀어 넣는 거로 감염된다. 이런 건, 전혀 교육받지 못했다.
“우린…… X됐군요.”
건물 밖에 있는 군인들을 훑어보았다. 처음 기생체에 감염된 놈이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밖은 이미 지옥도였다.
“멈춰! 왜 그러는 거야!”
“총 내려 놓으십쇼! 안 그러면 쏘겠습니다!”
“너 이거 항명이야! 이 새끼들아! 전쟁 중 항명은 사형…….”
-탕!
한 중대장이 뭐라 떠들다가 중위의 소총탄에 머리통이 날아간다. <눈>에 보이는 군인들의 1/5 이상에 심연의 힘이 흐르고 있었다. 자다 깬 몇몇 이들이 저항해보려고 하지만…….
“야, 도대체 뭐하는 거야!”
“어쩔 수 없어. 일단, 가만히 있어.”
타락체가 된 동료가 총구를 들이대며 위협하자 무릎을 꿇는다.
워낙 갑작스런 일이라 대처를 못 했고, 무엇보다 같이 한솥밥 먹던 동료를 쏴 죽이는 게 인간에겐 힘들었다. 타락체에겐 아니지만 말이다. 몇몇 이들이 반항하려고 하지만 동료 중에 섞인 타락체에게 등을 내주고 죽는다.
이건 답이 없네.
내가 나선다고 해도…… 힘들 것 같은데. 그렇게 내가 고뇌에 빠져있을 동안, 양 씨는 어느새 내 쪽으로 다가와 군인들의 옷을 벗기고 있었다.
“X발, 타락체가 퍼졌으면 여긴 X됐어! 우리 방호복은 너무 티 나니까 위에 군복 입고 튀자!”
“……오크들이 있나요? 어떤 경로로 심연 기생체가 퍼졌는지 모르겠지만 오크들은 마력 각성자니까 저항력이 있을 거예요.”
“걔들은 어제 철수했어! 난, 너랑 함께 간다고 하다가 이 꼴인 거고.”
내가 단검으로 가슴팍을 찌른 군인의 상의를 걸치면서 말하는 양 씨. 흠, 양 씨가 이곳에 있는 이유가 그런 것이었군. 그나저나 날 기다리느라고 떠나가지 않았다니. 그래도 좀 책임감은 있네. 양 씨의 재촉에 나도 군인의 군복을 벗겨서 입었다. 좀 많이 헐렁이지만 어쩔 수 없지.
그렇게 입고 있는데, 옷을 다 입고 가방을 챙기던 양 씨가 날 위아래로 보다가 얼굴을 찡그린다.
“머리 염색약 없냐?”
“있겠어요?”
“시X알…… 그럼 방탄모에 머리카락 전부 밀어 넣어봐. X나 눈에 튀네.”
내 백발 머리칼을 보곤 타박하는 양 씨, 재빨리 고무링으로 머리칼을 묶은 뒤에 방탄 안에 밀어 넣고 위장크림을 얼굴과 목덜미에 덕지덕지 발랐다. 그러니 좀 많이 나아졌다. 그래도 자세히 보면 너무 왜소해서 군인이 아니란 게 티가 나지만.
“제가 앞장설게요.”
앞장서려는 양 씨를 제지하면서 <눈>을 상공 30m에 고정했다. 훤히 드러나는 부대 전경. 내가 쿨쿨 자고 있을 동안, 군바리들답게 요새화를 해뒀다. 선착장 쪽인데 혹시 모를 적들의 침입을 막는다고 참호-철조망-기관총 조합이 밖으로 나 있네.
좋아, 거기가 좋겠다.
“하아, 가죠.”
전자 담배를 켜서 도핑 약물을 한 번 빨아 준 뒤, 난 양 씨와 함께 그나마 타락체가 적어 보이는 방향을 향해 움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