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7화
3.
내 절박한 외침에 차장님은 양 씨의 위치를 물은 뒤, 날 오른쪽 옆구리에 끼고 기지 밖에 둔 두돈반으로 질주했다.
혹여 도망치는 타락체나 군인들이 양 씨를 노리지 못하도록 기지 입구에서부터 <부패 구름>을 깐 덕분에 가는 길에는 아직 가스가 뭉클거렸지만…… 차장님은 어느새 회복된 몸의 균열에서 신의 힘을 끌어올려 ‘상식을 뛰어넘는 도약 및 낙하’를 감행-높이 10m, 길이 100m가 넘는 독구름 장벽을 단숨에 뛰어넘었다.
……아주 익스트림 했지.
진짜 20층 아파트 높이로 도약할 때는 살짝 지려버렸다. 고작 군인들하고 쩌리 타락체들 상대로 양학한 걸로 강하다고 깝치던 걸 반성도 했고. 거의 운석이 떨어지는 것처럼 낙하한 뒤, 차장님은 그 낙하의 충격을 그대로 추진력으로 살려 순식간에 목적지에 도착했다.
그리고, 이불에 돌돌 감아둔 채 조수석에 처박아둔 우리 양 씨는…….
“됐다. 이 정도면 당장은 안정권이야. 워낙 많이 망가져서 수술을 좀 해야겠지만.”
살아있었다. 금방이라도 죽을 것처럼 심장이 ‘멈췄다 뛰기’를 반복하고 있었지만 말이다. 정말 간발의 차이로 도착해서 포션을 먹였다. 그렇게 안도하는 내 모습과 박살 난 양 씨의 몰골을 번갈아 보며 차장님은 입을 열었다.
“도대체 뭔 일이 있었던 거냐?”
“하아, 새벽부터 지옥 같았어요.”
말해보라는 듯이 턱짓하시기에 난 새벽부터 겪었던 썰을 풀었다.
한밤의 반란, 극적인 도주, 그 과정에서 입은 피해, 마을에서 발견한 과자와 소금에서 발견한 심연 기생체의 알, 마을을 방문한 타락체, 놈들의 행동…… 내 말이 이어질수록 차장님의 표정은 점점 경악으로 물들어갔다.
“그…… 그러니까, 이 새로운 타락체의 전파 방식이…… 먹는 거로 번져 나간다고?”
“네, 일종의 가루 같은 알이에요. 천일염이나 혹은 초코파이 같은 것에 몰래 섞어 넣었더라고요.”
확신에 찬 내 대답에 입술을 깨무는 차장님, 그에 난 재빨리 좀 ‘긍정적인 내용’도 말했다.
“그래 봤자 먹으면 대부분 위산에 녹아 소화가 돼요. 타락체가 될 확률은 희박하죠. 하지만, 이 심연의 힘이 담긴 냄새를 맡으면 쉽게 죽지 않아서 위벽을 파고드는 거예요.”
“……넌 그걸 어떻게 알았냐?”
“초코파이를 먹었는데, 위 속에서 뭔가 꿈틀거리는 걸 느꼈거든요. 그 괴상한 타락체의 시체 냄새를 맡기 시작하니까 더 활발해지고요. 진짜 식겁했다니까요?”
“하, 돌겠네.”
내 대답에 차장님이 골치가 아프다는 듯이 주먹을 이마에 가져다 대신다. 하긴, 그럴 만하지. 기존의 방식보다 더 은밀하고 치명적인 전파 방식이니까. 그런 내 말에 고민하던 차장님은 이내 이마에서 손을 떼며 작게 한숨을 내뱉곤 날 바라본다.
“그리고, 넌 빈사 상태가 된 우영이를 구하기 위해 그 터미널 기지를 습격한 거고.”
“네, 공산품 포션이라도 먹여야 이 섬을 나갈 때까지 양 씨를 살려놓을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타락체가 아닌 군인들까지 함께 죽였다?”
“……어차피 죽을 사람들이라고 생각했거든요.”
내 대답에 날 빤히 내려다보는 차장님, 터미널 기지를 혼자 날려버렸을 때부터 반쯤 말아먹었지만 그래도 최대한 내가 무해한 인간이라는 것을 어필하기 위해 난 열심히 혀를 놀렸다.
