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9화
6.
연이어서 차장님은 활짝 웃으며 내 등짝을 두드렸다.
“자신감을 가져도 좋아, 혼자서 ‘전술 병기급 대량살상’을 벌일 수 있는 이들의 목록이거든. 우리나라에서도 한 손에 꼽으니까.”
웃으며 말씀하시는 차장님과는 달리 난 가운의 앞섶을 다시 여미며 작게 한숨을 내뱉었다. 뭐, 유혈이 터졌을 때 이후로 거의 밝혀지긴 했지만 씁쓸하구만. 그나저나 알바할 당시에 우리 싸장님 썰을 워낙 많이 들어서 그런지 걱정부터 앞선다.
“차장님?”
“왜.”
“그, 제 정보가 얼마나 알려지는 건가요?”
장비 정리를 전찬휘 경감에게 짬 시키던 차장님은 내 질문에 멈칫하더니 잠시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국가 데이터베이스에 네 능력도 올라갈 테니…… 나름 2급 비밀 정보긴 하지만 솔직히 각국의 첩보원들과 스파이들에겐 거의 공개정보지. 한 두세 달 뒤엔 너에 관한 능력에 대해서 다 파악할 듯?”
아, 시X. 어지럽구만. 그렇게 내가 머릴 감싸 쥐며 좌절하자 차장님은 작게 헛기침하며 말을 이어나간다.
“크흠, 그래도 네 능력에 대해선 다 올라가진 않을 거란다! 대충, 특이한 감각을 지니고 있고 수영이에게 전수받은 대량살상 마법을 구사한다는 정도로만? 특히, 섬에서 보여준 그 특이한 ‘소환능력’과 ‘마법 창조 능력’ 같은 건 함구할 거야.”
“……거, 참 고맙네요. 그래 봤자 절 납치하려는 놈들이 횡행하겠지만.”
그런 내 투덜거림에 차장님은 피식 웃는다.
“하! 그런 거 걱정한 거였니? 걱정 말렴. 네가 생각하는 일은 웬만하면 벌어지지 않을 테니까.”
“…….”
“크흠, 내가 해줬던 충고는 ‘네가 약할 거다.’라고 가정해서 한 거야. 하지만, 넌 약하지 않지. 타락체가 뒤섞인 ‘무장한 연대’를 혼자서 갈아버릴 수 있는 괴물, 그 내용도 같이 올라갈 예정이란다. 당연히, 널 제압하려면 웬만한 이들로는 안 돼.”
“아.”
“꽤나 실력자를, 그것도 생포하기 위해서 서너 명을 한국에 데려와야 할 텐데, 그런 인물의 행적은 우리도 경계한단다. 바로, 내 귀에 들어오지. 그러니 너무 걱정 말렴. 이전에도 말했다시피, 난 니가 내 밑에서 흰둥이로 계속 구르길 원하니까. ……물론, 깝치면 알지?”
차장님 말을 들어보니 귀가 솔깃하다.
하긴, 우리 싸장님 정도는 아니지만 나도 이제 약하진 않지? 그리고 타락체 수백 마리하고 군인 수백 명의 경험치 정산을 받으면 더 강해질 테고! 차장님의 심기만 건드리지 않으면…… 진짜 대한민국에선 납치 걱정은 할 필요는 없을 것 같네?
“헤헤, 제가 어떻게 차장님에게 반항하겠나요? 충성을 맹세하겠읍니다.”
“그래그래, 좋은 처신이야.”
간신처럼 손바닥을 비비며 하는 내 아부에 만족스럽게 고갤 주억이는 차장님. 그 모습을 전찬휘 경감은 못마땅하게 바라보지만, 차장님의 가보란 손짓에 고갤 끄덕이곤 장비를 챙겨 밖으로 나간다. 그 뒤, 차장님은 방 의자에 앉으며 입을 여신다.
“납치 같은 걸 경계하는 걸 보니 수영이에게 말을 많이 들은 것 같은데…… 사실, 이렇게 너에 대해 알려지는 게 꼭 나쁜 것만 있는 건 아니란다.”
“예?”
“네 능력이 공개되면서 받게 될 대우 또한 크단 거지.”
빙긋 웃으며 차장님은 설명을 이어나간다.
“일단, 공개할 부분만 하더라도 네 능력은 엄청 대단해. 사실상, 대한민국에선 대체하지 못할 정도. 객관적으로 넌 ‘매우 탐나는 인재’야. 현시점에서 그런 인재는 곧 ‘국가경쟁력’이란다. 어떻게든 붙잡아 두고 싶어 하지.”
“…….”
