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자를 위한 연중작은 없다-188화 (188/350)

제188화

<눈>으로 밖을 확인하니 차장님과 전찬휘 경감.

근데, 두 사람 모두 복장이 심상찮다. 둘 다 정장 형태의 방호복에 차장님은 칼날 의족을 차고 있고, 전찬휘 경감은 왼손에 검정 쇠사슬을 감고 있고 독특한 금속 가방을 두 개나 들고 있네? 저렇게 무장하고 찾아오다니, 아무리 봐도 좋은 목적으로 온 것 같진 않은데…….

“에휴, 나가요!”

그래 봤자 내게 선택지가 있나? 그냥 개처럼 당해야지. 한숨을 내쉬며 방문을 열자 막대 사탕을 문 차장님이 날 내려다보며 씨익 웃는다.

“안녕, 흰둥아.”

“넵.”

“음? 그다지 놀라지 않은 느낌인걸? 나름 서프라이즈였는데?”

“당연하죠, 문 너머에서부터 차장님의 균열이 느껴졌으니까요. 그렇게 티가 나는 건, 안 보려고 해도 안 볼 수가 없거든요.”

“허…… 그래?”

내 대꾸에 머쓱하다는 듯 머릴 긁적이는 차장님, 들어가도 되냐는 몸짓에 난 순순히 허락했다. 그에 전찬휘 경감이 먼저 들어와 왼손에 들고 있는 금속 탐지기 같은 봉을 들고 방을 훑기 시작한다.

그리고, 차장님은 자기가 주인인 것처럼 침대에 벌렁 드러누워선 입을 열었다.

“그래, 잘 쉬었냐?”

“뭐, 저야 전찬휘 경감이랑 오늘 아침까지 압해읍에서…….”

“경감이 아니라 사무관이다.”

무의식적으로 경감이라고 하니까 방 안을 수색하면서도 곧바로 정정하는 전찬휘 ‘경감’, 거 되게 칭호에 집착하시네. 쪼잔한 인간이라고 속으로 투덜거리며 난 말을 이어나갔다.

“아무튼, 계속 일하다가 여기 와서 지금 막 씻고 누워있었어요.”

“그래?”

“차장님은 어디 갔었나요? 갑자기 안 보이던데.”

“나도 개같이 굴렀지. 청와대로 가서 새로운 형태의 심연 기생체에 관해 설명하고…….”

얼굴을 찡그리며 한탄하는 차장님, 얼마 안 가 전찬휘 경감이 아무것도 없다는 듯이 신호를 보내자 차장님은 침대에 일어나 앉곤 입을 열었다.

“좋아, 대충 안전하단 게 확인됐으니…… 흰둥아?”

“넵?”

“일단, 먼저 네 처지에 대해 말해야겠구나.”

진중한 표정으로 말하는 차장님, 그에 나도 자세를 고쳐 잡고 의자에 앉자 차장님이 본격적으로 입을 열었다.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겠지만 네 ‘탐지 능력’에 대한 내용이 윗선에 올라갔어. 추가로 타락체가 잠식한 연대 기지를 혼자서 몰살시켰다는 것도.”

“에휴.”

어느 정도 각오하고 있었지만 한숨부터 나온다. 그런 내 반응에 차장님은 쓴웃음을 지었다.

“나도 밝히고 싶진 않았는데, 상황이 급박해서 어떻게 숨길 껀덕지가 없었단다. 네 능력에 대해서 말하고 압해읍이 안전하단 걸 입증해야 했지.”

“…….”

“그리고, 네 전투 능력에 대해서 뭉개기도 좀 그랬어. 무리하면 뭉개보려고 할 순 있는데…… 그래 봤자 나중에 밝혀질 확률이 높기도 하고, 무엇보다 그런 행위는 공무원으로서의 ‘선’을 넘는 것이거든.”

“으으으…….”

“왜? 숨기고 싶었냐?”

차장님의 대꾸에 난 한탄했다.

“당연하죠! 그냥 마법 좀 배웠다고 매년 정신 감정에 내야 할 서류도 득실득실한데, 이제 앞으론 얼마나 더 괴롭힐지…… 그리고, 소문으론 위험인물은 은연중에 도청이나 감시까지 한다던데요?!”

“맞아, 그리고 그건 어느 정도 당연한 거란다.”

검지로 날 가리키며 차장님은 진지한 표정으로 반박한다.

