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자를 위한 연중작은 없다-186화 (186/350)

제186화

38화. 뒷수습의 대가

1.

군인들과 타락체들은 내 예상보다 ‘나약’했다.

일반 병사들은 밀려오는 <부패 구름>에 패닉에 빠져 소총을 갈기거나 수류탄을 던지는 게 고작. 물론, 눈먼 총알에 맞고 죽을 수도 있겠지만 <눈>으로 상공 30m 위에서 관조하며 그런 눈먼 총질에 맞지 않도록 경로를 조정했기에 아무런 위협도 되지 않았다.

타락체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억지로 <부패 구름>을 뚫고 들어왔지만 숨어있는 나를 찾진 못했고, 그 안에서 내 소환수-<검은 독기의 망령>에게 찢겼다. 한 번은 ‘심연의 권능’을 사용하는 고위 타락체를 필두로 열댓 마리가 내 코앞까지 뚫고 들어온 적도 있었지만 <맹독성 휘광>에 전부 녹아내렸다.

그래, 내 힘에 모두 무력하게 죽어 나갔다.

북한에서 조폭들을 상대로도 한 번 학살을 저지르긴 했다만, 그때는 별로 내가 강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었다. 제대로 준비도 하지 않은 민간인들을 기습적인 테러로 죽인 느낌이었지. 하지만, 지금은…… 내가 얼마나 강한지 좀 실감 난다.

“하, 하하하하하……!”

그리고, 그 사실이 마냥 즐겁다.

몰래 할 수밖에 없었던 일을 ‘이젠 당당히 해도 된다.’는 느낌? 마음속 한쪽에는 ‘이러다가 쾌락 살인마가 되는 것 아닌가?’하는 걱정도 좀 들지만…… 일단 지금은 즐기기로 했다. 그래! 그래!

모두 죽어서 내 경험치가 되어라!

“ᛯᛰᛡ ᛯᛰᛡᛢ ᛯᛰᛡ!”

흥분과 쾌락에 달뜬 목소리로 다시 한 번 룬어와 공명하는 영창을 내뱉었다. 주위를 휘젓는 내 손에 걸리는 영혼의 찌꺼기를 탐욕스럽게 들이켜고, 룬어를 만들어내며 다시 한 번 검은 독기로 이뤄진 내 분신들을 토해냈다.

-꺄아아아아악!

-쮸…… 겨!!

-끼에에에엑!

만들어지자마자 저열한 질투와 시기심에 기성을 지르며 바퀴벌레처럼 ‘사사삭!’ 사방으로 흩어지는 분신들, 그 뒷모습을 난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그래, 내 분신들아. 모두 깨끗하게 정리하려무나. 그리고…….

“……어?”

그때, 돌연 하늘이 번쩍였다.

가시광선 스펙트럼으론 볼 수 없는 <눈>으로만 보이는 광채, 해안 쪽에서 떠오른 그 찬란한 것은 먹구름으로 뒤덮인 어두운 하늘을 그것과 똑같은 광채로 물들인다. ……저거 리브라소의 힘인데? 설마 차장님인가? 곧바로 <눈>을 움직여서 그쪽 방향을 확인하려고 했는데-.

“어어!! 오…….”

그 샛별처럼 떠오른 광채가 작렬하듯이 내가 있는 방향을 향해 떨어진다.

운석이 떨어지는 것 같은 그 강렬한 압박감에 내가 기겁하는 가운데, 그 타오르는 광채 속에서 칼날 의족을 찬 차장님의 모습이 보인다. 그리고 차장님은 내가 말을 다 내뱉기도 전에 소닉붐을 일으키며 내게서 30m가량 떨어진 지면에 짓밟듯이 내리꽂혔다.

-콰-ㅇ!! 콰르르르르!!!

운석이라도 떨어진 것처럼 착지한 곳을 중심으로 콘크리트 바닥이 쩌적쩌적 갈라지며 굉음의 충격파가 뻗어 나간다. 그 여파에 내 몸이 붕 떠오르며 뒤로 퉁겨진 것은 물론이고, 성질을 부여해 휘몰아치는 비바람에도 잘 흔들리지 않았던 <부패 구름> 또한 물결치며 밀려난다.

-데구르르르…….

“케흑! 케헥!!”

차장님의 착지 충격파에 바닥을 나뒹굴다가 난 얼굴을 진흙탕 바닥에 처박힌 채로 멈췄다.

코와 입으로 들어간 흙탕물에 켈록댔지만 <눈>으론 날 향해 웃고 있는 차장님을 볼 수 있었다.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는 포니테일 갈색 미녀…… 는 무슨, ‘진짜 포식자’의 등장에 ‘가짜 포식자’인 난 ‘푸쉬식~!’ 쪼그라들었다.

