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자를 위한 연중작은 없다-185화 (185/350)

제185화

백발의 자그마한 소년.

병사도 그 얼굴을 알고 있었다. 오크들과 함께 움직이던 ‘모니터링 요원’이라는 두 사람 중 하나. 간부들 사이에서 떠도는 말로는 국정원 소속이라 했던가? 위압감이 들게 생긴 동료와는 달리 되게 여리여리해서 기억에 남았다. 몇몇 가능충 녀석들은 ‘쌉가능’이라고 말할 정도로.

하지만, 가까이 지낸 병사들 사이에선 그리 평이 좋지는 않았다.

사근사근 웃으며 말하고 행동도 예의 바르지만…… 좀 부자연스럽다고 해야 하나? 은연중에 자신들을 고깝게 보는 게 느껴졌다. 아니, 어쩌면 자신들이 그 소년을 고깝게 느껴서 그렇게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어린놈이 마력 각성자라서 국정원이라니…… 부럽기 그지없었으니까.

그리고 지금, 다시 만난 그 백발의 소년은 두 눈을 뜨고 활짝 웃고 있었다.

이전의 살짝 ‘가식적인 웃음’이 아닌 ‘진짜 즐거워하는 듯한 웃음’, 처음으로 드러난 그 두 눈은 자색으로 불타오르고 있다. 그래, 검은 연기로 만들어진 악령들과 ‘똑같은 광채’로. 굉장히 일그러진 표정이어서 눈치를 채는 게 늦었지만, 지금 보니 그 악귀들의 얼굴은…….

전부 저 소년과 똑같았다.

“~♪”

병사가 넋이 나갔건 말건, 소년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주위에 나뒹구는 시체들을 향해 왼손을 뻗어 가볍게 손짓했다. 그 손짓에서 자줏빛 광채가 번뜩이고 얼마 지나지 않아 시체들이 빠르게 부풀어 오르더니-

-부우우우우우욱!

-꺼어어어어억!

입과 항문 쪽에서 추잡한 소리와 함께 뭉클거리는 흑자색 가스를 뿜어낸다.

-휘오오오오오!

이어서 소년이 한 번 더 손을 휘젓자 대기가 흔들리며 그 가스들이 소년의 오른손바닥 위에 떠오른 커다란 흑자색 구체로 빨려 들어갔다. 점점 부풀어 오르는 구체, 소년이 그걸 보며 흡족하게 웃고 있는 와중에-.

“▒̅̾͡█̌̓̓̚͡.̈́̈͝!.!”

“▒̅̾͡█̌̓̓̚͡.!!”

뭉클거리는 흑자색 안개 너머에서 괴성과 함께 타락체들이 튀어나왔다.

7~8마리의 타락체, 이미 전신이 흑자색 고름이 들어찬 낭포에 뒤덮여서 정상이 아닌 놈들이었지만 기세만큼은 쌩쌩했다. 그러나 소년이 왼손을 까닥이자 그 오른손바닥에서 떠 있던 흑자색 덩어리 일부가 떨어져 나가 탁구공만 한 구체가 되어 날아든다.

-뻐-ㅇ!

-콰-ㅇ!

맹렬하게 날아가 터지는 탁구공만 한 구체, 그 충격에 공에 맞은 볼링핀마냥 타락체들이 튕겨 나가고 그 빈자리엔 흑자색의 안개가 깔린다. 그 광경을 멍하니 보고 있던 병사는 뒤늦게야 자신에게도 그 흑자색 죽음이 밀려든다는 것을 인지했다.

“사…… 려줘…….”

폭발에 휘말려서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는 상태임에도 그는 온 힘을 쥐어짜서 소리쳤다.

그런 노력이 빛을 발한 것인지, 소년이 고갤 돌려 그를 바라본다. 악귀의 것과 똑같은 소년의 눈, 그에 순간 섬뜩함을 느꼈지만 병사는 필사적으로 말을 이어나갔다.

“나, 나는 타락체가…….”

“확실히. 그래, 보이네요.”