“널 봐보렴. 완전 무장한 연대 병력-그것도 타락체가 뒤섞인 병력을 혼자서 갈아버리는 ‘걸어 다니는 대량살상 병기’야. 시민을 보호해야 하는 국가로선 경계할 수밖에 없지. 네가 아무리 그럴 생각이 없다고 해도 말이야.”

“하아…….”

구구절절 맞는 말이긴 하지만…… 누군가 내가 본 야동 품번이나 히토미 번호를 같이 본다고 생각하면 소름이 돋는 건 어쩔 수 없단 말이지. 어쨌든 이미 엎질러진 물이기에 난 다시 정신을 차리고 차장님을 바라보았다.

“전 앞으로 어떻게 되죠?”

“글쎄…….”

말끝을 흐리며 차장님은 전찬휘 경감을 바라보았고, 그에 경감은 들고 온 금속 가방 중 하나를 넘겨준다. 차장님의 오른손 엄지 지문이 닿자, 금속 가방은 ‘철컥’ 소리를 내며 열린다.

자그만 단검.

커다란 생명체의 이빨로 만들어진 것으로 보였는데, 오색찬란한 진줏빛으로 빛나고 그 표면 위엔 룬문자를 묘사한 도형이 그려져 있었다. 딱 봐도 ‘신성하다.’라는 느낌이 들었지만…… 왜인지 모르게 ‘대단히 껄끄럽게’ 느껴졌다.

“에, 뭐…… 뭐죠?”

어느새 내가 앉은 의자 뒤편에는 전찬휘 경감이 이동해 있었다. 왼손에 감겼던 흑색 쇠사슬을 풀어서 쥔 채, 여차하면 곧바로 움직이겠다는 듯이 잔뜩 경계하고 있었다. 뭔가 심상찮은 분위기에 살짝 물러서자 차장님은 손에 쥔 단검을 내 앞에 내밀었다.

“대답해주기 전에, 검사 좀 하자.”

5.

“거, 검사요?”

“네가 악마인지 아닌지 확인하는 거지.”

그 대답을 들으니 훔쳐봤던 내 프로필 파일이 생각났다. 그래, 거기에 너무 빠르게 마법을 익혀서 ‘악마 빙의’가 의심된다고 나와 있었지? 침을 ‘꿀꺽!’ 삼키면서 난 저 껄끄러운 느낌이 드는 단검을 <감정>을 해봤다.

+1 진주용 이빨 단검 (Pearl dragon tooth knife)

성스러운 신의 힘으로 축복을 받은 ‘진주용’의 이빨을 가공해 만든 단검, 진주용이 내뿜던 성스러운 불꽃의 힘이 깃들었으며 그로 인해 언데드와 악마들에겐 추가적인 타격을 입힌다. 또한 마력을 불어넣을 시, 이빨에 깃든 용의 숨결을 흉내 낼 수 있다.

한손 무기, 숏소드

대미지 6, 명중 +4

기본 공격속도 1.1, 최소 공격속도 0.5

·신성한 분노(Holy Wrath), 음에너지 저항+

·발동 기술 : <정화의 불길> (5 MP, 만복도 150 소모)

미묘한 두통에 내가 미간을 찡그리는 사이, 차장님은 그 단검을 들이민 채로 말을 이어나가신다.

“솔직히, 넌 의문점이 많아. 작년 8월에 기억을 잃고 고작 1년 만에 무장한 군부대를 갈아버릴 수 있는 ‘엄청난 마법’을 구사할 수 있게 되었지. 이건, 기존 상식으로는 거의 말이 안 되는 성취야. 아무리 특수한 <마력 돌연변이>가 발발했다고 해도 말이야.”

“…….”

“너 같은 경우는 대부분 둘 중 하나야. 악마가 ‘의태’ 했거나, 혹은 특수한 악령에 ‘빙의’됐거나. 그래서 ‘확인’을 할 거야. 좀 과격한 방식으로 빠르게.”

보란 듯이 쥐고 있는 단검을 들어 올리면서 차장님은 말을 이어나가신다.

“이 단검은 특수한 불길을 일으킬 수 있어. 언데드와 악마에게는 ‘매우 커다란 피해’를, 사악한 마법을 익힌 존재나 악한 성향의 존재에겐 ‘커다란 피해’를, 그 이외의 존재에겐 ‘미약한 피해’를, 그리고 코드 108중 몇몇 신도에겐 아예 ‘피해를 주지 않지.’.”