“일반인도 아니고 타락체가 장악한 군부대니까요! 일반인이 선동해도 골치 아픈데, 무장한 군인을 검사하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깝죠! 그러니 아마 폭격으로 끝내려고 할 거다…… 라고 양 씨가 말했어요.”
“…….”
“어차피 얼마 뒤에 죽을 거라면 양 씨라도 구하는 게 낫잖…….”
-빠악!
“악!”
“어휴, 미친 새끼.”
그런 내 해명에 차장님은 기습적으로 꿀밤을 한 대 후려갈긴다.
악! 이건, 정말로 아프다! 방탄 위로 총알을 맞았을 때보다 더 아파! 나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비명을 지르며 양손으로 정수리를 감싼 채 주저앉았다. 그렇게 내가 고통에 부들부들 떨고 있는 동안에 드론 한 대가 여기로 날아온다.
-아, 아. 차장님, 괜찮으십니까?
“괜찮아. 흰둥이와 하청 놈도 전부 무사하다. 그나저나 왜 이리 늦었냐?”
-갑작스런 터미널 폭발에 휘말려서 드론이 추락해 새로 띄웠습니다.
드론에서 들리는 전찬휘 경감의 목소리. 그에 차장님의 시선이 날 향하고 그 진짜 포식자의 시선에 내가 움찔거리는 가운데, 드론의 카메라가 나와 양 씨 쪽을 향해 한 번 돌아가더니 음성이 흘러나왔다.
-터미널이 전부 박살 나서 배를 정박하기가 조금 애매합니다. 어떻게 할까요?
“아, 그건 내가 너희 쪽으로 도약할 수 있으니 괜찮아. 그나저나 흰둥아.”
날 부르는 포식자의 음성에 난 재빨리 고갤 들었다.
“넵?”
“그 알이 섞인 소금이 발견됐다는 마을이 어디냐?”
“……에, 마을 이름은 모르겠지만 대충 저쪽이었어요.”
쪼그려 앉은 채로 손을 들어 한쪽을 가리키자 차장님은 드론을 응시하고, 몇 초 지나지 않아서 드론에서 OO 마을이란 이름이 나온다. 그에 차장님은 고갤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얘네들이 타락체의 전파 원인을 발견했다. 음식에 심연 기생체의 알을 섞는…… 기존에는 없던 방식이라네.”
-알 말입니까? 심연 기생체가?!
기겁하는 전찬휘 경감의 목소리, 그에 차장님은 한숨을 내쉬며 고갤 끄덕였다.
“그래, 일종의 품종개량을 진행했나 봐. 흰둥이의 말로는 그래 봤자 대부분 위산에 녹아 죽지만, 타락체의 시체에서 흘러나오는 가스가 그 생존율을 대폭 끌어올리는 것 같다고 한다.”
-허…….
“그러고 보니 USB 있지? 그 안에 있는 게 연구논문 같다고 하지 않았냐? 게다가 타락체들이 필사적으로 그 내용을 밖에 전파하려고 했단 걸 보면…… 아마, 이 새로운 심연 기생체에 관한 내용일 것 같네.”
-…….
“아무튼, 그 기생체의 알 샘플로 찾으러 갈 거다. 조금 전에 네가 말한 마을 있지? 배를 거기로 돌려. 채취하고 복귀할 테니…… 아니, 잠깐만.”
잠시 말을 멈추더니 차장님은 드론의 카메라를 응시하며 속사포처럼 지시를 내렸다.
“본부에도 타락체들이 날뛰었다고 했지? 압해읍 본부에 당장 이 사실을 알려. 혹시 모르니까 아예 식사를 하지 말라고 하고. 취사장 같은 데 타락체가 숨어있는지 감시하라 하는 건 필수고. 그 냄새! 그 냄새가 흘러나오는 곳을 경계하라고 해!”
-알겠습니다!
“추가로 하나 더, 가자마자 흰둥이로 색출 시작할 거니까. 최소한의 병력을 제외한 모든 군간부사관들 전부 모을 준비 해둬. 자연스럽게 범위 3~5m 안에 흰둥이를 스쳐 지나갈 수 있는 방법도 고안해두고. 아, 그리고 앰뷸도 선착장에 대기해 둬라. 운전기사는 마력 각성자로.”
-마력 각성자로 말입니까?
“그래, 하청 녀석의 상태가 많이 안 좋거든. 그냥 아무나 부르기엔 압해읍이 그 꼴이라…… 그 뒤엔 한솔이에게 맡기면 되니까.”
