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6화
막간. Big Brother Notice You!
1.
세상에 ‘미궁’이 등장한 지도 16년가량이 흘렀다.
베일에 싸여 있던 미궁에 관한 정보들은 이제 대중에게 많이 알려졌지만, 어떤 정보는 여전히 각국 정부에 의해 은폐되거나 혹은 긴 텀을 가지고 조금씩 풀고 있었다. 그렇게 정보를 통제하는 이유는 모두 ‘지상의 인류-문명’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심연 기생체’의 정보 또한 그런 정보에 속했다.
그저 언급한 것만으로도 전파될 수 있는 끔찍한 역병, 유목생활에 가까운 미궁이라면 몰라도 지상에선 문명을 흔들만한 위협이었기에 ‘어느 정도 틀을 갖춘 국가’의 정부는 서로 긴밀하게 협력하며 그러한 정보들을 은폐했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한국의 ‘새로운 심연 기생체’에 대한 정보 공개는 그러한 노력에 찬물을 끼얹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
중화인민공화국 ‘국가안전부’, 통칭 국안부 건물의 한 회의실. 깡마른 인상의 중년 남성 ‘페이진펑’ 부장은 일주일 만에 나온 최종 결론을 듣곤 얼굴을 감싸 쥐었다. 그렇게 잠시 숨을 고른 그는 손을 내리고 다시 보고를 한 부하를 바라보았다.
“한 마디로 지지율이 떨어질 것 같으니까, 그냥 저지른 거란 건가? 국가 간의 반 공식합의를 무시하고?”
“예, 교차검증을 완료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방역’이라고 홍보했는데, 일이 터지고 지지율에 이상이 있을 것 같으니 한국 대통령궁 쪽에서 저질렀다고 하더군요. 실무진들과의 상의도 없이 즉흥적으로 벌어진 일이라고 합니다.”
“으윽.”
‘대외 정경정보국(对外 政经情报局)’의 국장의 대답에 페이진펑의 얼굴이 무서울 정도로 찌그러진다. 명치끝을 쥐어 비트는 듯한 통증, 스트레스성 위경련의 신호에 호주머니에서 물약을 꺼내 한 모금 마신 그는-
“이 개 같은 가오리 빵쯔 새끼들이!!! 고작 그런 거로 이런 걸 대중에 공개해버리면 어떡해!!!”
극대노하며 그 물약 병을 벽에 내던져 박살 냈다.
새로운 심연 기생체의 등장, 그건 분명 알려야 할 위협이긴 했다. 하지만, 결코 이런 방식으로 알려야 할 건 아니었다. 이런 ‘무책임한 정보의 방출’은 오히려 혼돈과 불안만 부추길 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실제로 지금, 무책임하게 쏘아 올린 한국의 트롤링 덕분에 세계 각국은 사회적 혼란을 겪고 있었다.
중국 또한 마찬가지. 아무리 검열과 은폐를 잘한다고 한들, 한 국가가 공개적으로 저렇게 말을 한 것이라면 어떻게 조작하거나 숨길 수가 없다. 이미, 싹 다 퍼져나갔고 그로 인한 사회적 소요가 엄청났다.
……하지만, 그런 사회적 소요 또한 ‘앞으로 찾아올 위협’에 비하면 약과다.
“……3일 전에 티벳 쪽에서 특이한 움직임이 포착됐다고 했지?”
“예, 극렬 테러조직 ‘설산 사자’가 심연 관련 물품들을 확보하려고 한 정황을 포착했습니다.”
그 질문에 대꾸하는 ‘반간첩정찰국(反间谍侦察局)’ 국장, 이미 예견됐던 일이지만 페이진펑은 두 눈을 감았다.
그런 개념을 듣고 또 성공했다고 소식이 들리면 그걸 무기로 써먹어 보려는 ‘미친놈’은 반드시 있다. 그런 미친놈을 잡는 것이 바로 국안부의 역할이지만…… 세계에서 손꼽히는 정보기관인 그들도 한계가 있었다.
중국은 너무 크다.