“한 마디로 국가에서 널 붙잡기 위해 ‘특별한 혜택’을 줄 거란 이야기야.”
특별한 혜택이라…… 근데, 마냥 좋은 것처럼 들리지 않는 게 내 착각일까? 얼굴에 드러난 내 생각을 읽은 것인지, 차장님은 품 안에서 막대 사탕을 꺼내 물며 말을 이어나간다.
“어떻게 보면 일종의 ‘사회적인 족쇄’지.”
“족쇄요?”
“그래, 족쇄. 예로 수영이를 들어볼까? 예상하고 있겠지만 걔도 ‘특급 경계 대상’이야. 하지만, 국가는 별로 껄끄러워하지 않아. 왜? 수영이는 발작하면 잃을 것이 많거든. 막대한 재산, 인맥, 사회적 지위…… 지금까지 이뤄놓은 것을 포기하고 다른 나라에 가거나, 회까닥해서 도심 한복판에 독을 풀거나 할 확률은 현저히 적다는 거지.”
맞는 말인 것 같다. 뉴스를 봐도 잃을 게 없는 미친놈이나 도심 한복판에서 묻지 마 칼부림을 일으키지 부자들은 그런 일을 저지르진 않으니까.
내가 고갤 끄덕이자 차장님은 날 가리킨다.
“근데, 넌 달라. 진짜 아무것도 없는 북한 고아. 심지어 기억까지 잃었어. 발작해도 잃을 게 목숨밖에 없네? 과거 기록을 보니까…… 남쪽에 반감을 가질 법한 일도 몇 번 겪었네? 어? 정신질환도 있어? 태도도 좀 삐딱한데? 이러다가 회까닥해서 테러 저지르는 거 아냐?”
“아니, 저 진짜 그럴 생각 없는데요.”
“니가 어떻게 생각하건 말건 국가는 그런 걸 걱정한단다.”
물론, 르피너스가 한 마개조 덕분에 가끔 ‘멈출 수 없는 충동 데쟈아아아앗!’ 하면서 회까닥하는 경향이 있긴 하다만 진짜 그럴 생각은 없다. 도심 한복판에서 테러라니? 정말 생각만 해도…….
“너 왜 웃냐?”
“넹?”
“아니, 갑자기 X나 기분 나쁘게 생글생글 웃는데? 너 이 새퀴…… 설마!?”
“오, 오해에요! <마력 돌연변이> 때문에 전 항상 웃고 있다고요! 아시잖아요!?”
양쪽 눈매를 게슴츠레 좁히며 날 추궁하는 차장님. 그렇게 표정에 티가 났나? 근데, 잘난 놈이 죽으면 안타깝지만 마음속 한편에서 저열한 쾌감을 느끼잖아? 물론, 나쁜 생각이라는 건 알지만…… 상상만 하는 건 죄가 아니잖아요!
내 필사적인 변명에도 ‘잠재적 가해자’를 보는 듯한 시선으로 보던 차장님은 이내 혀를 차곤 말을 이어나간다.
“그러니까 네게 사회적인 족쇄를 채우고 싶다는 거지. 속박이라고 생각되지 않는, 다른 이들의 부러움을 살, 쉽게 이 나라를 뜨지 않게 할, 그런 ‘애착을 가질 법한 것’들을. ‘아, 심심한데 도심 한복판에 독가스나 뿌려볼까?’ 하지 않도록 말이야.”
“아니래도요!”
“그래, 그렇게 말하니 믿어줘야겠지.”
“…….”
“아무튼 그런 의미에서 뭐 원하는 것 있냐? 윗분들이 좀 몸이 단 거 같은데.”
차장님의 제안에 잠시 턱을 쓰다듬으며 생각해봤다.
내 궁극적인 목표는 망가진 영혼을 복구하는 것, 그것에 관한 도움을 받고 싶긴 한데…… 괜히 그랬다간 오히려 더 큰 오해와 경계만 더 살 것 같다. 그리고 영혼 관련 연구를 하는 걸 들키면 내 능력이 더 대단하단 걸 눈치챌 거야. 아직 내 힘이 미약하니 숨기는 게 좋겠다.
그 외에도 여러 가지를 고민해 봤지만…….
“딱히 없는데요.”
“……없어?”
“네, 딱히 생각나는 게 없어요. 전부 제 힘으로도 할 수 있는 거라서…… 정확히 어떤 걸 할 수 있는지도 모르겠고요. 아, 그러고 보니 차장님도 무지 세니까 그런 족쇄가 있지 않나요?”
“있지. 나도 예외는 아냐.”