전찬휘 경감에게 빠르게 명령을 내린 뒤, 차장님은 훌쩍 차 안쪽으로 뛰어들어 조수석과 운전석 사이에 낑겨 앉곤 날 보며 운전석을 두드렸다.
“흰둥아, 그 마을 쪽으로 운전해라.”
4.
마을에 도착해서 식품위장을 한 초코파이와 소금을 채취한 뒤, 우린 배에 탑승했다.
양 씨가 있는 두돈반에 접근할 때처럼 차장님이 나와 기절해있는 양 씨를 업고 무지막지한 도약을 해서 착지하는 방식이었다. 다른 점이라면 이전과는 달리 좀 살포시 착지한 정도? 그렇게 나와 양 씨는 배를 타고 섬에서 탈출해 압해읍 선착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격리됐다는 것 때문에 원래부터 분위기가 좀 안 좋았지만…… 도착한 압해읍은 꼭 전쟁터의 한복판 같았다.
어두운 하늘에서 추적추적 내리는 빗방울, 곳곳에 방화의 흔적과 핏자국이 있었고 공포에 질린 민간인들이 반파된 건물 안에서 담요를 쓴 채 힐끗힐끗 우릴 내려다봤다. 진짜 TV에서 보던 전쟁 난민 꼴이었지.
그리고, 난 개같이 일해야 했다.
군병력 전체를 한 번 검사하고 민간인 사이에서 또 한 번 돌았어. 그래도 군인들은 윗선의 지시라고 하면 따랐는데, 민간인들은 한 번 데인 것 때문인지 지시를 제대로 응하지 않았다.
덕분에 유혈 사태가 좀 벌어졌다.
심연 기생체에 저항력이 있는 ‘국정원 소속의 마력 각성자’라고 말해도 믿지 않던 몇몇 이들이 반항했고 덕분에 필요 없는 사망자가 발생했지. 참 안타까울 뿐. 그래도 읍 전체에 남아있는 타락체가 고작 10명 정도여서 큰 혼란은 없었다.
어쨌든, 그렇게 민간인들을 대상으로 다음다음 날까지 꼬박 일하고 이곳 ‘뉴 송파구-인간 거주 지역’의 시설로 오고 나서야 쉴 수 있었다.
-털썩.
“하아, 살 것 같다아…….”
배정받은 개인 방, 목욕을 마치고 가운 차림으로 그대로 침대에 드러누웠다. 나른한 몸, 나흘 동안 비 맞은 생쥐 꼴로 돌아다니다가 이렇게 씻고 에어컨 빵빵하게 켠 방 침대 위에서 뒹굴거리니 천국이 따로 없었다.
그나저나, 긴장이 풀어져서 그런지 넘…… 넘졸려…… 대박…… 잠 온…….
“끄으음!”
그러다가 순간 떠오른 ‘르카스’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예전에는 피곤해도 그 트라우마 때문에 잠도 안 왔는데 요즘엔 종종 이러네. 르피너스를 연상케 하는 내 마력광을 스스로 봐도 진짜 미친 것처럼 돌아버리지도 않고…… 뭐, 어쨌든 간에 자다가 그 끔찍한 걸 볼 수도 있으니 최대한 자진 말아야지.
그렇게 침대에서 일어나 뺨을 치며 받아놨던 에너지 음료를 꺼내면서 TV를 켰다.
-야당에선 정부의 실책이라고 비판하고 있는데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사실, 정부의 실책이라고 판단하기에는 억울한 면이 있습니다. 일단, 검사 자체는 거의 완벽하게 이뤄졌어요! 다만, ‘새로운 유형의 심연 기생체’와 군인들이 그런 기생체에게 당할 것이라곤 상상도 못 한 것이죠!
켜자마자 나오는 건, 이번 ‘섬 타락체 사태’에 관한 시사 토론 프로그램. 평소 같으면 신경도 쓰지 않고 채널 변경하겠지만, 내가 직접 경험했던 일에 대한 것인지라 채널을 넘기지 않고 그대로 의자에 앉아 시청했다.
-물론, 정부의 실책 또한 분명히 있습니다. 이번 신안에 타락체를 퍼트린 범인, ‘최성진’을 알고 있었음에도 대처하지 않았다는 것에 있죠?
-최성진…… 이요? 누구죠?
