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4화
막간. 웃는 악마
1.
새벽에 유혈사태가 벌어졌지만, 병사들 중 그 사태의 정확한 내막을 아는 이는 별로 없었다.
자던 도중 총성이 울려서 황급히 깨니 정박해있던 배가 시커먼 연기를 뿜어내며 불타고 있었고, 몇몇 병사들과 장교가 ‘자유 민주주의 어쩌고~’하며 소란을 일으키고 있었다. 그 수습하는 과정에서 지휘관과 간부사관 몇몇이 죽었다는 것 정도가 병사들이 아는 전부였다.
그 뒤, 사태가 수습됐음에도 영내엔 미묘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타락체가 있었던 곳에 투입된 병력들, 당연히 투입되기 전에 ‘타락체에 대한 주의사항’을 들었다. 당연히, 타락체들이 발각되려고 할 시 사람들을 선동해서 ‘민중 봉기’를 일으킨다는 사실 또한 지겹도록 교육받았다. 그리고, 새벽에 있었던 그 소동은…….
-쿠르르릉…….
“……X발.”
터미널에 있는 수많은 임시 막사 건물들 중 하나, 한 병사가 천둥과 함께 주룩주룩 비가 내리는 창밖을 보며 욕설을 내뱉었다.
어제 같았으면 지겹도록 타락체 시신을 매립하고 있을 시각, 하지만 새벽에 벌어졌던 유혈사태의 수습 때문에 일부를 제외하고 전 병력이 막사에 대기하는 중이었다. 덕분에 편하게 앉아있었지만…… 마음은 오히려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그 말에 옆에 있던 동기가 배급 나온 주먹밥을 먹으며 창밖을 응시하는 병사를 바라본다.
“왜 그렇게 죽상이야?”
“……아니, 넌 안 불안하냐?”
병사의 대꾸에 묵묵히 식사를 하거나 딴짓을 하고 있던 내무반의 다른 분대원들도 멈칫한다. 하지만, 병사는 그런 걸 눈치채지 못하고 동기에게 답답하단 듯이 말을 이어나간다.
“간밤에 30명이 넘게 죽었어. 지통실에선 압해읍 본부에서 타락체가 퍼졌고, 그 타락체가 기생한 역학조사관이 지휘관을 포함한 여러 간부들에게 퍼트려서 사달이 벌어졌다고 했지. 근데, 그게 진짜일까? 지휘관과 역학조사관이 타락체였을까? 아니, 사실…….”
“그만해라.”
병사의 말을 끊는 동기, 그에 살짝 패닉에 빠져 말을 주절거리던 병사 또한 다른 분대원들의 얼굴을 보곤 입을 다물었다. 다른 병사들도 바보라서 뭔가 이상하다는 걸 모르는 게 아니었다.
하지만, 애써 외면하고 있었다.
외면할 수밖에 없다. 긴급 상황이라는 명목 아래 몇몇 간부들은 총을 독점하고 있었고, 몇몇 부사관이 반발하자 본보기로 다른 간부에 사격을 가했으니까. 죽이진 않았지만 팔다리에 총을 맞고 질질 짜는 것을 보여주며 겁박했다.
그런데, 어떻게 저항할 수가 있을까?
그리고 무엇보다 ‘누가 적이고 아군인지 모르는 상황’이다. 윗선이 타락체라고 주장하는 병사와 간부가 타락체일 수도 있었고. 아무도 믿을 수 없기에 그냥 외면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애써 외면하고 있던 불편한 분위기가 다시 퍼져나가자-.
“야, 해조야.”
“상병 정해조.”
방 한구석에 누워서 주먹밥을 먹던 분대장이 입을 열었다.
“들어오기 전에 심연 기생체의 전파과정에 대해 교육받았잖아? 상처를 입히고, 그 위에 ‘새끼손가락만 한 유체’가 파고든단 걸. 지금 지휘부에서 그런 상처를 입은 사람이 있냐?”
“……없습니다.”
“그래, 없어. 대부분 현장에서 뛰던 부사관하고 대위·중위분들이잖아. 심연 기생체에 감염될만한 상처를 입었으면 근처에 있던 우리가 제일 잘 알지. 반면에 역학조사관하고 대대장은?”
그 대꾸에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는 분대원들, 그에 말을 꺼낸 분대장은 먹던 주먹밥을 한입에 다 털어 넣곤 고갤 젓는다.
