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9화
3.
터미널 기지는 혼돈이 예상보다 크지 않았다.
군인들 대다수가 야밤에 자다가 총성과 훼리선이 불타는 소음에 깼지만 상황이 정확히 어떻게 돌아가는지 파악 못 했고, 지휘관급 군인들을 제거한 타락체들은 나머지 병력을 선동을 통해 장악하려 했다. 그리고, 전체 병력 중 1/5이 그에 동조하니 나머지는 꼼짝 못 했다.
-탕!
“소대장님 지시사항이다! 가만히 있어! 항명은 즉각 처형이다!”
몇몇 이들이 이상함을 느끼고 어떻게 대항해보려고 해도 그 동료들 중에서 타락체가 숨어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타락체들은 무기를 들고 있었다. 뭔가 해보려던 장교나 부사관은 세력을 모으기도 전에 동료라고 믿은 타락체들의 암습 혹은 밀고에 쓸려나갔다.
그래, 이미 영내는 ‘타락체 세력’에 의해 정리되어가고 있었다.
“생각보다 더 안 좋은데……?”
“곤란해요. 아주.”
그 꼬라지를 보며 양 씨가 중얼거리고 나도 한숨을 내뱉었다.
건물을 나서기 전까진 어떻게 혼란을 틈타 도망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보면 볼수록 만만치 않았다. 철조망과 마대자루로 만든 벽이 주위를 삥 둘러싸고 있고 곳곳에 타락체 병사들이 진을 치고 있다. 아닌 사람들도 섞여 있지만…… 타락체 놈들이 선동하면 그냥 따르겠지. 어찌 됐든 우리가 하려는 건 탈영이니까.
“흐음.”
솔직히, 나 혼자서 탈출하자면 간단하다. 그냥 <부패 구름>을 자욱하게 깐 뒤에 개인 해독 마법인 <연금 물질 분해>를 걸고 탈출하면 된다. 하지만, 우리 짐덩이 양 씨도 살려야 한다. 어떻게 하면…….
“아, 양 씨. 수동 변속기 차량 조종할 줄 알아요?”
“수동? 으음, 뭐 가능하지.”
“좋아요, 그럼 따라와요. 어리바리한 병사인 것처럼 연기하면서.”
목표를 포착하고 난 패닉에 빠진 것처럼 목표를 향해 허둥지둥 움직였다. 그에 양 씨도 뒤따르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한 병사가 제지한다.
“저기요, 아저씨! 지금 여기 함부로 다니시면 안 되거든요? 빨리 돌아가세……!”
-푸슛!
재빨리 <독침>을 튕겨 눈깔에 맞췄다.
눈을 관통하며 뇌에 박히는 <독침>, 그에 뇌가 파괴된 타락체 병사는 그대로 픽 쓰러진다. 떨떠름한 표정을 짓는 양 씨에게 ‘타락체’라고 작게 답했다. 다행히, 근처에서 총성이 울렸기에 한 명이 쓰러졌음에도 우리에게 시선이 쏠리진 않는다.
“<부패 구름>용으로 쓸 거니까, 업고 와요.”
뒤따르는 양 씨에게 말한 뒤, 건물 사이로 내달리며 <독침> 3개를 만들어 연거푸 허공에 튕겼다. 기묘한 궤도로 높게 솟구쳤다가 내리꽂히는 <독침>, 평범한 병사의 몸을 장악한 타락체는 어둠 속에서 조용하게 날아오는 내 암습(暗襲)을 눈치채지 못했다.
“얽!”
“윽!”
“ᄁᅠᆩ!”
“머…… 뭐야! X발!”
병사들이 있는 임시 막사 건물, 소총을 들고 경계하던 타락체들이 그대로 눈알을 뚫고 박힌 <독침>에 뇌가 녹아내리며 무력화됐다. 갑자기 동료(라고 믿는 타락체)가 겨눈 소총 앞에서 벌벌 떨던 다른 군인들의 얼굴에 놀람이 번져나간다. 그 모습에 양 씨가 얼굴을 찡그린다.
“쟤들 구해서 가자고?”
“아뇨, 그건 저라도 못해요.”