고갤 끄덕이며 그를 향해 다가오는 소년, 그런 병사를 내려다보면서 소년은 안타깝다는 듯한, 하지만 어떻게 보면 왠지 가학적인 듯한 웃음을 지으며 고갤 젓는다.

“하지만, 저도 어쩔 수가 없어요.”

-캬하하하하학!

그와 함께 소년의 뒤편에서 검은 연기 형상이 괴성과 함께 튀어나와 병사를 덮친다.

수많은 동료들과 타락체들을 찢어발기던 검은 악귀, 그 악의 어린 손길은 병사의 사타구니에서부터 뱃가죽까지를 찢어버리고 내장을 파헤친다. 순식간에 부패해서 나뒹구는 내장, 육체적으로 느낄 수 있는 극한의 고통에 병사는 두 눈을 부릅뜨며 경련했다.

-크크큭!

그 뒤, 악귀는 찢어지라 웃으며 병사의 얼굴을 향해 조롱하듯 얼굴을 들이민다.

-더, 고고고고통!

-받아! 받아! 그래! 히히!

잔학한 미소를 짓는 새카만 소년의 얼굴, 즉사하지 않도록 폐와 심장만 남겨놓은 그것은 안개 너머 다른 병사들이 있는 쪽으로 사라진다. 그런 악귀의 행동에 백발 소년은 작게 한숨을 내쉬곤 이내 시선을 돌려 흑자색 안개 너머를 응시했다.

“▒̅̾͡█̌̓̓̚͡.̈́̈͝!.!”

“쯧, 더럽게 끈질기네요.”

의식이 흐려지기 전, 병사는 사방에서 소년이 오른손에 든 구체를 한 번에 날려버리곤 광채에 휘감기는 것을 보았다.

찬란한 자색의 광배.

그 광채를 보는 순간, 병사는 전신이 불타오르는 것을 느꼈다. 한층 더 끔찍한 고통, 기괴한 타락체들의 비명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병사의 의식은 완전히 어둠 속으로 떨어졌다.

2.

나세영 차장의 강권 아래, 해군 고속정 하나가 차출되었다.

어찌 보면 사적인 용도로 권력을 행사한 것, 하지만 이곳에서 그녀에게 태클을 걸 만한 이는 없었다. 그렇게 송공 여객선 터미널에서 나세영 차장과 전찬휘 사무관을 태운 고속정은 뇌우를 동반한 날씨를 뚫고 신의면 군부대 주둔지로 향했고-.

“저…… 저기!?”

전쟁터 같은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비가 쏘아짐에도 불길에 휩싸인 몇몇 건물, 게다가 화기를 쏘는 소음과 폭탄이 터지는 굉음이 연달아 울려 퍼진다. 그리고 무엇보다, 멀리서도 보이는 부자연스러운 거대한 흑자색 구름이 기지에 밀려들고 있었다.

이어지는 비명과 간간이 보이는 특유의 자색 마력광에 나세영 차장은 반색했다.

“드론! 드론 띄워!”

“하지만, 지금 이 기상상태에서 띄웠다간 벼락 맞고……!”

“띄우라면 띄워! 아니, X발 사람도 아닌데! 그리고 찬휘야! 넌 짐칸에 놔둔 내 전투 의족 가져와라!”

“괜찮겠습니까? 가져온 무장이 전투 의족 밖에 없…….”

“아씨! 가져오라면 가져와!”

나세영 차장의 재촉에 전찬휘가 의족을 가지러 가는 가운데, 중형 정찰 드론 한 대가 날아오른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터미널 쪽에 접근해 지상에서 벌어지는 ‘참상’을 그대로 포착해 배로 보낸다. 그 드론이 보내오는 영상을 보는 순간-.

“이 뭔…….”

드론을 조작하는 주위의 군장교는 물론이고, 전투 의족을 착용하던 나세영 차장 또한 의외의 상황에 말을 잇지 못했다. 타락체에 의해 점거된 것으로 파악되던 군부대는…….

-캬, 캬하하하학!

-쮸겨! 쮸겨어어어!