“꿀꺽, 큼흠. 높으신 분들은 따로따로 놀았어. 물론, 100% 믿을 수 없는 건 맞아. 하지만, 객관적으로 따져보면 그나마 새벽에 죽은 인원들이 타락체였다는 것이 더 설득력 있지.”
“……음.”
“그러니 밥이나 먹어라. 선임이 돼서 애들을 다독이지는 못할망정, 분위기 X창 내지 말고.”
턱짓하는 분대장, 그에 맨 처음 불길한 말을 했던 병사는 여전히 미덥지 못하지만 한층 풀어진 얼굴로 배급받은 비닐 주먹밥을 보며 투덜거렸다.
“진짜 밥이라도 좀 잘 줬으면 그런 생각 안 듭니다. 간이 더럽게 짜지 않습니까?.”
“어쩌겠냐. 땡볕 아래에서 땀을 많이 흘리니 일부러 짜게 했다는데.”
“거기까진 이해해도 이 기지 안에 냄새가 진동해서 꼭 화장실에서 몰래 먹는 것 같습니다.”
“확실히, 어디서 나는지 모르겠다만 이 괴물 시체 냄새는 X같지. 근데, 적응되면 버틸 만하잖아? 정 그러면 초코파이라도 주랴? 난 안 먹는데”
“어, 저 주십쇼!”
등 뒤에 있던 군용배낭 옆 주머니에서 초코파이를 꺼내는 분대장, 그에 다른 병사들도 눈을 빛내며 끼어들려는 순간-.
-타다다당! 타당!
날카로운 총성이 울린다.
그에 방에 있던 병사들 모두 멈칫한다. 또 누군가가 저항하는 것인가? 하지만, 그건 아닌 것 같았다. 당혹스런 웅성거림, 그리고…….
-웨에에에에엥!
-적이다! 적! 습격이다!
사이렌 소리와 다급한 고함, 그에 방 안에 있던 분대원들은 물론이고 다른 병사들까지 밖으로 나가 전부 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을 응시했다. 비바람이 휘몰아치는 바깥, 기지의 입구 쪽에선 뭉클거리는 ‘흑자색 안개’가 바람을 무시하며 정문 초소 쪽에서 밀려오고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투웅!
‘공기 터지는 소리’와 함께 그 불길한 안개 안에서 ‘흑자색 구체’가 날아와 머리 위에서 폭발한다. 그리고 뭉클거리는 흑자색 안개가 맑은 물속에 떨어진 먹물처럼 퍼져나간다. 인근의 다른 막사 쪽 건물에서 병사 몇몇이 그 안개에 휩쓸린 순간-.
“으, 아아아악!”
“허, 허하하학!”
피부만 일부 닿은 병사들은 비명을 지르며 물러섰지만, 재수 없게 정통으로 휩쓸린 병사의 운명은 끔찍했다. 황급히 빠져나왔지만 호흡을 하지 못하는 듯, 피를 토하며 헐떡인다. 그리고 전신이 ‘썩어들어 가는 것’처럼 피부 곳곳에 검게 물든다.
-투웅! 투웅! 투웅! 투웅!
“화…… 화학 공격이다! 창문 닫고 건물 안쪽으로 들어가!”
“방독면! 방독면 껴!”
그런 흑자색 포탄이 안개 속에서 연거푸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에 밖에 나왔던 병사들이 비명을 지르며 다시 건물 안쪽으로 들어가는 가운데-.
-캬하하하하핡!
-캬아아아악!
-히히히히!
사람의 목소리를 조잡하게 변조한 것 같은, 듣는 것만으로도 소름이 쫙 끼치는, 말 그대로 악의로 똘똘 뭉친 저주 같은 목소리가 비바람과 함께 들려온다.
-저…… 적이다! 적이 나타났다!
-타다다다당! 타다당!
-콰아아아앙!
초소 쪽에서 지키는 병사들의 고함과 기관총의 총성, 매설한 크레모아가 터지는 굉음이 울린다. 하지만, 그 광기 어린 목소리는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점점 더 커지고 또렷해진다. 명백한 적의 등장에 병사들이 혼란에 빠진 와중에 한 중사가 건물 쪽으로 달려왔다.
“총기 보관함 열 테니까 모두 방독면 끼고 밖으로 집합!”