“어, 그럼 혹시 참고라도 좀 하게 가르쳐주실 수 있나요?”
내 질문에 묘한 표정을 지은 차장님은 입에 물고 있던 흑색 사탕을 뽑아 보여주며 입을 열었다.
“이거, 하나에 얼마게?”
“에, 마력 관련 물품이니까…… 대충 5만 원?”
“200만 원 정도 한단다. 그리고 난 이걸 하루에 20개가량 섭취하지.”
침 묻은 사탕을 까닥인 후, 다시 입에 넣는 차장님. 하나에 200만 원에 하루 20개면…… 4,000만 원? 그 엄청난 비용에 절로 입이 벌어지자 차장님은 어깰 으쓱였다.
“리브라소에게 닥치는 대로 여러 가지를 바쳤거든. 안 먹으면 몸이 못 버텨. 사탕을 공급해주는 국가에 딴마음을 품을 수 없다는 거지.”
“아니, 도대체 왜 그런걸…….”
내 대꾸에 묘한 표정을 짓는 차장님, 그 얼굴에 회한? 후회? 같은 게 지나가는 것 같다. 어…… 내가 또 눈새 짓을 한 건가? 그렇게 묘한 분위기에 내가 아가리 닥치고 있는 가운데, 차장님은 한숨을 푹 내뱉곤 고갤 저었다.
“어쩌다 보니 이렇게 됐어. 중도 포기하기엔 지금까지 넣은 것들이 아까워서 한 발짝씩 계속 걷다 보니…… 뭐, 도박 중독이랑 비슷하지.”
“…….”
“뭐, 내 얘기는 됐고!”
앉은 의자에서 일어서며 말하는 차장님, 할 이야기 다 하고 나가시려는 줄 알고 배웅하려고 했는데, 차장님은 내게 다가와 양어깨를 붙잡으며 빙긋 웃었다.
“네 능력, 한번 테스트 좀 해보자.”
7.
정부기관은 내 능력에 대해서 흥미를 느꼈다.
내 능력을 잘 활용하기 위해서라도 정확히 ‘어떤 것’인지 파악해야겠다는 것이 높으신 분들의 의견이었단다. 한 번에 모든 것을 알아내는 것은 아니고 짬짬이 불러 테스트를 한다고. 뭐, 내게 거부권이 있나? 그냥 따르는 거지 뭐.
“여기는……?”
제공한 방호복을 입고 특이한 지하 승강기를 타고 내려온 뉴 송파구의 한 구역, 내리자마자 보이는 건 해골이 양각되어있는 거대한 철문이었다. <눈>으로 안쪽을 들여다보니 SF 게임에서나 볼법한 배틀 슈트의 군인들이…… 아니, 인간이 아니라 통짜 쇳덩이 로봇이네!?
그런 내 질문에 차장님은 어깰 으쓱였다.
“마력 물품 보관소란다.”
“마력 물품 보관소?”
“그래, 마력 관련 물품 중에서 좀 위험하다고 판단되는 건 이곳에 보관하지.”
걸어가서 특수한 마법적 처리가 되어있는 강철 문 위에 오른손을 가져다 대는 차장님, 그와 함께 마법적 파장이 번져 나가고-.
-생체 파장, 지문과 홍채 인식 완료. 1급 관리자-나세영 확인.
음성과 함께 해골의 입이 서서히 갈라지며 문이 열리고, 로봇들이 지키는 삭막한 콘크리트 홀이 드러난다. 그 안에 들어서면서 차장님은 말을 이어나가셨다.
“지상에 강력한 마법 장비나 위험한 물품을 보관하면 탈취나 테러의 위협이 있어. 하지만, 여긴 그렇지 않지. 무엇보다 사고가 터져도 지하라서 그 여파가 지상까지 쉽게 올라오진 않아. 수습도 훨씬 쉽고 정보통제도 용이하지.”
“그렇군요.”
홀에서 갈라지는 5개의 통로, 그렇게 차장님을 따라 정 가운데의 통로 안으로 들어서자-.
“신안에서 느꼈던 것이 느껴지는데요?”
“흐, 진짜 감각 좋네.”
안쪽으로 갈수록 신안에서 많이 봤었던 ‘심연의 힘’이 희미하게 느껴졌다. 그 대꾸에 차장님은 웃으며 고갤 끄덕였다.
“지금 가는 곳은 임시로 물품을 보관하는 곳이란다. 그리고 거기엔 이번 사태 때 흑산도에서 회수된 물품들이 있지.”
“테스트라면서요?”
“이것도 일종의 테스트지.”
