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8화
3.
[수락/수락]밖에 없는 지옥의 퀘스트 받은 다음 날 아침, 난 미르에 입구가 있는 뉴 송파구-인간 지역 출입구로 향했다.
입구에서 대기 중인 전찬휘 경감을 따라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어느 도착한 지하 지역, 서예린이 있던 집만큼 깊은 곳은 아니고 대충 2km 정도 되는 곳으로 보였는데 놀랍게도 진짜 ‘군부대’였다. 거기서 또 차를 타고 이동했다.
“거, 되게 살벌하네요…….”
산에 뚫린 고속도로 터널 같은 커다란 통로, 그 입구엔 발칸포를 비롯한 각종 화기가 깔려있다. 탱크를 끌고 와도 순식간에 벌집이 될 듯? 그런 내 소감에 운전석에 앉은 전찬휘 경감이 ‘혹시 모를 최소한의 방비.’라고 짧게 대꾸한다. 그렇게 터널을 따라 2~3분 정도 달리자 차량을 막는 차단기와 병사들이 보였다.
오크들
자동화된 발칸포가 배치되어 있던 군부대와는 달리 병사들이 주로 지키고 있었다. 대충 노가리를 까다가 우리가 다가오는 게 보이자 자세를 바로 한다. 차량이 멈추자 기사 계급으로 보이는 상급자가 우리 쪽으로 다가오고 전찬휘 경감이 ID카드를 내민다.
“오기로 연락했던 2인입니다.”
“……통과!”
전자장비로 확인한 오크 기사가 소리치자 차단기가 올라가고, 또 1분 정도 쭈욱 터널을 따라가자-.
“와…….”
터널이 끝나면서 올림픽 운동장 같은 넓은 타원형의 공간이 드러났다.
천장의 높이는 대충 15층 정도? 그래선지 답답한 기분은 전혀 들지 않는다. 도로를 제외한 바닥엔 잔디가 깔렸고, 그 공간의 벽면에는 안이 훤히 보이는 유리 건물이 주르륵 박혀 있었다. 식당으로 보이는 건물, 도서관으로 보이는 건물, 식물원으로 보이는 건물…….
그 사이를 로브 같은 옷을 걸친 젊은 오크들이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었다. 공터 한 쪽에선 농구를 하는 놈들도 있네.
“여긴……?”
“오크어로 ‘우그-타람’, 한국어론 ‘변화의 지식’ 정도 되겠군.”
이어진 지하 주차장 쪽으로 들어서며 전찬휘 경감은 미간을 찡그렸다.
“이번에 취임한 뉴 송파구의 시장-제롬에 의해 급조된 교육 기관이다.”
“……급조해서요? 이곳을?”
15층 건물 높이에 운동장 하나가 들어갈 만한 거대한 동공을, 그것도 안에 박힌 건물들까지 급조해서 만들었다고……?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내 반응에도 전찬휘 경감은 고갤 끄덕인다.
“송파구 지하, 그러니까 ‘미궁 생성으로 인한 토굴’은 현실 건축공학이나 물리법칙에 구애받지 않는다. 건물 짓는 데 필요한 ‘지반 공사’가 아예 필요가 없어. 그렇기에 무너지는 것 따위는 생각하지 않고 쭉쭉 쌓듯이 만들어내면 된다더군.”
“허.”
“건설용 중장비 수준의 효율을 보이는 오크 전사와 기사 계급을 노동자로 투입하니 이 모든 게 2개월 만에 다 지어졌다. 마감은 따로 했지만.”
그러고 보니, 싸장님도 송파구 지하는 특별하다고 했었지. 그래도 이런 곳을 2개월 만에 만들었다니 정말 감탄밖에 안 나오네. 그렇게 거의 텅텅 빈 지하 주차장 한쪽에 주차한 뒤, 우리는 그대로 지상? 아무튼 밖으로 나왔다.
“……인간?”
“복장을 보니 한 명은 미르 생도인 것 같은데?”
“어!? 나 쟤 알아. 밖과 연결되어 있는 인터넷망으로 혜영이 미튜브 봤을 때 봤어.”
“어, 지상 인터넷망? 야, 그거 우리도 할 수 있는 거였어? 나도 가르쳐줘!”
“나도 우연히 본청 컴퓨터 만지면서 한 거야. 바로 걸려서 교수님에게 맞음.”
