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자를 위한 연중작은 없다-194화 (194/350)

제194화

7.

“머…… 머라구요?”

갑작스런 살인 고백에 알딸딸하던 취기가 싹 가셨지만…… 좀 생각해 보니 ‘내가 왜 놀라고 있지?’하는 생각이 든다. 나도 그리고 양 씨도 북한에 가서 사람 정도는 지겹도록 죽였는데 말이다. 그에 양 씨는 피식 웃으며 고갤 저었다.

“물론, 내가 직접 손을 쓰진 않았지. 계략을 사용했어. 내가 연관됐다는 증거도 없앴고.”

대답과 함께 꾸부정하게 상체를 일으켜 앉은 양 씨는 왼손에 쥔 보드카를 한 모금 마신 후, 밤바다를 바라보며 푸념하듯이 말을 이어나간다.

“너도 알겠지만 보육원 생활은…… 남쪽에서도 그리 좋은 게 아니었어. 내가 죽인 그 인간은 개악질이었지. 그리고 난 출신이 출신인지라 더 당했고.”

“출신이요?”

“응, 기억날 때부터 한국에 있었지만…… 사실, 난 한국인이 아니야. 중국 쪽이지.”

중국 쪽이라는 양 씨의 대답, 그에 난 이 세상의 상식을 떠올렸다.

“양 씨, 대만 출신이에요?”

대만, ‘타이완 넘버원!’ 하던 국가는 이 세상엔 없다.

룬 수호자에 의해 미국이 나가리 되고 각국이 생존 경쟁에 돌입하면서 중국이 마수를 드러냈거든. 줘도 안 가지던 북한과는 달리 대만은 선진국에다가 반도체 기술까지 있었기에 먹을 게 많았기에 아예 점령했다. 그 과정에서 대만 출신들이 뿔뿔이 흩어졌는데, 아마 양 씨도 그런…….

“아니, 아니야.”

“……?”

“중국 본토? 어느 지방인지는 나도 자세히 몰라.”

그 대답에 다시 알딸딸하게 돌아오던 취기가 한 번 더 가신다. 중국 본토? 설마……!? 느슨하게 누워있던 상체를 일으킨 후, 난 양 씨를 향해 마법의 단어를 꺼냈다.

“곰돌이 O 개X끼 해봐요!”

“……뭐?”

“곰돌이 O 개X끼! 못해요?! 역시…….”

장기 집권하고 있는 중국 주석을 욕하지 못하는 걸 보면 역시 마음속으론 중국인…….

“아, OOO 애미 뒤진 XX…….”

이라고 생각할 뻔. 내가 뭔 말하는지 뒤늦게 알아들은 양 씨가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웃으며 현란한 욕설을 내뱉는다. 배때기를 갈라 창자로 줄넘기 어쩌고저쩌고…… 아주 창의적으로 욕하시네. 그렇게 사상검증이 끝난 뒤, 양 씨는 날 보며 피식 웃는다.

“됐냐?”

“아, 네. 뭐…….”

“내 부모가 누군지 몰라. 알아본 바로는…… 중국에서 꽤 부자였나 봐.”

보드카를 계속 들이켜면서 양 씨는 한탄하듯이 주절거렸다.

“그 당시에 중국에서 제주도 땅 사는 게 유행이었다고 해. 그래서 아기였던 날 데리고 제주도에 온 거지. 그리고 미궁이 세상에 올라왔을 때…… 때마침 내 부모님은 송파구에 사업차 들렀다가 실종됐고.”

“…….”

“그 뒤로 남은 재산들은 일가친척들이 다 날리고 난 여기에 남게 됐지. 호적도 없이. 시잇X 새끼들…… 그리고 보육원 원장 놈은 그 새끼들에게 돈 받고 날 종놈으로 부려먹었고.”

생각만 해도 이가 갈리는지, 양 씨는 빠득 이를 갈고 살짝 언성을 높이며 어렸을 적에 자기가 겪었던 일을 계속 주절주절 떠들었다.

감귤 농장에서 허리가 부러지도록 일하다가 발이 부러졌던 일, 제대로 치료도 안 해줘서 절름발이가 됐던 일, 따귀를 맞아서 아예 한쪽 귀가 잘 안 들리게 된 일…… 지금은 전혀 그렇게 안 보여서 몰랐는데 진짜 저 말대로라면 칼찌를 안 놓을 이유가 없을 정도였다.