20m가량 되는 통로의 끝, 두 번째 철문을 향해 천천히 걸어가면서 차장님은 말을 이어나갔다.
“이번 사태 때, 넌 아주 큰 공을 세웠어. 특수한 능력으로 타락체들을 구분해냈고, 그 덕분에 무작정 폭격이 아니라 사람들을 구할 수 있었지. 사전에 특이한 것을 발견해내기도 했고. 물론, 막판에 생각지도 못한 새로운 유형의 심연 기생체에 크게 당하긴 했지만…….”
“…….”
“그건 순전히 우리 잘못이지. 아무튼, 네 능력에 거는 기대가 커. 우리가 못 보는 걸, 느낄 수 있으니 네 능력을 이용해서 뭔가 위험한 게 있는지 확인해보려고 해.”
통로 끝에서 차장님은 다시 한 번 철문을 열었다. 그와 함께 안쪽에서 심연의 힘이 물결치듯이 밀려오고 그 내부 모습이 나타난다. 유리 전시대에 차곡차곡 보관된 물품들, 타락체의 가죽으로 만든 것 같은 망토, 기묘한 흔들림이 감도는 단검…….
“오…….”
“잠깐.”
내가 살짝 감탄사를 흘리며 다가가려 하자 차장님이 제지하곤 경계심 가득한 표정으로 충고하신다.
“이런 말 하는 게 좀 모순이긴 한데…… 조심, 또 조심하렴. 심연의 힘-네쉬라의 축복이 담긴 마법 물품은 매우 위험하니까.”
“넵!”
“저 물품들이 뿜어내는 심연의 마력은 일반적인 생명체에겐 각종 부정적인 마력 오염이 서서히 쌓이게 한단다. 사실, 접근만 해도 건강에 안 좋아. 하지만, 이건 약과에 불과해. 착용하다 벗으면 더 커다란 피해를 주지.”
스산한 표정으로 그 폐해를 나열하는 차장님. 몸에 마력 오염을 폭발적으로 쌓이게 하거나, 국소적인 공간 뒤틀림으로 인한 몸 곳곳이 찢기거나, 잠시 정신이 이상해지거나…… 심지어는 공간 어딘가로 튕겨 나가거나 심연으로 끌려가는 경우도 있다는 소리였다.
살벌하긴 하다만 그리 새로운 이야긴 아니었다.
내가 있던 세계의 로그라이크 게임 ‘던전크롤-스톤스프’의 <왜곡>브랜드의 무기를 해제할 때 생기는 페널티와 비슷했으니까. 그나저나 왜 이 세계가 내가 아는 게임과 닳았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
아니, 르피너스가 내 기억을 주무른 영향일 수도 있겠다.
인정하긴 싫지만 내 기억은 전부 르피너스에 의해 한 차례 가공됐으니까. 사실, 내가 아는 것들은 전부 르피너스가 가공한 기억이고 내가 아는 ‘돌죽’이란 게임은 실제론 없는 거지.
“히.”
처음 이곳에 떨어졌을 때 했던 고민, 그 순간 내 안의 광증이 발작하려 했지만 <연금술>을 몸 내부에 사용해 진정제 역할을 하는 몸의 호르몬 물질을 즉석에서 강화했다. 그에 광증인 웃음이 멎고 몸이 나른하게 풀린다.
그런 내 반응에 차장님이 묘한 표정을 짓는 가운데-.
“읏차.”
“야!? 너!!”
뒤집어쓰고 있던 방호복 머리보호구를 벗었다. 그에 기겁하며 다시 방호구를 씌우려는 차장님을 향해 난 빙긋 웃었다.
“방호복이 감각에 좀 많이 방해돼요.”
내 능력을 전부 다 까발릴 수는 없으니까 뭔가 한계가 있는 것처럼 보여줘야지, 그에 차장님은 움찔하더니 한숨을 푹 내뱉는다.
“아니, 너 내가 한 말 안 들었냐?”
“들었어요. 하지만, 차라리 감각을 민감하게 하고 위험한 걸 피하는 게 나을 것 같아서 한 거예요.”
“…….”
“둘러보면서 뭔가 특이한 게 느껴지면 말하면 되는 거죠?”
내 대답에 결국 작게 고갤 끄덕이는 차장님, 그에 난 천천히 얼마 없는 물품들을 훑었다. <감정>하건대, 대부분 <왜곡> 브랜드나 ‘특수한 저주’가 걸린 물품들. 딱히 내가 착용할 만한 것도 아니었고, 가질 수도 없었기에 그냥 감상했지만-.
“어……?”
몇 가지 특수한 것들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