‘정체불명의 괴물’들에 의해 거의 일방적으로 박살 나고 있었다.

검은색 안개가 뭉친 듯한 뒤틀린 인간 형상, 시시각각 무너져 내리고 또 만들어지고 있는 그 몸뚱이는 벌레처럼 수많은 팔다리를 이용해 바닥을 기며 군인들을 향해 돌진한다. 군인들이 특수탄환을 쏘며 반항하지만 진짜 연기인 것처럼 총탄은 괴물의 몸을 뚫고 나온다.

반면에 괴물이 움직이면서 흘리는 연기는-.

“아아아아악!”

“사…… 살려줘! 살려…….”

그저 살짝 스친 것만으로도 살이 썩어 내리고 고름이 쏟아진다.

병사들은 철조망과 참호를 넘어 어떻게든 도망치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일차적으로 괴물들이 허락하지 않았고, 무엇보다 쉽게 뚫릴 만한 구역은 흑자색의 안개가 넘실거리고 있었다. 그 흑자색의 안개 또한 병사들에게 치명적이었다.

비바람과 함께 천둥이 치는 날씨였지만 그 마법적인 구름은 거의 흩어지지 않고 제자리에 머물렀다.

“……어떻게 할까요?”

이미 타락체에게 기지가 넘어갔다는 것을 전파받은 함장이었지만 그도 모르게 나세영에게 의견을 물었다. 그만큼, 정체불명의 괴물들은 끔찍했다. 그에 전찬휘 사무관도 나세영 차장도 어떻게 대꾸를 못 하는 가운데-.

-여러.분모.두

-잘들어.주시.길바.랍니다.

-중요.한내용.을전.파하.기위해왔.습니다.

-혹여못듣.는사.람이없.도록잘.들어주세요.

드론의 집음기를 통해 괴물들의 합창이 들렸다. 뚝뚝 끊어지는 거북한 음성들이. 잠깐의 텀을 두고 그 목소리는 비명을 지르듯 찢어지라 웃으면서 ‘메시지’를 전달했다.

-네쉬.라는X.미없.는X새.끼랍니다!!

-중.요하니다.시말.할게요!네.쉬라.는애.X없.는X새끼!

“……미친.”

“하하핳.”

코드 108에 대한 욕설에 전찬휘는 기겁하고 나세영은 너털웃음을 흘렸다.

그런 발칙한 괴물들의 도발에 타락체들은 참지 않는다. 스스로 살갗을 찢어버리곤 진정한 정체를 드러내며 달려들었다. 실제로 그렇게 맹렬하게 타락체들이 달려들자 괴물들이 맥을 못 추고 정리되어가는 듯싶었지만-.

-콰-앙!

검은 안개가 뭉친 것 같은 괴물들이 차례로 주황색으로 물들더니 굉음과 함께 터져나간다. 그리고 괴물을 둘러싼 수십 명의 타락체가 찢겨 날아간다. 차례대로 터져나가는 괴물들에 타락체들이 주춤주춤하는 사이-.

“저기! 저기 확대해!”

드론의 카메라가 흑자색 안개 속에서 나오는 한 인영을 포착했다.

오른손바닥 위에 커다란 흑자색 구체를 든 백발의 소년, 나세영 차장이 반색하며 말하는 가운데 소년은 왼손에서 자색의 광채를 뿜어내 주위의 시신에 흩뿌린다. 그 뒤, 시신이 부패하며 발생하는 흑자색 가스가 소년의 오른손바닥 위의 구체로 빨려 들어간다.

“……저 녀석이었군요. 이 모든 일을 벌인 게.”

“하, 자신만만하게 괴물이 많은 곳에 보내달라고 말할 만했네.”

전찬휘가 작게 신음하고 나세영 차장은 살짝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웃는 가운데, 소년은 다시 학살을 시작한다. 그렇게 뭉친 구체를 쪼개서 발사해 기지 곳곳에 퍼트리고, 연이어 빈손을 휘젓는다. 그런 소년의 손가락 끝에 희끄무레한 것들이 걸린다. 카메라로 확대하니-.

“허, <강령술>?”