“어, 그럼?”

“맞아, 이걸로 널 공격할 거란다. 물론, 적당하게.”

단검에 마력을 불어넣는 차장님, 그와 함께 단검 위에서 오색찬란한 불길이 넘실거린다. 왠지 되게 꺼려지는 느낌에 살짝 한 발짝 물러서자, 차장님은 언제라도 공격할 것처럼 몸 곳곳에 난 ‘균열’을 예열하며 한 발자국 다가온다.

“팔 대봐.”

“그, 꼭 그걸로 해야 해요? 다른 건…….”

“이게 제일 빠르고 확실해. 그리고, 어떤 수단을 써서 피해를 막거나 줄여보려고 수작 부리지 마라. 그 순간, 난 널 악마나 악령으로 간주하고 곧바로 죽일 거야. 걱정 마, 다치더라도 치료는 해줄 테니까.”

진짜 죽일 것 같은 살벌한 으름장에 난 두 눈을 찡그리며 오른손을 내밀었다.

신에 의해 영혼이 한 번 박살 난 덕분에 거의 모든 고통은 버틸 수 있게 된 나지만…… 저건 되게 불길하다는 감이 온다. 차장님은 그 오색찬란한 불길이 타오르는 단검을 인두처럼 내 팔뚝에 가져다 댄다.

“크읏!”

그 순간, 생소한 자극에 표정이 절로 찡그려졌다.

그리 심한 고통은 아니다. 하지만, 뭔가 인체의 오감을 넘어선…… 그래, 이곳에 떨어졌을 당시 ‘내 영혼에 족쇄가 채워졌다’고 느꼈을 때를 연상케 하는 감각이다. 도대체 뭔가 해서 <무한의 눈>으로 살펴보니 <강령술>에 관련된 룬문자와 공명하는 영혼의 영역을 자극하고 있었다.

“되게 생소한 아픔이네요…….”

“그러냐? 난 모르겠던데.”

그렇게 몇 초간 팔뚝을 단검으로 지진 후, 차장님은 내 화상 같은 상처를 보곤 고갤 끄덕였다.

“상처의 크기나 흔적을 보니 악령에 빙의 당했거나 악마가 의태한 건 아니네.”

“절 뭐로 보시고! 전 선량한 인간이라구요!”

투덜거리며 대꾸하자 차장님은 상자에 다시 단검을 집어넣고 정장 안에서 힙플라스크를 꺼내 그 안의 포션을 팔뚝 상처에 뿌려주며 이죽댄다.

“그래, 자기 지인을 구하겠다고 망설임 없이 무고한 희생양이 섞인 한 개 무장 연대 병력을 몰살시킨 ‘선량한 꼬맹아’.”

“……그건 어쩔 수 없는 거고요. 타락체가 뒤섞였잖아요?”

“알겠다. 알겠어.”

다시 차장님이 바라보자 전찬휘 경감은 다른 금속 가방을 내민다. 그 안에 든 건 철사 같은 길쭉한 쇠꼬챙이와 액정이 달린 태블릿 PC. 뭔지는 몰라도 그 쇠꼬챙이는 그 끝이 날카로운 게 딱 봐도 흉흉하다.

내가 얼굴을 찡그리는 가운데, 차장님은 가방을 열고 오른손에 그 쇠꼬챙이를 쥐고 내게 까닥였다.

“자, 가운 상의 벗고 침대에 누우렴.”

“……네? 설마, 제 몸을…… 켁!”

난데없는 순결의 위협에 어깰 움츠리며 양손으로 가슴팍을 가리는 순간, 차장님이 의수를 들어 번개처럼 내 정수리를 강타한다. 순간적으로 눈앞이 아찔해질 정도의 타격! 난 그대로 바닥에 뻗었고 차장님은 그런 날 내려다보며 손에 쥔 쇠꼬챙이를 휘두를 것처럼 들어 올린다.

“쉐끼야! 장난 말고! 타락체 검사해야 하니까!”

“아오…… 타락체요?”

“그래, 너 그 심연의 존재를 욕했잖아?”

……뭔 소리지? 맞은 정수리를 양손으로 감싸며 대꾸하자 차장님은 살짝 얼굴을 찡그리더니 한숨을 내뱉곤 입을 열었다.