“……그러다가 내게 마력 각성이 일어났지. 그놈에게 들키면 날 범죄조직 같은 데에 팔아먹을 게 뻔했어. 그래서 도망쳤어. 그리고 간신히 배를 훔쳐 타서 부산에 가서 마력 각성자로 등록했지. 그 뒤론…….”

그 뒤로도 이야기는 이어졌다.

혼혈 애들을 만나서 사업을 한 이야기, 이경에게 샘플로 써보겠다고 부탁해서 만들어낸 특수한 식물을 가지고 놈이 연줄을 대고 있던 제주도 쪽 폭력 조직과 접촉해 보육원장에게 몰래 수작을 건 이야기, 그리고 자신이 직접 죽인 이야기까지.

“이 집은…… 원래, 그놈 거야. 그놈이 샀던 거지. 그리고 이젠…… 내 거야. 히, 히히히.”

“…….”

“할머니에겐 좀 미안하긴 해. 그 할머니 없었으면…… 난 이미 뒤졌거든. 그나마 말려주던 사람이지. 밥도 좀 챙겨주고.”

“…….”

“하지만, 어쩌겠어. 난 그놈을 용서할 수 없는걸.”

그 미친 할망구에 관한 이야기도 나왔다. 어쩐지, 자기를 공격하면 거침없이 세게 나올 양반이 좀 부드럽게 대하는 것 같더라니…… 그렇게 할머니에 대한 말을 끝으로 침묵하던 양 씨는 너털웃음을 흘리며 날 바라보았다.

“흐, 흐히히. 거 참. 이런 이야길 왜 해주는지 모르겠다.”

“뭐, 그냥 감성에 취했나 보죠.”

“역시, 넌 아무렇지도 않나 보네. 사람 죽인 이야기도 하는…… 아, 한 병 더 줘라. 다 마셨네.”

빈 보드카 병을 입에 넣다가 옆으로 던지는 양 씨, 그에 난 새로운 보드카를 건네주면서 어깰 으쓱였다.

“어차피 우리 사람 많이 죽여 봤잖아요? 고작 한 명 더 죽였다는 게 뭔 대수라고.”

“흐, 흐흐흐…… 그렇긴 하네! 우리 사람 엄청 많이 죽였지!? 캬!”

“네, 참 많~이도 죽였죠. 하지만, 아가씨에겐 그런 썰 같은 거 풀지 마요. 좀 순진하시니까.”

“나도 알아. 착하고 좋은 사람이지. 우리완 다르게.”

내가 건네준 보드카의 뚜껑을 이빨로 따려다가 놓치는 양 씨, 데구루루 옆으로 굴러가는 그 병을 잡으려다가 양 씨는 그대로 바닥에 엎어졌다. 일어나려고 하지만 불콰한 얼굴은 이미 몸이 한계에 달했다고 말해주고 있었다.

그렇게 땅바닥에서 몇 번 허우적대다가 못 일어난 양 씨는 씨익 웃으며 중얼거렸다.

“나는…… 부자가 될 거야.”

“…….”

“아무도 무시 못 하는…… 높은 사람이. 그런 걸 위해서라면 손……? 눈? 대체할 수 있잖아…… 난 후회하지 않아. 그래, 얼마든지…….”

결국, 완전히 꽐라가 되어 기절하는 양 씨. 그 모습에 난 한숨을 내뱉었다.

이 싯X. 진짜 제주도 와서 보내는 첫날에 하는 일이 집 리모델링 노동에 고기 굽기, 그리고 꽐라된 남자 새끼 업어서 방에 떨구기라니…… 그래도 밖에 내버려둘 순 없기에 <눈>으로 집 어디로 던져놔야 하나 확인하려고 했는데-.

집으로 오는 한 인영이 보였다.

미친 할망구, 양 씨가 차량을 박살 내서 그냥 걸어온 것 같다. 늙은이답지 않게 힘도 좋은지 기름통을 손에 들고 오고 있었다. 딱 봐도 뭔 짓을 저지르려는지 눈에 보이는 조합이다.

“진짜, 제주도 투어가 마음에 안 들면 각오해요.”

침을 질질 흘리며 잠든 양 씨를 향해 이죽댄 후, 난 자리에서 일어나서 집 밖으로 향했다.

8.

하기 싫어도 해야 할 일이 있다.