고통에 일그러진 인간과 타락체의 면상이 꿈틀거리는 연기였다.

나세영이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중얼거리는 사이에 소년은 그 영혼 같은 걸 그대로 빨아들이더니 얼마 안 가 짙은 타르 같은 검은 숨결을 흩뿌리듯 내뱉는다.

-끼아아아아으으아앍!

-죽…… 죽여! 죽여여어어어어!

-쮸겨! 쮸겨어어어억!

그리고, 그렇게 뱉어낸 숨결이 열댓 마리의 악귀가 되어 남아있는 병사들과 타락체들을 향해 쏟아진다.

지금 보니 ‘기묘하게 소년을 모방한 것 같은 형상’의 연기 괴물들은 광기 어린 노성을 내지르며 닥치는 대로 생명체를 찢어발긴다. 군인이든, 타락체든 간에. 그렇게 파상공세를 이어나가는 소년의 영상을 보며 나세영은 입을 열었다.

“저 새끼, 괴물이네. 걱정한 게 멍청한 짓이었어.”

지휘관이 없다지만 연대 단위-1,000명의 군병력이, 그것도 타락체라는 일종의 ‘마력 각성자’가 섞여 있는 부대가 한 사람에게 일방적으로 작살나고 있었다. 저렇게 단독으로 군대를 전멸시킬 만한 대량살상 능력을 지닌 ‘마력 각성자’는…….

“입히는 피해 유형이 아주 추잡해. 총상이나 절단상, 살이 뭉개진 건 포션으로 치료 가능하지만 저렇게 세포 단위로 괴사하는 건 포션 치료로도 위험하지.”

“…….”

“대량 살상 능력은 수영이와 동급…… 아니, 어떻게 보면 그 이상이야. 수영이는 저런 소환수 같은 건 다루지 않으니까. 만약, 녀석이 도심 번화가 한복판에서 발작하면…….”

이어지는 나세영의 중얼거림에 전찬휘도 한번 상상해봤다. 만약, 저 소년이 갑자기 도시 한복판에서 날뛴다면…….

“발작하자마자 제압해도 최소 천 명 단위로 죽을 겁니다. 제압 병력의 출동에 시간이 걸리는 걸 생각하면 만 단위도 넘을 가능성도 있고요.”

“맞아. 저 정도면 ‘특급 경계 대상’이야.”

전찬휘의 의견에 나세영 차장 또한 고갤 끄덕여 긍정했다.

특급 경계 대상, 대량살상이 가능한 ‘인간 전술병기’에 붙는 일종의 칭호. 하지만, 함부로 겁박하거나 처리할 수는 없었다. 그 과정에서 발생할 피해도 피해일뿐더러, 모순적이게도 저런 ‘강력한 마력 각성자’가 지금은 국력의 척도가 되었다.

배척하다가 타국으로 간다면 오히려 인재 유출일 뿐이다.

“일단, 특급 경계 대상으로 올려야겠지. 위험도는…… 그래도 정신병이 있고 꽤나 즉흥적으로 살인을 저지르니까 오렌지 정도. 나라면 몰라도 다른 애들이 저거 제압…… 아니, 사살하려면 특수탄환을 가진 대물 저격총하고 전투 헬기까지 동원해야 할 거야. 화기가 제한되는 도심이라면 반마법 무기는 필수겠고. 아예 공대지 미사일을 쏘는 게 더 피해가 작을 수 있겠네.”

“코드 네임은 뭐로 할까요?”

코드 네임, 혹시라도 유출될 시에 대상을 추정할 수 없도록 붙이게 규정되어 있었다. 물론, 하나 마나이긴 하지만 규정상에 필요한 일, 그에 차장은 영상을 보았다.

자줏빛 두 눈을 뜨며 명랑하게 웃음을 터트리는 소년, 그 아름다운 소녀 같은 얼굴에 걸린 참으로 맑고 투명한 웃음. 진심으로 즐거움이 묻어나는 그것을 보며 차장은 착 가라앉은 얼굴로 중얼거렸다.

“웃는 악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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