화난 것 같은데 왜 저러…… 아니, 생각해보니 당연하네.

겉보기엔 영락없이 내가 군인들을 대상으로 학살을 벌이고 있는 거로 보일 테니까. 설마, 다른 곳엔 타락체가 있단 게 알려지지 않은 건가? 하지만, 그래도 주위에 정체를 드러낸 타락체 시신이 있으니 변호할 수 있……!?

“……조!”

좀 더 빠른 살상을 위해 새롭게 만들어낸 분신 몇 마리, 놈들은 외곽의 군인들을 향해 돌진하다가 나세영 차장님이 등장하자 타깃을 바꿨다. 아니, 이 시X놈들이?! 재빨리 처박은 고개를 들고 차장님에게 경고하려고 했는데-.

-쮸거!!

-캬캬캬컄!

어떻게 내가 경고하기도 전에 분신들은 맹수처럼 사방에서 차장님을 덮쳤고, 동시에 차장님은 칼날 의족을 휘둘렀다.

-스칵! 스칵! 스칵!

단숨에 달려들던 분신을 그대로 베어 가르는 칼날 의족, 기존 타락체들의 공격과는 다르게 두 동강이 난 분신들은 회복하지 못하고 그대로 몸에 품은 독기를 터트리며 죽는다. 그 독기의 폭발에 휘말린 차장님이 와락 얼굴을 구긴다.

“하, 진짜 지독하네.”

오른손으로 앞을 휘휘 저으며 뭉클거리는 독기를 뚫고 나오는 차장님, 병사들과는 달리 꽤나 멀쩡히 움직였지만 차장님의 몸 또한 성치 않았다. 양복 밖으로 드러난 피부가 일부 짓무르고 벌써 흑자색 고름이 들어찬 낭포가 올라오려고 한다. 그에 차장님의 대처는…….

“……!?”

내 상상을 초월했다.

차장님의 몸에 있는 전신 균열이 ‘쩍!’ 벌어지고, 거기서 흘러나온 신의 힘이 몸을 뒤덮는다. 그리고 전신의 상처는 물론이고 소진된 마력 또한 회복된다. 겉으로 보기엔 그냥 몸을 치유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눈>으로 본 진정한 정체는…… ‘몸의 시간을 되돌리는 것’에 가까운 권능이었다.

이전과는 다른 점이라면 그 전신 균열이 살짝 벌어진 채로 있다는 것?

아마, 저 균열의 상처가 아물 때까지 ‘신의 힘을 이용한 기술’은 못 쓰겠지. 하지만, 저것도 서서히 회복되는 걸 보면 얼마 있지 않아서 다시 신의 힘을 쓸 수 있을 거다. 그 무지막지한 모습에 내가 살짝 넋이 나가 있을 때, 차장님은 내 앞까지 다가와서-.

-샥!

“에엙!”

엎드려 있는 내 코앞에 칼날 의족의 쇠꼬챙이를 들이밀곤, 기겁하는 날 내려다보면서 생긋 웃으신다.

“안녕, 흰둥아?”

2.

그 살벌한 인사에 난 떨리는 입꼬리를 올리며 조심스럽게 대꾸했다.

“아, 하하핳…… 네, 아…… 안녕하세요?”

“그래? 사실, 난 안녕 못 하겠는데?”

“하, 하하핳…….”

대꾸하면서 흉흉한 칼날 의족을 휙휙 휘두르는 차장님, 시…… 시X? 설마 날 죽이는 건 아니겠지? 그렇게 억지로 떨리는 입꼬리를 올리며 웃는 나를 내려다보며 차장님은 고민하듯 턱을 매만진다.

“네 소환수로 보이는 것들이 날 공격한 걸 보면…….”

“아, 아뇨! 아니에요! 저것들, 일단 풀어놓으면 절 제외한 모든 것을 닥치는 대로 공격해서 그런 거예요! 전 결백합니다! 결코! 차장님을 공격하려던 게 아니에요! 소환 취소할게요! 소환 취소!”

필사적으로 고갤 저으며 아니라고 항변했다.

그런 내 필사적인 변호에 차장님은 내 얼굴에 겨눈 쇠꼬챙이를 거두며 하란 듯이 옆으로 고갤 까닥인다. 그에 난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서곤 살짝 눈치를 보며 입을 열었다.

“그…… 차장님?”

“왜? 하기 싫어?”

‘그냥 죽일까?’하는 것처럼 칼날 의족을 까닥이는 그 모습에 난 재빨리 손과 고갤 저었다.

“아…… 아뇨! 아뇨아뇨! 그게 사실…… 저 소환수들을 없애는 방식이 그냥 강제로 폭발시키는 거라서…….”

이어진 내 대꾸를 듣곤 골치 아프다는 듯이 얼굴을 구기는 차장님, 하지만 이내 그냥 하라는 듯이 손짓한다.