예를 들면, 꽐라 된 친구들이 자고 있는 집에 불 지르러 오는 미친 X끼를 막는 것. 고갤 휘휘 저으며 술기운을 털어내면서 도로를 따라 걸어오는 할망구를 향해 걸어갔다. 누군가 집 밖으로 나오자 흠칫한 할망구는 이내 날 확인하곤 다 썩은 이를 드러내며 으르렁거린다.

“할머니, 그만하세요.”

“…….”

“지금 가시면 그냥…….”

“너도 그 괴물 튀기지?”

노빠꾸로 들이박는 미친 할망구, 그리곤 충혈된 눈으로 할망구는 날 바라보며 식식거린다.

“그…… 그 배은망덕한 되놈이!! 되도 않는 자기랑 똑같은 잡종을 데려왔어!! 죽어야 해! 너희 같은 놈들은! 그냥 다 죽어야 해!”

광분하며 기름통을 휙! 하면서 휘두르는 할망구, 어느 정도 이런 일이 있을 수도 있다고 예상은 했다만…….

-촤학!

“아오…….”

술에 취해서인지 반응이 한 박자 늦었다.

완벽하게 피하려고 했는데 살짝 튀었다. 몸을 적시는 기름, 짜증이 치솟는다. 하아, X발! 이거, 답이 없네. 어떻게 기절시켜야 하나? 아니, 보내 봤자 또 이 X랄을 할 게 뻔하고 그렇다고 죽일 수도…… 아니, 잠시만.

근처에 CCTV가 없다고 했지?

“죽어! 이 되놈과 붙어먹은 튀…….”

“시-아아-앗.”

곧바로 짧게 주문을 외우며 <독침>을 만들어내 튕겼다. 비명을 지르지 못하도록 목에. 원래대로라면 눈알을 노려 즉사시키겠지만 워낙 술을 퍼마셔서 정신이 몽롱했다. 조준이 잘 안 될 수도 있으니 확실하게 해야지.

다행히, 목엔 제대로 맞았다.

“……!!”

라이터를 꺼내 불을 붙이려다가 목을 붙잡고 휘청거리며 쓰러지는 미친 할망구, 재빨리 손을 뻗어 옆으로 쓰러지려는 기름통을 세웠다. 그런 할망구의 얼굴 근육은 더 이상 찌그러질 수 없을 정도로 일그러져 있었다.

작정하고 만든 독이니 고통이 심하겠지.

목을 중심으로 퍼져나가는 검은 핏줄, 상태를 보아하니 얼마 안 가서 죽을 거다. 대충 죽을 때까지 전자 담배나 피우며 시간 때우려고 했는데…….

“아.”

전자 담배도 박살 나서 없어졌지?

짜증에 머릴 긁적인 후, 죽을 때까지 그 앞에 계속 서 있었다. 진짜 죽을 것 같으니 그제야 그 공포가 실감 난 듯, 할망구는 날 향해 손을 뻗으며 벌레처럼 꿈틀거리지만…… 이미 저질러 버렸는데 어떡해.

“케흑, 케…… 헤헤헥…….”

“에휴, 진짜.”

많이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에 검지를 그 눈앞에 뻗고 <독침>을 만들어 날려줬다. 머릿속에 <독침>이 박히고 완전히 숨이 끊어진 할망구, 야밤이긴 하다만 그래도 차량이 왔다 갔다 하다가 볼 수도 있기에 난 그 시신의 다리를 붙잡고 근처 수풀에 끌어다가 던져 놨다.

“~♪”

그 뒤, 홀가분한 기분으로 휘파람을 불며 집으로 돌아왔다.

골치 아픈 문제를 처리한 기분, 마법이 없는 세상이라면 시체처리를 고민하겠지만 여기는 비현실적인 힘이 있는 세상이다. 그리고 난 시체처리에 매우 좋은 마법을 배웠고.

“으음.”

집 안에 들어가려다가 몸에 묻은 석유 냄새에 살짝 고민하다가 상의를 벗었다. 살짝 묻었는데도 냄새가 심하네. 나중에 빨아야지. 그렇게 옷을 벗어두고 집 안으로 들어가서 화장실로 향했는데.

“……음?”

“어?”

물 내리는 소리와 함께 화장실에서 나오는 잠옷 차림의 마빡 아가씨와 마주쳤다.

부스스한 얼굴로 나오다가 날 보곤 눈을 동그랗게 뜨는 아가씨, 하지만 이내 술기운에 발그레한 얼굴로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며 날 훑어보는데…… 살짝 좀 섬뜩하게 느껴져서 어깰 움츠리며 가슴팍을 가렸다.