우리를 보며 은근슬쩍 떠드는 오크들, 지금 보니 절반 이상이 하프 오크들이었다. 생각보다 되게 많네. 그렇게 쏟아지는 시선을 뒤로 한 채 우린 가장 커다란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그와 함께 펼쳐지는 건물 내부의 모습은…….
“익숙한 모습이네요.”
“익숙해?”
“예, 지상에 물약 상점 1층 디자인이 이랬거든요. 물론, 공부하는 사람들은 없었지만.”
유리 벽 너머에서도 보였지만 안쪽은 지상에 있던 싸장님의 공방처럼 세련된 카페 스타일로 꾸며져 있었다. 다른 점이라면 매우 넓다는 것과 그곳에 사람-오크들이 많이 있다는 점? 삼삼오오 테이블에 앉아서 공부하고 있었는데, 붙잡고 있는 건 영어로 된 화학 전공서적들이다.
“근데, 싸장님은 물약 만드는 거 아니었나요? 조용한 곳에서 물약이나 만드실 줄 알았는데.”
“우리도 처음엔 그럴 줄 알았다.”
내 질문에 경감은 왼손에 휘감고 있는 검은 쇠사슬을 절그럭거리며 미간을 찡그린다.
“하지만, 오크들은 처음 주장과는 달리 강수영 연금술사의 지식이나 노하우 같은 걸 빼내기 위해 이런 교육 기관 같은 걸 세워버렸지. 그래서 우리 쪽이 불만이 커. 오크들의 수작질 때문에 생산 일정에 차질이 빚는 거니까. 실제로 가끔 강의도 하거든.”
“흐음.”
“오크 측은 강수영 연금술사가 지식 전수에 동의했고, 자기들이 숙달된다면 저렴한 가격에 강수영 연금술사가 제공하던 물품을 대신 제공하겠다고 했지만…….”
날 설득하기 위해서인지 얼마나 지상에 피해가 가고 있는지 줄줄 읊는 전찬휘 경감, 하지만 대충 한 귀로 듣고 다른 귀로 흘렸다. 그렇게 한쪽 엘리베이터에 서자 건물 입구에서처럼 엘리베이터를 지키고 있는 오크 기사 두 명이 살벌하게 도끼창을 교차하며 가로막는다.
“용건은?”
“강수영 연금술사님을 만나러 왔습니다.”
“8층, 하늘 숲 정원으로 가라.”
무뚝뚝한 대꾸와 함께 교차한 도끼창을 푸는 오크 기사들, 엘리베이터를 타고 8층까지 올라가지-.
“오?”
지상에서와는 비교할 수 없는 독특한 식물들이 자란 식물원이 펼쳐졌다. 그리고, 이곳 8층 바닥에서부터 15m가량 떨어진 상공에 싸장님이 둥둥 뜬 채 구름처럼 떠다니는 하늘색 식물을 채취하는 게 보인다. 건강해 보여서 다행이네!
“싸장님~”
그렇게 저 멀리 공중에 떠 있는 싸장님을 향해 달려가면서 손을 흔들며 소리치자, 싸장님은 멈칫하곤 날 내려다보며 씨익 웃는다.
“어이구, X신 같은 우리 새끼 왔어?!”
일반인이 걷는 듯한 속도의 1/2 정도로 천천히 하강하면서 말하는 싸장님. 지상에서 작업할 때처럼 보안경을 쓰고 있는데, 옷은 흰색 가운이 아니라 청색 비늘이 달린 로브였다. <눈>으로 보니 <부양>이라는 특수 능력이 달린 마법 장비네.
그렇게 바닥에 한 뼘 정도 남기고 둥둥 떠 있는 싸장님은-.
-짜악!
“으윽.”
예전처럼 내 등짝을 ‘짜악!’ 후려친다. 으윽, 레벨업을 해서 체력과 맷집이 엄청 상승했는데도 더럽게 아프네.
“새끼, 어제 전화로 갑자기 온다고 해서 놀랐다니까?”
“헤, 헤헤. 제가 나름 싸장님의 수제자잖습니까?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해서 왔죠!”
“흠, 니 낯짝을 생각하면 마법 좀 가르쳐 달라고 온 것 같은데?”
내 대답에 강한 불신의 표정을 지으며 대꾸하는 싸장님. 거! 너무하시네! 물론, 그런 목적도 있긴 하지만. 어쨌든 ‘큼! 큼!’ 헛기침을 한 뒤, 난 손바닥을 비볐다.
“하하, 아무튼 잘 계시는 것 같아서 다행이네요.”
