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자를 위한 연중작은 없다-197화 (197/350)

제197화

40화. 사축은 자유를 꿈꾸는가?

1.

즐거운 한때가 끝난 뒤, 다음 주 월요일 아침이 밝았다.

2학기 개학식, 원래대로라면 교실 안에서 간단히 끝났겠지만 이번 개학식은 ‘유혈의 재앙’이 지나가고 난 뒤에 있는 개학이었다. 당연히, 그 의미가 남달랐고 3월의 입학+개학식처럼 미르 중앙 행정처 앞의 대운동장에서 ‘국가행사 급’으로 커다랗게 진행되었다.

그 분위기는 뭐…… 추모식에 가까웠지.

어찌 복구가 되긴 했어도 파괴의 흔적이 남아있는 건물들, 운동장에 도열해 있는 생도들의 숫자는 3월의 절반 이하다. 스탠드에 있는 참석자들도 대부분 유족인 듯, 하나같이 눈시울이 붉어졌거나 울음을 참는 이들이 대다수여서 거의 초상집 같았다.

……좀 인상 깊었던 점이라면 도중에 ‘대통령’이 나와서 연설했다는 거?

어쩐지 주위에 배치된 경호원이 많더라니, 갑자기 TV에서나 보던 대통령이 등장하더라고? 대충 ‘우리는 굳건하다! 우리는 이 정도로 무너지지 않는다! 슬픔을 이겨나고 앞으로 나아간다!’라는 느낌의 연설을 하고 사라지셨고 식이 끝났다.

그리고, 편입반 교실로 돌아가 담임인 김가트 양반에게 간단한 수강신청에 관한 안내를 듣고 오늘의 일정이 끝났다.

“흐음.”

반 애들이 각자 모여서 재잘재잘 떠들며 밖으로 나가는 사이, 난 자리에 앉아 ‘수강신청 안내서’를 훑어보며 고민했다. 그런 도중에 돌연 내 어깨에 누군가 팔을 올려놓았다. <눈>을 돌려보니 마빡 아가씨가 내게 기대고 계셨다.

“야, 뭐하냐?”

“2학기 수강 신청표 보고 있어요. 뭐 들어야 할지 생각 중.”

“그건 나중에 고민하고 밥이나 먹으러 가자. 예린이가 미르에 새로운 식당이 들어섰대. 너만 오면 고.”

문 쪽을 턱짓하며 말하는 아가씨, 그곳에는 백색 생도복 차림의 서예린이 팔짱을 낀 채로 대기 타고 있었다. 거, 같이 밥 먹자니 황송하네. 곧바로 일어서려고 했는데…… 문득, 아가씨 뒤쪽에 모여 있는 여자애들이 보였다.

“그…… 아가씨?”

“왜?”

“인맥 관리 안 해도 되나요? 저랑 같이 있는 걸 들키면 조금 인맥에 안 좋다고 하셨잖아요. 뒤에서 저희를 바라보는 기척이 느껴지는데요?”

한때 아가씨가 속해 있던 여자 무리, 유혈이 흐른 뒤로 못 봤었는데 대부분이 살아있었다. 그리고 지금, 이쪽을 보며 수군거리고 있다. 내 지적에 아가씨는 눈을 똥그랗게 뜨더니 이내 피식 웃으며 고갤 저었다.

“하, 됐어.”

“네?”

“쟤들보다 니가 훨씬 더 소중하니까.”

내 목에 헤드록을 기습적으로 걸며 아가씨는 말을 이어나갔다.

“넌, 날 살리기 위해 목숨까지 걸었었잖아? 능력도 쟤네들보다 훨씬 더 뛰어나고! 내가 너랑 가까이 지낸다고 험담하는 애? 그런 애는 이제 오히려 내 쪽에서 사절이야.”

“헤헤. 황송할 따름입니…….”

“그리고, 내가 골라준 수영복을 입고 ‘모에~모에~큥’까지 해준 지분도 있지.”

훨씬 더 소중하단 말에 감동하려는 순간, 낄낄거리며 말하는 마빡이. 젠장, 분위기에 떠밀려서 그런 짓을 하다니…… 불과 며칠 전의 어리석은 판단에 한탄하며 난 자리에서 일어서서 일행에 합류했다. 그리고, 앞장서는 서예린을 따라서 움직였다.

“아직 11시도 안 됐는데, 식사하기엔 이르지 않나요?”