목표를 향해 <독침>을 두 개 더 만들어서 손가락을 튕겼다. 평범한 상황이라면 그래도 구해보려고 했을 거다. 소총을 든 군인은 솔직히 웬만한 맨손 마력 각성자보다 훨씬 더 강하니까. 하지만, 문제는 지금은 적과 아군이 명확하게 구분이 안 된다는 거다.
바로, 지금처럼-.
-푸슛!
“으, 으아아아아!”
총 든 타락체 군인들 앞에서 무력하게 잠옷 차림으로 있던 군인들 중 하나가 또 내 <독침>에 의해 눈알이 관통되어 죽는다. 비명을 지르는 군인들, 하지만 저놈 또한 타락체였다. 그러나 믿어줄 사람이 없다. 당장 해부해서 증명하는 것도 불가능에 가깝고.
그렇게 패닉에 질려 우왕좌왕하는 군인들을 내버려 둔 채, 난 그대로 막사 건물 입구 쪽에 있는 목표에 도착했다.
“이건…….”
“수동 운전할 줄 안다고 했죠? 화물칸에 시체 던지고 타세요.”
건물 입구에 배치된 두돈반(2½-ton) 60트럭, 조수석에 타며 말하자 양 씨도 손에 들고 온 시체를 던지고 떨떠름하게 올라탄다. 하지만, 차 계기판에 손을 더듬으며 얼굴을 찡그린다.
“야, 이거 열쇠도 없는데 어떻게 움직이려고?”
“걱정 마세요. 전 다~ 생각이 있으…….”
“아니, 이 차. 아예 열쇠 구멍이 없는데?”
양 씨의 대꾸에 입을 다물었다. <독침>의 형상을 조절해 열쇠를 흉내 내려고 했는데…… 열쇠 구멍이 없다고? 설마, 요즘 군부대 차량은 지문인식이나 스마트키로 움직이나? 혹시나 해서 운전대를 보며 그 <과거>를 훑어보니-.
“하.”
괜한 걱정이었다. 그래, 군대는 예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없구만! 곧바로 운전석 쪽에 손을 뻗어 핸들 아래 배터리 스위치를 돌린 후, 우측 빨간 버튼을 누르자-.
-부르르릉! 부릉!
“오오오!”
“됐죠?”
우렁찬 소음과 매연을 내뿜으며 시동이 걸린다. 으, 군용차 아니랄까 봐 진동이 엄청 심하구만. 어쨌든 내 묘기에 양 씨가 감탄하는 가운데, 난 재빨리 소총을 손에 쥐며 턱짓했다.
“빨리 갑시다. 제가 가라는 데로 가세요! 막는 건 무시하고!”
“오케이!”
자신만만하게 핸들을 꺾는 양 씨, 그와 함께 두돈반 트럭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갑작스럽게 등장한 트럭에-.
“이봐! 멈춰! 멈…… 으, 으아아!”
-퉁!
혼란을 바로잡으려고 하는 타락체들이 제지하려고 하지만 양 씨는 그냥 쿨하게 무시한다. 앞을 가로막는 타락체를 그대로 가속해 치고 지나간다. 그 광경에 타락체들의 두 눈이 희번덕거린다.
“항명이다! 항명!”
“쏴!”
성난 목소리로 소리치며 소총을 겨누는 타락체들, 하지만 이쪽도 곱게 당해줄 생각은 없다. 이미 내 <눈>은 차량 주위에 쪼개져 있었고 난 정확하게 타락체의 위치를 포착했다. 일단, 가장 먼저 앞 유리창에 보이는 타락체부터-.
-탕! 챙그랑!
그대로 조준하고 조종간 단발로 쐈다.
앞유리가 깨지며 소총을 겨누려던 타락체가 얼굴을 맞고 나뒹군다. 옆에서 귀청을 찢는 듯한 총성에 양 씨가 얼굴을 구기는 가운데-.
-탕! 탕! 탕! 탕!
“와, X발. 미쳤는데?!”
난 연거푸 전방에 태클을 걸려는 군인-타락체의 머리통을 한 발에 하나씩 날려버렸다. 그런 내 묘기에 가까운 사격에 양 씨가 감탄하지만…… 상황은 그리 좋지 않았다.
“망할, 통짜 쇳덩이 군용 트럭이 평범한 소총탄에 뻥뻥 뚫리네요.”
“뭐?”