“뭘 빤히 쳐다봐요.”

“음, 생각보다 꽤나 내 취향이라서.”

“…….”

“너 진짜 피부 보들보들해 보인다. 만져 봐도 되냐?”

꽐라가 되니 이런 말도 하시는구만. 한숨을 쉬며 난 문 앞에서 비키라 손짓을 했고 아가씨는 아쉽다는 듯이 입맛을 다시며 곱게 문에서 비킨다. 그리곤 곧바로 락스를 집어 드는 날 보며 의아한 얼굴을 하신다.

“락스? 뭐하려고.”

“외곽 하수구에 파리가 날려서요. 어차피 자지도 않는데, 미진한 부분 청소나 해야죠. 아, 우리가 먹었던 것도 다 청소했어요.”

“아하암…… 그래? 안 해도 되는데…… 킁킁, 근데 석유 냄새가 나는 것 같은데.”

얼굴을 찡그리는 마빡 아가씨, 역시 옷을 벗고 왔지만 냄새가 뱄나 보네. 그에 난 태연하게 어깰 으쓱이며 대꾸했다.

“미진한 락카 자국이 있어서 석유로 지웠어요. 자기나 해요. 내일 놀아야 하니까.”

“그래, 그래야지. 흐.”

내 대꾸에 휘청거리며 자기 침실로 향하는 아가씨. <눈>으로 아가씨가 확실히 자는 걸 확인한 후, 난 락스를 들고 쓰레기를 없애기 위해 집 밖으로 나섰다.

9.

집 안 청소가 끝난 다음 날에도 우린 제대로 놀지 못했다.

애들이 의젓해서 종종 잊어먹지만 마빡이와 혼혈 애들은 고작 중3~고1 나잇대다. 혈기가 넘치다 못해 ‘미친’ 나이, 지난밤 광란의 술 파티는 주량들을 한참 넘어섰고 다음 날 숙취가 되어 애들을 괴롭혔다. 마력 각성자인데도 빌빌거리면 말 다했지. 서예린과 나만 멀쩡하고 죄다 반 꽐라더라. 허허.

그렇게 다음날도 요양으로 보내고 다다음 날이 되어서야 우린 본격적으로 움직였다.

꼭두새벽부터 차를 타고 성산 일출봉에 도착, 올라가서 일출을 보고 아래 식당가에서 아침 식사를 먹고 우도에 가서 땅콩 아이스크림까지 먹었다. 그 뒤에 양 씨가 미리 연락해둔 커다란 낚싯배를 빌려서 낚시를 했다.

다들, 낚시는 처음이라서 그런지 즐거워하더라.

배를 빌린 4시간 동안 자기만 생선을 못 잡자 빡친 마빡이가 마법으로 배터리 낚시를 보여준 뒤에 선장에게 쿠사리를 먹은 사소한 해프닝이 있었지. 그 뒤, 잡은 생선은 서예린이 저녁에 회로 떠줬다.

그렇게 제주도에서 관광지란 관광지는 다 돌아다녔다.

만장굴이라는 특이한 동굴도 봤고(혼혈 애들은 많이 본 거라고 시큰둥했다), 마라도까지 가서 짜장면도 먹고, 심지어 한라산도 한 번 등정했다. 너무 돌아다니는 것도 피곤해서 하루는 시내의 시장 투어나 예쁜 찻집에서 차 마시기, 노래방 가서 노래 부르기까지 다 했다.

그래, 해수욕장 빼고 다 갔다.

그동안, 날씨가 별로 그리 좋지 않았거든…… 비가 오거나 구름이 잔뜩 낀 날씨. 활동하기엔 더 좋았다만…… 너무 서운하더라! 아침마다 구름 낀 하늘을 보며 ‘하늘은 어찌하여 내 우미각을 망치는가!?’ 하며 속으로 부들부들 거렸다.

물론, 여자애들의 몸매 보려고 그러는 건…… 맞다!

그래, 맞아! 지금은 희미해졌지만 내 오랜 흑심이기도 해! 굳이 해수욕 같은 것 안 해도 <눈>이 있기에 몰래 훔쳐보는 것은 쉽지만……! 아주 당당하게 알몸을 보는 것도 가능하지만……! 사람에겐 로망이란 것이 있다고!! 그렇게 하루 이틀이 흘러가고…….

마침내, ‘화창한 날’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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