그에 곧바로 <독의 연소> 주문을 외웠다. 내가 만들어낸 물질이 스스로 붕괴하며 불길을 내뿜도록 하는 ‘촉매 파장’을 내뿜는 마법, 하지만 이대로 그걸 썼다간 주위 <부패 구름>이 모조리 <불꽃 구름>으로 변하며 불지옥이 될 거다. 차장님이면 몰라도 난 통구이가 되겠지.

“흡!”

이전에 했던 것처럼 일부 룬 문자를 건드려서 투사체 형식으로 마법을 만들고 하늘을 향해 쏘아냈다. 상공 30m 높이까지 올라간 <독의 연소> 마법 투사체, 그건 곧바로 폭죽처럼 여러 개로 쪼개져 기지 곳곳에서 날뛰는 내 분신들을 향해 떨어졌다.

-캬하하학!

-피……! 피해!

-개, 개자식! 아니! 영혼 없는 고깃덩이!

서로 심령이 느슨하게 연결되어 있기에 내가 쏘아낸 게 무엇인지 파악한 분신들은 욕설을 내뱉으며 ‘더 살육을 하려고’ 떨어지는 자색의 구체들을 피해 회피기동을 한다. ……진짜 내 분신이라지만 개 같은 새끼들이야. 본체를 위해 곱게 뒤질 것이지!

하지만, 나도 이 정돈 예상했거든?

-키이이이이잉!

-키이이잉!

땅바닥에 낙하하는 순간, 쪼개진 구체들은 붕괴하면서 <독의 연소> 파장을 내뱉는다.

그리고, 그 파장에 노출된 <부패 구름>과 내 소환수들이 차례대로 주황색으로 달아오르며 아주 장대하게 폭발한다. 수류탄이나 크레모아 따위와는 비교도 안 되는 폭발력……? 그 충격에 몇몇 허술한 단층 건물이 무너지고 어떤 건물은 불길에 휩싸인다.

“어?”

-콰-아아앙!

터미널에 탄약을 보관했던 듯, 터미널 건물이 통째로 성대하게 터져나가며 꽤나 멀찍이 떨어진 이곳에도 살짝 괴로울 정도의 뜨거운 열기와 충격파가 밀려왔다. 제작자의 예상을 뛰어넘는 폭발력!

“으, 으아아아!”

추적추적 쏟아지는 비와 함께 날아드는 불붙은 콘크리트 파편에 반사적으로 머리를 감싸며 차장님 뒤에 엎드렸다. 그리고, 차장님은 날아오는 흉흉한 파편들을 포착하곤 그대로 양다리 의족을 폭발적으로 움직이며-.

-슉, 슈슉! 슈슈슛!

-팅! 팅! 팅! 팅! 팅!

전부 튕겨낸다.

그렇게 1~2초간의 곡예에 가까운 방어가 끝나고 차장님은 살짝 넋이 나간 표정으로 몰아치는 비바람 속에서도 성대하게 불타오르는 터미널을 응시했다. 터미널뿐만이 아니다. 분신들이 폭발하며 기지 전체가 충격파에 박살 나고 불타오르고 있었다. 그 모습에-.

“…….”

차장님의 얼굴이 극적으로 일그러진다.

시X, 급한 마음에 소환수를 없앤다고 날렸는데…… 평소에 저놈들을 피해 없이 없애버릴 마법이나 궁리해둘 걸, <독의 연소> 주문을 연구해 <연금 물질 분해>를 만들어낸 것처럼 좀 더 탐구하면 만들 수 있었을 텐데…….

침을 꿀꺽 삼킨 후, 난 날 내려다보고 있는 ‘흉신악살’을 향해 최대한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죄…… 죄송…….”

“…….”

“아니, 진짜 진짜 이렇게 될 줄 몰랐어요. 급한 마음에 생각 없이…….”

“……넌, 진짜 나중에 보자.”

내 말을 도중에 끊으며 이죽거리는 차장님, 그 살벌한 협박에 살짝 지렸지만 그래도 안심했다. 날 죽이려고 마음먹었으면 지금 당장 죽여 버렸을 거니까. 그래, 일단 살아남았다. 난 살았어! 그에 안도의 한숨을 내뱉은 순간-.

-덥석!

“차장님! 포션! 포션 있죠!”

내가 이곳에 오게 된 이유를 떠올렸다.

양 씨, 난 양 씨를 구하려고 여기에 왔었다. 살육의 유열에 취해서 까맣게 잊고 있었어. 기지 어디에 의무실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이 불타는 꼬락서니를 보니 이미 박살 났겠지. 차장님의 왼손 의수를 붙잡으며 난 필사적으로 소리쳤다.

“양 씨! 우영이가 지금 죽게 생겼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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