모든 유럽 국가의 땅을 합친 넓이보다 더 넓고, 인구는 15억으로 3배 더 많으며, 미궁으로 향하는 토굴의 숫자 또한 30개에 달한다. 아무리 그들이 유능하다고 한들, 그 방대한 영토를 전부 커버하는 건, 빠짐없이 관리하는 건 불가능하다.
그런 반면에 중국을 공격하려는 적은 너무나도 많다.
티베트나 대만, 위구르, 만주족의 분리 독립주의자들, 다른 나라의 밀정들, 건방진 이종족들, 그냥 당에 불만이 많은 불순분자들, 태업을 일삼는 지방의 당원들…….
“거짓말이다.”
“…….”
“아무리 지지율에 목숨 거는 정치인이라지만, 이건 정치인 하나가 자기 살자고 국가 자체의 신뢰를 까먹는 짓이잖나. 한 국가의 수장인 대통령이 그런 악수(惡手)를 둘 리가 없다. 상식적으로 말이다. 다른 의도가 있을 거야…….”
“…….”
“이 모든 게 그냥 그 판단 때문에 벌어졌다고??”
앞으로 펼쳐질 골치 아픈 미래를 상상하며 잠시 현실부정을 하던 페이진펑은 결국 현실을 받아들였다. 이미, 벌어진 일은 어쩔 수 없다. 대처라도 잘하는 수밖에. 그렇게 페이진펑이 어느 정도 진정하자 ‘과기정보국(科技情报局)’ 국장이 입을 열었다.
“협조 요청한 ‘마력과학부’로부터 심연 기생체의 샘플 연구 결과가 도착했습니다. 한국 정부의 발표대로 생각보다 그리 위협적인 건 아니었습니다.”
“위협적이지 않다?”
“예.”
대답하며 과기국 국장은 들고 있는 태블릿 PC를 조작해 회의실 내의 스크린에 사진과 실험 영상을 띄우며 말을 이어나갔다.
“기생체를 가루 형태로 소형화하고 식품에 섞기 좋게 만들었지만, 그 대신에 생존력도 대폭 약화되어서 일반인의 위산에도 거의 녹아내립니다. 외부에서 에너지를 주입하지 않는 이상, 먹고 타락체가 될 확률은 희박합니다.”
“좋아, 그건 그나마 좀 좋은 소식이군.”
한숨을 푹 내뱉은 페이진펑은 위경련으로 아직도 저릿저릿한 가슴팍을 쓰다듬으며 국제정보국(国际情报局) 부장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신안 사태에 대해 올라온 한국 정부의 보고서는?”
“예, 국정원을 제외한 모든 영역에서 조사는 끝났습니다.”
“국정원이라…….”
“아시겠지만 그쪽은 자료를 직접 수기 서류로 보관하기에 정보를 빼내려면 시간이 걸립니다. 물론, 당장 빼돌리는 것도 가능하긴 합니다만…… 그럴 경우엔 기껏 심어둔 끄나풀을 포기해야 합니다.”
“그럴 순 없지, 회의 참석한 다른 이들도 읽을 수 있도록 자료 전송하게.”
소중한 국안부 요원을 수십 명을 죽여버린 미친X을 떠올리며 얼굴을 구기던 페이진펑은 이내 정신을 차리고 대답했다.
작성되지 얼마 안 되는 대한민국 정부의 사태 보고서, 당연히 국가 기밀이었으나 자발적으로 충성을 맹세하는 소국의 인간들과 나라가 망하더라도 세계 최강 대국에 살고 싶은 이들은 많았다.
그렇게 보고서를 읽어 내리던 페이진펑은 한 문단에서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타락체를 구분하는 ‘특이한 감각을 가진 이능력자’라…… 소국에도 창웨이 같은 인재가 있었군?”
한국이 벌인 심연 기생체 토벌 작전의 중심에는 특별한 감각을 지닌 이능력자가 있었다. 그에 페이진펑이 흥미를 보이자 자료를 전송한 국장이 입을 열었다.
“보고서에선 그 이능력자에 대한 내용이 짤막하게 나오기에 추가로 조사했습니다. 두 번째 파일을 보시면 그 능력자에 대한 대략적인 프로필이 있습니다.”