“차를 뚫고 온 총탄에 몇 발 맞았어요. 그나마, 충격이 좀 줄어서 다행이지만.”
다 쓴 탄창을 갈며 난 은은한 통증에 미간을 찡그렸다.
양 씨는 운 좋게 안 맞았지만 난 재수 없게 세 발가량 맞았다. 문짝을 뚫고 들어온 한 발, 그리고 뒤쪽 등판에 두 발. 다행히 전부 군복 안에 입은 양복 형태의 마법 방어구에 막혔지만 잠깐 근육이 놀라서 숨을 못 쉴 정도로 아팠다.
차량의 상태도 그리 좋진 않았다.
아직까진 굴러가고 있지만 아래쪽에 총알 뚫린 구멍에 기름이 줄줄 새고 있는 게 보였다. 바퀴는 물론이고 엔진 쪽에도 몇 발 맞았어. 군용 차량이라도 생각보다 총에 약하네. 이거, 잘못하면 얼마 못 가 퍼지겠다.
음, 여기서 사용하기엔 마음이 좀 찔리는데…… 어쩔 수 없구만.
“후우, 쉬이이이이잇!”
파충류가 쉿쉿 거리는 듯한 특유의 주문의 음률을 웅얼거리며 <시체 부패>의 마법의 룬 문자를 만들었다. 원래대로라면 손을 직접 시체에 대고 해야 할 마법, 하지만 그동안 룬 문자의 효능에 관해 연구한 짬으로 즉흥적으로 룬 문자를 수정해 ‘투사체’로 만들어봤다.
그리고, <눈>을 통해 마력 덩어리를 정확히 던져서 완성했다.
-부우우우우우!
내 <시체 부패> 마력 덩어리에 적중된 화물칸에 있는 시체가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며 시커먼 연기를 쏟아낸다. 마법으로 만들어진 그 <부패 구름>은 내 의도에 따라 자연스럽게 맞바람에 휘말려 뒤쪽에 있는 군인들을 덮쳤다.
“아아아악!”
“마…… 마법이다! 마법!”
“도망쳐!”
닿는 순간, 피부에서부터 올라오는 물집과 누런 고름이 찬 낭포들. 재수 없게 휘말린 군인들이 비명을 지르며 도망친다. ……타락체보다 평범한 군인이 더 많이 휩쓸리지만 어쩔 수 없어. 그렇게 내가 벌인 테러에 병사들이 흩어지며 자연스럽게 후방에서 오는 사격은 줄어들었다.
어쨌든 그렇게 후방의 안전을 도모한 뒤, 난 전방에 있는 놈들을 사격하며 소리쳤다.
“왼쪽으로 꺾어욧!”
“뭐!? 거긴 논……!”
“정문으로 가면 우린 뒤지니까 그냥 가라는 대로 가요!”
<눈>으로 확인한 터미널 밖 도로의 검문검색대는 이미 타락체 병사들이 입구에 차량 통제 장애물로 틀어막고 대기하고 있다. 원래대로라면 밖을 겨누고 있어야 할 흉악한 기관총은 이젠 안쪽을 겨누고 있었고. 가면 뒤진다.
하지만, 난 처음부터 거기로 갈 생각 없었다.
해안 터미널 요새는 원형 철조망으로 주위를 쭈욱 두르고 모래주머니로 참호 벽을 세웠다. 촉박한 시간 때문인지 혹은 이미 정리됐다는 안일함 때문인지는 모르겠다만 그리 정교하진 못했어. 그래도 인간은 뚫기 힘들지만…….
차량은 다르지!
“으으으으음!”
“풀 액셀 밟아요! 그리고 밖으로 차 버리고 도망갈 마음의 준비!”
내 지시에 이를 악물고 차량 액셀을 밟아 가속하는 양 씨, 그렇게 우리는 모래주머니로 쌓아 올린 벽을 그대로 들이박았다.
-쿵!
“우웁…….”
콘크리트 바닥에 내동댕이쳐진 느낌, 통짜 쇳덩이 범퍼인지라 그 충격이 그대로 운전석과 조수석으로 들어왔다. 사고 나도 차량은 멀쩡하지만 그 안의 인간은 뒤지겠네. 어쨌든 차량은 모래주머니로 대충 쌓인 벽을 뚫고 철조망을 짓밟으며-.