“흰둥아, 아직 니가 한 짓의 심각성을 모르나 본데 코드 108을 욕하는 건 되도록 해선 안 될 짓이란다.”

“……왜요?”

“인정하긴 싫지만 코드 108은 전지전능한 존재에 가까우니까.”

진지한 표정으로 차장님은 날 향해 충고한다.

“그들은 굳이 신도를 제외한 존재에게 별 관심을 가지진 않지만 그래도 욕설은 그들의 관심을 끄는 행위일 수도 있는 거야.”

“그렇나요?”

“그래, 그런 게 없으면 ‘네쉬라 개X끼!’ 같은 거로 심연 기생체를 파악하려고 했겠지. 그런 걸 몰랐을 때는 그런 방식으로 심연 기생체를 색출하기도 했어. 하지만, 지금은 그렇게 안 하는 이유가 뭘까?”

“……?”

“그거 잘 쓰다가 어느 순간 네쉬라를 욕하는 순간부터 그냥 심연 타락해버리는 경우가 발견됐거든. 중국에서 그걸로 타락체 구분하다가 피 봤어.”

아니. 뭔 네쉬라를 믿는다고 해도 타락, 네쉬라를 욕해도 타락이라니…… 거의, 언급하는 것만으로도 타락체가 된다는 수준이다. 이걸 어떻게 막냐? 그런 내 생각이 표정에 드러났는지 차장님은 한숨을 내뱉는다.

“나야, 리브라소를 섬기고 있으니 다른 신을 좀 욕해도 괜찮아. 내가 딴 마음 먹지 않는 이상, 그 힘이 다른 신의 간섭을 막으니까. 하지만, 넌 달라. 보통 마력 각성자, 물론 일반인에 비해 저항력이 훨씬 강하긴 하지만 혹시 모르지.”

“…….”

“우리가 괜히 대중에게 숨기는 것이 많은 게 아니란다. 몇몇 미궁의 악의들은 인간의 상식을 뛰어넘어. 그리고, 이 세상은 넓고 미친놈은 처 널렸지! 이런 지식을 알게 된 순간, 그냥 다른 사람을 엿 먹이기 위해 네쉬라를 욕하고 섬기는 이들이 널렸어.”

“허.”

“이런 진실은 함부로 퍼지면 X된다는 거지. 솔직히 말하면 이번 사태도 이미 개X됐어. 아니, 대통령 씨-X련이 지지율 떨어질까 봐 새로운 심연 기생체에 대한 내용을 그냥 공개적으로 까발려?! 덕분에 다른 나라 정보기관에서 이런 일을 상의도 없이 대중에 까발리냐고 난리다!! 진짜, 민주주의 X까고 중국처럼…… 아니, 일본 정도만이라도…….”

많이 빡친 듯 마빡에 핏줄까지 세워가며 이를 바득바득 가는 차장님, 그런 발작에 전찬휘 경감은 뒤에서 한숨만 내뱉는다. 어쨌든 잠시 ‘대통령의 암살 기도’를 장황하게 내뱉은 차장님은 좀 진정이 되는 듯 날 향해 쇠꼬챙이를 까닥였다.

“아무튼, 알아들었으면 가슴팍 내밀렴.”

“넵.”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자리에서 일어나 침대에 누워 가운 가슴팍을 열어젖혔다. 그렇게 덤덤하게 가슴팍을 내밀자 차장님은 내 갈비뼈 부근을 만지더니-.

-푸욱!

한 번에 쇠꼬챙이를 밀어 넣는다. <눈>으로 보니 절묘하게 폐를 피해서 흉강을 뚫고 심장에 다다랐네. 그 쇠꼬챙이 안쪽에서 밝은 라이트와 함께 작은 카메라가 심장을 비춘다. 그리고, 함께 동봉돼있는 태블릿 PC 액정에 내 심장의 모습이 드러난다.

“안 아프냐?”

“버틸 만해요.”

그렇게 쇠꼬챙이로 심장을 이리저리 여러 부분 살펴본 차장님은 쇠꼬챙이를 뽑고 남은 포션을 상처에 바르고 입에 물려준다.

“파하, 됐죠?”

힙플라스크를 입에서 떼며 묻자 차장님은 씨익 고갤 끄덕였다.

“그래! 정식으로 ‘특급 경계 대상’이 된 걸 축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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