“빨리 가야 됨! 11시 30분 오픈하면 분명히 줄 섬!”

“뭔 식당이길래요?”

“미국에서 먹어본 햄버거 패스트푸드 레스토랑임! 마법 요리! 몰래 밖에 나가서 먹었을 때, 무지 맛있었음!”

내 질문에 간식을 본 개처럼 침을 줄줄 흘리며 대답하는 서예린, 대충 들어보니 유명한 오크 마법사 쉐프가 만들어낸 마법 요리 체인점이란다. 거참, 이 세상은 정말 신기해. 대충 고갤 주억이고 있는데 마빡이가 입을 열었다.

“야, 그나저나 니들 2학기 수업은 뭘 들을 거야?”

“으음, 좀 많이 고민되긴 해요. 딱히, 뭘 들어야 할지도 모르겠고.”

아가씨의 질문에 대꾸하며 난 입맛을 다셨다.

내 영혼이 진짜 병X이라는 것을 깨닫기 전에는 ‘이 세상에서 잘 먹고 잘살자.’가 목표였지만…… 지금은 전혀 다르다. ‘영혼의 복구’라는 거의 불가능한 목표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상황, 평범한 수업 정도의 지식은 거의 쓸모가 없다. 시간 낭비이기도 하고.

그런 내 대꾸에 서예린 또한 미간을 찌푸리며 한숨을 푹 내뱉는다.

“수업 듣고 싶지 않음.”

“네?”

“굳이 들어야 함? 어차피 돈은 의뢰로 벌어먹으면 되는데. 답답함.”

투덜거리는 서예린, 이전에 중간고사 시험을 잘 보려고 필사적이었던 모습은 전혀 보이질 않는다. 하긴, 취직에 목매다가 광고 하나로 수십억이 들어온단 걸 알았으니 저렇게 나올 만도 해. 그리고 전투에 한해서 실력 또한 교사를 능가하니까. 그에 마빡이도 수긍하는 눈치다.

“뭐, 그렇긴 하지. 수업 자체가 스스로 실력을 갈고닦으려는 건데 예린이는…… 딱히, 도움이 안 되니까.”

“근데, 아빠는 수업 들으라고 성화임! 쓰읍! 아오, 나 잘못하면 또 대학 강의 듣게 생김!”

그렇게 서예린이 불평불만을 늘어놓는 가운데, 난 마빡 아가씨를 향해 질문했다.

“그러고 보니 아가씨도 딱히 들어야 할 게 있나요?”

“흐음, 솔직히 말하면 나도 딱히 들을 만한 수업은 없어. ‘마력학’ 정도? 그것도 일종의 트랜드 파악 정도지만. 그래서 좀 고민이야. 뭐, 인맥 쌓기로 들어볼 만도 한데…….”

미간을 찡그리며 관자놀이를 긁적이던 마빡이는 이내 작게 한숨을 내쉰다.

“그래도, 일단 같이 시간은 맞추자. 전투 I-2하고 도덕 I-2는 필수니까.”

“아, 진짜 그거 너무 짜증 나요.”

원래대로라면 선택해서 듣던 ‘전투 I’과 ‘도덕 I’ 과목, 하지만 2학기부터는 전투는 모두 듣게 되는 거로 바뀌었다.

불시에 재난 상황이 닥쳤을 시, 최소한의 저항을 위해서라나? 거, 이 세상의 대한민국도 내가 있던 대한민국과 진짜 비슷하단 생각이 들어. 성폭행이 일어나면 성폭행 방지 교육 같은 거 듣게 하던 꼴과 판박이다. 그렇게 셋이 걸어가면서 수업에 대해 투덜대고 있는데…….

“음?”

맞은편에서 두 사람이 걸어오고 있었다.

막대사탕을 입에 물고 있는 양다리와 왼손이 의족·의수인 포니테일 누님. 그리고, 그런 누님 뒤에서 호위처럼 걷고 있는 사냥개를 연상케 하는 남자. 그에 서예린과 내가 발걸음을 멈추고 미간을 찡그리는 가운데, 분위기가 이상하단 걸 눈치챈 마빡이가 조용히 질문한다.

“……아는 사람이야?”

“국정원 차장님이에요.”

“괴물임.”

나와 서예린의 대꾸, 그에 국정원 차장님은 우리 앞까지 와서 씨익 웃으면서-.