“나야 귀빈 대접받으면서 잘 있지. 되게 편하단다. 다른 이종족 지역과는 달리 여긴 바깥 인터넷망도 연결이 돼서 그리 불편함은 없어. 지금 시각이…… 오전 10시네? 뭐 디저트라도 먹을래? 여기, 카페도 있는데. 아, 경찰 양반. 오랜만이네?”
천천히 이쪽을 향해 걸어오는 전찬휘 경감을 향해 씨익 웃는 싸장님, 아무래도 구면인 듯하다. 전찬휘 경감도 고갤 까닥이는 가운데, 난 작게 싸장님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이제 국정원 요원이에요.”
“……뭐?”
내 귓속말에 떨떠름한 표정으로 경감을 바라보는 싸장님, 그런 내 행동에 전찬휘 경감이 심기가 불편해지신 것 같지만…… 어쩔? 계속 숨길 수도 없잖아? 싸장님은 경감을 향해 ‘잠시 이 녀석이랑 산책하며 이야기할 테니 1층 카페에서 좀 쉬고 있어라.’ 하며 쫓아내곤-.
“국정원이 네게 무슨 짓 했냐?”
심각한 표정으로 내 얼굴을 올려다보며 물어보신다. 그에 난 어깨를 으쓱였다.
“……쪼금은요? 사실, 이번에 여기 올 수 있던 것도 국정원 덕분이에요. 제가 간다고 하니까 반색하더라고요. 그, 싸장님이 기업에 넘겨주는 물량을 좀 늘리라고 해야 한다나.”
“하긴, 일반인이 이종족 뉴 송파구 지역에 오는 걸 순순히 허락할 리가 없지. 네가 방문한다고 했을 때, 좀 이상하다고 생각했었어.”
입맛을 한 번 다시곤 품 안에서 전자 담배를 꺼내 문 싸장님은 식물원에 난 길을 따라 둥둥 떠서 이동했다. 그러고 보니 나도 전자 담배 하나 마련해야 하는데 말이지? 밖에 나가자마자 전자 담배부터 하나 사야겠다고 생각하며 난 조심스럽게 싸장님을 따라가며 질문했다.
“그나저나 오크들을 가르치실 줄은 몰랐어요.”
“제롬 양반이 가르쳐달라고 했거든. 원래 들어오는 계약도 그렇게 했어.”
“그래도 좀 의외긴 하네요. 오크들에게도 흔쾌히 마법을 가르치시다니.”
그런 내 말에 싸장님은 전자 담배를 입에서 떼어내며 피식 웃는다.
“난 가르침에 인색하지 않아. 인색하면 너도 안 받았지. 너를 제외한 지상에서 내게 접촉했던 놈들은 죄다 ‘인내심이 없거나’ 혹은 ‘날 어떻게 해보려는 놈들’이어서 죄다 박살 났지만 말이야.”
“헤헿.”
“그래도 여기는 괜찮더라. 오크들이 좀 순진한 면이 있어요. 전쟁 군주의 말이면 끔뻑 죽고, 게다가 내가 오무혁 그 양반이랑 함께 싸워서 그런지 존중도 해주고…… 그냥 내가 하란 대로 묵묵히 하거든.”
하긴, 우리 싸장님도 사람을 리볼버로 쏠 정도로 괴팍하지만 동시에 좀 착한 면이 있지. 그렇게 고갤 끄덕이고 있는데 싸장님이 입을 열었다.
“어쨌든 잘 왔다. 당분간 바빠서 분량을 못 채울 것 같으니 너 나랑 여기서 일 좀 하자. 월급은 두둑이 줄게.”
“에, 물량을 못 맞추시나요?”
“응, 다리가 이 꼴이라서 작업 속도가 많이 느려진 것도 있고…… 무엇보다 여기 지하에서 새롭게 할 사업이 있거든. 그거 좀 신경 쓰고 있어. 초보자들이 쓰기 쉽도록 <연금술>에 들어가는 룬 문자의 형상을 이리저리 가다듬고 있지.”
짙은 연무를 뱉어내며 대꾸하는 싸장님, 사업? 뉴 송파구에서? 흐음, 되게 불안해 보이는데? 내 얼굴에 못 미덥다는 생각이 드러난 것인지 싸장님은 유리 벽 너머로 뽈뽈 돌아다니는 오크 애들을 가리킨다.