“어디 보자. 호오? 사진을 보니 꽤나 곱상한 소녀…… 아니, 남자야?”
“예, 사고로 인해 <마력 돌연변이>가 다수 발현하면서 현재의 외형이 되었고, 특수한 감지 능력과 동시에 정신병 또한 함께 얻은 거로 추정됩니다.”
보고서에 나와 있는 내용들을 보며 페이진펑은 미간을 좁혔다. ‘강수영의 제자’, ‘매우 빠른 마법 습득’, ‘정신병’, ‘살인에 대해 거리낌이 없음’, ‘일정 이상의 스트레스를 받을 시 발작’, ‘최근에 특급 경계 대상 목록에 ‘웃는 악마’라는 이름으로 등재’…….
그렇게 모든 내용을 확인한 그는 마지막의 첨부 동영상을 실행했다.
-모에~모에~
“…….”
-큥!
페이진펑의 태블릿 PC에서 흘러나오는 소리. 그에 회의실에 죽은 듯한 침묵이 감도는 가운데, 국제정보국의 국장은 변명하듯 첨언했다.
“대상의 움직이는 모습이 나온 유일한 영상자료입니다. 저번 주에 이종족 혼혈아들과 여행을 갔는데, 미튜브 라이브에 등장해서 자료용으로 기재했습니다.”
“……확실히, 그냥 보기에도 제정신은 아니군. 시X, 대통령이나 국정원이나 그리고 이놈이나. 죄다 미쳤어. 빵쯔 새끼들은.”
중얼거리며 페이진펑이 태블릿 PC를 놓자, 과기정보국 국장이 손을 들었다.
“국장님, 이건 ‘인재 포섭’이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왜지?”
“아시겠지만 ‘마력과학부’에서 현재 창웨이가 가진 감각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심연 기생체의 준동이 더 커질 텐데, 이런 이능력자가 있으면 더 좋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연구 표본이 더 늘어나면 좀 더 빠르게 심연 기생체 색출 메커니즘을 발견할지도 모릅니다.”
“확실히, 탐색자가 늘어나면 더 좋긴 하지.”
대답하면서 대외보방정찰국(对外保防侦察局) 국장을 바라보는 페이진펑, 그에 국장은 태블릿 PC의 보고서를 훑어보곤 천천히 고갤 끄덕였다.
“북한 출신에 꽤나 차별대우를 받은 거로 나오는데…… 잘하면 무력적인 수단을 쓰지 않더라도 가능할 것 같습니다.”
“만약, 굳이 무력적인 수단을 써야 한다면?”
“……근시일 내엔 힘들 것 같습니다.”
고갤 저은 후, 그는 그렇게 판단을 내린 이유를 설명했다.
“일단, 국정원에서 발굴한 인재입니다. 국정원에서 따로 감시 겸 보호를 할 게 뻔합니다. 그리고, 확인된 개인 전투력도 만만치 않습니다. 강수영 연금술사의 마법 기교를, 그것도 특급 경계 대상이 될 정도로 익혔다고 하면…….”
“블러핑일 수도 있지 않나?”
“그래도 어느 정도의 전투력을 가진 건 확실해 보입니다.”
국장의 판단에 페이진펑은 고갤 끄덕였다.
“좋아, 한번 천천히 진행해보도록 하지.”
2.
한국에 퍼트린 ‘새로운 심연 기생체’에 대한 소식은 전 세계를 강타했다.
‘K-방역’이라고 어그로를 끌며 홍보하다가 사태가 꼬였기에 ‘쌤통이다.’라는 전 세계의 시선이 몰렸고, 그에 한국 정부의 해명-‘새로운 심연 기생체 때문에 일이 커졌지 K-방역은 성공적이었다.’는 주장은 어떻게 숨겨보기도 전에 퍼져나갔다.
“먹는 것으로 감염되는 심연 기생체라…….”
중국, 한 위성 도시 외곽. 지역 조폭이 마련한 안전 가옥에서 한 남자가 흥미로운 표정으로 TV 뉴스를 시청했다. 이미 한 차례 검열된 정보,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그의 흥미를 끌기에 충분했다.