“모에~모에~”

“……!”

“큥!”

“……푸흡.”

“잘 봤다. 하핳! 오랜만에 웃었어.”

날 향해 크리티컬을 날리신다. 그에 굳은 표정이었던 서예린이 빵 터지고. 젠장, 흑역사 짓도 그냥 공개적으로 하지 말아야 했는데…… 며칠 전의 나의 어리석음에 한탄하며 난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무슨 일이신가요?”

“마침 대통령 외부 경호로 미르에 왔겠다, 니가 요청한 거에 대해서 알려주려고 왔지. 스마트폰으로 떠들기엔 좀 긴 이야기라서.”

“……제가 요청한 거요?”

“너 수영이 만나고 싶다고 했잖아.”

“아.”

그러고 보니 조사를 받으면서 난 뉴 송파구에 있는 우리 싸장님을 한번 만나고 싶다고 말했었다. 근데, 그거에 대해서 알려주려고 차장님이 왔다니…… 좀 이상하네?

“근데, 차장님이 직접 오실 줄은 몰랐네요.”

“사실, 단순한 방문 허락 같으면 이렇게 내가 방문하지 않지. 그냥 밑의 쫄따구가 스마트폰으로 OK사인 보내고 적당한 경호 요원 하나만 딸려 보내면 되니까.”

“그럼?”

“사실…… 네게 부탁이 하나 있거든. 무려, 국정원 차장급 인사가 직접 나설만한 일이지.”

“흠.”

“니 친구는 대충 뭘 부탁하려는지 눈치챈 모양인데?”

어느새 묘한 표정을 짓고 있는 마빡 아가씨, 고갤 돌려 바라보자 마빡이는 진지한 표정으로 고갤 끄덕인다. 아니, 아가씨. 의미심장하게 고개만 끄덕이지 말고 뭔지 말을 해주셔야죠…… 내가 답답함을 느낀 반면에 차장님은 통했다는 듯이 빙긋 웃으며 날 낚아채서 어깨동무하신다.

“그럼 얘 좀 빌려 간다.”

2.

차장님과 함께 간 곳은 비밀스런 취조실이 아닌 미르 상점가에 있는 한 카페였다.

“안 드세요?”

“난 생수만 마셔.”

사준다기에 시킨 초코 파르페. 내 앞에 있는 이 호화로운 아이스크림 디저트와는 반대로 맞은편 차장님의 앞에는 브랜드 생수병밖에 없다. 근처에 경호원처럼 앉아있는 전찬휘 경감은 아예 아무것도 마시지 않고 있고. 거, 사람에게 꼽주는 거라면 제대로 하고 있구만.

그렇게 속으로 투덜거리며 파르페를 깨작이려는데, 차장님이 입을 열었다.

“사실, 내가 지금 하려는 ‘부탁’은 내 휘하부서의 일이 아니야.”

“음, 그래요?”

“그래, 내 쪽 라인이 아닌 전혀 다른 라인의 것이지.”

컵에 따른 스파클링 생수를 한 모금 마시며 차장님은 말을 이어나가신다.

“잘 모르겠지만 국정원의 역할은 매우 다양하단다. 나처럼 살인 병기로 뛰는 애들도 있지만, 어떤 애들은 ‘외국과의 협상’이나 ‘기업의 해외 진출’ 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지원하고 있어. 한 마디로 경제 분야지. 결국, 모든 게 다 먹고살자고 하는 일이니 매우 중요한 업무야.”

“음, 그렇군요.”

“너의 요청을 검토하면서 그런 ‘기업 지원 업무’를 맡고 있는 부서에서 요청이 들어왔어. 원장님도 바로 허락했고.”

그, 원장이라면 국정원장이겠지? 도대체 내게 뭔 요청이 들어왔기에…… 소시민이었던 나로선 파르페가 목구멍으로 넘어가질 않는 것 같았다. 그렇게 떨떠름하게 굳은 날 향해 차장님은 말을 꺼내신다.

“수영이가 뉴 송파구 오크 쪽으로 간 거 알지?”

“넵.”

“그 결정했을 때, 그런 국정원 기업 파트에서 난리가 났었어. 자칫 잘못하면 우리나라 산업의 허리 역할을 하던 ‘최중요 중간가공 업자’가 사라지게 됐으니 말이야. 어떻게 나서서 잡아보려고 했는데, 완강히 거부하더라. X팔, 진짜 그땐 말도 아니었지.”