“지상과는 달리 여긴 화학 같은 거 배워서 먹고 살 구멍이 없거든. 실업자 안 만들려면 나라도 쟤들 밥줄을 챙겨 줘야지,”
“음, 그렇군요. 그런데 싸장님?”
“왜?”
“죄송하지만…… 전 이전처럼 싸장님을 도와드리긴 힘들어요. 새롭게 발병한 <마력 돌연변이> 때문에 하고 싶어도 못한다고 해야 하나?”
내 말에 의아한 표정으로 날 바라보는 차장님, 그에 난 작게 한숨을 내뱉었다.
“사실, 전 일 하러 싸장님을 보러 온 게 아니에요. 어떻게 싸장님을 만나려고 했더니, 국정원이 도중에 껴서 이런저런 제안을 한 거죠.”
“……그럼 왜 날 만나려고 했냐?”
“빚을 갚기 위해서죠.”
발걸음을 멈춘 뒤, 난 진지한 얼굴로 싸장님을 바라보았다.
“싸장님, 절 믿으시나요?”
“아니.”
“…….”
“뭐 인마? 난 아무도 안 믿는다고 했잖아.”
오히려 적반하장을 시전하는 싸장님. 거 참, 인간불신이 머리에 박혔네! 박혔어! 괜히 무게 잡은 게 한심하게 느껴져서 한탄했다.
“아니, 그래도 좀 믿는다고 해주셔야 제가 뭘 하든 말든 하죠…… 사람 뻘쭘하게.”
“X랄, 내가 사람을 믿을 것 같냐?!”
“아, 됐고! 드러누울 침대나 탁자 있는 데 없어요? 그쪽으로 가죠.”
“갑자기 또 왜?”
연무를 뿜어내며 띠껍게 바라보는 싸장님을 향해 난 씨익 웃었다.
“하반신 움직이지 못하는 거, 치료해드릴게요.”
4.
내 말에 싸장님은 눈을 똥그랗게 뜨며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내가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알아차리셨다.
그리곤, 따로 마련된 싸장님 전용의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 거주지로 향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거실로 향한 뒤 테이블 위에 털썩 엎드리는 싸장님, 난 부엌 쪽에서 적당한 유리컵 하나를 챙긴 후 엎드린 싸장님의 로브를 들쳐 올렸다.
“좀 섬뜩할 수 있어요.”
“빨리하기나 해, 인마.”
싸장님의 재촉에 드러난 그 조그만 등에 손을 올려놓았다. 그리고 <눈>의 기능을 끌어올리며 장송곡 같은 주문을 웅얼거렸다. 그와 함께 내 손끝에서부터 ‘영혼을 낚아채는 갈고리들’이 천천히 뻗어 나간다.
“……거, X같은 느낌이긴 하네.”
그에 뭔가를 느낀 듯, 싸장님은 움찔거렸지만 그대로 자세를 유지한다. 어쨌든 그렇게 뻗어 나간 내 마법의 갈고리들은 마침내 싸장님의 영체에 붙은 ‘유혈의 파편’에 닿았다.
“스읍, 하아.”
잠시 작업을 멈추고 심호흡을 했다.
될지 안 될지 모르는 치료. 하지만, ‘<강령술>로 영혼들을 다뤄본 경험’과 ‘영혼의 부패와 타락에 관한 섬뜩한 지식’, 마지막으로 영혼의 수복을 바라는 ‘내 초월적인 갈망에서 비롯된 지성’으로 판단컨대…….
“ᚸᛠᛔ ᛍᛋᛋᛜ!”
가능하다! 불꽃 가능!
새로운 룬 문자를 만들어내며 그로 인해 비롯되는 ‘현상’을 부여했다. 그와 함께 유혈의 파편을 느슨히 감싼 갈고리들에서 뿌리 같은 것들이 자라나며 그 파편을 단단히 쥔다. 그에 유혈의 파편이 의지를 가진 것처럼 꿈틀거리지만-.
“흡!”
심연의 타락과도 비슷한 갈고리는 쉽게 뜯기지 않는다.
곧바로 손에서 뻗어 나간 갈고리를 움직여 싸장님의 영체에 달라붙은 것을 쥐어뜯었다. <눈>으로 보건대, 영체에 별다른 상처도 없이 완벽하게 끝났고 허리의 척추 신경도 정상적으로 움직인다. 그걸 느낀 듯, 누워있던 싸장님의 두 눈이 휘둥그레진다.
“이제 빚은 다 갚았죠?”