병사들이 비켜서자 복도에 배치한 총기 보관함의 문을 여는 중사, 방독면을 낀 병사들이 하나둘씩 오자 그는 꺼낸 총을 건네주며 옆의 커다란 탄 보관함을 열고 30발들이 탄창들을 하나씩 건넨다.
“어? 이거…….”
“대마력 탄환이다! 한 발에 10만 원짜리니까 신중히 쏴라! 밖으로 나가!”
탄두가 은은한 푸른빛을 뿜어내는 총알, 처음 보는 총탄에 병사가 신기하다는 듯이 중얼거리자 탄창을 건네주는 중사가 입을 열었다. 그렇게 병사들이 소총을 쥐며 긴장하는 가운데, 총성과 비명은 점점 더 커졌다.
-아아아아악!
“사, 살려줘!아아아아!”
-쮸거!! 캬하하학!
“시…… 시X.”
근처 막사에서 들려오는 비명과 총성, 그리고 악의 어린 목소리까지. 그에 소총을 쥔 병사들의 안색이 창백해진 가운데, 이쪽으로 도망치려는 근처 막사 병사의 등 뒤로 검은 연기를 흩뿌리는 무언가가 맹수 같이 덮친다.
“사, 살려……!”
바닥에 엎어진 병사가 이쪽을 향해 손을 뻗으며 소리치지만, 애처로운 구조요청이 끝나기도 전에 그 얼굴에 낭포가 울긋불긋 솟아오르고, 가래톳이 올라와 고름이 흐르며, 순식간에 검게 썩어 내린다. 그렇게 병사는 불과 2~3초 만에 산채로 썩어버렸다.
-키킼! 크키키킥!
검은 연기로 만들어진 ‘기괴하게 뒤틀린 인간 형상’.
지면에 손과 발을 대고 바짝 붙어있었는데 뭉클거리며 그 속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손과 발 얼굴이 튀어나오고 또 그 팔다리가 무너져 사라진다. 정면의 얼굴 눈 부분은 유일하게 검은색이 아닌 내 홍채와 똑같은 자줏빛으로 번들거린다.
“쏴! 쏴!!”
-타다다다당!
그 기괴한 웃음소리에 정신 차린 병사들이 소총을 당긴다.
분명, 마력적인 성분이 포함된 대마력 탄두, 하지만 연기 같은 괴물에겐 별 효과가 없이 그대로 뚫고 나간다. 그 검은 연기 같은 괴물은 벌레처럼 팔과 다리를 움직이며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빠르게 기어오더니-.
-푸화아아악!
“으아아아악!”
어떻게 대처하기도 전에 병사들 사이에 파고들어 검은 숨결을 토해낸다. 그 연기에 휩쓸린 병사들이 비명을 지르는 가운데, 괴물은 연기 속에서도 어느 정도 버티는 ‘튼튼한 병사’를 향해 팔다리를 휘둘렀다.
-촤학!
-카카카캌!
총알이 닿을 때와는 달리 물리적 실체를 지니며 그 살갗을 찢어버리는 손, 그와 함께 병사의 피부가 찢어지며 인간의 것이 아닌 근육이 드러난다. 타락체, 하지만 타락체 또한 병사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
-타다다당!
그대로 검은 연기에 휘감기자 비명을 지르며 산채로 썩어 문드러진다. 그 광경에 패닉에 빠진 병사들이 사선(射線)을 생각하지 않고 총을 난사하고, 몇몇은 그대로 근처의 동료들을 무시한 채 수류탄까지 까서 던진다.
-콰-ㅇ!
-캬캬캬컄!
하지만, 여전히 그 폭발에 인간 형상을 한 검은 연기는 형체가 잠깐 흩어졌을 뿐 멀쩡했다. 오히려 병사들의 발악에 안쪽에서 산채로 썩어가던 타락체가 죽으면서 검은 악귀는 다시 병사들을 향해 그 마수를 뻗었다.
그 광경에 병사들은 완전히 전의를 상실했다.
“으, 으아아아!”
비명을 지르며 무작정 흩어지는 병사들, 하지만 도망갈 곳은 없었다.
