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3화
4.
남은 타락체 녀석들은 얼마 되지 않았다.
어떻게 날 죽여 보려고 했지만 <눈>으로 훤히 맵핵을 쓰고 움직이는데 당할 리가 있겠나? 그리고 무엇보다, 녀석들은 붉은 촉수 대가리와는 달리 평범했다. 고작해야 마을 주민 타락체 정도, 소총을 들고 있긴 하지만 머리통을 날리면 좀 발악하다가 깔끔하게 뒤졌다.
-탕!
“휘우.”
마지막 타락체의 머리통을 날려버린 뒤, 난 숨을 고르며 30m 위에 떠 있는 <눈>으로 저 멀리 있는 터미널 주둔지를 응시했다. 시끄러운 총성과 조금 전의 ‘분신’을 터트리면서 발생한 폭발. 게다가 시체가 타오르며 솟구치는 검은 연기까지. 뭔가 이상하단 걸 눈치챌 거다.
놈들이 오기 전에 어서 빨리 양 씨를 데리고 이 섬을 떠야 하는데…….
“젠장”
양 씨가 있는 집을 향해 <눈>을 움직인 순간, 황급하게 달려갈 수밖에 없었다. 집 안에 들어서자 보이는 것은 입구 쪽에 나뒹구는 군인 시신, 그 눈깔은 송곳으로 찌른 것마냥 푹 들어간 채 얼어붙어 있었다. 그리고…….
“왔…… 냐?”
침대에 등을 기댄 채, 헐떡이는 양 씨가 있었다.
조그맣고 어눌하지만 이전보다 훨씬 깨끗한 발음, 하지만 상태는 더 나빠져 있었다. 겉으로 보이는 것만 오른손이 완전히 넝마가 되어있었고 오른쪽 뺨 일부분이 총알에 날아가서 이빨이 부러진 게 보였다. 오른쪽 눈 또한 안액 같은 게 질질 흐르고 있다.
재빨리 다가간 뒤, 난 컴뱃 나이프로 이불을 찢어 붕대로 만들어서 양 씨의 으스러진 오른팔을 피가 통하지 않도록 꽉 묶었다.
“괜찮아요?”
“아니, 뒤질 것 같아. 숨쉬기가…… 힘들어.”
잔뜩 쉰 목소리로 웅얼거리는 양 씨.
그에 <눈>으로 살펴보니 내구도가 한계에 달한 양복 형태의 방호복을 뚫고 오른쪽 흉곽에도 한 발을 맞아서 등을 관통했다. 그래서 오른쪽 폐가 쪼그라들었다. 안 그래도 내 <부패 구름>을 빨아들여서 폐에 잔뜩 상처가 났는데 한쪽 폐까지 병신이 되니 숨을 쉬기가 힘들겠지.
“……흉강에 구멍이 뚫려서 그런 걸 거예요. 조금만 참으세요.”
그렇게 내가 붕대를 감는 동안에도 양 씨는 색색거리면서도 말을 계속해나간다.
“……타락체들은?”
“전부 다 처리했죠. 그나저나 살아있어서 다행이에요. 솔직히, 무방비로 죽었을 줄 알았는데…….”
그런 내 말에 양 씨는 창백한 얼굴로 힘없이 입꼬리를 올리면서 웃는다.
“외부 자극이 있으면 깨지. 갑자기 그 ‘지독한 냄새’가 올라와서 깼어. 그리고, 타락체의 목소리가 들리니까 심상찮은 걸 느꼈고.”
“녀석들이 시체를 파묻은 구덩이를 파헤쳤거든요. 냄새가 날만도 했죠.”
“그래, 어쨌든 간신히 <서릿바늘> 하나를 만들어서 들어오는 새끼에게 날려서 눈을 꿰뚫었는데…… 뇌를 얼려도 손은 1~2초 정도 움직이더라고. 그래서 이 꼴이 됐지. 하, 습관이 무서워. 심장을 노렸어야 했나……? 근데, 너 왼팔은 왜 그러냐?”
“싸우다가 좀 부러졌어요. 뼈 맞추고 조치 취했어요. 그나저나 입 좀 다물어요! 상처 더 벌어지니까!”
내 타박에 입을 다무는 양 씨, 그동안에 나는 열심히 지혈을 하면서 양 씨의 복부에 붕대를 둘둘 감았지만…… 그러면서도 불길한 상상이 내 머릿속을 감돈다.
과연, 양 씨가 살 수 있을까?
이전에는 하루 이틀은 버틸 거라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피를 너무 많이 흘렸다. 상처에서 흐른 피가 진짜 침대를 흥건히 적셨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심각한 건 내상이다. 폐뿐만 아니라 배 속의 대장과 소장은 이미 찢겨서 출혈과 함께 소화가 덜 된 노폐물을 질질 흘린다.
“그나저나 배는…… 찾았냐?”