한숨을 푹 내뱉으며 차장님은 고갤 젓는다.

“하도 답이 없으니, 기업 담당 부서 놈들이 우리에게 접근해서 뭔 협박이라도 해보라고 했다니까? 아무리 특급 경계 인물이라고 한들, 이젠 하반신이 마비됐으니 가능하지 않냐면서.”

“…….”

“물론, 그 새끼는 내게 아구창이 털렸지. 수틀리면 안 하면 되는 애에게 협박하라고?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가 그런 움직임을 보이면 오크들이 가만 안 있을걸?”

“오크들이요?”

무력적으로 협박하려고 했다는 말에 속으로 호달달 떨고 있던 차에 생뚱맞게 오크가 언급된다. 그에 내가 묻자 차장님은 어깨를 으쓱인다.

“수영이는 오크들에게 평판이 그리 나쁘지 않아. 자기네들의 성자가 절망적인 싸움을 시작했을 때, 함께 죽을 각오로 싸워준 인간이니까. 아무리 막 나가는 오크 깡패라도 최소한의 존중은 해주지. 그렇기 때문에 멀쩡하게 뉴 송파구-이종족 지구에서 생활할 수 있는 거고.”

“음, 그렇군요.”

“그래서 타협을 했어. 일단은 보내주기로. 하지만, 제품은 정상적으로 제공할 수 있도록. 그렇기에 수영이가 자리 잡을 위치도 뉴 송파구의 ‘인간 지역’과 ‘이종족 지역’이 맞붙은 완충지대로 따로 선정했고.”

그럼 나름 잘 해결된 것 아닌가? 생각했는데…….

“근데, 예상했겠지만 수영이가 내보내는 물품의 양이 팍 줄어들었어.”

“…….”

“사실 어쩔 수 없는 거긴 해. 원래부터 혼자 만들던 거였는데, 다리가 X신이 됐으니까. 게다가 전쟁 군주하고 새로운 사업을 한다고 하더라고? 내 분야가 아니라서 정확히 모르겠지만 말이야.”

한숨을 푹 내뱉으며 차장님은 고갤 절레절레 저으신다.

“안 그래도 미르가 한 번 작살난 덕분에 요즘 휘청거리는 국내 마력 관련 산업인데, 그 때문에 비명을 지르고 있지. 아직까진 비축분으로 버티고 있지만 초고급 라인의 마력 관련 상품 유통과 각종 제품의 생산력과 품질이 떨어지게 생겼으니 말이야.”

“음, 큰일이긴 하네요.”

“그래, 근데 너에 대해 정보가 들어온 거지.”

살짝 불길한 느낌을 받으며 파르페를 입에 넣고 있는데-.

“기업 담당 업무를 보던 애들의 말로는 네가 지상에서 수영이네 알바를 할 동안 그 생산량이 1.5배가량 늘어났다고 하더라? 그것만으로도 어떻게 숨통이 트일 수 있다고 하니까. 기업 전담 부서에서 너라도 알바생으로도 꽂아 넣으라고 하더라고.”

“뎃?!”

아니, 이 양반들이!? 내 의견도 묻지 않고 다시 ‘착한 도비’로 꽂아 넣으려고 해?! 뭣보다 새로운 ‘마력 돌연변이’가 발생한 지금은 일도 못 한다고? 그에 발끈하려는데, 차장님의 말이 이어진다.

“사실, 걔네들 의견이 무지 세단다. 정치인들이나 위정자에겐 민생·경제가 제일 중요하다고 말하니까. 그리고 기업들은 당연히 그쪽 편을 들고 있고,”

“…….”

“너랑 친분이 있어서 내가 직접 설득하겠다고 했지. 니 성격을 보건대, 뭣 모르는 애가 괜히 고압적으로 나갔다가 너에게 진짜 핏물이 될 수도 있으니 말이야.”

“데에…….”

“어떻게 수영이의 생산량만 좀 더 늘려주면 돼. 보상은 빠방하게 챙겨줄 테니까. 다른 편의를 봐줄게! 할 수 있지?”

생긋 웃으면서 탁자 아래의 의족을 까닥이는 차장님. 그에 난 이건 ‘거부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싸장님을 재촉해 생산량 늘리기 vs 그냥 싸장님의 도비 되기. 지옥 같은 난이도의 퀘스트가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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