터미널 기지는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해 철저히 요새화됐다. 출입구는 딱 하나, 외곽은 마대 자루로 쌓아 올린 진지와 윤형 철조망으로 둘러싸였다. 인간의 맨몸으로 뚫기 힘들었고, 무엇보다 흑자색 안개가 담긴 포탄이 떨어져서 그나마 탈출할 만한 곳을 틀어막았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은 몇몇 병사가 차량을 써서 뚫어보려 했지만-.
-캬컄! 못! 가!
검은 연기의 괴물은 하나가 아닌 ‘여러 마리’였다.
자안을 번뜩이는 악귀들은 ‘단 한 명도 놓칠 수 없다.’는 것처럼 그런 시도를 보자마자 달려들어 병사들을 찢어발겼다. 그렇게 악귀들이 궁지에 몰린 군인들을 사냥하고 있는 도중-.
-흐?!
-킥!!
돌연 일제히 미소를 짓더니 일제히 아가리를 뻐끔거렸다.
-여러.분모.두
-잘들어.주시.길바.랍니다.
-중요.한내용.을전.파하.기위해왔.습니다.
-혹여못듣.는사.람이없.도록잘.들어주세요.
병사들의 비명과 화기의 총성을 뚫고 들려오는, ‘뚝뚝 끊어지는 거북한 음성’들. 마치, 하나의 의지를 가진 것처럼 일제히 들려오는 그 목소리는 비명을 지르듯 찢어지라 웃으면서 ‘메시지’를 전달했다.
-네쉬.라는X.미없.는X새.끼랍니다!!
-중.요하니다.시말.할게요!네.쉬라.는애.X없.는X새끼!
-캬하핳!하하하핳!
-하핳핡하하!
-흐흙하학캌!
그 알 수 없는 비방에 몇몇 병사들의 분위기가 묘하게 변한다.
“이 새끼가!”
“어차피 도망 못 친다! 그냥 싸워!”
“너, 너너너너너너!”
“쥑이뿌라!”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려던 이들 중 일부가 격하게 분노를 드러내며 검은 연기를 뿜어내는 괴물을 향해 통하지 않는 소총을 난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용감하게 맞서 싸우던 일부는 인간의 감정을 잃어버린 것처럼 무표정하게 변하더니 서로 시선을 교환하곤-.
“▒̅̾͡█̌̓̓̚͡.̈́̈͝!.!”
“▒̅̾͡█̌̓̓̚͡.̈́̈͝!.!”
불쾌한 트럼펫 같은 소음과 함께 살가죽을 찢어버리며 자신들의 본모습을 드러냈다.
아가리 혹은 항문을 찢고 나오는 촉수를 휘두르는 타락체, 그렇게 인간의 의태를 포기한 것들은 입구에서부터 찬찬히 밀려오는 독구름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총을 쏘며 흉악한 속도로 달려오더니 촉수로 연기 형태의 괴물을 붙잡고 두들겨 패기 시작했다.
-퍼억! 퍽!
-캬캬캬!
타락체의 강건한 육신도 감당할 수 없는 독기, 닿을수록 살이 썩어들어 가는 반면에 그들의 공격은 검은 연기의 괴물에게 잘 통하지 않았다. 하지만, 압도적 숫자의 폭력에 서서히 깎여나가는 것처럼 검은 연기의 크기와 밀도가 줄어들었다.
자신을 둘러싼 타락체 수십 마리의 발광에 한 연기 괴물은 광소를 흘리더니-.
“Gr?”
“??”
-콰-아아아아아앙!
주황색으로 달아오르며 돌연 폭발한다.
수류탄이나 크레모아를 능가하는, 진짜 폭약을 쓴 것 같은 충격파와 화염. 괴물을 둘러싸고 있던 타락체들 수십 마리가 그 충격파에 찢기고 근처에 있는 병사들 또한 무력화되어 나뒹군다.
-콰-아아아앙!
-콰아아앙!
그 첫 안개 괴물을 시작으로 기지 곳곳에 침입한 괴물들이 순차적으로 주황색으로 달아오르며 터져나간다. 그 충격파에 병사와 타락체들이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가운데, 입구에서 몰려오던 흑자색 안개는 어느새 해일처럼 서서히 기지를 잠식하기 시작했다.
“……!?”
그리고, 괴물을 피해 다 쓴 소총까지 버리고 꼭꼭 숨어 있던 한 병사는 그 흑자색 안개 안쪽에서 걸어 나오는 한 사람을 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