입을 다물라고 했는데도 기어코 웅얼거리는 양 씨, 그에 타박하려다가…… 한숨을 내뱉었다.
“네, 찾았어요. 작은 보트인데, 그거 타고 빠져나가면 돼요.”
-쿠르르르릉!
내 대꾸와 함께 어두컴컴한 하늘에 번개가 치곤 빗방울이 조금씩 떨어지기 시작한다.
아니, 시X. 타이밍 꼬라지 하고는. 목이 마를 때는 비라도 쏟아지길 바랐지만 지금은 아닌데…… 그렇게 창문 밖으로 쏟아지는 빗방울에 내 얼굴이 일그러진 가운데, 양 씨는 창백한 얼굴로 웅얼거린다.
“……혼자 타고 가라.”
“X랄 말고, 그 특이한 동면이나 해요.”
“아니, 진짜야.”
대꾸하면서 양 씨는 어울리지 않게 지친 표정을 지었다.
“몇 시간 동안, 비 맞으면서 움직이면…… 죽을 거야.”
“…….”
“이미, 온몸에 감각이 거의 없어. 굳어가는 것처럼 입도 잘 안 움직이고 눈앞도 거의 안 보여. 지금 비 쏟아지는 건, 소리 듣고 알았다.”
“…….”
“하, 시X. 난 안 죽을 것 같았는데 이렇게 죽네.”
어울리지 않게도 회한이 깃든 웃음을 흘리는 양 씨. 시X, 내게 X같은 돌연변이만 없었다면 즉석에서 양 씨의 내부에 <연금술> 마력을 투사해 그 단백질과 피로 야매 포션이라도 급한 대로 만들었을 텐…….
아니, 잠깐만.
재빨리 <눈>으로 내가 죽인 타락체 놈들을 훑어봤다. 하지만, 놈들의 소지품에도 포션은 없지만…….
“너라도 살…….”
“지X하지 마시구요.”
대꾸와 함께 검지를 자꾸 말하려는 양 씨의 아가리에 가져다 대었다. 그에 양 씨가 입을 다무는 가운데, 난 말을 이어나갔다.
“팔자에도 없는 신파는 그만 찍고, 애들이랑 제주도 어딜 갈지 생각이나 해두세요.”
“……?”
“다시 동면해요. 내가 해결할 테니까. 2시간…… 아니, 1시간만 버텨 봐요.”
연이은 내 재촉에 양 씨는 침묵하다가…… 다시 이를 악물고 주문을 웅얼거린다. 다행히, 몸과 달리 마력은 제대로 움직인다. 현기증이 나는 듯, ‘룬 문자’가 만들어지는 것이 많이 느렸지만 어떻게 완성했다. 그리고 양 씨는 다시 <마법의 동면>에 빠져들었다.
“읏차!”
그렇게 다시 죽은 듯이 눈을 감은 양 씨를 이불로 돌돌 감싼 뒤 둘러업었다. 차가운 몸, 안 그래도 신체 활동이 더 느려졌던 몸뚱이는 거의 죽은 것처럼 활동을 멈췄다. 심장은 거의 20초 주기로 뛰는 것 같네. 이걸로 얼마나 버틸까? 1시간? 30분?
축 늘어진 양 씨를 둘러업은 채, 난 빗속 너머에 있는 두돈반 차량을 향해 움직였다.
5.
같은 ‘포션’이라고 불리지만 ‘공산품 포션’과 ‘수제품 포션’은 다른 종류의 약에 가깝다.
수제품 포션이 <연금술> 가공으로 치밀하게 일일이 짜 올려서 만들어지는 걸작이라면, 공산품 포션은 기존에 있던 약물의 효과 일부분을 마력적인 가공으로 극대화한 성분을 추가해서 만들어지는 치료약이다. 그 효과 또한 수제품에 비하면 많이 저열하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저열한 성능’이지 기존의 약물과 비교하면 기적의 치료약이다.
상비약으로 팔리는 50~100만 원짜리 공산품 포션을 뿌리는 것으로 급한 외상 처치는 다 될 정도. 영체가 없는 일반인은 추가적인 부작용이 있을 수 있으나, 나중에 외과적 수술을 통해 보완할 수 있다. 그렇기에 긴급사태에 대비해서 공산품 포션 정도는 어디에나 구비해 놓는다.
군대 또한 마찬가지다.
아니, 실탄을 가지고 가는데 분명히 있다.
-푸쉬시시시.
두돈반 차량의 시동을 끈 후, 난 잠시 운전대를 쥔 채 400m 정도 떨어진 터미널을 응시했다. 초소 안에 있는 타락체 병사가 날 향해 소총을 겨누지만 딱히 쏘진 않는다.