사회자가 물어보자 안경을 쓴 백발의 노교수는 가져온 보드를 꺼내 들고 그에 TV 카메라가 그 보드에 붙어있는 촌스러운 뿔테 안경을 쓴 중년 남자의 사진과 그 프로필을 줌인(Zoom-in)한다.
-북한 정권의 엘리트 생물학자였죠. 생물학 병기를 연구하다가 북한이 무너지면서 실업자가 되자 남한에 불만을 품은 채 심연 기생체를 몸에 박고 테러리스트가 된 인물입니다.
-오호, 그렇군요?
-예, 정부는 이런 정보를 사전에 알고 있었어요. 이 남자가 남쪽으로 내려왔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신안을 기습한 것이거든요. 이 남자의 전직을 생각하면 평범한 심연 기생체라고 안일하게 생각한 면이 있죠!
들어 올린 보드를 하나씩 짚으며 전문가로 보이는 할아버지가 말을 주절주절 이어나간다.
-게다가 타락체 검사를 받고 밖으로 나온 민간인들의 증언과 군에 의해 밝혀진 정보에 의하면 현장에서도 안일한 측면이 있었습니다!
-어떤 것이죠?
-국정원과 역학조사원에선 현장에 특이한 변이 타락체가 발견된 걸 파악하고 군인들에게 경고했습니다. 시체를 치울 때, 튼실하게 방호 장비를 입으라고요. 하지만, 일선 군인들이 너무 더운 날씨에 방독면을 벗고 있던 게 패착이 됐죠.
-방독면을 썼으면 달랐을 거란 겁니까?
-예, 이번에 발견된 변종 심연 기생체는 일종의 ‘미숙아’거든요. 특이한 변이체 시신에서 나오던 특수한 가스에 노출되지만 않으면 그냥 먹어도 일반인의 위장에서 나오는 위산에 전부 죽을 만큼 약합니다. 열기에도 취약하고요.
-으흠.
-그리고 타락체가 살아가던 거주지에 있는 걸 함부로 섭취한 군인들의 무방비함 또한 패착 요인 중 하나입니다. 아무리 포장을 뜯지 않은 거로 보이는 식품을 발견했다고 하더라도 그걸 먹을 생각을…….
전문가의 말이 끝나고 사회자가 자료 화면을 보겠다고 하자 화면이 전환된다. 초코파이를 갈라서 그 안에 있는 하얀 가루-심연 기생체의 알을 보여주는 모습, 물과 접촉하자 알에서 깨어나서 활동하는 모습, 그리고 위산과 열에 의해 죽는 모습까지.
마빡 아가씨에게 TV 뉴스 같은 걸 보면서 그 ‘메시지’가 뭔지 생각하라고 들어서일까?
왠지 저런 말들이 ‘우리 정부는 잘했는데, 운이 없었습니다!’, ‘새로운 심연 기생체가 나타났지만 안전합니다!’라는 걸 시청자들에게 주입하기 위한 지루하기 짝이 없는 프로파간다 같이 느껴진다.
“아함…….”
나른하게 하품하며 다른 걸 보기 위해 리모컨을 돌렸지만…….
-전체적으로 K-방역은 성공했습니다! 약간 아쉬운 부분이 있지만요. 무고한 장병들의 희생이 있었다고 비난하시는 분들은 신안을 전체로 가둬두고 폭격해야 했다는…….
-마력 연구원에서 발표한 이번 심연 기생체의 자료에 따르면 조리해서 먹는 식품은 안전합니다. 날로 먹는 것을 조심하고…….
-이런 걸, 대중에게 밝히는 게 굉장한 용기가 필요한 것이거든요! 희생이 좀 있었다지만 무작정 폭격하는 것이 아니라 전 세계가 놀라는 마력 기술을 이용해 기생체를 색출하고 평화적으로 한 건, 대한민국의 높은 기술력과 수준 높은 민주주의의…….
“아.”
나오는 TV 채널 전부 공영방송뿐, 그리고 전부 이번 일에 대해 무한 반복으로 떠들고 있었다. 몇몇 채널은 유X브 국뽕 채널처럼 말하네. 짜증에 TV를 껐지만…… 딱히 할 게 없다. 휴대폰이라도 있으면 좋겠지만 도망칠 때 또 박살 났어. 방 안에 컴퓨터는 또 없고.
그렇게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때-
-띵동~! 띵동~!
초인종 소리가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