국가를 위협할 만한 물건, 그가 가장 원하던 것이 저기에 있었다.
“흐음…… 그러고 보니 슬슬 풀어줄 때가 됐지.”
소파에서 일어선 후, 남자는 옆에 둔 가죽 두루마리를 집어 들었다. 인간의 피부로 만들어진 두루마리, 남자의 손이 닿자 마치 거부하는 것처럼 ‘치이이익!’하는 소리와 함께 연기가 피어올랐지만 그는 꿋꿋하게 그 두루마릴 손으로 집어 옆의 가방에 집어넣었다.
그리곤, 그 가방을 메고 안전 가옥의 지하실로 향하는 문을 열었다.
문이 열리자마자 올라오는 퀴퀴한 피비린내와 오물 냄새, 그럼에도 아무렇지도 않게 계단을 걸어 내려가자 감금시설이 나온다. 지역 조폭의 은신처였던 만큼, 배신자나 채무자를 가둬두는 장소였다. 그리고 그곳에 남자가 모습을 드러내자-.
“히, 히이이익!”
“없다. 없다없다…….”
감옥에 갇혀있는 알몸의 인간들이 벌벌 떨며 구석에 웅크렸다.
하나같이 굶은 듯, 깡마른 체격에 한곳에 문신을 하고 있는 남자들. 그가 여기 오기 전까지 이곳의 주인들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도살장에 끌려갈 운명을 아는 짐승처럼 필사적으로 구석에 숨기 급급했다.
남자는 그런 희생양들을 무시하며 감옥의 끝으로 향했다.
그 끝엔 쇠사슬에 묶인 괴인이 있었다. 이전의 수감자들처럼 깡마르고 오물투성이인 백인 노인, 하지만 겁에 질린 타조처럼 고갤 처박는 것이 아닌 감옥의 어둠 속에서 핏발선 눈으로 남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닥터 크림슨.
이미 죽은 거로 공표된 괴물, 한 번 잘려나갔던 그 팔다리는 마치 도마뱀마냥 자라나 있었다. 그 핏발선 두 눈은 여전히 살기에 등등했지만…… 한 층 더 절박했다. 흐르지 않는 피, 유혈의 신의 은총은 그를 서서히 떠나가고 있었다.
“희생양…… 희생양을……!”
맹수의 으르렁거림에 가볍게 손가락을 튕기는 남자, 그에-.
-땡그랑.
닥터 크림슨의 손과 발, 목에 걸린 족쇄가 풀어진다.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 닥터 크림슨은 멈칫하곤 앞에 선 남자를 바라보았다. 뒤집어쓴 백색 후드 안쪽, 그 새카만 어둠 속에서 지옥의 유황불처럼 활활 타오르는 홍채를 번뜩이며 그는 입을 열었다.
“네게서 얻을 건 다 끝났다.”
“…….”
“맘대로 해라.”
습격할 거면 해보라는 듯이 등을 보이며 나가는 남자, 그런 남자의 뒷모습에 닥터 크림슨은 등이 욱신거림을 느꼈다. 남자에 의해 뜯겨나간 등가죽, 알 수 없는 이유로 회복되지 않은 등판이 너무나도 욱신거렸다. 그에 살기가 치솟았지만…….
감히 이를 드러낼 수 없었다.
남자와의 실력 차이는 명확했으니까. 특히나, 유혈의 축복이 많이 떠나가 약화된 지금이라면 더더욱. 그 대신에 그는 등을 보이며 나가는 그를 향해 으르렁거렸다.
“언젠간 네놈의 가죽을 벗겨주마…….”
“그럴 수 있으면 그래 보든가.”
시큰둥하게 대꾸하며 밖으로 향하는 계단을 오르는 남자. 그렇게 남자가 나간 뒤, 살인마는 바드득 이를 갈며 감방에서 나와 주위를 둘러보았다. 지금까지 그가 먹어왔던 희생양들이 감옥에 갇혀 벌벌 떨고 있었다.
-██ █!
죽지 않을 정도로 굶주렸던 야수가 괴성을 지르며 남은 희생양을 포식하는 가운데-
“한국이라.”
밖으로 나온 남자는 어딘가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