불과 몇 시간 전에 빠져나오기 위해 발버둥 쳤던 터미널,
상공 30m에 떠 있는 <눈>으로 주시하니 기지 전체에서 흘러나오는 심연의 힘이 보인다. 몇 시간 전까지만 하더라도 1/5수준으로 보였는데, 지금은 영내에 돌아다니는 인원의 절반은 타락체인 것으로 보인다.
……그래, 절반은 아직 평범한 인간이다.
“흐음.”
무고한 사람을 희생시켜야 한다는 사실에 양심이 찔려야겠지만…… 예상했던 대로 별 감흥이 없었다. 오히려 그렇게 감흥이 없다는 사실이 더 마음에 와 닿는다. 옛날엔 느낄 수 있었던 것들을 잃어버렸다는 상실감에 가슴 한편이 욱신거린다.
“쓸데없는 생각이네요.”
고갤 흔들며 정신을 차렸다. 무고한 사람? 그래, 있을 수 있지. 하지만, 어쩌겠는가? 저렇게 두면 결국엔 모두 타락체가 될 사람들인데? 설령, 타락체가 되지 않았더라고 해도 양 씨의 예상대로 사람들의 공격에 뒤졌을 거다. 그렇게 어차피 죽을 거라면…….
내 손에 죽어서 경험치가 되는 게, 그리고 양 씨의 목숨을 구하는 게 낫지.
-끼이이익.
운전석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주룩주룩 내리는 비를 맞으며 화물칸에 섰다. 그곳에 있는 타락체의 시체들, 전부 내가 죽였던 놈들이다. 그리고…….
“ᚡᛢᛄᛞ ᚢᚢᛯᛉᛥ…….”
느릿하게 주문을 외우며 손을 휘저었다.
그와 함께 내 손가락을 자색의 마력광이 뒤덮고, 난 손가락에 번들거리는 마법적인 힘으로 죽은 시체에서 증발하고 있는 영혼의 찌꺼기를 긁어모았다. 여기서 추가 마법 재료와 <연금술> 테크닉이 가해지면 완전히 물질화시킬 수 있지만-.
“쓰읍……!”
난 반쯤 기체가 되어 손가락에 모인 것들을 전부 빨아들였다.
그렇게 형체가 없고 무게도 없는 ‘영혼’이라는 물질은 내 폐라는 주머니에 가득 담기고, 그 안에서 내 영혼의 밑바닥과 접촉해 시커멓게 악의(惡意)로 물들어간다.
이어서 남아있는 시체에 손을 뻗었다.
영혼이 사라진 시체, 하지만 그 안에 담긴 마력은 아직 충만하다. <시체 부패>를 사용하기에 충분하지. 마법을 사용하자 10구가량 남은 시신이 부풀어 오르기 시작한다. 그렇게 점점 새어 나오는 치명적인 가스를-.
“MA-LUN-TA.”
<액체 질소 대포>를 사용해 조작했다.
기체를 통제해서 물질화하는 마법, 증발하는 <부패 구름> 가스를 싸장님이 독가스를 흩뿌릴 때처럼 남김없이 손 위로 빨아들였다. 그리고, 어느 정도 뭉쳐졌을 때-
-퉁! 퉁! 퉁! 퉁!
차례차례 쏘아냈다.
뭉쳐서 날아가다가 터져나가는 <부패 구름> 덩어리는 비바람에도 잘 흩어지지 않고 그 자리에 고정되어 초소와 나를 가리는 거대한 장막이 되었다. 그 모습에 초소에서 난리가 난다.
-웨에에에에엥!
-타다다다당!
경보를 울리고 소총을 쏘지만 이미 늦었다.
보이지 않는 400m 떨어진 차량을 총을 무작정 쏴서 맞춘다는 건 힘든 일이니까. 그래도 맞추면…… 어쩔 수 없는 일이지 뭐. 그렇게 성인 남자 체중 10배가 넘는 막대한 양의 가스를 남김없이 쏟아낸 뒤, 난 기체를 조종하는 마법을 유지하며 초소 쪽으로 움직였다.
그렇게 어느 정도 접근했을 때-.
-푸화아악!
5개의 룬 문자를 만들어낸 뒤, 폐 속에 고여있던 것들 토해냈다.
시커먼 악의, 온전한 존재에 대한 저열한 살의로 들끓는 나의 분신들을. 그들과 연결되어있는 희미한 유대로 난 내 의지를 전달했다. 그 의지에-
-끼아아아아으으아앍!
-죽…… 죽여! 죽여여어어어어!
-쮸겨! 쮸겨어어어억!
내 분신들을 광란의 환호를 지르며 <부패 구름>으로 이뤄진 검은 장막을 뚫고 기지 정문을 향해 돌격한다. 그런 내 분신들의 모습에 쓴 웃음이 나왔다. 그래, 어쩌면 나도 이런 걸 바랐는지도 모르겠다.
그 뒤, 자체 해독 마법을 걸고 나도 그 검은 장막 사이로 파고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