-철퍽!
바깥의 메마른 논두렁에 처박혔다.
제대로 관리되지 않아 바닥이 마른 논, 2.5톤 차량의 하중에 버틸 정도로 단단하진 않아서 푹 박혔지만 사람이 밟고 가기엔 충분히 딱딱했다. 마침, 밤인 데다가 <부패 구름>을 뿜어내는 시신이 남아있는 상황. 이대로 야음을 틈타 근처 산으로 도망치면 된다!
“으아아아!”
논두렁에 차가 박히자마자 재빨리 차 문을 열고 밖으로 내달렸다. 좋아! 완벽하게 기지 탈출 성공-.
-!!
이라고 생강하고 있을 때, 뒤쪽에서 솟구친 ‘불길’과 함께 평행감각이 뒤집혔다.
하지만, 주위에 쪼개진 <눈>으로 보이는 3인칭 시야는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덕분에 난 내 몸이 날아가는 걸 직접 볼 수 있었고, 도핑과 전투 모드로 가속된 시간 속에서 재빨리 낙법을 취할 수 있었다.
-퉁! 데구르르…….
“꺼어어어…….”
등판에 내리꽂히는 충격, 그와 함께 온몸은 부서진 것처럼 움직이질 않는다. 고막이 터진 듯, ‘삐이이-!’하는 이명이 귓가를 울린다. 진짜…… 진짜 뒤질 것 같네.
크레모아.
그래, 외곽 쪽에 크레모아가 매설되어 있었다. 그리고 평범하게 내 <눈>은 지면에 숨겨져 있던 걸 파악하지 못했고. 그나마 우리가 빠져나온 두돈반 차량이 그 쇠 구슬들을 많이 막아줬기에 망정이지 아니었다면 양 씨와 나 모두 뒤졌을 거다.
“으윽, 이이이익!”
몇 초가 지난 후, 이를 악물고 뒷덜미를 붙잡은 채 자리에서 일어섰다. 방탄모와 방탄복 사이의 보호 받지 못하는 틈, 뒷덜미에 크레모아 쇳조각이 몇 개 박혔지만 다행히 경추를 맞진 않았다. 뇌진탕에 머리가 어질어질했지만 그래도 못 움직일 정도는 아니야.
싸장님에게서 배운 <연금술> 테크닉으로 재빨리 피를 변환해 틀어막고 일어섰지만…….
“……양 씨!”
양 씨는 달랐다.
제대로 착지를 못 한 듯, 날아간 양 씨가 목뼈가 기괴하게 꺾인 채로 꿈틀거리고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크레모아가 터지면서 화물칸에 있던 <시체 부패>가 걸린 시신 쪼가리도 근처에 튀었는데, 그 가스에 그대로 노출됐다. 그에 재빨리 <연금 물질 해체> 마법을 걸고 달려갔다.
“괜찮아요?!”
“큭, 크르륵…….”
가스를 뿜어내는 시체 쪼가리를 멀리 내던진 뒤, 양 씨를 살펴봤다.
<부패 구름>에 직격당해 눈을 뜨지 못하며 괴로워하는 양 씨, 다행히 죽진 않았고 숨도 쉬고 있었지만 몸을 움직이질 못했다. 나완 달리 크레모아에 꽤 많이 피격당했다. 눈에 닿지는 않았지만 왼쪽 얼굴이 쇳조각에 찢겼다. 그래도 양 씨는 챙겨놓는 상비용 수제 포션이…….
“애X…….”
양 씨의 측면후방에서 터진 크레모아, 비스듬히 치고 들어온 그 쇠구슬이 1억짜리 수제 회복 포션이 들어 있던 힙 플라스크 또한 찢어버렸다. 다급한대로 1/4 정도 남아있는 걸 양 씨의 입에 털어 넣은 뒤에 내가 멘 가방을 내던지고-.
“후으으으……!”
양 씨를 둘러업었다. 나름 마력 각성자라서 힘은 부족하지 않았다. 도핑도 했고 말이다.
-타다다다당! 타다다당!
“전시 탈영은 총살이다! 돌아와!”
그렇게 난 양 씨를 업은 채로 자욱한 <부패 구름> 뒤쪽에서 거침없이 총을 쏘는 타락체들을 피해 어둠 속으로 내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